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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구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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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죽마고우로 지내는 싱가포르 친구가 있는데 그는 건축가 입니다. 글재주가 있어서 오랜 세월 신문에 칼럼도 연재하고 시집도 내고 그랬습니다. 요즈음도 일주일에 하나씩 칼럼을 연재하는데 내용이 고양이 이야기였습니다. 요즈음 SNS에서도 고양이 멍멍이 이야기들이 많이 올라와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 



본문에 五脚基라고 나오는데 말레이 싱가포르 쪽의 방언으로 중국어로는 치러우(騎樓)라고 합니다. 건물앞 도로 위로 비를 안맞고 그늘도 생기도록 만든 곳을 말합니다. 동남아나 대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건축양식입니다. 영어로 뭐라고 하나 찾아봤더니 베란다라고 되어있네요. 한국어로 베란다라고 번역하면 혼동될 것 같아서 '주랑'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아래 본문의 주랑은 위의 사진같은 곳을 말합니다. 다만 실제 그 일이 있었던 곳은 이렇게 낡은 곳이 아니고 더 모던한 곳일텐데 사진을 못찾아서 그냥 아무거나 퍼왔으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중국어 원문을 읽어보시고 싶은 분을 위해서 원문도 아래 실었습니다. 번역에 문제가 있으면 순전히 제가 부족해서 그런겁니다. 원문은 참 재미있고 유려합니다. 

**********************************************  


  고양이를 구조하다


  오랫동안 가뭄과 혹서에 시달리던 뒤에 돌연 큰 비가 왔던 날로 기억한다. 나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 주랑밑에서 잠시 쉬며 오랜만의 시원함을 즐기고 있었다. 그 때 화분 옆 모서리에 어미 고양이가 한마리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쫄딱 젖은 까맣고 동그란 공같은 것을 맴돌며 가끔씩 앞발로 톡톡 건드려 보고 있었다. 처음엔 쥐를 잡았나보다 싶었다. 가까이 가서 잘 들여다보니 아직 눈도 뜨지않은 새끼 고양이였다. 그 갸날픈 것은 온몸이 젖어서 계속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사무실로 가서 동료를 불러 작은 타월 한장을 가지고 와서 새끼고양이의 몸을 닦아주었다.

  보통같으면 그 엄마고양이와 나는 서로 면식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으므로 자식을 내가 만지고 그러면 응당 불같이 화를 냈어야 했다. 하지만 어미고양이는 몇번 야옹거리더니 자식을 놔두고는 몸을 돌려 주랑 끝쪽으로 달려갔다. 

  오래지 않아 그는 또 한마리 흠뻑 젖은 새끼 고양이를 물고 오더니 내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몇번 야옹거린 뒤에 다시 주랑 끝쪽으로 달려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입에 아무것도 물지 않은 채 돌아왔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급하게 울어댔다. 그러더니 몇걸음 달려가서 뒤를 돌아보고, 또 몇걸음 달려가선 뒤를 돌아보고 울었다. 나는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동료를 불렀다. 위험에 처한 새끼고양이가 또 있는게 틀림없어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니 네가 빨리 쫓아가서 살펴보라고 했다.

  동료는 새끼 고양이 한마리를 두손에 받쳐들고 돌아왔다. 어미가 그 뒤를 따라오는데 사람, 어미 고양이, 새끼 고양이 모두 쫄딱 비에 젖은 모습이었다.   

  서둘러서 새끼 고양이를 닦아주었다. 어미는 옆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쪽을 찬찬히 보면서 한편으론 자신의 몸을 부지런히 핥고 있었다. 아까의 초조하고 불안한 모습과 달리 지금은 크게 안도하는 것 같았다.

  사무실 현관 한쪽 구석이 어린 포유류를 키우는 따스한 한폭의 그림처럼 변했다.

  동료가 말하길, 어미 고양이를 쫓아가니 곧바로 뒷골목으로 들어갔는데 배수로에 연결된 배수구에서 콸콸 쏟아지는 물안에 갇힌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고 했다. 원래는 말라있던 배수로였는데 큰비가 오고나서 수위가 점점 높아져, 어미고양이는 두마리만 구해내고 남은 한마리는 '홍수'에 손을 쓰지 못하고 건너편 배수구멍에 놔둔채 물에 잠겨가는 걸 보고만 있다가 다행히도 물이 배수구를 덮치기 전에 새끼고양이를 구출해 낸 것이었다.

  종이박스를 마련해서 어미와 새끼들이 들어갈 수 있게 하여 주방에 놓아주었다. 며칠이 지나고나서 어미와 새끼들이 보이지 않았다. 비가 지나가고 다시 맑은 날씨가 되었다. 아마도 어미고양이와 그의 자식들은 살 곳을 찾아냈고, 자기들끼리 생활하려고 나간 것 같았다.  

 초등학교때 아버지가 병이 나서 일을 못하여 수입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개학을 했는데 교과서를 살 돈이 없었다. 다행히도 학교에 교과서 대여를 신청하여 계속 학교공부를 할 수가 있었다. 새학년이 되어 선생님께서 계속해서 교과서를 대여하겠느냐고 물어보셨는데 어머니께서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이렇게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어머니가 남의 집 가사를 도와주고 조금 여유가 생겨서 교과서는 살 형편이 되었습니다. 무료로 교과서를 대여받는 기회는 그걸 더 필요로 하는 학생에게 돌리고 싶습니다.

  곤란에 처하게 되면 도움을 청하되, 고난을 면하고 나면 자력갱생(自力更生)한다, 라는게 바로 이런 거 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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