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기름, 베이징의 하늘, 그리고 바더마인호프... 살아가는 이야기


베이징의 하늘은 잔뜩 흐렸습니다. 오늘 아침 이른 편을 타고 다른 곳으로 가는 동료가 있어서 공항에 함께 나오다보니 일찌감치 수속을 마치고 시간이 많이 남아있네요. 지금 라운지에서 이 포스팅을 쓰고 있습니다. 영어로 바더마인호프 현상(Baader-Meinhof Phenomenon)이라는 용어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새로운 단어나 팩트를 알게되고 나면, 그 때부터 얼마 지나지않아 계속 반복해서 그것이 눈에 띄거나 들어오는 현상을 이른다고 하지요. 일종의 인지바이어스(cognitive bias)라고도 한다는데 이런건 저도 잘모릅니다. 그냥 넘어가지요.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라드, 그러니까 돼지기름 때문입니다. 이글루스 블로그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서로 알고 쓴 거니까 그렇다고 치고 갑자기 엉뚱한데서 자꾸 돼지기름 이야기가 나오는게 신기했습니다. 라드 포스팅을 한 다음날 대만에 계신 은사님으로부터 이멜을 받았습니다. 돼지기름이 건강에 좋으니 많이 먹으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돼지기름의 좋은 점에 대해서 설명한 긴 글도 첨부해 주셨는데, 나쁜 콜레스트롤을 줄여주고 혈압을 낮춰서 심혈관질환이나 고혈압에 좋다는 것을 위시해서 여러가지 장점이 열거되어 있었습니다. 

거기 있는 내용이 맞는다면, 돼지야 미안하다 그동안 오해가 많았다 감정을 풀고 이제 사이좋게 지내자, 이렇게 어디엔가 반드시 사과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 맞는 말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으니 여기에 퍼다가 옮기는 것은 생략하기로 합니다. 

그저 라드가 맛이 좋아서 먹었던 것인데 그렇게 몸에 나쁜게 아니라면 저로서야 더할 나위없이 기쁘지요. 물론 막연하게나마 마음한구석에 이게 몸에 좋은 면도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최소한 싸구려 식물성기름과 비교해서 플러스마이너스 쎔쎔은 가겠지하는 확신은 있었지요. 언젠가 사회적으로 믿음을 주는 위치에 계신 분이 라드의 효능을 속시원히 밝혀주시길 바라며 여기서 아마추어는 그냥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틀지나서 서울에서 오랫만에 동창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학교다닐 때부터 참 술을 좋아하던 친구인데 교직에 몸담고 있는 지금도 만나면 예전처럼 술을 마십니다. 술이 많이 약해진 동창들에겐 부러운 체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친구: 여보세요? 어디야? 외국이야?
밥: 응, 중국. 다른데 있다가 지금은 북경에 와있지.
친: 그렇구나. 언제 들어와? 가을에 하는 세미나가 있어서 상의하려고 전화했는데 로밍이면 들어와서 얘기하자.
밥: 어
친: 잘 지내니? 북경 공기 되게 나쁘잖아. 괜찮아?
밥: 며칠전 비가 한번 오고나서 아주 맑아졌는데, 계속 야금야금 나빠지고 있어. 북경의 평소보다는 아직 좋은 것 같애.
친: ㅎㅎㅎ 돼지고기 많이 먹어라. 먼지 공해 이런거 씻어내는데 아주 좋단다.
밥: 진짜 그럴까?
친: 돼지비계가 몸안의 중금속 이런걸 배출하는데 좋다고 하잖아. 옛날에 인쇄공들이 납중독 씻어낸다고 매일 돼지고기 먹었잖아. 먼지많이 먹는 직업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밥: 음, 없던 시절에 돼지고기 먹으려는 핑계 아니었을까? ㅎㅎ
친: 아니, 너 돼지고기도 잘먹는데 이왕이면 그거 먹어서 손해볼 거 없잖아. 옛사람 말에 뭔가 이유가 있었을거야.

그리고 다음날 우연히 중국의 회족(回族)출신 친구와 점심을 먹는데 오리고기를 시킨 그가 말했습니다. "돼지기름하고 오리기름은 몸에 좋아. 소기름은 몸안에 굳어서 덜 좋단다. 난 돼지를 안먹지만, 먹는 사람들은 기왕에 먹을거면 소보다는 돼지를 먹는게 좋지"

그 때 왜 이렇게 갑자기 돼지비계, 돼지기름 이야기가 연이어 나오는 걸까 신기했습니다. 아 이런걸 바더마인호프현상이라고 하는건가 보구나. 그래 이걸 잊지말고 기록해 놔야지... 그러다가 오늘 마침 공항에 일찍 나왔겠다 시간도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된 것 이지요. 맨위의 사진은 제가 집에서 해먹었던 돼지불고기 사진입니다. 요새 먹은 것은 아니지만 올림픽 선수단 입장하듯 중국요리앞에 한국요리 사진을 올리고 싶어 아래 사진들 찾으면서 스마트폰에서 찾아본 것 입니다.  

아래는 돼지비계를 잘 조리한 중국요리입니다. 말대로라면 이게 그렇게 몸에 좋다는 것 아닙니까? 동파육 이런게 다... 말이죠.


아래는 딤섬집에 가면 흔히 먹을 수 있는 돼지갈비입니다. 새삼 고기보다는 투명한 기름부분이 고소하고 훨씬 맛있는 것 같았습니다. 팔랑귀...


아래는 그냥 중국식으로 조리한 돼지갈비 입니다.


여기까지가 먹는 이야기였고, 아래는 기록을 위해서 올리는 사진입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찍다보니 재미있는 자료가 된 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맨처음에 그러니까 8월 23일 오전에 베이징의 호텔에 체크인해서 창밖을 찍었습니다. 그게 아래 사진입니다. 찍으면서 음, 역시 공기가 안좋구나. 뿌얘... 그러고 별생각 없이 찍었지요. 원경이 희미합니다.

8월 24일 오전. 전날 23일 저녁부터 빗방울이 듣더니 밤에 제법 비가 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오전 아직 하늘에 구름은 끼어있지만 공기가 씻겨져서 말끔합니다. 멀리까지 뚜렷이 잘 보입니다.


8월 25일 오전 정말 베이징 답지 않게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처럼 쾌청한 월요일 날씨는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죠.
8월 26일 오전. 아직 하늘은 파란 색깔입니다만 도심부 밑쪽으로 뿌옇게 먼지같은게 끼기 시작하는게 보입니다.

8월 27일 오전. 대기 전체가 많이 뿌얘졌습니다. 밝기 이런걸 자동조절을 하는 스마트폰이라서 그런지 사진전체가 연하게 나온 것 같습니다. 

8월 28일 오전. 해가 떠있었던 것 같은데 흐린 날 같이 보입니다. 시야도 많이 트이지 못했습니다.


8월 29일 오전. 이제 거의 베이징에 왔을 때로 돌아간 것 같더군요. 오후에 다니다보니 목이 아파왔고 하늘에 뜬 태양은 구름이 없는데도 빨간모습을 그냥 육안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공기가 나쁜 날 베이징에서는 해를 달처럼 쳐다볼 수가 있습니다. 아주 안좋은 날은 그마저도 안보이고요.


매일 아침 호텔에서 조찬미팅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방에 올라와 나가기 전에 이멜 체크를  할 때 사진을 찍다보니 매일 일주일동안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시각에 찍게 된 사진들 입니다. 하루빨리 중국의 공기가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이 큽니다. 참고로 오늘은 일찍 나오느라 사진을 못찍었는데 앱으로 찾아보니 베이징의 공기는 어제보다 많이 더 안좋아졌더군요.

공기가 좋아지는 그날까지 베이징에 사시는 유학생, 주재원, 그 가족들 모두 돼지고기 많이 드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드실거면 기왕에 몸에 좋다는 거 드셔서 손해볼 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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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드로 만든 짜장면; 돼지기름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위의 두 사진은 집에서 해먹은 짜장면입니다. 집에서 가끔씩 뭐 먹을까 생각 안나면 손쉽게 해먹으면서도 물리지 않는게 짜장면입니다. 큰 냄비에 국수삶을 물부어 불위에 얹어놓고~ 옆에서 야채랑 고기볶고 춘장 따로 볶은뒤에~ 함께 섞고 물에다 설탕약간하고 밀가루약간 풀어서 더하여 끓이면  끝!...입니다. 걸리는 시간은 20분남짓. 라면은 5분이면 끓이니까 그것보다는 좀 더 걸리지만 남아있는 재료를 활용하기에 좋아서 가끔씩 해먹게 됩니다. 

이게 웬만한 중국집 짜장면보다 맛있습니다. 그 이유가 밥과술의 솜씨에 있는게 아니라 라드에 있다고 믿기에 자기가 만들어 놓은 걸 맛있다고 쑥스럽지 않게 말하는 겁니다. 저는 짜장면 짬뽕만큼은 식용유로 식물성유가 아니라, 돼지기름 그러니까 라드를 사용하여야 제 맛이 난다고 믿고 늘 그렇게 해먹고 있습니다.  

 
오늘 이 포스팅은 며칠전 까날님께서 직접 집에서 라드를 만드시는 모습을 글로 올려주셨기에 동조하는 의미에서 올리는 글입니다. 저는 직접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라드 예찬자입니다. 한 때 건강에 좋지않다는 누명을 쓰고 사라졌던 라드가 웬만한 식용유보다는 더 낫다고 조금씩 복권되는 내용의 글과 기사가 요즈음 눈에 자주 보여서 즐겁습니다. 

제겐 라드와 관련된 이런저런 추억이 많습니다. 그 처음은 중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읽었던 펄벅의 대지입니다. 청나라 말기에 중국을 무대로 여자주인공 오란이 왕룽과 결혼하여 살아가는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걸 읽으면서 잘 상상이 안갔던게 곳곳에서 나오는 돼지기름 이야기였습니다. 중추절에 맛있는 과자를 만들때도 돼지기름이 들어가고, 잔치같은 경사가 있을 때에도 돼지기름을 사용하여 이런저런 음식을 만드는 이야기가 여러군데 나오는데, 맛있는 과자와 본적도 없는 돼지기름의 조합은 열세살먹은 아이에게는 상상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뭘까 궁금한채로 얼마가지않아 돼지기름은 머리속에서 잊혀졌습니다.  

삼년뒤 고등학교에 입학한 밥과술 학생은 영문소설 읽기에 도전합니다. 조지오웰 동물농장,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등 여러권을 추천받아 파락파락 페이지를 넘겨가며 간을 보는데, 펄벅의 The Good Earth가 눈에 들어옵니다. 짧은 문장에 어려운 단어도 별로 없는 것 같았고 만만해 보였지요. 한국어로 읽어서 내용을 아는 것도 도움이 되었고해서 사전찾아가며 며칠만에 다 읽고나니 뿌듯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게는 생애 최초로 읽은 영문소설이 펄벅여사의 대지입니다. 영문소설을 읽고 싶으신 분들에게 입문으로 저는 자신있게 이 소설을 권유합니다. 쉽게 읽혀서 자신감이 붙는데는 딱입니다.

저도 이때 얻은 자신감으로 그 뒤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페이퍼백 소설을 닥치는 대로 사서 읽었습니다. 표지를 찢어내고 폐지로 나온 것들이라 값도 쌌기에 명동나가면 한번에 열권 이렇게 사다놓고, 문장이 어렵거나 재미없으면 아낌없이 버리고 다른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뒷날 생각해보니 그 때는 그게 영어공부라는 생각을 못했기에 그 습관이 지속된 것 같습니다. 청개구리 성격에 그게 영어공부가 되니까 열심히 하라고 누가 얘기했으면 금세 취미를 잃고 집어치웠겠지요^^;;

그러다가 고2때 마리오푸조라는 작가가 쓴 Godfather라는 두툼한소설을 구해서 그 재미있는 내용에 빠져들어 몇날밤을 새고 독파를 하게되고 그 때의 감동이 뒷날 미국유학으로 이어지게 되니까 거슬러 올라가면 제 인생에서 펄벅의 대지는 중요한 계기라고도 할 수 있네요. 추억에 빠져서 얘기가 엉뚱한데로 흘러갔군요.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펄벅의 대지를 영문으로 읽으니 번역본에 나왔던 돼지기름이 혼자 상상했던 'pig oil' 뭐 이런 단어가 아니라 lard 라는 단어이더군요. 그리고 라드라는게 중국집 모든 요리의 기본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봄이고 여름이고 활짝 열어젖힌 중국집 주방안을 지나가다 들여다보면 커다란 양철통에서 국자로 푹 퍼서 불위의 냄비에 담으면 물같이 녹으며 끓는 바로 그게 라드라는 걸 알게 된겁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한참 먹을 때라(저는 그때보다 지금 더 많이 먹는게 문제지만요ㅠㅠ) 방과후 집에 갈때면 그렇게 배가 고플수가 없고 어둑어둑한 귀가길에 음식점 환풍기에서 나오는 갖가지 냄새는 정말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새카맣게 떠케가 앉은 중국집 환풍기에서 나오는 고소한 냄새는 어디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광화문 국제극장옆 골목에서 나오는 중국집 냄새입니다. 국제극장은 지금 동화면세점 자리에 있었고 그 때 신문로로 뻗은 길의 뒷골목은 도로가 확장되면서 없어졌습니다. 당시는 광화문에서 서대문 쪽으로 뻗은 신문로길에 레코드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원판 라이센스판 빽판  무엇이든 구하려면 그 동네를 자주 나갔는데 원하는 LP판을 구한 뒤에 그 뒷쪽 골목에 늘어서 있던 중국집에서 먹었던 짜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 면을 손으로 쳐서 뽑는 집이 줄어들고, 라드가 중국집 주방에서 추방되고 나서는 점차 그 맛있던 짜장면이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네 진짜 맛있는 짜장면이 수타, 라드와 함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라드를 구해다가 집에서 이런저런 요리를 해먹으면서 잊었던 옛맛의 최소한 절반은 되찾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까날님의 포스팅에서 라드를 뽑고 남은 걸 볶음밥 고명으로 넣어 먹으면 맛있다고 언급하신 대목이 있습니다. 당연히 맛있겠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돼지비계에서 기름을 뽑는 습관이 없으니 뽑고 남은 걸 부르는 명칭도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이걸 쭈요우짜(猪油渣)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渣라는 글자는 깻묵,비지 같이 남은 걸 얘기합니다. 일본에서는 粕이라고 쓰고 카스라고 읽는데 우리는 그걸 들여와 '박'이라고 읽지요. 지게미든 뭐든 알맞는 우리단어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이 쭈요우짜를 가지고 만든 음식들을 퍼온 겁니다. 위 단어를 복사해서 구글 이미지 검색해보시면 많은 사진과 레시피가 나옵니다. 아래 두번째 것은 중화권의 음식 파워블로거가 올린 것 같습니다. 사진 밑에 나온대로 찾아가 보시면 맛있는 사진이 많더군요.


아래 사진역시 이미지검색에서 퍼온 쭈요우짜입니다. 까날님의 포스팅에 있는 사진과 같다는 걸 보여드리려고 올리는 겁니다.



홍콩도 옛날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조차 귀한 음식이었을 때가 있었답니다. 리플레이스먼트 킬러, 와호장룡, 카리브의 해적에 출연하여 헐리웃에 그 존재감을 알린, 우리에게는 뭐니뭐니해도 '영웅본색'의 썬글래스 바바리 이쑤시개의 이미지가 강렬한 스타 주윤발이 이렇게 회고합니다. "옛날에는 참 가난했지. 무우 한 쪽에 쭈요우짜 몇 개면 밥 한그릇을 거뜬히 먹었으니까. 근데 쭈요우짜는 그나마 아까와서 얼른 못먹고 결국 엄마 드시라고 남겨놓곤 했었지."

얘기는 제가 홍콩에서 학교를 다니던 아주 옛날로 돌아갑니다. 외국에서 온 유학생과 친하게 지내는 현지학생들은 어느 나라든 늘 매사 적극적이고 활발한 경우입니다. 홍콩도 예외는 아니어서 주로 그런 아이들과 친하게 어울리며 지냈는데, 하루는 땅꽈이민(鄧貴敏)이라는 학생이 식당에서 다가오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얘기를 건넸습니다. 그는 평소 매우 조용한 편이고 홍콩학생이면 거의 누구나 가지는 영어이름하나 없던 그런 아이였지요. 

땅: 저기...뭐 하나 물어봐도 돼?
밥: 응, 뭔데?
땅: 이번 토요일날 무슨 특별한 계획없으면 우리 집에 가서 밥먹을래?
밥: 으, 응...계획은 없는데...왜?
땅: 아니, 그냥... 나도 너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넌 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까.
밥: 아, 그래? 그럼 좋아. 갈께. 마쓰다하고 빌도 데려갈까?
땅: 일본에서 온 친구하고 캐나다 친구? 그럼 더 좋지. 우리 집엔 외국사람이 와본 적이 한번도 없거든. 놀랄거야.
밥: 그럼 몇시에 어디서 만나지?
땅: 근데... 우리 집 시골이야.
밥: 시골?
땅: 응, 시골이야. 정말 시골... 집에서 닭도 키워. 그날 형님이 닭을 잡아서 요리를 해주실 거야.

그가 말하는 시골이란 윈롱(元朗)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정말 시골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지역중심에는 뉴타운이 들어섰지만 당시에는 다운타운도 우리나라 시골읍내 같았고 거길 벗어나면 사방에 숲이 우거지고 밤이면 별이 많이 보이고 개구리소리가 시끄러운 그런 농촌이었지요. 홍콩 그러면 센트럴, 완차이, 코스웨이베이, 침사쪼이 이런데만 알다가 버스를 타고 뉴테리토리(新界)에서도 깊숙한 곳으로 한시간이상 가서 그런 곳을 본 건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객가의 집성촌도 가보고 논밭을 터전삼아 농사짓는 사람들도 보고 해서 자칭 강원도 촌놈 밥과술은 그 동네에 금세 정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초대받은 날 점심에 우리 모두는 평소 식당에서는 먹기 어려운 가정식 객가음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주 조용하고 내성적이기만 한 줄 알았던 꽈이민이 이렇게 말도 많고 재미있는 친구인줄도 처음 알았구요. 닭, 돼지, 다양한 야채 등으로 만든 여러 음식을 먹고 나니 그가 밥을 먹자며 자기는 쥐야우판을 먹겠다고 합니다. 그게 뭐냐 물어봤더니 猪油饭이라고 써주었습니다.

별게 아니고 따뜻한 밥에다 라드를 넣고 간장을 넣어 비벼먹는, 아주 간단한 음식이었습니다. 아, 우리도 어려서 버터(마가린)에 간장넣고 많이 비벼먹었단다, 라고 대답해주고 따라해보았습니다. 돼지기름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선입견과는 달리 정말 고소하고 맛있었습니다. 그 당시 찍은 사진이 없어 이미지 검색으로 비슷한 걸 찾아 보았습니다. 


그가 설명해 주었습니다. 옛날에 홍콩에선 많은 가정에서 비계붙은 돼지고기를 사다가 집에서 라드를 내어서 식용유로 썼다고요. 그러다가 미국에서 값싼 식물성 대두유, 옥수수기름이 들어오면서 라드는 홍콩과 대만 가정의 식탁에서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식당에서도 손님들의 요구에 맞추어 식물성 기름으로 모든 요리를 하게 됩니다. 

저는 딱 한번 라드를 튀김기름으로 써서 탕수육을 해먹은 적이 있습니다. 맛있었습니다. 아, 이맛이었지하는 잊고 있었던 걸 되찾는 즐거움도 있었구요. 그러나 튀김요리는 기름을 한번 쓰고 버려야 해서 손님이라도 치르기 전에는 낭비가 많기도 하고, 또 라드를 많이 구입하기도 어렵고 해서 실험용 한번으로 만족하기로 했고 집에서 라드로 튀김요리를 하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그 대신 짜장면과 짬뽕을 가끔씩 해먹으며 밥과술네 주방에서 라드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 홍콩으로 얘기가 돌아갑니다. 우리는 맛있게 밥을 먹고 저녁무렵 그의 집을 나와 버스를 타러 윈롱 읍내로 나왔습니다. 꽈이민은 윈롱에서 자랑할만한게 있다며 굳이 데려가 우리에게 월병을 한상자씩 사주었습니다. 알고보니 그집은 홍콩의 시골 윈롱(元朗)에서 출발하여 아주 성공한 곳으로 웽와(榮華)라는 식당인데 60년전부터 월병을 만들어서 크게 번창하여 지금은 홍콩 공항안에도 가게가 있습니다. 브랜드에 윈롱웽와(元朗榮華)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펄벅의 대지에 나오는 것처럼 처음엔 라드로 월병을 맛있게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직도 홍콩 곳곳에는 흰밥에 라드와 간장을 넣고 비벼먹는 이 소박한 음식을 메뉴에 넣은 식당이 있습니다. 언젠가 홍콩가실 기회있는 분들은 豬油撈飯이라고 쓴 곳을 보시면 한번 시도해 보세요. 위에 소개한 식당의 윈롱 본점은 지금도 향수에 젖은 손님들에게 맛있는 라드비빔밥을 제공하는 걸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오늘 라드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기로 합니다~

덧: 저는 중국에 와있습니다. 한가위 명절이 빨리 찾아오는 올해, 중국에서는 벌써 가게마다 수퍼마다 월병광고가 대단하네요. 라드 - 펄벅의 대지- 월병 - 홍콩 윈롱 - 라드비빔밥 - 땅꽈이민... 꼬리를 무는 기억의 편린에 일손을 놓고 잠시 추억에 잠겨봅니다. 꽈이민은 졸업후 외국계 은행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홍콩청년들이 그렇듯이 몇년뒤 자기 사업을 한다고 퇴직을 하였습니다. 저역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되고 그러다 연락이 진작에 끊어졌습니다. 보고싶네요.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덧2: 사실 이 글은 며칠전에 올리려고 했던 겁니다. 그 이전엔 또 매운맛 이야기 4를 진작에 올리려고 했는데 도저히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한 쪽에서는 진상규명을 하기위해 단식을 하고 있는데 뭐가 맛있네 어쩌네 하는게 걸려서요. 더구나 김영오씨가 건강에 이상이 와서 병원으로 이송될 때는 너무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요새는 일어나면 무슨 일은 없나, 식사는 하기로 했나 궁금해서 아침에 유민아빠 이름부터 검색하고 넘어갑니다. 저는 저의 태도만 옳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상을 사는 사람은 일상을 살아야지요. 다만 평범한 시민으로 조그맣게라도 힘을 보태고 싶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 분도 빨리 회복하셔서 둘째 딸하고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올 수 있도록 사태가 잘 풀려나가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먹는 블로그에 괜히 유세하는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그러면 제가 너무 답답할 것 같아서 못참고 이렇게 구차한 변명을 몇마디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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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그 굵고 짧은 역사; 매운맛 이야기(3) 살아가는 이야기


매운 음식에 관하여 이미지 검색을 하다가 찾은 사진입니다. 매운 걸 먹는게 살도 빠지고 건강에도 좋다고 소개하는 미국 어느 의사의 웹사이트에 실린 이미지입니다. 검색어는 영어로 spicy food 입니다. 아래 역시 같은 검색어로 나온 화면을 캡쳐한 것입니다. 빨간 색깔이 제일 눈에 들어옵니다. 고추가 많다는 얘기겠지요. 


서양 만화를 봐도 그렇고 아시아에서도 매운 맛 그러면 아래 그림처럼 불타는 이미지를 자주 사용합니다. 입에서 '불난다'는 표현은 여러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쓰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위의 사진역시 매운 고추가 건강에 대단히 좋다는 웹사이트에 실린 이미지입니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이 매운 고추를 먹으면 살이 빠지고, 항암효과가 있고, 혈액순환이 좋아지며, 잠을 잘 잘수가 있으며, 관절염같은 통증을 완화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라면 고추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기쁜 내용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고추가 여러가지로 건강에는 좋지만 숙면을 방해한다는 웹사이트도 있습니다. 

어느 인도의 신문사 웹사이트에서는 위의 효능에 더해서 매운 음식이 심장질환을 예방하고, 세로토닌같은 물질을 분비함으로 우울증에도 좋고 화를 삭혀준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포스팅은 고추의 효능을 다루거나 이런 저런 설의 진위여부를 검증하는게 아니므로 그냥 넘어갑니다. 사진퍼온 값으로 위의 사이트들 링크소개하니까 시간있으신 분들 들어가 보세요. 

http://halls.md/spicy-food-for-weight-loss/
http://juicygeniuses.com/articles/why-spicy-food-is-the-key-to-a-healthy-diet
http://timesofindia.indiatimes.com/life-style/health-fitness/diet/Top-5-hidden-benefits-of-spicy-foods/articleshow/21935317.cms

자, 그럼 오늘 포스팅의 제목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지난 번에 잠깐 밝혔듯이 역사가들이 말하는 것이 맞다면 고추가 인류의 먹을거리 목록에 들어간 지는 얼마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500년대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을 거쳐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각지에 퍼졌으니까요. 그런 것에 비해서는 참으로 주목을 받는 식용작물이라 하겠습니다. 인기도 대단하구요. 그래서 오늘의 제목은 고추는 짧지만 굵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뭐 그런 뜻입니다. 

매운 맛은 오랜 세월동안 여러가지 허브 등 각종 향신료가 있었기에 다양한 식문화에 존재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고추가 보급되면서 본격적으로 매운 음식이 발달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가장 그 좋은 예로 '맵다'라는 뜻의 단어가 많은 언어에서 셋방살이로 시작했다는 걸 들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말에 '맵다'는 표현은 '사납다' '독하다' 는 의믜에서 왔다고 국어사전등에 나와있습니다. 날씨가 맵다, 연기가 맵다, 손이 맵다 다 자극이 강하다는 뜻이지요. 처음으로(처음이라 해도 어떻게 보면 아주 오래전의 얘기지만) 매운 맛을 먹어보고는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하던 옛날사람의 표정을 상상해보면 재미있습니다.

달다, 짜다, 시다, 쓰다 등의 말은 맛을 표현하는 단어로 이미 존재하다가 나중에 거기에 다른 뜻이 얹혀진 거라고 보여지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맵다라는 말도 맛을 나타내는 말인데 나중에 다른 뜻이 들어간게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예를 들어보지요. 

우선 영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맵다는 단어가 뜨겁다는 'hot'에 세를 들어 살고 있지요. 그래서 먹을 것과 관련해서 hot 이라는 말이 나오면 음식이 뜨겁다는 말인지 맵다는 말인지 문맥으로 확인하고,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뜨겁다는 말이냐 맵다는 말이냐를 구별하기 위해 다시 heat hot이냐 pepper hot 이냐 등으로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spicy라는 단어가 맵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후추, 마늘 등 자극성있는 spice를 사용하면 요리가 매워지는데서 온 단어이겠지요. 요리등에서 쓰이는 전문적인 단어로는 pungent, piquant 라는 단어가 있는데 다 날카롭다 자극이 있다 이런 뜻에서 온 것인데 piquant라는 단어는 맵다는 스페인어 picante 에서 왔다고 합니다. 프랑스어로는 épicé라고 하는데 맵다는 표현은 불어에서는 많이 빈약합니다. 그만큼 프랑스 사람들은 매운 걸 덜 먹는다는 뜻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일본말로는 매운 것을 '가라이(からい、辛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가라이'라는 말은 짜다는 말도 됩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얘기하면 '짜다'는 말에 '맵다'는 말이 얹혀 들어간 거지요. 그런데 요즘은 '가라이'그러면 맵다는 뜻이 우선하고, 짜다는 뜻을 표현을 굳이 콕찝어서 의미할 때는 '시오카라이(소금가라이)' 혹은 '숏빠이'라고 합니다. 다 소금이 많다는 뜻입니다. 굴러온 돌이 밖힌 돌을 파낸다고, 얼마 안 된 한 낱말을 놓고 매운 맛이 짠 맛을 밀어낸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중국어로도 맵다는 뜻으로 씬(辛)과 라(辣)가 있는데 요즈음 구어체로는 대개 라(랄)를 많이 씁니다. 두 글자를 합해서 우리는 '신랄'이라고 읽어, 신랄한 비판, 신랄한 공격 등으로 쓰고 있지요. 중국의 오래된 식품관련 서적인 본초강목에서는 이 맵다는 글자를 '생강 마늘 등의 맛'이라고 설명하여 놓았습니다. 가장 오래된 사전인 하나인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는 이글자가 辣자는 좌우를 바꿔 쓴 辢자와도 같다고 되어있습니다. 애매합니다.

우리 말로 매울 신(辛)인 이 글자는 워낙 많이 팔린 라면의 로고로 한자를 모르는 사람도 다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아주 엄밀히 따지면 신라면의 맛은 이 글자보다 辣자에 가깝습니다. 지난번 포스팅에 덧글을 주신 카스가님께서 본인의 매운 취향을 잘 설명해 주셨는데 그게 바로 매울 신(辛)과 매울 랄(辣)의 차이입니다. 

"청양고추나 캡사이신 등등의 한국 매운음식은 절대 못먹거든요. 근데 몇가지 먹는 매운 것이 있다면 와사비와 화쟈오 정도. 아무래도 와사비나 화쟈오가 주는 코가 아리면서 입안이 마비되는 거를 좋아하는거 같아요 ㅎㅎ 그리고 그런 통각-마비... 가 빨리 사라져서 개운하다할까요.. 아무래도 한국의 매운음식은 입 안이 뭉근하게 오래도록 아프고, 땀나고..."  전자가 신이라면 후자가 랄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중국사람들도 매운 맛을 일컫는 이 두 글자의 차이를 잘 몰라 각종 포털로 인터넷 검색을 들어가보면 씬(辛)과 라(辣)의 차이가 뭐냐는 질문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듯 하거나 자신있는 대답은 별로 없습니다. '마늘, 파, 생강같은 맛이 씬이고, 라(辣)는...잘 알잖아요' 라는게 그 가운데 가장 솔직하고 그럴듯한 대답같았습니다. 맞습니다. 辛은 오래된 글자로 고생스럽고, 힘들고, 자극이 강하고 등의 뜻으로 쓰이던 글자입니다. 辣은 잘보면 글자안에 辛이 들어있습니다. 옆의 束이 발음을 나타내고 왼쪽의 辛이 뜻을 나타내는, 나중에 생긴 글자입니다. 중국사람들은 대개 모든 매운 맛을 辛으로 표시할 수 있는데 그가운데 특히 고추의 매운 맛을 辣로 표시한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추는 중국에도 소개된지 몇백년 되지않으니 일리가 있다고 하겠는데 지금에 와서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다 애매해져 버렸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어느 언어에서나 오래되지 않은 표현만큼이나 매운 맛의 역사는 짧습니다. 우리말의 고추역시 고초(),고초()가 변한 말로 역사학자들은 임진왜란 이후에 소개되어, 즉 사백년전에 처음으로 들어와 널리퍼져 많이 먹게 된것은 길게 봐도 이백년 정도라고 보고 있습니다. 당초(唐椒)라고도 불렸던 고추는 후추(胡椒)와 마찬가지로 당,호 라는 글자가 들어있으면 외국에서 전래된 것을 나타내는데 이는 오늘날 일본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시 스파이스, 허브로 불리는 식용작물 가운데 생강, 마늘을 비롯해서 후추, 화쟈오 등 여러종류가 다 방부효과가 있고 살균작용을 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 더운 기후에서는 음식이 빨리 상하니까 모든 민족에게 향신료는 인류문명사를 바꿔놓을 만큼 절대 필요한 아이템이었지요. 특히 열대지방에서 더욱 많은 향신료를 사용하였던 것이고 그래서 지금도 인도 동남아 중동의 음식에는 이러한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음식의 보존이 중요하던 시기에 새로운 향신료로 다가온 '신대륙'의 고추는 많은 민족에게 또 하나의 복음과도 같았을 것 입니다. 캡사이신이네 고추의 약리작용이 뭐네 이런거 알기 전에 고추의 효능을 경험으로 알았을 테니까요. 그러면서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니, 먹을 땐 고통스러워도 그뒤로 곧 쾌감이라는 보상이 따라온다는 걸 아니까 매운 맛에 더욱 빠지게 된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전통음식에서는 무조건 매우면 좋은게 아니라 '맛있게 매운' 음식을 개발하고 발전시켜온 한반도의 사람들의 지혜가 이곳저곳에서 엿보입니다. 이건 괜한 애국심 선동이나 민족의 긍지 이런게 아니라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스코빌 스케일을 소개하면서 한국 고유의 매운맛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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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정 미운정, 매운 음식 이야기(2) 살아가는 이야기


얼마전 집에서 만들어 먹은 비빔국수입니다. 입맛 없을 때 뚝딱 만들어 먹으면 개운하지요. 밥과술네 비빔국수의 비빔양념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고추가루와 마늘 다진거를 중심으로 오이와 양파를 믹서에 갈아서 넣고 짠맛 단맛 고소한 맛의 간을 한 것 입니다. 냉면집에서 일하시던 분한테 전수받은 레시피라 소바나 메밀건면을 삶아 비벼먹으면 제법 그럴듯한 비빔냉면이 됩니다. 프로의 맛에 근접한 건데 시간이 좀 걸리고 손이 갑니다. 

또 하나는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입니다. 고추장에 마늘 다진것, 파 다진것 넣고 참기름 설탕 식초 간장 깨 등으로 간을 내면 그런대로 괜찮은 분식집 비빔국수 맛이 납니다. 시간도 별로 안걸려서 물 끓이는 동안에 모든 준비가 되기에 이쪽을 더 자주 해먹게 됩니다. 고명은 그때그때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식감 고려해서 적당히 넣으면 되는 가성비 아니 노성비(노력대비성능비^^)가 뛰어난 메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이 그겁니다. 

오늘은 매운 이야기를 하는 포스팅입니다. 고추가루를 쓰던 고추장을 쓰던 매운 맛이 납니다. 그러나 지향하는 것은 기분좋게 매운 정도입니다. 저한테 매운 정도는 이 정도가 알맞습니다. 다 먹고나서 입안이 살짝 얼얼한데 디저트로 케익이나 쵸콜릿 한쪽 먹으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정도를 말합니다.     

그러면 매운 음식에 고운 정만 들어야 할터인데, 근래 들어 미운 정도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한국사람들이 요즈음 먹는 매운 음식에 대해서 애증이 교차한다고나 할까요. 몇가지 예를 들어보지요. 언젠가 밤에 돌아와보니 야식 광고가 붙어있었습니다. 늘 보는 거라 그냥 버릴까하다가 얼핏 살펴봤더니 한번 접어 4페이지짜리 메뉴인데 앞표지가 '얼큰 수제비'. 새빨간 사진입니다. 

뒷표지가 6등분되어 닭도리탕, 참치(돼지)김치전골, 부대전골, 쫄면, 열무비빔밥, 양푼비빔밥, 이렇습니다. 여섯개 다 빨갛고 매운 겁니다. 속을 펴보니 스페셜, 하구는 얼큰 수제비, 얼큰 칼국수, 얼큰 라면 이렇게 시작하여 평소 눈에 읶은 메뉴들이 잔글씨로 이어집니다. 최소한 대한민국의 야식메뉴는 이렇게 빨갛고 매운 음식이 판을 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얘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진짜로 못살고 가난하던 시절 선생님들은 그래도 기죽지 말라고 우리가 자랑스러워 해야할 몇가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금수강산이다. 오랫동안 우리나라만 그런줄 알았습니다. 물이 맑고 깨끗해서 그냥 먹을 수가 있는 나라다. 외국은 안그래서 콜라보다 비싼 돈 주고 사먹어야한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물을 마시며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운 걸 너무 잘먹는다. 그래서 체구는 작아도 힘이 세고 악착같다.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김치 고추장같이 매운 거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뿐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니까 매운 걸 잘먹는 것에 대한 묘한 자부심이 아이들 사이에서도 생겨나곤 했습니다. 어린 애들이 김치를 잘 먹거나 고추장을 잘 먹거나 하면, 대개 어른들은 싫지 않은 표정으로 '글쎄 누가 일부러 멕인것도 아닌데 그렇게 잘 먹더라구요', '쟨 어른보다도 더 매운 걸 잘 먹는다니까. 말도 하기전부터 김치를 씻지도 않고 먹더라니까요'...그런 부모들의 대견스러워하는 모습에 아이들은 기대에 못미칠까 두려운 듯 더 맵게 먹습니다. 아홉살때 그러다가 신장염에 걸린 아이도 있었습니다...밥과술입니다.  

사회적으로도 매운 것을 잘먹는 만큼 우수한 배달민족의 DNA가 듬뿍 섞인 순수혈통인듯한 분위기가 있었지요. 해외나가서도 김치 고추장 없이는 한끼도 못먹는 걸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사람도 많았으니까요. 해외운동경기 중계를 듣노라면 늘 '우리 대한의 건아들, 고추장과 김치로 단련된 투지로 체력의 열세를 극복하고...'라거나 요즘 쇠락했지만 한때 흥했던 프로복싱 중계에서는 당연히 고추장은 한국인의 힘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아, 아무개 선수 몰리고 있군요. 고추장먹던 스태미너는 어디로 갔나요...말씀드리는 순간, 어퍼컷! 작은 고추의 매운펀치가 작렬합니다!' 어쩌구 하면서 우리 모두를 흥분시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추억의 회고삼아 조금 더 이야기 하자면, 지금은 유치한 클리셰가 되어 볼 수 없지만, 옛날에는 TV에 어쩌다 외국인이 나오면 거의 반드시 김치 고추장먹고 눈물을 흘리거나, 혀를 내밀고 쩔쩔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여기저기 다녀보니 아, 우리만 매운거 잘먹는거 아니구나 하면서 '매운맛과 애국심의 싱크로현상'은 좀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하구요. 하긴 요즘도 개그삼아 두유노우김치?라는 말이 들리긴 하지만요.

그런데 말입니다. 문제는 말이죠. 그렇게 요즘 우리가 쑥과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되신 할머니의 우수 DNA를 물려 받아 세계최고로 매운 것을 잘 먹는 민족이라고 생각하던 그 시절보다 오늘날의 한국음식이 상대도 안되게 매워졌다는 겁니다. 맛있어 진게 아니라 그냥 매워진겁니다. 우선 김치가 매워지고, 찌개 조림 무침 등 각종 요리가 매워지고, 짬뽕, 낚지볶음도 매워지고 급기야는 고추로 맵게하는게 아니라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 제품으로 더욱 맵게하는 그야말로 엽기적인 메뉴들도 등장했습니다. '불닭'같이 '불'자가 들어가거나 화염이 일어나는 그림의 상품이 그런 것 들이죠. 

저도 명동에서 번창하여 일본관광객도 적잖이 찾는다는 ㅁㄷㄱㅈ의 칼국수를 싫어하지는 않습니다만, 식당에 들어서면 독한 마늘냄새가 풍기는 겉절이김치 냄새에 골이 띵하고, 눈까지 아릴적이 많아서 웬만하면 잘 안가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낚지볶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유명하다는  무교동 ㅇㅈ낚지는 저는 먹으면 반드시 속탈이 나고, 뒤 끝이 안좋은데, 그래도 가끔 먹어줘야 한다는 분들이 주위에  많은 것 같습니다. 다들 그럽니다. 매운 맛에는 중독성이 있다고. 

사실이랍니다. 원래 우리 입맛에는 다섯가지의 미뢰가 있다고 하지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 얼마전 까지만 해도 네가지였는데 맛있다는 뜻의 일본말인 '우마미'가 추가되었지요. 우리말로는 우마미, 감칠맛 등 아직 용어가 확립은 된 것 같지 않은 것도 같습니다. 단맛은 에너지원이 되는 당분을, 짠맛은 나트륨등 각종 전해질을 고르기 위해, 신 맛과 쓴 맛의 경우에 따라서는 비타민 미네랄등 필요한 것을 찾거나,부패한 것등을 배척하기 위해 필요한 맛이라고 하지요. 감칠 맛은 한마디로 우리에게 필요한 아미노산의 맛입니다. MSG로 불리는 글루타민산 나트륨, 그리고 핵산조미료라하여 팔리던 이노신산, 버섯에 많이 들은 구아닐산 등이 대표적인 것인데, 된장찌개 김치찌개, 일본의 우동국물, 서양의 어니언 그라탕 스푸, 그리고 감자요리, 스테이크 등의 구수한 맛, 중독성은 다 이 우마미에 있는 거라고 하지요. 얘기가 옆으로 샜네요.

그런데 매운 맛은 이렇게 미뢰에서 느끼는 절대 미각이 아니라 입안의 혀, 잇몸, 입천정 모두에서 느끼는 통증에 가까운 자극, 그래서 통각(痛覺)이라고 한다는 건 이제 많은 분들이 아시는 사실입니다. 입안에서 통증을 느끼면 머리에서 막 땀이 나고, 뇌에서는 그 통증을 마비시키려고 도파민, 엔돌핀등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엔돌핀은 엔도-모르핀 다시말해서 '내분비되는 모르핀'의 약자라고 합니다. 안에서 분비되는 마약 성분인거지요. 매운 맛의 중독성은 여기에 있다고 하는 학설이 있습니다. 

도파민과 엔돌핀이 줄줄 흐르는 상태...힘든 운동이나 달리기 중독도 그렇다고 하구요. 고통을 잊기위해 흘러나오는 도파민, 엔돌핀을 얻으려고 고통을 자청하는 구조...피가학자의 맞을 때의 쾌감도 그렇다 그러구요. 그러면...매운거 찾아서 낚지볶음에서 불닭으로 갔다가 결국에 종착역은 촛불과 채찍?? 농담입니다. 어쨌거나 매운 맛이 중독성이 있는 건 위와 같은 이유에서 설득력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음식이 더욱 매워진데에는 또한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악한 재료의 맛을 자극성있는 매운 맛으로 감추는 거지요. 몇년전 어느 식당을 갔다가 '매운 갈비찜'이라는 메뉴가 있어서 호기심에 옆 테이블에서 시켜먹는 걸 봤더니, 마늘과 고추범벅이 된 갈비찜이더라구요. 그래서 같이간 일행들에게 얘기했지요. "저 가격을 봐. 보통 갈비찜보다 싸지? 아마 저게 외국(특정국가 거명안함)에서 반가공상태로 들여다가 예식장 상가집 뭐 이런데 납품도 하고 그러는 싸구련데, 그냥은 누리고 냄새가 나구 그러니까 마늘 고추 팍팍 넣어서 만든 메뉴일거야"  그래서 그날은 아무도 안먹었는데, 이제는 저도 먹습니다. 요즈음은 다 원산지 표시가 되어있으니까요. 하지만 지나치게 가격이 싸면 저는 주문하지 않습니다. 

얼마전 건대입구에 영화를 보러갔는데 상가 일층에 고기하고 같이 나오는 냉면집이 성황이더군요. 고기까지 끼워서 5천5백원인가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었는데 엄청 매웠습니다. 땀뻘뻘 흘리고 먹고 찬물하고 육수를 여러컵 마셔도 달아오른 입안이 가라앉지 않더군요. 그런데 말이죠... 나중에 그곳에 영화보러가게 되면 또 들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이론으로 어쩌구 저쩌구 해도 저도 이렇게 매운 맛에 끌리고 있습니다. 매워지기만 하는 한국음식을 개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은근히 찾게되는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라고 하지않을수 없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옆나라들은 어떻게 매운 음식들을 먹고 사나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마무리하면서 옛날에 금수강산, 맑은 물, 고추장 김치로라도 아이들 기를 세워주시려 했던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걸 순진하게 믿었기에 많은 아이들이 비뚤어지지않고 올바로 크지않았나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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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워서 맛있는게 아니야, 맛있게 매워야지(1) 살아가는 이야기

해야 해야 나오너라. 김치국에 밥말아먹고 장구치고 나오너라. 옛날에 불리던 동요라고 합니다. 저도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워서 그런 노래가 있었나보다 싶은거지 실제로 불러본 적은 없습니다. 밥과술이 그 노래를 아느냐 모르느냐는 전혀 중요한 이슈가 아니고, 오늘 이야기의 실마리를 '김치국에 밥말아먹는'다는 표현에서 찾기위해 인용한 겁니다. 

요새먹는 김치국물에 밥말아 먹을 수 있나요? 그것도 아이들이.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떡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요즈음 젊은 분들은 아마 잘 실감이 가지 않을 겁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줄 생각도 않는데 시럽부터 챙긴다', 아님 '카푸치노 사줄 생각도 않는데 코코가루 계피가루부터 찾는다'라 그러면 모를까요. 

저는 어려서 김치국물에 밥을 말아 먹어본 적이 여러번 있습니다. 시원하고 정말 맛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에서 돌렸건 우리집에서 만들었건 백설기 시루떡 이런게 생기면 여럿이 둘러앉아 김치국물을 떠다가 마셔가며 먹는 맛은 정말 별미였습니다. 이게 다 맛있으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김치국물에서 군내가 나지않고 지나치게 젓갈내가 나서도 안되고, 또 너무 매워도 안되지요. 살짝 매콤하면서도 시원하게 감치는 맛이 살아있는 김치라야 가능한 겁니다. 

요새는 김치말이 국수라 하면 잘하는 전문식당의 메뉴가 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데, 옛날에는 집집마다 겨울이면 국수삶아 그냥 김치국물에 말아 먹곤 했습니다. 새빨간 국물이 아니라 불그레한 빛깔의 심심한 김칫국물이 흥건히 김치항아리에 담겨있고 김치는 그속에 잠겨있는게 정상이어서, 국물은 넉넉했고 맵다는 생각이 별로 안들어서 국수를 말건 찬밥을 말건 희석할 필요가 없었지요. 요새 밖에서 먹어보면 대개가 다 이것저것 넣어서 '조제'를 한 맛이 납니다. 

옛날에 먹었던 건 다 맛있었고 요즈음 먹는 것은 다 틀렸다라는 내용의 글이 아닙니다. 음식의 섬세한 맛이 자꾸 자극적이 되어가면서 극단을 향해 치닫는 것 같아서 짚어보고자 올리는 포스팅입니다. 단 맛이 나는 음식은 설탕하고 경쟁을 해도 이길만큼 달아진게 많습니다. 직장인들이 점심때 자주찾는 뚝불이 한 예입니다. 감칠 맛나는 음식은 하도 감칠맛 조미료를 넣어서 골치가 띵할 정도 입니다. 소금 듬뿍, 설탕 팍팍, 지방 왕창, 감칠맛 조미료 아낌없이, 모두모두 많이넣고 만드는 음식들이 사방에 넘쳐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변화를 보인 건 매운 맛 음식입니다. 해물탕이건 겉절이 김치건 마늘은 입안이 아릴 정도를 넘어서 눈이 따가울 정도로 넣고, 고춧가루 고추장로 내던 매운 맛 음식도 이제는 식품공학의 힘을 빌어 제입에는 거의 독극물의 수준까지 올라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극이 강합니다. 이쯤되면 맛있다 없다의 판별은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매운 맛을 찾는 건 비단 한국의 경우만 그런게 아닙니다. 매운 맛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일본사람들도 '激辛,辛さ100倍(엄청나게 맵다는 표현)'같은 표현이 크게 유행할만큼 매운맛에 홀려가고, 중국에서도 쓰촨지방 사람들의 전유물 같던 매운 음식이 중국대륙 전역에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정작 계속 연구 개량을 거듭하여 세계에서 제일 매운 맛의 고추를 만들어 내어 기네스북의 기록을 경쟁하듯 갈아치우는 건 미국사람들입니다. 설명이 늦었는데 맨위의 사진이 바로 세계에서 제일 맵다는 고추입니다. 이름하여 Carolina Reaper. 나중에 스코빌 지수와 함께 이 이름마저 무시무시한 고추에 대해 설명을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넘어갑니다. 

저는 최근까지 하바네로가 최고로 매운 고추라고 알고 있었고, 그게 얼마나 매운지를 사람들에게 설명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공부 부족! 그 뒤로 여러번 기네스북의 기록이 경신되었더군요. 현재 챔피언인 Carolina Reaper 라는 고추가 나오기까지 왕좌를 지키다가 이에 자리를 내준 전 챔피언은 Trinidad Scorpion Red 라는 품종이었다고 하네요. 두번째 사진이 바로 그것입니다. 둘다 참 흉하게 생겼습니다. 나중에 스코빌지수와 함께 설명을 하겠습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맵다는 얘기지 맛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아무튼 실제로 미국사람들도 시간이 갈수록 hot, spicy, 이런 말이 들어가는 음식과 소스를 전보다 많이 소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매운 음식이 유행하는 것도 재미있고, 또 반면에 우리나라에선 지나치게 매워지기만 하는 경향도 보이는게 걱정도 되고 그래서 앞으로 몇번에 걸쳐 매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국, 일본, 중국은 물론 태국 인도 멕시코 남미 그리고 미국의 예를 들어가며 늘 그렇듯이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매운 음식 이야기를 이렇게 저렇게 풀어볼까 합니다. 

오늘은 우선 문제제기 삼아 몇가지 이야기를 제시합니다. 입안에 매운 맛의 자극을 주는데는 여러가지 향신료가 있겠지만 역시 이 매운 맛의 가장 으뜸은 고추입니다. 그런데 이 고추는 소위 '신대륙' 그러니까 아메리카대륙에만 있던 걸 정복자들이 유럽으로 가져가고 그 뒤에 그게 전 세계로 퍼졌다는게 정설입니다. 그렇다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 아니라면 고추를 먹는 습관은 길게 잡아도 세계 어디서나 오백년 좀 지난 정도의 역사가 고작입니다. 

그리고 그걸 가져온 유럽사람들은 정작 별로 먹지를 않는데 나중에 소개받은 소개받은 민족이나 국가에서 흥하여 그 나라 음식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그 가운데 하나지요. 임진왜란때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오는데 중간에 있었다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수십년 전까지도 아예 고추는 그네들의 먹을 거리에서 빠져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지요. 이것도 나중에 얘기합니다.  

어쨌거나 저역시 고추가루가 들어간 음식도 좋아하고 고추장으로 만든 음식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누가 매운 걸 더 잘먹느냐로 경쟁을 하는데 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고기집에 가면 상추, 깻잎, 오이 등과 함께 풋고추가 나옵니다. 이 때 청양고추같은 매운 고추가 나오면 잘 안먹습니다. 입안이 마비되어 다른 음식의 맛을 못느끼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묘한 중독성 때문에 나중에 한 두개 집어서 헐헐거리며 먹을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저만 해도 매운 맛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핫소스를 만드는 등 가공식품에 응용하려면 필요한 매운 성분이 많으면 효과적일지 몰라도, 직접 요리를 해먹거나 조미료로 쓸때는 고추도 매운 것 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커피 한잔에도 4백가지가 넘는 성분이 들어있어 고유의 맛과 향을 낸다고 합니다. 와인도 마찬가지구요. 고추도 캡사이신 하나가 아니라 수백가지의 숱한 성분이 어우러져서 달고 고소하고 매콤한,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맛있는 매운 맛'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우리는 혹시 무조건 매운 맛에 끌려서 조금씩 이 '맛있는 매운 맛'에서 멀어져 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그럼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옆나라 중국의 라즈지(辣子鸡) 사진을 게재하는 걸로 마무리짓습니다. 이 요리는 닭고기요리에 고추를 넣은게 아니라 고추사이사이에 숨어있는 닭고기 조각을 찾아내어 먹는다는게 더 맞는 표현인 음식입니다. 고추에 더해 화쟈오(花椒), 파 이런게 들어가서 이런저런 매운 맛이 어울리는게, 레지던스에 오피스 그리고 호텔까지 들어간 건물같은 요리라고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매운 음식이야기 사이에 너무 맵지 않도록 사이사이 다른 이야기도 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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