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에 음식을 먹으면서, 특히 외식을 할 경우에 더욱, 혹시 내 입맛은 남들보다 세련되지 못한 것 아닌가 자격지심을 느낀 적은 없으신가요? 아니면 인정하고싶진 않아서 흥, 음식 맛이야 자기 입맛에 맞는게 최고지 뭐 별거 있어?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내 입맛은 누구보다 좀 뒤떨어진게 아닌가, 약간의 열등감을 느끼며 나날을 보내시는 분은 안계신가요?
저는 좀 그렇습니다. 어제 극장에 가서 보고싶은 영화를 두편 연이어 보느라고 중간에 끼니를 간단하게 때우다가 든 생각이었습니다. 같은 조건에서라면 햄버거를 선호하는 밥과술인데, 샌드위치를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새삼 떠올리면서 옛날에 느꼈던 컴플렉스같았던 추억이 되살아 난거지요.
꽤 오래된 얘긴데, 미국에 있을 때 프로젝트가 바빠서 한 열흘동안 매일 점심을 시켜다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 열명 남짓한 멤버가 시간이 흘러 밥 때가 되면 자, 뭐먹지? 하고 의견을 모읍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한가지를 정해서 전화로 시켜놓고 한 삼십분 지나서 제일 서열이 낮은 인턴이 차를 타고 픽업을 다녀오는 식이었습니다. 시켜먹다보니 피자 한번, 중국음식 한번 뻬고는 대개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시켜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샌드위치를 더 많이 시켜먹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치즈가 녹아서 흘러내리는 버거가 그리 좋을 수 없는데 미국인 파트너는 샌드위치를 시켜먹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머리좋고 말잘하는 유태계인 그녀는 모든 사람의 뜻을 존중하는 듯 하면서도 결론을 자신이 원하는 바로 유도해가는 탁월한 조정능력과, 그녀의 선택이 멋있어 보이게 하는 카리스마까지 겸비한 여자였습니다. 샌드위치를 더 많이 시킨건, 제가 그 파트너보다 최소 동등하거나 권력서열상 더 높은 위치에 있었으니까 파워에서 밀린게 아니라, 입맛에서 온 자격지심에 밀린 탓이었습니다.
사실 햄버거는 메뉴에서 그다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가게에 따라 세분화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끽해야 햄버거냐 치즈버거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샌드위치는 빵만 해도 화이트냐 브라운이냐 홀휫이냐 사워도냐 아님 바게트냐에서부터 샐러미, 로스트비프, 터키, 튜나 등 내용물도 다양하고 치즈를 넣어도 별의별 종류가 다 있습니다. 마요네즈 머스터드마저 여러종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평소 햄버거를 먼저 시켜놓고, 나중에 누군가가 샌드위치를 시키며 수십가지 주문사항을 줄줄이 엮어대는 걸 듣고 있노라면 '난 치즈버거에 프라이' 이렇게 시켜놓은 자신이 참 미개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밥과술의 의견을 따라 햄버거를 시킨 날에는 말은 못하고 눈치만 보던 말단 직원들이 더 좋아한다는 걸 표정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 날씬하고 출세하고 돈많은 쪽은 샌드위치고 사회경험이 없거나 말단은 햄버거란 말이냐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점심 때 간단한 레스토랑엘 가도 두손에 케찹묻혀가며 입을 딱벌려 버거를 먹는 나보다는, 먹기좋게 썰어놓은 클럽하우스 샌드위치를 오물오물 먹는 상대방이 뭔가 더 세련되어 보였지요.
물론 이런 밥과술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냥 저의 혼자 생각일 뿐이지요. 그러나 많은 컴플렉스라는게 이렇게 스스로 만들어 놓은 열등의식의 덫에 빠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세월의 풍상에 갈리고 닦인 덕에 샌드위치파를 우러러보는 햄버거파의 컴플렉스에서 많이 벗어나긴 했지만...웰빙바람이후 아직도 샌드위치를 더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좀 쿨한 것 같고 그렇습니다.
우리 음식에서 비슷한 예로는,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매콤달콤한 비빔냉면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 고향이 평안도인 대학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월남한 집안 어르신들은 모이면 '야, 냉멘이 뭐야 그거이 다 낭중에 생긴 말이디. 우린 거저 다 국수라했디' 이렇게 말씀하셨다며, 시원한 육수맛에 먹는게 '냉면'이고 다대기인지 뭔지를 넣고 비벼먹는건 거의 냉면이라는 우리민족 고유의 훌륭한 메뉴에 대한 테러인 것처럼 분위기를 몰고 갔습니다.
그리고 장충동 수정약국부근, 필동, 압구정동 안세병원 뒷골목등을 찾아다니는 그들과 함께 물냉면을 먹었습니다. 처음엔 되게 닝닝해서 아무리 봐도 *래옥 이런데보다 육수가 맛이 없는 것 같았는데, 이게 다 내 입맛이 저렴해서 그래 이렇게 생각하며 물냉면쪽으로 전향을 결심하였습니다. 대접을 들고 마알간 육수를 한모금 쭈욱 들이키고는 '야, 역시 이맛이지. 육수 죽인다' 이렇게 감탄하는 친구들에게 '그러냐, 난 암만해도 좀 싱거운거 같은데' 이렇게 말을 못하고 자꾸 먹다보니 이제는 나름 정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비빔냉면도 좋아하고, 진한 육수도 좋아하는 밥과술이니 냉면에 있어서는 아직도 '하층민'입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김치찌개를 워낙 좋아하는 저는 된장찌개를 더 좋아하는 사람은 좀 쎄보입니다. 어린이 입맛에는 김치찌개가 더 맞고, 된장찌개는 좀 더 어른스러운 맛이라고 혼자 마구 생각하고는 높이 우러러봅니다. 그위에 더 높은 사람은 청국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저는 아직도 청국장을 무슨 맛인지 잘 모릅니다.
빈대떡과 파전을 놓고는 파전을 선호하는 사람이 더 세련된 것 같고요. 대학들어가 파전안주해서 술 잘먹는 친구들이 멋있어 보여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빈대떡과 파전은 8대2로 빈대떡파입니다.
짜장면과 짬뽕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완벽에 가깝게 수평관계이니까 어느 쪽을 선택하는냐에 따라 입맛의 세련됨에 우열이 없다고 보는데, 하나 있습니다. 한국식 중국집에서 요리 다 먹고나서 '식사는 뭘로 하시겠어요'라고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오지요. 그 때 대개가 짜장, 짬뽕 아니면 볶음밥을 시키는데 간혹 '나는 기스면' 하고 시키는 사람들이 있지요. 자극이 없고 국물이 말갛고 국수양도 좀 적은 기스면을 시키는 사람은 좀 세련돼 보입니다. 하지만 밥과술은 꿋꿋이 짜장 또는 짬뽕을 '식사량'으로 시켜먹습니다.
일식으로 가봅니다. 일식 우동과 소바의 선택에선, 전 거의 소바를 시켜먹습니다. 그리고 우동을 더 좋아하는 사람보다 혼자서 은근히 우월감을 즐깁니다. 아무 이유없습니다. 그냥 이렇게 맛있는 소바를 놔두고 우동을 먹다니, 하고 가여워 할 뿐이지요. 돈카츠를 먹을때 부드러운 히레(안심)을 좋아하는 저는 기름기가 많아 더 고소한 로스(등심)을 선호하는 사람은 괜히 고기맛을 더 잘 아는 사람같아서 높이 삽니다. 어린 아이들은 대개 다 저와같은 히레파인 것 같습니다.
파스타를 먹을 때, 토마토맛을 더 좋아하는 저는 올리브기름이나 와인을 베이스로 한 파스타를 시키는 사람이 더 멋있어 보입니다. 양식먹으면서 샐러드먹을 때는 싸우전아일랜드나 프렌치, 랜치 드레싱등 헤비한 맛을 좋아하는 저는, 발사미코나 폰즈, 와후(和風)등 가벼운 드레싱을 쳐서(그것도 살짝) 먹는 사람앞에선 괜히 기가 좀 죽는 것 같습니다.
드레싱을 살짝 친다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밥과술이 제일 기가 죽는게 설렁탕에 소금 거의 안넣거나 넣는둥 마는둥하고 먹는 사람앞에서 소금칠 때 입니다. 소금간 안하고 도대체 어떻게 먹을까 싶은데, 물어보면 맛있답니다. 저는 파값이 비싸면 설렁탕집 망할 정도로 파반 국물반으로 듬뿍넣고 후추도 남들 두배정도 넣고, 소금은 알맞게(밥과술 기준으로) 넣어 먹습니다. 웰빙웰빙하는 세상에 혈압도 신경써야 한다니 소금섭취량을 올해부턴 좀 줄여볼까 합니다.
양념이야기 하나 더하고 넘어가지요.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고기집에서는 양념안한 고기를 구워먹는게 당연한 습관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꽃등심, 생갈비, 안심, 안창, 제비추리 등등 부위별 이름을 정해놓고 구워서 소금기름에 찍어먹거나 상추에 파버무림이나 양파등과 쌈싸 먹습니다. 저는 여기엔 고기를 많이 팔려는 업자들의 음모(?)가 있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런 집의 메뉴를 보면 양념갈비는 값이 좀 저렴합니다. 좋은 부위를 안쓴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러니까 맛도 덜할 것이겠구요. 불고기는 훨씬 저렴하여 좀 고급집에 가서 메뉴를 보면 저~ 밑에 셋방살이처럼 붙어있는게 안쓰러울 정도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고유의 참기름과 마늘, 간장이 혼합된 양념이 밴 불고기와 갈비가 대접을 예전처럼 못받는 것 같아서 서럽습니다.
양념된 갈비나 불고기를 먹는게 생갈비, 생등심을 먹는 것에 비해 저렴한 입맛의 '하층민'이 되어버린 이 풍토를 저는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갈아엎어버리는 '민란'을 일으킬 용의도 있습니다.
쓰다보니 궁시렁 궁시렁 저렴한 입맛, 세련된 입맛 마치 뭔가 정답이라도 있는 것 같이 늘어놓았는데, 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잠깐 눈 깜빡하는 사이에 벌써 2012년도 한달이 다 지나갔네요. 정말이지 쏘아버린 화살마냥 너무나 빨리 지나갑니다. 남은 며칠 잘 마무리하시고 보람찬 2월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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