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냉장고를 제대로 쓴다면: 한식이야기(3) 우리나라 이야기

지금은 응당 그러려니해서 놀랍지도 않지만, 한 때는 LA 한인타운에 가면 한국에 있는거라면 뭐든지 다 있는게 신기해서 이런 농담을 주고 받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는데 LA에 없는 건 연탄하고 보신탕뿐이다" 수년전부터는 한국붐이 불어서 동그란 드럼통모양의 테이블을 놓은 무슨무슨포차 이런게 힙하다고 대박이 나기도 했으니 매캐한 연탄으로 구워먹는 돼지갈비 이런게 나와서 정말 연탄까지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을 것 같습니다. 보신탕도 영양탕이란 이름으로 들깨 깻잎 마늘 고추가루 등을 넉넉히 넣고 흑염소를 재료로 한국의 거시기와 똑같이 만들어 내는 집이 몇군데 있습니다. 저는 흑염소로 만든 영양탕을 한번 먹어보았는데 진짜 보신탕을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맛을 비교할 수가 없었고, 그냥 양념이 너무 강해서 뭔 맛인지 잘 모르겠다는 인상만 남아있습니다. 

김치이야기를 하는데 LA이야기를 꺼낸 것은 갑자기 영양탕 생각이 나서입니다. 진짜 보신탕 애호가들이 모여서 지금 그 제대로 된맛이 사라져서 안타깝다고 하는데 딱 한번 먹어본 저같은 사람이 나서서 불쑥 '나도 흑염소로 만든 거 먹어봤는데 맛이 별로든데요'라고 하는 격으로 진정한 김치맛을 모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토를 달자면 전 개인적으로는 보신탕을 싫어하고 솔직히 다들 안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식품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것을 법으로 막거나 비난하는 것도 반대입니다. 본론인 김치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위의 사진을 보아주세요. 이게 구글에서 퍼온건데 김치냉장고 광고등을 위하여 올린 사진들 입니다. 돈들여 찍고 더 큰 돈들여 알리는 광고 사진이니 가장 먹음직스럽게 찍으려고 노력해서 나온 사진이겠지요. 아래사진도 마찬가지 입니다. 저는 이사진들을 보면 쌀쌀한 가을날씨에 이불을 덮지않고 자는 어린아이의 모습이나, 칼바람이 부는 겨울날 외투없이 얇은 옷차림에 몸을 웅크리고 길을 가는 나그네의 모습을 연상합니다. 애처럽기가 그지 없는 거지요. 김치를 갖은 양념해서 맛있게 만들어도 맛있게 익을 것 같지가 않아서지요.

제 머리속에 들어있는 '맛있는 김치'의 모습이란 흥건한 김치국물속에 푹잠겨 있다가 막 꺼내 썰어낸 겁니다. 저는 어려서 먹던 고소하면서 시원하고 입안에 착착 감치는 잘익은 김치의 제맛이 김치국물과 관련이 있는게 아닌가 체험을 바탕으로 막연하게 추측해오던 차에 몇년전 '김치 위대한 유산'이라는 책을 읽고서 과연 그렇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책을 읽고 참 많은 걸 배우게 되었고, 김치의 오묘한 세계에 감탄하여 알리고 싶은 마음에 선물한 것도 열 권 가까이 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저자 한홍의 교수의 김치에 관한 글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려있다고 하네요. 신문기사의 형식을 빌어온 글인데 별로 길지 않아서 여기에 전문을 소개합니다. 

****************************************************   

젖산균이 지배하는 신비한 미생물의 세계 

'김치는 과학이다"

부엌만이 아니라 생물 실험실에도 김치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김치 과학자도 부쩍 늘었다. 이제 일본 '기무치'를 누르고 국제 식품 규격에도 채택된 국제 식품이 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실험실의 김치 연구가 거듭되면서, 배추김치, 무김치, 오이김치들의 작은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미생물들의 ‘작지만 큰 생태계’도 점차 밝혀지고 있다. 20여 년째 김치를 연구해 오며 지난 해 토종 젖산균(유산균) ‘류코노스톡 김치 아이’를 발견해 세계 학계에서 새로운 종으로 인정받은 인하대 한홍의(61) 미생물학과 교수는 “일반 세균과 젖산균, 효모로 이어지는 김치 생태계의 순환은 우리 생태계의 축소판”이라고 말했다.


흔히 “김치 참 잘 익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치 과학자라면 매콤새콤하고 시원한 김치 맛을 보면 이렇게 말할 법하다. "젖산균들이 한창 물이 올랐군." 하지만, 젖산균이 물이 오르기 전까지 갓 담근 김치에선 배추, 무, 고춧가루 등에 살던 일반 세균들이 한때나마 왕성하게 번식한다. 소금에 절인 배추, 무는 포도당 등 영양분을 주는 좋은 먹이 터전인 것이다.


“김치 초기에 일반 세균은 최대 10배까지 급속히 늘어나다가 다시 급속히 사멸해 버립니다. 제 입에 맞는 먹잇감이 줄어드는데다 자신이 만들어 내는 이산화탄소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더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되는 거죠.” 한 교수는 이즈음 산소를 싫어하는 ‘혐기성’ 미생물인 젖산균이 활동을 개시한다고 설명했다. 젖산균은 시큼한 젖산을 만들며 배추, 무를 서서히 김치로 무르익게 만든다. 젖산균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는데, “다른 미생물이 출현하면 수십 종의 젖산균이 함께 ‘박테리오신’이라는 항생 물질을 뿜어 내어 이를 물리친다.”고 한다.


그러나 ‘젖산 왕조’도 크게 두 번의 부흥과 몰락을 겪는다. 김치 중기엔 주로 둥근 모양의 젖산균(구균)이, 김치 말기엔 막대 모양의 젖산균(간균)이 세력을 떨친다. 한국 식품 개발 연구원 박완수(46) 김치 연구단장은 “처음엔 젖산과 에탄올 등 여러 유기물을 생산하는 젖산균이 지배하지만 나중엔 젖산만을 내는 젖산균이 우세종이 된다.”며 “김치가 숙성할수록 시큼털털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둥근 균이 내뿜는 젖산 탓에 김치의 산도는 점점 높아지다가 산도가 0.5%(식초는 3%)가 되는 순간, 둥근 균은 쇠퇴하고 그 때부터 막대균이 기하급수로 증식한다.”라고 말한다. 젖산균의 세력 교체인 셈이다. 산성에 강한 막대균은 이 때부터 김치의 운명을 다하는 ‘산도 1%’의 시기까지 계속 세력을 확장한다.


김치는 유독 젖산균이 똘똘 뭉쳐 생태계를 지배하는 독특한 식품이다. 곰팡이, 세균, 효모 등이 섞여 사는 보통의 발효 식품과 달리 김치는 젖산균의 지배 체제가 워낙 공고하게 구축돼 있다는 것이다. “20여 년 동안 갖가지 김치들을 다 헤집어 봤는데 정말 다른 균은 찾기가 힘듭니다. 김치가 잘 익었을 땐 젖산균밖에 없더라고요. 요구르트는 비교도 안 되는 수십 가지 젖산균들의 덩어리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김치죠.” ‘김치 박사’ 한 교수의 말이다.


그렇지만 젖산 왕국도 산성화가 진행되면서 최후를 맞이한다. 1mL의 김치에 최대 10-100억개까지 증식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막대균조차 자신이 만든 젖산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사멸하는 사이에, 젖산을 먹어치우는 효모가 마지막 ‘해결사’로 등장한다. ‘군내’가 나고 김치 국물에 허연 효모가 뜨기 시작하면 젖산 왕조는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김치 미생물들이 실험실에서 조금씩 규명되면서 이제 김치는 ‘어머니 손맛’이 아니라 미생물에 의해 맛이 조절되는 새로운 김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 기자

**********************************************************************************************


이 책에서 한홍의 교수는 집에서 담가먹던 김치가 상품화하면서 김치국물이 없어진 것을 너무나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김치국물이야 말로 한 국자안에도 수천억이 살아서 바글바글 수영을 하고있는 몸에 좋은 유산균의 보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기를 싫어하는 혐기성 젖산균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김치의 감칠 맛을 유지해준다는 겁니다. 


그러고보니 옛날에 김치국에 밥말아먹고라는 표현도 있었고, 떡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라는 말도 있었듯이 옛날에는 시원하게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게 김치국물이었지요. 실제로 우리 세대의 웬만한 사람은 대개 연탄가스에 살짝 중독이 되면 우선 김치국을 마시던 경험이 있습니다. 김치말이 국수라는게 그냥 국물을 항아리에서 퍼다가 만들면 될 정도로 흥건하고 넉넉한게 김치국물이었고 그만큼 시원하고 감칠 맛이 났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파트 문화가 한국인 대부분의 주거환경을 바꾸면서 항아리에 담가 땅에 묻는 김장문화가 없어지나 했는데 기적같이 김치냉장고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넣어먹는 김치가 옛날김치가 아닌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지금 십대 세대의 부모님이 70년대생이 많습니다. 그러니 이분들도 청소년기에 이미 아파트에 살면서 맛있는 김치를 덜 먹고 자란 세대이기가 쉽습니다. 맛있는 김치를 먹고 자란 세대가 2대째 대물림을 하며 더욱 줄어든 것이지요. 


다음은 옛날에 블로그에 썼던 걸 퍼온 겁니다.  


젊은 사람들이 김치를 잘 안먹는 이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옛날에는 먹을게 없어서 김치만 먹었지만, 요즈음이야 워낙 먹을게 많으니 옛날하고 다르지', '옛날엔 겨울에 김장을 몇백포기씩 담가서 겨우내내 먹었는데, 요즘은 한 열포기, 스무포기 담그나?', '옛날에는 겨울이면 여자들은 김장담그고, 남자들은 김장독 파고 묻는게 큰 행사였는데, 요즘엔 많이 담가 봐야 냉장고에 들어갈 데도 없고', '사먹는 김치도 맛있는데 굳이 담가먹는게 현실하고 안맞지, 다들 바쁜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른 맛있는게 많아서 김치를 잘 안먹는다는 논리에 말입니다. 

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김치가 맛이 없어 안먹는다고 생각합니다. 감히 얘기하건데, 요즘 대부분의 김치는 '죽은 김치'입니다. 옛날 맛있던 김치는 '산 김치'였습니다. 밥으로 얘기하면 금방 지어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지어서 밖에다 사흘간 내어놓아 차갑게 식고 물기는 빠져서 딱딱하게 굳고 상하기 일보직전의 밥을 놓고 맛을 비교한다고 상상하시면 됩니다. 모든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오는 김치에 젓가락이 가고, 아무런 저항없이 그걸 먹고 있었다면 그게 바로 '죽은 김치'를 먹고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김치는 '죽어 널브러져서 부패한 것'을 먹어도 어는 정도는 맛있는, 그만큼 위대한 식품이라는 겁니다. 

김치가 발효맛보다 매운 맛으로 인식되는 것에 관해서

김치가 매워서 맛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누구나 다 압니다. 김치의 참맛은 '발효의 매운 맛'입니다. 발효식품에는 각종 아미노산이 들어가서 고소하고 감칠 맛이 납니다. 우리가 먹는 김치는 바로 이 맛있는 유산균 덩어리에, 아미노산에, 고추와 마늘의 매운 맛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의 맛인 것 입니다. 서양음식의 치즈의 오묘한 맛에, 요구르트의 새콤함에, 동남아의 어장(뇩맘, 남프라)의 감칠 맛을 다 더하고, 거기에 고추의 매운 맛이 어우러져 나온게 바로 김치의 맛이기에 잘담근 김치의 매력은 끝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고추에 대해서

고추에는 서양학자가 만들어 놓은 Scoville scale이라는 매운 맛 측정지수가 있습니다. 고추에 포함된 캡사이신의 양에 따라( Scoville heat unit을 줄여 SHU라는 단위를 씁니다) 나누어 놓은 것인데, 피망이 0이고 꽈리고추가 1이고 해서 우리가 먹는 고추가 5정도 됩니다. 청양고추가 한 6 될까요? 그위로 태국고추, 타바스코(고추종류임) 등등이 있다가 맨위에 하바네로라는 품종이 10으로 으뜸입니다. 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 고추를 단 맛이 나면서 맵다고 합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선택하여 남은게 무턱대고 매운 것만 고른게 아니라는 반증입니다. 한 때 고추파동이 나서 외국고추를 긴급수입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우리나라 국민들은 우리고추가 얼마나 맛있는지 처음으로 실감을 하였습니다. 좀 국수적인 표현을 쓰자면 우리는 맛있는 고추를 선택한 민족이지 매운 고추를 선택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김치의 맛이 변해가는 것에 관해서

벌써 16년이 다 되어갑니다만 2000년 남북정상회담차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방문을 했을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국기자단인가 대표단에게 했던 말을 TV에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이 상해에 가서 한국김치를 먹어봤는데, '남쪽 사람들 김치가지고 큰일을 냈다'고 했지요. 저는 평소에 찔리던 바가 있던 터라 금방 무슨 말인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많은 종이매체에서는 그 말을 그대로 보도는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는 한군데도 다룬 곳이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반대로 해석해서 반도체나 자동차산업일으키듯이 김치도 해외로 진출하여 쾌거를 이루었다. 장하다. 이렇게 뒤집어 알아들은 것 같았습니다. 그가 말했던 것은 한마디로 '김치 다 망쳐놨다'는 뜻이었습니다. 다만 남북화해의 좋은 무드에서 유쾌하게 한 말이니, 돌려 말한 것 같았습니다. 그걸 우리 언론이 못 알아들은 거지요. 하기야 6.15 공동선언이 나오고, 남북정상의 역사적 만남과 다가올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커다란 국면에서 김치쯤이야 신경쓰지 않은거니 별일은 아닙니다만, 한국의 김치도 옛맛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북한은 김치의 옛맛은 보전하였는데 워낙 생활이 어려워서 요즈음 일반인들은 맛있는 김치름 흔하게 못먹는게 현실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외국에 나가서 기회가 있으면 북한식당에 김치를 먹는 맛에 들리고 했는데, 이제는 정부에서 막아서 안갑니다. 

한국의 김치가 뮤탄트처럼 변한 끝판왕의 예로 저는 칼국수로 유명한 '명동교자'의 김치를 듭니다. 그집 칼국수를 저도 좋아하지만 식당에 들어서면 독한 마늘냄새와 김치냄새에 골이 띵하고, 눈이 아릴적이 많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맛에 먹는다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집 쥬스도 한국에 와서 그집의 팬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중언부언 옛날 김치가 맛있다는 이야기의 반복같습니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입니다. 흥건하게 국물을 잡아서 김치를 담가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것과, 국물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소비자와 생산자가 일치를 보아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산업용 김치도 좋은 유산균에 푹 담긴 상태로 유통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이유없이 매운맛보다는 시원하고 감칠맛이 앞서는 좋은 김치로 되돌아 갈 것 같습니다. 

최적의 온도로 김치를 숙성시키고 최적의 온도로 김치를 잘익은 상태로 유지하며 장기보관하도록 만들어 진 혁명적인 발명품 김치냉장고가 자꾸 용도를 다른 식품에 내어주는 추세가 김치전용으로 되돌아가는게 맛있는 김치가 되돌아오는 증거라고 보기에 그런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동안 뜸했었는데 곧이어 새글 또 올리겠습니다.  


스타벅스에서 김치냉장고를 생각하며: 한식이야기(2) 우리나라 이야기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이 두가지 브랜드에는 묘한 안도감이 숨어있습니다. 평소에는 그 획일성에서 오는 무미건조함을 무시하며 살다가도 이곳저곳 여행을 하다보면 누구나 나그네의 여정에 지칠 때가 있고, 그럴 때 맥도날드의 노란 엠자 로고를 발견하면 매끼니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도전을 하지 않아도 되고 원하면 입맛에 익숙한 메뉴를 먹을 수 있겠구나 싶은 거지요. 나중에 생긴 스타벅스도 그렇습니다. 세계 어느 도시에를 가도 초록색으로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의 로고를 발견하면, 그냥 먹을만한 정도의 커피와 함께 머핀이나  케잌조각, 그리고 전원을 공급받을 수 있는 플러그와 무료 와이파이가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에 볼 때부터 괜히 마음이 놓입니다. 

일본의 요시노야 규동집도 그렇습니다. 일본을 벗어나 아시아나 미국의 대도시에서 짙은 오렌지색의 吉野家라는 간판이 보이면 일본사람들은 최소한 입맛에 맞는 소고기덮밥을 비싼돈 내지않고 먹을 수 있겠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한식도 세계 어디를 가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이런 브랜드가 하나쯤 생기면 좋겠다 싶기도 하지만 그보다 우선해서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나야할 변화와 해결해야할 과제가 너무 많아서 큰 기대는 접는게 좋을 듯도 합니다. 

오랫만에 쓰는 블로그인데 햄버거와 커피 체인 이야기를 꺼낸 건, 지금 바로 낯선 곳의 스타벅스에서 글을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항에서 합류하기로 한 사람과 한시간 이상의 차이가 떠서 뭘할까 하다가 노트북을 꺼내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요즈음 한식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식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TV가 주도하여 갑자기 붐이 된 것 같은 먹을 것, 먹는 것에 관한 관심은 거기에 따르는 출연진의 수요가 있어서 갑자기 많은 전문가들을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연못에 갇혀있던 고기가 강물을 만나 신명이 난건지, 아니면 이 참에 유명세를 공고히 하자고 굳히기로 들어가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밑천이 들어났는데 자꾸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니 무리가 따른 건지 사실에 부합하지 않거나 과격한 선동조로 오류를 범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건강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는 보다 바람직한 식생활을 추구하는 것과, 맛있는 것을 찾아먹는 미식탐구, 그리고 맛집이라고 소문난 식당이나 화제로 떠오른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를 경험하는 일종의 문화생활에 포함되는 행위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선을 긋기가 힘들게 애매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특징은 어떤 분야에서든지 너무나 빠른 변화가 일어나다 보니 질적인 성장과 발전이 정비례하여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많지만 뒤집어 보면 그만큼 발전속도가 빠르다는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빠른 변화와 질적 향상의 사이에 벌어진 공백을 지적하고 비평하는 건 쉬운 일입니다. 그걸 어떻게 메우느냐로 고민하고 또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쾌도난마의 달변이나 비평의 수위가 높을수록 자신이 잘난거라고 착각하는 삼류평론가의 소란함에 묻혀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건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사실로 음식분야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시대의 소명이란게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할 때에는 무장투쟁이 훌륭한 행위였지요.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게 그래서 입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에 반성을 촉구하겠다고 야스쿠니신사에 방화를 하는 건, 그 결과를 생각하면 치기어린 걸 넘어서 '또라이' 행동입니다. 

그런데 음식에서는 이런 답답한 상황이 가끔씩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식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한 때 우리나라 음식이 오색으로 균형잡힌 식단으로 음양 오행의 사상을 바탕에 둔 훌륭한 음식이라고 칭찬을 받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어령 교수나 이규태 논설위원등이 그런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이분들의 글을 읽어보면 납득이 가고 그 당시로는 참 좋은 글을 쓰셨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음식이 아예 천대를 받거나 열등한 음식이라고 치부되던 시절에 한식을 좀 더 과학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적지않은 공헌을 하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제는 좀 더 다른 입장에서 한식을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것에 대한 맹목적인 칭송이 잘못 나가면 한국음식이 세계에서 제일 우수하고 그러니 세계화를 해야한다는 엉뚱한 아젠다가 성립이 되고 해서 커다란 부작용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한국음식은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음식이 아닙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해서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음식이 어느나라 것이냐 랭킹을 매길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미스 유니버스에 당선된 미인이 실제로 세계에서 제일 예쁜 여자가 아니듯이요.

그런데 한국음식이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음식이라고 빡빡 우겨대는 사람만큼 미련하고 답답한 사람도 있습니다. 서양의 영양학 등에 바탕을 둔 일천한 지식과 얼마 안되는 외국생활을 경험으로 서양 식생활의 잣대를 한국음식에 들이대어 한국음식의 문제점을 설파하는 사람들입니다. 

탄수화물 섭취량이 너무 많다, 염도가 너무 높다, 양념이 너무 획일적이다, 등등 흠을 잡으려고 작심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모양입니다. 특히 외식에 있어서 서비스 불량에 대한 비난은 그 도가 하늘을 찌릅니다. 이게 말이 안되는게 서양의 파인다이닝과 한국의 대중식당을 비교하니 그렇지요. 비싼 가격에 한식을 내는 레스토랑과 미국의 싸구려 다이너를 비교하는게 역으로 어떨지 생각해보면 금세 답이 나오지요. 물론 기본적으로 서비스에 대한 진화와 향상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한국의 외식문화에서 서비스는 가야할 길이 먼게 사실이기는 합니다. 

우리나라는 외식의 역사가 정말로 짧습니다. 그리고 식탁에서 불을 피워 연기를 내며 고기를 굽고, 펄펄 끓는 찌개를 뻰찌로 집어서 상위에 서브를 하는 나라입니다. 그것도 식지말라고 뚝배기에 담아서요. 하지만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게장은 담아서 나오면 입으로 우적우적 씹어서 퉤퉤 뱉어냅니다. 아무리 보아도 보기좋은 모양새는 아니지요. 이걸 생선같으면 가시하나도 다 발라내어 접시위에 담긴 걸 전부 먹도록 나온,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한끼에 수십만원도 하는 서양의 파인다이닝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한식은 기본적으로 외식으로 하기에 문제가 많은 메뉴였습니다. 푸짐하게 한상 가득 차려나오는 한정식이 바탕을 두었다는 궁중 수라반상은 원래가 대궁밥이 기본이었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상을 내려 물려 먹는 겁니다. 요즈음에야 그렇게 먹을 사람이 없을테니 다 남아 돌아갑니다. 실제로 가보면 상위에 올라온 반찬과 요리를 다 먹으려면 한사람이 최소한 밥세그릇은 먹어야 할 정도 입니다. 이런 것도 풀어야할 과제입니다. 그러나 틀림없는 건 제대로 된 한국음식이 한국사람들한테는 정말로 훌륭한 음식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한국 음식에 대한 지적과 비평은 한국음식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과학에 근거한 애정에 기반하여야 발전에 이어진다고 믿습니다. 

저는 김치를 그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주제로 삼고 생각하는 바를 이 블로그에서 쓰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아주세요. 김치냉장고의 초기형태입니다. 온도가 일정하여 변화가 심하지 않은 땅에다 묻어서 김치를 익히고 보관하는 김장독의 원리를 냉장기술에 접목하여 나온 상품입니다. 진짜 초기에는 위의 사진보다 용량도 더 작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다가 용랑도 점점 커지면서 좌우분리형태로 김치가 아닌 다른 식품도 보관할 수 있게 발전하였지요. 요새는 아래 사진처럼 일반 냉장고처럼 여닫이식 도어로 외양도 세련되게 나온 상품들이 많습니다. 
기술이 발전하여 땅에 묻은 김장독 모양으로 냉장을 하고 문을 여닫지 않고 편하게 열고 닫을 수 있게 변화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치뿐만이 아니라 다른 음식을 넣고 냉장, 냉동을 할 수 있도록 다목적화 하였다는 설명도 뒤따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는 발전이겠지만, 혹시하고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이게 혹시 퇴보는 아닐까 하고요. 

이것저것 넣어서 식품의 보관기간을 획기적으로 늘인 냉장고가 전 세계에 보급된 뒤에, 단일 식품 하나만의 보관을 위하여 발명된 제품이 있나 생각해 보니 아무리 찾아봐도 김치냉장고 말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와인을 일정온도로 보존하는 와인셀러, 와인쿨러라는 물건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건 전 세계적으로 보급률이 매우 낮아서 아마 일퍼센트도 안되지 않나 싶습니다. 업무용을 가정용으로 조그맣게 만든 건데 프랑스, 이태리도 그렇고 미국도 이걸 갖춘 가정은 꽤나 와인을 좋아하는 집일 겁니다.

김치냉장고는 개발된지 20년만에 한국 가정에서 보급률이 90퍼센트가 넘는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김치사랑이 이렇게 대단합니다. 일본에도 쯔케모노가 있고 중국에도 비슷한 절임이 있고 유럽에도 발효한 양배추나 피클즈가 있지만 전용 냉장고를 만들어 보관하여 먹는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즈음 점차 김치냉장고의 효용이 개발당시의 그것에 못미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아까 김치냉장고의 다용도화가 발전이기도 하지만 퇴보일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 겁니다. 손님 맞을 시간이 다 되어 다음 번으로 미룹니다. 얘기를 꺼내다 말았습니다... 그래도 한동안 블로그에 글을 안올렸기에 그냥 출석삼아 올립니다. 



맛있는 라면, 맛있는 김치: 한식이야기(1) 우리나라 이야기

방금 맛있게 끓여낸 라면을 냄비채로 놓고 후후 불어가며 후루루 냠냠 먹는 걸 상상해 보십시오. 라면은 면발이 불어터지면 더욱 맛이 없지만 꼬들꼬들한게 좋다고 너무 덜 끓여도 맛이 없지요. 건면 상태에서 불투명했던 국수가닥이 투명해지려고 할때 불에서 내려 먹으면 먹는 도중에 국물속에서 익어서 끝까지 쫄깃쫄깃한 맛을 즐길 수가 있지요. 조금 덜 익히냐 조금 더 익히냐의 차이는 기호에 따라 다르더라도, 알맞게 익은게 맛이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이번엔 라면이 너무 뜨거워 냄비뚜껑이나 그릇에 덜어놓고, 식혀서 먹으려고 하는데 전화가 온다던가 해서 한 2,3분 그대로 놔둔 상태를 상상해 보십시오. 반질반질한 윤기는 어디로 가고 금세 삐쩍 말라버려 꺼칠한 면 덩어리는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또 이번엔 끓인 뒤에 무슨 일이 있어서, 국물에 잠긴채 한참 놔둔 라면을 상상해 봅시다. 면발은 팅팅불어 그릇에 꽉차고 국물은 온데간데 없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역시 맛있게 먹을 기분이 사라집니다.

언젠가도 이야기했지만, 집에 가사를 도와주시러 오시는 분이나 아니면 가족가운데 어떤 분이 음식은 그런대로 잘하는데 라면만큼은 잘 못끓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라면을 다 끓여서 대접에 담아놓고, 그제서야 숫가락 젓가락 놓고 김치꺼내어 썰고, 아 참 장아찌도 내야지, 먹다남은 나물도 내야지 하고 냉장고 두어번 왔다갔다 하고서는 비로소 '라면 다 됐어요. 와서 드세요(라면 다 됐다. 와서 먹어라.)'라고 하는 경우가 그겁니다(대개 이런 분들은 물도 봉투에 씌여진 정량을 넘어서 훨씬 인심좋게 넣습니다). 기본적으로 시간을 못맞추는 거지요. 그래서 집집마다 라면은 '그냥 내가 끓여 먹을께'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꾸 상상해 보라고 해서 죄송합니다만, 이번엔 라면을 끓일 불이 없어서, 생라면과 스프를 그릇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한 3분 불려서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평생 맛있는 라면을 먹어 본 적이 없고, 종이 씹는 듯한 촉감의 컵라면만 먹어보고 살았거나 '뽀글이'만 먹고 살았으면, 원래 그러려니하고 눅눅하게 젖은 생라면을 씹어먹겠지요. 물론 정말 배가 고픈데 달리 먹을 게 없으면 맛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대부분은 맛있는 라면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알고 먹는 라면전문가 입니다.

오늘은 라면이야기가 아니라 김치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왜 라면이야기를 꺼냈냐하면 우리가 라면맛은 잘 아는데 김치맛은 그만큼 모르고 사는게 아닌가 싶어서 라면의 예를 든 것입니다. 결론을 먼저 꺼내자면, 요즈음 우리는 맛있는 김치맛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아예 먹어보지도 못한 젊은 세대가 늘어만 가고 있구요. 이러다가는 맛있는 김치의 맛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영영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정말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이 진짜 맛있는 김치의 맛을 어떻게 설명할까 하다가, 누구나 좋아하는 라면의 맛을 예로 들면 설명하기가 쉬울 것 같았습니다. 

맛있게 끓인 라면을 최적의 상태에서 먹는 걸 맛있는 김치의 맛에 비교한다면, 요즈음 우리가 먹는 김치는 거의 모두가 뜨거운 물에 불린 생라면의 맛이거나, 기껏해야 국물에서 건져내어 말라버린 건데기의 맛입니다. 신김치로 찌개를 끓이면 참 맛이 좋지요. 그러나 생김치보다 맛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물에 불은 생라면보다는 팅팅 불어버린 라면을 데워먹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어떻게 하다가 맛있는 김치의 맛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게 되었을까요? 아파트 생활이라는 주거문화의 변화를 들수도 있겠습니다. 김치를 땅에 묻어 오랜시간 익히는 풍습이 없어져 버린 겁니다. 그리고 김치를 담가먹지 않고 사먹게 된 뒤로 달라졌습니다. 숙성기간이 짧아져서 제대로 된 발효의 맛이 사라진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로는 김치국물이 없어져 버린 걸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김치국물이 정말 중요합니다. 김치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어 여러단계를 거쳐 유통되면서 공산품의 규격처럼 내용량은 '건데기'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맛있는 김치는 맛있는 라면처럼 국물에서 얼른 건져내 먹어야 비로소 제 맛이 납니다. 다시 말해서 먹기 직전까지는 국물에 잠겨 있어야 '발효의 맛'이 살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이걸 살아 있는 김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요즈음 모두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죽은 김치를 먹고 있으면서 이게 김치맛이려니 하는 겁니다. 또 다른 경우는 외식을 많이 하게되면서 '김치 비슷한, 양념으로 버무린 배추'를 김치려니 하고 먹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옛날에도 365일 살아있는 김치를 먹고 산 것은 아닙니다. 살아있는 정말 맛있는 김치는 김장으로 담궈서 겨울철 한 때 먹은 겁니다. 봄이 되면서 부터 풋김치, 열무김치, 오이 소박이, 깍두기 등을 담가 먹으며 계절이 두번 바뀌어 또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다가올 겨울철 김장김치의 맛을 기대하곤 했지요.

물론 김장김치가 아니라 위에 열거한 다른 김치들도 다 나름대로의 개성과 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알맞게 발효한 김장김치의 제맛을 알아야 다른 김치도 더 맛있게 먹을 수가 있습니다. 이 김장김치는 보관하는 온도 뿐만이 아니라, 담글 때 대기중의 온도인 기온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똑같은 재료를 쓴다고 해도, 아무리 김치 냉장고에 잘 보관을 한다고 하여도 늦가을 찬바람이 불 때 담그지 않으면 그 맛을 낼 수가 없읍니다. 여기에 숨어 있는 오묘한 과학의 이치는 다음에 '김치 위대한 유산'이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벌써 여러해가 되었습니다. '식객2- 김치전쟁'이라는 영화가 나왔었지요. 보고나서 너무 너무 실망을 해서 그 때 포스팅을 하려다 참았습니다. 영화적인 완성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김치에 대한 무지와 무식이 안타까워서요. 제작비로 수십억이 들어가고, 광고선전비로 역시 일이십억이 들어가야 제대로 개봉을 하는 이런 규모의 영화는 손님이 안들면 그 손해가 막심합니다. 그리고 열과 성의를 들여 제작에 참여한 스탭과 배우들을 생각하면 쾌도난마로 비난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좀 망설여져서 당시에는 하고 싶은 말을 참았습니다. 어쩌면 김치에 대해서 그렇게 무식한 상태에서 영화를 만들었는지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습니다. 

김치를 샐러드 만들 듯이 만들어 내어 버젓이 김치라고 경연대회를 열고, 마지막 결승전에서 마치 무슨 커다란 비밀이라도 공개하듯이 '김치는 익어야 하니까' 하며 미리 담가온 김치를 조그만 항아리에서 꺼내어 놓습니다. 어린애도 알아야 할 상식을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가 비장하게 비법처럼 공개합니다. 영화속의 관중과 심사위원은 와, 하고 감탄의 탄성을 지르고. 라면을 모두가 생으로 먹는데 위대한 셰프가 '라면은 제대로 익혀야 맛있습니다' 그러니까 관중과 심사위원이 대단해,하고 감탄하는 것을 예로 들면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뒤에 있었습니다. 꺼내놓은 김치가 시어 쭈그러져 정말 정말 볼 품 없는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영화는 비주얼의 에술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있어야 할 김치의 모습이 너무 처량하여 영화의 제목이 무색해 져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최소한 마지막 장면에서 와, 맛있겠나 입에 침이고이네, 이런 장면 하나만 들어가도 참고 넘어갈 수 있었를 텐데...안타까웠습니다. 물론 재밌는 영화를 보기보다는 재밌는 김치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나 보다하고 기대했던 제가 실망이 더 클 수도 있었겠지요.

수년에 걸쳐 보르도와 불고뉴지방을 여행할 기회가 몇번 있었습니다. 그 때 현지에서 마셨던 와인이 참 맛있었는데, 시음을 했던 와이너리 관계자나 그 지역 레스토랑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좋은 와인은 여행을 안한다'는 말이지요. 때로는 적도를 넘어가며 오랜기간 온도차이를 감수하며 이동하는 와인은 맛이 크게 변한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좋은 와인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냉장시설이 완비된 컨테이너로 이동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장시간 흔들리고 순간순간 빛에 노출되고 해서 '꺄브' 그러니까 현지의 와인 저장시설에서 금방 꺼낸 와인과 대서양, 태평양을 여행하느라 '피로하고 지친' 와인은 맛이 크게 다르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럼 왜 그걸 심각하게 인식못할까요, 하고 물었더니 씽긋 웃으면서 전세계 90퍼센트 이상의 와인 소비자가 모두 이동하고 여행한 와인을 마시고 사는데, 그리고 우리가 그걸로 먹고 사는데 그런 얘기를 큰 소리로 강조할 만큼 바본줄 아슈? 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 때마다 새삼 정신이 들며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이 나고, 또 슈퍼에 널린 공장김치가 생각이 났습니다. 공장에서 만들어 파는 김치장사가 벌써 연간 몇조원 규모의 산업이 되었는데, '저희가 만드는 김치는 가짜김치입니다. 참 발효의 맛과 유산균이 살아있는 김치는 제조공정상, 판매유통상 불가능합니다. 그냥 드십시오' 이럴리가 없겠지요.  

어렸을 때, 어머니는 김장김치를 정말 맛있게 담그셔서, 집에 손님이 오시면 어쩜 이렇게 맛있는 김치가 있냐고, 자기집 식구들에게도 맛좀 보이고 싶다고, 한두포기 얻어가겠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김치를 뒤란에 뭍어둔 독에서 꺼내와 꼭꼭 싸주시면서 '맛이 없을텐데요' 하셨습니다. 표정이 뭔가 흔쾌하지가 않았습니다. 

처음엔 김치가 아까와서 그러나보다하고 손님이 가신 뒤 이유를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담담히 '김치는 독에서 꺼내 썰고 십분이 지나면 벌써 맛이 변하기 시작한단다. 두세시간 걸려 가지고 가서 먹으면 무슨 맛이 있겠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론 손님들이 김치를 얻어갈 때마다, 저도 참 안타까웠습니다. 김치 이야기를 몇번에 걸쳐서 해보려고 합니다. 김치이야기를 통해서 한식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요. 김치이야기가 끝나면 한식전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편하게 해보려고 합니다. 

프랑스의 미슐랭가이드가 한국에 들어온다고 해서 여기저기서 환영과 우려의 의견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TV에서는 끊임없이 음식관련 프로그램이 새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모든 논쟁과 관심은 때로는 내용이 미흡하고 관점이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길게보면 긍정적인 쪽으로 발전해 나간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서양음식의 파인다이닝을 외식의 기준 잣대로 세워놓고 한국 식생활의 현상을 이렇게 저렇게 비평하는 것같은 글도 그동안 여럿 보았습니다. 독선과 편견이 넘치고 오류마저 범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일일이 지적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이의 글도 다 애정과 관심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여 저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나이먹을만큼 먹으면서, 그동안 운이 좋아 이나라 저나라 다니며 비싼 음식 비싼 술도 많이 먹어보고 또 여러나라 사람들이 매일 일상에 먹고사는 것도 오랜 세월 같이 먹으며 살아왔으니 우리나라 식생활에 보탤 말이 있으면 보태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한식이 음양오행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조상의 지혜가 담긴 우수한...' 이런 거 솔직히 좀 지나친 해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한국음식은 다른 나라 음식에 뒤떨어지는 음식도 아니지만 제일 뛰어난 음식도 아닙니다. 한식에는 한식만의 뚜렷한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계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고민해야할 과제도 있구요. 그래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현재의 좌표점검을 확실히 하는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식의 파인다이닝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맛있고 만족스런 상차림 또는 메뉴구성을 고민하는 것과 일상의 가정식, 앞으로 필연적으로 더 늘어나게 될 대중적인 외식 모두를 따로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필요한 문열이로 김치이야기가 적절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음번에는 맛있는 김치를 과학으로 분석한 서적도 소개하고 또 어떻게 하면 맛있는 김치를 먹고 살 수 있는지 나름대로의 간단한 해법도 제시하려고 합니다. 물론 결론은 간단합니다. 소비자가 맛있는 김치의 맛에 눈을 뜨고 그걸 요구하면 만들어 파는 사람은 돈이 결부되므로 해결책을 찾아서 따라옵니다. 자본주의의 좋은 점이지요.제가 김치에 관심을 가지고 그동안 김치에 대한 서적을 틈틈히 사서 수십권을 읽었는데, 그 가운데 단연 뛰어난 책이 한홍의 교수가 쓴 '김치 위대한 유산'입니다. 많이 배우고 또 감동하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소개하려 합니다.

 

나으 음식일기(11): 고기구운 냄새와 흙냄새 나의 반백년 음식일기

후덥지근하게 더운 여름날 오후였다. 먹구름이 몰려들면서 하늘이 잔뜩 찌푸린 날씨로 변했다.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은 사라졌지만 양지와 음지의 구별이 없어지면서 오히려 사방이 피할 곳 없이 달아올라 더 갑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에어콘이 장착된 승용차가 드물던 시절이라 여름이면 모든 자동차들은 창문을 열어놓고 달렸다. 우리는 경기도 용인 언저리 어딘가의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포플러 가로수가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비포장도로를 가면서 꼬리에 흙먼지를 달고오는 반대편 자동차가 스쳐지나갈 때마다 얼른 손으로 핸들을 돌려 창문을 닫았다가 이내 다시 열기를 반복하였다. 

이 때 후두둑하면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앞면윈도우를 딱딱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꽤나 크게 들렸다. 차안으로도 빗방울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 시절에는 이럴 경우 재빨리 손득을 계산하여 판단하여야 했다. 창문을 닫아 비를 피할 것인가, 차안이 금세 습기가 차올라 한증막처럼 되는걸 피하고 차라리 비를 좀 맞으며 달릴 것인가를.

앞에서 운전을 하던 기사가 말했다. 이거 지나가는 비에요, 금방 그칠 것 같네요, 그냥 가지요. 우리는 창문을 반쯤 올린채 계속 달렸다. 빗방울이 간간이 얼굴에 와닿았는데 그다지 싫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빗줄기가 말라있던 대지를 두드리며 솟아오르는 흙냄새가 차안으로 들어오는게 좋았다. 좀 더 비가 내려서 땅이 다 젖으면 대기의 냄새는 싱싱한 흙냄새에서 곧 빗물냄새로 바뀔 것이다. 나는 이날 이후 이 짧은 찰나의 젖은 흙냄새를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는 냄새겠지만 나는 이 흙의 향기와 함께 길에서 튀긴 흙탕물로 밑둥이 흙으로 둘러진 포플러가 끝없이 이어진 시골길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뒷좌석 양쪽에 앉아있던 나와 그녀는 안쪽으로 좀 들어앉느라 더 바짝 붙어앉게 되었다. 나는 겉으로 태연함을 유지하느라 애썼지만 사실 마음은 이미 서울을 떠나던 때부터 들떠 있던 터라 가슴이 더 두근거렸다. 차앞 조수석에 앉아있던 현진이가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선생님, 아빠가 고기말고 다른거 먹고싶은거 있으면 말하랬어요.

현진이는 내가 일주일에 두번 영어를 가르치는 고등학생이다. 지금 용인으로 향하는 승용차 뒷좌석에 나와 함께 나란히 앉아있는 이가 그의 누나 현주다. 그녀는 내가 국민학교 육학년때 과외를 같이 할 때부터 일방적으로 좋아하던 상대였고, 내가 현진이의 과외선생이 된 것은 순전히 그녀를 집에서라도 몇번 더 볼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용인에서 병원을 개업한 그들의 부모님은 주로 그곳에서 지내셨고 자식들끼리 서울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간 현주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동생을 돌보는 학부형노릇까지 하였다. 

나는 한번도 그녀에게 고백을 할 기회가 없었다. 그녀는 내가 자신에게 이성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걸 알았을 것이지만 능숙하게 친구로만의 관계를 유지하는 현명함이 있었다. 그녀는 누구나 인정하는 대단한 미인이었는데 원래 미녀들이 남자들의 부담스런 시선을 자연스럽게 비껴쳐내는 훈련을 어려서부터 많이 하여서 그런지 나를 대하는 태도도 대단히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녀가 진작부터 학교선배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걸 알면서도 마음은 그녀의 옆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던 것 같다. 

어느날 현진이가 말했다. 선생님 아빠가 고맙다고 오는 주말에 한번 내려오시래요. 강가에 나가서 저녁에 고기구워먹고 주무시고 가시래요. 나는 심드렁하게 글쎄다 이렇게 대답했다가 그의 다음말에 얼른 태도를 바꾸었다. 아 참, 누나도 같이 간대요. 당시 자가용이 있는 집은 대단히 잘사는 집이었는데, 어느 집이나 기사를 두고 있었지 직접 운전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운전면허만 있으면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가 서울로 차를 보내주었고 나와 현진이 현주 이렇게 셋이 차를 타고 용인으로 내려가는 내내 나는 그녀와 한지붕 아래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생각에 좀 들떠 있었다. 

운전기사 말대로 소나기는 이내 멎었고 늦은 오후 비를 맞은 뒤의 싱싱한 풀냄새가 대지에 풍겨왔다. 우리는 그의 집에 도착하여 간단한 짐을 내려놓고 강가 어느 식당으로 고기를 먹으러 갔다. 숯불위에 석쇠를 얹고 구워내는 불고기와 갈비는 언제 먹어도 고소하고 맛있는 음식인데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고급음식에 속했다. 저녁을 먹고나서 부근 어딘가로 드라이브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서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현진이는 선생님 편하게 주무시라고 다른 방으로 갔고 나혼자 현진이방에서 잤는데 잠자리가 바뀌어서였는지 싱숭생숭 뒤척거리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그녀는 다음날 강의가 없다고 하루 더 있다 올라온다고 하여 서울로 돌아올 때는 나와 현진이 둘이었다. 그것 말고는 돌아오는 길이 어땠는지 하나도 기억에 남은게 없다.  

내려가던 날 소나기가 쏟아지며 땅에서 올라오던 흙냄새가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서 다른 이미지와 기억을 다 덮어씌워버린 것 같다. 그녀와 나란히 앉아가며 차창으로 들어오는 빗방울을 얼굴로 맞아내던 추억이 뇌리에 매우 깊게 저장되어있는 모양이다. 옆을 보았을 때 얼굴에 빗방울이 떨어져 흘러내리는데 살포시 눈을 감은채 알듯말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표정은 슬로우모션을 보듯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이단호크와 귀네스 팰트로우가 나오는 영화 '위대한 유산'을 보았을 때 여자주인공이 파운틴을 눌러 물을 마시는 장면에서 왠지 현주가 내옆에 앉아 비를 맞던 장면이 중첩되어 선명하게 떠올라서 나도 놀랐다. 물론 나는 거기나오는 남자아이처럼 잘생기지 않았지만 그녀는 영화속 여자보다 아름다웠다.    

나는 지금도 마른 땅에 비가 내려 흙냄새가 올라오는 걸 겪을 기회가 되면 금방 그 날로 되돌아 간다. 세상은 변했다. 변해서 섭섭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나라 방방곡곡이 다 말끔히 포장이 되어서 비올때 피어올라오는 흙냄새를 맡기가 쉽지 않아졌다는 거다. 소중한 추억의 재생장치 하나가 망가진 듯한 느낌도 든다.

그 날 이후 얼마 안되어 나는 현진이를 가르치는 과외를 그만 두었다. 이유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 뒤에 나도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그녀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냈다. 그런데 저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늘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마음 어딘선가에서는 은근히 그녀의 불행을 기대한 구석도 있었던 것 같다. 집안의 맹렬한 반대로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선을 봐서 미국으로 시집을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엄청나게 성공한 집안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냥 평범한 교포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좀 고소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세상은 좁아서 미국으로 시집을 간 그녀의 남편은 우연히도 나와 거리가 닿는 사람이었고 나는 유학을 가서 그녀와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예뻤고 변함없이 마음씨가 고왔다. 그녀는 아이 엄마가 되어있었다. 내가 첫방학을 맞아 어린 시절 동경하던 디즈니랜드도 구경갈겸 LA에 일주일 정도 놀러갔었는데 내려간 첫날 그녀와 만났다. 그녀는 8가에 있는 동일장에서 한식을 사주었다. 미국에서 처음가본 한국식당이었다. 한국 식당에 배어있는 고기구운 냄새와 김치냄새는 외국일수록 더 강렬하다. 주변냄새와의 대비가 커서 그럴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맡기 힘들고 통풍과 배연시설이 잘된 요즘 식당에서는 찾기 힘든, 오래된 미국의 한국식당 특유의 냄새가 좋아서 요새도 기회가 있으면 동일장을 찾곤 한다.   

그녀는 한인사회가 없는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니까 한국음식이 그리울테니 실컷 먹으라며 불고기에 김치찌개 그리고 생선구이도 시켰다. 내가 그렇게 다 못먹는다고 하니까 남으면 싸가지고 가면 되니까 괜찮다며 이것저것 주문했다. 우리는 공통의 화제를 찾아서 이야기를 이어가려다보니 자연스레 옛날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가 물었다. 종로서적 옆 지하 훼미리에서 함박스텍 먹은거 생각나냐고. 요즘 말하는 업종으로서의 패밀리레스토랑이 아니라 종로2가에 훼미리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있었다. 그녀는 글쎄 난 기억력이 나빠서 다 잊어버렸나봐라고 대답했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 스카라극장에 영화보러 갔잖아. 댓즈엔터테인먼트. 네가 엘리자베스 테일러 어릴 때 모습보고 너무나 예쁘다고 했지. 그제서야 그녀가 기억이 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생각난다. 그 영화를 너랑 보았구나. 그녀가 기억해 낸 건 그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랑 보았다는 건 기억에서 지워진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와 만나서 커피를 마시던 퇴계로 입구의 늘봄다방, 네 덕에 월급을 받았으니 저녁을 사야한다고 우겨서 데려간 백병원옆 파인힐, 그리고 나서 들어갔던 부근에 있는 경양식집, 멕시칸 사라다와 애플와인 파라다이스 이런 이야기들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았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남녀사이에 상대의 마음에 자리잡은 비중이 서로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되었다. 그녀가 물었다. 사귀는 사람 있어? 무방비상태에서 들어온 질문에 약간은 당황하며 대답을 하였다. 으,응, 있었는데 학번이 같아서 헤어지기로 하고 왔어. 그사람은 결혼을 하여야할 나이라 집에서도 성화고, 나는 공부도 해야하고 형님도 결혼할 기미를 안보이고. 

그녀가 이해한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넌 참 좋겠다. 아나라 저나라 마음껏 다니면서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우린 사는게 그냥 그래. 아이낳고 살림하면서 일하고. 그녀는 한인타운 회계사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미국교포들은 다 그렇게 산다고 하면서 진심인듯 나를 부러워해주었다. 나는 그 때 그녀의 평온한 일상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일 수도 있다고 얘기해 줄만큼 성숙하지 못하였다. 일찍 결혼해서 애낳고 사는게 마치 사람을 잘못 선택한 징벌이라도 되는양 오만한 표정으로 난 다음 방학에는 유럽을 갈거네 어쩌네 하면서 주접을 떨었다. 사실 그녀가 나를 무시한 건 조금도 없었다. 안만나도 될 것을 착한 마음에 일방적으로 호감을 가진 남자라는 부담감을 떨쳐가며 친구로라도 몇번 만나준 것 아닌가.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걸 알리가 없었고 그냥 그녀의 변함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약간은 분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날 나는 그녀의 덕담을 받을 줄만 알았지, 오는 고운말에 가는 고운말을 별로 돌려주지 못한채 헤어졌다. 
  
내가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게 된 건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다. 십수년이 지나고 딱 한번 더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그는 한인타운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삐삐가 한물가면서 핸드폰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미국에선 모토롤라에서 나온 스타텍이라는 조그만 모델이 막나와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걸 보더니 나하고 같은거네, 하면서 핸드백에서 자기 핸드폰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내가 워낙 길치잖아. 운전하다보면 맞게 간다고 생각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가곤 해. 위험한 지역이라도 들어가면 큰일난다고 애아빠가 사줬어. 만일 낯선 곳에서 헤매게 되면 무조건 가까운 주유소나 쇼핑몰같은데 대어놓고 전화하라고. 달려올 때까지 차문 걸어놓고 꼼짝말고 있으라면서. 내가 물었다. 그런 적 있었어? 아니, 아직은. 그래도 휴대폰이 있으니 만일의 사태에 안심이 된다나.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담뿍받고 사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저으기 안심이 되었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보기에 좋았다. 우리는 커피한잔을 나누고 즐거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내비게이션이 처음 나왔을 때 그녀가 생각났다. 이제 이상한 동네로 들어가서 갑자기 남편을 부를 일은 없겠구나. 나는 그때도 마음속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나으 음식일기(10): 서울냄새 시골냄새 나의 반백년 음식일기

안방 벽장을 열면 늘 달콤한 냄새가 났다. 한옥집 안방 아랫목쪽으로 미닫이 네쪽에 사군자인지 산수화그림인지가 붙어있었다. 발라져있었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당시 한옥집이면 다 비슷하게 벽장문에 싸구려 동양화를 도배하듯 발라놓은게 흔했으니까. 문은 두쪽만 열리게 되어있고 양옆의 그림 두장은 그냥 벽에 붙어있었던 것 같기도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미닫이를 열면 깊이가 50센티 정도되는 좁은 수납공간이 있고 거기에 겨울철에는 의례 사과나 배 그리고 곶감같은게 있었고 시골에서 보내온 한과 등도 그곳이 제자리였다. 요새는 참 냄새가 없어져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옛날에는 사방 모든 곳에 이런저런 냄새가 배어있었다. 지금은 도처에 배어있었던 갖가지 냄새가 다 없어져버린 것처럼 느껴지는데, 전부는 아니더라도 냄새가 많이 줄어든게 틀림없을 것이다.   

벽장 위쪽의 공간은 두 세 계단짜리 조그만 사다리로 올라갈 수 있는 다락이 연결되어 있었다. 부엌위쪽과 서까래지붕 사이의 공간인데 이런저런 물건들을 쟁여두는 곳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인절미, 조청 이런 먹을 것들이 있어서인지 향긋한 냄새가 배어있는게 싫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그곳에 올라가 가끔 놀았는데 상상의 날개를 펴기에 따라서 그곳은 해적선 선장의 선실이 되기도 하고 잠수함이나 산속요새 안이 되었다. 그곳 다락방에 있는 조그만 유리창을 통해 마당을 내다보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시선도 좋았다. 

우리집은 후생주택에서 살다가 내가 7살, 생일을 맞아 만으로 6살을 넘기고 나서 정릉천 건너편 한옥집으로 이사를 했다. 미음자로 마당을 둘러싼 구조로 방이 다섯개나 되었다. 나는 이사를 하고 곧 요양차 속초로 내려갔기 때문에 그집에서 살았던 기억은 일년뒤 올라온 그 다음해 8살때부터이다. 우리식구는 그집을 '조선집'이라 불렀다. 그곳은 같은 모양의 집들이 한골목에 여럿 줄지어있었다. 요즘 영화에서 보이는 북촌마을과 매우 흡사했다. 우리집도 그동네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문간방은 세를 주었다. 한때는 방 두개를 세놓은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수곽이라 불렀던 수돗가에서는 늘 시멘트 냄새가 났다. 시골의 우물가에서는 살짝 물비린내가 났는데 지금은 그 반대지만 어릴때는 시멘트 냄새가 물비린내보다 좋았다. 장독대 밑의 광속은 습기가 차서 언제나 곰팡이 냄새가 김치 군내같은 냄새와 함께 풍겼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불쾌한 냄새일수도 있을텐데 어릴때는 뭔가 야릇한 모험과 은근한 비밀이 숨어있는 것같은, 살짝 가슴두근거리는 냄새였다. 시골의 광이나 창고에서 나는 냄새도 알수없는 은밀함을 품고있는 것 같은 것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든 누구든 시골을 오르내릴 때면 참 짐을 많이도 가지고 다녔던 것 같다. 제사나 명절때면 할아버지 집에서는 한과도 그랬고 조청도 직접 만들어서 ㄹ그런 걸 인편이 있을 때 서울로 가져와 두고두고 먹었다. 나는 조청이 꿀보다 덜 달아서 좋았다. 시골서 올라오는 품목에는 곶감도 있었는데 그다지 맛있는 줄을 몰랐다. 아직도 나는 곶감에 관한 한 그다지 열렬한 팬이 아니다. 수정과는 매우 좋아하지만. 대추도 썩 당기지 않았다. 갈비찜이나 보쌈김치에 몇개 들어간 대추는 좋아하지만. 

남들은 대단히 좋아했는데 나는 별로 좋은 줄 몰랐던게 또 있었으니 마른 오징어였다. 당시 속초에서는 오징어라 그러는 사람이 없었고 다 이까라고 불렀다. 스루메라는 말도 가끔 들렸고. 산지인 바닷마을에서 이까라고 불리는 건어물이 태백산맥을 넘어오면서 슬그머니 오징어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간식이나 군입거리가 부족하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서 극장매점에서는 땅콩을 능가하여 팔리는 최고의 품목이었을 것이다. 요즈음 영화관에서는 팝콘의 향긋한 냄새와 콜라의 달착지근한 냄새가 난다. 미국하고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미국 영화관쪽이 버터향이 좀더 강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의 학창시절에 극장냄새하면 단연 오징어냄새가 떠오른다. 좋아하지도 않았고 잘 먹지도 않았으면서 가끔 그시절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면 극장 복도에서부터 퍼지던 냄새가 그립다. 화장실의 강력한 나프탈린 냄새와 오징어 땅콩냄새가 섞여있던 극장복도에서 상영중인 영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가슴 설레이던 순간은 참으로 행복했다. 주관적인 판단이니까 틀릴 수도 있겠는데, 둘러보면 사방이 가난에 찌들어있고 하루세끼 먹고살기가 퍽퍽한 사람들이 국민의 절반이 훨씬 넘던 시절에, 조그만 흑백 테레비젼도 좀 산다는 집이나 장만하여 볼 수 있던 시절에, 현란한 총천연색 화면에 펼쳐지는 헐리웃영화의 감동은 요새 젊은이들이 외국영화를 보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크고 강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매점에서 파는 건 오징어와 땅콩 그리고 기껏해야 캬라멜 정도였고 냉방이 안되어 더웠기에 여름엔 아이스케잌이 잘팔리던 극장에서 나는 사운드오브뮤직, 닥터지바고, 졸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일을 향해 쏴라, 초원의 집, 황야의 무법자, 태양은 가득히, 에덴의 동쪽을 보았고 이런 영화를 보고 온 날이면 밤에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물건이 시골에서 올라오기만 한 건 아니었다. 어머니가 다니러 가시거나 집에서 가사를 돌봐주던 누나가 고향에 내려가거나 할 때에도 한 짐씩 싸가지고 갔다. 친척, 이웃에 나누어 줄 선물로 옷이나 화장품 같은게 많았는데 그런거를 장만하느라 엄마가 장보러 갈 때에도 나는 언제나처럼 엄마를 따라나서곤 했다.  시장에 가면 참 냄새가 다양했다. 참기름 짜는 집에서는 기름냄새가 정말로 강렬했는데 기름냄새보다 더 향긋한게 커다란 가마에 깨를 닦는 냄새였고 기름을 막 짜내고 남은 깻묵에서 나오는 고소한 냄새는 아무리 맡아도 물리지가 않았다. 해물집에서는 생선비린내가, 방아간을 겸한 떡집에서는 구수한 떡냄새가 무럭무럭 풍겨나왔다. 피대가 돌아가며 기계방아를 돌리는, 어린아이 눈에 무지막지하게 큰 기계장치에서 풍기는 윤활유 냄새와 떡냄새는 묘하게 궁합이 맞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시장에 가서 내가 특히 좋아했던 냄새는 신발가게 앞에서 풍기는 신발냄새, 고무냄새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몸에 해롭다는 화학물질 냄새가 아니었나 싶다. 그 옆 가방가게에서는 가죽냄새가 났다. 그 때는 등에 메는 책가방을 가죽으로 만들었다. 비닐제품이 요즘처럼 싸구려가 아니고 가죽제품이 요즘에 비해 상대적으로 쌌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메고 다니던 책가방도 소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나는 이 소가죽냄새를 아직도 좋아한다. 

가죽냄새가 나는 책가방안에는 책냄새가 나는 교과서, 공책냄새가 나는 공책, 그리고 향나무 냄새가 아주 독특한 연필이 가지런히 누워있는 필통이 있었다. 나는 요새도 잘 깎여진 연필을 보면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곤 하는데 왜 옛날만큼 향기로운 나무로 만들지 않는지 좀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서 수업참관이니 뭐니해서 외국의 초등학교를 가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는데 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어느 나라나 비슷한 냄새가 나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의 냄새는 연필향기, 연필심 가루, 공책, 신발주머니, 바닥을 대충 쓸고 닦아서 나는 먼지냄새와 걸레냄새, 칠판냄새, 백묵냄새 그리고 나무걸상과 나무의자 이런 것들이 골고루 합쳐진 냄새였다.      

그리고 예쁜 여자아이들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어린 나이에도 이런 걸로 티를 내면 안된다는 걸 알아서 내색은 안했지만 옷도 너저분하고 머리도 떡이진 아이들보다 옷도 깔끔하게 챙겨입고 쌍갈래로 예쁘게 머리를 매고 오는 아이들에게서는 나는 냄새는 달랐다. 아마도 집에서 매일 등교를 챙겨줄만큼 여유가 있어서 로션 한가지라도 바르고 왔으니 좋은 냄새가 났던 모양이다. 우리때는 4학년까지가 남녀 같은 반이었고 5학년이 되면서부터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 반이 갈렸다. 5학년때 학교에서 하는 행사에 마스게임이 들어있었고 거기에 뽑힌 아이들은 방과후 남아서 여자아이들과 연습을 하였는데, 우리들은 걔들을 보면 여자하고 손잡고 논다고 놀렸고 놀림을 당한 아이들은 진짜로 부끄러워 하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르며 기억이 윤색을 하여 그런건지도 모르겠는데, 그 때는 서울에서 사는 것도 정서적으로 그다지 메마르지 않았던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해가 뉘엿뉘엿 질무렵이면 땅거미와 함께 어느 동네에나 저녁밥 짓는 냄새가 그윽히 깔렸다. 골목길에 자욱한 고소한 밥냄새가 과외를 하거나 친구들과 놀거나 어떤 이유로든 느즈막히 집에 돌아가는 아이들의 식욕을 돋구었다. 요새야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으니 다 똑같은 냄새이지만 그 때는 밥을 태워서 고소한 누룽지 냄새가 나는 집, 밥이 설익은 집, 밥냄새도 다 달랐다. 무척이나 가난하던 시절이었는데도 저녁때 아련하게 동네마다 한두집 피아노 연습하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장미꽃이 핀 담장, 라일락 향기가 퍼져오는 양옥집, 풀을 먹인 하얀 컬러가 눈부신 여고생의 새침한 걸음걸이 이런 정경들이 모여있는 곳에 밥짓는 냄새가 들어가서 내 기억속에서 중산층 동네의 아련한 저녁무렵을 완성하였다.   

딱 배가 고픈 시간이라 얼른 집에 돌아가 밥을 먹어야지하고 귀가길을 재촉할 때, 국냄새, 찌개냄새, 생선굽는 냄새, 김굽는 냄새 이런저런 냄새가 집밖으로 퍼져나와 도중에 지나치는 집들이 무얼 해먹나 쉽게 알아맞출 수가 있었다. 국민학교때는 놀다가 늦거나 과외를 하거나 늦어도 저녁시간에는 집에 돌아가는게 보통이었는데 가장 입맛을 자극하는 냄새는 연탄 화덕위에서 굵은 소금 훌훌뿌려 꽁치를 굽는 냄새였다. 고등어도 기가막힌 냄새가 났는데, 나에겐 꽁치굽는 냄새에 비할만한 고소한 향은 없었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귀가시간이 일정하지 않았고 도서관에서 공부흉내라도 내다가 돌아갈 때면 제일 참기 힘든 유혹이 술집에서 풍겨나오는 불고기를 굽는 냄새였다. 재료는 돼지고기인지 소고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간장과 참기름, 마늘로 양념한 육고기를 연탄위에서 구울 때면 말그대로 환장할 냄새가 났다. 그 때는 막걸리를 팔아서였는지 술집 특유의 달착지근한 냄새와 고기굽는 냄새가 섞여서 동네 어디에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선술집 문틈으로 빠져나오곤 했는데 정말 참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꽁치나 고등어는 집에 가서 우리도 해먹자고 하면 다음날 상에 올라올 수도 있었지만, 뻔한 살림살이를 아는 처지에 시도 때도 없이 고기를 구워먹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집에서 날마다 해먹는 국이나 찌개도 그때는 참으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았나 싶다. 달래나 냉이를 넣고 끓인 된장국에서 풍겨나오는 산나물 냄새에는 봄이 담겨있었고, 시래기를 넣고 끓이는 겨울의 된장국이나 새우젓 양념맛이 솔솔 올라오는 두부찌개 아니면 신김치를 넣고 끓이는 비지찌개의 독특한 냄새는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침이 고이고 배가 꼬르륵 거리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사는 도회지의 동네가 오히려 널직하게 퍼져사는 시골보다 여러가지 냄새를 공유하며 살았으니, 봄철이면 동네 이곳저곳에서 장담그는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간장을 다리는 냄새는 대단히 강력해서 아주 멀리까지 퍼져나갔는데 나는 어려서 이 냄새를 싫어하였다. 시골에서 올려보낸 잘 띄운 메주냄새는 참으로 구수한 것인데 이것도 어른이 되고나서 그렇게 느낀 것이고 어려서는 싫어하지 않았나 싶다. 

만화가게에서는 풀빵냄새와 인쇄잉크냄새가 섞여서 났고, 문방구에서는 문방구의 좋은 냄새가 났다. 구멍가게는 구멍가게만의 특유한 냄새가 있었다. 어려서 늘 맡으며 살았던 이런저런 냄새가 그리워 진다. 맨위의 사진은 속초 갯가 집집마다 마당에 널어 말리던 오징어이다. 내게는 이 마른 오징어가 서울과 시골, 어촌과 농촌을 이어주는 매개를 하여주는 특이한 물건이다. 다음에는 시골의 냄새 이야기를 해야겠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