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양배추, 돼지고기, 감자... 일본의 '쿡패드' 일본이야기


가지, 양배추, 돼지고기, 감자, 오이, 계란... 그다지 비싸지않고 썩 귀한 대접을 받는 품목도 아니지만 모두 오래된 친구나 이웃처럼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식재료들입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인듯 이게 지난 6월 한달동안에 일본사람들에게 제일 인기가 있었던 식재료라고 하네요. 오늘은 이웃나라 일본이야기입니다. 일본에는 쿡패드라고 하는 레시피전문 사이트가 있는데 이게 대단히 인기가 있습니다. 한달에 5천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축적된 레시피만 200만건이 넘는 메가사이트입니다. 요리레시피만 올리는 사이트를 착안하여 운영해온 창립자는 이 회사가 성장하여 상장을 하여 재정적으로 보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할만큼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 대한 소개를 하기전에 우선 옆나라 사람들 식탁구경부터 하지요. 아래 사진은 일본의 트렌드를 소개하는 잡지 '닛케이 트렌디'에서 소개한 랭킹입니다. 6월달에 '쿡패드'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레시피를 소개한 것이지요.


인기 1위의 식재료는 가지입니다. '가지를 대량소비! 정말 맛있는 가지구이'가 최고 인기였네요. 2만2천건의 검색이 있었다고 하네요. 두번째는 '간단! 양배추와 계란만 가지고 맛있는 중화요리'가 거의 2만건에 육박하는 검색기록을 가졌습니다. 3위는 돼지고기로 '아이들도 좋아해요! 돼지 가지 피망 된장(미소)볶음'이 1만8천건으로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그리고 4위로 '멈출수 없어~ 데굴데굴 감자 데리야키'의 감자와 '이자카야풍 마약오이(의역)'의 오이가 5위로 뒤따라 갑니다. 6위는 만4천건 검색을 기록한 계란으로 '간단 숙주나물달걀 쥬카덮밥'입니다. 그리고 파스타 닭고기 무 토마토 등의 소박한 재료들이 10위 랭킹에 들어갔네요.

이걸 닛케이 트렌디 기사를 인용한 것은 이런 검색은 일반 회원들이 할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이 쿡패드는 '다베미루'라는 검색사이트를 운영하는데 이걸 이용하려면 월 수백만원의 사용료를 내야합니다. 식품회사, 수퍼, 백화점,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 등 관련업체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여 사용하는데 일본사람들의 식생활과 관련하여 지방별, 도시별, 연령별, 성별, 시간대별, 재료별, 가격대별 등등 아주 자세한 분류와 검색이 가능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할 수가 있으니 비싼 돈을 내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일반 회원들한테 무료로 받은 레시피를 모으면서 생성된 데이터베이스로 장사를 하니 참 재주가 용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큰 장사는 다른데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세요.


왼쪽 하단에 프리미엄 서비스라는 항목이 있고 그 밑으로 '인기순 검색' '레시피 랭킹' '명예의 전당 레시피' '전문가 엄선 레시피' '프리미엄 메뉴작성' 등의 항목이 있는데 이를 보려면 매월 우리돈 약 3천원씩을 내는 유료회원이 되어야 합니다. 엄청난 레시피의 홍수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면 돈을 써야하는 겁니다. 그런데 시간을 아끼고 효율적인 검색을 하여 자신의 식생활에 도움을 받기위해 유료회원 가입을 한 사람들이 수백만이라고 합니다. 

이 회사의 연매출은 우리돈 약 6백억원 정도인데 원가가 매우 적어서 이익율이 엄청 높다고 하네요. 위의 캡쳐사진은 오늘 점심때 잠깐 잡아놓은 것입니다. 가운데 사진은 8월 26일 오늘의 추천메뉴입니다. '가지와 돼지고기 향미소스 요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밑을 보면 재미납니다. 세일품목으로 알뜰하게 만들기! 라는 캎와 함께 재료인 '얇게 썬 삼겹살, 198엔, 어디어디 수퍼..'라는 광고가 붙어 있습니다. 인기 레시피를 소개하고 그걸 만드는 식재료를 세일하는 곳의 광고를 받는 거지요.

오후시간에 모바일로 검색을 하여보았습니다(고백하자면, 회의시간중에 지루한 보고가 이어져서 한쪽으로 들으면서 테이블 밑으로 검색을 하였습니다). 아래가 캡쳐사진입니다. 오늘의 추천메뉴 밑에 '오늘의 세일, 초특가! 가지 98엔, 다이에 마리나타운점'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세일항목으로 들어갔더니 '가까운 곳의 점포를 찾아봅시다'라는 항목이 있어서 우편번호를 넣도록 되어있습니다. 

위치정보와 연동하면 저절로 뜨지만 저는 지금 다른 나라에 와있어서, 어디를 넣을까 궁리하다가 디즈니랜드가 있는 우라야스를 넣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우라야스 부근의 수퍼와 편의점들의 세일정보가 뜹니다. 아래 캡쳐가 그것입니다. 다 돈을 받고 올려주는 거 아닌가 싶네요. 깜짝 놀란 건 아래 오른쪽을 보아주세요. 오늘의 추천메뉴밑의 오늘의 특가 세일정보가 우라야스 동네의 수퍼로 바뀌어 있습니다. 


요리레시피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공짜로 투고를 받고, 그걸 유료로 팔고 데이터베이스는 기업에 비싼돈에 검색을 하게 하고, 이런저런 곳에 광고를 집어넣고, 참 아무리 생각해도 똑똑한 사이트입니다. 전에 부터 느꼈던 거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얄밉지가 않고, 우리도 이런거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사이트입니다. 출발시간이 지연되어 쓰는 포스팅인데 이제 부르는 군요. 그만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다뤄볼까 합니다~



뱃살을 복원하는 실험보고서(5) 밥과술네 집이야기


오온개공에 색즉시공이라, 공수래공수거이거늘 도로아미타불이 아니 되도록 두손모아 아멘에 할렐루야입니다.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라 뱃살이 한참 빠지는 것 같더니 조금씩 야금야금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아서 경계태세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남북이 대치상황에서 북은 준전시상황으로 병력이 배치되고 이에 대비하는 우리쪽도 비상이 걸리고 이런 판에 무슨 뱃살타령이냐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이럴 때일수록 일반 시민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동요없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게 좋다고 판단하여 오랫만에 오늘도 먹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오랫동안 블로그를 떠나있어서 하나 써야지하는 복귀 포스팅이라 짧습니다. 자칫하면 잘먹고 다닌 염장성처럼 보일 수도 있으므로 양해를 구합니다~ 그동안 '뱃살을 빼기위한 실험보고서'라는 제목으로 네번이나 포스팅을 하였군요. 그때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목표치에 다가간 뒤로 신난다 그러고 마음을 놓고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긴장이 풀린 마음가짐에 더하여 홈그라운드를 떠나 기나긴 어웨이경기에, 아니 출장길에 나서서 이것 저것 먹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음식에서는 요령이 생겼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돌아가는 원형테이블에서 내 몫을 살짝 떠서 양을 줄이면 그런대로 체중을 유지할 수가 있었지요. 일본음식은 원래 과식만 안하면 칼로리가 그렇게 넘치도록 나오지를 않으니까 술의 양만 조절하면 그것도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미국입니다. 그동안에는 그냥 양이 많다, 그런거지 뭐, 하고 살아왔는데 뱃살빼기 생체실험을 시작한 이후에 다시 가서 이곳저곳을 돌며 먹어보니 정말 양이 심각하게 많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였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게 맛이 땡기니 중간에 숟가락, 아니 포크를 놓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지요. 

위의 사진을 보세요. 아침에 나온 스모크 새몬과 크림치즈 그리고 베이글입니다. 베이글이 미니 베이글이 아니라 정상 크기인데 다른 포션이 크다보니 미니도넛만 하게 보입니다... 아래는 에그 베네딕트인데 계란 노른자의 크기를 보면 머핀, 햄, 소스, 감자의 사이즈가 짐작이 갑니다.  


필리치즈스테이크를 시켜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하다못해 이태리 집에서 브루스케타를 시키면 앙증맞게 나올 줄 알았는데 커다란 피자한쪽만한게 나옵니다. 


중국집에를 가도 볶음밥이 점보싸이즈로, 하다못해 홍콩대만에서는 귀여운 싸이즈의 완탄면도 대접으로 나옵니다.


뮤턴트화한 아시아음식은 베트남 집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정말 커다란 냉면대접보다도 큰 그릇에 가득채워 나와서 갖은 향신채를 살살 달래가며 넣어야지 안그러면 넘칩니다. 사진은 향신채를 넣기 전의 모습입니다.


월남쌈도 굵고 커서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입니다. 사이드로 시킨 걸 이내 후회했습니다. 사진은 안올렸지만 튀긴 것도 시켰거든요.


그리고 사방에는 아래와 같은 간식이 널렸습니다. 살을 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처에 지뢰밭입니다.


주말에 돌아와서 긴급 체제정비를 하고(다시 덜먹기로 작심하고) 짧은 기간이지만 빡세게 운동하고 살금살금 저울에 올랐더니 2킬로 늘어 있었습니다. 근데 그게 다 배로 몰린 모양입니다. 다시 노력해서 언젠가 '복원 실험보고서' 가 아니라 '빼는 실험보고서'로 이어지길 희망하며 빠른 시일내에 다른 이야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군만두에 고량주 vs 야끼만두에 빼갈 술/커피이야기

오늘은 맛있는 중국요리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맞는 중국술이 없었습니다. 여기는 한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닙니다. 그래서 더욱 고량주가 그리워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말은 '아, 이걸 안주삼아 빼갈 한잔 카~ 했으면'이었습니다. 잊었던 단어가 살아나자 추억은 꼬리를 물고 또 마음은 과거로 훌쩍 여행을 떠납니다. 

미국 LA에는 웨스턴과 버몬, 그리고 올림픽과 베벌리가 만들어 내는 사각형을 중심으로 코리아타운이 있지요. 뉴욕하면 뉴저지에도 한인타운이 있고 맨하탄 32번가도 떠오르지만 퀸즈 플러싱이 대표적인 한인타운입니다. 지구 저 반대쪽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도 백구라고 불리는 한인타운이 있어 한때 대단한 번영을 구가한 적이 있을 정도였고 세계 웬만한 도시에는 다 자연발생적으로 한인들이 모여사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의 중심에는 한인 식품점, 한국식당, 여행사, 그리고 교회가 있습니다. 

요즈음 보자면 중국 베이징의 왕징만큼 다이나믹한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왕징(望京)이라는 발음과 글자는 베이징을 자주 드나드시는 분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하게 다가오는 단어입니다. 서울이 무섭다니까 과천부터 긴다는 우리 옛말이 있지요. 중국도 마찬가지여서 베이징을 들어가기전에 멀리서 베이징을 바라보는 장소라고 해서 왕징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양입니다. 지금은 북경시가 한없이 밖으로 커져나가서 왕징은 시의 한가운데로 들어간 모양새가 되었지만요. 

여기에 한국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추정하기에 현재 8만에서 10만의 한인들이 산다고 합니다. 웬만한 지방 중소도시의 인구에 버금가는 숫자입니다. 찾아보면 한국에 있는데 여기에 없는건 별로 없습니다. 아까 얘기한 도시들은 물론 한국인이 어느정도 모여사는 세계 모든 도시에서는 어디서나 다 짜장면과 짬뽕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이 두음식이 한국화 되었다는 이야기겠지요. 옛날에 제 친구하나가 보스턴에서 유학을 하였는데 한달에 한번정도는 주말에 유학생 몇이 모여 한 차를 타고 너댓시간을 달려 뉴욕 한인타운에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고 합니다. 오후에 떠나 저녁시간에 짜장면을 먹고 이내 밤길을 달려 보스턴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하니 참 대단한 짜장면 사랑이었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짜장면과 짬뽕의 진가는 도리어 중국에서 발휘됩니다. 중국요리의 본바닥 중국, 거기에서도 모든 지방의 요리가 모여있는 베이징에서도 한국사람들은 왕징에서 한국식 짜장면과 짬뽕을 많이 먹습니다. 위의 사진이 그것입니다. 얼마전 베이징에서 한국친구들과 모이게 되었습니다. 낮에 전화로 시간과 장소를 정하며 뭘 먹을까, 그랬더니 오랫만에 중국요리 먹을까,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네 중국에 주재하며 열심히 일하는 한국의 산업전사들은 거래처와의 약속이 아니면 당연한듯이 한식을 찾는 것 같더군요. 

왕징에 한국출신 화교가 역으로 중국에 건너가 차린 중국음식점인 동보성이라는 곳은 그래서 저도 여러번 가본 곳입니다. 한국친구들 또는 선후배들과 만나게 되면 왕왕 머물고 있는 시내에서 왕징까지 가서 한식을 먹고, 왕징안에서 자리옮겨 술한잔하고 다시 시내로 나오는 코스를 밟게 됩니다. 고기집을 갈까 중국집을 갈까 고민을 하다가 가려던 고기집이 예약이 꽉찼다고해서 동보성으로 정한 거지요.

메뉴는 정통 한국식 중국집의 그것으로 골랐습니다. 탕수육, 난자완스, 깐풍기 그리고 사진 두번째의 양장피. 양장피는 안주로 최고입니다. 실제로 중국엔 이 양장피나 이와 비슷한 맛의 요리를 파는 곳이 없어서 어쩌다 먹게되면 참 맛있고 반갑습니다. 이렇게 시켰더니 누군가가 '야끼만두도 하나 시켜야지요?' 그래서 또 반가웠습니다. 옆에 앉은 누군가가 '네?' 그러는게 못알아 들은 것 같았습니다. 얼른 야끼만두를 시킨 이가 '아, 군만두' 그렇게 말을 고쳤습니다. 그러자 일행중에 제일 젊은이가 '군만두는 서비스 아닌가요?' 하고 농을 한다고 한마디 보탰는데 별로 웃음은 유발하지 못하였습니다. 군만두가 소중하던 세대에게 그렇게 군만두를 천대하는 발언은 결례이지요.

그렇습니다. 이날 왕징 동보성에 모인, 한국에서 베이징으로 나와서 일을 한지 몇년씩 되는 이들 가운데 저와 연배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 이들에게 군만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음식입니다. 고등학교때 좀 불량하게 놀려면 평소 돈이 없으니 다들 있는 돈을 주섬주섬 모아 합치거나 용돈이 넉넉한 집 아들의 후의에 힘입어 중국집에 가는게 고작이었습니다. 가도 탕수육 이런 건 엄두도 못내고 기껏해야 짬뽕국물에 군만두를 안주해서 고량주를 마시는 것이 대부분이었지요. 밥과술도 고등학교때 술좀 마신 것 같습니다. 그래봤자 술잔을 기울이며 심각한체 문학, 철학 이야기들이나 했지 여자얘기 연애고민 이런건 전혀 없었던 걸 보면 불량의 정도가 낮은 그룹이었던가 봅니다.  

그 때는 고량주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다들 빼갈, 빼갈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리고 술은 일본 사케를 담는 한홉들이 하얀 돗쿠리에 담겨 나왔습니다. 아마도 중국 화상들에게만 공급되는 메이커가 있어서 덕용으로 큰 병으로 사다가 조금씩 따라서 판게 아닌가 싶네요.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동해고량주라는게 등장하지 않았나 싶군요. 이 국산 브랜드 동해고량주도 무역이 자유로와지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뒤에 중국에서 싸고 품질좋은 이런저런 백주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이래 버티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상상이 갑니다. 

어쨌거나 그 때는 이 빼갈이 맛있어서 먹는게 아니라 '고삐리'가 불량스럽게 놀려면 술을 마셔야 하는데 방과후에 교복입고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은 2층에 방이 있는 중국집정도 였으니 할 수 없는 선택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 술이 지독하게 독하고 또 냄새도 강했습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이 높은 알콜도수와 강한 냄새가  오히려 더 안성마춤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불량'에는 '고통'이라는 대가가 따라야 하는 법이니까요. 저도 억지로 마셨지만 그 때 이 맛이 좋아서 마신 고등학생이 과연 백에 몇명이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세월은 흘렀고 이제 저는 이 술이 독해서 좋고, 이 향이 좋아서 늘 즐겁게 마십니다. 오랜 세월 중국을 오가면서 참 숱하게도 마셨습니다. 여기서 잠깐 '빼갈'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지요. 빼갈은 白乾兒이라고 쓰고 빠이갈이라고 읽는 단어이니까 그다지 원음에서 틀린 발음은 아닙니다. 빠이갈은 빠이지우(白酒)라고 불리는 고농도의 중국 증류주를 중국 동북지방에서 부르는 말이라고 하네요. 빠이지우가운데에는 고량을 포함하여 조, 보리 등 각종 다섯가지 곡식을 넣어 빚었다고 해서 우량이에(五粮液)라는 유명브랜드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량을 원료로 합니다. 

알콜도수와 순도를 높이기 위해 두번 증류한 술이라 해서 얼궈터우(二锅头)라 불리는 술은 베이징이 유명합니다. 아래가 한국의 짬뽕 체인점에서 파는 얼궈터우인데 저는 이게 좋아서 이집을 찾기도 합니다. 주문하고 음식나올때까지 양파하고 단무지 춘장에 찍어 홀짝홀짝 마시다가 짬뽕하고, 군만두나오면 본격적으로 마시는게 습관인데 혼자 120밀리 작은 병을 두병 마시면 딱 좋습니다. 값이 싸서 좋고, 또 싼 덕에 수정방, 마오타이 이런 것 과는 달리 가짜 염려 안해서 좋습니다.  
 

언젠가 이 빠이지우의 독특한 향기의 정체가 무엇일까 궁금해서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술도 도수가 높은 안동소주, 문배술, 화요 등도 비슷한 향이 있지요. 그래서 '불맛' '불냄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뒤져보니 아세트산 에틸, 카프로산 에틸, 유산에티르 등 에스테르가 주성분이고 아이소아밀 아세테이트, 길초산 에티르 등 카르본산 계열이 독특한 향을 만들어낸다, 뭐 이렇게 씌여있는데 차라리 모르는게 더 나을 뻔 했습니다. 화학전공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외계어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다고 합니다...

아래는 사진폴더를 뒤져서 찾은 해외 여러나라에서 먹은 한국식 중국음식 가운데 탕수육, 짜장면, 짬뽕 등의 사진의 일부분입니다. 미국같은데는 원재료가 싸서 그런지 왕새우 커다란 걸 여러마리 넣은게 눈에 띄긴 하지만 다 비슷비슷합니다. 양배추로 담근 김치를 내는 곳이 있어서 반갑기도 합니다. 옛날에 한국에서 화교가 하는 중국집에서는 양파와 함께 양배추 김치를 내곤 하였는데 당시는 화교가 배추살 돈이 아까와서 그런줄만 알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단단한 양배추로 담근 김치가 중국음식과 식감과 맛에서 더 잘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당시에는 습관이 안들어서 먹는 음식 사진만 찍었는데 물론 이들 사진에 나온 음식 옆에는 반드시 고량주, 그러니까 빼갈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타지를 돌며 이것저것 먹다가 갑자기 그리워지는 고량주, 그리고 거기에 얽힌 빼갈의 추억에 잠시 틈을 내어 올려보는 포스팅이었습니다. 나중에 기회있을 때 밥과술의 소주사랑 이야기도 올려보겠습니다. 와인사랑이야긴 안하렵니다. 그건 누구에게나 당연한 이야기이므로 해봐야 별 재미없을 것 같아서...^^;;



입맛에 맞는 음식, 안그런 음식 살아가는 이야기


따르릉. 전화벨이 울립니다. 실제로는 따르릉이 아니라 '부르르'인데 전화가 왔다는 표현을 하려니 따르릉이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나오네요. 그래서 그냥  썼습니다. 이제는 전화가 부르르 진동했다, 이렇게 써야하는게 맞는지 고민을 해봐야 겠습니다. 다이얼을 돌리다라는 표현도 번호를 꾹꾹 누르다, 아니면 단축번호를 쓰면 그냥 탁 하고 터치했다 이렇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각설하고 다시 하려는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립니다. 어제밤 이야기입니다.
"여보세요?" 저는 침대에 누워서 웹서핑을 하며 잠을 청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저, 주무시나요?" 방금 저녁행사 마치고 헤어진 동료직원입니다.
"아니,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 아니구요. 다들 김치찌개에 소주한잔하러 가자고 해서, 혹시 피곤하시지 않으면 같이 모시려고..."
"방금 밥먹고 헤어졌는데 식성들 좋네 ㅎㅎ 다녀와요. 난 그냥 쉴께"
"네, 그럼 편히 쉬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귀국하는 직원들은 나중에 서울서 뵙겠습니다."

저는 지금 출장을 나온지 며칠되었고, 어제는 이곳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여러 손님을 모시고 치른 행사라서 한국에서 지원을 나온 직원들도 여럿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식 레스토랑에서 디너를 끝으로 행사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모두 모듬 소시지, 슈바인학센, 감자 등을 안주로 맥주를 많이 마셨습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김치찌개에 소주라니! 참 젊어서들 좋구나, 싶다가 이내 깨달았습니다. 그렇지, 이들에게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긴장이 대단했던 것이고 외국손님들과 함께한 저녁은 즐거운 자리이기도 하면서 사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자리이기도 했겠구나. 이제 훌훌 털고 우리끼리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게 당연할 수도 있었겠구나. 갈 걸 그랬나. 아니야, 사실은 나없는게 더 편한데 예의상 부른 걸 수도 있으니 안가길 잘한건지도 몰라. 부하에 대한 배려같지만 사실 까보면 나이먹은 상사의 소심함이라서 요즈음 들어 특히 이런 자신이 못마땅한 밥과술은 그냥 달아난 잠을 이런저런 잡생각으로 때웠습니다.  

사람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먹는 건 좋은 일이지만, 새로운 것을 잘 못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요. 옛날 어렸을 때는 은근히 외국에 나가서도 난 뭐든 잘먹으니까하고 속으로 우월감도 살짝 느낀적도 있었지만 곧 그게 부질없는 허영심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일수록 먹는 것에 있어서 보수적이고 새로운 것을 얼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많이 보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새로운 걸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반대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음식에는 궁합이라는 것도 있어서 뭔가 잘맞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남들은 편하게 먹는데 자신에게는 잘 다가오지 않는 맛도 있습니다. 제 사무실 동료가운데에는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 단무지를 싫어하는 사람, 당근을 싫어하는 사람이 각각 있어서 김밥을 시키면 정말 볼만합니다. 다들 하나씩 빼서 상대방에게 주곤 합니다. 하기야 이것저것 다 잘먹는 것 같은 저희집 쥬스도 안먹는게 몇가지 있습니다. 오늘은 쥬스를 예로 들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래전 어느 휴일날 이야기입니다. 모처럼 집에서 맞이하는 일요일 오전, 맛있는 커피를 내려서 마카다미아 쵸콜릿을 먹으며 홀짝홀짝 마시니 그렇게 맛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커피는 마시기 전에 내릴때부터 거실 가득히 퍼지는 향에 이미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하지요. 옆에서 쳐다보는 쥬스를 동정하며 말을 붙였습니다. "얘, 이럴땐 네가 참 불쌍하다. ㅋㅋ 좀 노력을 해보지 그래? 이 행복한 느낌을 모르고 살다니..." 

그렇습니다. 저희집 큰 딸 쥬스는 커피를 안마십니다. 맛이 없다고 합니다. 써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홍차도 좋아해서 블랙으로 잘마시고, 중국차는 물론이요 일본 녹차, 말차도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유독 커피는 안마십니다. 잘은 모르지만 커피여사가 쥬스 임신하고는 몸에 안좋다는 건 하나도 안먹고 그랬습니다. 그 좋아하는 커피를 한방울도 안마셨으니 참 모성이란게 대단한 것 같습니다. 우유때는 오개월이 될 때까지도 임신인줄 몰라서 가리는것 없이 커피도 마시고 그랬습니다. 그런 탓인지 우유는 어려서부터 커피에도 관심이 많아서 설탕타서 어른 안보면 홀짝 마시고 콜라도 마시고 그러더군요. 과학적으로 근거는 없지만 둘의 식성이 조금 다르니 그래서 그런건가 추측해 본 겁니다. 

쥬스는 콜라도 안마십니다. 탄산음료 자체를 아예 안마십니다. 페리에, 펠레그리노 같은 탄산이 들어간 광천수도 안마시지요. 술도 와인, 막걸리는 마시는데 탄산이 들어간 맥주는 안마십니다. 소주는 맛이 없어서 싫다고 합니다. 탄산이 들어간 것 중에 유일하게 마시는게 샴페인 입니다. 그래서 야, 이거 좀 모순아니야? 그랬더니 몰라, 그냥 샴페인은 맛있어, 그렇게 대답하고 마니, 저도 할말이 없어집니다. 이런거야 따져서 답이 나오는게 아니니까요. 

위의 사진이 쥬스가 안먹는 것들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그녀는 견과류를 안먹습니다. 저는 다람쥐가 울고갈 만큼 견과류를 좋아하는데 말이죠. 그런 쥬스도 호두, 피칸, 헤이즐넛, 마카다미아, 캐쉬넛, 피스타치오 다 안먹는데 예외가 있습니다. 잣은 엄청 좋아합니다. 밤(견과류인지는 애매할 때가 있지만)도 좋아하구요. 심심해서 물어보니 대답이 희한합니다. 모두 예외가 있어서, 호두는 갈아서 드레싱처럼 만든 건 좋아한답니다. 피스타치오는 아이스크림에 들어간 건 잘 먹구요. 

그리고 콩종류를 안좋아 합니다. 제가 서리태를 좋아해서 밥을 지을때 자주 넣어서 함께 먹도록 했는데 아직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완두 강낭콩은 싫어하는데 맥주안주로 나오는 에다마메는 먹는답니다. 스트링빈은 안먹지만 병아리콩하고 렌즈콩은 아주 좋아한답니다. 

피망, 풋고추, 파프리카는 아주 싫어합니다. 고추 특유의 풋풋한 향이 싫은데 파프리카는 달기까지 해서 꽈리고추<풋고추<피망< 파프리카 순으로 싫어한다고 하네요. 청양고추는? 그랬더니 그건 매워서 못먹어요, 라고 대답하면서 예외조항을 달았습니다. 청양고추는 찌개에 넣는 건 좋아하고, 피망은 중국요리 칭쟈오러우쓰(青椒肉絲)로 만든 건 잘 먹는다구요. 

야채도 샐러리는 스프에 넣고 끓이는 건 좋아하지만 샐러드 감각으로 생으로 먹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그런데 쥬스가 남들보다 엄청 좋아하는게 있으니 바로 실랜트로, 우리말로 고수입니다. 언젠가 블로그에서 잠깐 소개한 적도 있는데 처음 먹자마자 이렇게 맛있는게 있다니, 하고 감탄을 하였다고 하네요. 지금도 기회가 되면 잔뜩 사다가 샐러드 감각으로 먹는데 이게 솔직히 수퍼에서는 꽤 비싼 야채에 속합니다. 저는 이게 열대지방에서 얼마나 싸고 흔한 야채인지를 알기 때문에 함께 가서 계산을 할 때면 속이 살짝 쓰립니다.  

저는 고수에 대한 애정은 그냥 그런 편입니다. 아주 더운 날은 맛있고 평소에는 별로 입니다. 그리고 저는 먹는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맛있다고들 하고, 또 그걸 좋아하는게 음식을 아는 상위레벨에 들어가는 것 같은 풍조도 있어서 노력끝에 삼합, 홍탁을 먹게는 되었습니다만 솔직히 일정기간 안먹으면 먹고싶고 또 먹으면 너무 행복하고 그런 정도는 아닙니다. 아마 진짜 맛있는 걸 먹어볼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저는 아직도 청국장하고 잘 사귀지를 못했습니다. 좋아하지도 않고 아직 그 냄새에 저항이 많이 갑니다. 그런데 일본의 낫또는 좋아하니까 솔직히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애국심이 부족한가 보다 좀 반성도 하고 그럽니다. 영어로 stinky tofu 라고 알려진 중국의 처우떠우푸(臭豆腐)도 나름 잘먹는데 왜 청국장은 싫을까 아직도 의문입니다.

아무튼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린 결론은 간단합니다. 
1. 이것저것 잘 먹는게 좋고 그만큼 행복하기가 쉽다.
2. 남들이 좋아하는 음식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따라서 가까이 다가가면 맛있게 먹을 확율이 높다.
3. 그런데 시도해 보고 노력해 보았는데 안좋아지면 억지로 좋아하려고 힘쓸 필요가 없다. 세상에는 그것말고도 맛있게 먹을 게 많으니까.

오늘은 한국음식을 거의 처음 먹어보는 외국손님들을 안내하여 한국 식당에를 갔습니다. 늘 그렇듯이 외국손님들에게는 갈비구이, 모듬 전, 잡채, 튀김 이런 걸 시켰고 황태무침, 낚지볶음, 더덕 이런 걸 시켜서 한국사람 테이블에만 놓았습니다. 그리고 소주를 시켜서 얼큰하게 한잔하고 돌아왔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여름날 저녁 내고장 탐방기 밥과술네 집이야기


온도가 올라가고 습도가 높으니 불쾌지수가 치솟습니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어딜가도 끈적끈적 더운 공기가 감싸는게 여름이다 여기면서 그러려니하고 찬물로 몸을 씻어 식히고 창문열고 선풍기 틀고 이러고 지냈지요. 더위를 피해간다고 '피서'라는 말이 있는 거고 그래서 며칠 계곡이나 산으로 가서 시원한 밤공기를 만끽하고 돌아올 수 있는 짧은 휴가를 소중히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어컨이라는 신통방통한 기기가 보급되면서 쾌적한 실내에서 업무도 보고 생활도 하게 되면서, 에어컨이 없는 곳이 한없이 불편하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루에 얼마나 에어컨이 있는 곳에서 살고 있는가 헤아려보니 서울에서도 하루에 열몇시간 이상입니다. 회사사무실, 자동차, 식당 다 에어컨이 있는데 그나마 집에와서 잘때는 웬만하면 꺼놓기에 그런거지요. 더운나라에 가있을때는 건물에선 나와 자동차를 타고 자동차에서 내려서 건물로 들어가는 몇분을 빼고는 하루종일 에어컨으로 조절되는 공기속에서 사는 건데, 서울에서도 일년에 며칠은 그런 날이 있습니다.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얼마전 타계한 리콴유 싱가폴수상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에어컨이라고 말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국민들을 부지런히 일하게 하여 잘사는 국가로 만든 사람다운 발언입니다. 일년내내 뜨거운 적도에 위치한 싱가폴에 에어컨이 없었으면 오후내내 사람들이 더위에 늘어져서 일을 못했을 거고 고층빌딩도 못짓고 여러모로 효율이 많이 낮았겠지요.

에어컨이 없어도 지내기 좋을 만큼 공기가 건조한 여름날은 온도가 높아도 기분이 좋습니다. 오히려 여름이 아니면 못느끼는 특유의 분위기가 반갑습니다. 오늘은 그런 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 열흘정도 되었을까요. 어느날 저녁약속이 갑자기 취소되었습니다. 그날따라 일찍 집에 들어와서 뭘할까 궁리하다가 벌떡 일어서서 나갔습니다. 여행을 떠나자, 정처없이. 이렇게 마음을 먹은 겁니다. 맨손으로 터벅터벅 도보여행이다. 지나가다 나그네처럼 아무데나 들어가서 배고프면 밥먹고, 술고프면 술마시는 방랑의 여행길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하지가 지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어두워지려면 아직 한참 더있어야 할 시각이었습니다. 발걸음도 가볍게 집을 나서서 수백미터를 걸어서 큰 길로 나서니 참외 수박 자두 등을 늘어놓은 과일트럭이 있었고 그옆에 옥수수를 쪄서 파는 행상이 있었습니다. 두개씩 봉투에 넣어 파는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저 한개만 사고 싶은데 그렇게 파시나요?' 아주머니는 흔쾌히 절반값에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하모니카를 불듯이 옥수수를 야금야금 먹으며 길을 걸었습니다. 조금 지나니 지하철 역이 나오고 그앞에 늘어선 숱한 노점상이 있는데 구두수선하는 가게 옆에 꽃집이 있었습니다. 새빨간 장미가 다발로 수북하게 가게앞에 나와있었습니다. 호, 이런 곳에 꽃을 파는 집이 있었구나. 내가 사는 고장을 참 모르고 있었네, 이렇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내고장'이라는 말이 너무나 정겹게 와닿으며 옛날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국민학교 시절 3학년인가 4학년 사회 교과서에 내고장을 탐구하자 뭐 그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삽화가 있는데컬러로 인쇄된(흑백이었는데 컬러로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지방의 한구역을 하늘에서 내려다 본 그림이었습니다. 소방서 약국 학교 생선가게 청과물가게 관공서 병원 등이 있는 그림인데 참 아기자기해서 동화속의 나라 같았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커서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오모이데 포로포로(추억은 방울방울)'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았을 때 영화속에 나오는 회상장면에서 아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옥수수를 먹으며 길을 천천히 걸으니 '내고장'이라는 잊고 있었던 단어가 살아나고 그 단어가 실마리가 되어서 추억이 실타래처럼 풀려나가니 저녁의 방랑길은 점점 더 즐거워 졌습니다. 그날 먹었던 찐옥수수는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구글을 찾아보니 이웃 블로거 투명장미님의 사진이 이미지검색에서 뜨는데 가장 비슷해서 빌려다 올립니다. 위의 사진이 그것입니다. 찐 옥수수 하면 제게는 방학때 시외버스 타고 강원도로 오갈때 늘 인제 원통에 도착하면 김이 나는 옥수수를 다라이에 잔뜩 넣어 머리에 이고 버스로 달라붙던 아주머니들의 모습도 들어있습니다.      

한참을 또 걷고 걸으니 버거킹이 나옵니다. 롯데리아도 지났고, 맥도날드도 있지만 여행자가 브랜드를 따지겠습니까. 그냥 배가 또 출출하니 들어가 3천9백원짜리 세트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길가 버스정류장 부근 의자에 앉아서 펴놓고 먹었습니다. 사진 왼쪽하단의 데님이 제가 입은 청바지입니다. 좀 시원한 면바지를 입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다행히 그날은 괜찮았습니다.

갓튀겨낸 감자가 따끈따끈 너무 맛있어서 그것부터 다먹고 버거는 나중에 먹었습니다. 제가 버거는 버거킹을 좀 더 선호하고 감자튀김은 맥도날드를 더 좋아하는데 이날은 버거킹것도 맛있더군요. 평소에는 안먹고 햄버거 피자 먹을 때만 마시는 콜라도 이 날은 얼음에 녹아 적당히 김이 빠진게 입에 맞았습니다. 
    


그리고 또 정처없이 걸었습니다. 배도 부르겠다 한참을 걷다보니 먹자골목 같은데가 나왔습니다. 깜짝 놀란게 칼국수 집이 한골목에 네집이나 있었습니다. 아, 내고장이 칼국수가 명물이었나?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고기집이 많은데 새삼 놀랐습니다. 한집건너 고기집에 골목마다 들어차 있는 걸 보고 새삼 우리가 참 고기를 좋아하는 민족이 되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고기집, 고기집, 그리고 사이사이 들어있는 생선회집, 호프집 그리고 치킨집이 어지럽게 간판을 내걸고 있었고 그 사이에 교회가 들어가 있는 곳을 보았습니다. 먹자골목안에 교회가 있는게 새삼 신기했고 그 옆에는 요즈음 화제의 인물 백종원씨가 하는 새마을식당도 있었습니다. 

골목을 누비다가 큰 길로 나가니 자동차 버스가 씽씽 달리며 대도시의 굉음을 만들어 내는데 어둠이 내리고 네온싸인이 켜지며 야경과 소음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적당히 앉아서 쉬고 그러다가 일어나서 또 걷고 그러다보니 목이 말랐습니다. 파리바게트에 들어가서 제가 좋아하는 팥 아이스캔디를 사서 쭐쭐 빨며 또 걸었습니다. 이제는 진작에 반환점을 돌아서 집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사진은 안찍어서 홈피에서 퍼왔습니다. 옛날 아주 옛날 혜화동 로타리에 아카데미 빵집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파는 팥아이스케잌이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그 때 한 개값이 버스비의 몇배였으니까 지금 돈으로 5천원쯤 했으려나요. 그 당시는 누구도 두개 이상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스케익을 먹으며 크림빵, 빠다빵, 곰보빵, 앙꼬빵, 소라빵, 오란다빵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참 길을 지나다가 문득 아래같은 곳을 보고 신기해서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피스빌딩같은 곳의 입구에 불이 켜져있는데 아마도 지하에 있는 모양입니다. 궁금한 건 업태가 다양해 보여서입니다. 일단 노래하는(마이크모양) 룸이라고 맨위에 있는데 그건 짐작이 갑니다. 노래방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밑의 노래빠라고 되어있는 건 처음보는 업종입니다. 무슨 업종일까 궁금해 하면서 밑에를 보니 술파는 노래방, 그리고 그 옆에는 룸크럽이라고 되어있네요. 술파는 노래방도 말그대로 이해가 가는데 룸크럽이 뭔가 궁금합니다. 아, 내고장에 노래빠와 룸크럽이라는 업소도 생겼구나, 뭘까 이렇게 생각하면 발길을 옮겼습니다. 사진은 특정업소의 이름을 공개하는게 뭐해서 뽀샵으로 살짝 바꿨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까워져오자 목이 말랐습니다. 수분도 부족하지만 알코올도 조금 부족하다는 신호가 몸으로부터 왔습니다. 제가 '내고장'에 있는 보쌈이 맛있고 닭도리탕도 맛있게 하는 호프집을 하나 압니다. 그래서 가끔 손님들과 들리는 곳입니다. 혼자 들어가 앉아서 생맥주 한잔을 시켰습니다. 안주를 시키면 본격적으로 퍼마시게 될것이고 그건 나그네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아 시원한 생맥주를 서비스로 나온 뻥튀기를 안주삼아 맛있게 아껴아껴 먹었습니다. 사람이 간사한게 한국맥주 맛없다고 불평을 하는 밥과술도 이날은 참 맛있게 마셨다고 기억합니다. 



한잔을 비우고 미련없이 일어나서 계산을 하려니까, 음식솜씨 좋은 사장님께서 '뭔 계산이당가. 이런 날은 그냥 가소. 쓰어비스여' 미인 사장님의 억양이 센 호남 말씨가 새삼 더 정겹게 느껴지는 밤이었습니다. 저는 적당히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와서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적어놓지 않아서 잊어버렸지만 그날 밤 뭔가 좋은 꿈을 꾸었다는 건 분명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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