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돌아와서; 김장김치와 김치찌개 살아가는 이야기


잘익은 배추김치를 먹으면 사각사각 입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도 즐겁습니다. 따뜻한 밥을 입안에 넣고 갓썰은 김치를 한조각 베어물면 매콤한 양념맛보다는 시원한 느낌이 먼저 다가오지요. 김치찌개를 한숟갈 떠서 입에 넣으면 다른 음식에서는 찾을 수 없는 김치찌개만의 구수하고 얼큰한 맛과 냄새가 입속전체로 퍼져서 목구멍으로 넘길 때까지 남아있습니다. 잘구운 김을 한장 입에 넣으면 씹지않고 다물기만 해도 입천장과 혀 사이에서 바사삭 가볍게 부서지는게 유쾌합니다. 무뎌지지않고 계속 새롭게 김치찌개와 김치를 즐기려면 부드러운 계란말이를 하나 먹어서 매운 맛으로 자극이 남은 입안을 깨끗이 정리하는게 요령입니다. 

비행기가 고도를 본격적으로 낮추기 시작하며 좌석등받이를 바로 세우고 안전벨트를 매라는 기내방송이 나올 즈음, 저는 몇시간뒤에 먹을 집밥을 머리속으로 그려 상상으로 먹어보기 시작합니다. 주책맞게 침이 고입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집에 전화를 합니다. 쥬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금세 받고는 묻기도 전에 얘기합니다. 피곤하시죠? 김치찌개말고 또 뭐 드시고 싶어요?

이번 출장은 꽤나 길어서 근 한달 가까이 집을 떠나있었습니다. 밤과 낮이 바뀌고 계절도 정반대로 바뀌는 곳을 다니며 일을 보았습니다. 어딜가도 잘자고 잘먹는 체질을 물려주신 조상님덕에 아프지않고 다녔고, 맛있는 것도 많이 얻어먹어서 집밥 생각은 별로 나지 않았는데 막상 귀국편 비행기를 타니까 김치먹고 싶은 생각이 확 몰려왔습니다. 아마도 떠나기 직전 시골에 내려가 계신 형님께서 김장김치를 넉넉하게 담가 저희 집에도 나눠주신게 생각이 난 모양입니다. 갓 담근 김치를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숙성버튼을 눌러 놓았는데 어느샌가 잘 익었는지 저장상태로 넘어가 있더라고 언젠가 쥬스가 전화로 전해준게 한 보름 된 것 같습니다. 

쥬: 김치찌개 말고 또 뭐 드시고 싶어요?
술: 계란말이
쥬: 콜! 또?
술: 감자조림
쥬: 감자가 없어요... 대신 느타리버섯이 있어요. 그거 볶을께. 또?
술: 그거면 됐어.
쥬: 밥은, 흰밥? 콩밥?
술: 음... 콩밥.
쥬: 스팸은 안드세요?
술: 스팸은 됐어. 내일 나혼자 먹을때 지져먹게. 넌 내일 십센티 공연가지?
쥬: 스테이크 고기 있는데 조금 굽고, 아보카도 잘익은거 있어서 과카몰레 하려구.
술: (본바닥에서 실컷 먹고와서 좀 별로지만 그런 얘기하면 알면서도 얄미울테니) 으응, 그래.. 그리고 김있지?
쥬: 있어요. 그럼 준비할께. 참, 식사하고 광화문 나갈거예요? 난 하루종일 집에 있어서 괜찮지만 아빠는 웬만하면 오늘은 쉬지? 24일도 하고 31일은 크게 한대요. 
술: 알았어. 컨디션봐서. 아, 그러고 냉장고에 맥주 두캔만 넣어놔라.



위의 사진이 그리고 두시간쯤 지나서 집에서 먹은 토요일 저녁 사진입니다. 김치는 정말 잘 익어서 상상한만큼 아삭아삭 맛이 좋았습니다. 김치찌개도 고소하고 맛이 좋았지요. 밥을 잔뜩 먹고 나니까 한꺼번에 피로가 몰려왔는지 잠깐 눕는다고 했는데 눈을 뜨니 오전 2시였습니다. 광화문은 못나갔고, 푹 잔 것처럼 눈이 말똥말똥해서 다시보기로 그것이 알고 싶다, 썰전 등을 보고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맨 위의 사진은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후에 유명해졌다는 앱, 에버필터로 가공해 본 것 입니다. 풍경사진은 꽤 애니메이션 효과가 나는데 음식은 썩 맘에 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래는 비교삼아 워터로그로 변환해 본  것 입니다. 


출장을 다니는 동안 외국사람들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의례 빠지지않고 화제에 올랐던게 한국 정치상황입니다. 상황자체가 챙피하기가 이를데 없고, 나온 스캔들이 하도 저질이라 설명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내자신도 납득이 안가는 사항을 제삼자에게 설명하기는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몇몇 미국사람들은 그나마 위로를 한다고 '야, 우리도 트럼프가 됐단다. 피장파장이야' 뭐,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거기다 '그래도 그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문법에 맞게 5분 이상 할 수 있는 능력은 있잖니'라고 말을 보태면 '아니 그렇다면 너희는...' 이러고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참은 적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웬만하면 누워서 침안뱉으려고 참고참았는데, 한국발 보도를 보면 침이 아니라 누런 가래뭉치가 나오더라도 뱉어내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여러번씩 들었습니다. 사실 시차가 있는 곳에서 한국 돌아가는 상황에 눈과 귀를 기울이느라 이번 여정에서는 잠을 여러번 놓쳤기도 했지요. 그리고 웬만하면 나쁜 욕을 입에 안담으려고 하면서 살고 있는데 욕설이 저절로 터져나왔습니다. 영어로 지난 한달간 F자가 들어가는 단어를 쓴 빈도가 그 이전 수년간 사용했던 것보다 많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별로 의식하지 않았는데 놈, 새끼는 괜찮지만 ㄴ ㅕㄴ 이라는 단어는 남자가 사용하면 여성폄하가 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원래 잘쓰지도 않던 말인데 요새는 안쓰려니 많이 답답합니다. 빨리 이런 말 쓸 일이 없는 좋은 시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이 된 날 이후 며칠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200만 이상이 모이는 평화로운 집회를 외국사람들은 경이롭게 보고 있었습니다. 부러워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외국에서 틈틈히 청문회를 보니까 속이 답답하기도 하고, 또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따스한 밥한그릇을 입에 맞는 국과 반찬 몇가지 해서 걱정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일요일 푹자고 일어나 혼자서 계란하나 부치고 스팸 몇쪽 지져서 와구와구 먹었습니다. 



방에서 뒹굴며 책도 보고, 웹서핑도 하고 그러다 오후늦게 거실로 나와 간만에 TV를 틀었습니다. TV리모컨은 있는데 케이블 리모컨이 안보였습니다. 화면에서는 팬텀싱어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습니다. JTBC 로고가 오른편 상단에 붙어있더군요. 전화걸어 물어볼까 하다가 그래, 요새 볼데라고는 jtbc밖에 없어서 얘도 리모컨 찾지 않고도 아쉬운게 없었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보았습니다. 보니까 팬텀싱어 재미있더군요. 하나 느끼는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 참 노래 잘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슬슬 저녁을 먹고 내일 오랫만에 출근하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블로그에 들어오지 못해서, 안부삼아 근황도 전할겸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새로운 한주 즐겁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덧글

  • 고양이씨 2016/12/18 22:21 # 답글

    우와우와!! 김치찌개 맛있어 보이네요. 요새 맛있는 김치찌개를 못먹은지 꽤 되었고 남편이 끓여버리면 싱거워지고 제가 끓이면 양파를 왕창 넣는지라 달아져 버려서 늘 집의 김치찌개가 생각나게 되더라구요. 집의 김치를 조금 받아다가 언젠가 찌개를 다시 끓이는 시도를 해봐야 되겠단 생각이 드네요 ;ㅅ;)..
  • 밥과술 2016/12/25 12:56 #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이는 비결은 하나! 맛있는 김치로 끓이는 거지요!

    저는 김치찌개에는 김치, 돼지고기(소고기), 파, 두부말고는 아무것도 안넣으려고 합니다. 맛있는 친정김치로 찌개 끓이시면 블로그 올려주세요~^^
  • Semilla 2016/12/19 05:02 # 답글

    저도 여행 다녀와서 김치찌개를 한솥 끓여 먹었어요. 김치찌개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사진 보니 스팸도 계란말이도 콩밥도 참 맛나 보이네요. 다음에 끓일 땐 저도 계란말이 정도는 추가해봐야겠습니다.

    트럼프는 영국 작가들이 문법/맞춤법 지적하면서 놀리기도 하더군요: https://twitter.com/neilhimself/status/810190256804872192
  • 밥과술 2016/12/25 13:00 #

    계란말이 많이 드세요. 요새 한국에서는 계란파동이 난 모양입니다. 저희 집은 계란을 미리 사둔게 남아있어서 아직 괜찮습니다만. 보도를 보니 산지에서 올라간게 아니라 중간상인이 농간을 부린 모양입니다ㅠㅠ
  • 유나 2016/12/19 15:08 # 답글

    잘 지내고 있으시군요!
    건강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콩밥은.... 꼭 먹여주고 싶은 사람이 몇명있죠.....[..]
  • 밥과술 2016/12/25 13:00 #

    감사합니다. 잘지내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콩밥 안준다고 합니다. 콩이 더 비싸대요 ㅎㅎ
  • 핑크히카 2016/12/19 15:15 # 답글

    잡곡밥에 김치찌개, 계란후라이가 참 맛있어 보여요.
    오랜만입니다.
  • 밥과술 2016/12/25 13:07 #

    네~ 반갑습니다. 잘지내시죠? 이글루스 안하시니까 뵙기가 힘드네요...
  • NaChIto LiBrE 2016/12/19 18:49 # 답글

    중남미 다녀오셨나 봅니다. 본바닥에서 과카몰레를 많이 드시고 오셨다니..
  • 밥과술 2016/12/25 13:08 #

    네, 이곳저곳 다녔습니다. 일로 간 거지만 그래도 맛있는거 많이 먹고 구경도 찔끔 찔끔 하였습니다. 아르헨티나도 2년만에 가서 고기 많이 먹었습니다.
  • 듀얼콜렉터 2016/12/20 02:25 # 답글

    아 갑자기 김치찌게가 급땡기네요 ㅎㅎ 전 친구들과 한국상황에 대해 가끔 농담하고 그러다가 트럼프가 당선되니 갑자기 싸해지더라구요... 한국에 안 산다고 농담한데 대한 벌인가 싶지만 너무 크지 않나 생각되기도 하고 크흑. 그래도 탄핵이 가결되서 다행인데 이쪽은 아무래도 4년은 두고봐야 할것 같습니다 쩝.
  • 밥과술 2016/12/25 13:09 #

    트럼프는 4년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4년을 못채운다는 건 무슨 사단이 나는건데 미국이 흔들리면 전세계에 안좋은 영향이 퍼지니까요. 최악은 면해야지요.
  • 솜사탕 2016/12/20 09:26 # 답글

    밥과술님 글은 음식이 바로 앞에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김치찌개 먹고싶어지네요!
  • 밥과술 2016/12/25 13:09 #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치찌개는 아무리 먹어도 안물리는 맛!
  • 2016/12/21 02: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밥과술 2016/12/25 13:14 #

    아이구 폰을 망가뜨리시다니요 ㅠㅠ. 아무튼 연말 잘시내시길 바랍니다. 여행기는 블로그에 올리려고 합니다~
  • 섹사 2016/12/25 12:12 # 답글

    잘 읽었습니다!
  • 밥과술 2016/12/25 13:14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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