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으 음식일기(14):부산행 알로하오에 양파조림 찐감자 나의 반백년 음식일기


지난 주에 '부산행'을 보았다. 출장에서 돌아와 내내 먹고싶었던 콩나물무침, 오이무침, 감자조림, 무생채를 주말에 만들어 먹은 뒤였다. 무생채는 김치담글 때 속으로 만드는 것말고 따로 만들어보기는 처음인 것 같은데 만들기가 간단한 것에 비해 맛이 그럴듯 했다. 내가 야채를 썰고 절이고 하는 동안에 쥬스가 감자조림을 만들었다. 윤기가 없이 퍽퍽하고 간이 약하게 되었다고 본인은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나는 오히려 좋다고 했다. 어차피 촌스러운 반찬이 그리웠으니까. 

하루 지나서 일요일에는 나물 남은 것을 가지고 비빔국수를 해먹었다. 오이 콩나물 무생채에 더해서, 시식하고 엉겁결에 산 소시지를 볶아서 고기고명으로 대신했다. 양념장을 맛있게 만들어 넣고 삶은 계란은 푸짐하게 일인 한 개씩. 맛있는 비빔국수를 먹으면 연신내 살던 후배집 생각이 난다. 고향이 전주인 그집은 참 매끼 잘해먹고 살았다. 특히 비빔국수는 우리집하고 맛이 전혀 달랐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 그리고 이대앞 가미분식에서 자주먹던 비빔국수도 생각이 나고. 평범한 비빔국수에 우동국물을 한종지 내주었는데 먹다보면 입안이 싸하게 아려왔다. 조금만 들어간 콩나물이 늘 아쉬웠던게 후유증으로 남았는지 그 뒤로 내가 해먹을 때는 늘 넉넉하게 넣는게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새 주가 되어서 부산행을 보게 되었는데 나는 엉뚱한 곳에서 타임슬립을 하였다. 영화속 공유의 딸이 학예회때 부르는 노래 '알로하오에'에 꽂힌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집에 오면서 찾아서 들었더니 흘려들었던 한국어 버전은 우리 청춘때 인기가수 박인희가 부른 거였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서로 작별하며 떠나리... 알로하오 알로하오 꽃피는 시절에 다시만나리... 

알로하오에는 내게는 늘 패티킴이 부른 '하와이 연정'과 오버랩이 된다. 그 노래의 간주에 알로하오에가 살짝 들어가 있고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면 지금도 마음이 설렌다. 어려서 그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걸 들으면 먼 이국땅의 풍경이 저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래말에도 나오지만 하와이안 기타는 하와이, 야자수, 해변, 훌라춤 등을 다 품은 것 같은 대단히 독특하고 다른데서 찾기 힘든 매혹적인 음색을 낸다. 

사랑이란 즐겁게 왔다가 슬프게 가는 것. 훌라춤에 흥겹던 기쁨도 모래알에 새겨진 사연도 파도에 부서지는 이순간. 아아 가버린 그사람 그사랑. 하와이안 기타에 목놓아 나 여기 웁니다. 사랑이란 살며시 왔다가 괴롭게 가는 것. 야자수 그늘아래 단꿈도 와이키키 해변의 맹세도 파도에 부서지는 이순간. 아아 가버린 그사람 그사랑. 하와이안 기타에 목놓아 나 여기 웁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사랑의 기쁨과 괴로움이 뭔지 알리가 없고, 난 그냥 야자수 그늘 와이키키 해변 하와이안 기타 이런 이국적인 단어에 매료되어 이 노래를 좋아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이 노래와 오버랩이 되는게 화진포 해수욕장 앞에서 넘실거리던 푸른 파도 위에 떠있던 뭉게구름과 찐감자다. 고향에서 머물던 여름이면 워낙 자주 바다로 수영을 다니기도 해서 이날 누구랑 갔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짙게 푸른 바다위의 연한 파란 색의 하늘과 뭉글뭉글 솟아오르는 뭉게구름이 너무도 아름다웠다는 것만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부근의 누군가가 트란지스터 라디오를 켰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해수욕장에서 튜브를 빌려주던 업자가 달아놓은 마이크(그때는 나팔모양의 커다란 스피커를 마이크라고 불렀다)에 라디오가 연결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그날 하와이 연정을 들으며 찐감자를 먹었는데 유달리 맛이 좋았다. 바닷물에 젖은 손으로 껍질을 벗기다 보면 감자도 짭쪼름한 맛이 배어서 더욱 맛이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지금도 그 하와이안 기타의 선율을 들으며 먹어서 맛이 좋았던거라고 해석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노래는 '산넘어 남촌에는'이라는 곡이다. 나비야, 학교종, 송아지 이런 동요가 아니라 내 인생의 한부분을 또렷하게 담아내는 노래라는 의미에서 이 곡은 내게는 참으로 소중한 노래다. 이 노래를 들으면 지금도 그 날이 생각이 난다. 내가 학교를 들어가기 전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다 그런거라고 생각하는데 난 꽤 나이를 먹을 때까지 날씨에 맞추어 옷을 입을 줄을 몰랐다. 날씨가 더우니 얇은 것으로 갈아입어라, 오늘은 쌀쌀하니 두껍게 입어야지, 어른들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겨울에도 여름옷, 여름에도 겨울옷을 입고 나다녔을 것이다.  

봄날이었던 것 같은데 동네 어디론가 놀러나가서 한참 지나자 날씨가 더운 것 같았다. 아니, 그 때는 덥다는걸 몰랐다. 햇살이 대단히 눈부셨는데 정신이 약간 몽롱해졌다. 집으로 들어가니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이구 얘야, 이렇게 껴입고 나다니니 얼마나 더웠겠니. 얼굴에 땀이 맺힌 것 좀 보아. 이리와 옷벗고 세수부터 하자. 큰일 날뻔 했구나' 어머니는 나를 수돗가로 데려가서 얼굴을 씻어주시고는 시원하게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 어머니가 점심을 차리는 동안 나는 마당 평상에서 딩굴고 있었는데 살살 바람이 부는게 너무나 시원하고 좋았다. 어머니가 내가 좋아하는 양파조림으로 점심상을 차려서 마당으로 가지고 나오셨다. 그 때 라디오에서 박재란의 '산넘어 남촌에는'이 흘러 나왔다. 반주로 흘러나오는 야릇한 음색이 하와이안 기타소리라는 건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았지만 깊이 뇌리에 박혔다.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아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익는 오월이면 보리내음새. 어느것 한가진들 실어 안오리. 남촌서 남풍불때 나는 좋대나. 어른이 되어 알고보니 노랫말은 파인 김동환의 시였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가사의 고운 뜻을 제대로 알리는 없었고 띠용띠용하는 이 노래 반주의 희한한 음색에 홀린 것도 같았다. 

어머니가 어려서 해주신 반찬가운데 남의 집에서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양파조림이다. 양파를 굵게 썰어서 간장으로 간을 하여 삶다가 국물이 적당히 잦아들게 조린 거라고 생각되는데 양파가 너무 부드럽고 국물도 달콤해서 내가 잘먹었다. 양파만 가지고 만든 단순한 음식일 터인데 어른이 되어 아무리 해보아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가장 비슷한 맛은 요시노야같은 규동집에서 파는 규동에 들어있는 양파의 맛이고 그 국물맛이다. 당시의 살림형편으로 보아서 매번 고기를 넣고 했을리는 없을 것 같고, 무얼 넣고 어떻게 만들어야 그 맛이 나는지 궁금하다. 어쨌거나 나는 '산넘어 남촌에는'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그 날 더위를 먹어 몽롱했던 기억과 달콤하게 입안에 감기던 양파조림이 생각난다. 지금 되짚어보면 참 모두가 가난하게 살던 시절이었을 텐데 내게는 세상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시절로 기억에 남아있다. 아마도 모두가 희망을 가지고 살던 시절이었기에, 실제 그런 긍정의 아우라가 공중에 차있어서 철모르는 어린아이에게도 아늑함과 평화로움의 느낌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좀비가 나오는 부산행을 보면서 마동석의 매력도 즐겼지만, 나는 영화속에 나오는 '알로하오에' 덕분에 하와이 연정을 거쳐 산넘어 남촌에는으로 이어지는 아득한 추억의 여행도 할 수 있었던 한 주였다. 내친 김에 이런저런 추억의 노래를 더 찾아서 들어야지.  


나으 음식일기(13):콩나물 무침과 감자조림 나의 반백년 음식일기


'한국음식 먹으러 가자, 오랫동안 떠나 있었으니 한국음식 먹고 싶을 것 아니야?' 미스터 천은 나를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향했다. 기사가 차문을 열어주고 닫을 때마다 남들이 얼핏 보기에 표는 안나지만 극진하게 예를 갖추는 걸 알 수 있었다. 차는 완차이 골목골목을 누비다가 어느 허름한 잡거빌딩 앞에서 멈추어 우리를 내려주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식당이 있었다. 들어가는 문에 이런걸 아리랑 문양이라 부르면 좋을 것 같은 한국의 민속을 나타내는 무늬가 붙어있는 식당이었다. 안에는 한국 전통부채가 몇개 벽에 붙어 있어서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인 걸 알 수가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한복을 입은 여인의 모습을 한 조그만 인형이 놓여있는데 배터리가 들어있고 센서가 작동을 하는지 사람이 지나갈 때 마다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동작을 했다. 홍콩에 있는 한국식당이 몇개 안되던 시절이었고 웬만한데는 다 가봤다고 생각을 했는데 완차이 구석 깊숙이 이런 식당이 있는 건 뜻 밖이었다. 

중국사람들은 식사를 할 때면 이사람 저사람 부르기를 좋아한다. 여러가지 요리를 맛보려면 사람이 많아야 하니까 겸사겸사 생각나는 사람, 부담없는 사람을 청해서 함께 식사를 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미스터 천과 내가 자리를 잡고 앉자 곧 두사람이 들어와 합석을 했다. '어, 인사해요. 여기는 내 한국친구 밥선생. 이곳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분이지. 그리고 이쪽은 내 동생들' 우리는 서로 목례를 나누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여기는 내 동생들인데 하나는 내 밑에서 일하고 하나는 지금 경찰인데 내 보디가드를 하지' 사복차림의 말끔한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가 말했다. '야 권총좀 꺼내서 줘봐' 그 경찰이라는 청년은 발목에 찬 홀스터에서 자그마한 리볼버 권총을 꺼내어 순순히 내밀었다. 미스터 천이 내게 권총을 내밀며 말했다. '만져봐. 총구만 사람들에게 향하지 마. 총알이 들어있는 거니까.' 나도 영화에서 많이 보아서 리볼버에 총알이 들어있는 것 정도는 알았다. 약간은 긴장도 되고 해서 얼른 만져보고 돌려주었다. 나중 이야기지만 식사가 끝나고 나는 그의 사업장의 하나인 부근 도박장에 가서 미스터 천이 그냥 일반사람들하고는 좀 다르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가 찬따이고(陳大哥;천따거)라고 불리는 홍콩의 그쪽 세계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간부라는 걸 당시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석쇠에 구울 재운 고기가 푸짐하게 나왔고 반찬으로 이런 저런 접시들이 테이블 위에 줄줄이 놓였는데, 김치며 깍두기가 먹음직스러운 모습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다른 반찬들도 전부가 다 참 볼 품이 없었다. 이것도 나중에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알게 된 건데 70년대 80년대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한국식당을 차린 경우 반찬들이 다 가난하게 살던 시절의 초라한 모습을 유지하는 곳이 많았다.

고기가 익기 전에 그는 젓가락을 들어서 반찬을 먹기 시작했다. 콩나물무침을 연신 먹어대며 '이거 참 맛있어. 이건 홍콩엔 없어. 너도 먹어봐'라고 내게도 권했다. 식당에서는 그를 극진히 대접하는 듯, 반찬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신 새로 가져오고 고기도 열심히 구워주었다. 나는 솔직히 그 식당의 반찬이나 요리가 썩 맘에 들지는 않았다. 홍콩에 있는 한국사람도 많지않았고 학생은 더더구나 거의 없던 시절이라 이런저런 연유로 불러주는 이들이 많아서, 나는 원하는 이상으로 한국음식점을 드나들고 있었다. 사업을 하거나 주재원으로 나와있는 선배들은 주로 쇵완(上環)에 있는 영사관과 코트라가 입주해있던 건물 꼭대기 층의 이화원(梨花園)을 다녔고, 항공사 일로 나와 있던 이들은 침사쭈이의 영빈관, 눌러앉아 교포가 된 분들은 금성식당, 그리고 한국과 관계가 있는 홍콩사람들은 만나(滿拿)식당을 많이 애용하였다. 

그런데 미스터 천은 이날 이후 줄창 그 허름한 한국식당만 다녔다. 사람이란게 묘한게 자꾸 먹다보면 정이 들기도 하는 법이다. 나는 그 집을 다니면서 반복해서 먹은 반찬이 홍콩을 떠난 뒤에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 집의 엉성한 콩나물 무침과 퍼석퍼석한 감자조림 그리고 수분이 빠져서 시원한 맛은 없고 입이 맵고 아리기만 한 무생채를 샌프란시스코, 토론토, 휴스턴 등지의 한국식당에서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사진설명:당시는 음식사진을 찍는다는 생각도 못하던 시절.휴대폰에서 비슷한 걸 세장 골랐는데 너무 깔끔함)

며칠전에 홍콩을 다녀왔다. 홍콩은 정례 행사가 있어 일년에 두 번 이상 방문하고 또 일생기면 불쑥 가고 한지 오래되어서 별로 새로운 감흥이 없는 곳인데 이번엔 달랐다. 홍콩에 처음가는 손님을 대동하고 거의 이틀 가까이 안내 역할을 맡아야 했다. 홍콩이라는 아시아의 도시를 처음 경험하는 유럽의 그는 체재기간 내내 대단히 흥분한 상태를 유지하였다. 길거리에 바글바글한 사람을 보아도 사진을 찍고, 번쩍이는 간판을 보아도 사진을 찍고 모든 것이 신기한 듯 즐거워 했다. 

그가 좋아할 만하다고 여겨서 빅토리아 피크도 트램을 타고 올라갔고, 올라가서는 야경을 내려다 보며 맥주를 마셨다. 내려올 때는 이층버스의 맨앞에 앉아서 아슬아슬한 산길도 경험하고 명물 땡땡전차도 타보고 그랬다. 특히 그는 구룡과 홍콩섬을 오가는 스타페리를 좋아해서 우리는 몇번이고 건널 때마다 페리를 이용했다. 옛날에 내가 그랬지. 까마득한 옛날 내가 홍콩을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났다. 아 참 많은 걸 잊고 살았구나. 홍콩이 이렇게 낭만이 있고 즐거움이 넘치는 도시인데 그동안 공항, 호텔, 오피스, 비지니스 디너, 공항, 이렇게만 반복되는게 홍콩행이라고 여기고 지내온 걸 깨달았다. 



위 사진은 며칠전에 내가 찍은 사진이고 아래는 처음 홍콩에 갔던 연도를 입력하여 구글에서 찾은 사진이다. 해마다 가니 달라진 걸 알았지만 이렇게나 달랐다는게 새삼스러웠다. 아래 사진의 중앙 큰 건물이 당시 센트럴(中環)만이 아니라 홍콩섬 마천루 전체의 상징이기도 했던 코너빌딩(Connaught Centre)이다. 위의 지금 사진을 보면 오론쪽의 IFC, 익스체인지 스퀘어, HSBC, 중국은행 등에 묻혀서 평범하게 보이기만 한다. 코너센터 지하에 있던 범선을 모티브로 인테리어를 했던 펍에서는 마리아치가 손님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며 팁을 받고 노래를 해주는 걸로 유명했는데 지금도 영업을 하나 모르겠다.  

스타페리 선창가에 접해 있던 우체국은 바로 해안가였는데 지금은 매립공사로 땅이 넓어져서 스타페리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리볼빙 레스토랑 뷔페로 유명하던 센트럴의 Furama Hotel은 개발에 밀려 헐려 없어지고 말았다. 미드레벨까지 뻗은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옛날에 미드레벨을 걸어 올라가던 추억도 새로왔다. 손님을 안내하며 이곳저곳에서 옛생각에 잠겨 오히려 내가 손님보다 더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 같았다.  
아래는 며칠전 빅토리아 피크에서 찍은 사진이고, 그아래는 내가 처음 갔던 연도를 입력하여 구글에서 찾은 사진이다. 이렇게도 달랐다니. 당시는 구룡반도에 공항이 있어서 구룡사이드에는 고층건물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비교해보니 더 운치가 있는 것도 같다. 그 때는 번쩍번쩍한 항구도시로 알았는데 이 시점에서 보니 도리어 고즈녁한 분위기를 느낄 정도이다. 그만큼 현재가 더 복잡해 진 거겠지.


홍콩의 네온사인하면 상징적으로 나오는 네이던로(Nathan Road)도 이제는 많이 변했다. 일단 침사쭈이에는 크고 세련된 고층건물들이 들어서면서 간판을 달 데가 사라져 버려서 아래와 같은 풍경이 사라져 버렸다. 몽콕이나 가야 있을까, 아니면 홍콩사이드의 완차이, 코스웨이베이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래 두 사진은 구글에서 찾은 옛사진이다. 


미스터 천과 내가 처음 만난 건 아까 잠깐 언급한 스타페리옆 우체국에서였다. 그 때는 전화국도 겸하고 있었는데, 국제전화를 걸려면 전화국에 가야했다. IDD(International Direct Dial)라는 서비스가 나와서 '신청만 하면 집에서 교환을 통하지않고 직접 다이얼을 해서 국제전화를 걸 수가 있어요!'라고 광고를 하던 시절이었다. 한국도 물론 국제전화는 교환을 통해서 신청을 하면 한참 지나서 콜백이 와서 연결을 해주던 시절이다. 국제전화요금이 너무 비싸서 가난한 유학생은 큰 일이 아니면 전화를 할 생각도 못하고, 어쩌다 집에 전화를 하게되면 걸기가 무섭게 '여긴 다 잘있다. 전화요금 나오니 그만 끊으라'는 이야기를 듣던 시절이기도 하다. 

인터넷은 커녕 팩스도 없어서 회사간의 무역거래는 구멍뚫린 종이테이프로 따닥딱닥 전보를 치듯 보내는 텔렉스로 하던 시절이었다. 텔렉스를 사용하는데 드는 통신요금을 아끼려고 한글자라도 줄이는게 요령이었는데 CUL8R(see you later), 4U(for you) w/(with) 약자를 많이 썼다. ABT는 about, CONT는 container, 이런 식이었다. 나는 당시 학교를 다니며 무역회사에서 잠시 알바를 한적이 있었는데 주로 외국과의 교신업무를 맡았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FHINC(friday holidays included), FHEX(Friday holidays excluded)같은 약어를 신기해하면 외웠던 일이다. 짧은 기간의 알바였지만 텔렉스로 무역하던 시절의 막차를 타고 맛이나마 본 것 같아서 나름 보람이 있었다 생각한다. 

어느날 내가 서울집에 전화를 할 일이 있어서 전화국을 갔을 때다. 접수에다가 내이름과 한국의 받을 전화번호를 적어내고 얼마 뒤에 '한국 신청한 아무개님 몇번 부스로', 이런 식으로 안내방송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에서 누군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게 들려왔다. 국제전화사정이 안좋던 시절이라 고함을 지르듯 얘기하는게 새롭지는 않았는데 대화가 묘했다. ' yong-ja-isso? yong-ja-opsso?' 만 반복해서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보니 '영자 있어? 영자 없어?' 인 것 같았다. 조금 있다가 안경을 쓰고 약간은 퉁퉁하게 살이 붙은 홍콩사람이 나왔다. 혼자 '아이야 ..레이로우모우..' 욕을 중얼거리며 다시 대기 의자에 앉았다. 아마도 다시 통화를 시도를 하려는 것 같았다.

내가 오지랖을 펼쳐서 그에게 물었다. '너 한국에 전화하려고 하니? 내가 도와줄까?' 진짜로 과장을 안보태고 반가움에 그의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내게 되물었다. '너 한국사람이니? 정말 잘됐다. 나랑 친구하자!' 나는 내이름이 불리는 걸 듣고서 내 통화가 끝나면 도와줄테니 기다리라고 한 뒤 통화를 마치고 나왔다. 그의 얘기인즉슨 이랬다. 

그는 얼마전 한국에 놀러갔다가 만난 한국 아가씨와 사랑에 빠졌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중국말을 잘하는 화교 아가씨인데 아버지가 중국사람이고 어머니는 중국말을 못하는 한국사람이었다. 그녀와 통화를 하고 싶은데 연락이 닫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갔으면 언제 집에 들어오고, 언제 걸면 통화가 되는지 조차도 파악이 안되니 사람 돌아버리겠다는 게 그가 처한 상황이었다. 내가 대신 통화를 했다. 영자씨 계시냐고. 밤 열한시가 넘어서 들어온다고. 들은대로 전해주었고 내일 같은 시간에 전화를 걸테니 받아달라는 그의 요청도 전해 주었다. 그는 일단 이것만으로도 대만족한듯 싱글벙글 하면서 내게 정말 고맙다를 반복하였다. 

그러더니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은 영자 어머니가 홍콩사람 사귀는 걸 반대하는 건지도 몰라. 나도 감이 있거든. 그런데 이제 나도 한국말을 하는 친구가 생겼으니 됐어.' 그러더니 갑자기 양쪽 주머니에서 두툼한 돈뭉치를 꺼내어 내게 보여주며 그가 말했다. '나랑 친구하자. 나 돈많아, 진짜로(응어호우야우친,짠게)' 나는 광동어가 서툴었고 그는 만다린이 서툴렀는데, 그는 흥분하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광동어가 튀어나왔다. 그의 양손에는 노란 돈뭉치와 퍼런 돈뭉치가 들려있었는데 금세 한쪽은 홍콩돈 천불짜리고 또 하나는 미화 백달러짜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평소같으면 돈자랑하는 사람이 싫었겠지만, 짧은 시간에 내 맘에 들고 싶은 그의 절박함을 이해한 탓인지 거슬리지 않았다.  

선약이 있어서 그가 저녁을 먹자는 걸 뿌리치고, 다음날 전화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이튿날 내가 시간에 맞추어 나타나자 그는 정말로 반가와했다. 혹시 내가 안나타나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솔직히 말했다. 앞으로는 만날때 마다 차를 보낼테니 타고 오라고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일때문에 그 시간에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그날은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녀와는 며칠 뒤에 다시 통화를 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리고 간 곳이 앞에서 이야기한 완차이의 허름한 한국식당이었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바로 부근에 있는 6층짜리 크지않은 건물에 도착했다. 6층은 그의 사무실이었고 다른 층은 전부 마작도 하고 골패같은 것도 하는 도박장이었다. 치파오를 입은 늘씬한 아가씨들이 음료와 술같은 걸 서비스하며 다녔다. 그가 내게 물었다. '너 여자친구있니?' 나는 이런저런 상황때문에 지금은 헤어진 상태고 어쩌구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내키지 않아서 그냥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럼 아가씨는 됐고... 마작할 줄 알지?' 중국마작은 일본마작보다 룰이 단순하여 배우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응 잘은 못해도 할 줄 알지' 

그가 그러면 여기서 마작이나 즐기라고 노란 돈을 몇장 건네주었다. 나는 이유없이 돈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럼 빌려줄께. 따서 갚아.' 내가 이렇게 큰 돈을 잃으면 어떻게 하냐고 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넌 내 친구니까 반드시 딸꺼야.' 진짜로 그날 돈을 땄다. 그리고 눈치없게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야 알았다. 그들이 일부러 내게 져주는데 잃을리가 있나. 뭔가 마음에 걸렸다.

그 뒤로 몇 번 나는 그를 위하여 사랑의 큐피드 역할을 하여주었고, 그는 정말로 나를 극진하게 대접해 주었다. 그와 영자씨 사이에 통화채널이 열린 뒤 얼마있다가 나는 홍콩을 떠나게 되었고 그전에 그는 캐나다로 출장을 가는 등 서로 스케줄이 엇갈리다가 자연스레 우리의 관계는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몇년 뒤, 홍콩느와르라고 해서 '영웅본색' '첩혈쌍웅' 이런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가 몸담은 곳이 이런 세계였구나 하고 알았다. 흘려 들었던 무슨무슨 회(會), 무슨무슨 방(幇) 이런 것도 새삼스러웠고, 양조위와 유덕화가 열연한 '무간도'를 보고는 경찰과 흑사회가 섞여있는 영화속의 내용이 대단히 실감나게 다가왔다. 그리고 또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번에 아주 오랫만에 관광객이 된 것처럼 홍콩을 둘러 보았고, 그러면서 잊고 있었던 옛날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남에게는 무서운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내게는 그냥 사랑에 애간장을 태우는 어린 소년같았던 찬따이고가 궁금해졌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하려나. 투옥, 항쟁, 장렬한... 이런 거 말고 그냥 뱅쿠버 인근 어딘가에서 유유자적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콩나물무침과 감자조림이 먹고 싶어졌다. 촌스럽게 무친 콩나물과 퍽퍽한 감자조림이 나를 즐거웠던 청춘시절로 데려다주는 매직도어의 열쇠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주말 마트에서 시식코너를 다 먹어보았다 밥과술네 집이야기


감자볶음, 콩나물무침, 오이무침, 무생채...가 맹렬하게 먹고싶었습니다. 배도 열렬히 고팠습니다. 비행기가 곧 도착하니까 좌석등받이를 바로 세워달라고 안내하는 승무원의 상냥한 목소리에 눈을 뜨니 푹 잔 듯이 개운했습니다. 아니, 탑승후 좌석에 앉자마자부터 잤으니 실제로 푹잤네요. 계산해보니 어제 저녁 일찍 먹고 지금까지 열다섯시간이상을 먹은게 없으니 배가 고플만도 합니다.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집에 가면 뭘먹을까 이것저것 생각했는데 콩나물무침, 감자볶음이 머리속 한가운데에 자리잡더니 더이상 다른 음식생각을 못하도록 밀어냅니다. 머리속 메뉴에 매콤하고 시원한 오이무침과 무생채는 허락이 됩니다. 쥬스는 오늘 교환학생 갔다 돌아온 친구 지영이네 시골집에 놀러가 자고 온다고 했습니다. 혼자서 뭘뭘 어떻게 만들어 먹을지 머리속으로 준비를 해보는데 입에서 침이 고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캐로셀에서 짐을 기다리며 혼자 헤벌럭 웃다가 추릅하고 침을 들이키는 걸 누가 봤을까 걱정이 됩니다. 거의 보름만에 집에서 해먹는 밥입니다.   

짐을 찾은 뒤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 올라타고 쥬스에게 전화를 겁니다.

술: 이제 탔어. 넌 언제 나가니?
쥬스: 고터에서 친구들하고 만나서 장봐서 내려가기로 했으니까 아빠 오는거 못볼 것 같애요. 미안.
술: 아냐, 괜찮아. 집에 야채 뭐뭐 있지? 오이, 콩나물, 감자 이런거 있어?
쥬: 양파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두부 한모 하고. 계란은 넉넉해요. 냉장고에 두부 조린거 있는데 수경이모(엄마 친구)가 보내준 간장을 썼더니 너무 짜게 됐어요. 우리가 맨날 먹던 간장하고 다른 걸 몰랐어.
술: 알았다. 밥좀 해놓고 나가. 서리태 넣고. 잘 놀다 와. 내일 보자.

음악을 틀어놓고 상상으로 요리를 하는데 감자볶음, 콩나물무침, 오이무침까지 마치고 무생채에서 막힙니다. 차는 영종대교를 넘어가는데 창밖 한낮의 햇살이 너무나 화사합니다. 그러고보니 무생채를 만들어 본 적이 없구나. 우래옥에서 내는 것 처럼 시원한게 좋긴 한데 좀 더 맵고 짜게 만들고 싶습니다. 콩나물무침, 오이무침, 감자볶음 다 소박하고 약간은 촌스런 맛으로 만들 작정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 포스팅에 따로 씁니다. 아무튼 시속 백킬로 이상으로 운전을 하며 갑자기 레시피 검색을 하고 싶어지는 충동을 꾹꾹 눌러 억제하다보니 어느덧 차는 방화대교 옆을 지나 팔팔로 들어섭니다. 

내친 김에 집에 들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냥 장을 보기로 한게 실수였습니다. 배고플때 장보지 말라는 공자님의 말씀을 잊고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는 일개 소인배가 되어버린 밥과술이 동네 홈플러스에 도착하였습니다. 원래 같으면 감자 한봉지, 무 한개, 오이 두개, 씻어나온 콩나물 한봉지 이렇게 사서 나오면 되는 거였습니다. 원래는 말이죠.

오른쪽 싱싱한 야채코너부터 도는데 싱싱한 쌈채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건 원래 사려고 했던 거니 카트에 담습니다. 트친님이 운영하는 야채를 주문해서 먹어야지 하고 마음먹은게 몇달이 지났는데도 출장으로 들락거리다보니 번번이 때를 놓치고 이렇게 사서 먹어야 합니다. 간마늘도 한 통 담습니다. 집에 있는 마늘을 찧어먹기도 하고 으깨 사용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편한게 좋으니 사게 됩니다. 사려고 했던 야채를 다 사고 풋고추도 고른 뒤 정육코너로 가서 돼지고기를 삽니다. 등심하고 안심이 너무 싸서 살 때마다 돈을 남기는 것 같아 좋습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코너마다 시식이 풍성합니다. 갑자기 학구적인 생각에 빠집니다. 탐구생활, 주말 수퍼에서 주는 시식을 다 받아먹으면 얼마나 배가 부를지 함께 생각해 보아요, 뭐 이런 연구심을 잃지않는 밥과술 어린이 였습니다. 그래서 실행에 옮깁니다. 

우선 첫번째가 어묵입니다. 

고객님~ 어묵 드셔보세요. 밀가루 하나도 안들어간 어묵이에요. 순 명태살로 만든거. 맛있죠? 간이 딱맞아서 소스 안찍어 드셔도 돼요. 

제법 코너를 크게 잡고 파는 어묵인데 종류도 다양합니다. 많이 유명해진 부산명물 어묵생각이 나서 몇개 주워담습니다. 카트에 넣고 생각해보니 한개 2천원 꼴이니 싼게 아닙니다. 

두번째는 물냉면입니다. 

고객님~ 냉면 드셔보세요. 이거 캠핑가셔서 드셔도 그만이예요. 육수를 냉동실에 얼려서 캠핑가시면 그냥 국수만 끓이면 돼요. 

옛날에 라이터에 충전할 때나 쓰던 부탄가스가 휴대용 가스렌지가 나오면서부터 소비가 수백배 수천배 늘었다고 합니다. 소주잔으로 쓰는 작은 종이컵은 놀러 가거나 성묘갈 때나 쓰는 거였는데 마트 시식이 생기면서 소비가 수백배 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식코너마다 잔뜩 쌓인 종이컵을 보면서 이렇게 자기 일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이나 하며 시식을 계속합니다.

세번째는 열무김치 국수입니다.

고객님~ 이거 풀무원이에요. 요리 못하시는 남자분들도 끓이기만 하면 이렇게 맛있게 돼요. 들어보세요. 맛있죠? 하나 더 들어보세요. 이게 파란 거는 그냥 국수, 빨간 거는 쌀국수에요. 소화도 너~무 잘 돼요.

네번째는 납작만두 입니다. 

고객님~ 이거 드셔보세요. 납작만두라서 간단하게 드실수 있어요. 냉동실에서 꺼내서 그대로 후라이판에 노릇노릇 구울 수 있어요. 풀무원에서 나온거에요. 

칠천팔백원이었나 싶었는데 카트에 담았습니다. 

다섯번째 새로 나왔다는 게맛살을 먹고 여섯번째는 김치입니다.

고객님~ 세계로 뻗어가는 씨제이 비비고 김치에요. 드셔보세요. 원래 이게 삼만원인데 지금 세일로 만팔천원. 그리고 여기에 이거 김치팩 하나 더 사은품으로 드려요.

김치냉장고 덕에 김장김치를 아직도 먹던터라 맛을 보니 풋풋한 새김치맛이 마음에 듭니다. 카트에 담습니다. 완전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사먹는 김친데, 하고 타협을 합니다. 가만히 보니 풀무원, 청정원, 씨제이 이런데는 브랜드 덕을 많이 보는 지 브랜드를 많이 앞세우는 것 같습니다. 아삭아삭 김치를 맛보고 입안이 개운해져서 다음 코너로 갑니다. 

일곱번째도 만두, 여덟번째도 만두 입니다. 오늘은 만두품목으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날인가 싶습니다.

고객님~ 이거 드셔보세요. 이쪽은 갈비만두, 이건 야채만두. 반반 섞어서 두개 합해서 세일이에요. 
고객님~ 이거 왕만두에요. 주부님들한테서 제일 인기 많다는 왕만두에요. 아이들 간식, 남편분 안주 다 좋아요.

아홉번째는 소시지입니다. 모양은 소시지인데 햄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고객님~ 이 햄 들어보세요. 항생제 하나도 안쓴 백프로 국산 돼지로 만들었어요. 안짜요. 지금 사면 두개에 이것도 끼워드려요.

아, 집에 설에 받은 스팸하고 홍콩에서 인기라고 해서 산 부경 포크밸리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또 사나? 아질산나트륨이 들어간 걸 너무 좋아하면 안되는데 하고 고민하다가 이건 소시지니까 또 다른 맛이니까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카트에 담는 밥과술이었습니다. 

열번째는 스파게티 봉골레 입니다.

고객님~ 한번 드셔보세요. 청정원에서 나온 거에요. 이번에 봉골레 까르보나라 새로 나왔어요. 

종이컵에 제법 수북히 담긴 스파게티를 한 입에 털어넣고 아뜨 아뜨 하면서 먹었습니다. 오늘은 워낙 한식으로 쏠린 날이라 카트에 담지는 않았습니다. 

열한번째는 비빔면 입니다.

고객님~ 비빔면 오늘 세일이에요. 

확인은 안했는데 팔도였을 겁니다. 비빔면 맛은 피차간에 다 아는데 뭘 새삼하는 태도였는지 맛보다는 가격에 중점을 두고 세일즈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매콤하고 찬 걸 받아먹고 나니 다시 입안이 개운해 졌습니다. 

마지막 열두번째는 디저트로 단 걸 먹었습니다. 빵집 코너에 가니 이런저런 빵을 잘게 썰어 놓았습니다. 제일 단 맛이 나는 걸 두어개 이쑤시개로 찍어서 먹고 시식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배가 아주 부른 건 아니었지만 허기는 완전히 가셨고, 뭔가 먹은 것 같은 느낌은 들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계산대에 올려놓은 것 중에 야채부분만 찍은 겁니다. 감자몇알 콩나물한봉지 오이두개, 이렇게 사러가서 계산을 하니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공자님께서 논어 쇼핑편에 일찌기 군자는 세가지를 경계하여야 한다 하셨습니다. 배고플 때는 식욕이 안정되지 않았으니 과다구매를 조심하고, 시식을 하면 양이 조금이라 괜히 맛있게 느껴지니 충동구매를 조심할 것이요, 맛있다고 두번이상 먹어보면 미안해서 사게되는 체면구매도 조심해야 한다 하셨습니다(子曰君子有三戒餓之時食欲未定戒之過買及其試食也少量味美戒之衝買及其二食也不易辭讓戒之求面). 그러나 배가 고플 뿐인 밥과술은 논어같이 어려운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냥 탐구생활만 열심히 하는 초등학생으로 쇼핑을 마쳤습니다. 


집에 와서 음식을 하려니 이미 배가 반쯤 부른 상태라서 의욕이 반감합니다. 그래 내일 일요일에 제대로 해서 먹자.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사온 물건들을 냉장실과 냉동실에 갈라 넣습니다. 감자볶음(사람들은 감자조림이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콩나물무침, 무생채, 오이무침은 기상상태로, 가 아니라 위장상태로 인해 내일로 순연됩니다. 

아주 시어서 무슨 열대과일 향이 나는 것 같은 김치를(착각일수도 있겠는데 사실입니다) 물에 깨끗이 빨아서 속도 털어낸 뒤 송송썰어 김치국을 끓입니다. 간은 다시마, 멸치로 내고 고추가루 고추장 간마늘 간장 소금 을 알맞게 넣은뒤 좀 끓이다가 적당한 때에 돼지안심 썰은 것과 대파를 넣습니다. 서리태 밥에 반찬은 간단하게 김, 쌈야채, 두부조림, 그리고 어묵 두개 입니다.


맛있게 먹고나니 잠이 쏟아집니다. 얼른 누워서 소가 되나 안되나 실험에 듭니다. 지난 며칠동안 잠을 제대로 못잔걸 주말 낮잠으로 보충을 하라고 몸이 요구하는 모양입니다. 음냐음냐 스르륵...

지금은 일요일 낮입니다. 정말 정말 푹자고 일어났습니다. 이제 밥먹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왜 그토록 감자볶음, 콩나물무침이 먹고싶었는지 시간날때 포스팅을 해야겠습니다.       



김치의 국제규격: 한식이야기(5) 우리나라 이야기

사진은 2001년에 발행된 '김치우표'입니다. 2001년은 '우리나라의 김치'가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 등록 된 해입니다. '우리나라의 김치'라고 표현한 것은 당시 일본의 기무치(kimuchi)와 우리나라의 김치(kimchi)가 규격을 놓고 싸워다가 우리가 이겨서 김치종주국의 자존심을 세운 '쾌거'라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그당시는 관심이 없던터라, 일본이 얼마나 진지하게, 혹은 집요하게 '기무치'를 코덱스에 등록하려고 노력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쾌거라니 그런가 보다하고 안도하며 당시에 우리의 김치를 등록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던 분들의 노고에 진솔하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10년도 안되었는데 벌써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는지, 몇몇 기사나 블로그에는 위의 우표가 한국의 김치가 등록된 것을 기념하여 출시된 우표라고 소개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우표가 발행된 것은 2001년 6월이고, 김치가 인정받아 등록된 것은 2001년 7월 코덱스 회의 였습니다. 그러니까 우표발행이 더 앞선 겁니다. 그리고 우표발행을 계획하고 디자인하고 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훨씬 전부터 준비되었다고 봐야겠지요. 그렇게 미리 준비를 하고, 마침 우표가 나온 것은 6월...김치를 국제식품규격에 등록하기 바로 한 달전에 나왔다는 것은 농수산부와 정보통신부(당시의 명칭은 불확실)등 행정부처 간의 협력과 지원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는게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이 포스팅은 우리의 김치가 유엔식량농업기구와 세계보건기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 기구, CODEX에 국제식품규격으로 등록된 내용을 소개하는 포스팅입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김치를 국제기구에서는 어떻게 정의하고 기준을 세워 표준을 정했는가를 한번쯤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까요. 재미만 있는게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맛없는 김치'의 현주소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포스팅은  학술논문도 아니고 해서, 그냥 읽기 편하게 대충 번역하였습니다. 혹시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하여, 영어 원문은 다 싣습니다. 그러니까 얼른 읽으시고 싶은 분은 발췌 번역한 보라색하고, 제 코멘트인 검정색만 읽으시면 되고요. 좀 시간이 나시는 분은파란색 영어 도 함께 읽으시면 됩니다. 아주 시간 널널한 분은 번역을 생략한 오렌지색 부분의 영어도 읽으시면 재미있습니다. 그러면 소개합니다.  

CODEX STANDARD FOR KIMCHI

(CODEX STAN 223-2001) 

김치의 코넥스 규격, 그리고 그 등록 번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래가 설명입니다. 

1 SCOPE 
스코프


This Standard applies to the product known as kimchi, as defined in Section 2 below, which is 
prepared with Chinese cabbage as a predominant ingredient and other vegetables which have been trimmed, 
cut, salted and seasoned before fermentation.


배추(차이니즈 캐비지)를 주 원료로 하여, 껍질을 벗기거나, 자르거나 하고 절이고 양념을 한 뒤 발효를 시킨, 일명 김치라고 불리는, 제품에 대한 규격을 말 함.
 

2 DESCRIPTION 

2.1 PRODUCT DEFINITION 
제품의 정의

 Kimchi is the product: 김치란 아래와 같은 제품이다:

(a) prepared from varieties of Chinese cabbage, Brassica pekinensis Rupr.; such Chinese cabbages 
shall be free from significant defects, and trimmed to remove inedible parts, salted, washed with 
fresh water, and drained to remove excess water; they may or may not be cut into suitable sized 
pieces/parts; 

(a) 여러가지 배추(차이니즈 캐비지, 학명 어쩌구저쩌구)에서 상한 부분이나 못 먹는 부분을 쳐 내고, 절인 뒤에, 깨끗한 물로 씻은 다음, 과도한 수분을 빼어내고, 적당한 크기나 부위로 자르거나 그대로 놔둔 채로,

겉잎이나 시래기가 될 부분은 벗겨서 떼어낸다...이런 걸 다 친절하게 적어 놓았군요. 불량식품업자 방지책인가 싶기도 합니다. 

(b) processed with seasoning mixture mainly consisting of red pepper (Capsicum annuum L.) 
powder, garlic, ginger, edible Allium varieties other than garlic, and radish. These ingredients 
may be chopped, sliced and broken into pieces; and 

빨간 고추가루, 마늘, 생강, 파(부추, 양파 등), 무 등으로 구성된 양념범벅으로 버무려,

(c) fermented before or after being packaged into appropriate containers to ensure the proper 
ripening and preservation of the product by lactic acid production at low temperatures.
 
적당한 용기에 담기 전이나 그 후에, 유산균 생산에 의하여 제품이 알맞게 익고 보존이 가능하도록  저온에서 발효시킨 것.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합니다. 발효시킨 것이라는 것. 당연하지요. 그런데 '저온에서' 발효시킨 것이라는 표현에서 김치의 원형을 찾아 가는 것 같아 반갑습니다. 지난번 포스팅때 이와 관련하여 아주 절묘하고 감탄할 만한 발효과학이 숨어있는 걸 소개한 바 있습니다. (한홍의 박사가 저술한 <김치, 위대한 유산>을 참고했습니다.)


2.2 STYLES 
스타일

The product should be presented in one of the following styles:

본 제품은 다음중 하나의 모양이어야 한다.
(a) Whole - whole Chinese cabbage;
 통배추
(b) Halves - Chinese cabbages divided lengthwise into halves; 
배추를 세로로 이등분 한 것
(c) Quarters - Chinese cabbages divided lengthwise into quarters; and 
배추를 세로로 4등분 한 것

위에 4등분 까지가 포기김치이고 아래가 막김치를 말하는 거겠지요.

(d) Slices or Chips - Chinese cabbage leaves cut into pieces of 1~6 cm in length and width.

배추잎을 가로 세로 1~6센티미터 크기로 썬 것

3 ESSENTIAL COMPOSITION AND QUALITY FACTORS

아래는 주요 구성성분을 얘기합니다. 

3.1 COMPOSITION

3.1.1 Basic Ingredients 
기본 재료
(a) Chinese cabbages and the seasoning mixture as described in Section 2; 

배추와 섹션2에 언급된 양념
(b) salt (sodium chloride).

소금
3.1.2 Other Permitted Ingredients 
기타 허용재료

(a) fruits; 과일 (배도 넣고 하지요.)
(b) glutinous rice paste; 
쌀풀 (열무김치, 깍두기 이런데에 넣지요) 
(c) nuts; 
견과류  (밤도 넣고, 잣도 넣고 하지요)
(d) salted and fermented seafood; 
염장 발효한 해산물 (새우젓, 멸치젓, 까나리액젓 등 각종 젓갈)
(e) sesame seeds; 
참깨(우리집에서는 한 번도 넣는 걸 못 봤습니다만)
(f) sugars (carbohydrate sweeteners); 
설탕
(g) vegetables other than those described in Section 2; 
섹션2에서 언급되지 않은 야채 (그렇군요. 미나리, 갓 등등이 있네요) 
(h) wheat flour paste. 
밀가루 풀 (쌀 풀말고 밀가루 풀도 있지요)


3.1.3 Other Composition
 기타 구성요소
(a) Mineral impurities not more than 0.03% m/m

각종 미네랄 불순물 (천일염등에 섞여 있는 미네랄이니까 사실은 있으면 몸에 좋거나 맛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것들 함량에 제한을 두었군요.)
(b) Salt (sodium chloride) content 1.0 ~ 4.0% m/m

소금
(c) Total acidity (as lactic acid) not more than 1.0% m/m

 유산을 포함한 각종 산(김치 발효의 주성분인 유산균을 비롯해서 기타 구연산, 주석산 등이 있겠지요)


3.2 QUALITY CRITERIA 
품질기준

 Kimchi shall have normal colour, flavour and odour and shall possess a texture characteristic of the 
product.
 김치는 정상의 색깔과 맛(flavour), 냄새를 가져야 하며, 제품의 고유 식감(텍스쳐)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오늘 날의 김치에는 해당되는 말인데, 제가 아는 정말 맛있는 김치에는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하게 설명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요.

3.2.1 Other Quality Criteria

(a) Colour - The product should have red colour originating from red pepper. 
제품은 붉은고추에서 나온 붉은 색을 띄어야 한다. (식용색소 섞지말란 이야기 같습니다.)
(b) Taste - The product should have hot and salty taste. It may also have sour taste. 
제품은 맵고 짠 맛이 나야 한다. 그리고 신 맛이 날 수도 있다. 그렇습니다. 김치가  익으면서 신맛이 나다가 점점 더 시어지지요.
(c) Texture - The product should be reasonably firm, crisp, and chewy. 
제품은 적당히 딱딱하고, 아삭아삭하며, 씹는 맛이 있어야 한다. 물러터진 김치나 골아버린 김치를 배제하기 위한 표현인 것 같은데 적당한 이라는 표현이 인간적이라 구수합니다.


4 FOOD ADDITIVES 

식품 첨가물

여기서 부터가 좀 요망스럽습니다...만, 요망스럽다는 건 일반 가정에서 담근 김치를 갈망하는 저의 편견이고 이미 생활에 파고든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김치를 염두에 둔 항목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이해하기로 하였습니다ㅠ ㅠ

4.1 ACIDITY REGULATORS 
산도 조정제(pH조정제)  여기에는 초산, 젖산(유산), 구연산 등이 얼마까지 들어갈 수 있다, 뭐 이런 얘기들이 있는데, 우리 일반인들은 알기가 힘든 이야기지요.

INS No.

Name of the Food Additive

Maximum Level

269

Acetic acid

Limited by GMP

270

Lactic acid

330

Citric acid

 

4.2 FLAVOUR ENHANCERS 
향미 증진제   여기에는 글루탐산 나트륨, 구아닐 산, 이노신 산 등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니까 MSG, 핵산조미료 등이 들어간다는 이야기 입니다.

INS No.

Name of the Food Additive

Maximum Level

621

Monosodium L-glutamate

Limited by GMP

627

Disodium 5'-guanylate

631

Disodium 5'-inosinate

 

4.3 FLAVOURINGS 
천연향료나 천연과 동일한 향료. 그냥 인공향료 그러면 될 것을 표현이 에둘러 갔네요. (그럼 성형미인은 '자연과 동일한 미인', 화장빨은 '쌩얼과 동일한 빨', 이렇게 표현하면 되겠네요)

Natural flavours and nature identical flavours.

Limited by GMP

 
그리고 밑으로는 증점제, 유화제, 안정제 등등 햄, 소시지 같은 것 사서 보면 써있는 이름들이 있고, 솔비톨, 카라기난, 잰탄 검 등등 낯선 것 같은, 아니면 어느새 익숙한 것 같은 이름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아, 김치에도 이런 걸 넣어서 만드는 거라고 국제기준에 등록이 되어있다는 거, 처음 알았습니다.

4.4 TEXTURIZERS

INS No.

Name of the Food Additive

Maximum Level

420

Sorbitol

Limited by GMP

 

4.5 THICKENING AND STABILIZING AGENTS

INS No.

Name of the Food Additive

Maximum Level

407

Carrageenan 
(including furcellaran)

Limited by GMP

415

Xanthan gum

 

그리고 5, 6 번은 건너 뜁니다. 8번도 건너 뛰고(시간나시는 분들은 읽어보세요. 나름 재밌답니다)
문제는...7번입니다.

5 CONTAMINANTS

5.1 HEAVY METALS

 The product covered by the provisions of this Standard shall comply with those maximum levels for 
heavy metals established by the Codex Alimentarius Commission for this product.

5.2 PESTICIDE RESIDUES

 The product covered by the provisions of this Standard shall comply with those maximum pesticide 
residue limits established by the Codex Alimentarius Commission for this product.

6 HYGIENE

6.1 It is recommended that the product covered by the provisions of this Standard be prepared and handled 
in accordance with the appropriate sections of the Recommended International Code of Practice . General 
Principles of Food Hygiene (CAC/RCP 1-1969, Rev. 4-2003) and other relevant Codex texts such as codes 
of hygienic practice and codes of practice.

6.2 The product should comply with any microbiological criteria established in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s for the Establishment and Application of Microbiological Criteria for Foods (CAC/GL 21-1997).

 
8 LABELLING

 The product covered by the provisions of this Standard shall be labelled in accordance with the Codex 
General Standard for the Labelling of Prepackaged Foods (CODEX STAN 1-1985, Rev. 1-1991). In 
addition, the following specific provisions apply:

8.1 NAME OF THE PRODUCT

 The name of the product shall be “Kimchi”. The style should be included in close proximity to the 
name of the product.

8.2 LABELLING OF NON-RETAIL CONTAINERS

 Information for non-retail containers shall be given either on the container or in accompanying 
documents, except that the name of the product, lot identification, and the name and address of the 
manufacturer, packer, distributor or importer, as well as storage instructions, shall appear on the container. 
However, lot identification, and the name and address of the manufacturer, packer, distributor or importer 
may be replaced by an identification mark, provided that such a mark is clearly identifiable with the 
accompanying documents. 

순서를 약간 바꿔 7을 아래로 뺐습니다.

7 WEIGHTS AND MEASURES

7.1 FILL OF CONTAINER 


7.1.1 Minimum Drained Weight

최소 수분제거 중량

 The drained weight of the final product, as a percentage of the indicated weight, should be not less 
than 80% by weight, calculated on the basis of the weight of distilled water at 20oC which the sealed 
container will hold when completely filled. The drained weight of the final product as a percentage by the 
indicated weight shall not be less than 80% by weight. 

위의 말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김치 건데기 그러니까 김치의 용량이 전체 무게의 80%를 넘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김치국물이 전체중량의 20%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지요. 제가 지난번 포스팅에서 잠깐 언급하였듯이, 우리의 김치가 맛있으려면 넉넉한 국물에 잠겨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배치되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김치를 공산품처럼 공장에서 만들어서 유통하려면, 국물에 대한 고형성분의 비율이 일정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옛날에 복숭아 통조림, 밀감 통조림 이런 것을 만들어 팔 때, 설탕물만 잔뜩 들어있고 정작 복숭아, 밀감은 얼마 안되는 이런 상품이 나오는 것을 막기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치였겠지요. 하긴 김치도 악덕업자가 국물을 잔뜩 넣어 무게를 늘려 팔면 안되니까 고형성분, 그러니까 건데기(김치)의 용량이 80%이상이어야 한다,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난번에 소개하였듯이 김치국물은 유산균이 살아 있는 장소이자, 김치가 공기와 접촉해서 산화하는 것을 막아주는 너무나 중요한 성분입니다. 옛날에 김치를 담그면 익힐 때 반드시 국물이 넘쳐 흐르던 것이 기억납니다. 만들때 손대중을 못해서 그런게 아니라 그렇게 발효과정에서 국물이 넘칠정도로 넉넉하게 만들어 담그지 않으면 제대로 발효가 되지 않고 또 보존에 문제가 생겼던 겁니다. 그만큼 중요한 김치국물을 넉넉하게 담근 김치가 김치냉장고를 만난다면 무적의 한국김치가 재현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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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6년전에 썼던 걸 약간 편집하여 다시 올리는 겁니다. 기록용으로 올리는 건데, 관심있는 분에게는 재미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에게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포스팅일 것 같네요. 




운수좋은날, 막국수와 드립커피 살아가는 이야기


조금 아까 있었던 일입니다. 오전에 약속이 하나 있었는데 일이 일찍 끝났습니다. 다음 약속이 12시 강남역 5번출구 옆에 있는 빌딩에서 있었는데 시간이 남았습니다. 회사로 들어갔다 가기는 시간이 어정쩡하고, 부근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책이나 보자 이렇게 맘먹고 이동하는 차안에서 블로그도 눈팅하고 트윗도 보고 그러던 참이었습니다. 좋은 곳을 많이 소개해주셔서 이글루스는 아니지만 자주 보게되는 미식의 별님 블로그에 막국수 소개가 올라와 있더군요. 춘천 샘밭막국수라는 곳인데 사진만 보아도 맛있게 생겼습니다. 장소를 보니 교대앞인데 눈을 들어보니 마침 교대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11시 12분. 

얼른 차를 세웠습니다. 절묘하게도 바로 큰 길에서 그 골목으로 들어가는 어귀에서 차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200미터도 안되는 길을 걸어 들어가니 샘밭막국수집이 나왔습니다. 시간은 11시 17분. 문에 영업시간은 11시 30분부터라고 되어있길래 들어가서 기다려야 하나 어쩌나 생각을 하며 문을 여니 이미 부지런한 손님들 여럿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막국수를 하나 시켰지요. 위에 사진이 그것입니다. 아래 단정한 모습이 가져다준 막국수의 원래 비쥬얼인데 풀어헤진 모습이 더 먹음직하게 보여서 맨위의 사진에 올렸습니다. 맛은 정말로 좋았습니다. 속초 실로암 이런데에 비해서 육수가 조금 아쉬웠지만 전혀 불평할 게 아닌게 메밀면이 워낙 맛있었습니다. 맛있는 집이 우연이라 하기엔 신기할 정도로 지나가다 딱 얻어걸려서 오늘 정말 운이 좋았구나 싶었습니다. 


9천원을 내고 나와서 보니 가게안 메뉴판에는 막국수가 9천원 짜리만 있었는데 현관에는 곱배기 11,000원이라고 붙어있었습니다. 그걸 보았으면 반드시 곱배기를 시켰을 밥과술이기에 오늘은 정말 운이 좋았다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과식하지 않고 알맞게 부른배에 디저트를 먹을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운수좋은 날은 희한하게도 별 일이 다 생깁니다. 12시약속을 대단히 죄송한데 30분만 늦춰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 막국수를 소개한 미식의 별님 블로그 말미에 부근의 블랙드립이라는 곳에서 커피를 마시라고 추천의 글이 붙어있었거든요. 아쉬워하며 이동을 하는데 이집에서 커피를 마실 시간이 생긴거지요. 바로 옆골목이라 쉽게 찾았습니다. 들어가보니 젊은 청년 한명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산 커피를 시켰는데 3,800원 이었습니다. 주문을 해놓고 뭐좀 달달한 것 사다 먹고 싶은데 괜찮냐고 했더니 좋답니다. 편의점에 가서 고른게 처음 본 쇼콜라미니파이라는 과자였습니다. 가격은 1,200원, 합해서 6,000원. 동전이 안남고 딱 떨어져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런 날은 계속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커피가 알맞게 따듯한게 산미와 쓴맛이 조화를 잘 이루어서 과자랑 함께 먹으니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커피가 맛도 좋고 온도도 알맞고 다 좋았는데 양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브라질산을 한번 먹어보고 싶어서 한잔 더 시켰더니 3,500원이었는데 진짜로 거짓말같이 500원짜리 동전하나가 주머니에서 나왔습니다. 동전이 남지않고 딱 떨어지게 쇼핑을 하면 기분이 좋은 건 저만 그런건가요? 

홀짝 홀짝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한 500미터 걸어서 강남역으로 가서 용무를 마치고 회사에 돌아와 바쁘게 일하는 척하면서 동료들 몰래 이 글을 씁니다. 미식의별님 고맙습니다~ 오늘같이 운수좋은 날 이런 소소한 행복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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