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으 음식일기 (24): 복날의 천렵,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먹지 않았다 나의 반백년 음식일기


날씨가 무더우니 자꾸 에어컨 신세를 지게된다. 여름은 마땅히 더운 계절이고 옛날엔 에어컨 없이도 그런대로 넘겼으니 어디 그냥 한번 버텨볼까하고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면 5분을 못넘긴다. 차라리 창문을 닫은 채로 에어컨을 끄면 제법 오랫동안 시원한 기운이 남아서 그런대로 버틸만하다. 몇 년전에 홍콩에서 문득 친한 이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옛날에 홍콩에서 에어컨이 없을 때는 어떻게 지냈냐고. 그 이는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이로, 그가 어렸을 때는 홍콩에 선풍기는 있었지만 가정에 에어컨은 없이들 살았다고 했다. 지금은 일년 365일 에어컨이 없이는 살 수가 없을 것만 같은 홍콩의 기후에서 에어컨이 없는 생활을 상상하기가 힘들어서 그의 대답이 궁금했다. 

그 때는 고층빌딩이 별로 없어서 바람이 잘 불었던 것 같고,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더운 공기가 없어서 였는지 도시 전체가 지금처럼 덥지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 때의 대화가 생각난 건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이다. 내 어렸을 적엔 그저 그러려니 하고 여름을 잘 났던 것 같다. 어른들은 더웠는데 아이라서 더 잘 견뎠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긴 자다가 더워서 벌떡 벌떡 일어나서 잠을 설쳤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난다. 

나는 여름이면 늘 고향에 내려가 지냈으니 실제로 더울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일찌감치 저녁밥 먹고 모기를 쫓으려 마당에 모닥불 같은 것을 피운채 창문을 다 열어놓고 모기장안으로 들어가 잠을 자면 시원했다. 설악산과 동해바다 사이는 밤이 되면 서울보다 온도가 몇도 쯤은 낮았는지도 모르겠다. 개학이 가까워 올무렵이면 바닷물이 차가와 해수욕도 못하고,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이불도 살짝 솜이 들어간 누비이불 같은 걸로 갈아 덮었던 생각이 난다.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해수욕이다 물놀이다 매일 쏘다니며 놀아서 온몸이 새까맣고 반질반질했다.  서울에 올라가 개학을 맞이하면 시골에 다녀온 아이들은 한결같이 까맣게 변했고 허물을 벗듯 껍질이 벗겨지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개울가에서 동네 청년들이, 때로는 어른들이 모두 모여 큰 규모로 천렵을 했던 생각이 많이 난다.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 늘 옹고지탕을 끓여 먹었다. 천엽, 천엽 이렇게 말하던 것이 사실은 '천렵'이라는 말의 발음이 변한 것이라는 것도 아주 나중에 알았고, 옹고지라는게 미꾸라지보다 작은 고기로 쌀미꾸리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는 것은 최근에 검색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지금 기억으로는 고추장 된장을 풀었는지 얼큰한 맛이 나는데 이런저런 야채도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구수해서 밥을 말아 먹으면 맛이 아주 그만이었다. 아이들이 옹고지 잡는 걸 돕겠다고 텀벙거리고 가까이 가면, 오히려 방해가 되니 멀리가서 놀다가 먹을 때 부르면 오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몇시간이고 물놀이를 하다보니 허기가 졌을 것이고 그래서 옹고지탕이 더욱 맛이 좋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밥과 탕을 나눠주는 데로 가면 옆에 동이로 퍼다놓은 막걸리가 있어서 들척지근한 술향기가 퍼졌다. 늘 일찌감치 취해서 기분좋게 주정을 하는 이도 반드시 한두명이 있었고. 

오늘 적고 싶은 건, 내가 개를 먹은 적이 있었느냐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평생 개를 먹은 적이 없다. 최소한 지금의 내 기억에는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는 개도 음식이니까 먹어도 되고, 자기가 안먹는다고 남을 비난할 것까지는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속마음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개를 안먹었으면 하는게 진심이다. 어려서 하교길에 정릉천에서 개를 매달고 그을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다. 맛있으라고 개를 매달아 두들겨서 잡는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그런 장면은 목격한 기억은 없다. 

다만 어려서 시골에서 천렵에 개를 잡아 요리하는 걸 본 기억은 있다. 그렇다면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가마솥을 걸고 마을 사람들이 개를 잡아 다 같이 나눠먹을 때에 예닐곱살 먹은 아이가 '전 개를 못먹으니 안먹겠어요'하고 거부의사를 제대로 밝혔을리가 없다. 그랬다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겠지. 그런 명백한 거부의사를 표명한 기억이 없으니 개장국을 한그릇 떠주었으면 먹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고, 그걸 평생 '내가 먹은 건 옹고지탕이야'라고 자의적으로 기억을 왜곡했던 것은 아닌가 조금은 괴롭기도 하였다. 

그러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에 다시 한번 안도하게 되었다. 개를 잡는 날에는 천렵에 나온 사람들이 많아서 개 한마리로는 부족했고, 어차피 시간이 남아 잡는 옹고지니까 옹고지탕도 같이 끓였다는 사실을 기억력좋은 고향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개장국으로 천렵을 하는 날에도 옹고지탕만 먹은 걸로 알리바이가 성립되었다. 

어릴적 천렵을 하던 기억은 머리속에 생생한데, 그림으로 그려보려니 필력도 딸리고 시간도 없고... 위의 그림처럼 그냥 5분동안 낙서마냥 끄적거리는게 한계다.  언젠가는 수십명이 나오는 '어노학동천렵풍속도(於蘆鶴洞川獵風俗圖)'를 채색화로 그려보고 싶다. 오늘은 집에 돌아오니 쥬스가 복숭아를 사다놓았다. 편의점에서 원플러스원으로 네개 1,500원에 샀다고 했다. 생각보다 너무 달고 맛있었다. 이 가격이면 산지에서는 얼마에 나왔을까. 농사지은 이한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017년 8월 더운 여름날, 나는 어려서 천렵은 많이 했어도 거시기는 입에 대지않고, 옹고지탕만 먹은 것으로 나의 정사(正史)에 기록하기로 하였다. 


덧글

  • 빛의제일 2017/08/06 23:58 # 답글

    십 여 년 넘게 집에 선풍기도 없이 지내는 사람인데, 작년부터는 조금 힘듭니다. ^^;; 작년과 올해는 그동안 선풍기, 에어컨 없이 지낸 것이 아까워(?) 오기로 버티고 있습니다. 부채는 많습니다. :D
    대학까지 부산에서 자라서, 예전 책에 나오는 '천렵'이 잘 상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먹는 것이니까 맛있겠다 생각은 했습니다.
    저는 확실하게 개고기는 먹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직장에서 회식처럼 먹을 때 끼어서 삼계탕을 먹었습니다. 남들 맛있게 먹는 것 보면 다 먹고 싶은 제 입이지만, 개고기는 어쩐지 끌리지 않습니다.
    복숭아를 담은 얌전하고 고운 접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 Mirabell 2017/08/07 00:15 # 답글

    어린시절 시골에서 놀다와서 살껍질 벗겨지던 때가 저도 있었기에 옛생각을 떠올려 봅니다. 선풍기 하나로도 잘 버티던 여름이였고 2010년정도 까지만 해도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잘 버텼던걸로 기억을 하는데 확실히 도심지에 에어컨 보급률이 올라가면서 실외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 때문에 더위가 더 심해지니.. 천렵도 떠오릅니다. 어린시절 저런 그물 가지고 송사리도 잡고 도롱뇽이나 메기같은것도 잡곤 했었거든요. 안양천에서의 이야기인데... 지금은.. 그래도 종종 잉어는 보이니... 시골 남해군에는 은어랑 민물장어가 돌아다녀서 작살로 은어도 잡으러 다니고 민물장어 잡으러 삼촌들 따라다니고 했던 어린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그땐 무더운 여름도 그냥 즐겼던 거 같아요.. ㅎㅎ

    그리고 복숭아.. 올초에 나올때만 해도 값이 비쌌는데 박스에 만원에도 팔고 그래요. 바로 옆동네가 복숭아 산지라.. 오늘 뷔페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거기서 디저트로 복숭아가 나오더군요.. 깜짝 놀랬습니다... 참외도 덩달아 나온건 비밀... 칠곡군에 복숭아 바로 옆동네 포도 참외가 나오니.. 행복합니다.. ㅠ

    그리고 천엽을 그림으로 그리신건 화가의 작품인줄 알았습니다. 표현력이...


    개고기 하니.. 어린시절 제가 살았던 안양3동.. 지금은 안양9동.. 에서 좀 더 올라가면 담배촌이라는 동네가 나오는데 거기 주변이 전부 영양탕을 팔던 곳이라 매년 여름이면 보신탕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었습니다. 개를 잡고 보신탕을 끓이고 남은 부산물등을 그냥 개울(안양천)에 버리곤 했었는지 여름이면 동네 친구들과 하천에서 물장구 치고 놀곤 했는데 거시기 같은게 동동 떠있는걸 보고 깜짝 놀래기도 했었죠... -_-; 보신탕도 안먹고 어릴적 트라우마로 삼계탕 백숙도 안먹으니 여름철에는 뭘 먹고 버텼나..싶네요...
  • 고양이씨 2017/08/07 00:44 # 답글

    저는 어릴적부터 집에서 여름을 날 땐 냉풍기와 선풍기로 여름을 났었는데, 나중에 좀 나이먹고 나서는 넓은데로 이사가게 되니까 에어컨을 따로 한 대 두고 선풍기를 각 방에 넣어주는 형식으로 여름을 버텼던 것 같네요.
    외가가 전남 해남 이다보니 어릴 적 여름에는 늘 바닷가에서 지냈던 기억이 나요. 정작 바닷물에는 잘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지만요.
    저는..개고기를 못먹는데 엄마가 강제로 먹여서 그자리에서 토하고 심하게 배앓이를 해서 한동안 트라우마가 있던 적이 있어요. 지금도 개고기는 먹지 못해요.
  • Semilla 2017/08/07 02:28 # 답글

    천렵이란 단어/풍습에 대해선 처음 알았네요! 얼마 전에 포켓몬고에서 여러 사람들과 모여서 희귀한 몬스터를 잡았는데 그걸 실생활에서 하는 것 같네요. 옹고지탕이란 것도 어떤 음식인지 궁금하고요.

    제가 사는 곳은 한동안 무덥다가 갑자기 서늘해져서 에어콘을 몇일째 꺼두고 있지만 정말 에어콘 없이 옛날엔 어떻게 살았는지 가늠이 안 돼요. 여긴 고층 빌딩도 별로 없고 바람 많이 부는 동네인데도요. 에어콘이 고장나면 친구들이 고쳐질 때까지 (여긴 오래 걸리니까요..;) 자기 집에 있으라고 초대하는 것도 많이 봤어요.
  • 2017/08/07 14: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떡잎 2017/08/07 17:14 # 답글

    하하. 밥과술님, 저도 어렸을 적에 엄마가 오리고기라며 준 것이 영 맛이 수상해서, 몇 번이나 엄마 이거 진짜 오리 맞아? 오리 맞아? 하면서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먹을 당시에도 어쩌면 거시기를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찝찝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역시나 오리고기가 아니였더라구요. 설령 내 혀는 거시기를 달게 먹었을지언정(그것이 또 어쩐지 제 입에 맛있게 느껴져 버렸던 것입니다!), 먹은 나는 떳떳하고 속인 엄마가 나쁜 거라 합리화를 시켰었는데, 옹고지탕만 먹은 것으로 기록된 밥과술님의 정사 소식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옳다구나 뻔뻔스레 발을 들이밀어 봅니다. ㅎㅎ 오늘도 재밌는 이야기 감사해요!
  • Erato1901 2017/08/07 18:16 # 답글

    다행히 저는 원체 육류를 즐기지 않았기도 하지만 육류의 종류에 무척이나 까탈스러우신 어머니 ( 이 어르신은 돼지고기, 닭고기도 드시지 않아요) 덕분에 거시기 근처에도 못가봤죠. 대단히 감사하죠. 개고기는 제가 피하는 재료 ( 개고기, 송아지고기, 샥스핀, 제비집) 중에 하나랍니다.

    복숭아 참 좋아했어요 (과거형) .. 제가 과일은 잘 안 먹는데.... 이 복숭아는 참 좋아하는데 나이가 드니 복숭아 먹으면 알레르기 비슷한게 생겨서 무서워서 못먹고 있네요. 복숭아에 casein intolerance 에 참 속상하네요.
  • 듀얼콜렉터 2017/08/08 02:58 # 답글

    한국에 있을때 세들어 살고 가난해서 에어컨 같은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꿨는데 미국에 이민 오자마자(처음엔 동부의 뉴올리언스로 갔습니다) 아파트에 에어컨이 기본으로 달려있어서 깜놀했었죠. 근데 뉴올리언스가 습도가 장난 아니라서 진짜 에어컨 안 키면 살수없을 정도였습니다 헐.

    한국에 있을땐 부모님이 맞벌이 하시고 서울태생이라 복날에 개고기 먹을 기회는 없었더랬죠. 그후에 1989년에 미국에 이민오고 미국이야 개고기가 불법이니 인연이 없었는데 10년전 여름에 한국에 여행 왔을때 복날에 삼촌이 개고기 먹으러 가자고 했을때 전 삼계탕을 시켜 먹었습니다, 집에서 개를 키우고 있었는지라 진짜 양심적으로 개를 먹을수 없더라구요, 그냥으로도 싫었구요. 대신 다른 사람이 시킨 개고기를 딱 한점만 먹었습니다, 무슨맛인지 알 용도로요... 키우는 개들은 개고기를 먹으면 알아채서 막 질색한다고 들었는데 전 다행히도 그런일은 없었네요 ㅎㅎㅎ 한조각만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냄새가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서두요 ㅋㅋ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