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같은 음식일기 공개 포스팅

취미삼아 만화를 그리고 싶은데 거기에 쏟을 시간이 없다, 이런 사람들한테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앱들이 참 많이 나왔습니다. 물론 정성스레 그리는 만화하고는 거리가 멉니다만 그냥 '야매'로 만화를 그린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가는게 좋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인터넷이 안되어 세상과 단절이 됩니다. 그러면 그 순간에 뭔가 할 걸 찾아야 하는데 저는 요새 '야매 만화놀이'를 하고 놉니다.

위와 아래는 연습삼아 해보았는데 순식간에 시간도 안들고 뚝딱 사진이 만화처럼 변하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묘한 기분도 들고... 그랬습니다.
사리원에서 불고기를 먹었는데 불고기가 그림처럼 나왔습니다. 흑백으로 바꾸면 진짜 그린 것 같은 질감이 납니다.

앱으로 사진을 가공한 것 몇장 소개하는 걸로 음식일기를 대신하여 보았습니다. 나중에 시간나면 스토리있는 만화를 몇페이지짜리로 꾸며볼까 합니다. 직접 그린 그림도 섞어서요... 오늘은 이걸로 마무리합니다.

예술의 전당에 아는 분 공연이 있어서 갔는데 석양에 물든 건물이 예뻐서 밖에서 한참 구경하다 들어갔습니다.
 


동작대교를 지나갈 때 석양의 실루엣인데 단순하게 남은 선이 더 그럴듯해서...



남대문 시장에서 갈치조림먹고 명동을 지나가는 길입니다. 목적지는 을지로 3가 만선호프. 도착해서 생맥주에 노가리 안주. 바글바글한 인파가 뮨헨의 맥주집을 연상케 합니다.



돈카츠도 앱으로 가공하니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잘 튀겨진 돈카츠의 바삭바삭한 식감이 보이는 듯 하네요. 



베이징에서 혼밥을 한 저녁이 있었습니다. 궁바오지딩(宮保雞丁) 하나 시키고 물만두, 국수 시키고 흰밥 한그릇 시켰더니 웨이터가 주식을 세개나 시키십니까?라고 반문을 해서 아, 난 역시 탄수화물중독자였지 자각을 하였습니다. 술은 맥주와 이과두주...



남대문 시장 갈치골목에서 시킨 갈치조림과 생선구이입니다. 계란찜은 서비스.



사고 싶었던 책이 반디앤루니스 고속터미널 점에만 있어서 책을 사러 나간 주말입니다. 비가오는 날씨에 사진을 찍었는데 흑백으로 가공을 해보니 만화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안녕히 주무시고 즐거운 주말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고양이를 구조하다 공개 포스팅


40년 죽마고우로 지내는 싱가포르 친구가 있는데 그는 건축가 입니다. 글재주가 있어서 오랜 세월 신문에 칼럼도 연재하고 시집도 내고 그랬습니다. 요즈음도 일주일에 하나씩 칼럼을 연재하는데 내용이 고양이 이야기였습니다. 요즈음 SNS에서도 고양이 멍멍이 이야기들이 많이 올라와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 



본문에 五脚基라고 나오는데 말레이 싱가포르 쪽의 방언으로 중국어로는 치러우(騎樓)라고 합니다. 건물앞 도로 위로 비를 안맞고 그늘도 생기도록 만든 곳을 말합니다. 동남아나 대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건축양식입니다. 영어로 뭐라고 하나 찾아봤더니 베란다라고 되어있네요. 한국어로 베란다라고 번역하면 혼동될 것 같아서 '주랑'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아래 본문의 주랑은 위의 사진같은 곳을 말합니다. 다만 실제 그 일이 있었던 곳은 이렇게 낡은 곳이 아니고 더 모던한 곳일텐데 사진을 못찾아서 그냥 아무거나 퍼왔으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중국어 원문을 읽어보시고 싶은 분을 위해서 원문도 아래 실었습니다. 번역에 문제가 있으면 순전히 제가 부족해서 그런겁니다. 원문은 참 재미있고 유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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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구조하다


  오랫동안 가뭄과 혹서에 시달리던 뒤에 돌연 큰 비가 왔던 날로 기억한다. 나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 주랑밑에서 잠시 쉬며 오랜만의 시원함을 즐기고 있었다. 그 때 화분 옆 모서리에 어미 고양이가 한마리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쫄딱 젖은 까맣고 동그란 공같은 것을 맴돌며 가끔씩 앞발로 톡톡 건드려 보고 있었다. 처음엔 쥐를 잡았나보다 싶었다. 가까이 가서 잘 들여다보니 아직 눈도 뜨지않은 새끼 고양이였다. 그 갸날픈 것은 온몸이 젖어서 계속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사무실로 가서 동료를 불러 작은 타월 한장을 가지고 와서 새끼고양이의 몸을 닦아주었다.

  보통같으면 그 엄마고양이와 나는 서로 면식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으므로 자식을 내가 만지고 그러면 응당 불같이 화를 냈어야 했다. 하지만 어미고양이는 몇번 야옹거리더니 자식을 놔두고는 몸을 돌려 주랑 끝쪽으로 달려갔다. 

  오래지 않아 그는 또 한마리 흠뻑 젖은 새끼 고양이를 물고 오더니 내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몇번 야옹거린 뒤에 다시 주랑 끝쪽으로 달려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입에 아무것도 물지 않은 채 돌아왔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급하게 울어댔다. 그러더니 몇걸음 달려가서 뒤를 돌아보고, 또 몇걸음 달려가선 뒤를 돌아보고 울었다. 나는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동료를 불렀다. 위험에 처한 새끼고양이가 또 있는게 틀림없어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니 네가 빨리 쫓아가서 살펴보라고 했다.

  동료는 새끼 고양이 한마리를 두손에 받쳐들고 돌아왔다. 어미가 그 뒤를 따라오는데 사람, 어미 고양이, 새끼 고양이 모두 쫄딱 비에 젖은 모습이었다.   

  서둘러서 새끼 고양이를 닦아주었다. 어미는 옆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쪽을 찬찬히 보면서 한편으론 자신의 몸을 부지런히 핥고 있었다. 아까의 초조하고 불안한 모습과 달리 지금은 크게 안도하는 것 같았다.

  사무실 현관 한쪽 구석이 어린 포유류를 키우는 따스한 한폭의 그림처럼 변했다.

  동료가 말하길, 어미 고양이를 쫓아가니 곧바로 뒷골목으로 들어갔는데 배수로에 연결된 배수구에서 콸콸 쏟아지는 물안에 갇힌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고 했다. 원래는 말라있던 배수로였는데 큰비가 오고나서 수위가 점점 높아져, 어미고양이는 두마리만 구해내고 남은 한마리는 '홍수'에 손을 쓰지 못하고 건너편 배수구멍에 놔둔채 물에 잠겨가는 걸 보고만 있다가 다행히도 물이 배수구를 덮치기 전에 새끼고양이를 구출해 낸 것이었다.

  종이박스를 마련해서 어미와 새끼들이 들어갈 수 있게 하여 주방에 놓아주었다. 며칠이 지나고나서 어미와 새끼들이 보이지 않았다. 비가 지나가고 다시 맑은 날씨가 되었다. 아마도 어미고양이와 그의 자식들은 살 곳을 찾아냈고, 자기들끼리 생활하려고 나간 것 같았다.  

 초등학교때 아버지가 병이 나서 일을 못하여 수입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개학을 했는데 교과서를 살 돈이 없었다. 다행히도 학교에 교과서 대여를 신청하여 계속 학교공부를 할 수가 있었다. 새학년이 되어 선생님께서 계속해서 교과서를 대여하겠느냐고 물어보셨는데 어머니께서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이렇게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어머니가 남의 집 가사를 도와주고 조금 여유가 생겨서 교과서는 살 형편이 되었습니다. 무료로 교과서를 대여받는 기회는 그걸 더 필요로 하는 학생에게 돌리고 싶습니다.

  곤란에 처하게 되면 도움을 청하되, 고난을 면하고 나면 자력갱생(自力更生)한다, 라는게 바로 이런 거 였어!      
 


남포면옥에서 진고개까지; 7월의 일기 공개 포스팅


오랜만에 죽마고우 친구와 죽마고우 후배(딱 일년차이), 이렇게 셋이 모여 남포면옥엘 갔습니다. 을지로 본점 (지점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에서 어복쟁반을 시켜먹고 나서 냉면을 먹었습니다. 냉면은 기대치만큼 이었는데 어복쟁반이 참 맛이 좋았습니다. 일전에 별로 맛이 덜한 걸 먹어서였는지 과연 남포면옥이로구나 느끼며 만족하게 나왔습니다. 두 친구 모두 노후대책에 잘되어있어서 건강만 챙겨서 장수하는 일만 남은 것 같아서 보기에 좋았습니다. 젊어서 칼칼하던 성격도 느긋해진 것도 그렇고 여유를 찾으면 이런가 보다,  인생의 모든 것이 늦어 그렇지 못한 저는 둘을 보면서 부러웠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 많아서인지 칼국수를 세번이나 먹었네요. 사진은 쥬스하고 둘이 가서 빈대떡, 만두국, 칼국수해서 막걸리 먹은 저녁이구요. 사진을 보니 나중에 혼자서 두번 갔네요. 



장충체육관에서 국제규모의 태권도 대회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모르는 사이에 종주국 한국에서 열린 대회인 모양입니다. 중국친구의 초등학생 딸이 출전을 하였다고 세식구가 내한을 하였습니다. 시합전날에 격려차 저녁을 사주었는데 소화가 잘되는걸 생각하다가 본가 우삼겹집에를 갔습니다. 아이들이 고기가 얇아서 좋아하는 걸 저희집 둘째랑 놀러왔던 그의 친구들을 보면서 알았기 때문이지요. 두터운 생등심 이런거 보다도 본가 우삼겹이 맛있었다고 후일담으로 들었습니다. 어른들은 갈비도 시켜서 먹었습니다. 시합결과는 3회전에서 분루를 삼켰다고 합니다. 그래도 즐거웠다고, 다음 대회도 출전한다고 하네요.


부산에 조문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KTX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선배가 사진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시간이 좀 있었으면 해운대 소고기국밥도 먹고 밀면도 먹고 했을텐데 다음날 일정때문에... 상가집에서 조문객들끼리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마지막 열차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소주가 대선이었습니다. 가끔씩 지방에 가면 참이슬 처음처럼이 아닌 소주를 만나서 서울이 아닌걸 실감하곤 합니다. 저는 새로워서 좋습니다.


혼사가 있어 참석했다가 식사로 부페를 먹었습니다. 식장이 전용식장이나 호텔이 아니라 성당이었습니다. 지하 넓은 홀에 출장부페로 차려놓았는데 메뉴가 참 충실했습니다. 요새 부페를 다니면 다닐수록 음식의 맛도 좋아지고 정갈한게 마음에 듭니다. 부페가 구색만 갖추고 가짓수만 많지 정작 맛이 없다는 선입견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밤하고 팥을 넣고 지은 밥에 김치, 잡채, 탕평채, 고추잡채, 전, 육회, 꽃게 튀김, 갈비찜을 가져다가 소주로 반주해서 맛있게 다먹었습니다. 그리고 비빔국수로 입가심을 했지요. 다른 것도 맛있는게 많았는데 배가 불러 맛을 보지 못했습니다. 

함지박사거리에 있는 아무거나 소주방에서 가볍게 한잔을 한 날입니다. 손이 큰 독지가분께서 흔쾌히 저녁을 사시고 부근의 LP 맥주집으로 가서 프리미엄 맥주까지 사주셨습니다. 꾸벅! 마지막 먹은게 벨기에 병맥주인데 와인처럼 담았더라구요. 아무거나 소주방은 무한리필 콩나물국 김치 계란부침이 매력인데 이날 먹은 골뱅이 소면도 메밀국수로 만들은게 아주 맛이 좋았습니다. 생선구이도 시켜서 포식을 했습니다.


큰아이가 방학을 해서 엄마한테 가서 저혼자 남았습니다.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은날 길거리에서 떡볶기를 사먹고 동네에서 가까운 곳으로가 통만두를 샀습니다. 평소에 안마시는 콜라를 편의점에서 사가지고 동네 공원으로가서 벤치에 앉아 만두를 먹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제 친구중에 술을 엄청 빨리 마시는 이가 있습니다. 저한테는 천천히 마시라고 하지만 따라가다보면 자연히 저도 빨리 마시게 되고 그만큼 더 마시게 되지요. 이날은 약속없이 갑자기 소주나 한잔하자고 정해져서 논현동의 진미평양냉면을 갔는데 불고기에 냉면사리, 만두 한접시를 시켜 순식간에 3병을 마셨습니다. 가게에서 나오면서 '사실 난 돼지고기 수육에 만두한접시 시켜서 소주마시다 냉면먹는 선주후면을 좋아한다' 그랬더니 친구도 '나도 딱 그런데'라고 해서 웃었습니다.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느라 엉뚱한 걸 시켰습니다. 물론 맛있게는 먹었지만요.



주말에 지방에서 올라온 귀한 손님이 계셔서 오랜만에 포스코 하동관으로 갔습니다. 전 이집이 을지로 본점보다 아주 쪼끔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가까운데 있는 곳을 찾을만큼 하동관과 수하동은 맛이 균일하지만요. 손님께서 하동관은 처음이라 해서 내포 고기 잔뜩 넣은 특20을 시켰습니다. 손님도 만족 저도 만족. 저녁에 술약속이 있어서 반주로 딱 냉수한컵만 했습니다.


그리운 친구를 찾아 일산에 갔습니다. 배꼽집이라고 양곱창과 평양냉면을 잘한다고 했습니다. 점심에 곰탕을 잔뜩 먹어서 양곰탕은 패스하고 저는 안동국밥을 시켰습니다. 육회를 안주삼아 소주 각일병하고 나와 옆의 난리피자인가 하는데서 피자 두개 시켜서 수제 생맥주 두잔씩 마셨습니다. 발동이 걸린 친구가 집으로 가자고 해서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잔뜩 사서 친구집에 가서 형수씨가 차려준 안주로 캔맥주를 삼차로 잔뜩 마시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아끼는 후배가 정말로 속상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풀리겠지만 당장은 옆에서 보는 제가 답답할 지경입니다. 어떻게 지내? 괜찮아? 전화로 물었더니 아이, 그럼요. 형님 지금 어디세요? 저녁이나 하지요. 그래서 달려갔습니다. 오랜만에 진고개로 갔습니다. 거기 음식은 김치도 달고 소박이도 달고 그런데 옛날에 먹던 맛이라 그냥 그립고 반가운 마음에 맛있었습니다. 유쾌하게 마시며 툴툴털자고 했는데 후배가 더 의연했습니다. 소주두병에 맥주세병을 마시고 부근 생맥주집으로 옮겨 오백짜리 두개씩 마셨습니다. 그가 취한게 형님 형님 하다가 형! 그러면 취한겁니다 ㅎㅎ 지나친 과음은 안했지만 평소 주량보다는 많이 마신 날이었습니다. 그래도 둘이서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즐겁게 미래를 이야기하였으니 보람있는 저녁이었습니다.

한식을 많이 먹은 7월이었습니다. 이제 7월도 다가고 8월이 옵니다. 폭염이 좀 살살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작년에 너무 고생을 해서요.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모든 분들 더운 계절에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MAD 잡지가 폐간되었다... 공개 포스팅




미국의 풍자만화잡지 MAD가 폐간되었다. 며칠전 미국 독립기념일 7월 4일자로 폐간선언을 하였다는 보도를 보고 쓸쓸한 마음이 들어 한참 일손을 놓고 옛생각에 빠졌다. 내 청춘에서, 특히 사춘기에서 매드를 뺄 수가 없을 정도로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잡지가 아니었던가. 위의 두 표지는 검색을 하여보니 내가 매드를 애독하던 시절에 보았던 것들이다. 매드는 각종 유우머와 패로디, 날카로운 풍자 등으로 꽉찬 만화잡지였다. 특히 베트남전쟁이 한참이던 시절에 진보적 시각으로 반전무드의 전선에서 정부를 비판하고 통렬하게 까는 만화들은 재미있고 통쾌하기까지 하였다. 

당시 명동입구에서 중앙우체국까지의 큰길과 그 뒷골목에 해당하는 중국대사관과 화교학교 앞길에는 외국서적을 판매하는 책방이 20여군데 있었다. 어림잡아 일본서적을 취급하는 집이 절반, 양서를 취급하는 집이 절반 정도 였던 것 같은데 일본서적은 중고뿐만이 아니라 신간도 수입하여 팔고 있었다. 건축 토목 원예 축산 패션 광고 등 각종 전문서적들이 이곳을 통해 들어와서 번역출판 되었다. 당시 기성세대는 일본어로 교육을 받던 세대여서 값싸고 손쉽게 번역을 할 수 있었던 이점도 있었고, 경제뿐이 아니라 기술 문화 각분야에서 한국과 일본은 크게 차이가 나던 시절이라 이러한 번역출판은 일본을 따라가는데 적지않은 역할을 하였다. 

씁쓸한 현실은, 외국문학도 불어, 독어권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어권 작품도 일본어 번역판을 중역하여 내던 시절이었다. 일제시대의 향수를 달래려는 일부 기성세대는 명동으로 나가서 문예춘추 중앙공론 이런 잡지를 사서 읽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는 만화를 읽는 재미에 명동을 드나들며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잡지를 사서 읽고 어쩌다 큰 맘 먹고 일본만화를 사모으곤 했다. 미국만화는 안팔린 잡지를 미군부대에서 표지를 뜯어내고 폐지로 내던 것이라 가격이 쌌는데 일본만화는 상당히 비쌌다. 치바데츠야 만화를 제일 좋아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일본 영화잡지 스크린 로드쇼를 알게 되었고 미국 페이퍼백 소설을 읽는데 재미를 붙였다. 만화와 영화에 빠지다 보니 그게 공부가 되는 줄도 모르고 그냥 엄청 읽어댔다. 돌이켜보면 영화에 감사해야 할 뿐이다.

지금도 잊지못하는 일화. 425 Madison Ave. New York, NY 10025. 그냥 머리속에 남아있는 주소이니 틀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매드 본사의 주소를. 중학교때 애독자라고 영어로 끙끙 영작을 하여 독자편지 코너에 보냈더니 몇 달후에 매드 본사에서 답장이 왔다. 생전처음 해외에서 내게 우편물이 온 것이라 감동하였다. 매드라는 엠보싱이 된 로고 밑에 편집자가 친절하게 답장을 보냈다. Sincerely yours 라고 쓰는 곳에 MADly yours 라고 써있는 것도 새로웠다. 매드 신간 2권과 함께 페이퍼백 단행본도 들어있었다. 보낸 편집자 이름은 Jerry DeFuccio 였다. 더 깜짝 놀란 건 내 편지를 만화가들이 돌려 읽었다는 소식과 함께 여러 만화가들이 내게 사인을 해준 별지의 종이가 또 들어있었다. 세르지오 아라고네스, 몰트 드러커, 안토니오 프로히아스, 돈 마틴, 알 자피, 폴 쿠거 주니어, 잭 데이비스... 멀고먼 존재 같았던 만화가들이 나와 함께 바다건너 뉴욕에서 호흡을 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열몇살 먹은 소년의 존재를 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나는 영어를 사캐즘, 트위스트, 펀, 라임 이런 걸 먼저 배운 것 같다. 배운거라기보다는 몸으로 체득했다. 매드 한권을 살 때마다 재미가 있어서 읽고 또 읽었으니까. 고등학교 2학년말에 입시공부도 슬슬 해야겠다고 문법책을 한권 샀다. 성문종합영어. 문법책이란게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있는줄 몰랐다. 술술 읽혔다. 매드는 정작 미국에 가서는 시들해졌다.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히피문화도 꺾어지면서 이 풍자잡지의 날카로움이 무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수십년이 흘러 명동엔 외국서적을 취급하는 집이 딱 한군데 남았고 나는 나이를 먹었고, 며칠전 매드의 폐간소식을 들었다. 섭섭하고 아쉬웠다. 돌아가신 편집자 아티스트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빈다. 살아계신 분들 건강하게 장수하시길. 

MADly yours,
Babnsool





6월에 먹고산 이야기 공개 포스팅


강북에서 바라본 관악산입니다. 너무나 또렷하게 보여 지척에 있는 것 같습니다. 매일 이런날이 계속되길 바라는건 과욕이고, 이틀에 한번 아니 사흘에 한번이라도 이런 날씨였으면 더이상 바랄바가 없겠습니다. 올해도 절반이 휙하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6월에 먹고산걸 돌이켜보며 남은 하반기는 좀더 열심히 살자 결의를 다집니다.


저는 솔직히 에너지가 딸리는건지 코스트코를 한번 갔다오면 피곤합니다. 그런데 저희집 쥬스는 대단히 좋아합니다. 6월초에 코스트코를 갔습니다. 가면 늘 사는게 로티세리치킨입니다. 이게 미국에서는 4.99달러이고 우리나라에서도 6천얼마입니다. 그런데 일반 닭보다 엄청 큽니다. 보도를 보니 이걸로 손님을 끄느라고 로티세리 치킨 하나만으로 연간 5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본답니다. 통큰 피자 통큰치킨은 출시하고 술렁거렸는데 이건 직접 골목상권하고 부딪히는게 없는 건지 공정거래법과는 무관한건지 아무 말이 없네요. 아무튼 우리는 갈때마다 삽니다. 값도 싸지만 맛이 좋아서요. 이렇게 좀 크게 키운 닭을 다른데서도 많이 팔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면 반드시 사먹는게 또하나 있으니 핫도그입니다. 음료포함 2천원입니다. 푸짐한 양에 들어서 가격에서 오는 만족감이상으로 심리적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양파다진걸 마음껏 가져다 먹게 했는데 잔뜩 따로 담아다 케첩이랑 겨자 섞어 반찬먹듯 드는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빙수처럼 쌓아놓은 양파를 보면서 한국사람은 역시 치킨에는 무, 파스타엔 피클, 이렇게 반찬같은게 필요한가 보다 실감하였습니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그걸 그릇에 담아 집에 가져가는 고객이 있어 눈쌀을 찌프리게 한다는 기사도 있더군요. 이케아 연필 같은 케이스였나 봅니다. 피자도 한쪽 먹었습니다. 이것도 2,500원으로 크기에 비해 저렴합니다. 코스트코의 상술, 대단합니다.

집에 와서 따뜻할 때 우선 통닭을 먹습니다. 쥬스하고 둘이서 다리하고 날개만 떼어내어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6천원짜리 치킨에 걸맞게 테이블 와인을 땁니다. 남은 통닭은 냉장고로.


다음날 쥬스가 남은 치킨에서 적당량을 떼어내 살을 발라 파스타를 만들었습니다. 이건 이거대로 굿. 맛있게 먹었지요.


사흘 연속으로 치킨을 먹기는 그렇고, 또 외식도 있고 해서 하루 건너 다음날 쥬스가 남은 치킨으로 카레를 만들었습니다.  양이 꽤 되어 두끼 이상 먹었는데 카레의 장점은 잘 데우기만 하면 점점 더 맛이 좋아진다는 것이죠. 이래서 6천원짜리 통닭으로 여러번에 걸쳐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출장을 다녀왔는데 집에 도착하니 일요일 밤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얼큰한게 먹고싶어서 제가 자주 출몰하는 함지박사거리, 이수사거리, 사당사거리를 중심으로 검색을 하였더니 늦게 연 집이 있었습니다. 이다돔 감자탕이라는 곳으로 가서 묵은지 감자탕을 시켜서 저는 소주, 쥬스는 막걸리로 몸에 '좋은' 야식을 하였습니다. 


그 유명하다는 영등포역 앞 대한옥이라는 꼬리찜집을 갔습니다. 죽마고우 셋이 모여서 토요일 오후에 갔는데 살짝 기다리는둥 마는둥 하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지요. 꼬리찜위에 잔뜩 얹혀진 부추와 함께 찜을 먹고 나서 국수를 비벼먹는 건데, 너무 기대를 많이 하고 간건지 감동이 별로 없었다는게 솔직한 감상입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야, 우리 송죽장가서 짬뽕먹자. 또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이렇게 먹고 또 먹어? 한 이십분 걸으면 괜찮아. 대식가들의 모임은 무섭습니다...

위의 사진은 송죽장에 가서 짬뽕을 시켜먹기전에 시킨 안주들입니다. 이과두주 작은거 5병, 소주 2병에 탕수육 양장피 군만두 물만두 해서 맛있게 먹고 짬뽕은 두그릇만 시켜서 나눠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왔는데 누군가가 하는 말. 야, 쏸라탕 안먹었구나. 입가심으로.



사당동에 인도요리점이 있어서 늘 궁금했는데 들어가보니 제대로 하는 집이어서 대단히 흡족하게 먹고 나왔습니다. 델리에서 온 부부가 경영하는 집이었습니다. 앞으로 인도요리 땡기면 또 갈듯 하네요.


자하손만두에서 점심약속이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배님인데 대단한 미식가이십니다. 마음에 드는건 늘 푸짐히 시킨다는 것. 대낮부터 화요를 시켜 마시면서 골고루 먹고 나왔습니다. 


열무김치가 철인지 너무나 맛이 좋아서 가끔가는 생선구이집에서 열무김치를 넉넉히 달라고 해서 고추장 살짝 넣어 비벼먹었습니다. 아니, 흥건하니까 말아먹었다고 하는게 옳겠습니다. 열무김치는 맛이 좋아서 좋은데, 올여름엔 날씨는 너무 안더웠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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