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멀어져가는 떡이야기 공개 포스팅



얼마전 주말입니다. 외출을 했던 쥬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고터에서 친구만나고 이제부터 집에 가는데 신세계에 들러 뭐 사갈거 없냐고요. 마침 떡국용 떡이 떨어졌으니 사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저희집 냉장고에는 늘 떡이 있습니다. 떡국도 끓여먹고 라면에도 넣고 만두국에도 넣고 가끔씩 오밤중에 떡볶이 라볶이도 해먹고 그럽니다. 냉동실에 얼려논 떡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지요. 평소엔 집 근처 재래시장에 있는 떡집에 부탁해 놓고 찾으러 가곤 하는데 주말이라 그냥 수퍼에서 파는 걸 사오라고 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펼쳐논 쇼핑백을 보니 떡말고도 아빠 좋아한다고 딘앤델루카에서 케잌 두조각하고 피칸파이 한쪽을 사왔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가게 맞는데 한참 두고두고 먹을 떡값보다 당장 먹어치울 케잌 세쪽값이 더 비쌌습니다. 갑자기 떡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평소 떡을 사느라 쓰는 돈보다 빵종류를 사느라 소비하는 돈이 훨씬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죠. 저도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 같은 곳을 자주 드나듭니다. 과자빵도 사고 조각 케잌도 사고 그럽니다. 파리바게트만 전국에 점포수가 삼천을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빵집 전성시대입니다. 
 
꼭 빵만큼 떡을 사먹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어릴적 풍요로움의 상징이었고 없는 살림속에서도 생활의 여유를 느끼게 했던 떡이 이렇게 멀어져 갔구나 생각하니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누구말을 잘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이런 말들도 '빵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우유부터 마신다', '누구말을 잘들으면 자다가도 케잌이 생긴다' 이렇게 바뀌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어려서 설 명절을 앞두고 모두들 방아간에 갔습니다. 김이 무럭무럭 나오는 가래떡을 받아다 기름 소금에 찍어먹고, 명절 내내 떡국을 해먹었지요. 시골에서는 찹쌀로 인절미도 해먹었습니다. 장정들이 찰밥을 절구에 넣고 떡메로 내리치던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딱딱하게 굳은 인절미는 화롯불에 구워먹으면 부풀어올랐는데 고소한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추석이면 송편을 빚고 잔치나 행사가 있으면 시루떡, 백설기를 해서 이웃에 돌렸습니다.  
 
주식으로 먹는 밥말고 그 다음으로 자주 먹던 떡 자리를 어느샌가 슬그머니 빵종류가 차고 앉은 것 같아서 조금은 섭섭한 마음에 떡 이야기를 씁니다. 물론 떡하고 빵하고 같은 위치에 놓고 이러네 저러네하는게 생각하기에 따라선 합당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조금은 감상적이 되어서 밥말고 먹는 든든한 간식거리가 떡이냐 빵이냐 하던 옛날로 돌아간 느낌에 머물고 싶어졌습니다.



추석이나 되어야 먹는 송편입니다. 솔잎을 따다가 밑에 깔고 쪄내서 송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같은데 이젠 집에서 빚어먹는 가정이 워낙 줄어들어서 솔잎자국이 난 송편을 보기도 힘든 것 같습니다. 속은 달달한 깨로 만든 것과 콩으로 만든 두종류가 있어서 아이들은 깨가 들어간 걸 좋아했는데 요즈음은 거의가 깨로 속을 넣는 것 같더라구요. 사진은 인터넷에서 찾은 겁니다(자도랭킹샵).



누군가가 이사를 오거나하면 돌리는 시루떡입니다. 이 풍습도 사라져가서 이웃에게서 시루떡 얻어먹는 경우가 매우 드물게 되었습니다. 영화 공작에서 황정민이 옆집에 시루떡 들고 찾아가는 장면이 나와서 참 반가웠습니다. 서울에서도 밥솥에 시루를 얹고 경계부분으로 증기가 새지말라고 밀가루 반죽을 붙여 시루떡을 찌던 광경이 흔했는데... 저는 지금도 시루떡을 참 좋아합니다. (사진: 양양낙산떡마을)



방아간에서 갓 뽑아온 떡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면 참기름에 소금을 넣거나 간장을 넣은 뒤 말랑말랑한 떡을 찍어 먹으면 맛이 그만이었죠. 설밑에 집집마다 쌀을 씻어 가지고 가면 방아간에서 스팀으로 찐 뒤에 가래떡을 뽑아주는게 장관이었습니다. 떡이 너무 굳어지기 전 꾸덕꾸덕할 때 떡국용으로 써는것 또한 주부들의 일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려서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을 써는 모습을 교과서인가에서 본게 가래떡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니 조선시대에 압출해 내는 가래떡은 없었을 것이고 절편이었을 것입니다. 제 기억의 착각인지 삽화그리신 분의 오류였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백설기입니다. 요즈음 보기가 힘들어졌지요. 시원한 김칫국이 제일 잘 어울리는 떡이 백설기 아닌가 합니다. 설탕을 살짝 넣어서 은근히 단 백설기가 씹을수록 고소한 매력이 있지요. 굳으면 밥 지을 때 뜸들일때 밥위에 올려 찌기도 했던 생각이 납니다. (사진:달콤한 주방놀이님)


절편입니다. 기본적으로 맛은 가래떡하고 같아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조금 다릅니다. 시골에서는 제사상에 올리고 나중에 썰어서 떡국을 해먹곤 했는데 아마도 압출하여 뽑는 가래떡보다 점성이 덜하여 좀 더 부드러운 것 같습니다. 떡국을 끓여도 가래떡보다 빨리 물러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쪽을 더 좋아합니다. (사진:뉴욕 한솔절편)



술떡이라고도 불리는 증편입니다. 저는 어려서 시큼한 술냄새가 싫어서 별로 증편과는 친하지 못했는데 요새 나이가 드니 이것도 다 맛이 좋네요. (사진:익산가람식품)



저희집 둘째 우유가 아주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인절미입니다. 고소한 콩가루와 쌉쌀한 찹쌀떡과의 궁합이 아주 좋지요. 찰떡이라서 급하게 먹으면 사고가 납니다. 어려서 우리집에 놀러왔던 친구가 제 앞에서 목이 막혀 얼굴이 새빨개지며 호흡곤란이 왔던 비상사태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시골에서는 인절미를 만들어 넙적하게 펴서 말린 뒤 겨우내내 화롯불에 구워먹곤 했습니다. 기포가 부풀어 오르다가 터지며 떡이 다시 부드러워지는게 참 신기했습니다. 지금은 이름도 생소해졌습니다만 조청에 찍어먹는 구운 인절미는 겨울의 별식이었습니다. (사진: 같은 사진이 여러군데서 보임. 출처미상)



무지개떡입니다. 백설기의 변형이라고 봅니다. 요새는 이런떡 저런떡 종류가 참 다양해 진 것 같습니다. 전통 떡집이라는데를 들어가보면 언제부터가 '전통'인지 수상할 정도로 새로운 떡들이 보입니다. 제가 과문한 탓일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떡집하시는 분들은 다 대박나고 성공해서 떡집들이 모두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나무위키)



쌀알이 보이니까 엄밀하게 떡은 아닌데 저는 떡집에서 파는 거고 제가 워낙 좋아해서 떡의 일종으로 칩니다. 찹쌀에 달달한 캐러멜 색소만 넣고 별로 다른 재료 안들어간 싸구려 약식부터, 각종 재료를 성의있게 넣은 고급 약식까지 참 다양한게 이 음식입니다. 저는 밤, 잣이 잔뜩 들어가고 대추 적당히 들어간 약식을 좋아하는데 호두 해바라기씨 등을 넣은 신식버전도 좋아합니다. 대추뿐 아니라 구기자 크랜베리 등을 넣은 것도 먹어보았는데 다 맛이 좋았습니다. 옛날에 약식을 기가 막히게 만들던 이가 생각납니다... (사진:홈퀴진)
 


인절미를 화롯불에 구워먹던 생각이 났는데 사진을 못구해서 대신 일본에서 모치(もち) 구워먹는 사진을 대신 올립니다. 중국에도 니앤까오(年糕)라고 해서 우리 떡국하고 비슷한게 있습니다. 떡만 봐도 미우나 고우나 중국 일본 다 우리나라 옆나라입니다...


쥬스가 사온 떡으로 끓여먹은 떡국입니다. 그동안엔 육수내는게 좀 번거로웠는데 얼마전 블로그 이웃분들의 추천으로 오뚜기 사골육수를 잔뜩 사놓았습니다. 앞으로 편하게 만들어먹게 생겼습니다~^^ 

이밖에도 두텁떡도 그렇고 언급하자니 맛있는 떡도 많은데 업무시간에 잠깐 올리는 포스팅이라 여기서 마감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독한 잡식가의 한끼 공개 포스팅


때는 이천십팔년 십일월도 절반을 넘어선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지방에 내려갈 일이 생겼습니다. 친한 후배가 상을 당했는데 빈소가 경상도 남쪽 어느 도시였습니다. 그 후배도 외국에서 머물며 사업을 하는 처지라 지방까지 문상을 갈 사람이 많지않을 것 같아서 나라도 가야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KTX가 빈번히 다니는 대구 부산같은 대도시가 아니라서 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가는게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타본지 몇년이 되었는지도 기억이 안날만큼 고속버스와는 연이 먼 생활을 하였던 터라 터미널에 도착하자 오히려 살짝 마음이 들떴습니다. 

자주 다녀보지 않은 미숙한 사람답게 시간부터 제때 맞추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가서 다음에 떠나는 버스를 타면 되겠지 안이하게 마음먹고 갔더니 다음차 매진 그 다음차도 매진이라는 표시가 전광판에 찍혀있었습니다. 세 대가 그랬고 네번째 버스에 자리가 몇개 남아서 얼른 표를 구입하고 어이쿠 싶어서 돌아오는 버스도 얼른 예매를 하였습니다. 가는데 3시간반이니 버스 왕복 7시간, 지방터미널에서 장례식장까지 이동 왕복 40분, 조문시간 한시간 20분 도합 9시간의 여정입니다. 그건 그렇고 표를 끊고나니 출발시각까지 시간이 한시간 반 정도 남았습니다. 보통 상가집에 조문을 갈 때는 늘 가서 육개장을 먹겠구나 기대를 하지만 오늘은 지방이니 가는 길도 멀고 여기서 먹고 떠나기로 합니다. 

무얼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고터 지리에 밝은 쥬스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는 친구들하고 고터에서 모여 영화도 보고 밥도 자주 먹고 해서  그 동네를 잘알고 있었습니다. 

술: 이렇고 이렇고 해서 시간이 생겼는데 무얼 먹으면 좋을까? 신세계 꼭대기 식당가를 갈까? 아니면 그 뭐야 무슨 스테이션이었지?
쥬: 파미에스테이션. 특별히 거기서 드시고 싶은거 없으면 신세계 지하로 내려가세요. 거기 괜찮은데 많아요.
술: 그럼 나가서 옆건물까지 가야하잖아.
쥬: 그럼 터미널 지하로 내려가시든가.
술: 지하에도 식당가가 있었어?
쥬: 그럼요. 일층엔 몇개 없고 지하가 메인식당가에요. 



사실 매표소가 있는 일층 식당가를 보고서도 약간은 놀랐던 터라 지하의 모습이 대단히 궁금해졌습니다. 제 머리속에 터미널 음식점은 위생상태가 약간은 의심스러운 김밥이 여러줄 쌓여있고 라면, 국수, 찌개 등 메뉴를 노란 종이에 매직으로 써서 붙여놓은 이미지였거든요. 언제 바뀌었는지 세련된 간판과 깨끗한 내부가 들여다 보이는 식당들이 나란히 붙어있었습니다. 제가 세상이 변한 줄 모르고 살았던 겁니다. 위는 압구정 칼국수라는 점포와 서울깍뚜기라는 점포가 나란히 보이는 사진입니다. 아래는 청룡각이라는 중국집과 장터국수집 모습입니다. 갑자기 배가 고파졌습니다. 둥, 둥, 뚱! 



중국집을 보니 짜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먹고 싶어졌습니다. 청룡각이라는 한자에 각이 閣이 아니라 角인게 특이하구나, 125밀리짜리 이과두주가 있으면 들어갈텐데 내놓은 메뉴를 보니 없는 것 같네, 어쩌구 혼자 생각을 하고 있는데 쥬스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정하셨어요? 아니, 중국집이 있는데 어쩔까 망설이고 있던 참이야. 지하 내려가면 전국 5대짬뽕이라는 집도 있어요. 저는 별로지만 아빠한테는 맞을지도. 참고로 할께 쌩큐. 지하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진짜로 식당이 여러개 있었습니다. 식당가의 레이아웃이 하도 깔끔하고 세련되어서 약간은 감동도 먹었습니다. 한바퀴 돌아보고 정하자 마음먹었습니다. 결국 한바퀴를 돌고 못정해서 두바퀴를 돌고서야 겨우 한군데 정해서 들어갔습니다. 



떡볶이에 어묵, 튀김, 순대 그리고 디저트 삼아 씨앗호떡을 먹는 것도 방법이겠다 싶어 잠시 망설였습니다. 셋트메뉴도 있었구요. 술한잔하고 버스에서 눈좀 붙이면 금방 가겠지 생각했는데 술안주로 떡볶이 호떡이 좀 걸려서 패스하였습니다.



북창동 순두부도 후보였는데 LA하고 비교해서 실망하면 어떻게 하나, 한미 순두부 대결은 좀 미루자 마음먹고 그 옆을 보았습니다. 선궁대반점. 선궁반점이 아니라 선궁대반점이라는 이름에 들어간 '대'자가 혼밥을 해야하는 고독한 잡식가에게 너무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소주한병 값에 마실수 있는, 값싸고 짝퉁없는 북경 이과두주가 없는 것 같아 그냥 지나친 것입니다. 상호에 들어있는 큰 '大'자는 그냥 거절의 핑계입니다.  



굴국밥은 꽤나 유혹이 심한 메뉴였는데 통영부근까지 가는 사람이 서울에서 먹기는 좀 그렇다 느껴져서 패스하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통영까지 갈 것은 아니지만서도 말입니다. 


돈카츠를 잘하고 다른 일식적 느낌의 한식이랄까 아니면 한식적 느낌의 일식메뉴까지 구비한 미소야와 제육쌈밥 낚지쌈밥 등을 잘한다는 수향이 나란히 있었습니다. 돈카츠는 전문점이 아니면 잘 안먹는다는 평소의 소신을 지키기에는 미소야의 메뉴가 너무 다양하였습니다. 소바에 카레에 초밥, 그리고 가라아게까지. 이해는 합니다. 숱한 사람이 여행을 위해 들리는 터미널에서 수많은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서비스 정신을 말입니다. 어쨌든 패스하고 수향을 둘러보았습니다. 쌈밥에 더하여 김치찌개 부대찌개 된장찌개 비빔밥 청국장까지는 좋았는데 뚝배기불고기가 있었습니다. 아아, 저는 뚝불을 싫어합니다. 마늘을 만난 드라큘라처럼 뚝불을 보면 피하게 됩니다. 설탕을 들이부은 맛의 뚝불에 몇번 데인 뒤의 트라우마를 아직 극복하지 못해서요. 다양한 메뉴로 고객의 입맛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마음속으로 치하하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옆의 얼큰수제비와 돈수백이라는 식당을 둘러 보았습니다. 얼큰수제비집의 수제비는 상당히 땡기는 메뉴이기는 했습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웬만한 푸드코트의 전체 메뉴를 다 가져다 놓은 것 같은 버라이어티함에 압도되어 발길을 돌렸습니다. 라볶이에 김밥에 막국수 그리고 오무라이스까지. 맛있는 수제비 하나만 가지고는 영업이 안된다면 이건 순전히 수제비를 사랑하지 않는 우리 고객들의 책임이다, 라고 저 자신을 자책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습니다. 그 옆의 돈수백은 돼지국밥집이었습니다. 豚壽百, 돼지를 먹고 장수한다는 뜻이겠는데 부산 가까이 갈 사람이 서울서 먹을 메뉴는 아니다 싶어 굴국밥집처럼 패스하였습니다.
 


마주보는 건너편에 먹보사랑비빔이라는 한식집이 있었습니다. 시그니처 메뉴가 없이 이것저것 다하는 집 같았는데 비싼 임대료내고 터미널 상가에 들어와 간판메뉴없이 승부한다는 건 꽤나 음식만드는 솜씨에 자신이 있나보다, 도리어 신뢰가 가기는 했지만 어쩌다 먹는 터미널 식당가 한끼에 모험을 하기엔 리스크가 커서 패스. 그리고 그 옆의 포베이는 술과 어울리는 메뉴가 아니므로 처음부터 논외라 패스. 



그리고 지근거리에 부대찌개 집이 두개나 나란히 있는게 흥미로왔습니다. 얼마전 블로그에 찌개 이야기를 쓰면서 "...의정부였나 동두천이었나 남의 나라 군대가 주둔하던 도시의 뒷골목에서 생겨나 이름도 처음엔 존슨탕인지 뭔지였다는 출생의 전설에서부터 서글픈 이야기가 담겨있는 부대찌개가 전국적 프랜차이즈 브랜드만도 여러개가 될 정도로 한국인의 사랑을 받으니 가히 출생이 천박하다고 호부호형 못하고 가출했던 홍길동의 이야기와 견줄만하도다, 어쩌구...(하략)" 라고 부대찌개 이야기를 하였던 터라 솔깃 마음이 가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부대찌개는 혼밥보다는 여럿이 시끌법썩 먹는게 더 어울리는 아이템인 것 같아서 다음으로 기회를 미루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잊고 있었는데 옛날에 의정부 용산 이런데에 '부대고기'라고 해서 스테이크와 소지지 모듬을 철판에 구워먹는 메뉴도 있었다는게 생각났습니다. 교동짬뽕은 상당히 끌렸는데 쥬스가 권하지 않아서 그냥 넘기기로 했습니다.



국수나무라는 식당입니다. 메뉴를 보니 얼큰수제비처럼 국수보다는 다른 메뉴가 훨씬 더 많이 팔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크지 않은 점포인데 손님이 꽤나 있는 걸 보니 제가 걱정해 줄 상황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소박한 메뉴와 착한 가격으로 손님을 부르는 가게인가보다 혼자 추측해 보았는데 메뉴구성을 보니 이집을 달랑 들어다 LA공항이나 홍콩공항 아니면 나리타 공항에 옮겨놓으면 초대박이 날 것 같았습니다. 그 뒤로 신촌설렁탕이 보입니다. 언제나 좋아하는 메뉴 설렁탕 곰탕인데 마침 전날 하동관에서 곰탕을 20짜리 특으로 먹었던 터라 게이지가 아직 높아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요즈음 TV 프로그램뿐만이 아니라 국회청문회에도 나가고 대통령도 만나고, 국회의원들이 너무 부러워 할 정도로 대중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백종원씨의 쌈밥집입니다. 들어가서 먹어볼까 한 삼사분 앞에서 서성거리며 고민하였습니다. 대패삼겹살이냐 차돌박이냐 머리속으로 상상하다가 길떠나는 나그네가 터미널에서 혼밥하기에 알맞는 메뉴는 아니지, 라고 혼자 결론내리고 자리를 떴습니다. 저녁한끼로 고려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옆에 호프집도 있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이식당 저식당 문전을 서성거리며 망설인지 벌써 30분이 지났습니다. 더 이상 서성이면 이건 심각한 결정장애가 아닐까 두려워 그냥 들어간게 위의 인사동 칼국수집입니다. 들어가서 앉자마자 시킨게 칼국수가 아니라 뚝배기 만두전골이었습니다. 밥하고 국수사리가 서비스로 나온다길래. 소주를 한병 시켰는데 음식이 나오기전에 반찬을 깔며 소주를 먼저 가져다 주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음식이 나오기전에 김치를 안주삼아 소주를 한잔. 비었던 뱃속이 싸아하게 울려옵니다. 이맛이죠 첫잔은. 25도짜리면 더 좋았을 것을 하고 아쉬워하는 사이에 음식이 나옵니다. 펄펄끓는 만두전골입니다. 전세계에 이렇게 뜨거운 음식을 서빙하는 나라가 한국말고 또 있을까 새삼 감탄하며 식기를 기다립니다. 맛있게 먹다가 사리를 부탁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싹싹 다먹고 일어났습니다. 버스안에서 푹자야하고 또 자고나면 깨겠지 생각하여 소주도 맛있게 다 비웠습니다. 시간을 보니 출발 20분전이 되었습니다. 디저트를 먹어야지, 그리고 수면제로 소주를 마셨으니 수면유도제로 뜨거운 커피도 마셔야지 마음먹고 일층에서 보아두었던 던킨도너츠로 가서 땅콩과 초콜릿이 발라진 도넛 한개에 드립커피 한잔을 시켰습니다. 던킨도넛의 좋은 점은 드립커피를 파는 건데 어디서나 꼭 '드립커피는 내리시는데 시간이 좀 걸리시는데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봅니다. 물론 바쁜 고객을 위해서 설명을 하는 거겠지만 저는 이게 아메리카노쪽으로 주문을 유도하려는게 아닌가 삐딱한 해석을 하기도 해서 늘 '시간 걸리셔도 돼요. 기다리실께요' 라고 답하고 드립커피를 주문해 마십니다. 값도 이쪽이 싸지만 맛이 훨씬 좋아서요. 



버스에 올라탄 저는 이내 잠이 들었고 두시간 지나서 버스는 금산 휴게소에 도착하여 15분 쉰다는 안내방송에 깨었습니다. 제가 고속버스 경험은 적지만 휴게소문화는 제법 익숙합니다. 고향 속초를 숱하게 다녀서요. 내려서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고 가게에서는 갓 구워낸 호도과자를 조금 사서 호호불며 4개를 먹고 나머지는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무사히 빈소에 도착하여, 분향하고 고인의 영정에 재배를 한 뒤 상주와 맞절을 하여 문상을 끝냈습니다. 옆방으로 가서 마른 안주와 맥주를 먹으면서 상주와 대화를 잠시 나누었습니다. 형님 먼데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 뭘, 고인의 연세가 어떻게 되셨나, 그 연세에 편하게 가셨으니 호상이네, 장사 잘 치르게. 예, 감사합니다, 식사라도 좀 하시죠. 아니 먹고 내려와서 배불러, 외국 나가기 전에 서울 올라오면 한번 보세. 예, 형님 이제 곧 올라가셔야죠. 응, 그럼...

어느 고독한 잡식가의 고속터미널 혼밥 한끼가 들어간 9시간의 여정은 제가 무사히 서울로 다시 귀환한 걸로 끝이 났습니다. 고속터미널 지하 식당가는 앞으로 여행을 안가더라도 밥을 먹으러 들릴 일이 있을 것도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재고조사: 좀비가 나왔을 때 집에서 버틸수 있는 음식 공개 포스팅


쓸데없는 잡담을 할 때 그 내용의 쓸데없음이 도를 넘어서면 '씰데없는' 잡담으로 레벨업이 된다고 저는 등급을 매기고 있습니다. 같은 말의 경상도 발음일 뿐인데 어감상 더욱 쓸데없는 걸 표현할 때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외래어마냥 빌려다 쓰는 거지요. 어제 밤이었습니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토요일을 앞둔 금요일 밤은 행복합니다. 그러면 저희 부녀는 곧잘 씰데없는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예컨대 이런 거지요.

쥬: 아빠, 만약에 딱 한나라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어느나라 음식을 고를래요? 한국빼고.
술: 넌?
쥬: 이태리, 일본, 중국... 고민이에요. 
술: (주저없이) 난 미국.
쥬: 왜?
술: 미국음식엔 한국음식, 이태리, 중국, 일본 다 있잖아.
쥬: 그렇게 말고. 원래 미국사람들이 먹는 걸 미국음식이라고 한정해서요.
술: 원래 미국사람이 어딨어. 하여간 그렇다치고. 그럼 중국. 한국 안빼도 중국.
쥬: 그렇게 중국음식이 좋아요?
술: 원래 중국사람들은 50몇개 소수민족이 모여서 구성된 거니까 그안에 이슬람에서 조선족까지 다 있거든. 후무스에서 김치까지 있다고 ㅋㅋㅋ  
쥬: 아! 그런게 아니라!

처음 내어놓은 가정의 의도를 모르는게 아니지만 그 질문의 쓸데없음에 어깃장을 놓느라 씰데없는 답변을 찾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한번은 평생 어느 한나라밖에 여행할 수가 없다면 어디를 고르겠냐고 물어서 싱가포르같이 작은 나라하고 땅덩어리 넓은 미국을 비교하는게 무리다, 북미 유럽 아시아 이런 식으로 권역으로 나누어야 한다, 어쩌구 둘이서 질문자체를 가다듬다가 우야무야 되기도 했습니다. 

어제밤엔 술과 쥬스 부녀의 대화가 아니라 저 혼자의 씰데없는 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거실 테이블에 놓여진 찐고구마 두개하고 귤껍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맨위의 사진이 그것입니다 (그릇씻기도 귀찮아 귤같은 건 일회용 접시에 담아먹는다고 내어놓은 건데 요즈음 분위기가 플라스틱 빨대도 없앤다는 분위기라서 결국 씻어서 다시 씁니다). 귤은 쥬스가 감기에 걸렸기에 비타민씨 많이 먹으라고 5킬로짜리 한상자를 사다준 겁니다. 고구마는 쥬스가 일전에 감자대신 사다가 요리하고 남은게 4개 있었는데 상하기 전에 먹자고 전기밥솥에 찐 겁니다. 

내일은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할 일이 없다! 는 행복감에서였는지 먹다남은 고구마와 쪼그라든 귤껍질을 보자 갑자기 씰데없는 망상제조 뇌내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먹을게 없으면 이 고구마로 한 끼는 버티겠구나. 귤은 넉넉하니 여러끼 버티겠네. 그렇담 또 뭐가 있지? 아니, 대체 왜 먹을게 없는거지? 갑자기 한반도에 좀비가 창궐하여 돌아다니니까 한발짝도 밖에 나갈 수가 없다고 치고. 그럼 물이 먼저 떨어지겠네. 아니, 어쩐 어쩐 연유로 수돗물은 끊기지 않고 나오고 전기도 들어오고 가스도 나와서 조리를 하는데 문제없고 화장실이 막히거나 그런 것도 없다는 가정하에, 집에 있는 식재료로 얼마나 먹고 살 수 있을까? 

상상하기 가장 편하게 이런 말도 안되는 조건을 만들어놓고 한밤중에 밥과술은 팬트리를 열어보고 다용도실 베란다실 등을 다니며 점검을 합니다. 그리고 냉장고도 열어서 세밀하게 체크를 합니다. 식탁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번역작업을 하던 쥬스가 고개를 들어 물어봅니다. 아빠, 갑자기 뭐하세요? 응, 좀비가 나올 때를 대비해서 어쩌구라고는 딸이 패닉에 빠질까 말못하고 응 그냥 집에 뭐가 있나 보려고, 라고 평온을 가장하려 대답합니다. 국가재난을 넘어서는 심각한 사태에 가족을 지키려는 가장의 숭고한 결의를 알리가 없는 딸은 이내 으응, 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저도 자유롭게 미션을 계속하여 수행합니다.

아래는 장장 이십여분에 걸친 조사와 점검끝에 찾아낸 밥과술네 음식재고 현황입니다. 생각보다 먹을게 많았습니다. 간추려 보고하자면 이렇습니다.

곡류
쌀: 고시히카리 2킬로, 며칠전에 산 햅쌀 추청 5킬로. 합 7킬로. 마음이 든든함. 사놓길 잘했음.
잡곡: 약 1킬로. 산지 오래되어서 빨리 먹어야 할 것 같음. 
서리태: 300그램 정도 남았음. 좀비사태 지나가면 또 사야함.
밀가루: 없음. 대신 전분이 200그램 정도 남았음. 언제 다 먹었지? 밀가루 사야지.
빵: 냉동실에 썰어서 얼려놓은게 8쪽쯤 남았음. 빵한쪽씩 해동하여 살짝 구워서 크림치즈나 피넛버터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함.
파스타: 스파게티 2킬로. 토텔리니, 페투치니, 펜네 등 합해서 600그램. 
소바: 800그램
쌀국수: 500그램
소면: 3킬로. 선물받은거 사놓은거 등 재고가 넉넉해 기분이 좋았음. 지난 여름에 비빔국수 콩국수 많이 먹고도 3킬로나 남았음. 
마른 누룽지: 1킬로 정도. 한참 동안 안먹었는데 이것도 빨리 먹어야 겠다고 마음먹음. 연말까지 먹고 남으면 버리기로. 그래야 먹음.

야채류
양파: 5킬로짜리 망에서 세개 먹었음. 원래는 이렇게 안사는데 코스트코간 김에 샀는데 역시 우리집엔 2, 3킬로짜리가 맞는듯. 
마늘: 드라큘라 몇마리는 쫓을만큼. 아, 좀비였지... 이것 말고도 냉장고에 간마늘이 꽤 있음.
파: 냉동실에 대파 6개 썰어서 얼려놓은게 그대로 있음. 흰부분 녹색부분 따로 따로.
양배추: 4/5 개. 한개 사다가 1/5 사용하고 남은거.
쌈채, 깻잎: 시들어가고 있음. 빨리 먹어야 함. 
케일 한 팩. 코스트코에서 산 것. 빨리 먹어야 함.
방울토마토: 이삼십개 남았음.
무: 중짜 한개. 알찌개 끓이고 소고기 무국 한번 끓이면 됨.
배추김치 2킬로 정도


건어물, 냉동해산물
제사때 올렸던 황태포 3마리. 늘 조림만 해먹었는데 북어탕도 해먹고 무쳐서도 먹어봐야지.
냉동 연어 큰거 두조각. 주말에 이거부터 구워먹을까? 
냉동 간고등어 두마리. (벌려놓은 거니까 합해서 한마리인가?)
냉동 전갱어후라이 6개. 누가 선물로 가져다준거. 튀기기 번거로와서 차일피일 했는데 이참에 에어프라이기를 사야 하나 고민중.
기타 생선 8쪽. 이모가 쥬스에게 간편하게 해먹으라고 준 것.
펭귄표 고등어 통조림 3개. 임오군란나던 해인가 갑신정변때 내가 산 기억이 남. 왜 샀는지는 기억이 안남. 언제 어떻게 해먹을지는 아직도 대책이 안섬. 
마른 미역: 품질 좋은 놈으로 꽤 됨. 수십번 먹을 양이 됨. 큰 냄비에 한번에 다 넣고 불려서 살아있는 괴물처럼 꾸역꾸역 넘쳐나는 상상을 했더니 머리에서 안지워짐. 나가! 머리에서 나가라고!

육류
소고기 토시살. 코스트코에서 2킬로짜리 사서 야금야금 다먹고 이제 300그램 정도 남았음. 담엔 갈비찜 거리도 사야지.
돼지고기. 이베리코 목살 200그램. 이베리코 갈비 1킬로. 한돈 안심 300그램. 
닭고기. 주로 쥬스가 사서 잘 모르는데 하림 가슴살, 다리, 날개 등 해서 500그램 이상 남은 것 같음. 냉동실 안쪽에 숨어있는 놈이 더 있을지도.
양고기. 평소엔 없는데 쥬스가 훠궈먹고 남겨온게 150그램 정도 냉동실에 있는 걸 발견.
스팸. 추석때 들어온 한상자가 그대로 있고, 설에 들어온 것에서 남은게 3개 정도 있음.
의성마늘햄. 반개 남았음. 오늘 내일 중으로 먹어야 함.
비첸향 러우쏭 한봉지

과일
귤 4킬로정도. 배 반개. 
무화과와 아보카도 상한것 내다버렸음. 칠레산 머스카트 포도 조금 남은 것 버렸음.
냉동 딸기 300그램 정도.

가공식품
진라면 매운맛 2개
팔도 짜장면 4개
일본 라멘 2개
생파스타 두봉지
레토르트 락사 1개
레토르트 잠발라야 한개
레토르트 솬라펀 2개
똠얌꿍 4팩
레토르트 카레 8봉지
햇반 3개
비비고 육개장 1개, 설렁탕 3개
오뚜기 콩비지 3개

과자류
냉동 뉴욕치즈케잌 6쪽
쵸콜릿 비스킷 리토 한봉지
카린토 센베이 등 일본과자 반상자
72% 카카오 쵸콜릿 100그램
가나 밀크쵸콜릿 40그램
린트 밀크쵸콜릿 6알
로이스 생쵸코 샴페인맛 두 개. 
양갱 300그램 정도
디저트 사탕 6알

기타 비상식품으로 쓸만한 것들
꿀 두 튜브( 아카시아, 밤)
메이플 시럽 한 통
데미그라 소스 3 캔
프와그라 캔 1 개
이즈니 버터 두 덩어리
파르메잔 치즈 300그램
콩국수용 콩가루 400그램 정도
빙과류 메로나, 비비빅, 하겐다즈, 허시 등 8개 정도
크래프트 크림치즈 다섯개. 무슨 잡지 구독했다고 보내온 것임.
피넛버터 1/3 병
딸기잼 먹다 남은 것. 50그램 정도. 블루베리잼 약간.

대충 이정도였습니다.
맥주, 사케, 와인, 위스키 등 술도 꽤 있고 또 술도 칼로리가 많으니 비상식량으로 쓸 수 있겠지만 마시면 취하니까 제외하였습니다. 케첩 굴소스 된장 고추장 참기름 들기름 등 조미료와 각종 스파이스는 독립성이 없으므로 제외하고 절임류도 빼고 하니 위에 있는 것이 대충 좀비사태를 대비하여 먹을 수 있는 식량의 전부인 것 같습니다. 부녀 둘이서 한달은 먹을 수 있는 분량같았고 우리식구 네명이 다 모여도 규모있게 먹으면 한 달 이상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영화 한편 본 뒤에 잠이 들었고 토요일 오전이 다 지나간 시간에 느즈막히 일어난 부녀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술: 뭐 먹을까?
쥬: 아빠는 뭐가 땡겨요?
술: 글쎄다. 며칠 한식, 짬뽕 등 동양식을 먹었으니 서양식으로? 
쥬: 나가서 먹을까요?
술: (좀비가 돌아다니지 않을 때 먹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어디 가고 싶은데?
쥬: 잠실 롯데 빌즈, 서래마을 브루클린버거, 이태원 오리지널 팬케잌에서 한군데?

커다란 재앙이 닥칠 때를 대비해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숨은 노력을 알리가 없는 쥬스는 태평하게 브런치 메뉴를 제안합니다. 그래 모를 때가 행복한거다, 라고 아무 말 안하기로 한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이태원에 갑니다. 둘이 수다를 떨며 맛있게 식사를 하고, 개와 고양이를 사지말고 입양하라는 비영리 자원봉사 단체가 연 길거리 행사에서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를 넋놓고 구경하고 만지고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주말 이태원의 늦은 오후는 한적하고 평화로웠습니다. 당분간 비상식량을 비축하지 말고 빨리 빨리 소비하여 낭비하는 식재료가 없도록 해야 겠다고 마음먹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세탁기도 돌리고, 냉장고털이를 하도록 도와준 뇌내 출연한 좀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있는 식재료로 저녁준비를 시작하는 부녀였습니다. 쥬스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원래 성공한 공작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지나가는 법이니까요.


이런저런 찌개이야기 공개 포스팅


대접에 담아 양은 적지만 부대찌개입니다. 두달전입니다. 밤에 늦게 들어왔는데 배가 고팠고 꼭 찝어서 부대찌개가 맹렬하게 땡겼습니다. 평소에 그다지 자주 먹는 메뉴도 아닌데 뭐에 홀린듯 부대찌개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재료를 찾아보니 양파, 양배추가 있었고 냉동실에 얼린파, 떡도 있었습니다. 없어질만 하면 명절이 돌아와 늘 떨어지지 않는 스팸도 있구요. 이미 시계는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양을 가능한 최소화해서 부대찌개를 끓였습니다. 우선 자정을 넘겨 야식을 먹는 것, 그것도 짜고 매워서 몸에 안좋을 것같은 부대찌개를 집에서 해먹는다는 것 등의 길티플레져가 복수로 겹쳐서 보글보글 끓는 냄비를 바라보고 있자니 괜히 즐거워졌습니다. 어차피 부대찌개는 가공식품에서 우러나온 맛을 찾는 것이라 고추장 고추가루 다진 마늘에 다시다, 쯔유, 미림 등 각종 조미료를 부담없이 첨가합니다. 

의정부였나 동두천이었나 남의 나라 군대가 주둔하던 도시의 뒷골목에서 생겨나 이름도 처음엔 존슨탕인지 뭔지였다는 출생의 전설에서부터 서글픈 이야기가 담겨있는 부대찌개가 전국적 프랜차이즈 브랜드만도 여러개가 될 정도로 한국인의 사랑을 받으니 가히 출생이 천박하다고 호부호형 못하고 가출했던 홍길동의 이야기와 견줄만하도다, 어쩌구 혼자 흥얼거리다가 종료 5분전에 라면 반개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냉동실에 얼려둔 밥을 데워놓고 늘 떨어지지 않게 편의점에서 사다놓는 4개 만원짜리 맥주를 한 캔 따놓은 모습이 아래입니다. 심야음주라는 길티플레져가 하나 더 중첩되어 그런지 더 즐겁습니다. 김치를 꺼낼까 싶었는데 썰기가 귀찮아서 그냥 먹습니다.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아, 찌개는 김치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먹을 수가 있는 거로구나. 맛있게 밥과술 심야식당의 부대찌개 백반을 먹으며 사진폴더를 뒤져봤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사실은 밥하고 국만 있으면 끼니가 성립되지 않지만 밥하고 찌개만 있으면 안될것도 없겠구나 였습니다.


사진폴더를 뒤져보니 집에서 국을 끓인 횟수보다 찌개를 만든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여기서도 기러기의 생태를 관찰할 수가 있는 거구나 알았습니다. 제가 기러기 생활을 하기전의 평소의 식탁을 찾아보니 참 야채도 많이 먹고 동물성 식물성 다양하게 먹고 살았구나 알았습니다. 전혀 호화롭지는 않아도 끼마다 생선이나 고기 한가지는 빠지지 않았고 두부, 묵, 감자, 밑반찬이 고루 돌아가며 식탁에 올랐다는 걸 보고 모든 가정에서 식구들의 식탁을 차리는 이들의 노력과 주부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실감하였습니다. 아래도 어느 평범한 날의 식탁이었습니다. 이산가족 기러기가 된 이후의 제눈엔 호화식탁입니다. 


사진을 훑어보면서 찌개사진을 몇개 골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러기가 된 뒤에 더욱 많이 먹게 된 찌개이야기입니다. 우선 아래는 김치찌개입니다. 제가 워낙 좋아하기도 해서 밖에서도 단연 선택순위 1위입니다. 그리고 장기출장에서 돌아오면 첫끼로 김치찌개를 먹는 건 십수년째 하나의 의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래는 출장에서 돌아온 날 쥬스가 끓여준 김치찌개 입니다. 그는 돼지고기도 생강넣어 참기름으로 살짝 볶고 김치도 참기름으로 볶아서 냄비에 넣고 찌개를 끓입니다. 맛이 진하고 고소합니다. 그건 그거대로 좋습니다. 저는 쌀뜨물에 재료 다 넣고 그냥 끓입니다.



아래는 몇년전에 집에서 김장 신김치를 고기 별로 안넣고 잔뜩 끓였던 사진입니다. 어려서 신김치를 커다란 냄비에 만들어 몇끼고 계속해서 끓여 먹다보면 김치는 푹 물러서 흐물흐물해지고 국물은 갈수록 깊은 맛이 나던 기억이 나서 재현해 보려고 만들었지요. 제일 맛있다 싶으면 '이게 마지막이야'라는 소리를 듣곤 했던 기억도 나구요. 


아래는 차돌 된장찌개입니다. 된장찌개도 맛이 좋지요. 한국인을 분류할 때 김치찌개파 된장찌개파로 양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선호도에서 둘로 갈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김치찌개 파입니다만. 된장찌개를 집에서 여러번 끓이다가 얻은 결론이 하나 있습니다. 된장의 힘을 믿고 양념을 최소화해야 된장찌개 맛이 제대로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불안해서 간 마늘좀 넣고, 걱정돼서 다시다좀 넣고, 자신이 없어서 미림도 살짝 넣고 등등 이러다 보면 맛은 고소해지는데 밖에서 사먹는 된장찌개와 비슷해집니다. 맛있는 된장을 확보했다는 전제아래 된장찌개는 각종 양념을 배제하는 쪽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지난 여름 아는 분께서 된장찌개를 정말 잘하는 집을 소개해준다며 데려간 허름하고 조그만 백반집에서 먹은 된장찌개 입니다. 오래 곰삭아서 고추장도 꺼먼 빛이 나고 된장찌개도 색깔이 사진처럼 짙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맛이 좋았습니다. 총각김치, 열무김치도 훌륭했고,  밥에다가 각종 나물을 넣어 된장찌개와 함께 비벼먹으니 보양식을 먹은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장소는 홍제동 어디인데 전화번호도 못 묻고 나왔습니다. 다시 한번 가게 되면 정보를 적어 나오려 합니다.


아래는 순두부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우리가 밖에서 사먹는 순두부의 레시피가 요즈음처럼 정형화 된 건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심심한 순두부 위에 간장 양념, 고추가루 양념 끼얹어 먹는 걸로 알던 음식이 언제부터인가 매콤한 국물안에서 바글바글 끓이는 찌개가 되었습니다. 제가 농담삼아 내가 그럴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순두부찌개 레시피에 공헌한 사람 찾아내어 훈장주고 싶다고 말하곤 합니다. 한가지 덧붙일 건 LA의 한인타운이 순두부찌개의 발전에 공헌을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올림픽가에 길건너 마주보고 있던 베벌리순두부와 소공동순두부는 30년전부터 서울에선 맛볼 수 없는 순두부찌개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북창동순두부(지금의 BCD 순두부)로 이어지며 서울보다 맛있는 음식을 냅니다. 뉴욕에도 같은 순두부 집이 있지만 역시 LA만은 못합니다. 30수년전 한국에 두부종류가 다양하지않던 시절, 캘리포니아엔 일본인 중국인 상대로 만들어 파는 두부종류가 다양했는데 아마 거기서 연두부를 골라 만들기 시작하여 발전한게 아닌가 합니다.


아래는 집에서 뚝딱 해먹은 순두부입니다. 동네 편의점에서도 튜브모양으로 채워넣은 연두부를 팔아서 해먹기가 편리합니다. 불에서 내리기 삼사분전에 계란을 넣어서 반쯤 익었을 때 숟갈로 떠서 밥에 얹어 찌개국물하고 비벼먹는 맛이 별미입니다. 


아래는 식당에서 시켜먹은 생태찌개 입니다. 이름이 생태찌개지 대한민국에 생태를 파는 집은 없다고 봐야지요. 하지만 요새는 급속 냉동기술이 발달하여 러시아산 '생태(해동한 명태)'도 먹을만 합니다. 맛이 좋지요. 러시아산도 좋고 양념이 센 것도 참아주겠는데 서민적인 모습을 풍기겠다고 양은 냄비에 끓이는 건 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구겨지고 찌그러지면 모가 난데서 알미늄이 녹아나오는게 신경이 쓰입니다.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된다고 일찌기부터 서양의학계에서도 경고가 있었지요. 저는 이 알미늄과 치매의 연관성을 다른 근거로도 믿는데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아무튼 흉물스럽게 우그러진 양은냄비에 각종 찌개, 닭도리탕, 감자탕 등을 끓여내는 식당이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코다리로 끓인 찌개입니다. 저는 어려서 많이 먹어서인지 명태, 북어, 동태, 코다리 다 좋아합니다. 아가미젓 창란젓 명란젓도 물론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않습니다. 아쉬운 건 아가미 식혜, 창란으로 담근 무식혜 등이 맛이 그만인데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이젠 구할수도 없습니다. 시판되는 창란젓은 아예 젓가락도 안댑니다. 비려서요. 깨끗하게 손질하여 만든 곱창과 지저분한 곱창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요즘 창란젓이 다 후자에 가깝습니다.


제가 자신있게 만드는 알찌개 입니다. 무하고 파 그리고 계란말고는 다른 재료 필요없습니다. 염도도 알에서 나와 따로 양념할 일도 없습니다. 비결은 맛있는 알을 듬뿍 넣는 겁니다. 저희집 쥬스는 모처럼 생긴 명란젓을 제가 푹푹 꺼내어 알찌개를 하면 아깝다고 말리곤 합니다.


아래는 콩비지찌개 입니다. 제가 비지를 좋아해서 기회되면 먹으려 하는데 잘하는 집이 드물지요. 주로 예술의 전당 백년옥에서 먹곤 합니다. 좋은 건 그 집에 가면 두부만들고 남은 비지를 그냥 손님들이 가져가도록 해줍니다. 어려서 먹어서 그런건지 콩으로 갈아만든 고급스런 콩비지도 좋지만 두부만들고 남은 비지로 만든 찌개도 각별한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아주 옛날엔 서울에서도 두부장수가 저녁무렵 동네를 돌아다녔드랬습니다. 지게를 지고 딸랑딸랑 종을 흔들면서요. 지게 상단엔 두부가 하단엔 비지가 있어서 두부를 사면 비지를 덤으로 주었던 것 같습니다. 신김치넣고 끓인 비지찌개가 그립습니다.



호박 고추장찌개입니다. 가끔씩 고추장찌개가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냉장고에 애호박이 있으면 만들어먹곤 하지요. 고등학교 시절에 캠핑가면 인근 마을에서 감자 호박 같은 걸 사다가 고추장 풀어 끓여먹곤 했지요. 지금 돌이켜보니 캠핑의 재미는 버너위에 코펠 얹어서 밥하고 찌개 만들어 먹는 재미가 절반이 넘었던 것 같습니다. 밥이 삼층밥이 되어도 그게 맛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고추장찌개를 등산찌개라고 부릅니다. 
 


캠핑이니 등산이니 하면 또 빠지지 않던게 꽁치찌개 입니다. 펭귄표 꽁치통조림을 사서 김치하고 넣고 끓이면 그게 또 그렇게 야외에선 맛이 좋았습니다. 개울가에 텐트치고 수영(물장구)이라도 하면 배가 고파서 더욱 맛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아래는 식당에서 사먹은 묵은지꽁치찌개 입니다. 역시 통조림을 재료로 쓴 걸 보면 손님들도 옛맛을 찾아 시키는게 아닌가 합니다. 묵은지고등어찌개도 있는데 제겐 둘 다 정말 어쩌다 먹지 평소엔 별로 찾지 않는 품목입니다.



청국장입니다. 저는 강원도 출신이라 청국장을 먹던 집이 아니어서 이 음식의 존재를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정말 맛있는 청국장을 못먹어 봐서인지 아직도 별로입니다. 처가는 경상도라서 커피여사는 청국장도 좋하하는데 저희집이 외국으로 전전하며 살다보니 그다지 먹을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전 먹은 곱창전골입니다. 강남 남포면옥에서 먹었습니다. 옛날에 누군가가 곱창찌개 그러면 어감이 싸게 들리니까 좀 있어보이라고 전골이라 이름붙이지 않았나 추측해봅니다. 내용이나 구성은 틀림없는 찌개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맛이 좋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 명동에서 미용실을 하던 친구 누나가 우리 일행 4명을 데리고 '신정'이라는 곳에 데려가 곱창전골을 사주어서 그때 먹어본게 처음입니다. 하도 맛있어서 사리도 계속 추가하고 밥도 두공기씩 먹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미대를 나온 멋쟁이 누님이었는데 젊은 나이에 명동에서 미용실을 차려 운영을 한 걸 보면 깨인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요새는 깨끗하게 손질한 곱창으로 곱창전골을 하는 집이 자꾸 줄어들어 섭섭합니다. 



찌개는 국보다 짜고 양념도 강합니다. 그러니까 맛은 좋지만 그렇게 건강한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너무 짜지 않게 맛이 강하지 않게 식생활을 하여서 혀를 순화시키고 그래서 건강을 지켜야 우유 대학졸업할 때까지라도 내 할 일을 다할수 있다 마음을 다잡는 토요일 우후였습니다.



김용(金庸)선생과 완탄면 그리고 차씨우 공개 포스팅


아시아 문단의 큰 별이 졌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다가 김용선생이 오늘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 마음이란게 묘해서 얼마전부터 선생께선 건강하신가 어떤가 괜히 궁금해지곤 했었다. 나는 선생을 생전에 세번 만나뵐 기회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 어느 외국 회사의 프로젝트를 맡아서 수행한 적이 있었는데 아시아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의견도 들어보고 하는 프로젝트였다. 나는 사람이 운이 좋으면 이럴수도 있구나 싶었고, 평소에 만나보고 싶었던 이들을 리스트에 넣어 컨택을 하였다. 운좋게도 높게만 보였던 위치에 있던 분들이 대개 응해주어서 귀한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그렇게 연이 닿았던 이 가운데 한 분이 김용선생이었다.

홍콩으로 날아가 하루밤을 묵은 뒤 다음날 아침 10시 약속장소인 명보(明報)사옥 회장실에 도착하였다. 명보는 선생이 창간한 홍콩의 가장 유력한 신문가운데 하나이다. 선생의 본명은 자량용(查良鏞)이고 영어로는 Louis Cha 인데 그의 필명 김용(금용)은 이름의 세번째 글자인 鏞자를 파자하여 金과 庸으로 나눈 것이다. 천정이 높은 그의 집무실은 선비의 방처럼 책장으로 두면이 둘러쌓여 있었고 곳곳에 글씨와 산수화가 걸려 있었다.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장기판 이었는데 초나라와 한나라로 나뉜 장기알이 포는 대포형상, 상은 코끼리 형상, 말은 말, 차는 수레 등으로 조각품이었다. 한쪽은 호박으로 만든 것이고, 한쪽은 옥으로 만든 것인데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내딴에는 아이스브레이킹도 한다고 이런 건 얼마면 사냐고 물어보았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문화재급이라 가격을 잘 모르겠다고. 그 때는 미처 못물어봤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걸렸던 산수화도 장따치앤(張大千)과 치바이스(齊白石)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친절하게 우리 일행을 맞아준 선생은 책상뒤의 책장하나를 옆으로 밀었다. 드르륵 열리는데 안쪽으로 영화에서 보듯이 양주병이 그득한 진열장이 숨어있었다. 술을 한잔 하겠냐고 물어보았다. 우리 일행은 셋이었는데 나빼고 두사람은 술을 잘 못마시는 터라 사양을 하였다. 나혼자 호기있게 마시겠습니다, 그러자 언더록 잔 두개를 꺼내더니 조니워커 블랙을 콸콸 부었다. 3분의 2정도 채운 잔을 내게 건네면서 '우리 사무실에 방문한 걸 환영한다'며 건배를 청했다. 살짝 긴장도 했던 터라 벌컥벌컥 잔을 비웠는데 정신도 멀쩡하고 속도 괜찮았다. 선생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즐거운 표정이 되어 면담시간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중국문학계에 김용학(金庸學)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낼만큼 업적을 세운 것 말고도 생전 등소평과의 교분도 두터웠고 영국, 프랑스에서 O.B.E 레지옹되뇌르를 받고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십개 받은 이가 이렇게 소탈할까 싶을 정도로 자상하고 유우머가 넘쳤다. 한국의 고려원인가에서 <영웅문>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그의 한국어 번역본을 꺼내 보내주며 누군가가 갖다주어 본인도 소장하고 있다고 유쾌하게 웃었다. 저작권없이 그냥 출판한 해적판이라도 개의치 않는다는 뜻의 웃음같았다. 하긴 그 시절 십몇억되는 중화권 인구가운데 인세를 지불한 판본으로 그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며 나의 부끄러움을 감추었다.

그와 두번째 만남은 프로젝트 마감을 위해 혼자서 다시 방문하였을 때였다. 점심시간이 넘어선 오후였다. 내게 홍콩음식 무얼 좋아하냐고 물었다. 차씨우와 완탄면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맛있는거 좋아하면 시간날때 가보라고 메모용지에 몽블랑 만년필로 몇 개 가게이름을 써주었다. 그 가운데에 鏞記와 何洪記가 들어있었다. 용기는 알고있었지만 호홍게이는 그 때 처음 알았다. 그 이후 오늘까지 좋아하는 가게가 되었다. 미련하게도 나는 그 때 선생이 친필로 써준 그 메모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 어딘가에 잃어버렸다.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앞으론 용기나 호홍게이를 가면 선생을 생각날 것 같다. 삼가 선생의 명복을 빈다. 

맨위의 사진에 나온 2행시는 선생의 작품의 머릿글자만 따서 만든 구절로 유명하다. 해석은 생략. 

飞《飞狐外传》
雪《雪山飞狐》
连《连城诀》
天《天龙八部》
射《射雕英雄传》
白《白马啸西风》
鹿《鹿鼎记》
笑《笑傲江湖》
书《书剑恩仇录》
神《神雕侠侣》
侠《侠客行》
倚《倚天屠龙记》
碧《碧血剑》
鸳《鸳鸯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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