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과 소박한 음식, 상점가(商店街) 일본이야기

숱한 걸작을 세상에 내어놓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가운데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세대교체를 시도하여 젊은 감독들을 기용한 것도 있고, 외국과 협력한 것도 있지요. 오랫동안 동지로 함께한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勲)도 여러 명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 묘사하는 음식은 자칫 현실감이 없어 공감하기 어려운게 많은데, 지브리 작품에서 나오는 음식은 실사로 찍어낸 것보다 더 가슴에 와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산해진미로 가득한 진수성찬이나 궁중의 호화스런 만찬보다도 소박한 가정요리나, 추억의 음식들을 묘사하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지브리 작품들은 참으로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위의 그림은 지브리의 작품에서 보이는 햄에그 부침, 스프, 튀김, 도시락, 라멘 등 일상의 음식들인데 하나하나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줍니다. 

아래는 해피엔딩의 중심 디즈니의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낸 지브리의 <반딧불의 묘(火垂るの墓)>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단무지와 야채절임을 반찬삼아 찐 감자를 먹어도 행운이었던 전쟁당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주인공 여자아이는 오랜만에 본 쌀밥을 너무나 맛있게 먹습니다. 옛날에 이 장면을 보면서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우리나라도 전쟁을 겪었던 시절, 가난해서 배를 곯던 시절, 희망이라는 가는 줄을 잡고 고생스런 나날을 견뎌내던 시절, 이런 세월의 이야기를 서정적인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낼 날이 언젠가 오기를 바라면서요.  
아래에 소개한 컷들은 지브리의 <고쿠리코 언덕에서(コクリコ坂から)>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는 늦은 오후, 하늘은 석양으로 물들고 한참 클 나이의 청소년들은 배가 출출한 시각입니다. 주인공은 상점가(商店街;쇼텐가이)의 정육점에서 갓 튀겨낸 고롯케를 먹습니다. 이제는 일본에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24시간 편의점에만 들어가면 그럭저럭 괜찮은 고롯케를 먹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육점에서 주부들이 저녁 장볼 시간에 맞춰 튀겨낸 고롯케를 먹어본 세대는 이장면에서 푸근하고 정겨운 향수를 느꼈을 겁니다. 아래에 상점가 장면에 나오는 몇커트를 더 퍼왔습니다. 


이제 '구름'하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상징처럼 되어버렸습니다만, 지브리 작품에서 나오는 구름과 하늘도 좋습니다. 위의 컷을 보면 노을에 물든 구름 아래로 황혼이 깃들어가는 상점가의 묘사가 뛰어납니다. 어두워진 쇼텐가이(商店街;상점가)는 조명을 켜기 시작했고, 이미 불이 들어온 가로등이 제구실을 하려면 좀더 어두워져야 하는 바로 이 때 사람들은 묘한 감정을 느끼곤 하지요.  



야채가게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이 영화의 무대는 요코하마를 모델로 하였다고 합니다. 도쿄나 요코하마는 서울보다 해가 한시간정도 빨리 집니다. 같은 표준시를 좌우로 해서 한시간정도 만큼 경도가 벌어져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둑어둑할 때 장을 보는게 이상하지 않은 거지요. 이 영화의 시기는 도쿄올림픽을 앞둔 60년대 초반입니다. 오래전 이야기이지요. 세월은 흘렀고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제 오후늦게 주부들이 매일 장을 보는 광경은 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도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정육점에서 튀겨파는 고롯케가 맛있기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고기를 썰어팔다 남은 짜투리 고기를 활용하여 감자와 섞어 만든 고롯케가 싸고 맛있어서 지금도 편의점, 수퍼, 백화점 지하, 이런 대량생산의 파도에 쓸려가지 않은 동네 정육점들이 지역사회에 간간이 남아 변함없이 고롯케를 튀겨내고 있는게 오늘의 일본이기도 합니다. 

위는 아마도 도쿄 신바시 정도를 모델로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지금도 신바시부근은 퇴근후에 쏟아져 나온 샐러리맨들로 먹자거리들이 대성황입니다. 요새도 철도가 지나가는 다리밑에 자리잡은 야키토리집이나 선술집들에서 나오는 고기굽는 냄새가 골목에 진동을 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위의 장면은 아까 얘기한 대로 60년대인데 지금도 이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려서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여서 국민학교때 시장을 자주 갔습니다. 그래서 석양빛에 물든 시장거리의 추억이 더욱 많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을 보러 좀 늦게 나선 날은 붉은 빛에 물든 하늘을 보고 갔다가 돌아올때는 이미 어두워진 적도 많았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늦었구나. 다들 배고프겠다. 빨리가자.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옷 꼭 여며라. 바람맞아 감기 들지않게' 하시곤 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로 시장에 따라갈 일은 별로 없었고, 그 뒤 한국에는 아파트에 살면서 수퍼에서 물건을 사는 생활풍습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 가서 살게 되었을 때 제일 문화충격으로 다가온게 동네마다 '쇼텐가이(商店街;쇼텐가이)'가 있어서 여전히 생활의 기반으로 기능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라져버린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이 상점가를 지나다니는 걸 너무나 좋아하였습니다. 일본의 쇼텐가이는 일본 고유의 형태로 독특한 풍취가 있습니다. 여행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럼에도 한국사람들의 정서에도 어필하는 그 무언가의 매력이 있습니다. 

아래는 '짱구는 못말려'로 번역된 '크레용신짱'의 한장면입니다. 저녁거리 장을 보러 나선 주부의 모습입니다. 역시 저녁 노을에 하늘이 붉게 물든 시간입니다. 일본사람들에게도 노스탈지어로 남은 것 같습니다. 여러 애니메이션에 등장을 합니다. 제가 처음 갔을 때로부터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일본도 전국 각지에서 문을 닫는 쇼텐가이가 속출한다는 보도가 얼마전에 나왔습니다. 고령화사회의 진행에 일인세대가 늘어나는 등 사회구조가 바뀌었고, 이제는 대형 수퍼와 몇집건너 있는 것 같은 숱한 편의점에 전통 상점가가 버텨내기 힘든 세월이 온 것입니다. 

쇼텐가이하면 제일 생각나는 애니메이션은 <おもひでぽろぽろ(오모이데포로포로;추억은 방울방울)>입니다. 아까 소개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작품인데 저는 이 작품을 정말로 좋아합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과거 회상부와 현재, 두 시점의 이야기가 교차하여 진행되는 얼개인데 현재는 기존의 애니메이션 화풍으로 묘사되고, 과거는 엷은 담채의 화풍으로 그려집니다. 아래가 현재 시점의 한 컷 입니다. 

제가 더욱 좋아하는 부분은 주인공의 초등학교 시절을 그린 회상 부분입니다. 아래는 서로 호감을 가지지만 표현은 못하고, 마주치면 괜히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고 근데 그게 뭔지도 모르는 주인공과 상대 남자아이가 동네에서 마주치는 장면입니다. 석양이네요. 아련한 과거의 기억을 엷은 수채로 그려낸 건 신의 한수 같습니다. 

여러장면 가운데, 가슴이 짠하게 여운이 남는 건 쇼텐가이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주인공네 반에는 말썽장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애들 괴롭히고, 공부를 못하는 건 물론 학습태도도 불량한 그런 아이였는데 어느날 오후 엄마를 따라 장보러 갔던 주인공은 쇼텐가이에서 그 아이와 맞닥드리게 됩니다. 

주인공도 놀랐지만, 더 놀란 건 아버지인듯 한 어른의 손을 잡고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그 아이였습니다. 어른의 손에는 짐보따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왈왈대던 쎈 모습은 어디로 가고 없었습니다.  

아이는 주인공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고 불량한 걸음걸이를 하며 학교에서의 그의 모습으로 되돌아 옵니다. 그리고 길바닥에 침을 퉤하고 뱉습니다. 

영문따위는 알 리가 없는 어른은 뭔 짓이냐고 아이의 뒷통수를 한 대 갈기고는 뒷덜미를 채어 갈 길을 재촉합니다. 주인공은 왠지 모르지만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 같습니다. 이게 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시골 할머니네로 갔다던가 하는 풍문을 남기고 전학을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주인공은 길에다 침을 퉤퉤 뱉습니다. 그 아이가 미처 못뱉었던 침을 대신 뱉어준다는 듯이. 그리고 어두워져가는 쇼텐가이 골목을 보무도 당당하게, 그 아이처럼 아주 불량하게 걸어갑니다. 

원래는 이렇게 조신하게 걷던 주인공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 먹음직스럽게 묘사된 음식과 아련하게 그려진 쇼텐가이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깊게 새겨져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도 발전해서 언젠가는 이런 수준의 작품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궁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일본의 외식(3): 혼밥 이야기, 고쇼쿠(個食) 일본이야기


손님과 손님사이에 뚜렷하게 그어진 하얀 선이 눈에 들어옵니다. 모든 손님에게 일인분의 영역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려는 의도겠지요. 후추, 라유, 간마늘같은 스파이스나 클리넥스까지도 다 한사람씩 따로 구비하여 모르는 옆손님과 '저, 내프킨좀...' 이런 말을 섞을 필요조차 없습니다. 여기는 나름 맛있기로 이름난 도쿄의 한 라멘집입니다. 국물은 돈코츠와 쇼유를 배합하고 면위에 야채를 듬뿍 얹는게 특징인 '지로(二郞)계열' 가게입니다. 일본 라멘업계의 현황과 족보는 오늘의 테마가 아니므로 나중에 기회있을 때 따로 정리하기로 하고 오늘은 혼밥이야기 입니다. 

일본은 여러가지 사회현상에서 한국보다 미리 나타나는게 많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마지막 전쟁이 끝난 것도 8년이 빨랐고, 경제복구 출산붐 고도성장 등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보다 미리 경험한게 많아서 두 나라를 비교해보면 한국이 비슷한 궤적을 시차를 두고 답습해가는 것 같은 그래프와 통계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한국을 전망하여 돈을 벌었다는 사람도 여럿 보았습니다. 거창한 이야기는 접고 오늘의 이야기 혼밥으로 돌아갑니다.

일본에서는 위의 사진처럼 앉는 곳을 카운터석(カウンター席), 일반 테이블에 앉는 곳을 테이블석(テーブル席)이라 합니다. 스시집은 스시라는 음식의 특성상 카운터석이 더 선호되기도 합니다만 여전히 테이블에 앉아 즐기려는 일행도 많습니다. 라멘집은 원래 테이블석과 카운터석이 혼재되어 있다가 요즈음 뜬다는 곳은 테이블없이 카운터석만 마련한 곳이 많습니다.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도 좋고 인건비를 줄일 수도 있으니까요. 손님들도 맛있다는 라멘집은 여럿이 가서 담소를 나누며 먹는 곳이 아니라 잘만든 라면을 얼른 먹고 나오는 곳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일본에서는 카운터석 위주로 설계를 한 식당이 많이 늘어난 걸 피부로 느낄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낮은 객단가에 카운터석 영업을 위주로 해 온 대형 규동체인말고도 다양한 메뉴의 카운터식 식당체인들이 생겨났습니다. 아래는 돈카츠 체인인 '가츠야(かつや)'인데 얼마전 길가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이 체인은 상장까지한 회사의 브랜드인데 일찌감치 고쇼쿠(個食;혼밥) 고객을 타겟으로 하여 급성장한 회사라고 경제지, 잡지에서 많이 다룬 성공사례이기도 합니다. 이 브랜드는 객단가 750엔에 가성비좋은 음식을 내어 매년 두자리 성장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고쇼쿠 식당이 싼 가격으로만 승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진은 맛있다고 해서 먹어본 돈카츠집입니다. 들어가보니 카운터석밖에 없었습니다. 혼자와서 먹는 손님들이 대부분이고 둘이 온 일행을 하나 보았습니다. 가격은 전통적인 돈카츠 식당과 비슷했고 카운터석이라 싸다는 느낌도 아니었습니다.  


아래가 시켜서 먹은 돈카츠 사진입니다. 맛이 좋았습니다. 


이날의 경험으로 맛있는 돈카츠를 2인용 테이블이나 4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아 먹는 것보다는 카운터석에 앉는게 더 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도 있겠구나 실감했습니다. 나와서 보니 바로 옆집이 카운터석 전용의 라멘집(아래사진)이었고 그 옆집도 혼밥손님을 메인타겟으로 한 인도식당이었습니다(사진은 깜빡). 혼밥식당이 점점 늘어가는 걸 보았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여럿이 먹는 메뉴들이 속속 혼자 먹을 수 있는 카운터석으로 등장한다고 기사에서 몇번 본 기억이 나서 숙소에 돌아와 검색을 하여보았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구나 싶어 조금 놀랐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구글 야후에서 퍼온 것 들입니다.  우선 바로 아래는 일식집인데 혼자 온 손님들 위주로 설계를 한 곳이라고 합니다. 가운데 길다란 테이블도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혼자온 손님들이 앉기 편하게 만들어 놓은 것 입니다. 



아래는 바가 아니라 서양요리를 혼자 온 손님에게 내는 식당 사진입니다. 



아래 사진은 혼자 와서 본격적으로 프랑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혼자먹는 이태리 요리는 많았고 이밖에도 다양한 식당을 검색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은 카운터 너머로 서브하는 문화가 전통적으로 있었기에 이러한 배치가 저항감 없이 쉽게 확산되는 것도 같습니다. 아래도 퍼온 건데 로바타야키집 사진입니다. 스시집처럼 여럿이 간 손님들도 옆으로 나란히 앉아 음식을 시켜 먹지요. 그리고 그 아래는 미국 대통령이 왔다갔대서 더욱 유명해진 대형 이자카야 입니다. 카운터석 설계에 중점을 둔게 눈에 들어옵니다. 이러한 카운터석에 대한 익숙함이 고쇼쿠, 즉 혼밥 외식문화의 확산에 도움이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한국에서 생겨난 신조어 '혼밥'에 상응하는 일본말 '고쇼쿠'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지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본에서는 이 단어가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에 생겨났습니다. 처음에는 '孤食'라고 쓰고 고쇼쿠라고 읽었지요. 외로울 孤자를 써서 혼자 쓸쓸하게 밥을 먹는다는 뉘앙스가 강했습니다. 식사는 여럿이 함께 하는게 정상이라는 무의식에 대비된 단어라고 하겠습니다. 

일본에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조부모도 함께 살고, 부부슬하에 자식이 적어도 두명이상이던 전통적인 '단란가정'은 아주 아주 오래전에 일찌감치 깨졌습니다. 매머드형 대형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가정당 아이수가 줄어들고 부부의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가족이 다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횟수도 줄어들었지요. 그러면서 고쇼쿠는 個食로 표기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낱 個자를 써서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보다 중립적인 표기가 된 것 입니다. 

두 단어가 혼용되던 초기에는, 孤食는 어쩔 수 없이 혼자 먹어야하는 식사, 個食는 가족 구성원은 여럿이지만 생활리듬상 등의 이유로 따로  먹어야하는 식사 등으로 구별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런 구별마저 없어지고 個食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런 차이를 둔 해석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거니까요. 

일본은 이미 십년전에 전국 센서스에서 일인세대수가 2인세대수를 넘어섰습니다. 혼자서 식사를 하여야하는 끼니가 엄청 늘어난 것이지요. 그래서 또 생겨난 풍습과 단어가 나카쇼쿠(中食), 나이쇼쿠(内食)입니다. 외식(外食)이라는 말이 '밖에서 먹는'다는 뜻이므로 집에서 조리를 해먹는 식사를 '안에서 먹는'다고 해서 나이쇼쿠(内食)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바로 이 중간 단계의 식사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어라고 봅니다. 

바로 그 '가운데 위치한' 식사가 나카쇼쿠(中食)입니다. 밖의 식당에서 먹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해먹는 것도 아닌 중간단계에 위치한 식사를 가운데 中자를 써서 나카쇼쿠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편의점 도시락 이나 샌드위치 삼각김밥을 사다가 사무실이나 집에서 먹는 것도 이에 해당합니다. 데파지카(デパ地下)라고 부르는 백화점 지하 식품부에서 조리가 완성된 제품이나 반제품을 사다가 그냥 먹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데우거나 손을 더해 먹는게 일본에서는 큰 유행입니다. 일주일 단위로 메뉴를 정해서 배달을 해주어서 편하게 집에서 식사를 하는 케이터링 산업도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이게 다 나카쇼쿠 카테고리에 들어갑니다. 

지금 일본 외식산업의 외형이 25조엔(250조원)인데 나카쇼쿠산업의 그것이 6조엔(60조원)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한국도 일본의 트렌드를 비슷하게 닮아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인기만화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의 제목이 '혼밥미식가', '홀로 즐기는 미식가'로 바뀌어야할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다음에 일본의 혼밥과 나카쇼쿠 문화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지요.    


일본의 외식(2): 심야식당과 밥집 일본이야기


천만이 넘는 대도시의 가장 번화한 지역에도 한발짝 들어가면 한적하고 으슥한 골목길이 있습니다. 오가는 숱한 사람들 가운데 이곳을 알고 찾아와 밤늦게 밥한끼를 때우고 술도 한잔 걸치는 그런 식당입니다. 일본에서 만화로 먼저 주목을 받다가 TV드라마로도 인기를 끌고 영화화까지 된 '심야식당'의 무대입니다. 이름은 '메시야(めしや)' 우리말로 '밥집'입니다. 이 식당은 진짜로 일본 곳곳에 남아있을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데 그 동네 골목까지 전부 세트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 두장은 바로 이 심야식당이 자리잡은 골목안 풍경을 찍은 건데 사진을 자세히 보면 위쪽으로 영화세트에서 보이는 어지러우 전선과 천정이 보입니다. 물론 설명이 없으면 그냥 넘어갈 만큼 리얼하네요. 이 사진은 세트를 다녀와서 글을 올린 일본의 よしだたつき라는 분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http://getnews.jp/archives/1526629 에 가보시면 심야식당과 관련해서더 많은 사진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블로그 같았습니다. 

오늘 심야식당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일본의 식당명칭을 이야기하는데  이 '메시야'라는 이름이 좋은 소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전에 쓴 밥과술 블로그에서 이 심야식당에 관하여 설명한 포스팅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밥집'이라는 명칭은 보통명사로 자리잡지 않았습니다만 일본의 경우는 나름 꽤 쓰이는 명칭입니다. 물론 같은 뜻으로 '메시도코로'라는게 더 보편적이긴 합니다. 이제 하나씩 설명해 보기로 하지요. 

일본에는 '메시야'를 고유브랜드로 한 식당들이 많이 있군요. '메시야 식당', 'the 메시야' 등의 체인도 있네요. 혹시 '심야식당'의 인기에 편승한 네이밍이 아닌가 찾아보았더니 만화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있던 브랜드로 주식시장에 상장까지 했네요. 그 아래로 돈부리를 파는 '메시야 동'도 있고, 한국에서 자주보이는 표현인 '원조' 비슷한 '본가(혼케;本家) 메시야'라는 집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식당을 지칭하는 명칭을 간단히 소개해봅니다. 서양음식을 파는 곳으로는 전통적인 레스토랑말고도 요즘들어 퍼지는 리스토란테, 브라세리, 비스트로, 트랏토리아, 핏짜리아 등등이 있는데 오늘은 일본 음식을 파는 곳을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우선 대중적인 식당으로 제일 무난하게 쓰이는게 '쇼쿠지도코로(食事処)'입니다. 한자음을 그대로 읽으면 식사처, 뜻으로 읽으면 식사하는 곳, 식사하는 집 쯤 됩니다. 일본 전국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간판이지요. 가게 이름과 함께 업태를 나타내는 '쇼쿠지도코로'를 노렌에 표기하거나 아카쵸친(붉은등)을 내걸거나 합니다. 

이름은 대중적인 쇼쿠지도코로를 쓰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꽤 고급스러운 집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만만하고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집들이라 지방을 여행하다가 연도에 내건 이런 간판을 발견하면 반갑습니다. 

메시하고 도코로를 붙여서 '메시도코로(めし処)'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대로 읽으면 '밥처'가 되겠는데 그냥 '밥집'으로 번역하는게 무난합니다. 오늘 사진은 전부 구글, 야후 이미지에서 퍼온 겁니다. 쇼쿠지도코로, 메시도코로, 메시야 다 같은 의미로 혼용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대중적인 식당으로 한국어와 같이 그냥 쇼쿠도(食堂;식당)라고 쓰는 집도 많습니다. 사내식당, 구내식당, 학내식당 이런단어도 일본어와 한국어가 공유하는 것들이라 일본에서 식당 그러면 대중적인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이 단어에서는 손님들이 더 편하게 들어오도록 친근하게 문턱을 낮춘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아래 사진들이 한 예입니다. 두번째 집은 '어머니의 맛(おふくろの味)'이라는 문구가 간판에 들어있네요. 일본도 앞으로 '어머니의 맛'을 강조하는 식당은 점점 사라져 가겠지요. 그 말이 가지고 있는 향수와 환상도 희미해졌기 때문이지요. 이'어머니의 맛'에 관해서는 따로 한번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이런 식당의 내부는 대개가 이렇게 숱한 메뉴를 손으로 써서 덕지덕지 붙여놓은 경우가 흔합니다. 그것도 그러려니하면 도리어 정취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대중식당들은 혼자 오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수십년전부터 그랬습니다. 퇴근 길에 들러서 혼자 밥을 먹는 샐러리맨, 슬렁슬렁 쓰레빠를 끌고 나오는 자영업자 같은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들어 간단한 안주감을 시켜놓고 대개 맥주나 소주(옛날엔 사케가 많았는데 요즈음은 소주가 더 유행임)를 몇잔 마시다가 식사로 마무리를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갑니다. 벽에 높이 걸어놓은 TV에서는 시즌내내 야구중계가 돌아갑니다. 단골들이 많은 식당에서는 손님들끼리도 들며나며 반갑게 서로 아는체를 합니다. 한국사람 눈에는 나중에 더치페이를 하는게 쑥스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즐깁니다.  

일본요리를 내는 외식업소 가운데 제일 고급으로 치는 곳은 료테이(料亭;요정)입니다. 그 곳에서 내는 요리는 카이세키요리(会席料理)입니다.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일식을 풀코스로 내는 건데, 일본의 온천 여관에 가면 저녁에 나오는 요리가 그것이거나 그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사료(茶寮), 차야(茶屋)라는 이름으로 고급요리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넘어갑니다.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름인데 우리나라에는 없는게 갓포(割烹)입니다. 갓포는 요리방식이자 업태이기도 합니다. 이런 가게를 일컬어 갓포텐(割烹店)이라고도 합니다. 이게 어쩌다 나름 서민적인 곳도 있지만 꽤나 고급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자를 한국어로 읽으면 할팽(割烹)이 됩니다. 할은 자른다는 뜻으로 칼을 사용한다는 의미고 팽은 삶는다는 의미이니 그야말로 칼과 불을 쓴다, 즉 요리전반을 의미합니다. 

위는 구글에서 '割烹'이라는 단어로 이미지검색을 한 첫페이지입니다. 꽤나 단정하고 깔끔한 일본식당의 이미지가 나오네요. 외식산업의 역사가 수백년이 된 일본과 전후 시작된 한국의 외식산업을 비교하는 건 어차피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국은 또 의식하면 잘 배우고 잘 따라가기도 합니다. 늘 혼돈속에 발전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러모로 어지러운 한국 외식산업의 현황을 보면 보다 진지하게 일본을 연구하고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오늘은 일본의 외식업소의 명칭에 대하여 서민식당을 위주로 적어보았습니다. 다음에 이 갓포와 카이세키에 대해서 기회가 있으면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꽃샘추위가 술한잔을 부르는 저녁입니다. 위장이 꼬로록 소리를 냅니다.    


일본의 외식이야기(1); 소바집 일본이야기


입춘이 지나면 도쿄에서는 겨울추위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곳곳에서 봄기운이 스며든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위는 지난 주말 도쿄에 있는 한 오래된 소바집에 점심을 먹으러 갔을때 찍은 사진입니다. 한낮의 햇살은 따스한 조춘(早春)의 정취를 듬뿍 머금어 더욱 눈이 부신듯 했습니다. 입구에 세워진 석등옆 손바닥만한 화단에는 애기동백(さざんか)이 얌전히 피어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문장이 튀어나왔습니다. '아, 소바먹기 딱 좋은 날씨네'  

아래는 이 소바집 입구를 간판이 들어가게 세로로 찍은 사진입니다. 스나바(砂場)라는 간판을 단 이집의 정식명칭은 '도라노몬 오사카야 스나바(虎ノ門大阪屋砂場)'인데 이곳에 지금 이 건물을 지은 뒤 영업을 한게 95년째이고 다른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수백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집입니다. 도라노몬은 도쿄에서도 한가운데 위치한 번화가입니다. 그곳에서 고집스럽게 옛풍모를 지켜온 덕에 이 건물도 유형문화재로 등록이 되었다고 합니다. 


주변의 풍광과 비교하기가 쉽도록 구글어스로 찾아보았습니다. 빌딩숲속에 찍힌 아래 빨간 표시가 이 건물입니다.


좀 더 확대해 보면 그 뒤에 붙은 커다란 고층빌딩은 순전히 이 국수가게 때문에 한귀퉁이가 움푹파인 모양으로 지어졌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아래는 위키피디어의 이집 항목에서 퍼 온 가게의 전경입니다. 일본에는 이런 건물들이 현대식 고층건물사이에 들어가 있는게 간간히 보이는데, 보전할 유적이 남아있는 이네들 환경이 은근히 부럽기도 합니다. 오늘 포스팅은 오래된 소바집에서 소바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메인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마음은 먹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몇번에 나누어 쓰려고 합니다. 일본의 외식문화와 업태의 다양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요즈음 한국에서 '혼밥'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사회전반에 걸쳐 변화가 생기며 거기에 따라 식사문화와 습관도 바뀌는게 당연하니까 앞으로 이 풍조는 더욱 심화, 발전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럴때 참고가 되는게 일본입니다. 오늘의 일본을 보면 내일의 한국을 예측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식산업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외식문화 전반을 다루면서 식당의 분류, 명칭, 그리고 최근 트렌드 등도 생각나는 대로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소바집에서 이야기는 출발합니다. 

이집 이름에 들어있는 스나바(砂場)는 우리말로 간판 또는 상호이자 간판에 해당하는 노렌(暖簾)의 이름입니다. 에도시대부터 유명한 삼대 소바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스나바, 사라시나(更科), 야부(藪), 이렇게를 에도(江戸)의 '삼대소바집(蕎麦御三家)'이라고 칩니다(일전에 '메밀이야기(3):일본소바' 편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세군데와 같은 상호를 가지고 지명이 다른 집들이 몇몇곳에 있는데 이건 같은 파에 속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노렌을 나눈 거지요. 원래 노렌이란 식당입구에 드려져있는 차양막같은 천을 말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상호나 문장을 새겨놓고 아침에 가게를 열때 내걸고 밤에 문닫을 때 들여놓기에 노렌을 지킨다는 건 가게의 전통을 지키는 소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요. 그리고 일본식 장인 도제의 풍습에서 오래 일한 제자나 또는 동생 차남 등이 같은 상호로 독립을 하는 걸 노렌와케(のれん分け)라고 합니다.

제가 이집에서 점심을 먹게 된건 일부러 멀리멀리 찾아서 간게 아니라 마침 시나가와에서 일을 보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도중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옛날 직장이나 살던 곳에서 사라시나 소바, 야부 소바가 그다지 멀지 않아 자주 갈 수 있었는데 스나바는 자주 갈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기 가까운 곳에 직장이 있었던 친한 친구를 만나거나 할 때면 꼭 그리로 가자고 하곤 했었지요. 이런 가게의 좋은 점은 유명하건 손님이 많건 가격대가 일반 가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본이 되는 자루소바(찬 소바)나 가케소바(뜨거운 소바)가 600엔에서 700엔 정도 입니다. 

우선 옛날 늘상 하던대로 따뜻한 사케 한 홉을 시켰습니다. 소바집에서 점심부터 가볍게 한 잔 하는건 색다른 운치가 있습니다. 취하지 않으려면 한 돗쿠리만 시켜 아껴 먹어야 하니 맛도 더욱 각별합니다. 그리고 안주삼아 가마보코와 계란말이를 시킵니다. 이것도 묘한 건데 잘한다는 소바집의 계란말이는 참 맛이 좋습니다. 홀짝 홀짝 마시며 옛생각에 잠기니 벌써 주문한 자루소바가 나왔습니다. 


자루소바는 가장 심플하면서도 메밀의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메뉴이지요. 맛있는 쯔유에 살짝 찍어 후루룩 후루룩 먹으니 눈 깜짝할 새에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 이렇게 합니다...


자루소바가 나오면 그 때 '기츠네 소바 하나 추가해 주세요'라고 미리 주문을 해둡니다. 그러면 자루소바를 다 먹어갈 무렵 타이밍 맞추어 따뜻한 기츠네 소바가 나옵니다. 칼로리가 별로 안되니(정신승리) 주변의 눈치보지 않고(신경쓰는 사람도 없지만) 당당하게 두그릇을 맛있게 먹습니다.


맛있게 먹은 이야기는 여기서 접고, 오늘 하려는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이 가게 입구를 찍은 사진을 아래에 다시 올립니다. 이집 노렌에 세글자가 써있습니다. 이게 일본을 여행하는 분들이면 한자를 잘 몰라도 거의 로고처럼 눈에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흔한 글자이니까요. 가운데 글자는 히라가나 무(む)자에 점을 두개 찍은 것 처럼도 보이는데 그런 글자는 없지요.  


이게 히라가나로 '바'자입니다. 그리고 그 오른쪽의 '楚'자같이 생긴건 히라가나 '소'자 입니다. 옛날 표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거니 '소바'라고 읽는 히라가나인 거지요. 일본의 가나문자는 한자에서 차용하여 만든 것으로 그 모양과 서체가 제각각이었다가 현대에 쓰는 표준 히라가나로 통일된 건 백년남짓 합니다. 다른 모양의 가나를 헨타이가나(変体仮名)라고 합니다(발음은 같지만 '변태'가 아니라 '변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맨 왼쪽의 글자는 한자로 '처(處)'자입니다. 우리말로 '곳'을 뜻하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일본어의 요새표기로 하자면 'そば処'가 됩니다. 읽기는 '소바도코로'입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소바집'쯤 되겠습니다. 

위의 노렌과 간판은 구글에서 찾은 것들 입니다. '生そば'라고 쓴 집도 많은데 이건 '기소바'라고 읽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순메밀'이란 뜻이지요. 하지만 요새는 '나마소바'라고도 읽어서 건면을 삶는게 아니라 반죽해 빚은 새메밀이라는 뜻으로도 전이되었다고 하네요. 아무튼 일본에는 이 処라는 글씨를 가진 식당이 많습니다. 

한국도 무슨무슨 식당, 이렇게 부르는 것 보다는 무슨무슨 집,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훨씬 많지요. 냉면집, 삼겹살집, 맥주집 이렇게 말이죠. 심지어는 중국요리를 내는 식당을 중국집이라고 합니다. 미국집 일본집이라는 표현은 없는데 중국집 그러면 다 통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짜장면집도 있긴 하군요. 일본에서는 이런 식당을 나타내는 걸로는 한국어의 '집'에 해당하는 '야(屋 또는 家)'가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얘기한 '도코로(処)'를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동은 야자가 붙어 '우동야(うどん屋)'라 하고 소바는 도코로자가 붙어서 소바도코로(そば処)가 많은데 그냥 입에 붙은대로 굳어진 습관이지 싶습니다. 

술(사케)을 마시는 집은 사카바(酒場)인데 요즈음은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류를 도소매로 판매하는 집을 사카야(酒屋)라고 하는데, 눌러앉아 마실수 있다고 해서 거(居)자를 붙인 대중술집을 이자카야(居酒屋)라고 합니다. 그리고 술집을 나타내는 다른 말로 또 도코로를 붙인 사케토코로(酒処)가 있습니다.  일본 전국에서 저녁이 되면 아래와 같은 등불이 이곳저곳에 밝혀져 손님의 발길을 끄는데 쌀쌀한 날씨에 더욱 어울립니다.  

그리고 그 밑에 살짝 붙인 사진에 'めし処'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예고편입니다. 말그대로 한국어로 '밥먹는곳', 밥집입니다. 다음번 포스팅에서 다뤄볼까 합니다. '혼밥'의 미래를 찾아보기 위한 옆나라 들여다 보기는 몇번에 걸쳐 계속됩니다.


나으 음식일기(22): 네오톤과 원기소 나의 반백년 음식일기

서플먼트. 우리말로는 보조식품, 영양제 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요즘엔 그냥 서플먼트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영어의 정식명칭은 dietary supplement니까 직역하면 식사보조제쯤 되겠다. 미국에 갈 때마다 한번이상 들리게 되는 대형 드럭스토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수퍼마켓에서도 무수한 제품들이 늘어선 길고긴 진열대의 규모와 양에 늘 압도당하고 만다. 선전문구대로라면 미국사람들 모두가 건강하게 무병장수를 누려야 할텐데 그러지않는게 신기할 정도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몸에 좋다는 건 뭐든 좋아하셨다. 일찍 가신 어머니에 대한 회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께 이런저런게 몸에 좋다더라 소문이 나면 그때마다 끊이지않고 사다드렸고 아버지는 진심으로 즐거워하시며 받았다. 효도도 손발이 맞아야 하는 거라고 누가 그랬었지. 그래서 아버지는 홍삼제품을, 복합비타민제를, 마늘즙을, 유산균제품을 쌓아놓고 장복을 하셨다. 미국에서 숙면을 취하는데 좋다는 소문이 났을때 멜라토닌을 사다드렸더니 즉각 그 다음날부터 잠을 편히 주무신다하셨고, 전립선에 좋다고 해서 쏘팔메토를 사다드렸더니 당장 소변보기가 용이해졌다고 하셨다.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시니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가시는 날까지 십수년을 사다 드렸다.  

나는 하지만 마음속 한편으론 아버지는 플라세보 효과가 잘듣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원래가 그런걸 꼬박꼬박 챙겨먹기엔 천성적으로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마음속 깊이 이런 것들에 대한 이유없는 불신이 있어서 인지, 내 자신은 좋다는게 생겨도 제대로 먹어본 기억이 없다. 내 건강을 생각해준 주변의 귀인들이 어쩌다 센트럼이니 복합비타민이니 오메가뭐니 천연효소니 등을 주면 고맙게는 받았지만 끝까지 챙겨먹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은 여러가지 의견을 듣지만 평소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것만 여과해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수십년전 미국친구 하나가 '비싼 복합비타민을 먹는 것은 비싼 오줌을 만드는 효과말고는 없다'는 이론이 있다고 말한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말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현재 보조식품은 크게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 지방산, 아미노산 등으로 나뉘는데 전세계 시장규모는 연 820억불이고 그 가운데 미국이 30퍼센트 가까이 점한다고 한다. 먹을게 넘쳐나는 나라에서 보조식품을 더 찾고, 정작 가난한 나라는 보조식품은 커녕 먹을 것도 부족한게 현실이다. 나는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한다. 요즘 넘쳐나서 부작용을 걱정하는 비타민제를 옛날로 가져가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건강을 되찾을 것인가. 아니 의약품을 좀 가져갈 수 있었으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수 있을 것인가. 

영양제와 관련하여 내게 가장 오래된 기억은 '네오톤'이다. 서너살때 이게 몸에 좋은거라고 어머니가 한숟갈 만큼씩을 식후에 주셨는데 맛이 묘했다. 계속 장복을 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내가 싫어했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웠거나 둘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시골에 내려가서 고모네를 놀러가면 늘 사촌형 둘은 네오톤을 마셨다. 딸들은 주지않았고 아들만 먹이던걸 부모도 아들딸 당사자들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 야릇한 맛은 지금도 기억하는데 십여년뒤애 설사약으로 정로환이라는게 나왔을 때 아, 하고 네오톤을 생각해냈을 만큼  냄새가 비슷했다.  

지금 찾아보니 위의 1930년대 광고그림이 나왔다. 유한양행제품이었구나. "신병으로 고생하고 허약하시거든 효과본위 보약 네오톤을 쓰시오"가 카피다. "세계적 보약 네오톤과 인체의 영양작용 도해"라는 문구와 함께 인체의 기관을 공장에 비유한 그림이 있으니, '과학' '선진' 이런게 잘 먹히던 시절이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찾아본 김에 좀 더 들어가보니 네오톤 토닉이 미국 제약회사제품에서 나온걸 수입해서 파는 것이었다. 성분을 읽어보니 대구간유 추출물하고 크레오소트, 구아이아콜, 하이포아인산이라는 듣도보도못한 원료가 들어가있는데 크레오소트라는데서 납득! 이게 석탄의 타르성분이 아니라 목탄의 타르성분에서 나온건데 정로환의 원료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어쨌거나 일제강점기시대인 1930년대부터 팔리던 제품이었다는걸 이걸 쓰면서 알게되었다. 호기심에 제조원인 미국회사를 찾아보았는데 검색에 안나오네.

그리고 내 어린시절 두번째로 기억에 남는 서플먼트는 '원기소'다. 미숫가루 같은 분말을 뭉친 알약모양인데 씹으면 고소해서 아이들이 과자먹듯 잘먹었다. 나는 입에 넣는 순간 안의 수분을 흡수해서 금방 입안이 텁텁해지는 감각이 싫어서 별로 좋아했던 것 같지않다. 이와 비슷한 걸로 '에비오제'라는게 있었는데 이것도 비슷한 맛이었다. 옛신문을 검색해보니 원기소보다 에비오제가 몇년 늦게 광고가 실리기 시작한다. 뒷날 일본에 가니 비슷한 효능의 에비오스라는게 있었는데 서로 무슨 관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기억에 원기소나 에비오스는 그렇게 비싼 제품이 아니어서 흔하게 먹었던 것 같다. 

국민학교 2학년이 되고 얼마 안지나서였다. 나는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에 너무나 어지러워서 학교옆 개천가에 주저앉았다. 봄날 햇살이 따스했는데 햇볕에 쏘이는 것도 힘이 들었다. 사방이 노란색으로 물든 것 같이 보였다. 뚜렷한 기억은 없는데 아마 천천히 일어나길 기다려 동무들이 집에 데려가 주었지 싶다. 병원에 가니 결핵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병약한 아이를 남들보다 2년 빨리 학교를 들어가게 한게 잘못이라고 어머니는 자신을 원망하며 우셨다. 

학교는 집에서 심심해서 내가 우겨서 빨리 들어간 것이다. 당시는 전후 인구가 부쩍 늘어나더 시절이라 교사를 미처 짓기가 바빴을 것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2부제였는데 나중에 저학년은 3부제까지 하였다. 일학년때 몇달은 신축교사가 마련이 안되어서 천막교실에서 가마니를 깔고 수업을 하였다. 그생각을 하니 나도 참 나이를 먹었구나 새삼 실감을 하게된다. 그런 먼지구덩이속에서 조그맣고 병약한 아이가 견뎌내기가 쉽지 않았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무거운 란도셀이 어깨를 눌러 더 그랬다고 그걸 예견못했던 당신을 또 원망하셨다. 

결핵은 무서운 병이어서 걸리면 죽는다고 여기던 시절이 불과 얼마전이었는데 이젠 약이 좋아서 산다고 어른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다. 그래도 좋은 공기를 마셔야 하기때문에 환자들은 지방의 요양원에 들어가서 격리생활을 하곤 했다. 청정지역의 공기를 마셔서 병의 악화를 막는다는 것 말고 주변식구들에게 감염시키는 걸 예방한다는 차원도 있었을 것이다. 지브리의 영화 '바람이 분다'에 여주인공이 결핵에 걸리자 산속 요양원으로 들어가 침낭에 들어가 실외에서 잠자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를 보며 새삼 옛날 생각에 젖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때 나온 제일 좋은 약이라는 '나이드라지드'라는 약을 잔뜩 싸가지고 속초 할아버지 댁으로 내려갔다. 여섯살 먹은 아이가 부모형제와 떨어져 일년간 혼자 지낸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저녁에 해질 무렵이면 뒤란 굴뚝 뒤로 가서 엄마생각을 하며 몰래 울기도 여러번 울었다. 그러나 낮에는 여기저기 쏘다니고 산으로 바다로 논으로 어른들 형뻘되는 이웃을 쫓아다니며 참 많은 경험을 하였다. 나에게는 그때의 경험인지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소리, 귀뚜라미 우는 소리, 나지막히 들려오는 소울음 소리, 한밤중에 아득하게 들리는 개짖는 소리 등이 다 외로움 고독 이런 단어와 연결이 된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 고등학교때까지 닥치는 대로 소설, 수필 등을 읽었는데 그러다가 이상과 김유정이 결핵으로 요절한 것을 알게되었다. 이상의 날개, 봉별기 등은 외울 정도로 많이 읽어서 마치 알고지내던 사람처럼 괜히 친밀감을 느꼈다. 결핵으로 몸이 상한 이상은 선천으로 요양을 간다. 그리고 거기서 권태를 비롯한 여러편의 수필을 쓴다. 뒤이어 병든 몸으로 일본 동경에 갔다가 초췌한 행색으로 길거리에서 불심검문으로 잡히고 유치장에 갇힌다. 이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어 그는 출소하여 얼마있다 숨을 거둔다. 나는 가끔씩 내가 먹던 나이드라지드를 나누어줄 수 있었으면 그가 더 살았을 터인데 이런 상상을 하며 안타까워하곤 하였다.  

아래 신문광고는 1960년 5월 것이다. '하이파스'라는 결핵약 광고이다. '폐결핵, 결핵성 늑막염에 하이파스'라는 카피인데 지금보니 이것도 유한양행 제품이다. 내가 하이파스를 기억하는 건 어른들이 대화를 하며 폣병엔 파스제품을 쓴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걸 들었기 때문이다. 이상보다 더 가련하게 요절한 작가가 김유정이다. 그토록 낙천적이고 익살스러운 작품을 썼던 그였기에 마지막 생에 대한 집착은 보는이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그는 닭을 한 30마리 고아먹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를 열마리정도 먹으면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하는 편지에 씌여진 내용이다. 그는 이편지를 쓰고 열하루만에 세상을 하직한다. 결핵약이 있었으면 이런 비극이 없었을텐데하고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하이파스 광고를 찾고보니 옆의 광고들도 재밌다. 이래서 옛신문을 찾아보면 시간가는줄 모른다. 옆의 영화광고는 '잊지못할 그날밤'이다. 나도 처음들어본 작품인데 찾아보니 Middle of the Night 라는 영화로 프레드릭 마치와 킴 노박 주연이다. 킴 노박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상영관은 단성사. 거기서 본 영화도 참 많았는데. 아랑드롱 장폴벨몬도의 볼사리노는 정말 멋있었다. 더스틴호프만의 '졸업'과 '작은거인'은 둘 다 학생입장불가라고 단성사에서 문전박대받아 교복입은 학생받아주는 재개봉관에서 보았다 . 캔디스버겐의 헌팅파티를 단성사에서 보고는 복숭아통조림을 사서 영화에 나온대로 먹었지. 

오른쪽 상단의 사자표 시대샤츠는 꽤나 오랜기간 보았던 상표다. 정작 성인이 되어 와이셔츠를 입게되었을 때는 맞춰입는게 유행이었다. 그옆의 최피부비뇨과 광고. 옛날엔 전봇대마다 극장 화장실마다 비뇨기과 광고가 붙어있었다. 그밑의 국제타이피스트학원. 그 땐 타이프만 쳐도 취직의 스펙이 되던 시절이었으니까. 지금처럼 오천만이 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세월이 오는 걸 상상도 못했겠지. 그 아래 자동차교습생모집광고. 운전면허만 있어도 먹고살던 시절. 그걸 배울 돈이 없었던 시절. 지금도 가끔 나이든 개인택시 기사분들한테 물어보면 '군대가서 운전배워 면허따서 사회나와 그때부터 핸들잡았다'는 스토리가 흔하다. 

그 위의 배제중고의 개교통지. 이 신문은 60년 5월 며칠자이다. 4.19혁명으로 자유당정권이 무너진 뒤, 휴학을 하던 학교가 수업을 시작한다는 공지이다. 휴대폰은 커녕 전화도 보급되지 않았을 시절이니 신문으로 광고를 내었나보다. 

내 결핵이야기로 돌아오면 해피엔딩이다. 결핵이 다 나았다는 판정을 받은 나는 일년간의 시골생활을 마치고 서울 그리운 식구들 품으로 돌아왔고, 학교도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제나이에 들어온 다른 아이들보다 일년 어렸지만 그땐 일년정도 일찍 들어온 아이들이 제법 있는 것 같았다. 7살은 1월 2월생만 받아주는게 원칙인데 3월 이후생도 그 때말로 사바사바하면 통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무엇보다도 내 건강을 걱정하셔서 학교는 안가도 좋으니 매사에 무리할 것 없다는 방침으로 나를 키우셨다. 실제로 나는 결석이 매우 잦았고 지각도 밥먹듯 하였다. 숙제도 하지말라고 하시고는 매년 새학기초에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우리 아이는 몸이 아프니 숙제검사에서 열외를 시켜주세요라고 부탁하셨다. 지금같으면 왕따를 당할 이야긴데 그땐 나도 아무 생각없었고 탈없이 잘 넘어갔다. 

그런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지 못하고 나는 계속해서 감기, 중이염 등 잔병을 달고 살다가 가끔씩 성홍열, 신장염 등 큰 병을 얻어서 입원과 휴학을 몇번인가 반복하였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어머니는 매일 시장보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아이들이 활기차게 뛰어노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우셨다 했다. 집에 야윈 모습으로 누워있는 내모습이 애처로워서 눈물이 났단다. 정작 나는 아파 누워있을 때는 연유도 먹고, 수밀도 통조림도 먹고 재수좋을 땐 그 귀한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오시는 손님도 계시고 해서 처량한 줄을 몰랐다. 책도 실컷 읽고 만화책도 원없이 보았으니까.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몸이 조금씩 좋아졌다. 병을 달고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골골한 체력으로 꾸역꾸역 남들 따라가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대학에 들어가선 건강이 남들만큼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외국을 나가서부터는 살도 붙고 건강해져서 가끔씩 주변에서 체력좋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고있다. 아주 어려선 살아있는게 효도였고 좀 커서는 아프지 않으면 그게 효도였던 내가 남들만큼 몸매도 되고 튼튼해진 걸 보시고 어머니는 대단히 좋아하셨다. 그러던 내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체중이 적정선을 넘더니 지금은 뱃살빼기를 걱정해야하기에 이르렀다. 아마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얘, 남자가 배도 좀 나와야지, 놔둬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중학교를 들어갈 때 쯤인가부터 우리집에선 비타민 영양제를 먹기 시작했다. 삐콤이라는 비타민 영양제인데 지금보니 그것도 유한양행이네. 영양이 부족하더 시절이라 그랬는지 가난한 농촌까지는 몰라도 서울에 있는 보통수준의 일반가정에선 비타민제를 먹는 사람들이 많았던 같았다. 보급되기 시작한 테레비에서도 약광고를 참 많이 틀었다. 신문은 말할 것도 없었고. 신문에는 약광고가 참 많았는데 제약회사가 워낙 큰 고객이다 보니 신문사는 광고가 부족한 날은 약광고를 임의로 싣고 나중에 싼 값으로 수금하고 이런 관행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고 알고있다. 

그리고 구론산이라는게 나와서 인기를 끌었는데 주사약 앰플같은 모양으로 나와서 유리병 꼭지를 따서 아주 가는 빨대로 빨아먹는 것이었다. 우리집에서는 수험공부를 하는 형이나 누나가 공부할 때 먹곤 했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향도 좋고 맛도 좋아서 졸라서 조금씩 맛을 보곤 했다. 여기저기서 구론산이 나왔던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건 라디오 광고에서 많이 들었던 영진구론산이다. 한참 지나서 이 앰플같은 모양의 액체가 증량경쟁을 했는지 마개를 따는 병모양으로 바뀌었다. 요새 박카스같이 된 것이다. 그러고보니 그때 나와서 살아남은건 박카스 하나 아닌가 싶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박카스가 정제로 나온 시절이 있구나. 요즘엔 청량음료 감각으로 마시는 박카스를 그땐 정말 몸에 보약이 되는 약으로 여겼던 시절이었나 보다. 

알약으로 나온 강장제로 제일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로나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1학년때 자기 누나가 일동제약에 근무한다는 친구가 있었다. 자랑삼아 아로나민을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으니 싸게사겠냐 했다. 우리집에 금송아지있다는 수준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집에 가서 큰소리를 쳤다. 아로나민을 아주 싸게 사올테니 두고 보라고. 물론 그 친구의 말은 부도가 났고 이는 나의 연쇄부도로 이어졌다. 지금도 누나는 가끔 아로나민 이야기를 꺼내어 나를 놀리곤 한다.     

약광고하니까 아직도 풀리지않은 의문이 하나있다. 내가 어렸을 때엔 정말로 소화제 광고가 많았다. 신문에도 TV에도 소화제광고가 넘쳐났다. 밥먹고 나면 마치 디저트를 먹듯이 소화제를 한알 먹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섭취하는 동물성 단백질이 적은만큼 밥같은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위에 부담이 간건지 아니면 반대로 식생활이 바뀌기 시작해 그런건지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는데 좌우간 한국사람들이 소화제는 확실히 지금보다 훨씬 많이 먹었다고 기억한다. 내가 오래된 순으로 기억하는 건 베스타제 판타제 훼스탈인데 마지막까지 남은 건 훼스탈이 아닌가 싶다. 

훼스탈 광고를 지금 보니 참으로 재미가 있다. "훼스탈은 불과 1정으로 치즈(단백질) 36g 돼지고기(지방) 15g 빵(전분) 60g 을 완전소화흡수시키는 독일 훽스트사의 강력한 종합소화효소제제로서 식후 1~2정만 복용하면 육류나 중성지방이 소화안되고 배설되는 일이 없습니다"라고 적혀있다. 그 뒤에 적힌 문구도 그렇고 아무리 보아도 요새기준으로는 과대광고로 걸릴 내용같다. 세월은 흘렀고 만일 지금 위에 적힌 훼스탈의 반대작용을 하는 약을 만들어 팔면 잘 팔리지 않을까. "고기 삼겹살을 아무리 드셔도 소화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배설되는" 약을 만든다면 말이다. 소화제하니까 빼놓을 수 없는게 이런 서양이름이 붙은 알약이 나오기 전부터 사랑을 받았던 '부채표 활명수'다. 그게 알콜성분이 들어가있다고 하는데, 옛날엔 술못먹는 사람을 두고  '활명수만 마셔도 취한다'는 표현이 있었다. 활명수의 한약같기도 한 묘한 맛은 어린아이들 입맛에는 호불호가 강했다. 나도 어려선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마시면 속이 뚫리는 듯한 느낌이 싫지 않았다. 

약이야기가 나왔으니 먹는 약은 아니지만 재미나는게 생각나서 적는다. 약품에 대한 규제가 엉성하던 시절이어서 항생제도 약방에서 얼마든지 살 수가 있고 시골 약국에서는 주사도 마구 놓아주고 하던 시절이었다. 요새는 소비자들도 부신피질호르몬이니 스테로이드니 해서 약성분이 이렇구 이런건 내성이 생긴다, 그 때뿐이다,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상식이 있다. 잘 모르고 넘겨짚는 생각이지만 옛날에 용하다는 약들 가운데에는 요새 기준을 통과못하는 것들이 꽤 있지않을까 싶다. 

아무튼 내가 국민학교 다닐때 '덱스타'라는 피부질환 연고가 있었다. 시골에 내려가면 저녁먹고 할 일이 없는데 자기전에 모여서 라디오 방송극을 들었다. 나는 자리를 펴고 이불속에서 듣곤 했는데 '전설따라 삼천리'라는 연속극을 좋아했다. 이게 영진약품 제공이어서 늘 덱스타 연고의 CM송이 흘러나왔다. 이 광고는 이렇게 시작했다. "트리오 로스 판쵸스가 노래하는 덱~스타!" 이런 멘트에 이어서 " 이~히 ! 텍스타! 아름다운 얼굴에 살결이 예뻐요~ 덱스타의 덕분이 아니겠어요~ 어쩌구 어쩌구~ 덱스타!" 중간가사는 까먹었지만 지금도 부를 수가 있다. 많이 들었으므로. 히트는 이게 진짜 트리오 로스 판쵸스가 부른 노래였고, 그게 사실은 누군가가 이 노래가 한국의 민요라고 속여 녹음을 시켰다는 뒷이야기였다. 아무리 유튜브나 구글을 검색해도 이 노래를 찾을 수가 없으니 여전히 기억한구석에 도시전설로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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