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라면, 맛있는 김치: 한식이야기(1) 우리나라 이야기

방금 맛있게 끓여낸 라면을 냄비채로 놓고 후후 불어가며 후루루 냠냠 먹는 걸 상상해 보십시오. 라면은 면발이 불어터지면 더욱 맛이 없지만 꼬들꼬들한게 좋다고 너무 덜 끓여도 맛이 없지요. 건면 상태에서 불투명했던 국수가닥이 투명해지려고 할때 불에서 내려 먹으면 먹는 도중에 국물속에서 익어서 끝까지 쫄깃쫄깃한 맛을 즐길 수가 있지요. 조금 덜 익히냐 조금 더 익히냐의 차이는 기호에 따라 다르더라도, 알맞게 익은게 맛이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이번엔 라면이 너무 뜨거워 냄비뚜껑이나 그릇에 덜어놓고, 식혀서 먹으려고 하는데 전화가 온다던가 해서 한 2,3분 그대로 놔둔 상태를 상상해 보십시오. 반질반질한 윤기는 어디로 가고 금세 삐쩍 말라버려 꺼칠한 면 덩어리는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또 이번엔 끓인 뒤에 무슨 일이 있어서, 국물에 잠긴채 한참 놔둔 라면을 상상해 봅시다. 면발은 팅팅불어 그릇에 꽉차고 국물은 온데간데 없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역시 맛있게 먹을 기분이 사라집니다.

언젠가도 이야기했지만, 집에 가사를 도와주시러 오시는 분이나 아니면 가족가운데 어떤 분이 음식은 그런대로 잘하는데 라면만큼은 잘 못끓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라면을 다 끓여서 대접에 담아놓고, 그제서야 숫가락 젓가락 놓고 김치꺼내어 썰고, 아 참 장아찌도 내야지, 먹다남은 나물도 내야지 하고 냉장고 두어번 왔다갔다 하고서는 비로소 '라면 다 됐어요. 와서 드세요(라면 다 됐다. 와서 먹어라.)'라고 하는 경우가 그겁니다(대개 이런 분들은 물도 봉투에 씌여진 정량을 넘어서 훨씬 인심좋게 넣습니다). 기본적으로 시간을 못맞추는 거지요. 그래서 집집마다 라면은 '그냥 내가 끓여 먹을께'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꾸 상상해 보라고 해서 죄송합니다만, 이번엔 라면을 끓일 불이 없어서, 생라면과 스프를 그릇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한 3분 불려서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평생 맛있는 라면을 먹어 본 적이 없고, 종이 씹는 듯한 촉감의 컵라면만 먹어보고 살았거나 '뽀글이'만 먹고 살았으면, 원래 그러려니하고 눅눅하게 젖은 생라면을 씹어먹겠지요. 물론 정말 배가 고픈데 달리 먹을 게 없으면 맛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대부분은 맛있는 라면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알고 먹는 라면전문가 입니다.

오늘은 라면이야기가 아니라 김치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왜 라면이야기를 꺼냈냐하면 우리가 라면맛은 잘 아는데 김치맛은 그만큼 모르고 사는게 아닌가 싶어서 라면의 예를 든 것입니다. 결론을 먼저 꺼내자면, 요즈음 우리는 맛있는 김치맛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아예 먹어보지도 못한 젊은 세대가 늘어만 가고 있구요. 이러다가는 맛있는 김치의 맛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영영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정말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이 진짜 맛있는 김치의 맛을 어떻게 설명할까 하다가, 누구나 좋아하는 라면의 맛을 예로 들면 설명하기가 쉬울 것 같았습니다. 

맛있게 끓인 라면을 최적의 상태에서 먹는 걸 맛있는 김치의 맛에 비교한다면, 요즈음 우리가 먹는 김치는 거의 모두가 뜨거운 물에 불린 생라면의 맛이거나, 기껏해야 국물에서 건져내어 말라버린 건데기의 맛입니다. 신김치로 찌개를 끓이면 참 맛이 좋지요. 그러나 생김치보다 맛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물에 불은 생라면보다는 팅팅 불어버린 라면을 데워먹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어떻게 하다가 맛있는 김치의 맛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게 되었을까요? 아파트 생활이라는 주거문화의 변화를 들수도 있겠습니다. 김치를 땅에 묻어 오랜시간 익히는 풍습이 없어져 버린 겁니다. 그리고 김치를 담가먹지 않고 사먹게 된 뒤로 달라졌습니다. 숙성기간이 짧아져서 제대로 된 발효의 맛이 사라진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로는 김치국물이 없어져 버린 걸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김치국물이 정말 중요합니다. 김치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어 여러단계를 거쳐 유통되면서 공산품의 규격처럼 내용량은 '건데기'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맛있는 김치는 맛있는 라면처럼 국물에서 얼른 건져내 먹어야 비로소 제 맛이 납니다. 다시 말해서 먹기 직전까지는 국물에 잠겨 있어야 '발효의 맛'이 살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이걸 살아 있는 김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요즈음 모두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죽은 김치를 먹고 있으면서 이게 김치맛이려니 하는 겁니다. 또 다른 경우는 외식을 많이 하게되면서 '김치 비슷한, 양념으로 버무린 배추'를 김치려니 하고 먹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옛날에도 365일 살아있는 김치를 먹고 산 것은 아닙니다. 살아있는 정말 맛있는 김치는 김장으로 담궈서 겨울철 한 때 먹은 겁니다. 봄이 되면서 부터 풋김치, 열무김치, 오이 소박이, 깍두기 등을 담가 먹으며 계절이 두번 바뀌어 또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다가올 겨울철 김장김치의 맛을 기대하곤 했지요.

물론 김장김치가 아니라 위에 열거한 다른 김치들도 다 나름대로의 개성과 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알맞게 발효한 김장김치의 제맛을 알아야 다른 김치도 더 맛있게 먹을 수가 있습니다. 이 김장김치는 보관하는 온도 뿐만이 아니라, 담글 때 대기중의 온도인 기온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똑같은 재료를 쓴다고 해도, 아무리 김치 냉장고에 잘 보관을 한다고 하여도 늦가을 찬바람이 불 때 담그지 않으면 그 맛을 낼 수가 없읍니다. 여기에 숨어 있는 오묘한 과학의 이치는 다음에 '김치 위대한 유산'이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벌써 여러해가 되었습니다. '식객2- 김치전쟁'이라는 영화가 나왔었지요. 보고나서 너무 너무 실망을 해서 그 때 포스팅을 하려다 참았습니다. 영화적인 완성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김치에 대한 무지와 무식이 안타까워서요. 제작비로 수십억이 들어가고, 광고선전비로 역시 일이십억이 들어가야 제대로 개봉을 하는 이런 규모의 영화는 손님이 안들면 그 손해가 막심합니다. 그리고 열과 성의를 들여 제작에 참여한 스탭과 배우들을 생각하면 쾌도난마로 비난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좀 망설여져서 당시에는 하고 싶은 말을 참았습니다. 어쩌면 김치에 대해서 그렇게 무식한 상태에서 영화를 만들었는지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습니다. 

김치를 샐러드 만들 듯이 만들어 내어 버젓이 김치라고 경연대회를 열고, 마지막 결승전에서 마치 무슨 커다란 비밀이라도 공개하듯이 '김치는 익어야 하니까' 하며 미리 담가온 김치를 조그만 항아리에서 꺼내어 놓습니다. 어린애도 알아야 할 상식을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가 비장하게 비법처럼 공개합니다. 영화속의 관중과 심사위원은 와, 하고 감탄의 탄성을 지르고. 라면을 모두가 생으로 먹는데 위대한 셰프가 '라면은 제대로 익혀야 맛있습니다' 그러니까 관중과 심사위원이 대단해,하고 감탄하는 것을 예로 들면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뒤에 있었습니다. 꺼내놓은 김치가 시어 쭈그러져 정말 정말 볼 품 없는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영화는 비주얼의 에술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있어야 할 김치의 모습이 너무 처량하여 영화의 제목이 무색해 져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최소한 마지막 장면에서 와, 맛있겠나 입에 침이고이네, 이런 장면 하나만 들어가도 참고 넘어갈 수 있었를 텐데...안타까웠습니다. 물론 재밌는 영화를 보기보다는 재밌는 김치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나 보다하고 기대했던 제가 실망이 더 클 수도 있었겠지요.

수년에 걸쳐 보르도와 불고뉴지방을 여행할 기회가 몇번 있었습니다. 그 때 현지에서 마셨던 와인이 참 맛있었는데, 시음을 했던 와이너리 관계자나 그 지역 레스토랑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좋은 와인은 여행을 안한다'는 말이지요. 때로는 적도를 넘어가며 오랜기간 온도차이를 감수하며 이동하는 와인은 맛이 크게 변한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좋은 와인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냉장시설이 완비된 컨테이너로 이동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장시간 흔들리고 순간순간 빛에 노출되고 해서 '꺄브' 그러니까 현지의 와인 저장시설에서 금방 꺼낸 와인과 대서양, 태평양을 여행하느라 '피로하고 지친' 와인은 맛이 크게 다르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럼 왜 그걸 심각하게 인식못할까요, 하고 물었더니 씽긋 웃으면서 전세계 90퍼센트 이상의 와인 소비자가 모두 이동하고 여행한 와인을 마시고 사는데, 그리고 우리가 그걸로 먹고 사는데 그런 얘기를 큰 소리로 강조할 만큼 바본줄 아슈? 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 때마다 새삼 정신이 들며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이 나고, 또 슈퍼에 널린 공장김치가 생각이 났습니다. 공장에서 만들어 파는 김치장사가 벌써 연간 몇조원 규모의 산업이 되었는데, '저희가 만드는 김치는 가짜김치입니다. 참 발효의 맛과 유산균이 살아있는 김치는 제조공정상, 판매유통상 불가능합니다. 그냥 드십시오' 이럴리가 없겠지요.  

어렸을 때, 어머니는 김장김치를 정말 맛있게 담그셔서, 집에 손님이 오시면 어쩜 이렇게 맛있는 김치가 있냐고, 자기집 식구들에게도 맛좀 보이고 싶다고, 한두포기 얻어가겠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김치를 뒤란에 뭍어둔 독에서 꺼내와 꼭꼭 싸주시면서 '맛이 없을텐데요' 하셨습니다. 표정이 뭔가 흔쾌하지가 않았습니다. 

처음엔 김치가 아까와서 그러나보다하고 손님이 가신 뒤 이유를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담담히 '김치는 독에서 꺼내 썰고 십분이 지나면 벌써 맛이 변하기 시작한단다. 두세시간 걸려 가지고 가서 먹으면 무슨 맛이 있겠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론 손님들이 김치를 얻어갈 때마다, 저도 참 안타까웠습니다. 김치 이야기를 몇번에 걸쳐서 해보려고 합니다. 김치이야기를 통해서 한식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요. 김치이야기가 끝나면 한식전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편하게 해보려고 합니다. 

프랑스의 미슐랭가이드가 한국에 들어온다고 해서 여기저기서 환영과 우려의 의견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TV에서는 끊임없이 음식관련 프로그램이 새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모든 논쟁과 관심은 때로는 내용이 미흡하고 관점이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길게보면 긍정적인 쪽으로 발전해 나간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서양음식의 파인다이닝을 외식의 기준 잣대로 세워놓고 한국 식생활의 현상을 이렇게 저렇게 비평하는 것같은 글도 그동안 여럿 보았습니다. 독선과 편견이 넘치고 오류마저 범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일일이 지적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이의 글도 다 애정과 관심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여 저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나이먹을만큼 먹으면서, 그동안 운이 좋아 이나라 저나라 다니며 비싼 음식 비싼 술도 많이 먹어보고 또 여러나라 사람들이 매일 일상에 먹고사는 것도 오랜 세월 같이 먹으며 살아왔으니 우리나라 식생활에 보탤 말이 있으면 보태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한식이 음양오행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조상의 지혜가 담긴 우수한...' 이런 거 솔직히 좀 지나친 해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한국음식은 다른 나라 음식에 뒤떨어지는 음식도 아니지만 제일 뛰어난 음식도 아닙니다. 한식에는 한식만의 뚜렷한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계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고민해야할 과제도 있구요. 그래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현재의 좌표점검을 확실히 하는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식의 파인다이닝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맛있고 만족스런 상차림 또는 메뉴구성을 고민하는 것과 일상의 가정식, 앞으로 필연적으로 더 늘어나게 될 대중적인 외식 모두를 따로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필요한 문열이로 김치이야기가 적절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음번에는 맛있는 김치를 과학으로 분석한 서적도 소개하고 또 어떻게 하면 맛있는 김치를 먹고 살 수 있는지 나름대로의 간단한 해법도 제시하려고 합니다. 물론 결론은 간단합니다. 소비자가 맛있는 김치의 맛에 눈을 뜨고 그걸 요구하면 만들어 파는 사람은 돈이 결부되므로 해결책을 찾아서 따라옵니다. 자본주의의 좋은 점이지요.제가 김치에 관심을 가지고 그동안 김치에 대한 서적을 틈틈히 사서 수십권을 읽었는데, 그 가운데 단연 뛰어난 책이 한홍의 교수가 쓴 '김치 위대한 유산'입니다. 많이 배우고 또 감동하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소개하려 합니다.

 

나으 음식일기(11): 고기구운 냄새와 흙냄새 나의 반백년 음식일기

후덥지근하게 더운 여름날 오후였다. 먹구름이 몰려들면서 하늘이 잔뜩 찌푸린 날씨로 변했다.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은 사라졌지만 양지와 음지의 구별이 없어지면서 오히려 사방이 피할 곳 없이 달아올라 더 갑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에어콘이 장착된 승용차가 드물던 시절이라 여름이면 모든 자동차들은 창문을 열어놓고 달렸다. 우리는 경기도 용인 언저리 어딘가의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포플러 가로수가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비포장도로를 가면서 꼬리에 흙먼지를 달고오는 반대편 자동차가 스쳐지나갈 때마다 얼른 손으로 핸들을 돌려 창문을 닫았다가 이내 다시 열기를 반복하였다. 

이 때 후두둑하면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앞면윈도우를 딱딱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꽤나 크게 들렸다. 차안으로도 빗방울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 시절에는 이럴 경우 재빨리 손득을 계산하여 판단하여야 했다. 창문을 닫아 비를 피할 것인가, 차안이 금세 습기가 차올라 한증막처럼 되는걸 피하고 차라리 비를 좀 맞으며 달릴 것인가를.

앞에서 운전을 하던 기사가 말했다. 이거 지나가는 비에요, 금방 그칠 것 같네요, 그냥 가지요. 우리는 창문을 반쯤 올린채 계속 달렸다. 빗방울이 간간이 얼굴에 와닿았는데 그다지 싫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빗줄기가 말라있던 대지를 두드리며 솟아오르는 흙냄새가 차안으로 들어오는게 좋았다. 좀 더 비가 내려서 땅이 다 젖으면 대기의 냄새는 싱싱한 흙냄새에서 곧 빗물냄새로 바뀔 것이다. 나는 이날 이후 이 짧은 찰나의 젖은 흙냄새를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는 냄새겠지만 나는 이 흙의 향기와 함께 길에서 튀긴 흙탕물로 밑둥이 흙으로 둘러진 포플러가 끝없이 이어진 시골길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뒷좌석 양쪽에 앉아있던 나와 그녀는 안쪽으로 좀 들어앉느라 더 바짝 붙어앉게 되었다. 나는 겉으로 태연함을 유지하느라 애썼지만 사실 마음은 이미 서울을 떠나던 때부터 들떠 있던 터라 가슴이 더 두근거렸다. 차앞 조수석에 앉아있던 현진이가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선생님, 아빠가 고기말고 다른거 먹고싶은거 있으면 말하랬어요.

현진이는 내가 일주일에 두번 영어를 가르치는 고등학생이다. 지금 용인으로 향하는 승용차 뒷좌석에 나와 함께 나란히 앉아있는 이가 그의 누나 현주다. 그녀는 내가 국민학교 육학년때 과외를 같이 할 때부터 일방적으로 좋아하던 상대였고, 내가 현진이의 과외선생이 된 것은 순전히 그녀를 집에서라도 몇번 더 볼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용인에서 병원을 개업한 그들의 부모님은 주로 그곳에서 지내셨고 자식들끼리 서울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간 현주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동생을 돌보는 학부형노릇까지 하였다. 

나는 한번도 그녀에게 고백을 할 기회가 없었다. 그녀는 내가 자신에게 이성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걸 알았을 것이지만 능숙하게 친구로만의 관계를 유지하는 현명함이 있었다. 그녀는 누구나 인정하는 대단한 미인이었는데 원래 미녀들이 남자들의 부담스런 시선을 자연스럽게 비껴쳐내는 훈련을 어려서부터 많이 하여서 그런지 나를 대하는 태도도 대단히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녀가 진작부터 학교선배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걸 알면서도 마음은 그녀의 옆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던 것 같다. 

어느날 현진이가 말했다. 선생님 아빠가 고맙다고 오는 주말에 한번 내려오시래요. 강가에 나가서 저녁에 고기구워먹고 주무시고 가시래요. 나는 심드렁하게 글쎄다 이렇게 대답했다가 그의 다음말에 얼른 태도를 바꾸었다. 아 참, 누나도 같이 간대요. 당시 자가용이 있는 집은 대단히 잘사는 집이었는데, 어느 집이나 기사를 두고 있었지 직접 운전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운전면허만 있으면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가 서울로 차를 보내주었고 나와 현진이 현주 이렇게 셋이 차를 타고 용인으로 내려가는 내내 나는 그녀와 한지붕 아래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생각에 좀 들떠 있었다. 

운전기사 말대로 소나기는 이내 멎었고 늦은 오후 비를 맞은 뒤의 싱싱한 풀냄새가 대지에 풍겨왔다. 우리는 그의 집에 도착하여 간단한 짐을 내려놓고 강가 어느 식당으로 고기를 먹으러 갔다. 숯불위에 석쇠를 얹고 구워내는 불고기와 갈비는 언제 먹어도 고소하고 맛있는 음식인데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고급음식에 속했다. 저녁을 먹고나서 부근 어딘가로 드라이브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서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현진이는 선생님 편하게 주무시라고 다른 방으로 갔고 나혼자 현진이방에서 잤는데 잠자리가 바뀌어서였는지 싱숭생숭 뒤척거리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그녀는 다음날 강의가 없다고 하루 더 있다 올라온다고 하여 서울로 돌아올 때는 나와 현진이 둘이었다. 그것 말고는 돌아오는 길이 어땠는지 하나도 기억에 남은게 없다.  

내려가던 날 소나기가 쏟아지며 땅에서 올라오던 흙냄새가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서 다른 이미지와 기억을 다 덮어씌워버린 것 같다. 그녀와 나란히 앉아가며 차창으로 들어오는 빗방울을 얼굴로 맞아내던 추억이 뇌리에 매우 깊게 저장되어있는 모양이다. 옆을 보았을 때 얼굴에 빗방울이 떨어져 흘러내리는데 살포시 눈을 감은채 알듯말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표정은 슬로우모션을 보듯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이단호크와 귀네스 팰트로우가 나오는 영화 '위대한 유산'을 보았을 때 여자주인공이 파운틴을 눌러 물을 마시는 장면에서 왠지 현주가 내옆에 앉아 비를 맞던 장면이 중첩되어 선명하게 떠올라서 나도 놀랐다. 물론 나는 거기나오는 남자아이처럼 잘생기지 않았지만 그녀는 영화속 여자보다 아름다웠다.    

나는 지금도 마른 땅에 비가 내려 흙냄새가 올라오는 걸 겪을 기회가 되면 금방 그 날로 되돌아 간다. 세상은 변했다. 변해서 섭섭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나라 방방곡곡이 다 말끔히 포장이 되어서 비올때 피어올라오는 흙냄새를 맡기가 쉽지 않아졌다는 거다. 소중한 추억의 재생장치 하나가 망가진 듯한 느낌도 든다.

그 날 이후 얼마 안되어 나는 현진이를 가르치는 과외를 그만 두었다. 이유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 뒤에 나도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그녀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냈다. 그런데 저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늘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마음 어딘선가에서는 은근히 그녀의 불행을 기대한 구석도 있었던 것 같다. 집안의 맹렬한 반대로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선을 봐서 미국으로 시집을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엄청나게 성공한 집안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냥 평범한 교포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좀 고소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세상은 좁아서 미국으로 시집을 간 그녀의 남편은 우연히도 나와 거리가 닿는 사람이었고 나는 유학을 가서 그녀와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예뻤고 변함없이 마음씨가 고왔다. 그녀는 아이 엄마가 되어있었다. 내가 첫방학을 맞아 어린 시절 동경하던 디즈니랜드도 구경갈겸 LA에 일주일 정도 놀러갔었는데 내려간 첫날 그녀와 만났다. 그녀는 8가에 있는 동일장에서 한식을 사주었다. 미국에서 처음가본 한국식당이었다. 한국 식당에 배어있는 고기구운 냄새와 김치냄새는 외국일수록 더 강렬하다. 주변냄새와의 대비가 커서 그럴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맡기 힘들고 통풍과 배연시설이 잘된 요즘 식당에서는 찾기 힘든, 오래된 미국의 한국식당 특유의 냄새가 좋아서 요새도 기회가 있으면 동일장을 찾곤 한다.   

그녀는 한인사회가 없는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니까 한국음식이 그리울테니 실컷 먹으라며 불고기에 김치찌개 그리고 생선구이도 시켰다. 내가 그렇게 다 못먹는다고 하니까 남으면 싸가지고 가면 되니까 괜찮다며 이것저것 주문했다. 우리는 공통의 화제를 찾아서 이야기를 이어가려다보니 자연스레 옛날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가 물었다. 종로서적 옆 지하 훼미리에서 함박스텍 먹은거 생각나냐고. 요즘 말하는 업종으로서의 패밀리레스토랑이 아니라 종로2가에 훼미리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있었다. 그녀는 글쎄 난 기억력이 나빠서 다 잊어버렸나봐라고 대답했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 스카라극장에 영화보러 갔잖아. 댓즈엔터테인먼트. 네가 엘리자베스 테일러 어릴 때 모습보고 너무나 예쁘다고 했지. 그제서야 그녀가 기억이 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생각난다. 그 영화를 너랑 보았구나. 그녀가 기억해 낸 건 그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랑 보았다는 건 기억에서 지워진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와 만나서 커피를 마시던 퇴계로 입구의 늘봄다방, 네 덕에 월급을 받았으니 저녁을 사야한다고 우겨서 데려간 백병원옆 파인힐, 그리고 나서 들어갔던 부근에 있는 경양식집, 멕시칸 사라다와 애플와인 파라다이스 이런 이야기들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았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남녀사이에 상대의 마음에 자리잡은 비중이 서로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되었다. 그녀가 물었다. 사귀는 사람 있어? 무방비상태에서 들어온 질문에 약간은 당황하며 대답을 하였다. 으,응, 있었는데 학번이 같아서 헤어지기로 하고 왔어. 그사람은 결혼을 하여야할 나이라 집에서도 성화고, 나는 공부도 해야하고 형님도 결혼할 기미를 안보이고. 

그녀가 이해한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넌 참 좋겠다. 아나라 저나라 마음껏 다니면서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우린 사는게 그냥 그래. 아이낳고 살림하면서 일하고. 그녀는 한인타운 회계사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미국교포들은 다 그렇게 산다고 하면서 진심인듯 나를 부러워해주었다. 나는 그 때 그녀의 평온한 일상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일 수도 있다고 얘기해 줄만큼 성숙하지 못하였다. 일찍 결혼해서 애낳고 사는게 마치 사람을 잘못 선택한 징벌이라도 되는양 오만한 표정으로 난 다음 방학에는 유럽을 갈거네 어쩌네 하면서 주접을 떨었다. 사실 그녀가 나를 무시한 건 조금도 없었다. 안만나도 될 것을 착한 마음에 일방적으로 호감을 가진 남자라는 부담감을 떨쳐가며 친구로라도 몇번 만나준 것 아닌가.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걸 알리가 없었고 그냥 그녀의 변함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약간은 분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날 나는 그녀의 덕담을 받을 줄만 알았지, 오는 고운말에 가는 고운말을 별로 돌려주지 못한채 헤어졌다. 
  
내가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게 된 건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다. 십수년이 지나고 딱 한번 더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그는 한인타운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삐삐가 한물가면서 핸드폰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미국에선 모토롤라에서 나온 스타텍이라는 조그만 모델이 막나와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걸 보더니 나하고 같은거네, 하면서 핸드백에서 자기 핸드폰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내가 워낙 길치잖아. 운전하다보면 맞게 간다고 생각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가곤 해. 위험한 지역이라도 들어가면 큰일난다고 애아빠가 사줬어. 만일 낯선 곳에서 헤매게 되면 무조건 가까운 주유소나 쇼핑몰같은데 대어놓고 전화하라고. 달려올 때까지 차문 걸어놓고 꼼짝말고 있으라면서. 내가 물었다. 그런 적 있었어? 아니, 아직은. 그래도 휴대폰이 있으니 만일의 사태에 안심이 된다나.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담뿍받고 사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저으기 안심이 되었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보기에 좋았다. 우리는 커피한잔을 나누고 즐거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내비게이션이 처음 나왔을 때 그녀가 생각났다. 이제 이상한 동네로 들어가서 갑자기 남편을 부를 일은 없겠구나. 나는 그때도 마음속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나으 음식일기(10): 서울냄새 시골냄새 나의 반백년 음식일기

안방 벽장을 열면 늘 달콤한 냄새가 났다. 한옥집 안방 아랫목쪽으로 미닫이 네쪽에 사군자인지 산수화그림인지가 붙어있었다. 발라져있었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당시 한옥집이면 다 비슷하게 벽장문에 싸구려 동양화를 도배하듯 발라놓은게 흔했으니까. 문은 두쪽만 열리게 되어있고 양옆의 그림 두장은 그냥 벽에 붙어있었던 것 같기도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미닫이를 열면 깊이가 50센티 정도되는 좁은 수납공간이 있고 거기에 겨울철에는 의례 사과나 배 그리고 곶감같은게 있었고 시골에서 보내온 한과 등도 그곳이 제자리였다. 요새는 참 냄새가 없어져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옛날에는 사방 모든 곳에 이런저런 냄새가 배어있었다. 지금은 도처에 배어있었던 갖가지 냄새가 다 없어져버린 것처럼 느껴지는데, 전부는 아니더라도 냄새가 많이 줄어든게 틀림없을 것이다.   

벽장 위쪽의 공간은 두 세 계단짜리 조그만 사다리로 올라갈 수 있는 다락이 연결되어 있었다. 부엌위쪽과 서까래지붕 사이의 공간인데 이런저런 물건들을 쟁여두는 곳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인절미, 조청 이런 먹을 것들이 있어서인지 향긋한 냄새가 배어있는게 싫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그곳에 올라가 가끔 놀았는데 상상의 날개를 펴기에 따라서 그곳은 해적선 선장의 선실이 되기도 하고 잠수함이나 산속요새 안이 되었다. 그곳 다락방에 있는 조그만 유리창을 통해 마당을 내다보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시선도 좋았다. 

우리집은 후생주택에서 살다가 내가 7살, 생일을 맞아 만으로 6살을 넘기고 나서 정릉천 건너편 한옥집으로 이사를 했다. 미음자로 마당을 둘러싼 구조로 방이 다섯개나 되었다. 나는 이사를 하고 곧 요양차 속초로 내려갔기 때문에 그집에서 살았던 기억은 일년뒤 올라온 그 다음해 8살때부터이다. 우리식구는 그집을 '조선집'이라 불렀다. 그곳은 같은 모양의 집들이 한골목에 여럿 줄지어있었다. 요즘 영화에서 보이는 북촌마을과 매우 흡사했다. 우리집도 그동네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문간방은 세를 주었다. 한때는 방 두개를 세놓은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수곽이라 불렀던 수돗가에서는 늘 시멘트 냄새가 났다. 시골의 우물가에서는 살짝 물비린내가 났는데 지금은 그 반대지만 어릴때는 시멘트 냄새가 물비린내보다 좋았다. 장독대 밑의 광속은 습기가 차서 언제나 곰팡이 냄새가 김치 군내같은 냄새와 함께 풍겼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불쾌한 냄새일수도 있을텐데 어릴때는 뭔가 야릇한 모험과 은근한 비밀이 숨어있는 것같은, 살짝 가슴두근거리는 냄새였다. 시골의 광이나 창고에서 나는 냄새도 알수없는 은밀함을 품고있는 것 같은 것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든 누구든 시골을 오르내릴 때면 참 짐을 많이도 가지고 다녔던 것 같다. 제사나 명절때면 할아버지 집에서는 한과도 그랬고 조청도 직접 만들어서 ㄹ그런 걸 인편이 있을 때 서울로 가져와 두고두고 먹었다. 나는 조청이 꿀보다 덜 달아서 좋았다. 시골서 올라오는 품목에는 곶감도 있었는데 그다지 맛있는 줄을 몰랐다. 아직도 나는 곶감에 관한 한 그다지 열렬한 팬이 아니다. 수정과는 매우 좋아하지만. 대추도 썩 당기지 않았다. 갈비찜이나 보쌈김치에 몇개 들어간 대추는 좋아하지만. 

남들은 대단히 좋아했는데 나는 별로 좋은 줄 몰랐던게 또 있었으니 마른 오징어였다. 당시 속초에서는 오징어라 그러는 사람이 없었고 다 이까라고 불렀다. 스루메라는 말도 가끔 들렸고. 산지인 바닷마을에서 이까라고 불리는 건어물이 태백산맥을 넘어오면서 슬그머니 오징어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간식이나 군입거리가 부족하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서 극장매점에서는 땅콩을 능가하여 팔리는 최고의 품목이었을 것이다. 요즈음 영화관에서는 팝콘의 향긋한 냄새와 콜라의 달착지근한 냄새가 난다. 미국하고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미국 영화관쪽이 버터향이 좀더 강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의 학창시절에 극장냄새하면 단연 오징어냄새가 떠오른다. 좋아하지도 않았고 잘 먹지도 않았으면서 가끔 그시절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면 극장 복도에서부터 퍼지던 냄새가 그립다. 화장실의 강력한 나프탈린 냄새와 오징어 땅콩냄새가 섞여있던 극장복도에서 상영중인 영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가슴 설레이던 순간은 참으로 행복했다. 주관적인 판단이니까 틀릴 수도 있겠는데, 둘러보면 사방이 가난에 찌들어있고 하루세끼 먹고살기가 퍽퍽한 사람들이 국민의 절반이 훨씬 넘던 시절에, 조그만 흑백 테레비젼도 좀 산다는 집이나 장만하여 볼 수 있던 시절에, 현란한 총천연색 화면에 펼쳐지는 헐리웃영화의 감동은 요새 젊은이들이 외국영화를 보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크고 강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매점에서 파는 건 오징어와 땅콩 그리고 기껏해야 캬라멜 정도였고 냉방이 안되어 더웠기에 여름엔 아이스케잌이 잘팔리던 극장에서 나는 사운드오브뮤직, 닥터지바고, 졸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일을 향해 쏴라, 초원의 집, 황야의 무법자, 태양은 가득히, 에덴의 동쪽을 보았고 이런 영화를 보고 온 날이면 밤에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물건이 시골에서 올라오기만 한 건 아니었다. 어머니가 다니러 가시거나 집에서 가사를 돌봐주던 누나가 고향에 내려가거나 할 때에도 한 짐씩 싸가지고 갔다. 친척, 이웃에 나누어 줄 선물로 옷이나 화장품 같은게 많았는데 그런거를 장만하느라 엄마가 장보러 갈 때에도 나는 언제나처럼 엄마를 따라나서곤 했다.  시장에 가면 참 냄새가 다양했다. 참기름 짜는 집에서는 기름냄새가 정말로 강렬했는데 기름냄새보다 더 향긋한게 커다란 가마에 깨를 닦는 냄새였고 기름을 막 짜내고 남은 깻묵에서 나오는 고소한 냄새는 아무리 맡아도 물리지가 않았다. 해물집에서는 생선비린내가, 방아간을 겸한 떡집에서는 구수한 떡냄새가 무럭무럭 풍겨나왔다. 피대가 돌아가며 기계방아를 돌리는, 어린아이 눈에 무지막지하게 큰 기계장치에서 풍기는 윤활유 냄새와 떡냄새는 묘하게 궁합이 맞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시장에 가서 내가 특히 좋아했던 냄새는 신발가게 앞에서 풍기는 신발냄새, 고무냄새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몸에 해롭다는 화학물질 냄새가 아니었나 싶다. 그 옆 가방가게에서는 가죽냄새가 났다. 그 때는 등에 메는 책가방을 가죽으로 만들었다. 비닐제품이 요즘처럼 싸구려가 아니고 가죽제품이 요즘에 비해 상대적으로 쌌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메고 다니던 책가방도 소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나는 이 소가죽냄새를 아직도 좋아한다. 

가죽냄새가 나는 책가방안에는 책냄새가 나는 교과서, 공책냄새가 나는 공책, 그리고 향나무 냄새가 아주 독특한 연필이 가지런히 누워있는 필통이 있었다. 나는 요새도 잘 깎여진 연필을 보면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곤 하는데 왜 옛날만큼 향기로운 나무로 만들지 않는지 좀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서 수업참관이니 뭐니해서 외국의 초등학교를 가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는데 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어느 나라나 비슷한 냄새가 나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의 냄새는 연필향기, 연필심 가루, 공책, 신발주머니, 바닥을 대충 쓸고 닦아서 나는 먼지냄새와 걸레냄새, 칠판냄새, 백묵냄새 그리고 나무걸상과 나무의자 이런 것들이 골고루 합쳐진 냄새였다.      

그리고 예쁜 여자아이들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어린 나이에도 이런 걸로 티를 내면 안된다는 걸 알아서 내색은 안했지만 옷도 너저분하고 머리도 떡이진 아이들보다 옷도 깔끔하게 챙겨입고 쌍갈래로 예쁘게 머리를 매고 오는 아이들에게서는 나는 냄새는 달랐다. 아마도 집에서 매일 등교를 챙겨줄만큼 여유가 있어서 로션 한가지라도 바르고 왔으니 좋은 냄새가 났던 모양이다. 우리때는 4학년까지가 남녀 같은 반이었고 5학년이 되면서부터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 반이 갈렸다. 5학년때 학교에서 하는 행사에 마스게임이 들어있었고 거기에 뽑힌 아이들은 방과후 남아서 여자아이들과 연습을 하였는데, 우리들은 걔들을 보면 여자하고 손잡고 논다고 놀렸고 놀림을 당한 아이들은 진짜로 부끄러워 하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르며 기억이 윤색을 하여 그런건지도 모르겠는데, 그 때는 서울에서 사는 것도 정서적으로 그다지 메마르지 않았던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해가 뉘엿뉘엿 질무렵이면 땅거미와 함께 어느 동네에나 저녁밥 짓는 냄새가 그윽히 깔렸다. 골목길에 자욱한 고소한 밥냄새가 과외를 하거나 친구들과 놀거나 어떤 이유로든 느즈막히 집에 돌아가는 아이들의 식욕을 돋구었다. 요새야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으니 다 똑같은 냄새이지만 그 때는 밥을 태워서 고소한 누룽지 냄새가 나는 집, 밥이 설익은 집, 밥냄새도 다 달랐다. 무척이나 가난하던 시절이었는데도 저녁때 아련하게 동네마다 한두집 피아노 연습하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장미꽃이 핀 담장, 라일락 향기가 퍼져오는 양옥집, 풀을 먹인 하얀 컬러가 눈부신 여고생의 새침한 걸음걸이 이런 정경들이 모여있는 곳에 밥짓는 냄새가 들어가서 내 기억속에서 중산층 동네의 아련한 저녁무렵을 완성하였다.   

딱 배가 고픈 시간이라 얼른 집에 돌아가 밥을 먹어야지하고 귀가길을 재촉할 때, 국냄새, 찌개냄새, 생선굽는 냄새, 김굽는 냄새 이런저런 냄새가 집밖으로 퍼져나와 도중에 지나치는 집들이 무얼 해먹나 쉽게 알아맞출 수가 있었다. 국민학교때는 놀다가 늦거나 과외를 하거나 늦어도 저녁시간에는 집에 돌아가는게 보통이었는데 가장 입맛을 자극하는 냄새는 연탄 화덕위에서 굵은 소금 훌훌뿌려 꽁치를 굽는 냄새였다. 고등어도 기가막힌 냄새가 났는데, 나에겐 꽁치굽는 냄새에 비할만한 고소한 향은 없었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귀가시간이 일정하지 않았고 도서관에서 공부흉내라도 내다가 돌아갈 때면 제일 참기 힘든 유혹이 술집에서 풍겨나오는 불고기를 굽는 냄새였다. 재료는 돼지고기인지 소고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간장과 참기름, 마늘로 양념한 육고기를 연탄위에서 구울 때면 말그대로 환장할 냄새가 났다. 그 때는 막걸리를 팔아서였는지 술집 특유의 달착지근한 냄새와 고기굽는 냄새가 섞여서 동네 어디에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선술집 문틈으로 빠져나오곤 했는데 정말 참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꽁치나 고등어는 집에 가서 우리도 해먹자고 하면 다음날 상에 올라올 수도 있었지만, 뻔한 살림살이를 아는 처지에 시도 때도 없이 고기를 구워먹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집에서 날마다 해먹는 국이나 찌개도 그때는 참으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았나 싶다. 달래나 냉이를 넣고 끓인 된장국에서 풍겨나오는 산나물 냄새에는 봄이 담겨있었고, 시래기를 넣고 끓이는 겨울의 된장국이나 새우젓 양념맛이 솔솔 올라오는 두부찌개 아니면 신김치를 넣고 끓이는 비지찌개의 독특한 냄새는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침이 고이고 배가 꼬르륵 거리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사는 도회지의 동네가 오히려 널직하게 퍼져사는 시골보다 여러가지 냄새를 공유하며 살았으니, 봄철이면 동네 이곳저곳에서 장담그는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간장을 다리는 냄새는 대단히 강력해서 아주 멀리까지 퍼져나갔는데 나는 어려서 이 냄새를 싫어하였다. 시골에서 올려보낸 잘 띄운 메주냄새는 참으로 구수한 것인데 이것도 어른이 되고나서 그렇게 느낀 것이고 어려서는 싫어하지 않았나 싶다. 

만화가게에서는 풀빵냄새와 인쇄잉크냄새가 섞여서 났고, 문방구에서는 문방구의 좋은 냄새가 났다. 구멍가게는 구멍가게만의 특유한 냄새가 있었다. 어려서 늘 맡으며 살았던 이런저런 냄새가 그리워 진다. 맨위의 사진은 속초 갯가 집집마다 마당에 널어 말리던 오징어이다. 내게는 이 마른 오징어가 서울과 시골, 어촌과 농촌을 이어주는 매개를 하여주는 특이한 물건이다. 다음에는 시골의 냄새 이야기를 해야겠다. 


라면이야기(7): 어느 라면매니아와 블로그의 힘 라면이야기


미국에 라면레이터(the Ramen Rater)라는 블로거가 있습니다. 미국에선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일단 펄로우를 한다는 블로그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갖가지 인스턴트라면을 먹어보고 감상을 올리는 곳입니다. 아무래도 라면을 많이 먹게되는 미국의 대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싸이트라서 그런 것이겠지요. 순전히 한 개인이 취미로 시작한 블로그인데 주인장은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업계에서도 무시못할 영향력을 지닌 인사가 된 것 같습니다. 힘을 가진, 말그대로 '파워블로거'란 이런거다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이듯이 '세계 10대 라면' 이런 리스트를 정기적으로 발표하는데, 이게 발표될 때마다 아시아 각나라 매체에서는 이를 인용보도합니다. 자사 제품이 상위에 드는 업체는 이를 인용하여 보도자료를 만들어 돌리고 그러면 담당부서 기자는 그대로 베껴쓰기도 하면서 그의 명성은 올라가기만 합니다. 업체는 우리회사 라면이 세계 10대 라면 상위 몇 번째 올라갔어요, 챔피언 먹었어요, 이렇게 선전을 하려니 권위를 실어주어야 합니다. 누가 만점을 주었는데? '라면인 신'이라 불리는 라멘레이터가... 이러면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과장된 타이틀도 생겨나고 그럽니다.  

싸이트(http://www.theramenrater.com/)에 들어가보지요.

이게 오늘자(2016.3.29) 홈피캡쳐입니다. 위의 날짜를 보면 3.28입니다. 미국시간이니까 한국시간으로 3.29, 오늘 맞습니다. 거의 매일 업데이트가 됩니다. 위의 넘버 #1984는 1984번째 시식평이라는 뜻입니다. 참 대단한 성의와 노력인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참 별의별 라면종류가 많기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위에 나와있듯이 그의 이름은 한스 리네쉬(Hans Lienesch) 입니다. 2002년부터 리뷰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0년부터라고 합니다. 그는 시력이 대단히 약해서 미국에서는 '법적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는데 이에대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어쨌거나 그의 일과는 출근하는 부인의 아침과 점심도시락을 만들어주고 자기는 집에서 그날 리뷰를 올릴 라면을 만들어먹고 그 과정에 찍은 사진을 편집하여 시식평과 함께 올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녁은 채식위주로 가볍게 먹는다고 하네요. 

위의 홈피사진에서 보이듯이 이런저런 광고영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맨위의 배너로는 말레이시아 메이커가, 오른쪽 옆으로는 싱가폴브랜드, 농심, 대만브랜드가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있네요. 이제 라면 메이커들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블로그가 되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제는 '라면레이터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라면'이라고 라면레이터의 로고를 박아서 출시를 하는 상품도 생길 정도입니다. 아래 사진은 CarJen 이라는 말레이시아 메이커에서 나온 삼품인데 라면레이터가 이런거 소식들으면 기분이 좋다고 올린 사진입니다.


이 뿐이 아니라 이미 그에게는 생산설비 투어같은 초청이 오기도 하고, 업계 고위임원들과의 인터뷰, 신상품 배송 등 그의 지위를 보여주는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디에선가의 인터뷰를 보니 자신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광고링크를 하지않는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러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상업적인 목적으로 광고를 얼마든지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별도로 블로그가 지닌 힘의 원천인 객관적인 권위는 본인이 지키는 거니까요. 뭔가 혜택을 줄테니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냐고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본인은 늘 거절을 한다고 합니다. 객관성을 잃는 순간에 스스로 쌓아온 명성과 신뢰도가 무너질테니 상식이 있다면 스스로 묘혈을 파는 행위는 하지않겠지요.

언젠가 대만에서 대만산 라면이 탑텐 리스트엔가에 안들어가서 수만명이 싸이트로 몰려가 항의를 하였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도 맛없는 라면에 중국산이 많이 들어가는 등 중국이 무시당한다고 항의를 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본인이 이런 항의에 꿋꿋하게 맞섰는지는 그 이후 펄로우를 안해서 잘모르겠습니다. 한 개인이 재밌자고 한 블로그가 오히려 이런 소동으로 점점 더 커져가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이 한스라는 블로거가 참 절묘한 위치에 있어서 이런게 가능했다고 봅니다. 우선 인종의 용광로, 다문화가 공존하는 미국에 사니까 별의별 라면을 다 구할 수가 있는거구요. 둘째, 아마 운영자가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 또는 다른 아시아 사람이었으면 입맛이나 기호가 편향될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고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여도 남들로부터 그런 객관적인 시점을 인정받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섭입견에서 오는 오해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지요.

저는 이 블로그를 아주 가끔 들어가보면서 재미난 정보들을 얻곤 합니다. 요즘 느낀 점 하나가 최근 들어 말레이시아, 싱가폴쪽에서 맛있는 라면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뜨뜻한 국물이 맛있는 탕면을 선호하는데 반해 더운 지방에서는 비빔면이 인기를 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미삼아 2015년 베스트텐과 2014년 베스트텐 가운데 몇가지를 소개해보지요. 우선 2015년입니다. 

십위는 대만에서나온 토마토 라면입니다. 저도 먹어보고 싶은 라면입니다. 
9위는 일본의 야키소바입니다. UFO를 제치고 순위에 올랐네요.

8위는 태국의 그린커리 라면입니다. 저도 그린커리는 많이 좋아하는데 오히려 한때나마 맛있는 그린커리에 순정을 바쳤던 팬으로 인스턴트의 재현정도에 실망할까봐 시식여부는 망설여집니다. 그런데 리뷰를 보면 또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7위는 말레이시아 페낭에 근거를 둔 업체인데 최근에 아주 호평을 받는 상품들을 내는 것 같습니다.
5위는 싱가폴 업체인데 이곳도 맛있는 것 많이 만드는 것 같습니다. 친구한테 골고루 구입해서 보내달라고 부탁할까 고민중 입니다.
4위는 말레이시아 멜라카에 본사를 둔 업체로, 라멘레이터 로고와 평가를 포장에 사용하기도하는 회사입니다. Nyonya라는 말에 살짝 구미가 당기기도 합니다. 뉴욕에 있는 말레이식당 뇨냐는 아직도 잘있는지...

1위는 말레이시아에서 만든 태국식레시피 톰얌꿍라면 입니다. 일본의 기술로 말레이시아에서 만든 태국레시피를 미국사람이 먹고 최고라고 한다는 사실 자체가 참 재미있습니다. 라면 한봉지에 여러문화가 섞여있는게 상징적입니다.

아래는 2014년 베스트텐인데 한국산이 많이 들어가있어서 골라 소개해 봅니다. 우선 9위에 농심 순라면이라는게 들어있네요. 베지터리언 라면인가 봅니다. 고기국물이 아니니 우리나라에서 잘 팔릴리가 없겠네요 ㅎㅎ 그런데 색깔과 디자인이 어디 담배갑에서 많이 본듯한... 제가 담배를 안피우니 착각일지도. 라멘레이터는 크게 칭찬을 하였군요. 

6위에 팔도 치즈라면이 들어있네요. 팔도는 러시아에서 크게 성공하고 있는데 다른나라에선 어쩐지 모르겠습니다. 

5위는 삼양 구운면이 올랐습니다. 솔직히 이런 라면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그저 오렌지색 원조 삼양라면 애호가 입니다.  

아래는 1위입니다. 이게 히트를 크게 쳐서 일본 예능프로에도 소개되었는데, 현지 말레이시아에서도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짝퉁 상품도 많이 나오고 그랬다는 화제의 상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언젠가 한번 먹어보려고 손을 쓰고 있습니다. 허니버터칩 같은 건지 정말 두고두고 먹어볼 만한지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 


라멘레이터는 봉지면뿐만 아니라 용기면도 평점을 매기는데, 사발면과 컵면을 따로 분류를 하는 세심함을 보여주고 있더군요. 아래는 참고로 순위에 오른 컵라면을 캡쳐한 것 입니다. 라멘레이터는 농심 신라면 블랙을 아주 높이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참 잘 만든 라면같습니다. 늘 먹기에는 제 입맛에는 너무 헤비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요.  

오늘은 간단하게 미국의 한 파워블로그를 통해서 아시아 라면의 가지가지를 알아볼 수 있다는 걸 소개하였습니다. 세계 라면소비 10대국가에 들어있는데 이 블로그에 별로 등장하지 않는 나라제품이 인도, 베트남, 러시아, 나이지리아 등입니다. 새삼 이들 나라에서 나오는 제품에는 뭐가 있고, 또 어떤 맛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는한 정보면에서는 일인식사족 번사이드님이나 채다인님의 블로그도 참 충실하고 도움이 됩니다. 특히 다인님의 블로그는 조회수에서도 막강한 파워를 알 수 있는데 이런 블로그가 더욱 많이 번성했으면 좋겠습니다~



라면이야기(6): 갑질이 안되는 라면, 만인에 평등한 라면 라면이야기

세계 모든 항공사들은 비지니스 클래스 이용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기내식 서비스에 온갖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아시아발 장거리노선인 유럽행이나 미주행 노선에서 이코노미클래스는 어느 항공사던 피크씨즌이 아니면 100만원대나 그 이하로 판매되는데 비지니스 클래스는 우리돈 5,6백만원정도 합니다. 항공사 입장에서 수익성이 매우 높은 이 클래스의 고객층은 대기업 임원이거나 고위직 공무원,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등으로 개인적인 여행이 아닌 이름 그대로 비지니스 용무로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모든 항공사는 이들 승객을 잡기위하여 매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많은 돈을 들여 쾌적한 좌석시스템을 구비하고 또 기내식에도 대단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고급호텔 레스토랑과 제휴를 맺기도 하고 유명 셰프를 초빙하여 콜라보 메뉴를 개발하여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항공사 두 군데에서 보이는 특이한 메뉴가 있으니 바로 라면입니다.

오늘 항공사 비지니스 클래스 이야기를 꺼낸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라면을 좋아하는가를 일인당 소비량이 세계최고라는 통계수치말고도 다른데서도 엿볼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입니다. 그 뒤에 있었던 마카다미아 소동으로 좀 가려지기는 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라면상무 이야기. 

라면은 기내식의 정규 식사메뉴가 아니라 승객이 요구하면 대접하는 특별메뉴입니다. 이륙하고나서 착륙준비에 들어갈 때까지 사이에 서빙할 여유가 없는 경우가 아니면 한국항공사는 대부분의 노선에 라면을 탑재합니다. 비행시간이 너무 짧아 승객에게 매뉴얼대로 제공하는 음료및 기내식 서빙, 면세품 판매만도 바쁜 단거리 노선을 제외하면 다 실린다는 이야깁니다. 그런데 비행기안에서의 조리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므로 제대로 끓여야하는 봉지면이 아니라 용기면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걸 예쁜 자기그릇에 옮겨 담은 뒤 따로 준비한 고명을 얹어 냅니다. 항공사에 따라 얇게 썬 붉은 고추와 초록고추가 올라오기도 하고 버섯과 파가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료가 컵라면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봉지면에 뿌리를 둔 3천원짜리 분식집의 그것에도 못미치는 이 라면이 비행기안에서는 엄청난 위세를 발휘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라면을 요구해서 얻어먹을 수 있다는 것을 것을 자신의 신분상승과 연결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출장때마다 뒷쪽 이코노미에 앉아 앞쪽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나도 저기앉아 라면을 시켜먹어야지하고 별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비지니스를 타고가는 첫출장에 마음껏 유세를 하다보니 덜익었다, 너무 익었다 타박을 하다가 폭력까지 행사하게 되고 그 대가로 자신의 직장에서 나와야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언론이란게 과장도 있고 하니 본인은 자신의 행동이 악성 갑질의 표본인양 떠벌려진게 억울하기도 할겁니다. 

저도 이에 대해서는 직접 본게 아니니까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단, 라면을, 그것도 비행기안에서 제공하는 라면을 타박하며 세번이나 다시 만들어오게 한게 사실이라면 그건 갑질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갑질의 댓가로 수십년 다닌 직장에서 해고당한건 지나친 게 아니냐면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충분히 전국적으로 망신을 톡톡히 당했으니까요. 며칠전 신문보도에 따르면 그래서 해고가 부당하다는 점을 들어 소송이 진행중이라고 하네요. 

사건당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우연히 그 이야기를 화제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의견이 갈렸던 기억이 나네요. 야, 성질한번 잘못냈다고 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떨려나는 건 지나친 거지, 라고 그를 동정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야, 그거 하나로 잘랐겠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다른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는데 이걸로 노출된 김에 내린 결정이겠지, 라고 말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땐 이럼 이런 것 같고 또 그럼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랬습니다만. 오늘은 결과가 어쩌네를 따지는게 아니라 라면이 한국에서는 이렇게 특별한 위치에도 가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고급 호텔 레스토랑이나 유명셰프의 메뉴로 상위클래스 고객을 끄는 항공사들이지만 아시아계의 경우 대개 이런 소박한 특별메뉴를 구비한 경우가 있습니다. 우동 소바 에그누들 해물탕면 등이 그 예지요. 하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인스턴트라면, 그것도 컵라면을 끓여서 인기를 끄는 경우는 한국이 유일하지 싶습니다. 요즈음은 신라면하고 삼양라면이 있는데 어느 쪽으로 드시겠어요하고 승객이 선택하도록 하는 모양입니다. 

이렇듯 한국의 라면문화는 하늘위에서도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비행기에서 내는 라면사진입니다. 비빔밥에 나오는 탕국물 대신 라면을 요구하면 이런 모양이 된답니다. 위는 라면만 확대한 것이구요. 사진을 앱으로 그림처럼 가공했더니 그럴듯 하네요. 저는 요즘 다욧땜에 좀 라면을 멀리하고 있는데 제약이 풀리면 한그릇 맛있게 먹어야겠습니다. 봉지면으로 제대로 끓여서요.
법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그런데 막상 그렇지가 않아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생겨나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법앞에서보다 만인이 평등한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바로 라면앞에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라면앞에서 평등합니다. 매일 먹는 계란도 그렇고 야채도 비싼 것과 싼 것의 차이가 큽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주식인 밥을 해먹기위해 반드시 사야하는 쌀도 등급과 품종에 따라서 가격차이가 많이 납니다. 유기농이냐 산지가 어디냐 품종은 뭐냐에 따라 값이 싸고 비싼게 차이가 많이 나지요. 그런데 라면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자용 라면이 따로 있고 서민용 라면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어디서나 같은 걸 팝니다. 삼양라면에서 나온 맛있는라면이나 농심 신라면블랙이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했던게 아마도 소비자들에게 오랜 세월 잠재적으로 각인된 이런 '평등성'에서 벗어났기에 그런게 아니었나 생각도 해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라면을 대단히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비서관이 그분을 기리며 라면에 관한 일화를 어디엔가 소개했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만찬전에 라면을 드셨다, 해외 순방때 라면을 잔뜩 가지고 나갔다, 기차 여행때 특별식으로 라면을 부탁했다 등등. 재밌게는 읽었는데 한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었습니다. 이게 그의 서민적인 취향을 강조하려고 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특별히 서민적이어서 라면을 좋아한게 아니라 그냥 맛있어서 좋아했던 거라고 봅니다. 40년대 이후에 출생한 한국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라면이 있던 시절 청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라면이 입에 맞아 좋아하는게 전혀 이상한게 아니지요. 같은 나이또래의 재벌회장들도 다 라면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라면을 좋아한다는 걸 가지고 서민코스프레를 하는 건 이미 시대에서 뒤떨어진 발상이라고 여겨집니다.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신간이 나올 때마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작가 김훈 선생이 작년에 출간한 산문집의 제목은 '라면을 끓이며'였습니다.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머리를 보니 이게 그동안 나왔다가 절판된 산문집을 추리고 새글 몇개를 추가하여 다시 꾸민 책이더군요. 라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산문가운데 한꼭지 뿐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목을 대단히 잘 뽑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단의 대가 김훈작가도 라면을 좋아하는구나, 젊은 독자들한테 친근하게 다가가기 좋은 제목이니까요. 좋은 글을 알리기위한 마케팅을 뭐라 할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자 출판사에서 약간 오버런을 한 것 같았습니다. 구입하는 독자에게 라면냄비하고 라면한개를 끼워주는 캠페인을 하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선의로 그냥 재밌자고 한 일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대형 출판사가 마케팅에 이런 식으로 돈을 쏟아부으면 영세출판사는 어쩌란 말이냐 비난의 소리도 나왔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도서정가제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인가 어딘가로부터 벌금처분을 받고 막을 내렸던 모양입니다. 이 이야기도 역시 다른 뜻이 아니라 라면이 그만큼 우리 생활에 깊숙히 들어와있다는 걸 상기하기 위하여 꺼낸 겁니다. 만일 책 제목이 '피자를 주문하며'나 '치킨을 시키며'였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라면은 이미 서민코스프레의 도구가 될 수 없게된지 오래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실제 라면이 빈곤코스프레에 악용된 사례를 하나 소개하고 넘어가지요. 아래는 영화 '넘버쓰리'에서 송강호가 부하들에게 헝그리정신을 강조하며 임춘애의 이야기를 하는 장면입니다. 지금보니 이렇게 젊고 풋풋한 얼굴을 하고 있네요. 전 이 영화를 보고 진짜 배가 아프도록 웃었던 생각이 아직도 납니다. 주연을 맡아 열연을 했던 한석규, 최민식도 좋았고 박상면도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아직도 송강호의 '배 배 배 배신이야...' 드립과 헝그리정신을 이야기하며 라면만 먹고 3관왕이 되었다는 현정화 이야기를 하는 대목은 한국 코미디 영화의 명장면으로 두고두고 남을 것 같습니다. 부하가 조심스레 형님 임춘앤데요, 라고 바로잡자마자 얻어터지는 장면은 금상첨화구요. 


라면은 맛있는 음식이라는 기억과 값싼 음식이라는 두가지 특징사이에서 자유자재로 왔다갔다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86년 아시안게임에서 장거리 3관왕을 기록한 임춘애 선수를 극적인 이미지로 포장하기 위해 언론이 왜곡한게 '라면만 먹고 뛰었다'라는 '미담(동정담)'입니다. 라면은 맛있어서 간식으로 먹었다는 임선수가 이런 왜곡된 이미지로 인해 맘고생을 하다가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웃 블로거 까날님께서 잘 써주신 포스팅이 있습니다. 왜곡보도의 원점이었던 아래 사진도 까날님의 포스팅에서 빌려왔습니다. 

원래 오늘은 다른나라 라면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라면상무 신문보도를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새로 쓰게 되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짬뽕류나 짜장류는 값이 좀 비쌉니다. 그건 그러려니 합니다. 그게 대세가 되지는 않을테니까요. 다만 라면만큼은 프리미엄이니 뭐니해서 비싼게 따로 안나올거라 믿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되레 소비자들로부터 역풍이 불 수도 있을테니까요. 앞으로도 라면만큼은 지금처럼 만인에게 평등한 모습을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