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외식(2): 심야식당과 밥집 일본이야기


천만이 넘는 대도시의 가장 번화한 지역에도 한발짝 들어가면 한적하고 으슥한 골목길이 있습니다. 오가는 숱한 사람들 가운데 이곳을 알고 찾아와 밤늦게 밥한끼를 때우고 술도 한잔 걸치는 그런 식당입니다. 일본에서 만화로 먼저 주목을 받다가 TV드라마로도 인기를 끌고 영화화까지 된 '심야식당'의 무대입니다. 이름은 '메시야(めしや)' 우리말로 '밥집'입니다. 이 식당은 진짜로 일본 곳곳에 남아있을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데 그 동네 골목까지 전부 세트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 두장은 바로 이 심야식당이 자리잡은 골목안 풍경을 찍은 건데 사진을 자세히 보면 위쪽으로 영화세트에서 보이는 어지러우 전선과 천정이 보입니다. 물론 설명이 없으면 그냥 넘어갈 만큼 리얼하네요. 이 사진은 세트를 다녀와서 글을 올린 일본의 よしだたつき라는 분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http://getnews.jp/archives/1526629 에 가보시면 심야식당과 관련해서더 많은 사진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블로그 같았습니다. 

오늘 심야식당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일본의 식당명칭을 이야기하는데  이 '메시야'라는 이름이 좋은 소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전에 쓴 밥과술 블로그에서 이 심야식당에 관하여 설명한 포스팅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밥집'이라는 명칭은 보통명사로 자리잡지 않았습니다만 일본의 경우는 나름 꽤 쓰이는 명칭입니다. 물론 같은 뜻으로 '메시도코로'라는게 더 보편적이긴 합니다. 이제 하나씩 설명해 보기로 하지요. 

일본에는 '메시야'를 고유브랜드로 한 식당들이 많이 있군요. '메시야 식당', 'the 메시야' 등의 체인도 있네요. 혹시 '심야식당'의 인기에 편승한 네이밍이 아닌가 찾아보았더니 만화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있던 브랜드로 주식시장에 상장까지 했네요. 그 아래로 돈부리를 파는 '메시야 동'도 있고, 한국에서 자주보이는 표현인 '원조' 비슷한 '본가(혼케;本家) 메시야'라는 집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식당을 지칭하는 명칭을 간단히 소개해봅니다. 서양음식을 파는 곳으로는 전통적인 레스토랑말고도 요즘들어 퍼지는 리스토란테, 브라세리, 비스트로, 트랏토리아, 핏짜리아 등등이 있는데 오늘은 일본 음식을 파는 곳을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우선 대중적인 식당으로 제일 무난하게 쓰이는게 '쇼쿠지도코로(食事処)'입니다. 한자음을 그대로 읽으면 식사처, 뜻으로 읽으면 식사하는 곳, 식사하는 집 쯤 됩니다. 일본 전국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간판이지요. 가게 이름과 함께 업태를 나타내는 '쇼쿠지도코로'를 노렌에 표기하거나 아카쵸친(붉은등)을 내걸거나 합니다. 

이름은 대중적인 쇼쿠지도코로를 쓰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꽤 고급스러운 집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만만하고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집들이라 지방을 여행하다가 연도에 내건 이런 간판을 발견하면 반갑습니다. 

메시하고 도코로를 붙여서 '메시도코로(めし処)'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대로 읽으면 '밥처'가 되겠는데 그냥 '밥집'으로 번역하는게 무난합니다. 오늘 사진은 전부 구글, 야후 이미지에서 퍼온 겁니다. 쇼쿠지도코로, 메시도코로, 메시야 다 같은 의미로 혼용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대중적인 식당으로 한국어와 같이 그냥 쇼쿠도(食堂;식당)라고 쓰는 집도 많습니다. 사내식당, 구내식당, 학내식당 이런단어도 일본어와 한국어가 공유하는 것들이라 일본에서 식당 그러면 대중적인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이 단어에서는 손님들이 더 편하게 들어오도록 친근하게 문턱을 낮춘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아래 사진들이 한 예입니다. 두번째 집은 '어머니의 맛(おふくろの味)'이라는 문구가 간판에 들어있네요. 일본도 앞으로 '어머니의 맛'을 강조하는 식당은 점점 사라져 가겠지요. 그 말이 가지고 있는 향수와 환상도 희미해졌기 때문이지요. 이'어머니의 맛'에 관해서는 따로 한번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이런 식당의 내부는 대개가 이렇게 숱한 메뉴를 손으로 써서 덕지덕지 붙여놓은 경우가 흔합니다. 그것도 그러려니하면 도리어 정취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대중식당들은 혼자 오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수십년전부터 그랬습니다. 퇴근 길에 들러서 혼자 밥을 먹는 샐러리맨, 슬렁슬렁 쓰레빠를 끌고 나오는 자영업자 같은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들어 간단한 안주감을 시켜놓고 대개 맥주나 소주(옛날엔 사케가 많았는데 요즈음은 소주가 더 유행임)를 몇잔 마시다가 식사로 마무리를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갑니다. 벽에 높이 걸어놓은 TV에서는 시즌내내 야구중계가 돌아갑니다. 단골들이 많은 식당에서는 손님들끼리도 들며나며 반갑게 서로 아는체를 합니다. 한국사람 눈에는 나중에 더치페이를 하는게 쑥스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즐깁니다.  

일본요리를 내는 외식업소 가운데 제일 고급으로 치는 곳은 료테이(料亭;요정)입니다. 그 곳에서 내는 요리는 카이세키요리(会席料理)입니다.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일식을 풀코스로 내는 건데, 일본의 온천 여관에 가면 저녁에 나오는 요리가 그것이거나 그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사료(茶寮), 차야(茶屋)라는 이름으로 고급요리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넘어갑니다.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름인데 우리나라에는 없는게 갓포(割烹)입니다. 갓포는 요리방식이자 업태이기도 합니다. 이런 가게를 일컬어 갓포텐(割烹店)이라고도 합니다. 이게 어쩌다 나름 서민적인 곳도 있지만 꽤나 고급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자를 한국어로 읽으면 할팽(割烹)이 됩니다. 할은 자른다는 뜻으로 칼을 사용한다는 의미고 팽은 삶는다는 의미이니 그야말로 칼과 불을 쓴다, 즉 요리전반을 의미합니다. 

위는 구글에서 '割烹'이라는 단어로 이미지검색을 한 첫페이지입니다. 꽤나 단정하고 깔끔한 일본식당의 이미지가 나오네요. 외식산업의 역사가 수백년이 된 일본과 전후 시작된 한국의 외식산업을 비교하는 건 어차피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국은 또 의식하면 잘 배우고 잘 따라가기도 합니다. 늘 혼돈속에 발전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러모로 어지러운 한국 외식산업의 현황을 보면 보다 진지하게 일본을 연구하고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오늘은 일본의 외식업소의 명칭에 대하여 서민식당을 위주로 적어보았습니다. 다음에 이 갓포와 카이세키에 대해서 기회가 있으면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꽃샘추위가 술한잔을 부르는 저녁입니다. 위장이 꼬로록 소리를 냅니다.    


일본의 외식이야기(1); 소바집 일본이야기


입춘이 지나면 도쿄에서는 겨울추위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곳곳에서 봄기운이 스며든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위는 지난 주말 도쿄에 있는 한 오래된 소바집에 점심을 먹으러 갔을때 찍은 사진입니다. 한낮의 햇살은 따스한 조춘(早春)의 정취를 듬뿍 머금어 더욱 눈이 부신듯 했습니다. 입구에 세워진 석등옆 손바닥만한 화단에는 애기동백(さざんか)이 얌전히 피어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문장이 튀어나왔습니다. '아, 소바먹기 딱 좋은 날씨네'  

아래는 이 소바집 입구를 간판이 들어가게 세로로 찍은 사진입니다. 스나바(砂場)라는 간판을 단 이집의 정식명칭은 '도라노몬 오사카야 스나바(虎ノ門大阪屋砂場)'인데 이곳에 지금 이 건물을 지은 뒤 영업을 한게 95년째이고 다른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수백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집입니다. 도라노몬은 도쿄에서도 한가운데 위치한 번화가입니다. 그곳에서 고집스럽게 옛풍모를 지켜온 덕에 이 건물도 유형문화재로 등록이 되었다고 합니다. 


주변의 풍광과 비교하기가 쉽도록 구글어스로 찾아보았습니다. 빌딩숲속에 찍힌 아래 빨간 표시가 이 건물입니다.


좀 더 확대해 보면 그 뒤에 붙은 커다란 고층빌딩은 순전히 이 국수가게 때문에 한귀퉁이가 움푹파인 모양으로 지어졌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아래는 위키피디어의 이집 항목에서 퍼 온 가게의 전경입니다. 일본에는 이런 건물들이 현대식 고층건물사이에 들어가 있는게 간간히 보이는데, 보전할 유적이 남아있는 이네들 환경이 은근히 부럽기도 합니다. 오늘 포스팅은 오래된 소바집에서 소바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메인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마음은 먹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몇번에 나누어 쓰려고 합니다. 일본의 외식문화와 업태의 다양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요즈음 한국에서 '혼밥'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사회전반에 걸쳐 변화가 생기며 거기에 따라 식사문화와 습관도 바뀌는게 당연하니까 앞으로 이 풍조는 더욱 심화, 발전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럴때 참고가 되는게 일본입니다. 오늘의 일본을 보면 내일의 한국을 예측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식산업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외식문화 전반을 다루면서 식당의 분류, 명칭, 그리고 최근 트렌드 등도 생각나는 대로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소바집에서 이야기는 출발합니다. 

이집 이름에 들어있는 스나바(砂場)는 우리말로 간판 또는 상호이자 간판에 해당하는 노렌(暖簾)의 이름입니다. 에도시대부터 유명한 삼대 소바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스나바, 사라시나(更科), 야부(藪), 이렇게를 에도(江戸)의 '삼대소바집(蕎麦御三家)'이라고 칩니다(일전에 '메밀이야기(3):일본소바' 편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세군데와 같은 상호를 가지고 지명이 다른 집들이 몇몇곳에 있는데 이건 같은 파에 속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노렌을 나눈 거지요. 원래 노렌이란 식당입구에 드려져있는 차양막같은 천을 말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상호나 문장을 새겨놓고 아침에 가게를 열때 내걸고 밤에 문닫을 때 들여놓기에 노렌을 지킨다는 건 가게의 전통을 지키는 소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요. 그리고 일본식 장인 도제의 풍습에서 오래 일한 제자나 또는 동생 차남 등이 같은 상호로 독립을 하는 걸 노렌와케(のれん分け)라고 합니다.

제가 이집에서 점심을 먹게 된건 일부러 멀리멀리 찾아서 간게 아니라 마침 시나가와에서 일을 보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도중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옛날 직장이나 살던 곳에서 사라시나 소바, 야부 소바가 그다지 멀지 않아 자주 갈 수 있었는데 스나바는 자주 갈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기 가까운 곳에 직장이 있었던 친한 친구를 만나거나 할 때면 꼭 그리로 가자고 하곤 했었지요. 이런 가게의 좋은 점은 유명하건 손님이 많건 가격대가 일반 가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본이 되는 자루소바(찬 소바)나 가케소바(뜨거운 소바)가 600엔에서 700엔 정도 입니다. 

우선 옛날 늘상 하던대로 따뜻한 사케 한 홉을 시켰습니다. 소바집에서 점심부터 가볍게 한 잔 하는건 색다른 운치가 있습니다. 취하지 않으려면 한 돗쿠리만 시켜 아껴 먹어야 하니 맛도 더욱 각별합니다. 그리고 안주삼아 가마보코와 계란말이를 시킵니다. 이것도 묘한 건데 잘한다는 소바집의 계란말이는 참 맛이 좋습니다. 홀짝 홀짝 마시며 옛생각에 잠기니 벌써 주문한 자루소바가 나왔습니다. 


자루소바는 가장 심플하면서도 메밀의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메뉴이지요. 맛있는 쯔유에 살짝 찍어 후루룩 후루룩 먹으니 눈 깜짝할 새에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 이렇게 합니다...


자루소바가 나오면 그 때 '기츠네 소바 하나 추가해 주세요'라고 미리 주문을 해둡니다. 그러면 자루소바를 다 먹어갈 무렵 타이밍 맞추어 따뜻한 기츠네 소바가 나옵니다. 칼로리가 별로 안되니(정신승리) 주변의 눈치보지 않고(신경쓰는 사람도 없지만) 당당하게 두그릇을 맛있게 먹습니다.


맛있게 먹은 이야기는 여기서 접고, 오늘 하려는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이 가게 입구를 찍은 사진을 아래에 다시 올립니다. 이집 노렌에 세글자가 써있습니다. 이게 일본을 여행하는 분들이면 한자를 잘 몰라도 거의 로고처럼 눈에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흔한 글자이니까요. 가운데 글자는 히라가나 무(む)자에 점을 두개 찍은 것 처럼도 보이는데 그런 글자는 없지요.  


이게 히라가나로 '바'자입니다. 그리고 그 오른쪽의 '楚'자같이 생긴건 히라가나 '소'자 입니다. 옛날 표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거니 '소바'라고 읽는 히라가나인 거지요. 일본의 가나문자는 한자에서 차용하여 만든 것으로 그 모양과 서체가 제각각이었다가 현대에 쓰는 표준 히라가나로 통일된 건 백년남짓 합니다. 다른 모양의 가나를 헨타이가나(変体仮名)라고 합니다(발음은 같지만 '변태'가 아니라 '변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맨 왼쪽의 글자는 한자로 '처(處)'자입니다. 우리말로 '곳'을 뜻하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일본어의 요새표기로 하자면 'そば処'가 됩니다. 읽기는 '소바도코로'입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소바집'쯤 되겠습니다. 

위의 노렌과 간판은 구글에서 찾은 것들 입니다. '生そば'라고 쓴 집도 많은데 이건 '기소바'라고 읽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순메밀'이란 뜻이지요. 하지만 요새는 '나마소바'라고도 읽어서 건면을 삶는게 아니라 반죽해 빚은 새메밀이라는 뜻으로도 전이되었다고 하네요. 아무튼 일본에는 이 処라는 글씨를 가진 식당이 많습니다. 

한국도 무슨무슨 식당, 이렇게 부르는 것 보다는 무슨무슨 집,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훨씬 많지요. 냉면집, 삼겹살집, 맥주집 이렇게 말이죠. 심지어는 중국요리를 내는 식당을 중국집이라고 합니다. 미국집 일본집이라는 표현은 없는데 중국집 그러면 다 통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짜장면집도 있긴 하군요. 일본에서는 이런 식당을 나타내는 걸로는 한국어의 '집'에 해당하는 '야(屋 또는 家)'가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얘기한 '도코로(処)'를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동은 야자가 붙어 '우동야(うどん屋)'라 하고 소바는 도코로자가 붙어서 소바도코로(そば処)가 많은데 그냥 입에 붙은대로 굳어진 습관이지 싶습니다. 

술(사케)을 마시는 집은 사카바(酒場)인데 요즈음은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류를 도소매로 판매하는 집을 사카야(酒屋)라고 하는데, 눌러앉아 마실수 있다고 해서 거(居)자를 붙인 대중술집을 이자카야(居酒屋)라고 합니다. 그리고 술집을 나타내는 다른 말로 또 도코로를 붙인 사케토코로(酒処)가 있습니다.  일본 전국에서 저녁이 되면 아래와 같은 등불이 이곳저곳에 밝혀져 손님의 발길을 끄는데 쌀쌀한 날씨에 더욱 어울립니다.  

그리고 그 밑에 살짝 붙인 사진에 'めし処'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예고편입니다. 말그대로 한국어로 '밥먹는곳', 밥집입니다. 다음번 포스팅에서 다뤄볼까 합니다. '혼밥'의 미래를 찾아보기 위한 옆나라 들여다 보기는 몇번에 걸쳐 계속됩니다.


나으 음식일기(22): 네오톤과 원기소 나의 반백년 음식일기

서플먼트. 우리말로는 보조식품, 영양제 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요즘엔 그냥 서플먼트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영어의 정식명칭은 dietary supplement니까 직역하면 식사보조제쯤 되겠다. 미국에 갈 때마다 한번이상 들리게 되는 대형 드럭스토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수퍼마켓에서도 무수한 제품들이 늘어선 길고긴 진열대의 규모와 양에 늘 압도당하고 만다. 선전문구대로라면 미국사람들 모두가 건강하게 무병장수를 누려야 할텐데 그러지않는게 신기할 정도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몸에 좋다는 건 뭐든 좋아하셨다. 일찍 가신 어머니에 대한 회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께 이런저런게 몸에 좋다더라 소문이 나면 그때마다 끊이지않고 사다드렸고 아버지는 진심으로 즐거워하시며 받았다. 효도도 손발이 맞아야 하는 거라고 누가 그랬었지. 그래서 아버지는 홍삼제품을, 복합비타민제를, 마늘즙을, 유산균제품을 쌓아놓고 장복을 하셨다. 미국에서 숙면을 취하는데 좋다는 소문이 났을때 멜라토닌을 사다드렸더니 즉각 그 다음날부터 잠을 편히 주무신다하셨고, 전립선에 좋다고 해서 쏘팔메토를 사다드렸더니 당장 소변보기가 용이해졌다고 하셨다.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시니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가시는 날까지 십수년을 사다 드렸다.  

나는 하지만 마음속 한편으론 아버지는 플라세보 효과가 잘듣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원래가 그런걸 꼬박꼬박 챙겨먹기엔 천성적으로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마음속 깊이 이런 것들에 대한 이유없는 불신이 있어서 인지, 내 자신은 좋다는게 생겨도 제대로 먹어본 기억이 없다. 내 건강을 생각해준 주변의 귀인들이 어쩌다 센트럼이니 복합비타민이니 오메가뭐니 천연효소니 등을 주면 고맙게는 받았지만 끝까지 챙겨먹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은 여러가지 의견을 듣지만 평소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것만 여과해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수십년전 미국친구 하나가 '비싼 복합비타민을 먹는 것은 비싼 오줌을 만드는 효과말고는 없다'는 이론이 있다고 말한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말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현재 보조식품은 크게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 지방산, 아미노산 등으로 나뉘는데 전세계 시장규모는 연 820억불이고 그 가운데 미국이 30퍼센트 가까이 점한다고 한다. 먹을게 넘쳐나는 나라에서 보조식품을 더 찾고, 정작 가난한 나라는 보조식품은 커녕 먹을 것도 부족한게 현실이다. 나는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한다. 요즘 넘쳐나서 부작용을 걱정하는 비타민제를 옛날로 가져가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건강을 되찾을 것인가. 아니 의약품을 좀 가져갈 수 있었으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수 있을 것인가. 

영양제와 관련하여 내게 가장 오래된 기억은 '네오톤'이다. 서너살때 이게 몸에 좋은거라고 어머니가 한숟갈 만큼씩을 식후에 주셨는데 맛이 묘했다. 계속 장복을 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내가 싫어했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웠거나 둘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시골에 내려가서 고모네를 놀러가면 늘 사촌형 둘은 네오톤을 마셨다. 딸들은 주지않았고 아들만 먹이던걸 부모도 아들딸 당사자들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 야릇한 맛은 지금도 기억하는데 십여년뒤애 설사약으로 정로환이라는게 나왔을 때 아, 하고 네오톤을 생각해냈을 만큼  냄새가 비슷했다.  

지금 찾아보니 위의 1930년대 광고그림이 나왔다. 유한양행제품이었구나. "신병으로 고생하고 허약하시거든 효과본위 보약 네오톤을 쓰시오"가 카피다. "세계적 보약 네오톤과 인체의 영양작용 도해"라는 문구와 함께 인체의 기관을 공장에 비유한 그림이 있으니, '과학' '선진' 이런게 잘 먹히던 시절이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찾아본 김에 좀 더 들어가보니 네오톤 토닉이 미국 제약회사제품에서 나온걸 수입해서 파는 것이었다. 성분을 읽어보니 대구간유 추출물하고 크레오소트, 구아이아콜, 하이포아인산이라는 듣도보도못한 원료가 들어가있는데 크레오소트라는데서 납득! 이게 석탄의 타르성분이 아니라 목탄의 타르성분에서 나온건데 정로환의 원료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어쨌거나 일제강점기시대인 1930년대부터 팔리던 제품이었다는걸 이걸 쓰면서 알게되었다. 호기심에 제조원인 미국회사를 찾아보았는데 검색에 안나오네.

그리고 내 어린시절 두번째로 기억에 남는 서플먼트는 '원기소'다. 미숫가루 같은 분말을 뭉친 알약모양인데 씹으면 고소해서 아이들이 과자먹듯 잘먹었다. 나는 입에 넣는 순간 안의 수분을 흡수해서 금방 입안이 텁텁해지는 감각이 싫어서 별로 좋아했던 것 같지않다. 이와 비슷한 걸로 '에비오제'라는게 있었는데 이것도 비슷한 맛이었다. 옛신문을 검색해보니 원기소보다 에비오제가 몇년 늦게 광고가 실리기 시작한다. 뒷날 일본에 가니 비슷한 효능의 에비오스라는게 있었는데 서로 무슨 관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기억에 원기소나 에비오스는 그렇게 비싼 제품이 아니어서 흔하게 먹었던 것 같다. 

국민학교 2학년이 되고 얼마 안지나서였다. 나는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에 너무나 어지러워서 학교옆 개천가에 주저앉았다. 봄날 햇살이 따스했는데 햇볕에 쏘이는 것도 힘이 들었다. 사방이 노란색으로 물든 것 같이 보였다. 뚜렷한 기억은 없는데 아마 천천히 일어나길 기다려 동무들이 집에 데려가 주었지 싶다. 병원에 가니 결핵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병약한 아이를 남들보다 2년 빨리 학교를 들어가게 한게 잘못이라고 어머니는 자신을 원망하며 우셨다. 

학교는 집에서 심심해서 내가 우겨서 빨리 들어간 것이다. 당시는 전후 인구가 부쩍 늘어나더 시절이라 교사를 미처 짓기가 바빴을 것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2부제였는데 나중에 저학년은 3부제까지 하였다. 일학년때 몇달은 신축교사가 마련이 안되어서 천막교실에서 가마니를 깔고 수업을 하였다. 그생각을 하니 나도 참 나이를 먹었구나 새삼 실감을 하게된다. 그런 먼지구덩이속에서 조그맣고 병약한 아이가 견뎌내기가 쉽지 않았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무거운 란도셀이 어깨를 눌러 더 그랬다고 그걸 예견못했던 당신을 또 원망하셨다. 

결핵은 무서운 병이어서 걸리면 죽는다고 여기던 시절이 불과 얼마전이었는데 이젠 약이 좋아서 산다고 어른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다. 그래도 좋은 공기를 마셔야 하기때문에 환자들은 지방의 요양원에 들어가서 격리생활을 하곤 했다. 청정지역의 공기를 마셔서 병의 악화를 막는다는 것 말고 주변식구들에게 감염시키는 걸 예방한다는 차원도 있었을 것이다. 지브리의 영화 '바람이 분다'에 여주인공이 결핵에 걸리자 산속 요양원으로 들어가 침낭에 들어가 실외에서 잠자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를 보며 새삼 옛날 생각에 젖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때 나온 제일 좋은 약이라는 '나이드라지드'라는 약을 잔뜩 싸가지고 속초 할아버지 댁으로 내려갔다. 여섯살 먹은 아이가 부모형제와 떨어져 일년간 혼자 지낸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저녁에 해질 무렵이면 뒤란 굴뚝 뒤로 가서 엄마생각을 하며 몰래 울기도 여러번 울었다. 그러나 낮에는 여기저기 쏘다니고 산으로 바다로 논으로 어른들 형뻘되는 이웃을 쫓아다니며 참 많은 경험을 하였다. 나에게는 그때의 경험인지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소리, 귀뚜라미 우는 소리, 나지막히 들려오는 소울음 소리, 한밤중에 아득하게 들리는 개짖는 소리 등이 다 외로움 고독 이런 단어와 연결이 된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 고등학교때까지 닥치는 대로 소설, 수필 등을 읽었는데 그러다가 이상과 김유정이 결핵으로 요절한 것을 알게되었다. 이상의 날개, 봉별기 등은 외울 정도로 많이 읽어서 마치 알고지내던 사람처럼 괜히 친밀감을 느꼈다. 결핵으로 몸이 상한 이상은 선천으로 요양을 간다. 그리고 거기서 권태를 비롯한 여러편의 수필을 쓴다. 뒤이어 병든 몸으로 일본 동경에 갔다가 초췌한 행색으로 길거리에서 불심검문으로 잡히고 유치장에 갇힌다. 이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어 그는 출소하여 얼마있다 숨을 거둔다. 나는 가끔씩 내가 먹던 나이드라지드를 나누어줄 수 있었으면 그가 더 살았을 터인데 이런 상상을 하며 안타까워하곤 하였다.  

아래 신문광고는 1960년 5월 것이다. '하이파스'라는 결핵약 광고이다. '폐결핵, 결핵성 늑막염에 하이파스'라는 카피인데 지금보니 이것도 유한양행 제품이다. 내가 하이파스를 기억하는 건 어른들이 대화를 하며 폣병엔 파스제품을 쓴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걸 들었기 때문이다. 이상보다 더 가련하게 요절한 작가가 김유정이다. 그토록 낙천적이고 익살스러운 작품을 썼던 그였기에 마지막 생에 대한 집착은 보는이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그는 닭을 한 30마리 고아먹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를 열마리정도 먹으면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하는 편지에 씌여진 내용이다. 그는 이편지를 쓰고 열하루만에 세상을 하직한다. 결핵약이 있었으면 이런 비극이 없었을텐데하고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하이파스 광고를 찾고보니 옆의 광고들도 재밌다. 이래서 옛신문을 찾아보면 시간가는줄 모른다. 옆의 영화광고는 '잊지못할 그날밤'이다. 나도 처음들어본 작품인데 찾아보니 Middle of the Night 라는 영화로 프레드릭 마치와 킴 노박 주연이다. 킴 노박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상영관은 단성사. 거기서 본 영화도 참 많았는데. 아랑드롱 장폴벨몬도의 볼사리노는 정말 멋있었다. 더스틴호프만의 '졸업'과 '작은거인'은 둘 다 학생입장불가라고 단성사에서 문전박대받아 교복입은 학생받아주는 재개봉관에서 보았다 . 캔디스버겐의 헌팅파티를 단성사에서 보고는 복숭아통조림을 사서 영화에 나온대로 먹었지. 

오른쪽 상단의 사자표 시대샤츠는 꽤나 오랜기간 보았던 상표다. 정작 성인이 되어 와이셔츠를 입게되었을 때는 맞춰입는게 유행이었다. 그옆의 최피부비뇨과 광고. 옛날엔 전봇대마다 극장 화장실마다 비뇨기과 광고가 붙어있었다. 그밑의 국제타이피스트학원. 그 땐 타이프만 쳐도 취직의 스펙이 되던 시절이었으니까. 지금처럼 오천만이 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세월이 오는 걸 상상도 못했겠지. 그 아래 자동차교습생모집광고. 운전면허만 있어도 먹고살던 시절. 그걸 배울 돈이 없었던 시절. 지금도 가끔 나이든 개인택시 기사분들한테 물어보면 '군대가서 운전배워 면허따서 사회나와 그때부터 핸들잡았다'는 스토리가 흔하다. 

그 위의 배제중고의 개교통지. 이 신문은 60년 5월 며칠자이다. 4.19혁명으로 자유당정권이 무너진 뒤, 휴학을 하던 학교가 수업을 시작한다는 공지이다. 휴대폰은 커녕 전화도 보급되지 않았을 시절이니 신문으로 광고를 내었나보다. 

내 결핵이야기로 돌아오면 해피엔딩이다. 결핵이 다 나았다는 판정을 받은 나는 일년간의 시골생활을 마치고 서울 그리운 식구들 품으로 돌아왔고, 학교도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제나이에 들어온 다른 아이들보다 일년 어렸지만 그땐 일년정도 일찍 들어온 아이들이 제법 있는 것 같았다. 7살은 1월 2월생만 받아주는게 원칙인데 3월 이후생도 그 때말로 사바사바하면 통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무엇보다도 내 건강을 걱정하셔서 학교는 안가도 좋으니 매사에 무리할 것 없다는 방침으로 나를 키우셨다. 실제로 나는 결석이 매우 잦았고 지각도 밥먹듯 하였다. 숙제도 하지말라고 하시고는 매년 새학기초에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우리 아이는 몸이 아프니 숙제검사에서 열외를 시켜주세요라고 부탁하셨다. 지금같으면 왕따를 당할 이야긴데 그땐 나도 아무 생각없었고 탈없이 잘 넘어갔다. 

그런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지 못하고 나는 계속해서 감기, 중이염 등 잔병을 달고 살다가 가끔씩 성홍열, 신장염 등 큰 병을 얻어서 입원과 휴학을 몇번인가 반복하였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어머니는 매일 시장보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아이들이 활기차게 뛰어노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우셨다 했다. 집에 야윈 모습으로 누워있는 내모습이 애처로워서 눈물이 났단다. 정작 나는 아파 누워있을 때는 연유도 먹고, 수밀도 통조림도 먹고 재수좋을 땐 그 귀한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오시는 손님도 계시고 해서 처량한 줄을 몰랐다. 책도 실컷 읽고 만화책도 원없이 보았으니까.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몸이 조금씩 좋아졌다. 병을 달고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골골한 체력으로 꾸역꾸역 남들 따라가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대학에 들어가선 건강이 남들만큼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외국을 나가서부터는 살도 붙고 건강해져서 가끔씩 주변에서 체력좋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고있다. 아주 어려선 살아있는게 효도였고 좀 커서는 아프지 않으면 그게 효도였던 내가 남들만큼 몸매도 되고 튼튼해진 걸 보시고 어머니는 대단히 좋아하셨다. 그러던 내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체중이 적정선을 넘더니 지금은 뱃살빼기를 걱정해야하기에 이르렀다. 아마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얘, 남자가 배도 좀 나와야지, 놔둬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중학교를 들어갈 때 쯤인가부터 우리집에선 비타민 영양제를 먹기 시작했다. 삐콤이라는 비타민 영양제인데 지금보니 그것도 유한양행이네. 영양이 부족하더 시절이라 그랬는지 가난한 농촌까지는 몰라도 서울에 있는 보통수준의 일반가정에선 비타민제를 먹는 사람들이 많았던 같았다. 보급되기 시작한 테레비에서도 약광고를 참 많이 틀었다. 신문은 말할 것도 없었고. 신문에는 약광고가 참 많았는데 제약회사가 워낙 큰 고객이다 보니 신문사는 광고가 부족한 날은 약광고를 임의로 싣고 나중에 싼 값으로 수금하고 이런 관행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고 알고있다. 

그리고 구론산이라는게 나와서 인기를 끌었는데 주사약 앰플같은 모양으로 나와서 유리병 꼭지를 따서 아주 가는 빨대로 빨아먹는 것이었다. 우리집에서는 수험공부를 하는 형이나 누나가 공부할 때 먹곤 했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향도 좋고 맛도 좋아서 졸라서 조금씩 맛을 보곤 했다. 여기저기서 구론산이 나왔던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건 라디오 광고에서 많이 들었던 영진구론산이다. 한참 지나서 이 앰플같은 모양의 액체가 증량경쟁을 했는지 마개를 따는 병모양으로 바뀌었다. 요새 박카스같이 된 것이다. 그러고보니 그때 나와서 살아남은건 박카스 하나 아닌가 싶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박카스가 정제로 나온 시절이 있구나. 요즘엔 청량음료 감각으로 마시는 박카스를 그땐 정말 몸에 보약이 되는 약으로 여겼던 시절이었나 보다. 

알약으로 나온 강장제로 제일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로나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1학년때 자기 누나가 일동제약에 근무한다는 친구가 있었다. 자랑삼아 아로나민을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으니 싸게사겠냐 했다. 우리집에 금송아지있다는 수준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집에 가서 큰소리를 쳤다. 아로나민을 아주 싸게 사올테니 두고 보라고. 물론 그 친구의 말은 부도가 났고 이는 나의 연쇄부도로 이어졌다. 지금도 누나는 가끔 아로나민 이야기를 꺼내어 나를 놀리곤 한다.     

약광고하니까 아직도 풀리지않은 의문이 하나있다. 내가 어렸을 때엔 정말로 소화제 광고가 많았다. 신문에도 TV에도 소화제광고가 넘쳐났다. 밥먹고 나면 마치 디저트를 먹듯이 소화제를 한알 먹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섭취하는 동물성 단백질이 적은만큼 밥같은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위에 부담이 간건지 아니면 반대로 식생활이 바뀌기 시작해 그런건지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는데 좌우간 한국사람들이 소화제는 확실히 지금보다 훨씬 많이 먹었다고 기억한다. 내가 오래된 순으로 기억하는 건 베스타제 판타제 훼스탈인데 마지막까지 남은 건 훼스탈이 아닌가 싶다. 

훼스탈 광고를 지금 보니 참으로 재미가 있다. "훼스탈은 불과 1정으로 치즈(단백질) 36g 돼지고기(지방) 15g 빵(전분) 60g 을 완전소화흡수시키는 독일 훽스트사의 강력한 종합소화효소제제로서 식후 1~2정만 복용하면 육류나 중성지방이 소화안되고 배설되는 일이 없습니다"라고 적혀있다. 그 뒤에 적힌 문구도 그렇고 아무리 보아도 요새기준으로는 과대광고로 걸릴 내용같다. 세월은 흘렀고 만일 지금 위에 적힌 훼스탈의 반대작용을 하는 약을 만들어 팔면 잘 팔리지 않을까. "고기 삼겹살을 아무리 드셔도 소화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배설되는" 약을 만든다면 말이다. 소화제하니까 빼놓을 수 없는게 이런 서양이름이 붙은 알약이 나오기 전부터 사랑을 받았던 '부채표 활명수'다. 그게 알콜성분이 들어가있다고 하는데, 옛날엔 술못먹는 사람을 두고  '활명수만 마셔도 취한다'는 표현이 있었다. 활명수의 한약같기도 한 묘한 맛은 어린아이들 입맛에는 호불호가 강했다. 나도 어려선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마시면 속이 뚫리는 듯한 느낌이 싫지 않았다. 

약이야기가 나왔으니 먹는 약은 아니지만 재미나는게 생각나서 적는다. 약품에 대한 규제가 엉성하던 시절이어서 항생제도 약방에서 얼마든지 살 수가 있고 시골 약국에서는 주사도 마구 놓아주고 하던 시절이었다. 요새는 소비자들도 부신피질호르몬이니 스테로이드니 해서 약성분이 이렇구 이런건 내성이 생긴다, 그 때뿐이다,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상식이 있다. 잘 모르고 넘겨짚는 생각이지만 옛날에 용하다는 약들 가운데에는 요새 기준을 통과못하는 것들이 꽤 있지않을까 싶다. 

아무튼 내가 국민학교 다닐때 '덱스타'라는 피부질환 연고가 있었다. 시골에 내려가면 저녁먹고 할 일이 없는데 자기전에 모여서 라디오 방송극을 들었다. 나는 자리를 펴고 이불속에서 듣곤 했는데 '전설따라 삼천리'라는 연속극을 좋아했다. 이게 영진약품 제공이어서 늘 덱스타 연고의 CM송이 흘러나왔다. 이 광고는 이렇게 시작했다. "트리오 로스 판쵸스가 노래하는 덱~스타!" 이런 멘트에 이어서 " 이~히 ! 텍스타! 아름다운 얼굴에 살결이 예뻐요~ 덱스타의 덕분이 아니겠어요~ 어쩌구 어쩌구~ 덱스타!" 중간가사는 까먹었지만 지금도 부를 수가 있다. 많이 들었으므로. 히트는 이게 진짜 트리오 로스 판쵸스가 부른 노래였고, 그게 사실은 누군가가 이 노래가 한국의 민요라고 속여 녹음을 시켰다는 뒷이야기였다. 아무리 유튜브나 구글을 검색해도 이 노래를 찾을 수가 없으니 여전히 기억한구석에 도시전설로 남아있을 뿐이다.    


붉은 살코기와 마블링, 스테이크 레볼루션: 소고기(2) 소고기 이야기


지난 번 와규 포스팅 말미에 쓴 이야기를 잠시 반복하자면, 지난 몇년 사이에 소소하지만 좋다고 여기는 변화가 하나있으니 비싼 고기보다 싼고기가 확실히 더 맛있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소고기 이야기입니다. 대리석처럼 마블링이 아름다운 꽃등심, 고급브랜드의 상징으로 설화등심같은 이름이 붙은 비싼 고기가 별로 맛있지가 않습니다. 어쩌다 먹게되어도 한두점 먹으면 금방 느끼해져서 더이상 먹기가 싫어진 겁니다. 먹을 걸 두고 이건 이래서 싫다, 저건 저래서 못마땅하다, 이렇게 까탈부리는 사람을 두고 우리말에 '배에 기름이 져서 그런다'라는 표현이 있지요. 정말로 배에 기름이 져서 그런건가 생각도 해보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어쨌거나 소고기는 기름기없는 붉은 살이 맛있습니다.

집에서 스테이크를 구우면 연기가 많이나서 그렇지 나름 꽤 맛있게 됩니다. 위의 스테이크는 두껍게 자른 홍두깨살을 소금하고 후추로 간을 해서 굽다가 후반에 가서 굽는 팬에 버터를 녹여 끼얹어가며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버터를 사용하는 건 피터루거 방식을 참조했는데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배에 기름이 지지않은 쥬스도 고기가 씹는 맛이 있고 고소한게 고급부위보다 더 스테이크스러워 좋다고 하더군요. 아래는 홍두깨살만 사오려는데 정육점 주인께서 '한우 등심 정말로 좋은게 들어왔는데 가져가세요'라고 쎄게 권하시기에 비교도 해볼겸 사와서 다음날 구운 겁니다. 쥬스와 저 둘다 먹다 남겼습니다. 느끼해서요. 다음날 잘게 썰어 다시 볶아서 국수 고명으로 얹어먹긴 했지만요. 


작년 12월 18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에 흥미로운 기사가 나와서 소개합니다. 원문의 일부를 소개할까 합니다. 

'상식'밖의 와규 사육법에 주목  붉은 살코기 붐으로 탄력받아

유럽,미국에서 유행하는 '방목'이 일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와규는 우사에서 수입곡물을 많이 먹여, 고기에 마블링이 들어가도록 사육하는 방식이 국내에서는 '상식'이지만, 자라난 풀을 먹음으로써 사료대를 줄일 수 있고 경작방목지의 재생에도 도움이 된다. 붉은 살이 많은 고기도 건강지향 붐에 힘을 받아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로스트비프, 햄버그, 소테, 니코미(삶은) 요리. 11월 초순, 시마네현 오오타시의 레스토랑에서 붉은살 부위를 쓴 소고기 요리가 선을 보였다. 방목에 관여하는 연구자들로 구성된 '일본산 고기 연구회'의 학술집회에 나온 점심 특별메뉴였다. 송아지때부터 일년반 방목하여 풀을 먹고자란 흑모(검은털)와규 고기로, '농연기구 서일본 농업연구센터'와 시마네현이 중심이 되어 육성한 '우마아카 비프(旨赤:맛좋은 붉은 소고기)'가 그것이다. 

홋카이도, 간사이, 규슈 등지에서 연구자나 셰프들은 씹을수록 맛이 나오는 붉은색의 고기를 즐기며, 리필을 요구하는 모습도 보였다.  

수년전까지 유휴경작지였던 오오타시내 약 1.3헥타르의 토지에 목초씨를 뿌렸다. 주변에 전기펜스를 두르고 작년 3월 생후 10개월의 송아지 세마리를 풀어놓아 금년 9월까지 키웠다. 보조사료로 짚, 목초를 주었고 마지막 시기에는 싸라기같은 것도 먹였다. 올해도 10월부터 네마리를 방목하였다. 일상의 관리는 그냥 둘러보는 정도. 우사에서 키울 때와는 달리 매일매일 사료를 준다거나 대량의 분뇨를 청소하는 일이 없어서 일손을 대폭 줄일 수가 있다.

방목한 흑모와규는 마블링은 아니지만 적당히 지방이 들어있다. 생산된 고기의 일부는 시험적으로 음식점에도 판매. 교토시 사쿄구에서 고기메뉴 중심으로 양식당을 운영하는 다니모토씨는 '우마아카 비프(맛좋은 붉은소고기)' 스테이크를 내었다. 손님들은 '살코기의 맛이 오래 가고, 먹기 쉬운 고기'라는 반응이었다고 전한다.(중략)

소비자의 취향 변화  

국내에서는 1991년 소고기 수입자유화이래 수입육과의 차별화를 위하여 곡물을 많이 주어 지방이 많은 시모후리(마블링)를 만드는데 힘을 써왔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소고기의 6할은 미국, 호주에서 수입한 것이다. 시모후리의 와규는 고급고기였는데 소비자의 취향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본 식육소비 종합센터'의 '식육에 관한 의식조사'(2015)에 의하면 5년전에 비하여 소고기 소비에 있어 '붉은 살코기가 늘었다'라는 응답은 19.6%, '시모후리가 늘었다'라는 응답은 4.3%였다. 붉은 살코기가 늘어난 이유로는 '가격', '맛, 식감이 좋아서', '건강 미용에 좋아서'가 상위를 차지했다. (하략)

그리고 이어서 기사는 다른 조사도 인용하였는데 현재 '기름기 있는 고기( 57.6%)'와 '붉은 살코기(36.1%)'의 선호도를 보이는데, 과거 5년 사이에 붉은살코기쪽으로 선호가 바뀌었다는 28.2%, 기름기있는 고기쪽으로 바뀌었다는 3%로 바뀌었다는 결과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는 붉은살코기쪽이 건강에 좋은 것 같아서, 맛이 좋아서,라는게 많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조건 마블링(시모후리)가 나쁘고 붉은 살코기가 좋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방성분이 원래 고소하여 좋은 맛이 나는 것도 사실이구요. 몸에 지방이 부족하면 지방이 더 맛있게 느껴지고, 넘치면 덜 땡기고 하는 건 생리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다만 곡물을 먹여서 마블링을 최대한으로 늘린 소고기가 고급 소고기의 정점에 위치하는 일본의 등급제나 한국의 등급제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취향에 따라 부위를 즐기면 되는 것을 고급은 마블링 일색으로 만들어 낸 등급 시스템은 소비자뿐만이 아니라 농가에게도 부담이 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땅이 매우 부족합니다. 넓은 목초지에 방목을 하여 국민에게 국산 소고기를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곡물사료를 사용하는 것은 피할수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최상의 선택은 아니라는 걸 인식하며 먹자는 거지요. 수입선을 다양화하여 풀을 먹인 소고기도 들여오고, 또 소비자들이 마블링 고기만이 아니라 다른 부위의 맛도 즐길 수 있게 트렌드가 변한다면 좋은 의미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얼마전 넥플릭스에서 아주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한편 보았습니다. 스테이크 레볼루션이라는 프랑스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소개하는 첫번째 이유는 소고기가 참으로 다양하고 기르는 방법, 먹는 방법도 가지가지로구나 하는 걸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전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맛있다는 스테이크를 찾아가 취재하고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보기만 해도 즐겁고 또 배우는 바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래는 일본의 고베로 가서 고급 와규를 먹는 장면입니다. 모두들 정말 맛있다고 칭찬을 합니다. 사육 농가를 찾아가 취재도 하고, 정육점 주인도 인터뷰 합니다. 일본의 고베비프를 취급하는 정육점 주인은 '일본에서는 한번에 소고기만 먹는게 아니라 반찬으로 밥과 함께 먹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쪽으로 발달을 한 것 같다'라고 얘기합니다. 기름이 많아도 밥과 함께 먹는 소량이면 느끼하지 않고 맛있겠구나 하는 걸 알려주는 대목이지요.    


프랑스의 맛있기로 소문난 집의 주인장은 '소가 행복해야 맛있는 스테이크를 얻을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영화는 드넓은 초원에서 소를 놓아 키우는 아르헨티나 목장으로도 가고, 이태리 토스카나 지방의 이름난 식당으로도 갑니다. 아르헨티나 편에서는 드넓은 목초지가 부럽기도 하고, 토스카나 지방에서는 맛있는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 옆으로 소들이 거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북유럽이나 스코틀랜드로도 갑니다. 그쪽은 추워서 소들의 종류도 다르고 한데 놀라운 건 소들을 12년, 13년씩 키우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제맛이 난다고 하네요. 역시 취재진이 맛있다고 칭찬해 마지않았던 뉴욕 브루클린의 '피터루거'의 주인장은 그 얘기에 깜짝 놀랍니다. '우린 3년이 맥스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키울수가 있지요"라고 도리어 궁금해 합니다. 


시간이 없이 캡쳐를 하다보니 피터루거의 맛있는 스테이크 사진은 놓치고 건물외관에 지하철 지나가는 사진이 잡혔네요. 브루클린다워서 그냥 올립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소종류도 참 다양하고 모두 나름대로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상에 남았던 건 마블링을 중시하는 나라는 일본, 한국외에 찾아보기 힘들고, 곡물로만 사육을 하는 건 전세계를 보면 참으로 제한적인 나라나 지역에 한정된 것이로구나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전통적으로 풀만 먹여키우던 나라들이 곡물을 먹이기 시작했다는 현실도 생각났습니다. 곡물과 육류의 공급을 쥐락펴락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브라질을 비롯한 목초 사육을 하는 지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호주가 일본이나 한국 시장에 맞추어 도축전 몇개월간 피드랏에서 곡물사육을 하기 시작한 건 제법 오래된 이야기이지요. 

소종류 하니까 생각이 나서 소개합니다. 이웃 블로거 푸른별출장자님께서 예전에 소를 소개하는 시리즈를 연재해 주셨는데 저도 다시 한번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아르헨티나(브라질이었나?)의 두툼한 스테이크 사진을 마지막으로 다큐멘터리 소개를 마칩니다. 소고기 이야기는 몇번에 걸쳐 쓰려고 합니다. 추운 날씨에 감기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너의 이름은' 그리고 마블링: 소고기(1) 일본이야기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君の名は)'에 나오는 고즈녁한 시골역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지금 한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기록적인 흥행성적을 기록하였지요. 이 작품을 탄생시킨 당사자 신카이 마코도 감독도 이러한 이웃나라의 반향에 깜짝 놀란 모양입니다. 짐작이 가지않는 것은 아닙니다. 만든 사람들은 지극히 일본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뒤집어 얘기하자면, 아는만큼 보인다고 일본관객들은 다른나라 관객보다 더 많은 재미를 찾아 즐겼을 겁니다. 저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서 눈에 익은 풍경들이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된 걸 즐기는 보너스까지 챙겨가면서요. 영화에 나오는 요쯔야, 요요기, 센다가야, 신쥬쿠, 모두 살면서 숱하게 다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반가웠던 건 따로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너의 이름은(기미노 나와: 君の名は)'은 새로운 타이틀이 아니라 일본에서는 아주 유명한 작품의 타이틀을 다시 사용한 것입니다. 전후(1952년) 라디오 방송극으로 처음 제작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작품이었는데 워낙 그 인기가 대단하여서 뒤에 수십년동안 영화도 3부작으로, TV연속극으로도 여러차례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머물고 있던 시절에도 여러번 방송되었습니다. 내용은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입니다. 2차대전 당시 도쿄가 대공습을 당하던 날 처음 만난 남녀가 만나 서로 목숨을 구한뒤 이름도 모르는채 헤어지며 반년뒤 스키야바시(数寄屋橋;최근 스시집 '지로'로 유명해진 장소입니다)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합니다. 그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또 반년뒤에 만나기로 하지요. 날짜를 꼽아 나가지만 늘 엇갈려서, 우여곡절 끝에 1년반 뒤에 만났는데 여자는 결혼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남자가 아, 축하드립니다. 행복하세요. 여자는, 네 감사합니다. 이러면 드라마가 아니지요. 운명의 쌍곡선이 교차하며 기막힌 드라마가 전개되며 일본 전국의 청취자, 관객, 시청자를 사로 잡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너의 이름은'이라는 제목에 특별한 친근감이 있다고 봅니다. 그 연속극이나 드라마를 보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도 타이틀은 낯선게 아닐 겁니다. 한국을 예로 들자면 아주 새로운 애니메이션에 '맨발의 청춘'이나 '동백아가씨' 아니면 '모래시계'같은 제목을 붙인 셈이라고 할까요? 아마도 신카이 감독은 원래 제목의 인기나 노스탈지어에 편승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교차하는 남녀의 운명과 접점을 그렸다는 공통점을 들어 일종의 오마쥬로 그 타이틀을 사용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를 잘만들어 놓으니 이렇게 해석도 호의적으로 풀리네요. 

쓰다보니 옆으로 샜는데 오늘 포스팅은 영화 이야기 아닙니다. 음식이야기 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독자분들껜 염장성 사진과 내용으로 비칠 대목이 몇군데 있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강렬하게 들어온게 '飛騨'라는 글자입니다. 일본의 지방이름인데 히다(ひだ)라고 읽습니다. 이 도시는, 아니 도시라고 부르기엔 그 고장의 이미지가 작고 소박합니다만 그냥 행정구역대로 히다시(市)라고 하겠습니다. 위의 그림이 '너의 이름은'에서 나오는 이 곳을 열차로 가면 내리는 히다후루카와역의 모습입니다. 하도 사실적이어서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별이 잘 안갈 정도입니다. 예쁘니까 그림입니다.

아래 그림이 영화에서 나오는 컷인데 역을 밖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飛騨(히다)라는 한자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옵니다. 저는 이 히다라는 지명을 한자로 보면 두가지가 생각이 납니다. 하나는 그곳의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우연이었기에 더욱 깊은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두번째로 飛騨(히다)라는 한자에 조건반사처럼 牛(우)라는 글자가 따라붙는 飛騨牛(히다규)라는 소고기 브랜드에 얽힌 과거의 추억입니다. 히다시는 기후현에서도 제일 북쪽끝 산악지대에 있습니다. 아마 그쪽 청정지역에서 키운 소를 브랜드로 만들어서 유명해진 것 같습니다. 이 소고기가 도쿄에서 지내던 저의 젊은 시절 한때에 여러가지 기억을 새겨놓았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수십년전 제가 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도 이세상 모든 대학원생들에게 해당된다고 굳게 믿는게 하나 있으니, 수준의 높고낮음을 떠나서 쉽게 써진 학위논문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논문은 진도가 안나가는데 졸업은 다가오고 해서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이던 가을 어느날 이었습니다. 저녁먹고 깜깜한 밤이 되었는데 근처에 사는 후배가 전화를 했습니다. 같은 한국인 유학생으로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던 그도 역시 논문으로 스트레스를 엄청받고 있었습니다.    

후배: 형, 뭐해요?
밥과술: 그냥 있어. 왜 이렇게 책이 눈에 안들어오냐?
후: 형, 우리 니이가타 가자.
밥: 니이가타? 왜? 뭐하러?
후: 그냥 여행가자고. 한 이박으로. 
밥: 언제? 
후: 지금. 17호선 국도를 타고 쭉 가면 새벽이면 니이가타 도착할 거야.

술은 체질에 안맞아 아예 못마시고, 매사에 치밀하고 낭비가 없던 후배가 뜬금없이 오밤중에 여행을 떠나자고 하니 오히려 이쪽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 노는거 이런 쪽은 다 내가 악역을 담당하는 사이였는데 말이죠. 국도 17호선이라면 다니던 대학 부근을 지나가는 간선도로로 늘 지나다니던 길이지만 그게 끝까지 가면 우리나라 동해와 맞닿은 니이가다까지 이어진다니 좀 새롭기도 했습니다.

밥: 그럼 잠은 어디서 자고? 비지니스 호텔 예약하나?
후: 아니, 그냥 담요 두장 챙겨서 차에서 잡시다. 의자 제끼고 눈 잠깐 붙이고 그러면 되지 뭐.
밥: 니이가타 담엔?
후: 지도 봤어요. 해안도로 타고 내려가서 이시가와현 가나자와 들러서, 기후현으로 들어가 산을 넘어 쭉 내려가면 나고야가 나와요. 그 담에 1번 국도타던지 도메이 고속타고 도쿄로 돌아오면 돼요.
밥: 흠, 에잇! 가자 까짓거.
후: 고마워요, 형. 30분내로 갈께.

지형이 좁기는 해도 동해안에서 태평양쪽으로 일본열도를 산을 넘어 관통한다는 말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가 진짜 답답하기는 한 모양이구나, 동정심도 생기고해서 가자고 응락을 했습니다. 이 후배와 저는 공동으로 소유한 자동차가 있었습니다. 일본서 사는데는 사실 자동차가 필요없습니다. 그런데 중고차는 찾아보면 대단히 싸게도 살 수 있었습니다. 국내수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자동차메이커에서 로비를 한 건지 우리나라 종합검사에 해당하는 샤켄(車検)이 2년마다 돌아오는데 우리돈 수백만원이 듭니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두번째나 세번째 샤켄을 할 때쯤 새차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 승용차의 폐차때 평균마일리지가 5만킬로를 훨씬 밑돈다고 하지요. 참으로 자원낭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날 후배가 샤켄이 2년가까이 남은 코로나가 20만엔에 나왔으니 같이 사지않겠냐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차상태도 깨끗하고 어째어째 운이 좋아 들어온 기회니 놓치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는 마침 면허를 딴지 얼마 안되어 운전이 하고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릴 때였습니다. 석사논문쓰고 한달정도 자동차 여행을 하고 싶은데 돈이 빡빡하니 형이 반을 내서 공동소유하자는 이야기였지요. 

차가 있으면 편한 것도 있으니 좀 무리를 할까하는 판단에 오케이를 하였고, 얼마있어 우리는 십만엔씩을 박박 긁어모아 유학생신분에 자가용 소유주가 되었습니다. 정기주차장을 제값내고 빌리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컸겠지만 수단좋은 후배가 잘 해결하였습니다. 결과를 미리 이야기하자면 주말에 쇼핑다닐 때는 편했지만, 차가 있으니 지하철이 끊어진 오밤중에 짜장면 먹으러 신쥬쿠도 나가고 가끔씩 주말이면 교외도 나가고 해서 이래저래 논문쓰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정신건강에 좋았으니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정신승리적 해석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아무튼 그날 밤 편의점에서 간식거리와  마실것을 챙긴 뒤 우리는 심야에 길을 떠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雪國) 첫머리에 나오는 '국경을 넘어' 이른 아침에 니이가타(新潟)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음날 도야마현(富山県)을 거쳐 이시카와현(石川県)으로 가서 풍광이 아름다운 가나자와(金沢)도 구경하였고, 다시 산을 넘으니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조그만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바로 그곳이 히다(飛騨)였습니다. 어디 여행을 가서 지리를 잘모르면 일단 역전으로 가면 가게도 있고 정보도 얻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찾은 역전의 모습이 바로 위의 사진과 같았습니다. 그때나 영화에 나오는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게 없더군요.  

그뒤에 나고야(名古屋)를 거쳐 요코하마(横浜)에 들른 뒤에 3박의 여정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왔습니다. 여정중에 히다가 특히 인상에 남았습니다. 가기 전까지는 飛騨라는 지명을 어떻게 읽는지도 모를 정도로 생소한 곳이어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대도시의 때가 묻지않고 사진이나 기록에서 본 일본의 옛날 정취가 남아있어서인지 은근히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게 히다와의 첫번째 인연입니다. 

飛騨와 관련한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예정에 없던 여행의 풍광들은 기억의 장농 깊숙한 곳에 넣어둔 채 또 시간이 흘러 저는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제가 활황의 정점을 치닫던 때였습니다. 얼마뒤 '거품'이 꺼지고 주식이, 부동산이, 모두 반토막 반의반토막이 나면서 일본경제가 깊고 오랜 불황의 늪으로 빠지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때였습니다. 지아게야(地上げ屋)라고 해서 부동산가격을 조작해서 큰돈을 버는 사람들, 주식관련해서 범법과 불법의 선위를 아슬아슬 걷는 사람들이 돈을 물쓰듯 썼고, 위로는 관료와 대기업에서 밑으로는 도박, 풍속산업까지 모두가 사치와 향락에 젖어있는 듯 했습니다. 

식문화가 발달한 일본답게 사람들은 먹는데도 돈을 많이 썼습니다. 예능프로에서 다투어 값비싼 고급 식당을 소개하면 사회적 위화감이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은 와, 나도 돈모아서 저기 한번 가봐야지, 이런 풍조였던 것 같았습니다. 최고로 좋은 식자재, 일반인에겐 넘사벽같았던 고급 식자재를 아낌없이 사용하여 요리를 만들어 경연하는 '요리의 철인'이 전파를 탔고, 만화에서도 미식붐이 불어 음식만화가 백가지가 넘게 연재되었습니다. 홍콩 파리의 명품샵은 일본인 관광객으로 넘쳐나서 문밖에 줄을 세우고 입장제한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이렇듯 무지개빛 버블이 부글부글 솟아나던 시절에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였기에 저는 젊은 나이에 좋다는 음식점을 많이 드나들 기회가 있었습니다(괜히 죄송합니다). 상사가 데려가주던가 거래처의 접대 등으로 모르는 손님은 받지않는 스시집, 그릇이 문화재급이라는 요리집이나 요정, 하루에 손님을 딱 한 팀만 받는 간판도 없는 덴푸라집 등 별난 집들도 가보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본사람들이 스테에키(ステーキ)라고 발음하는 고급 스테이크집들도 번창했는데, 그 정점에 아라가와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한자로는 麤皮라고 쓰기도하지만 이 사슴록자 세개가 중첩된 글자를 읽는 일본사람도 드무니까 あら皮라고도 표기합니다(이 글자는 우리말로는 거칠 '추'라고 읽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 옥편을 샀을때 호기심에 제일 획수많은 자가 뭔가 찾아보았더니 이 글자가 나와서 그때 이래로 기억을 하는 글자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으로 복잡한 자로 '불땔 찬'자가 있었던게 기억이 나네요). 이 집이 얼마나 비싼 곳이었나 하면 '비행기값을 내더라도 하와이가서 스테이크를 먹고오는게 더 싸게 먹힌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습니다. 과장만은 아닌게 그 때 하와이는 5만엔 이하로 갈 수 있었으니까요. 

당시 일본에는 샤요조쿠(社用族)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회사경비로 먹고 마시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지요. 재미있는 것은 일본사람들은 알아서 자신의 신분에 맞는 행동범위를 잘 정하곤 합니다. 지금은 많이 깨지긴 했지만 이 아라가와라는 스테이크집은 아무리 샤요조쿠라도 본인의 스테이터스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는 이미지도 있었지요. 그런점에서 일본사람이 아닌 저는 편했습니다. 누가 안데려가주어 못먹지 기회가 되면 어디 가서도 당당하고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처음으로 그곳을 데려가 주신 분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곳에서 쓰는 고기는 산다규(三田牛)에서도 제일 비싸게 낙찰받은 것만 쓰는거야. 당연히 맛은 좋지만 쓸데없이 비싸. 한번 경험하면 그걸로 된거야. 다음부턴 고리오로 데려가 줄께.' 

산다(三田)시는 효고(兵庫)현에 있는 지방이름으로 고베비프로 유명한 고베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고베비프가 좀더 광역이라면 산다는 그 가운데에서도 특정지역을 한정하여 브랜드를 만든거라 하겠습니다. 저를 처음으로 아라가와에 데려가 주신 분은 일본 재계에서도 폭넓게 얼굴이 통하던 인사였는데, 그 분 덕택에 일본에는 소고기에도 브랜드가 여러가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래가 산다규로 검색해서 찾은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는 고베비프로 검색한 이미지입니다.



야키니쿠집에 가도 보통(並), 그 위가 상(上),  그 위가 특상(特上), 이렇게 있는 줄만 알았고, 고급이라야 막연하게 소를 맥주먹이고 마사지해서 키운다는 고베비프(神戸ビーフ)라는게 해외토픽으로도 나왔다더라 정도가 일본 소고기에 대해 아는 것의 전부였을 때였지요. 그 분은 그 이후에 쯔키지에 있는 고리오(哥利歐)라는 스테이크집으로 몇번 초대해 주었습니다. 아라가와와 자매점인데 가격이 좀 싸다고 했습니다. 아라가와와 다를바 없이 맛이 좋았습니다. 고리오에서 둘이 맥주 한잔씩 하고 와인 한병 곁들이면(무슨 술을 마시던 먼저 맥주를 한 잔 하는건 일본식입니다) 십만엔 정도 나오는 것 같았으니 대단히 비싼 집입니다. 아라가와는 그보다 비쌌겠지요. 나중에 알게 된 또 다른 자매점으로 바르자크(芭爾札克)라는 스테이크 집이 긴자에 있었는데 이 집은 일인당 만엔정도라 젊은 샐러리맨도 어쩌다 큰 맘 먹으면 제 돈 내고 갈만한 곳이었습니다. 

고리오는 바르자크(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문학적 감성이 있었나 보다 했는데 알고보니 발자크가 미식가(라기 보단 대식가)로 유명했다더군요. 그는 글을 쓸때면 하루에 커피를 50잔씩 마셔서 결국 카페인중독으로 세상을 떴는데 며칠씩 과일과 커피만 먹고 글을 쓰다가 일단락 마치면 엄청 먹었다고 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발자크가 한 번은 글쓰기를 멈추고 굴 백개, 양고기 커틀릿 12쪽, 오리 한마리, 메추리 두마리, 가자미 한마리를 먹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요. 물론 디저트, 과일, 술이 따르는 코스로요. 스테이크 일인분에 150그램 내외, 커야 200그램 정도 내는 일본 레스토랑의 이름엔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사람들은 또 소고기요리로 스키야키나 샤부샤부를 즐겨먹는데, 이걸로 이름난 가게인 이마한(今半)이나 자쿠로(ザクロ)에서도 상급메뉴는 모두 브랜드 소고기를 사용하여, 오늘 고기는 어디어디 산입니다라고 설명을 해줍니다. 롯본기(六本木)에 있는 가니세리나(かに瀬里奈)의 돌구이 스테이크, 일본식 스테이크인 뎃판야키(鉄板焼)의 경우에도 고급 레스토랑에선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데서 자부심을 가지고 제공하는 브랜드 소고기는 대개가 최상급 시모후리들입니다. 붉은 고기살 사이에 지방이 대리석처럼 촘촘히 들어갔다고 영어로 마블링이라고 하는 걸 일본말로는 시모후리(霜降り)라고 하지요. 붉은 고기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 핑크빛으로 변했다는 형용입니다. 육질이 부드럽고 끼어든 지방이 고소하여 먹어보면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과장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느날 직장동료 중에 아는 것도 많고 먹는 것도 좋아하던 고사카군이 퇴근무렵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고사카: 밥상, 요새 새로 뜨는 소고기가 있는데 들어봤어요? 
밥과술: 뭐지요? 
고: 히다규라고 기후현에서 나온건데 나고야에서 히트치고 도쿄에서도 취급하는 전문점이 늘어난대요.
밥: 히다규?

귀에 낯선 발음이라 그게 뭔가 했습니다. 고사카군이 무슨 잡지기사를 오린 것 같은 종이를 보여주었는데 거기에 한자로 선명하게 飛騨牛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때는 인터넷 검색이라는게 없던 시절이어서 정보는 신문, 잡지 이런걸 통해 얻던 시절입니다. 도입되기 시작한 컴퓨터로는 그저 워드프로세싱이나 하고 팩스라는게 이렇게 편하고 혁신적이구나 하던 시절입니다. PC통신으로 한국과 이메일이 되고 채팅이 될 때의 감격은 대단했습니다. 삐이, 치이~하는 연결음이 무척이나 달콤하게 들리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저는 잊고지내던 그 히다라는 한자가 너무나도 반가웠습니다. 

밥: 아, 히다, 알아요. 기후현 산골에 있는 동네지요? 몇년전에 가본 적이 있어요.
고: 오늘 소개받은 집이 하나 있는데 가보지 않을래요?

마치 나만 알고 있는 산골마을이 하나있는데 그게 유명해진 것 처럼 반가웠고, 내가 그곳을 안다고 하자 고사카군은 그게 반가웠고, 그래서 둘은 의기투합하여 그날 저녁 히다규를 먹으러 갔습니다. 그의 안내로 간 곳은 스테이크도 아니요, 스키야키도 아닌, 야키니쿠 집이었습니다. 요즘은 일본에 브랜드 소고기를 사용하는 고급 야키니쿠 집이 아주 많습니다. 그때는 드물었지요. 

입에 살살녹는 야키니쿠를 먹고나서 일본의 소고기브랜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들어본  近江, 松坂, 神戸, 米澤, 三田 이런 지명이 화제에 오르면 맛있는 소고기, 그러나 비싼 소고기, 운이 좋으면 얻어먹는 시모후리느님(그땐 이런 표현 없었지만), 뭐 이런 기분으로 지냈습니다.  브랜드 이야기가 나왔으니 산다규와 고베비프에 더해서 몇가지 더 소개해보면 이렇습니다.  

마츠자카규(松坂牛)라고 있습니다. 미에(三重)현 마츠자카지방에서 나오는 브랜드 소고기입니다. 아래가 이미지 입니다.


그리고 요네자와규(米澤牛)라고 있습니다. 야마가타(山形)현 요네자와시에서 나오는 브랜드입니다. 옛날 메이지시대 야마가타로 영어를 가르치러 온 영국인 교사가 요네자와지방의 소맛에 반하여 그 뒤로 유명해졌다, 뭐 이런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아래가 이미지입니다. 


아래는 시가(滋賀)현에서 나오는 오우미규(近江牛)입니다. 변화를 주려고 스키야키용으로 담아놓은 이미지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아까 나온, '너의 이름은'에서 나와서 더욱 반가웠던 히다지방의 히다규(飛騨牛)의 이미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위의 사진들이 구별이 가십니까? 저는 눈으로 봐서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먹어봐도 이게 뭐다하고 구별할 자신은 전혀 없습니다. 오늘의 포스팅은 여기서부터가 반전입니다. 

긴 이야기를 줄여서 말하자면, 저는 일본의 와규(和牛)에 대한 칭송과 평가에 그야말로 거품이 끼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몸에서도 받지않습니다. 그당시 맛있게 먹었던건 일인분이 양이 적어 좀 아쉽다 할 때  그만 먹어서 질리지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는 한두점만 먹으면 느끼해서 더이상 식욕이 나지 않습니다. 실컷 먹어놓고 딴소리하는게 아닙니다. 저희집 커피여사도, 쥬스도 저하고 같습니다. 모두 붉은살코기를 좋아합니다.

한국에 들어오니 꽃등심을 최고로 치더군요. 한국을 떠날 때는 한일관 우래옥 불고기, 홍능 양념갈비 이런걸 제일 맛있다고 쳤는데 언제부터인가 고기를 생으로 구워 소금이나 기름 찍어먹는게 풍습으로 변하여 있었습니다. 저는 이게 솔직히 잘 맞지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사다가 구워먹는게 더 맛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몇달전에 코스트코에서 호주산 고기를 사다가 구워먹은 사진입니다. 부녀가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래는 며칠전에 동네 정육점을 지나다 홍두깨살을 두툼하게 썰어놓았길래 이거 스테이크감으로 딱이다 싶어 사다가 구워먹은 겁니다. 값은 가게에서 좋은 고기라고 권하는 부위의 1/3도 안되게 쌌습니다. 수지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간날 때 코스트코가서 호주산이나 미국산 넉넉히 사다놓고 시간날 때마다 구워먹을까 합니다. 해동 잘해서 소금 후추만 뿌려 시간맞춰 구우면 집에서도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습니다. 일인분에 만원이 안들지요.  


요즈음 일본에서는 소고기문화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마블링의 신화가 언젠가는 깨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직 찻잔안의 태풍정도인 것도 같지만, 조그만 구멍하나로 둑이 무너지듯이 언젠가는 일본의 소고기문화에도 커다란 변화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러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도 한우와 마블링에 대한 기형적인 쏠림현상이 바로 잡혀지는데 도움이 될 것도 같아서 말이죠. 오늘은 쓰다보니 추억에 잠겨 '너의 이름은'에서 시작하여 히다로 여행한 이야기, 맛있는 거 먹은 이야기가 마구 튀어나왔네요. 여기까지하고 다음번엔 일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하여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여서:
1. 아라가와, 고리오, 바르자크는 모두 한때 문을 닫았던 걸로 아는데 이번에 검색해보니 아라가와, 고리오는 다시 문을 연 것 같군요.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일본 가시는 분들에겐 스테이크집에서 내는 가성비좋은 햄벅스테이크를 추천합니다. 정말 가격에 비해 맛이 좋습니다.

2. 위에 나온 후배는 박사학위를 마친뒤 일본의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들어오고도 싶었는데 때맞춰 자리가 나지않아 여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얼마전 전화로 한참 옛이야기로 수다를 떨며 낄낄거렸습니다. 마지막 대화; 참, 세월 빠르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년이야... 그러게요. 형도 건강 유의하세요. 응, 너두... 

3. 위에 나온 고사카(가명)군도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박사학위를 딴 뒤에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더 어울리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못봐서 보고 싶네요.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