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이궈러우(回鍋肉)와 젊은 택시기사 외국이야기


쓰촨(四川)지방의 가장 대표적인 요리를 꼽으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후이궈러우(回鍋肉)를 꼽습니다. 서양사람들도 좋아해서 미국유럽 등지의 중국레스토랑은 쓰촨식이 아니더라도 이 요리를 내는 곳이 많습니다. 여기에 못지않게 다른 지방에서도 인기가 있는게 마파두부(마포떠우푸;麻婆豆腐)입니다. 

우리말 발음으로 '회과'라고 읽는 후이궈(回鍋)는 '냄비에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즉 한번 조리를 한 재료가 웍(솥 또는 냄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로 두번 조리하는 방식을 말하지요. 후이궈러우는 돼지고기를 한번 삶았다가 그것을 썰어서 각종 조리료를 넣고 다른 야채와 함께 센 불에 볶은 요리입니다. 그래서 중국에는 비단 이요리뿐이 아니라 후이궈투떠우(土豆;감자) 등 이 조리방식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있습니다. 물론 후이궈하면 누구나 후이궈러우를 생각하게 되지만요. 영어로는 번역을 Twice Cooked Pork, 또는 Double Cooked Pork 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위의 사진은 밥과술이 며칠전 먹었던 후이궈러우입니다. 행사가 있어서 쓰촨성의 성도 청두(成都)에 가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행사여서 매일 좋은 음식과 술을 먹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진은 염장성이 너무 강해서 다 생략하고 위의 사진 하나만 싣기로 합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이런 저런 맛있는 거 마니마니 먹고 왔어효'가 아니고, 그냥 후이궈러우에 얽힌 짧은 이야기입니다.

뜻하지않게 중국에서 삼백킬로 이상을 택시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렇게 먼거리에 택시를 타보기는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쓰촨성의 성도는 청두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떨어져서 직할시로 승격되어 떨어져나간 충칭(重慶)이 있습니다. 그 옆이라고 해도 거리로 320킬로 정도 됩니다. 충칭은 직할시라고 하지만 인구가 3천만이니 웬만한 나라만큼 사람이 많습니다. 청두도 인구가 천오백만이고, 사천성의 인구는 8천만이 넘습니다. 중국이 큰 나라인건 여행을 하다보면 새삼 실감이 납니다. 

아무튼 300킬로라면 비행기로 다니기에는 좀 애매한 거리입니다. 그래서 국내선이 운항하지 않고 대신 기차가 거의 삼십분 간격으로 운행을 하는데 급행을 타면 2시간이면 갑니다. 저는 예정에 없다가 충칭에 가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중국쪽에서 차량과 기사를 내줄터인데 그냥 혼자 좀 자유롭고 싶어서 기차를 타려고, 다른 쪽에서 다 어레인지를 해주었노라고 얘기하고 오후 느즈막히 택시를 불러타고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요새는 중국에 '띠띠따처(滴滴打車)'라는 앱이 유행하여 참으로 편합니다. 우리나라 '카카오택시'같은 겁니다.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것 같은데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걸로 기사를 불렀더니 머리를 짧게 깎은 젊은 청년이 왔습니다. 똘방똘방한 모습에 호감이 갔고, 만화 주인공 독고탁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역에 도착하여 택시에서 내려 기차표를 사러 창구에 가보니 당일날 충칭으로 가는 기차는 모두 매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같겠지, 일본같겠지 하고 생각한게 잘못이었습니다. 밤 아홉시 반 막차에 입석이 딱 한자리 남았더군요. 짐도 있고 해서 그건 포기하고 길건너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보았습니다. 버스도 없었습니다. 역전에는 암표파는 사람들이 여럿있었고, 터미널앞과 역전에는 '헤이처(흑차;黑車)'라고 불리는 불법영업하는 사람들이 충칭가요, 충칭가요하고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었습니다. 

기차표를 암표로 파는 사람들은 앱으로 예매를 하고 신분증번호를 바꿔넣는 방식을 취하는 것 같았는데 우리같은 외국인은 여권으로 사야하기 때문에 설사 사고싶고다고 해도 살 수가 없습니다. 불법영업을 하는 헤이처는 괜히 외국까지 나와서 타기도 꺼려지고 해서 선택지에서 빼버렸습니다. 그러면 남은 방법은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 뿐인데 차를 내어주겠다는 쪽의 호의는 이미 정중하게 거절을 했으니 다시 부탁을 하기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래 오늘 하루만이라도 자유여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고 생각없이 아까 호텔에서 역까지 태워준 기사에게 전화를 다시 걸었습니다. 제 번호가 뜬 걸 본 듯 받자마자 '네, 선생님 무슨 일이십니까?'라고 물어왔습니다. 아마 뭔가 놓고 내린게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 모양입니다. 

제가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오늘 그의 이름은 본명대신 장기사(張师傅)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밥: 혹시 충칭가봤어요?
장: 아니요, 무슨 일이신가요?
밥: 내가 충칭을 가는데 기차편도 없고, 버스도 없어서 택시로 갈까해서. 기사님이 인상이 좋아서.
장: 제, 제가 그렇게 먼데를 안가봐서요. 저, 회사에 전화를 걸어봐도 될까요? 
밥: 편할대로 해요. 요금은 얼마얼마를 줄테니. 고속도로 요금은 왕복으로 따로 주고.
장: 네, 곧 전화 드리겠습니다.

제안한 요금은 우리나라돈으로도 싼 돈은 아닌데, 중국쪽에서 지불을 해주는 거니 부담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모범택시기사분들한테 들은 얘긴데, 인천에서 용인 이런 코스는 아주 흔하고 인천공항에서도 포항이나 울산 광양 이런데를 택시로 가는 외국손님들이 가끔 있다고 합니다. 외국으로 출장을 간 사람이 그나라 사람보다 먼거리를 택시로 이동하는 경우가 아무래도 많이 있겠구나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데 금방 전화가 왔습니다. 

장: 선생님,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회사에 얘기해서 가도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지금 어디 계세요?
밥: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사이의 횡단보도 앞인데, 얼마나 걸릴까?
장: 지금 시내가 막히니까 한 이십분 걸릴겁니다. 역앞에 보시면 경찰차 하나가 서있지요?
밥: 응 보여요. 
장: 선생님은 외지인인게 티가 나니까 가능한 한 경찰차 옆 가까이에서 기다려 주세요. 그럼 안심이 되지요. 빨리 가도록 하겠습니다. 도착할 때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제서야 제모습을 둘러보았습니다. 오찬행사가 있어서 양복을 입었었는데 짐을 풀기가 귀찮아 그대로 나온 모습이었습니다. 넥타이는 매지 않았지만 나름 깔끔한 차림에 반짝이는 리모와 캐리어와 투미 쇼울더 백을 든 행색은, 제가 생각해도 역전에서 이십분씩 두리번거리기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엔 늘 청바지에 미키티셔츠 같은 차림으로도 잘 다니는 밥과술인데 오늘은 희한하게 됐구나 싶었습니다.

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삼백킬로 조금 넘는 걸로 나와있으니 백킬로 제한속도를 살짝 넘기며 조금 더 밟으면 한 세시간이면 가겠네, 생각한 건 오산이었습니다. 뒷이야기입니다만, 장기사는 아무리 다른 차가 씽씽 달려도 가는 내내 백킬로를 넘은 적이 없었고 터널같은데 들어가서 60킬로라고 표지가 있으면 정확하게 60킬로로 갔습니다. 한마디로 기가막힌 모범기사에 준법기사였습니다. 예상보다 10분이나 더 넘어서 드디어 그가 도착했습니다. 그가 나와서 얼른 제 짐을 들어서 조금전에 꺼냈던 트렁크에 다시 집어넣었습니다.

장: 죄송합니다. 오기전에 가스를 충전하고, 타이어도 점검하고 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먼길을 가기전이라.
밥: 잘했어요. 가다가 피곤하면 쉬어요. 급하게 달리지말고.
장: 물론입니다. 안전이 제일이니까요.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사실은 택시를 시작한지 7개월 밖에 안되었습니다. 이렇게 멀리 가보긴 처음입니다.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밥: 영광은 무슨? 돈받고 손님 모시는 건데.
장: 저도 충칭은 처음 가보는 거 거든요. 아, 걱정은 마십시오. 내비게이션으로 길은 다 찾아보았구요. 실수하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출발을 하였고, 막상 길을 나서서 경쾌한 고속도로를 달리노라니 기차를 못타게 된것, 부득부득 쾌적한 차를 거절한 것 등 후회스러웠던 걸 다 잊고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게 즐거웠습니다.

밥: 어디 출신이오?
장: 미앤양(棉陽)입니다. 쓰촨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지요.
밥: 청두에 온지는 몇년이고?
장: 9년 되었습니다. 제가 좀 사정이 특이합니다. 제가 85년생으로 금년에 서른입니다. 스무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때 마흔이셨습니다. 혼자 사시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라서 제가 자꾸 재혼을 하시라 강력하게 권했습니다. 어머니는 결국 몇해 뒤에 좋은 분 만나서 지금은 다른 지방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다. 

자기는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해에 상경하여(쓰촨의 작은 도시에서 청두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건축시행하는데서 배관 전기공사 하청받는 조그만 회사에서 자리를 잡아 칠년동안 일하였다고 합니다. 부동산 붐이 꺼지고 건축경기가 안좋아서 택시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칠년전에 결혼을 하여, 지금 세살된 딸아이가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밥: 부인하고는 어떻게 만났나요?
장: 먼 친척 아저씨가 청두에서 베개, 이불 같은 걸 중간단계에서 받아다가 가공하는 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놀러갔다가 거기서 일하는 아가씨에게 한눈에 반해서 사귀게 되었습니다.
밥: 음, 연분이로구나. 같은 동향?
장: 아뇨. 더양(德陽)출신입니다. 
밥: 같이 맞벌이를 하나요?
장: 네, 집사람은 보험을 합니다. 그런데 월급이 나오는게 아니라 실적에 따라 돈이 나오는 거라, 처음엔 친구 친척들이 들어줘서 괜찮았는데 지금은 힘듭니다. 한달 수입이 천위안(18만원) 남짓합니다.
밥: 아이는?
장: 장인, 장모님께서 봐주시고 계십니다. 두분은 농민이십니다.

자기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가하셔서 장인장모님을 부모님처럼 모시고 살아서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장인장모님이 아이를 봐주고 집안일도 해주셔서 신세지지 않으려고 다섯식구의 식비 생활비를 다 자기가 낸다고 하더군요. 자신의 어깨에 네명의 딸린 식구가 얹혀있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가고 힘이 들지만, 일끝나고 돌아가면 달려나오는 세살배기 딸의 웃는 모습에 모든 피로가 가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고있는 책임을 다하려면 다치거나 병들면 안되니까 반드시 신호도 지키고 안전운전에 힘쓴다고 하였습니다.

밥: 둘이서 맞벌이를 하면 그런대로 저축을 하겠네?
장: 네, 그래야 할텐데 사실 저축을 많이 못합니다. 재작년에 90평방(30평)짜리 아파트를 청두시내에 샀거든요. 40만위안(칠천만원)짜리인데 대출 20만위안끼고 사서 상환금도 나가구요. 무엇보다 딸아이가 세살이 되어서 교육비가 많이 듭니다.
밥: 교육비 많이 드는건 어디나 다 똑 같구나.
장: 사실 집을 무리해서 시내에 산 것도 딸아이가 청두시내에 호구를 얻어서 좋은 학교에 취학을 할 수 있게 하려구요. 장인어른은 호구등록이 되었고 저희 부부는 아직 고향에 호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20대 초반에 결혼을 하고, 아이는 계획하여 스물일곱에 낳고, 다섯식구의 가장노릇을 하면서 딸아이만큼은 잘 가르치겠다고 온갖 고생을 마다않는 이 젊은이를 보며 저나이에 나는 뭘 했나 생각을 해보니 반성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밥: 거북하면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한달 수입이 얼마나 되나요?
장: 택시 한대에 기사 두명이 파트너가 되어서 24시간 교대로 일을 합니다. 한사람이 한달에 보름 일하는 거지요. 하루에 사납금이 4백위안(7만5천원)입니다. 그러면 보름이니까 월 6천위안을 회사로 넣는건데 그러면 천위안이 기본급으로 돌아옵니다. 하루 영업하는데 사납금에 연료비, 수리비, 세금 등 내려면 하루 6백위안(십만원)을 벌어야 본전입니다. 그리고 그 이상 버는게 제 수입이지요.
밥: 그래서 월수입이 얼마나 되나?
장: 5천위안(90만원) 정도 됩니다. 집사람하고 합해서 월 6천위안(백십만원) 수입인 셈입니다.
밥: 저축을 많이 못하겠네요.
장: 네, 기껏해야 한달에 2,3천위안밖에 못합니다.

은행대출 갚고, 아이 비싼 교육비 내고, 밥먹고 생활하고 그런데 수입의 절반에 가까운 2,3천위안이나 저축을 한다니 제 셈본으로는 상상이 안갔습니다만, 갑자기 더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부드러운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었습니다.

밥: 부인이랑 영화같은 것도 보러가요? 
장: 네, 일반영화관은 못가구요. 인터넷 잘 찾아보면 무슨 이벤트 같은 걸로 아주아주 싸게 표가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위안(180원) 이런 것도 있어요. 그런 거 찾아서 몇번 본 적이 있습니다만. 

일원 이원에 바들바들 떨면서 돈을 절약하며 사는 모습이 감동스럽기도 하고 좀 안쓰럽기도 해서 다시 화제를 바꾸었습니다.

밥: 집에서 요리는 누가 하나요?
장: 하하, 저희 네사람이 다하는데요. 장인어른이 제일 잘하십니다. 그다음이 집사람인데 인터넷을 보면서 레시피를 배우고해서 많이 늘었습니다. 언젠가는 장인어른을 제칠 것 같습니다. 그다음이 장모님이시고, 제가 제일 잘 못합니다.
밥: 장인 어른이나 집사람이 무슨 요리를 잘 하나요?  
장: 글쎄요. 그냥 이거저거 합니다.

저는 이때만해도 그냥 이거저거라는게 워낙 많아서 그렇게 표현한 거라고만 여기고 넘어갔습니다.

밥: 쓰촨요리가운데 좋아하는게 뭐있어요?
장: 글쎄요.. 후이궈러우요. 언제 먹어도 맛있지요. 
밥: 또, 뭐요?
장: 갑자기 생각이 안나네요.
밥: 잘 생각해 봐요.
장: ...그냥 아무거나 잘 먹으니까요. 
밥: 그래도 좋아하는 뭔가가 있겠지.
장: 먹는거에 대한 요구(要求:욕구)가 별로 없다고나 할까요.

미련한 밥과술은 이때까지도 자신이 얼마나 무식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차는 150킬로 이상 달려서 네이쟝(內江)이라는 도시로 빠져나가는 인터체인지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을 꺼냈습니다.

장: 선생님, 여기서 잠시 나가서 연료를 넣고, 휴식을 좀 취하고 가면 안되겠습니까?
밥: 아, 물론 좋아요.

계속 가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주유소에서 넣고 가면 될 것을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그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시내로 빠져 나가니 6킬로나 가서야 나왔는데 CNG라는 이름의 가스연료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LNG라고 쓰는 연료아닌가 싶었습니다. 고속도로 연변에는 가스충전소가 없다고 하네요. 구석진곳에 있는 충전소에 도착하니 차들이 줄을 서서 늘어서 있는데 아무리 봐도 30분은 훨씬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내가 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 같으니 그가 안절부절 못하고 미안해 했습니다.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장: 두가지 연료를 사용하게 되어있어서 급하면 휘발유를 사용하면서 가면 되는데, 그러면 연료비가 서너배가 비싸게 먹힙니다..
밥: (그제서야 눈치를 채고) 아니 괜찮아요. 급할게 뭐가 있나. 이 덕에 이렇게 새로운 곳에도 와보고. 

아래가 40여분을 기다려서 시골 가스충전소에서 연료를 넣는 택시의 모습입니다. 이제와서 밝히는 거지만 택시가운데에서도 참 털털거리는 차량이었습니다. 사람이 좋아서 타기는 했지만 참 오랫만에 수십년전 한국을 생각하게 하는 승차감이었습니다. 반바지 차림에 뒷짐을 진 이가 장기사입니다.



가스를 채운 차는 달리고 달려 드디어 충칭가까이에 도착하였습니다. 대도시가 가까워지자 차가 조금씩 가다서다하는 구간이 있었는데 장기사는 그 때마다 엔진을 껐습니다. 아이들링 절대 금지!를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인 거지요. 

  
도착지점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배가 고팠습니다. 

밥: 배 고프지않아요?
장: 아니 전 괜찮습니다.
밥: 어차피 돌아가기전에 뭔가 먹어야 할텐데, 나랑 같이 충칭훠궈나 먹을래요?
장: 아니,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밥: 나도 어차피 뭔가 먹어야 하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친구 불러내기도 그렇고 동무해서 같이 먹지?
장: 아니,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밥: 내가 정말 잘하는 원조 훠궈집을 아는데...
장: 아닙니다. 전, 안먹고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사양을 하는 사람을 강요하기도 뭐해서 그럼 그만두지뭐하고 말았는데 가만히 보니 그가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긴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눈치를 채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니까 짧게 요약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는 외식을 변변히 해본 적이 없는 가난한 젊은이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별거아닌 식당도 그에게는 마음이 불편하고 심지어 돈이 많은 것 같은 손님(사실 절대 아니지만 ^^;;)이 좋은데를 가자니 그곳은 더욱 겁이 나는 매우 어려운 장소였던 것이지요. 

지그소퍼즐을 맞추듯이 복기를 해보니, 그가 후이궈러우말고 다른 메뉴를 답하지 못한 것은 생각해 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는게 별로 없어서라는 걸 뒤늦게 알게되었습니다. 정말로 못배우고 가난하게 자라다가, 결혼을 하여 딸아이만큼은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고생을 고생인줄 모르고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의 운전하는 모습을 뒷좌석에 앉아 보면서 많은 감회에 사로잡혀 목구멍이 뜨끈해졌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오랜 세월 중국을 다니면서, 나름 중국을 꽤 잘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게 아주 일부분이로구나 하고 새삼 느꼈습니다. 우선 제가 아는 숱한 중국사람들은 대개 교육도 많이 받고, 돈도 많고 그런 쪽입니다. 청두에서 만나서 며칠을 마주한 사람가운데에는 한국사람들, 아니 미국부자들이 들어도 깜짝 놀랄만큼 부를 쌓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옛위인 말씀에 세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선생이 있다더니, 오늘은 젊은 선생을 만나 많이 배우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택시는 예약해 놓은 호텔에 도착하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약속한 대금을 지불하고, 따로 돈을 조금 더 건네주었습니다. 같이 식사를 못해서 섭섭하니 가다가 꼭 간식 사먹고, 집에 돌아가서 부인하고 후이궈러우 사먹으라구요. 그가 인사를 공손하게 하고 떠나갔습니다. 시간은 자정이 넘어있었고, 저도 혼자 나가 맛있는 거 먹을 욕심이 싹 가셔서 호텔 앞 편의점에서 땅콩, 소고기 말린 것, 컵라면 이렇게 사다가 맥주한병과 함께 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눈을 뜨니 전화기에 문자가 와있었습니다. 발신 시각은 아침 5시 43분이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잘 도착했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겁게 여행 마무리하십시오.' 이래서 저는 청두에 친구가 또 한명 생겼습니다. 
   


좀더 천천히 먹고 좀더 오래 잡시다 (재) 이런저런 이야기


며칠전 업무상 다른 일로 OECD 통계를 찾아볼 일이 있었습니다. 통계라는게 숫자를 잘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숨어있지요. 약 사년반전에 이곳에서 발표하는 통계를 근거로 한국사람들의 수면시간이 부족한 것 같다는 포스팅을 올린적이 있었습니다. 아래에도 소개했지만 oecd.org 로 들어가 society at a glance 를 치면 재미있는 통계들이 나옵니다. 혹시 그사이에 변했나 싶었고, 달라진게 있으면 업데이트나 해볼까 해서 찾았더니 그대로 있었습니다. 해마다 하는 조사가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서 큰 차이가 없겠거니 하고 다시 소개합니다( 사실은 개인 살빼는 얘기 밀어내기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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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이 너무 잠을 안자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밥도 너무 빨리 먹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한국이 OECD에 가입한게 96년이니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YS정부 때였는데 언론에서 아시아 40몇개국 가운데 두번째 가입이다 뭐다하면서 떠들어 대서 우리나라가 선진국대열에 진입했나보다하고 알았습니다. 

그리고 일년뒤 'IMF사태'가 터졌습니다. 곧이어 DJ가 대통령 당선자가 되자마자 미국 재무차관을 비롯한 세계 금융계에서 쎈 사람들이 연일 찾아와 이런저런 요구를 합니다. 그 가운데 OECD가입당시 약속하고 이행되지 않은 여러 사항들을 조속히 지키라는 대목도 있었습니다. 그런 보도를 보고서야 순진한 저는 비로소 아, OECD는 그냥 가입하는게 아니라 이것 저것 치러야 할 댓가가 있는 거구나 하고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오늘은 비싼 댓가를 치르고 가입한 OECD이니까 음식블로그에서도 그 통계를 조금이나마 활용해보자는 취지로 올리는 포스팅입니다. OECD, 경제개발협력기구, 이 기구가 여러가지 통계를 많이 냅니다. 갖가지 재미있는 통계를 언라인으로 들어가서도 볼 수가 있으니까 시간나시는 분들 찾아보세요. oecd.org 홈피에서 factbook 하고 society at a glance 라는 항목치시면 세상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계로 보기 쉽습니다. 그럼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사람이 무릇 건강하게 살려면 잘먹고 또 잘자야 합니다. 사람은 며칠 굶어도 살지만, 며칠 잠못자면 못산다고 하지요. 고문중에 제일 혹독한게 잠안재우는 고문이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자는 행위'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지요. 이건 전 세계 어느나라 언어도 공통입니다. '손만 잡고 잘께'...여기서 잔다라는 의미,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지요. 


위의 표를 보세요. 그런데 이렇게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자는 시간인데, 한국사람들이 제일 조금 잡니다. 한국사람은 하루 평균 469분, 그러니까 7시간 50분을 잡니다. 제일 오래 수면을 취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8시간 50분으로 거의 9시간 가까이 잡니다. 한국인보다 1시간이나 더 자는 거지요. 
 
오늘 할 일을 생각하면 즐거워서 매일 새벽 3,4시면 눈이 떠졌다는, 고 정주영 현대회장께서 들으시면 대노할 이야기겠지만 사람이 잠은 제대로 자야지 정신적으로 여유도 생기고 행복도 느끼고 그런거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사람들도 한국사람만큼 덜 자는 것 같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자식들 챙기는 건 한국보다 훨씬 덜하니까 아마 출퇴근 시간이 길어서 그런 것 아닌가도 싶습니다.

위의 표는 하루 살면서 먹고 마시는데 쓰는 시간입니다. 한국은 오이씨디 회원국가운데 중간수준입니다. 제일 오랜 시간을 쓰는 건 역시 또 프랑스로 2시간 15분입니다. 이태리 일본이 각각 114분 117분으로 두시간 가까이 됩니다. 이건 솔직히 부럽습니다. 음식이 맛있는 나라가 아무래도 식사시간이 긴 것이겠지요. 맛있게 얌냠 먹는 시간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거니까요. OECD회원국이 아니라 통계에 안잡히는데, 중국사람들이 먹고 마시는데 얼마나 시간을 쓰는지 궁금하네요. 

한국은 96분입니다. 하루에 먹고 마시는 시간이 한시간 반인데 아마도 아침 점심은 짧고 저녁시간이 긴 거라고 추측합니다. 밖에서 친구들과, 직장동료들과 한 잔하며 밥먹는 시간도 들어 있을테니  집에서 먹는 식사시간은 좀더 짧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아무튼 하루에 30분만 더 먹고 마시는데 쓰면 우리도 진정한 '식생활의 선진국'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아니 새삼 놀랍지도 않은 사실은 북미 3개국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각각 74분, 69분, 66분으로 최하위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패스트푸드'의 천국인 만큼 빨리 빨리 먹게 되고, 또 독신자들이 많아서 혼자 먹을 때는 대충 빨리 먹고 때워서 그런 거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이 '식생활 후진국'의 식사시간은 프랑스의 거의 절반 밖에 되지 않습니다.
 
길게 자고, 오래 먹는게 행복한 거라고 기준은 누가 세웠냐고요? 그런거 아닌가요? 밥은 허기를 면하고, 영양만 보충하면 되는 거니까 얼른 얼른 먹어치우고, 죽으면 영원히 잘테니 짧은 인생 살아서는 잠을 아껴 일하자, 이런 분들은 어차피 제 블로그 안보실테니 그냥 마음놓고 쓰는 겁니다^^    

그럼 맺기 전에 맨 위의 그림에 대해서 잠깐 설명하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제가 좋아하는 미국화가 Edward Hopper의 작품인데 제목은 'Nighthawks' 입니다. nighthawk란 밤에 활동하는 매를 말하는데, 밤에 늦게 까지 활동하는 야행성 사람을 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심야에도 영업하는 Diner의 모습입니다. 다이너란 따로 테이블도 놓여있지만 카운터에 걸쳐서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게 특징인 미국 특유의 간이 식당입니다. 프랑스에 카페나 브라세리, 이태리에 피짜리아, 트라토리아, 영국에 펍이 있다면 미국에는 다이너가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그림은 참 미국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적이 드문 한밤중 도심의 어딘가에 자리잡은 다이너에 남아있는 손님 몇 명. 지나칠 정도로 밝은 실내의 조명이 밖에 까지 뿌려져 더욱 을씨년스럽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커피만 마시고 집에 돌아갈지, 샌드위치를 시켜 빈 속을 채울지 이런 저런 상상을 하게 되는 그림인데, 그냥 처음 본 순간 다가오는 느낌은 '외로움'입니다. 

충분한 수면과, 오랜 식사시간...을 생각하니 갑자기 반대되는 상황으로 문득 이 그림이 떠올라 올려봅니다. 그럼 물러갑니다. 주말 즐겁게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나라 사람들 식사시간이야기가 들어있으니 음식밸리로~^^


덧글: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덧글도 많이 달아주셨네요. 덧글이 45개 달린 시점에서 추가로 한 말씀드립니다. (2015년 수정: 당시 덧글은 원래 포스팅에 있습니다. 공개로 돌려놓았습니다) 

저도 이 통계를 보고 한국사람들의 수면시간이 생각보다 길구나...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도 위에 나온 평균시간 못자는 것 같고, 주변을 봐도 다 그 이하로 자는 것 같아서요. 어떤 기준으로 조사를 했냐에 따라 시간은 다를 수 있겠지만, 다만 같은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이니, 한국사람들이 외국사람에 비해 제일 조금 자는것은 사실이겠지요.

남들 푹잘때 잠안자고 이룩한게 오늘날 한국의 경제성장이고, 국력신장이다 이러면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반성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지나친 경쟁과 억척스러움으로 우리 모두가 삶의 여유를 잃고 사는게 아닌가 함께 생각해보자고 올린 포스팅입니다. 혹시 수험생 여러분들 이 글 보시고 푹~ 주무시다 결과 안좋으면 책임못집니다. (옛날엔 '4당5락'이란 말도 있었습니다. 네시간 자면 합격, 다섯시간 자면 불합격...입시경쟁은 예나 지금이나 무섭습니다!)  



뱃살을 빼기위한 실험보고서(2) 밥과술네 집이야기


전설속의 유니콘처럼 어디엔가 있다는, 먹어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생체실험의 연구대상이 되어 마땅한 아주 특이한 체질의 소유자를 빼고 얘기합니다. 우리 모두는 사용하고 남은 소중한 영양분을 없을 때를 대비해서 알뜰하게 저축하도록 진화되어온 성실하고 근면한 DNA덕분에 포동포동 살이 찝니다. 물론 운동과 신진대사에 필요한 양 이상을 섭취할 경우에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에 따라 피둥피둥 찌기도 하고 디룩디룩 찌기도 하고, 묘사하는 단어는 다를 수 있지만 그냥 흰말 엉덩이나 백말 궁둥이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간단히 얘기해서 많이 먹어서 찌는 겁니다.  

똑같은 서울시내인데도 강남역 명동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 따로 있듯이, 우리 몸에도 살이 찌면 지방으로 바뀐 잉여 영양분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부위가 있습니다. 배가 그중 하나이지요. 조금씩 조금씩 솟아나오는 배를 보면 참 먹는대로 살로 가는구나 싶다가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몸은 정말로 참 잘 만들어져 있는데 오죽하면 이럴까 싶기도 합니다. 따로 원망할 데가 없는 거지요. 

일년에 3킬로씩 3년을 살이 찌면 체중이 9킬로가 느는 겁니다. 십년이면 30킬로가 느는 거구요. 그런데 하루에 10그램씩만 살이 찌면 일년이면 3.65킬로그램이 찝니다. 가축하고 비교해서 좀 그렇습니다만 닭이 4그램, 소가 9그램의 먹이를 먹고 1그램의 체중이 는다고 어디서 보았습니다. 

밥, 김치찌개, 파전, 삼겹살, 순대, 파스타, 햄버거, 감자튀김, 탕수육, 짜장면, 와인, 막걸리, 소주, 맥주, 치킨, 떡볶이, 케익, 빙수, 아이스크림, 쥬스, 콜라, 라떼... 이런 걸 먹으면서 하루에 백그램씩만 과식을 하면 일년에 3킬로, 십년에 30킬로 찌는 건 이론상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 막상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 몸은 적정 체형과 체중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데 워낙 몸의 주인인 우리가 그런 조절능력을 넘어서서 과식을 하니까 살이 찌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뱃살을 빼기 위해 식생활을 조금 바꾸기 시작했다고 지난번에 포스팅(1)을 올린게 5월 3일 이더군요. 일주일만에 3킬로에서 4킬로가 줄었다고 적었고 일주일쯤 뒤에 다시 (2)를 올리겠다고 했는데 지금 날짜를 세어보니 12일이 지났습니다. 좀 늦어진 이유는, 내가 내 뱃살 빼려고 덜 먹겠다는게 유세부릴 일은 전혀 아니고 좀 남세스러운 것도 같고 해서 머뭇거린 데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이렇게 후속을 올립니다.

위의 사진은 소고기무국에 밥을 말은 겁니다. 국안에 든 밥알의 크기를 보시면 알 수 있듯이 작은 그릇입니다. 5월 3일날 집안에 제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지와 무를 넣고 끓인 제사탕국이 많이 생겼습니다. 제사보시러 오신 분들로 부터 나름 칭찬을 받는 밥과술표 소고기무국입니다. 

제사에 올리는 탕국은 다시마로 국물을 살짝 내고 거기에 따로 한번 끓여 핏기를 우려낸 양지를 무와 함께 넣고 끓입니다. 제사에는 마늘같은 향신채를 안쓰니까 나중에 제사를 지낸 뒤에 마늘은 따로 넣고 먹기전에 다시 한번 끓입니다. 그런데 맛도 중요하니까 마음속으로 조상님께서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끓일때 양파랑 파는 넣습니다. 양파한알을 까서 통으로 넣고 대파도 큰 거 두뿌리를 세토막 내어 넣고 함께 끓이다가 적당한 때에 건져내서 국물에 맛을 더해 줍니다. 그리고 무명주머니에 통후주, 월계잎, 파슬리, 클로브를 아주 소량 넣어서 끓이다가 얼른 건져냅니다. 전통에서 벗어난 레시피지만 국이 맛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정도에서 벗어난 거지요. 쥬스가 옆에서 보다가 맛을 보더니 '맛은 좋은데 제사탕국은 제사탕국 하는 대로 하세요. 어려서 늘 먹었던 그 맛을 지키세요'라고 점잖게 한마디 하였습니다.

아, 얘기가 레시피로 흘렀군요. 하고자 하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이걸 끓여놓고 아침마다 여러날 먹었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된건데 저녁을 조금 먹고 자니까 아침에 일어나니 배가 고프더군요. 와, 세상에 아침에 배가 고프다니 하고 신기해 하다가 뒤집어서 그동안 얼마나 저녁에 과식을 하고 잤길래 아침에 배가 안고팠던 걸까에 생각이 미쳐서 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래도 같은 메뉴의 사진입니다. 밥의 양은 한 삼분의일 공기 정도 될라나요. 그런데 먹으면 허기가 가시고 든든합니다. 참고로 밥을 조금 먹게 되니까 평소보다 김치도 덜먹게 되고 해서 나트륨 섭취도 따라서 좀 주는 것 같았습니다. 


탕국에 밥말아 먹으면서 김치대신 방울토마토를 먹기도 했습니다. 나름 괜찮았던 것 같았습니다. 집을 떠난 쥬스가 가기전에 냉장고에 방울토마토를 잔뜩 사다놓고 '매끼 열개 이상 드세요. 그리고 인증샷도 톡으로 보내줘여'라고 부탁인지 명령인지 아리송한 말을 남겨서 충실히 따라하는 밥과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바베큐 파티에 가기도 했습니다. 


탄수화물을 안먹어야지 하고 고기, 새우, 소지지 등을 상추에 생마늘, 고추 이런것 하고 같이 싸서 맥주와 함께 먹었는데, 많이 먹었는지 다음날 체중이 전날에 비해 700그램이나 늘었습니다. 



옛날에는 점심에 샐러드 먹고 그러는 건 20대 초반 아가씨들한테만 해당되는 거라고 여기고 살았는데, 저도 이렇게 점심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요새는. 



설렁탕에 소주가 마시고 싶어서 하루 저녁 동료들을 꼬셔서 경복궁 부근까지 갔습니다. 백송이라는 집인데 이유는 그집 탕에는 고기가 많아서 따로 수육을 안시켜도 될 것 같아서였지요. 수육시키면 술도 꿀떡꿀떡 넘어가고 해서 과식으로 이어지니까요. 



탕안에 들은 고기와 국물, 깍두기를 안주로 소주를 아껴아껴 마셨습니다. 밥과술이 먹은 양은 2/3병이었습니다. 밥은 아래처럼 아예 동료의 밥에서 약간 얻어왔는데 이것도 안먹고 식사가 끝났습니다. 배가 적당히 불러서요.
 


이틀 연속해서 고기를 많이 먹었더니 체중이 이틀 전보다 1킬로 이상 늘어서  그 다음날은 집에 일찍 들어와 견과류하고 말린 육포를 저녁으로 먹었습니다. 혼자 집에서 다시보기로 개콘을 보면서 먹고 있노라니 십여주만에 60킬로 가까이 감량을 한 개그맨이 나와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출장입니다. 두려웠던 현실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거의 매끼가 손님과의 약속이고, 저녁에는 술도 마십니다. 제가 맛있는 음식과 술을 싫어하는 사람도 전혀 아닌데, 일이니까 맛있게 먹고 마셔야해하는 합리화의 구호가 머리속에서 맴도는 판에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래가 도착한 날 첫끼 점심식사입니다. 열심히 선방해서 맛있게 먹으면서 밥을 조금만 먹었습니다.


주말이 되어 저녁 한끼를 혼자 먹게 되어서 아래와 같이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시우마이와 쵱펀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오믈렛하고 야채를 먹었습니다. 옛날에 같이 출장간 동료중에 여성이라도 있고 그녀가 호텔 아침식사에서 아래처럼 담아오면 '웬 풀떼기야, 토끼도 아니고' 이렇게 놀리던 기억이 살아나서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모처럼 운동화하고 운동복을 챙겨가서 저녁에 술먹을 일 있는 날은 오전이나 오후에 시간을 내어 한시간씩 운동을 하였습니다. 한 사십분 걷고 일이십분 근력운동을 하였지요. 그렇게 걸어도 소모칼로리가 겨우 400정도라고 나오는데 이게 햄버거 셋트에 딸려나오는 감자튀김하고 비슷한 열량입니다. 



그리고 양고기, 소고기를 데쳐먹는 샤부샤부의 원조, 솬양러우(涮羊肉) 플러스 꿀같은 고량주. 

산시(山西)성 요리에 신선한 과일쥬스, 맥주, 와인, 고량주를 먹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욕실에서 확실히 알았습니다. 단 하루 이틀만에도 허리와 배에 눈에 띄도록 살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을. 

이런 카페에 가서 파니니를 점심으로 먹은 적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온 젊은이와 간단하게 먹자고 간 곳인데 생각보다 헤비하게 먹은 것도 같았습니다. 밀가루로 만든 빵맛이 이렇게 좋은 건지 아주 간만에 맛보며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호텔 피트니스 센터마다 기기가 좀 다른데 아래는 모니터에서 세계 이곳저곳의 코스를 선택해서 걷거나 달릴 수 있는 러닝머신인데 처음해봐서 그런건지 재미있더군요. 저는 독일 뮨헨하고 뉴질랜드 어디하고 두군데를 달려, 아니 걸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간단하게 먹은 점심은 눈에 익은 메뉴의 반복입니다. 

돌아와서 체중계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저녁에 재면 4킬로, 아침에 재면 5킬로가 줄었더군요. 그러니까 열흘전, 지난번 포스팅때보다 일킬로가 줄은 겁니다. 출장에서 이렇게 먹고 마시고 일킬로가 줄었으니 만족하기로 하였습니다. 순전히 뱃살얘기에 사진만 늘어놓아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10킬로 감량때까지 간간히 뱃살포스팅도 계속할 예정입니다~



맛있는 폭탄: 핫 샌드위치 미국이야기


요새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는 음식의 칼로리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포스팅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최근 들어 체중감량(체지방 감량)을 시도하고 있거든요. 그러다보니 손에 집히는 식품들은 뒷면에 기재된 성분표와 칼로리를 보게 됩니다. 몰랐는데 생야채, 과일, 생고기 이런 것 아니면 거의 전부 칼로리가 적혀있더라구요. 막연히 그러려니만 했지 표시제가 이렇게 철저하게 보급되어있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나서 평소에 맛있었던 음식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니 다 엄청 칼로리가 높은게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버거킹의 치즈와퍼셋트는 1200칼로리가 넘고, 맥도날드의 빅맥셋트도 1000정도이고 더블쿼터파운드도 1200이 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파는 엄청난 크기의 햄버거, 치즈버거는 도대체 칼로리가 얼마란 말인가? 궁금해졌습니다. 옛날에 하나에 10,000칼로리짜리 햄버거를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었지요. 저도 그가게가 라스베가스로 옮기기전에 아리조나에서 2500칼로리 짜리로 한번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건 일회성이었으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러나 평시에 맛있게 먹었던 이런저런 음식이 다 칼로리 폭탄이었구나하고 되짚어보고 놀랐습니다.

저만 그런건 아닐테고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은 햄버거를 샌드위치보다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않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운데 햄버거는 따뜻한 음식이고 샌드위치는 찬음식이라는 것도 들어간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가운 음식을 덜 좋아하니까요. 저도 그래서인지 미국살때 핫샌드위치를 좋아했습니다. 핫샌드위치를 잘하는 집이 있으면 그리로 점심약속을 잡기도 하고 그랬지요. 그 가운데 최고의 칼로리 폭탄이지만 지금 당장 눈 앞에 있으면 먹을 것 같은게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입니다. 

위의 사진이 몬테크리스토 입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좀 낯선 분들께 소개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흰빵을 한장 놓고
그위에 햄을 석장 얹고
그위에 치즈를 두장 얹고
그위에 다시 빵을 한장 얹고
그위에 칠면조 햄을 석장 얹고
그위에 다시 빵을 한장 얹으면 샌드위치의 모양이 완성이 됩니다.
그걸 계란 풀은 것에 풍덩 담가 적신다음
끓는 기름에 노릇노릇하게 튀겨내어
접시에 얹고, 그위에 밀가루처럼 고운 슈가파우더를 듬뿍 뿌려서
옆에 수북하게 감자튀김을 곁들여 내면 완성! 입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접시뒤로 커피머그잔이 보일 겁니다. 그것과 비교하면 이 샌드위치의 크기가 꽤 크다는게 짐작이 가실 겁니다. 맛은... 배고플 때 눈앞에 놓여있다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먹을만큼 맛있습니다. 위의 집은 LA 웨스트헐리웃 선셋대로에 있었던 Duke's Coffee Shop 이라는 가게였습니다. 


안에는 평범한데 사진 반대쪽 벽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사인이 들은 사진이 가득 붙어있습니다. 전설적인 가수 도어즈의 짐모리슨, 탐 웨이츠, 재니스 조플린, 런어웨이즈, 존 벨루시 등의 단골이어서 음악계의 메카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젊어서 고인이 된 사람이 많네요. 이집하고는 상관이 없겠지만요... 이집은 아래 테이블마다 구비된 각종 소스 사진을 보아도 알 수있듯이 으시대지 않고 그냥 맛있게 먹으라고만 신경쓰는 집 같아서 마음이 편하기도 합니다. 팬케익도 맛있고 부리토도, 아침메뉴도 다 좋은데 저는 그저 몬테크리스토만 찾아서 이집을 다녔습니다.


체중이 10킬로 이상 빠지면 한 번가게되면 먹어볼까, 희망을 거는 의미에서 어제 찾아보았더니 재작년에 문을 닫았더군요. 그래서 엘에이에서 떨어져 있지만 이집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맛있었던 Cedar Creek Inn 을 찾았더니 거기도 문을 닫았네요. 여기는 제가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걸 안 어느 미국친구가 소개를 해 준 곳입니다. 라구나비치라고 한시간반 정도 자동차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곳인데, 역시 맛이 좋아서 여러번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몬테크리스토는 60년대 70년대 유행했던 메뉴라고 합니다. 사실 이 메뉴는 식당마다 조금씩 레시피도 다르고 맛도 다양하겠지요. 하지만 좋아했던 두집이 문을 닫았으니, 저는 이제 황홀했던 맛을 추억속에 간직하고 수절을 해야할까 봅니다. 아래는 구글에서 이미지 검색을 하여 캡쳐한 것 입니다. 


얘기나온 김에 좀 더 소개하자면 뢰벤샌드위치도 만만치 않게 칼로리만큼이나 맛이 좋습니다. 이름에서 보이듯이 빵, 드레싱, 치즈 이런게 좀 유럽풍인데 잔뜩 들어간 콘비프는 아무래도 미국풍이지요. 한 때 저와 일하던 미국친구 가운데 돼지고기를 안먹는 유태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선택으로 자주 가던 레스토랑(지금 생각해보니 코셔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이 웨스트우드에 하나 있었는데 그집의 뢰벤 샌드위치가 맛있어서 저는 거기가면 늘 그거만 시켜먹었습니다. 갈색빵에 스위스치즈와 콘비프 그리고 진한 드레싱이 어울리는 핫샌드위치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동부, 특히 뉴욕출신들은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뢰벤을 시켜먹으면 '진짜 맛있는 뉴욕 델리의 뢰벤의 맛을 모르고 이걸 맛있다고 먹다니 쯧쯧'하는 눈길을 주었던 기억입니다. 그러고보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멕라이언이 음식을 먹고 야릇한 신음소리를 내는 명장면에 등장하는게 바로 이 뢰벤일 겁니다. 그 집은 그걸로 유명한 집이구요. 제가 찍은 사진이 없어서 구글 이미지 검색을 싣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핫샌드위치는 필라델피아의 명물이라고 하고, 미국 전역 어디에서도 만날 수 있는 필리치즈스테이크 샌드위치 입니다. 이것도 칼로리가 장난이 아니죠. 저는 원조라는 집에 한번 간 것 포함해서 지금까지 다 합해서 먹어본게 몇번 안됩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줄창 이것만 찾기도 하더군요. 아래 사진을 보이듯이 우선 크기도 엄청 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처럼 무지막지 하지는 않지만 나름 맛있고 간단히 먹기에 좋아서 유명한 프랑스가 원조인 크로크무슈(Croque-Mousieur)를 소개합니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햄앤치즈 샌드위치를 지지거나 튀긴 메뉴인데 대중적인 메뉴라 카페에서 많이 팝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은근히 인기를 끌었던 Chef 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쿠바샌드위치, 파니니 등 핫샌드위치에 맛있는게 많은데 이런 건 그래도 어느정도 이성을 찾은 메뉴같기도 하고 해서 생략합니다. 탄수화물을 안먹는 요새, 자신에게 던지는 염장성 포스팅 하나 올렸습니다~^^


분식집의 추억: 쌀이야기(1) 우리나라 이야기


옛날 어느 분식집에서 일어났던 일이라고 합니다. 떡볶이하고 김밥이 사이가 안좋았더랍니다. 보스인 라면따거하고 사이가 좋다는 이유로 김밥이 유세를 떠는게 눈꼴사나워 떡볶이는 언젠가 단단히 매운 맛을 보여주리라 호시탐탐 기회만 보고 있었다지요. 그런데 김밥이 통만두, 쫄면까지 포섭하여 자기 세력권을 넓혀오자 위기의식을 느낀 떡볶이는 거사를 감행합니다. 

늘 한결같이 자기를 따르는 순진한 오뎅을 꼬셔서 김밥제거 작전에 들어간 겁니다. 
"그러니까 푹 잠들어 있을 때, 네 뾰족한 꼬챙이로 옆구리를 푸욱 쑤시란 말이야. 실수없이, 알았지?"
"응, 알았어. 푹 찌르고 오면 되는 거지?"
떡볶이는 생각만 해도 저절로 콧구멍이 벌름거려, 어금니를 지긋이 깨물어 표정관리에 들어갑니다. '그래...김밥, 네 이놈. 자기 전에 참기름이라도 잘 발라두거라. 오늘 밤이 바로 김밥 옆구리터져 죽는 날이다. 음하하...'    

새벽녘 날이 밝을즈음, 오뎅이 국물방울을 땀방울을 뚝뚝흘리며 헐레벌떡 뛰어옵니다.
"해치웠냐?"
"응, 혹시 몰라서 세번이나 찔렀어. 아, 무서워"
"고마해라 마이무따 아니가...뭐 이런 말은 안하데?"
"그게 뭔데?"
"아니야, 됐다... 어쨌거나 수고했다. 피곤할테니 더운 국물에 욕조에 몸이나 푹 담그고 좀 쉬어라" 

그런데 아침이 되자 떡볶이는 자기 눈을 의심합니다. 저쪽에서 김밥이 멀쩡한 몸으로 이리로 걸어오고 있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된거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김밥이 와서 말을 겁니다.
"야, 너 얘기 들었냐?"
"무,무슨?"
"간밤에 순대 형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대."


몇 년전엔가 듣고 한참 웃었던 이야기인데, 분식집 이야기를 쓰려다가 생각나서 옮겨보았습니다. 이 이야기 첨 들어보시는 분도 계시고 아시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되는데, 여기까지 읽어주셨으니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번 포스팅은 쌀이야기인데, 앞으로 몇번에 걸쳐 쓰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로 '분식집의 추억'이라는 글입니다. 옛날 이야기니까 그냥 누군가의 추억이야기겠거니 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위의 사진은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끓여낸 분식집 라면 입니다. 라면은 오랜 세월의 풍상이 서린 것 같은 양은냄비에 끓여야 제맛이라는 분들이 많지요. 그리고 뚜껑을 뒤집어 거기에 조금씩 얹어 후후 불어가며 먹어야 더욱 제맛이라고도 하구요. 쫄깃쫄깃한 면발의 맛을 살리려면, 센 화력으로 빨리 끓여내야 하고 그러자면 한 개씩 양은냄비에 끓이는 게 알맞다는 과학적 근거도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국민 거의 모두(50대후반까지)가 학창시절 분식집의 추억이 많을 겁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한참 클 나이에 다양한 메뉴의 분식집은 생활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였지요. 하교길에 친구들하고 군것질하느라고, 학원가기 전에 배를 채우려고, 학교 도서관이나 사설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잠시 나와서... 등등의 숱한 경우에 라면, 비빔국수, 쫄면, 통만두, 떡볶이...와 팥빙수, 아이스크림, 하드를 먹고는 했습니다. 
 
우리가 '분식'하면 우선 생각나는 건, 간단하게 먹는다, 저렴하게 끼니를 때운다, 다양한 간식거리같은 메뉴도 많다...뭐 이런 것 같습니다. 이 분식이라는 말은 주식인 쌀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던 시절인 60년대 초,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한 쌀절약정책에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분식(粉食), 말그대로 가루음식 그러니까 밀가루 음식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이 때 함께 나온 말이 혼식입니다. 혼식(混食), 그러니까 섞어먹는 밥이라는 뜻인데 다른 곡식보다는 보리를 섞어 먹는다는 뜻이 담겨있었습니다. 보리는 우리나라 기후에서도 파종과 수확기간이 달라 좁은 땅에서 이모작의 효과가 있는 곡물이니까요. 그래서 옛날부터 '보릿고개'라는 말도 나왔고 보리밥은 가난의 상징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주식인 쌀이 모자랄 때, 미국에서 잉여농산물인 밀을 아주 싸게(무상원조도 있었고) 들여올 수 있었으니까, 정부는 적극적으로 밀가루 음식을 장려합니다. 아니, 장려의 수준을 넘어서 분식과 혼식을 각종 행정 지시나 규제, 세무조사등 정부가 가진 여러가지 힘을 동원하여 밀어 붙입니다.

위의 신문기사는 63년 7월인데 "울상의 음식점" 이라는 제하에 정부가 식당에서 쌀밥 점심을 판매금지하여 음식점들이 당혹해한다는 기사입니다. 밀가루 배급을 못받으면 문닫을 판이다, 2할이 휴업상태이다, 중국음식점만 살찌게 됐다, 는 업자들의 어필과 함께 위반업소는 허가취소도 불사한다는 정부의 의지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옆에 보이듯이 쌀을 원료로한 청주, 소주, 막걸리 등의 제조를 금지하고, 떡,과자류도 제조를 감량하도록 조치하도록 하 판매를 금지하였습니다. 식량난이 심각하던 시기에 내린 조치였습니다. 

여담인데 위의 기사안에 요식업자의 설명에 따르면 '매상의 2/3가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사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당시 외식이란 대부분이 직장인들이 점심에 하는 거고 저녁은 모두 집에 가서 먹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67년 당시 정부는 혼식으로 외국산 쌀 도입의 억제를 하려고 범국민운동을 벌이기로 합니다. 음식점에서는 30%가량 잡곡을 혼용하도록 하고, 드디어 '혼식 도시락'이 등장합니다. 말은'운동'이지만 혼식이 이행되지 않으면 지방단체의 장에게 책임을 묻고, 업소에는 영업정지, 허가취소등의 강력제재가 따른다고 발표합니다. 

이 블로그를 읽으시는 분들은 대부분 경험이 없겠지만, 그래서 이렇게 학교에 보리밥 섞은 혼식 도시락을 싸가지 않으면 안되는 시절이 십년이상 계속 되었습니다. 장학사, 교육감등 상급기관에서 교장에게 지시가 하달되고, 교장실에서 각 학급 담임선생님에게 더 강력하게 지시가 내려가고, 담임선생님은 몽둥이를 들고 도시락 검사를 하고...엄마가 깜빡하여 보리 삶아놓은 것이 떨어지면(요즘분들 모르실지도 모르는데 생보리를 그냥 쌀하고 섞어서 밥을 짓는다고 보리밥 되는 거 아닙니다), 도시락 안가져가네, 마네 아침부터 울고 짜증내고 이런 풍경이 이곳 저곳에서 연출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이 조치는 78년에 폐지가 되었다가 다시 살아나는데, 실질적으로는 78년에 좋아진 쌀 수급사정으로 유명무실해집니다. 아래사진이 그 기사입니다.


다시 위 두번째 사진으로 돌아갑니다. '오십만이상 도시에 분식센터'를 세운다는 게 기사의 리드입니다. 바로 이 때부터 한국에 분식집 문화가 등장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분식센터'라는 말로 등장을 하였다가 나중에 센터라는 말이 슬그머니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그당시에 센터라는 말을 붙인 것은 분식을 장려하는 시범업소, 모범업소라는 의미를 포함한 새로운 양태의 식당이라서 영어를 사용하여 기존의 음식점과 차별화하려는 이유가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러면서 분식센터는 까다롭던 영업허가 취득을 쉽게 하여주고, 기존의 무허가 요식업소들이 분식센터로 전업을 하면 허가를 내주어 양성화 시켜주고, 나중에는 시가 관할하던 복잡한 허가절차를 해당 보건소장의 전결사항으로 간소화하는 등 당국의 지원과 격려를 받습니다. 대신 메뉴에는 쌀로 만든 음식이 들어가면 안되었지요. 그래서 라면과 가락국수가 메뉴의 으뜸이었고 그 뒤를 이어서 만두종류, 그리고 분식집스타일의 짜장면등이 인기였습니다. 그러니까 맨위에 소개한 '분식집 김밥 암살기도 사건'은 한참 뒤에 있었던 일이겠지요. 김밥은 분식집초기에는 메뉴에 들어갈 수가 없었으니까요.

학교앞에서 부부가 조그맣게 운영하는 분식집은 나중에 생긴 것이고 아주 초창기에는 대형업소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배우들도 분식집을 차렸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기사를 보시면 알겠지만 나중에 한국맥도날드를 세운 배우신영균씨와 원로배우 최은희선생이 군,양으로 불리던 시절입니다. 라면을 오픈한 날 하루에 6백7십그릇을 팔았다는 기사입니다. 69년 7월 기사입니다. 한국 최초의 영화에서 상호를 따서 '월하의 집'이라고 한 충무로의 이 분식센터는 배우들이 돌아가며 운영하여, 수익금으로 생활이 곤란한 퇴역영화인을 위해 쓰겠다고 기사에 나오는데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분식센터가 정부의 장려하에 크게 유행하면서, 청소년들에게는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장소가  됩니다. 분식센터는 각종 인테리어도 신경을 쓰고, 디스크 자키를 고용하여 신청곡을 받아 유행음악을 틀어주기도 합니다. 다방출입을 못하는 중고생에게 분식센터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몇년 뒤에 분식센터가 탈선의 온상이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학교와 학원주변의 일부 분식센터가 탈선의 온상이라는 기사입니다. 선정적인 음악을 틀고, 저속한 사진을 장식하여 분위기가 안좋은 곳에서 남녀학생들이 시시덕거린다, 이런 내용입니다. '유방을 거의 드러낸 문짝만한 여자사진과 남녀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진'을 걸어놓았다고 쓴 기사가 재미있는데, 당시 기자의 눈에는 '남녀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진'이 저속하다고 느꼈던 시절인가 봅니다. 

이 글 읽으시는 분들 한번 40대에서 50대에 걸친 형님이나, 언니 아니면 삼촌, 숙모(부모님은 실례?)한테 시침 뻑 따고 물어보세요. 옛날엔 분식센터에 디스크자키도 있고 그랬다면서요? 라구요. 그럼, 그러면서 신나서 추억에 잠겨 얘기해 주시면...백프롭니다. 노신 겁니다.

아, 쌀이야기를 하려다가 분식집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또 길어졌네요. 분식집 이야기는 하면 길어지지만 밀가루를 다룬다는 관점에서 좀더 다뤄볼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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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탄수화물을 줄인다고 밥, 빵, 면 이런 걸 좀 멀리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제대로 먹어야 정상인데 배에낀 지방을 빼느라고 균형을 잠시 깨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쌀에 대해서 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쌀소비가 계속 줄어서 재고쌀을 보관하는데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서, 생산자 관계 당국은 쌀소비를 늘일 방법을 찾는라 고심중입니다. 위의 글에 소개한 시대와는 백팔십도 다른 세상이지요. 소중하기 이를데 없는 쌀이 제대로 대접을 못받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밀음식도 그렇습니다. 갑자기 글루텐이란 단어가 나와서 밀가루 음식이 무슨 공공의 적인양 선전하는 광고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수십년동안 기름, 고기, MSG, , 설탕, 밀 등이 마녀사냥같은 사회분위기속에서 돌아가며 지탄받는 걸 보면서, 다 귀중한 음식들인데 먹는 사람이 잘못해서 생긴 부작용의 책임을 괜히 음식에 전가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좀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탄수화물에 대해서 쓸까 생각해보니 비공개로 돌린 글안에 옛날에 쓴 쌀이야기가 있는게 기억이 났습니다. 다시 올리고 그 뒤에 이어서 새글을 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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