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 커피와 음악, DJ 그리고 폴모리아 (1) 술/커피이야기


그저께 동숭동 학림다방에 갔습니다. 동숭동도 자주 가게 되는 곳은 아니지만 학림다방에 들어가 커피를 마신건 실로 수십년만인 것 같습니다. 동숭동 대학로 에 있어서 동숭동 학림다방이라고 했지만 아마 정확하게는 명륜동입니다. 이곳은 제가 중고등학교와 대학시절 늘 오가던 곳이라 잘 압니다. 중고등학교가 혜화동에 있어서 6년을 보냈고 다른 동네 대학에 들어가서도 이쪽 동네, 그러니까 혜화동 동숭동 삼선교 이쪽에서 자주 놀았습니다. 서울대가 신림동으로 이사가기전에 이 다방은 서울대생 사이에서는 이십몇 강의실인가로 불릴 정도로 유명했다 합니다. 많은 문인들도 단골로 드나들었다고 하지요. 

그 날은 어떻게 동선을 짜이다보니 저보다 연배가 위인 선배님과 학림다방에서 약속을 하게 되었는데, 서울 문리대를 나오신 그 분은 오랫만에 들리니 학창시절 향수가 남아있다고 좋아하셨습니다. 고색이 창연한 것 같은 인테리어지만 사실 제가 학창시절 드나들 때 보다 훨씬 멋있어진 건물과 인테리어입니다. 83년엔가 개축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무튼 같은 자리에서 60년이상을 영업해온 가게라서 지금은 그걸로 유명해진 것 같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듯이 고색이 창연한 LP판이 가지런히 꽂혀있고 베토벤의 데스마스크와 커다란 스피커는 옛날 음악다방의 풍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왼쪽으로는 드립커피와 에스프레소 설비를 들여다 놓아서 요즈음의 트렌드를 받아들였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아무리 향수를 찾아가는 단골손님이 많다고 해도 옛날 커피를 그냥 내면 요즘같은 세월엔 장사가 안될 겁니다. 옛날 커피, 별로 맛이 없었거든요. 아래는 카운터 반대쪽 사진입니다. 다락방같은 장소도 그대로 있더군요. 이 날 마침 수녀님 두 분이 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셔서 오랜만에 찾은 제게는 더욱 운치가 더한 것 같았습니다. 누구라고 하면 다아는 소설가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오늘 토요일 집에 누워서 창밖을 보니 날씨가 너무 화창합니다. 구름이 이렇게 예쁜 가을날엔 어디론가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주 빡쎈 출장을 앞두고 오늘은 체력을 아껴야 합니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며 과거로 여행을 하기로 합니다. 젊은 날 드나들던 숱한 다방이 생각이 납니다. 옛날엔 다방 경양식집마다 성냥을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방마다 DJ가 있어서 신청하는 음악을 틀어주었습니다. 라디오에 출연하는 디제이에 못지않은 실력으로 인기를 모은 음악다방도 있었고 어항만한 유리방안에서 말없이 음악만 틀어주는 디제이도 있었습니다. 

그 때 다방엔 실내장식 삼아 커다란 사진이나 그림 판넬을 걸어놓은 곳이 많았는데 제일 흔했던 것이 아래에 캡쳐한 영화 '이지 라이더'의 한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피터 폰다와 데니스 호퍼가 출연한 영화로 오토바이로 방랑하는 두 젊은이의 이야기였는데 우리나라엔 개봉되지도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베트남전쟁과 히피세대의 등장 등 미국사회가 분열되기 시작한 때 만들어진 이 영화는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을 잘 묘사하여 미국 영화사에도 중요한 작품으로 남아있는데 당시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그 내용을 접할 기회가 없었지요. 다만 그림속의 툭 터진 광야를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답답한 현실에 갖혀있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대리만족을 할 기회를 주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부터 나오는 사진과 그림은 모두 구글에서 캡쳐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방에 흔하게 걸려 있었던 판넬(패널이 맞는 표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옛날에 부르던 대로 저는 판넬이라 불러야 그 때 맛이 나네요) 가운데 또하나가 싸이키델릭한 그림들인데  제일 흔했던게 기타치는 지미헨드릭스의 포스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미 헨드릭스의 그림은 콘트라스트가 강한 흑백 그림이 강렬하게 인상에 박혀있는데 검색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이나가다다비다 같은 노래가 담긴 자켓그림을 걸어놓은 다방도 있었습니다. 


밥말리의 포스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기억에 가물가물합니다. 제가 레게음악과 밥 말리를 알게된게 외국에 나가서였으니까 한국에 소개가 되었더라도 흘려듣고 보더라도 무심코 지나쳤을 수도 있겠습니다.  


당시 다방에는 영화포스터의 한장면이나 헐리웃스타의 포스터를 걸어놓은 곳도 적지 않았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엔 이런 포스터를 구할 길이 없었는데 명동 외국서적을 파는 곳에 가면 일본에서 발행하는 영화잡지 '스크린'과 '로드쇼'를 살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잡지는 매월 부록으로 포스터를 발행하였습니다. 이걸 잘 펴서 표구를 한 것이 전국 도시의 다방마다 걸려있던 판넬이라고 짐작합니다. 아래는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포스터에 사용된 그림입니다.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 콤비의 명화였지요. 


영화 '엠마누엘 부인'의 실비어 크리스탈 입니다. 이 영화는 거의 포르노급으로 취급받는 영화라서 우리나라에는 언감생심 들여올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성적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개방적이었던 일본에서는 이 영화가 기록적인 흥행성적을 올립니다. 그리고 실비어 크리스탈의 전신포스터는 몇번이고 일본 영화잡지의 특별부록으로 나왔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이걸 판넬로 걸었던 다방이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괜한 체면차리느라 부분캡쳐 사진을 올립니다. 궁금하신 분은 검색하시면 전신 포스터를 쉽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아주 인기가 많았던 판넬이 청순한 이미지의 여배우 올리비아 핫세의 사진이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하나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동양적인 미모를 간직한 여배우로 당시 남학생들의 우상이기도 하였습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제작자와 감독이 자신들의 중고교 시절 우상이었던 올리비아 핫세와 가장 닮은 여배우를 찾아서 캐스팅한 이가 한가인이었다는 사실은 뒷이야기로도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다방에 판넬로 걸렸던 인기 여배우로는 '졸업'의 캐서린 로스, '러브스토리'의 알리 맥그로우 등이 생각이 나네요.  



여담으로 말하자면 '러브스토리'는 에릭 시걸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인데 원작자가 소설의 무대가 된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그 때 룸메이트가 우리에겐 '멘인블랙'으로도 유명한 토미리 존스였다고 합니다. 학력은 좋은데 젊은 시절 얼굴은 좀 안되는(실례) 그를 에릭 시걸이 우정(이라 쓰고 '빽'이라 읽어도 무방)으로 밀어넣어서 토미 리 존스가 '러브스토리'에 주인공의 룸메이트로 나옵니다. 저도 원작소설을 중3때 사서 읽어보려고 도전을 하였는데, 어려워서 도중에 멈췄고 고등학교 1학년때 영화를 본 뒤에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소개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 '엠마누엘', '로미오와 줄리엣', '졸업', '러브스토리'의 포스터나 배우들의 사진이 다방에 걸렸던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모두 영화속에 삽입된 노래나 주제음악이 대단히 유행하였다는, 그래서 다방에서도 자주 틀었고 라디오에서도 자주 소개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요. 당시엔 비디오같은 재생도구가 없던 시절이라 영화는 한 번 보고 머리속으로 되새기고 음미하고 그래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라디오는 방송국마다 '스크린뮤직' '영화음악' 같은 말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해당 영화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음악을 틀어주곤 했습니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는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가 나옵니다. 



당시 우리나라엔 영화로는 도저히 소개될 수 없었던 '엠마누엘 부인'도 그 아름다운 선율의 주제가는 자주 음악프로그램의 전파를 탔습니다. 링크한 것은 폴 모리아 악단의 연주입니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은 거장 니노 로타가 음악을 담당하였는데 우리에게는 앤디 윌리암스가 노랫말을 부쳐 부른 'A Time For us' 가 유명했습니다. 



영화 '졸업'은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사이먼 앤 가펑클의 명곡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기에 링크하는 곡은 영화 오프닝에 나오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입니다. 누군가가 고맙게도 영화의 장면을 뮤비처럼 편집한 버전입니다. 



영화 '러브스토리'는 앤디 윌리암스가 불러 유명한 동명의 주제가도 있지만, 그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건 우리에게 '눈싸움'이라고 알려졌던 노래입니다. 첫 눈이 오는 날은 말할 것도 없고 눈이 내리는 날이면 이방송 저방송에서 이 음악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저녁 해먹고 유튜브를 찾아들으니 옛날 생각이 마구 나서 마음이 푸근해 집니다. 음식밸리에 올리려니 다방커피만 가지고는 부실해서 오늘 만들어 먹은 간단 샌드위치를 올립니다. 나가기는 싫고, 혼자서(쥬스는 어제 일박으로 친구들과 놀러갔음) 시켜먹기도 그렇고 해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냉동실에 얼려놓은 식빵이 있었습니다. 두장을 녹여서 프라이팬에 굽고(버터 발라서), 양파를 살짝 볶고(버터로), 햄이 없으므로 스팸을 저며서 부치고, 계란 두개를 부쳐서(버터를 넉넉히 두르고) 구운 빵사이에 넣고 얼른 계란과 빵사이에 치즈를 넣으면 남은 열기에 치즈가 알맞게 녹습니다. 계란과 스팸사이에, 양파와 스팸사이에 케첩을 알맞게(커피 여사가 보시면 너무 많다고 할 정도에서 아주 조금 모자라게) 넣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보기에는 단정하지 못하고, 먹을 때 손에도 묻고 그러지만 맛은 대단히 좋았습니다. 특히 스팸은 변하지 않는 옛날 맛이라 오늘 같은 날 좋습니다. 음악을 듣느라 몰랐는데 쓰다보니(유튜브 링크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네요. 폴 모리아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시간 날 때 계속 쓰려고 합니다.  기왕에 살짝 나온거 끝으로 밥말리의 'I Shot the Sheriff' 링크하고 물러갑니다~

 



부산행; 탄수화물 좀비와 소고기국밥 밥과술네 집이야기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부산 해운대 소고기국밥. 저는 이 음식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경상도 음식에 뭐 맛있는게 있겠냐는 속좁고 철없었던 편견을 단 한 방에 날려버려준 고마운 메뉴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부산의 돼지국밥, 밀면, 어묵 등을 다 좋아하게 되었습니다만 처음으로 이것을 먹어보았을 때의 놀라움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나중에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경상도 분들은 집에서도 이 음식을 많이 해드시더군요. 저는 여러집이 늘어선 국밥거리에서도 특히 원조 할매국밥 집을 선호합니다. 45년이 되기 전에 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가보니 55년 전통이라고  붙어있었습니다. 세월은 참 빨리 갑니다. 

지난 주의 일입니다. 부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모처에서 요청이 와서 강의를 하러 내려간 것입니다. 강의가 오전이라 초청한 쪽에서 전날 밤 호텔을 잡아주었습니다. 사실 조금 부지런을 떨면 아침 일찍 내려가서 일보고 오후에 올라오는 당일치기 일정도 가능했습니다만 전날 저녁에 내려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유는 한가지, 소고기국밥을 먹고 싶어서였지요. 

내려가기 한 일주일전에 쥬스를 살살 구슬렀습니다. 
술: 얘, 너 담주 목요일에 무슨 일 있니?
쥬: 왜요?
술: 내가 부산에 일박으로 가는데 같이 안갈래?
쥬: 아, 강의 내려가신다는 거? 그게 다음주인가요?
술: 응. 같이 내려가면 말이야...
쥬: 알아요. 소고기 국밥 먹을 수 있다는 거죠? 고민되네...

밥과술은 가정에서도 전도를 하여 쥬스는 소고기국밥 신도가 되었고, 부산에 갈 기회가 적은 커피여사는 입신 직전의 단계로 왕팬쯤에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쥬스는 작년인가 친구들하고 부산에 내려갔을 때 올라오면서 해운대에 들러 소고기 국밥을 잔뜩 포장해 와서 딸 키운 보람을 마구 느끼게 해준 효행도 서슴치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두 끼는 냉장고에 넣고 맛있게 먹었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얼려 놓았다 나중에 꺼내 먹었는데 고기나 무는 괜찮았는데 원래 통통했던 콩나물이 냉동을 했다 녹이니 수분이 빠져 쪼그라들어 질겼습니다. 그래서 앞으론 기회가 있어도 냉동까지는 하지말자고 마음먹기도 했었지요. 어쨌거나 진짜로 간만에 소고기국밥을 먹을 기회가 생겼는데 신도를 돌보지 않으면 전도사가 아니지요. 대화가 이어집니다.

술: 같이 가자. 
쥬: 일정이 어떻게 돼요?
술: 서울에서 일마치고 KTX타고 내려가면 밤일거야. 우선 소고기국밥을 먹어야지. 거긴 24시간이니까. 
쥬: 그리고요?
술: 다음날 오전에 강의 마치고 점심으로 밀면을 먹고. 
쥬: 저녁으로 돼지국밥을 먹는다?
술: 아니지. 돼지국밥은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으니 소고기국밥을 한 번 더...
쥬: 바다 구경은 안해요?
술: 해운대 비치 조금 걷다가 파라다이스 호텔 로비라운지에서 커피한잔 하지뭐.  그리고 부산역에서 어묵을 사서 오는 기차안에서 얌냠 먹는거야.
쥬: 갈께요. 갑자기 소고기국밥 이야기를 하니까 확 땡겨요.

이리하여 두사람은 수요일 저녁 용산역에서 만나 KTX를 탑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차 여행에는 무언가 마음 설레는 정서가 따릅니다. 일년에 한 두번 가는 부산이지만 대개는 비행기를 이용하기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음악 듣고 뉴스보고 이러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천안지나고 대전, 칠곡구미 지나서 대구거쳐 부산에 도착합니다. 아래는 부산역에 내려서 출구로 나가는 길에 한 장 찍은 겁니다.   


역전으로 나가니 비가 엄청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다음날도 비가 온다고 했습니다. 역구내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을 두개 사고 택시를 탑니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곧바로 국밥집으로 향합니다. 비가 퍼붓는 늦은 밤이라 손님은 우리말고 한 테이블만 있습니다. 소고기국밥 두개에 소주하나를 시킵니다.  맨 위의 사진은 쥬스가 찍은 사진으로 앞의 메인디쉬가 부각되고 뒤의 반찬은 초점이 흐려져서 그럴 듯 합니다. 아래는 술이 찍은 사진으로 그냥 기록용 찰칵입니다. 오래간만에 참이슬 처음처럼이 아닌 소주를 대하니 잠시나마 내가 여행을 왔구나 실감이 납니다. 맛은 전혀 구별이 안갑니다. 국밥 한 숟갈에 한모금씩 홀짝홀짝 마시니 지방소주나 전국소주나 다 또~옥 같이 맛있습니다. 

위에 소개한 지난 주의 부녀간 대화에서 나눈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하동관에서 곰탕을 엄청먹고 다이엇을 결심한게 일요일이고 실행에 옮긴게 월요일이니 다이엇 사흘째 되는 날에 부산에 온 것이지요. 작심삼일이 정확하게 지켜지는 날이었습니다.  


이틀동안 열심히 빼서 일킬로를 줄인 밥과술이 일말의 양심에 걸려 쥬스에게 말합니다.  

술: 무하고 고기 콩나물만 먹으면 탄수화물이 없어서 좋을텐데 그렇게 떠먹어서 숟가락에 밥알이 안얹히니까 맛이 덜해...
쥬: 아니 그냥 푹푹 드세요. 맛있게. 자주 오는 부산도 아닌데. 내일부터 다시 다이엇하면 되지 뭐.
술: 그지? 그런거지?

답정너를 시전하려고 쥬스를 데려온 건 아닌데... 암튼 마음의 위안이 됩니다. 이 때부터 풍풍 떠먹는데 이래서 인생은 아름다운거야, 마구 마구 행복해집니다. 서울 신사동 사거리 잠원쪽 방향에 따로국밥집이 있어서 소고기국밥이 그리우면 가끔 찾곤 했는데 없어져서 섭섭합니다. 혹시 어디로 이전한 건지 아시는 분은 덧글 부탁드립니다. 

짧았던 행복은 지나가고 눈앞에는 빈 그릇이 놓여있습니다. 술이 좀 남아있습니다. 이틀동안 탄수화물을 멀리했다가 맛있는 국밥을 먹으니 몸이 요구합니다. 더 먹으라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번민하는 햄릿마냥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쥬스가 물어봅니다.

쥬: 왜요? 더 드시게?
술: 응, 국물만 좀 더 먹을까 싶어서... 술도 남았고.
쥬: (또 답정너네, 장사 한두번하나 싶은 표정으로) 더 시켜 드세요. 어차피 출장중엔 다이엇 잘 안되니까 실컷 드시고 서울가서 하면 되지 뭐. 
술: 그지? 그러면 되는 거지? (호방한 목소리로) 사장님, 여기요! 여기 따로국밥 하나 주세요!
사장님: (우리 테이블로 다가 오더니, 주룩주룩 비내리는 밖을 쳐다보고는) 아, 여기 한 분 더 오세요?  
술: (무진장 챙피한 표정으로) 아니, 제가 좀 더 먹을까 해서... 오랜만에 오는거라 (약간 비굴한 웃음소리가 남) 헤헤헤
사: (아무 감각없이, 주방에다 대고) 따로 국밥 하나요!

아래가 추가로 나온 따로국밥 사진입니다. 먹는 동안에 깍두기 무생채도 셀프리필을 하였고, 고추썰은 것도 두번이나 리필을 하였습니다. 


탄수화물 없이 국물하고 고기 콩나물 무만 먹겠다고 시킨 따로국밥인데 야금야금 밥도 먹게 됩니다. 말아먹는 밥맛하고 따로 먹어서 입에서 섞이는 밥맛이 다르지요. 같은 흰 밥맛을 두 번으로 나누어 즐기며 탄수화물 삼매경에 빠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밥도 거의 다 먹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배가 엄청 불러옵니다.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어쩌다가 온 부산이니까요. 2500원인가 할 때부터 왔는데 지금 보니 5천원이네요. 그래도 요즈음 서울의 설렁탕 곰탕 한그릇 값 생각하면 고마운 가격입니다. 가성비로 이야기하자면 말할 것도 없구요. 메뉴판을 기념으로 한장 찍었습니다. 

 

다음날 일어나니 비가 거의 멎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강의장소를 가려는데 시간이 40분쯤 남았습니다. 커피라도 한잔하자고 부근을 걷는데 부산에 어떤 집 커피가 맛있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던 차에 눈에 맥도날드가 들어옵니다.  그냥 커피나 한잔 하자고 들어갔습니다. 자주 마시지 않지만 맥커피가 그다지 맛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맥커피가 처음 생겼을때 맛이 좋았던 인상이 깊히 박혀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들어가서 메뉴를 보니까 생각이 달라집니다.

술: 여기 들어오니까 생각이 달라진다. 
쥬: 그렇지요? 냄새가 좋아요. 아침 먹을까?
술: 그래, 뭘 먹을까?
쥬: 전 소시지 에그 머핀이요. 
술: 난, 어디 보자... 딜럭스 브렉퍼스트.

그래서 나온걸 찍은게 아래 사진입니다. 한 장에 담느라 2인분을 겹쳐 놓았습니다. 커피말고 쥬스도 하나 추가 하였습니다. 아침이니까요...


왜 이렇게 맛이 좋은지요. 계란을 깨서 만든게 아니라 전란액 같은 걸 받아서 매뉴얼 대로 만들었거나 아예 만들어 놓은 것을 데운 것일지도 모르는 스크램블드 에그도 맛있고, 농축과즙을 환원한 미니트 메이드 쥬스도 이게 이렇게 맛있었나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팬케잌에 버터와 시럽을 얹어 먹으니 이것도 꿀맛, 소시지 패드도 맛나고 머핀도 바삭하니 맛이 좋습니다. 평소에 감자에 대해 까탈스러워 맥도날드의 눅눅한 해시브라운에 점수를 안주는 편인데 이것도 이날은 괜찮았습니다. 커피를 마셔가며 아침을 먹는 밥과술이 바보처럼 희죽거렸던 모양입니다.

쥬: 왜 웃으세요?
술: 응, 하도 맛있어서. 

그래도 약간 걸리는 마음에 머핀 한쪽, 계란 조금, 해시브라운 조금, 팬케잌 조금씩 남긴게 아래의 증거사진입니다. 



그리고 강의를 잘 마치고 초청한 측에서 점심을 삽니다. 광안리 바다 전경이 좋은 중국집을 예약했다고 합니다. 점잖은 체면에 밀면이 먹고 싶은데요,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기꺼운 마음으로 초청에 응합니다. 점잖은 체면(그렇습니다. 나름 무게잡고 한 강의였습니다)에 사진을 찍기도 뭐해서 코스로 나온 음식가운데 증거용으로 몇장만 슬쩍 찍었습니다. 마지막에 나온 볶음밥이 고슬고슬하니 맛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광안리 해변을 잠시 걸었습니다. 늘 해운대 쪽만 갔기에 이쪽에서 보는 해운대와 광안대교의 풍경은 신선했습니다.



비가 완전히 멎었기에 해운대로 가서 잠시 해변 구경을 하였습니다.  문제가 되어서 자칫 커다란 스캔들로 커질 것 같았던 엘시티는 착착 올라가고 있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저녁으로 한 번 더 소고기국밥을 앵콜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약속한 손님과 커피 한잔을 하고 시간을 당겨 상경하기로 하였습니다. 여기 로비라운지에서 정원너머 보이는 바다 풍경은 언제봐도 아늑합니다. 커피맛이 가격만큼 좀 더 좋아졌으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은 남았습니다만 그런대로 즐거운 오후였습니다. 



부산역에 도착해보니 바로 떠나는 열차가 있어서 표를 바꾸고 부지런히 타느라 어묵을 사지 못하였습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습니다. 조금 있다 열차가 출발한 뒤 옆 좌석에 앉은 승객이 어묵을 꺼내어 먹기 시작할 때 까지는요. 부시럭하는 소리가 나더니 솔솔 고소한 향기가 풍겨왔습니다. 침을 꼴깍 삼키고, 나도 다음번에 부산오면 비행기 타지말고 기차타고 꼭 어묵을 사먹어야지 마음먹은 서울행이었습니다. 탄수화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탄좀비의 다이엇 앞길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어느 일요일; 일등을 하고 케잌을 먹고 다이엇을 결심함 밥과술네 집이야기


어제 아침 식당에 첫손님으로 들어갔습니다. 일요일날 아침에 쥬스가 시험이 있는데 차로 데려다 주면 고맙겠다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시험장에 내려주고 나니 9시도 안된 이른 시간이라 무얼할까 망설이다가, 코엑스에 가서 밥먹고 영화나 봐야겠다 마음을 먹고 방향을 그리로 잡았습니다. 이상하게(전날 중국음식에 고량주를 마셨으니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지만) 아침부터 국물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서 코엑스 근처에 있는 우래옥에 가서 육개장을 먹을까, 장독대에 가서 김치찌개를 먹을까 그냥 안에 있는 하동관에서 곰탕을 먹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는 동안 차는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머릿속으로 세가지 메뉴를 상상하면서 순간 측정한 침샘자극지수와 위액분비지수에서 곰탕이 제일 높은 것 같아서 코엑스로 향했습니다. 사실 저는 포스코에 옆에 있는 하동관을 더 좋아하는 편인데 찾아보니 어제는 휴일이었습니다. 코에스점 문앞에 가 들여다보니 사람이 아무도 없길래 영업하냐고 물었더니 시작했다고 들어오시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제가 첫손님이었던 거지요. 궁금해서 몇시부터 영업이냐고 물었더니 9시반이라고 합니다. 제가 들어간 시간이 9시 33분이었습니다. 텅빈 가게를 기념으로 아래 사진을 찍은 시각이 기록을 보니 9시 35분이네요.

그리고 특으로 시켜서 후추 듬뿍, 파 듬뿍 넣고 살짝 소금간을 맞추어놓고 위의 사진을 찍은 시각이 9시 38분 입니다. 옆에 있는 유리잔은 이집의 '냉수한컵', 그러니까 소주입니다. 


일찍 일어나 적당히 활동을 하여 알맞게 허기가 진 아침에, 곰탕을 시켜서 잘 익은 내장과 고기를 양념간장에 살짝 찍어서 안주해가며 소주를 홀짝홀짝 들이키고 중간중간에 국물을 후루룩 마시는 느낌은 정말 형용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즐겁습니다. 특히 소주 반 병이면 양이 좀 모자라는데 그걸 참아가며 아껴먹노라면 한모금 한모금이 너무 귀하게 느껴집니다. 몰랐는데 이집은 국물 리필이 되더군요! 그래서 국물을 더 시키고, 그러다보니 공기밥도 하나더, 그리고 김치도 하나더 이렇게 시켜서 싹싹 먹고나서 찍은 사진이 아래입니다. 찍은 시각을 보니 10시 정각입니다. 9시 45분쯤 해서 4인 가족이 들어오고 5분 있다가 또 혼자오신 손님이 있어, 세 테이블에서 서로 흘깃흘깃 보면서 묘한 연대감을 느끼며 식사를 하였습니다. 



행복하게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나와서 보니 코엑스에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늘 바글바글하던 곳이 이럴 때도 있구나 싶어서 한장 찍었습니다. 아래 사진입니다. 



그런데 볼려고 했던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를 메가박스에선 안하더군요. 그것말고는 마땅히 볼 영화가 없었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는 이미 보았거나 시간이 안맞았습니다. 그 전날 토요일 쥬스하고 내기를 해서 졌습니다. 

쥬: 아빠, 새뮤얼 잭슨 나오는 영화 봤어요?
술: 응, 킬러의 암살자인가 하는 영화? 
쥬: 보디가드가 제목에 들어가던데?
술: 보디가드의 암살자였나?
쥬: (스마트폰을 뒤적이더니) 킬러의 보디가드네요. 원제는 The Hitman's Bodyguard 구요.
술: 그거 라이언 고슬링 나오지?
쥬: 안나오는데?
술: 아냐, 새뮤얼 잭슨하고 라이언 고슬링하고 둘이 나와. 
쥬: 절대로 안나온다니까? 내기할까? 얼마 걸래요?
술: 오마넌
쥬: 콜! (금방 뒤지더니 스마트폰을 내보이며) 이거 봐요. 아니잖아.
술: 아, 라이언 레이놀즈. 맞다. 라이언 고슬링이나 라이언 레이놀즈나 ㅋㅋㅋ
쥬: 무슨 말씀을.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지.

라이언 고슬링을 좋아하는 쥬스에게 둘을 놓고 그거나 그거나라고 하면 분개할 만도 하겠지요. 특히 랄라랜드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는 그이기에. 괜한 내기에서 져서 뻘쭘해진 밥과술은 슬그머니 억지를 씁니다.

술: 야, 둘 다 라이언이니까 절반은 맞은거잖아. 이만오천원만 하자. 
쥬: 그런게 어딨어요. 아예 내기를 안했으면 모를까 졌으면 깨끗하게 진거지. 근데 아빠는 그 영화 볼 거에요?
술: 글쎄다. 그냥 시간죽이기에는 적당할 것 같은데 꼭 보고 싶은 마음은 없네. 너는?
쥬: 저도요. 누군가가 같이 보자고 강력하게 권한다면 볼 정도? 

이야기는 다시 일요일 코엑스 영화관 앞으로 돌아옵니다. 마침 딱 맞춰 볼 수 있으면 볼까, 다른 극장을 찾아가서까지 볼 정도의 관심 대상은 아니었던 영화라 킬러의 보디가드는 관람목록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대신 간만에 때나 시원하게 밀어야지 싶어서 사우나에 가서 목욕을 하기로 합니다. 때를 밀고 사우나 휴게실에서 북핵관련 뉴스를 보고 있는데 쥬스한테서 시험이 끝나고 친구하고 점심먹고 이제 집에 들어가려고 한다는 전화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만나기로 합니다. 쥬스를 신사역 근처에서 픽업해서 집으로 가는데 말을 꺼냅니다.

쥬: 단게 먹고 싶어요. 페이스츄리말고 케잌같은거.
술: 그래 나도 땡긴다. 다시 되돌아 가기도 그렇고 동네 파바라도 들릴까?
쥬: 그것보단 조금 더 윗 레벨로 ㅋㅋㅋ 거긴 케잌은 별로잖아요. 

강남역, 서래마을도 돌아가야 하니 머네, 왜 우리동네엔 맛있는 케잌집이 없을까, 없는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뭐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쥬스가 갑자기 신호대기중에 옆을 보더니 손짓을 합니다.

쥬: 아, 바로 옆에 이집 케잌 그런대로 괜찮아요.
술: 어디 어디
쥬: 빌리엔젤이라고 체인점인데 인기인 것 같애요. 한번 먹어봤는데 그런대로 괜찮았어요.

얼른 차를 돌려 그 집 앞에 잠시 정차를 합니다. 쥬스에게 오만원짜리 돈을 건넵니다. 

술: 참 이 돈 받아라. 
쥬: 이거로 사오라고요?
술: 아니, 이거 어제 내기에서 진 돈 주는 거야. 
쥬: 꼭 지금...그럼 내가 아빠한테 케잌 사는거에요.
술: ㅎㅎㅎ 잘먹을께

이런 대화뒤에 사온게 치즈케잌, 캐러멜케잌, 레드벨벳케잌입니다. 뭐가 있는지 궁금해져서 주차를 할 수 없는 곳인데  깜빡이를 켜고 얼른 따라 들어가서 캐러멜과 치즈는 술이 고른 겁니다. 



맛있는 건 좋은데 칼로리가 엄청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과식을 했으니까요. 지난 8월달에 먹은 사진들을 훑어보았습니다. 남들에게 보이기 민망할 정도로 잘 먹고 살았더군요. 한달동안 몸에게 못할 짓을 했구나, 미안한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습니다. 체중이 늘지 않는게 이상하지. 오늘부터 다이엇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빡세게는 아니고, 살살 양을 줄이기로 하였지요. 남들 먹는만큼 끼마다 일인분 정량만 먹어도 살이 찌지않을텐데, 하고 반성을 하고 새출발한 9월의 첫째 월요일이었습니다.
 

나으 음식일기 (25): 아이스커피, 냉커피의 추억 나의 반백년 음식일기


붉은 빛이 도는 구리로 만든 머그에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혔다. 내 기억으로는 생애 처음 먹어보는 '아이스커피'였다. 그녀는 내게 영어로 이 집은 ice coffee가 맛있다고 추천을 했고 내가 좋다고 하자 '아이스 코오히'라고 주문을 하였다. 커피와 함께 소꿉장같이 앙증맞은 용기에 진한 액체가 담겨나왔다. 그녀는 그걸 '크림'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녀가 크림용기를 들어 커피위에 원을 그리듯 따라 부었다. 나도 그녀가 하는 대로 하였다. 진한 커피 위에 한참 자취를 남긴채 천천히 가라앉는 크림을 바라보았다. 크림용기보다는 조금 더 큰 유리용기에 담긴 투명한 액체는 시럽이라고 했다. 눈대중으로 그녀가 넣는만큼 나도 넣었다. 맞은 편의 그녀가 하는대로 나도 가늘고 긴 스푼으로 천천히 저은 뒤 스트로를 꼽아 맛을 보았다. 

차가운 커피가 이렇게 진하고 맛이 좋을 수가 있다니! 쌉쌀한 맛이 두드러지는 커피의 맛이 입안에서 목으로 넘어가면, 살짝 살짝 느껴지는 달콤함과 고소함이 여운으로 남았다. 8월 달의 고베는 더웠다. 그 더운 날씨에 한참을 걸은 뒤라 얼음이 떠있는 아이스커피의 맛이 더욱 좋았는지도 모른다. 맞은 편에 앉아있는 그녀의 귀여운 표정을 보며 마시는 커피라 더욱 맛이 좋았던 거라는 사실은 그때는 몰랐다. - 198X년 8월 X일 일본, 고베

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앞에서 만나~ 홍차와 냉커피를 마시며 매일 똑같은 노래를 듣다가 온다네~ 
2010년이 넘어서 나온 노래에 냉커피란 단어가 나오는게 신기했다. 내게 냉커피란 전혀 다른 음료로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2010년이 넘어서라면 아마도 아이스커피를 노랫말 운율을 맞추느라 냉커피라고 부른게 아닐까 싶다. 내가 '아이스커피를 생애 처음 먹었다'고 한 것에 대해 좀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한국에도 '냉커피'라는 이름의 음료가 다방 메뉴에 들어있었다. 인스턴트 커피를 찬물에 타고 설탕을 넣어 달게 만든 뒤에 얼음을 넣어서 내는 음료였다. 여름이면 가정에서도 양푼 같은 커다란 그릇에 커피가루를 풀고 얼음을 넣어 어른에서 아이까지 같이 나눠마시곤 했던 것 같다. 냉커피는 커피에 설탕을 탔다기 보다는 설탕물에 커피가루를 풀었다고 하는게 더 어울릴 만큼 달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아이들도 즐겨 마셨겠지.  

맥스웰 하우스 고운가루 커피보다 나중에 나온 초이스였던가 과립형 커피가 찬물에 잘 풀려 인기가 있었다. 한참 뒤에 나온 맥심 같은 동결건조 커피는 아예 다방에서 일반 커피보다 값을 더 받기도 하였다. 담배꽁초를 넣어 만들어서 '꽁피'라는 불명예 스러운 별명이 붇기도 했던 다방커피의 맛은 정말이지 형편없는 곳은 너무나 질이 낮았기에 인스턴트가 더 비싸게 팔리는 기현상이 벌어진게 삼십여년전까지 한국의 커피문화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이스 커피'란 말도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어로, 미국에서는 iced coffee라고 불렸는데 흥미로운 건 이렇게 커피를 차게해서 마시는 문화자체가 구미에서는 뒤늦게 생겨났다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미국에서 사람들이 찬 커피를 마시는 건 스타벅스가 유행한 뒤였다. 그러니까 소수의 사람들이 차게해서 마시는 경우는 있었을지 모르나 대중적으로 아이스커피가 퍼진 건 아마도 일본에서 가지 않았을까 짐작이 간다. 중국차를, 특히 우롱차를 중국사람들은 뜨겁게 우려내어 마시는 줄 만 알았지 그걸 차게 해서 마신다는 건 생각을 못할 때에 일본사람들이 그걸 상품화한게 30여년 전이고 이젠 중국의 편의점에서도 여러가지 차가운 녹차, 홍차, 우롱차를 파니 여기에서도 문화라는게 돌고 돈다는 실감을 하게된다. 

위의 사진은 30여년전에 찍은게 아니라 그 때 기억에 남은 아이스커피와 가장 흡사한 이미지를 구글에서 찾아 올린 것이다. 그 때는 카메라의 필름값이나 현상 인화 요금이 만만치 않아서 음식 따위를 카메라에 찍는다는 생각은 아무도 못하였던 시절이었다. 그해 여름 처음으로 가 본 일본은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홍콩에 갈 기회를 어렵게 얻어서 나간 김에 작정을 하고 귀국길에 들린 일본이었는데 외국 어디라도 처음 가보는 곳은 다 마찬가지였겠지만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여러가지로 한국과 대단히 비슷하면서도 또 그 속에서 너무 다른게 대단히 특이하게 다가왔다. 

그 때는 여권을 만드는게 여간 어렵지않았고, 힘들게 받아봐야 단수여서 여행을 마치면 무효가 되었다. 국내 몇대 수출기업의 무슨 직급이상, 이런 식으로 복수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자격에 제한이 많았던 시절이다. 지금처럼 여권 첫째 페이지에 '이 여권의 소지자가 여행하는 모든 나라에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도록 편의를 베풀어주시고...'라고 씌여있는게 아니라 '이 여권의 소지자는 아래 국가를 여행할 수 있고...'라고 적혀 있었고 그 다음에 목적지와 경유지가 찍힌 페이지가 있었다. 여권이란게 자국민의 여행을 여러가지로 제한하는 문서였던 시절이다. 부부가 동시 여행을 하는 것도 제한을 두어서. 예컨대 남편이 공무원이고 부인이 대학교수 이런 경우에 한쪽이 해외를 나가면 다른 한쪽은 나갈 수가 없고 그랬다. 한국에서 탈 수 있는 비행노선이 다양하지 않아서였는지 일본을 경유지로 추가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일주일 동안 일본구경을 하기로 하고 오사카 3일, 도쿄 4일 이렇게 일정에 넣어 계획을 짰다. 그리고 오사카에 도착한 다음날 혼자 고베 구경을 갔다.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이, 일본에 가면 비지니스 호텔이 싸다는 이야기만 듣고 무작정 오사카공항에 내려 우연히 찾은게 우메다오에스(梅田OS) 호텔이라는 곳이었다. 삼십년도 넘은 과거의 일이라 당연한 일이기도 한데 그때는 일본에서 정말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호텔도 일류호텔이 아니면 전혀 답답이었다. 하긴 한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그 때 어찌어찌 영어를 조금하는 사람을 만나 얻어낸 정보가 오사카에서 제한 된 시간에 가볼수 있는 곳이 세군데가 있는데 그게 나라, 교토, 고베라는 정도였다. 불교에 관심이 많으면 나라, 일본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교토, 라고 했다. 고베는? 이라고 묻자 설명이 어려웠는지 한참 머뭇거리다가 나온 말이 'just pretty'였다. 그래서 고베에 가보기로 하였다. 나라나 교토는 나중에 천천히 볼 기회가 있겠지, 하고 미루어두고.

고베역에서 내려 모토마치라는 곳을 가니 여대생들이 열몇명이 모여 치어리더 복장을 하고 춤을 추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받아보니 '델몬테 케첩' 샘플이었다. 귀엽게 생긴 여대생들이 상냥하게 웃음을 띄며 뭐라고 말을 건네는데 내가 알아들을 리가 없고 그냥 눈치를 보니 새로나온 이케첩이 맛이 좋으니 애용해 주세요, 뭐 이런 거겠지 넘겨짚었다. 신기했던 건 대학생들이 다 하나같이 메이크업 화장을 했던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여대생들은 거의가 화장을 하지 않았다. 로션같은 것만 바르고 다녔었다. 

남녀공학은 더 그랬고 여대를 다니는 경우에 3학년 말쯤 되어서야 화장을 했던 것 같다. 내 기억에 여학생들은 대개 2학년 가을쯤 되어서 반짝이는 립글로스 정도나 바르고 축제때나 살짝 살짝 화장을 하다가 4학년이 되면 선도 보러 다니고 하니까 화장을 하는 빈도가 늘었던게 아닌가 기억하고 있다. 그런 문화에서 살다가 파운데이션에 루즈에 눈화장까지 한 여대생들을 무리로 만나니까 눈에 신기하게 들어오지 않을리가 없었다. 

이게 아르바이트냐, 너희는 뭐하는 분들이냐, 이렇게 하면 얼마를 받는지 실례가 되지않는다면 알려줄 수 있느냐, 궁금한 사항을 줄줄이 영어로 물어보았다. 열몇명이 호기심에 모여서 나를 쳐다보다가 자기들 끼리 구수회의를 하더니 한사람을 골라 그의 등을 내쪽으로 떠밀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착한 일을 했는지 진짜로 열몇명 가운데 제일 예쁘게 생긴 이가 수줍어하며 다가왔다. 그의 이름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는데 편의상 노부코라고 하자. 노부코는 영문과를 다닌다고 했고,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일년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나와 그는 영어로 자기 소개를 했고 그는 내게 그날의 아르바이트 내용, 자신들이 속해있는 대학, 전공등을 설명해 주었다. 초롱초롱 빛나는 수십개의 눈동자가 우리 둘의 표정을 번갈아 보면서 대화를 관찰하였다. 

나는 노부코에게 일본이 처음이고 고베도 물론 처음인데 안내를 해줄수 없겠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 아르바이트가 4시에 끝나니까 모토마치역 동쪽 개찰구에서 보자고 했다. 나는 한국식으로 어디 커피숍 같은데 없냐고 했더니 만나서 맛있는 커피숍으로 안내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마고 대답은 하였지만 맛있는 커피숍이라는 말이 생경했다. 커피를 맛있어서 어디를 찾아가는게 아니라 장소가 편해서, 분위기가 좋아서, 다방을 고르던 문화에서 살다가 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딱 제시간이 되자 나타났다. 불과 몇시간 전에 알게 된 사이였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던 일본 땅에서 약속을 하고, 누군가를 기다려서 만난다는 사실만으로 낯익은 그의 웃는 얼굴이 사람속에서 드러나자 환하게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예쁘기도 했고. 아무튼 그는 내게 고베는 이진칸(異人館)이라는 곳이 유명하다며 그리 안내를 하였다. 다양한 서양식 건물들이 몰려있는 곳이었다. 개화기에 지어진 곳이 많다고 그가 설명해 주었다. 그러다 한군데 그가 안내를 해주어 들어간 곳이 맨 위에 이야기한 아이스커피를 마신 집이었다.  

대단히 고풍스러운 건물이었다. 십년이 흐르고, 이십년이 흐르고, 그 사이 고베를 가서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그 커피숍을 찾아보곤 했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넓고 커다란 유리창으로 햇빛이 들어와 실내를 불그레하게 물들였는데 그게 스테인드 글래스를 통과한 빛이 었다고 한동안 믿고 있었다. 나중에 기억이란게 정확하지 못한 적도 많다는 걸 알고는 아마 오후 늦게 석양빛이 들어와서 그런거였나 보다고 기억을 수정하였다. 오늘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사진은 내가 찍은게 하나도 없다. 전부 구글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검색하여 찾은 것이다. 이럴 때는 그림을 잘그리는 화가들이  부럽다. 수채화든 유화든 머릿속의 추억을 붓으로 재현해 낼 수가 있으니 말이다. 아래 사진과도 비슷한 느낌이 드는 카페였다. 그 아래 사진도 비슷한 이미지가 있는데 여기는 유럽계 은행이 있던 자리를 개조한 커피숍이라고 설명이 붙어있다. 



아래는 당시 이진칸 거리를 설명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적당히 찾은 사진을 앱으로 변형하여 본 것이다.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끝낼 동안 둘러본 곳 가운데 하나가 아래 차이나타운이었다.


아래는 고베 이진칸에 있는 스타벅스라고 한다. 스타벅스는 유럽의 오래된 도시에도 그렇고, 각나라의 문화에 잘 녹아들어간 점포를 이곳저곳에 내고는 한다. 그 세련된 상술이 때로는 은근히 부럽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해서 노부코와의 고베에서의 짧은 데이트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게 되었고, 몇 년뒤에 도쿄로 유학을 가서는 참으로 많은 커피숍을 드나들며 가지가지 사연과 인연을 기억에 간직하게 된다. 

어제, 그렇게 덥던 복날에도 마시지 않던 아이스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달포전에 후배의 친구의 아들인가쯤 되는 젊은 청년가 찾아와서 일과 관련하여 도움을 준 적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인맥을 소개하여 주는 것이니 내게는 큰 일은 아니지만 그에게는 꽤나 고마운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카카오톡으로 아이스커피 쿠폰을 선물하였다. 붙임성 좋은 그가 어제 다시 안부인사를 보내왔기에 확인하다가 쿠폰이 그대로 있는 걸 보았다. 보내준 이의 성의를 봐서라도 잊어버리기 전에 사용해야지 하고 동료들과 함께 마셨다. 평소 잘 안마시는 아이스커피를 마시노라니 아이스커피와 관련한 옛날 이런 저런 생각이 나서 적어보았다. 


27그릇; 7월 한달 먹은 국수이야기 밥과술네 집이야기


방학도 없이 학원이네 도서관이네 무더운 여름날 매일 나가던 쥬스가 문득 얼마전 밥을 먹다말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쥬: 요새 완전히 푹 빠져서 일주일에 네번씩이나 먹는 국수가 있어요. 유포면이라고
술: 어디서 먹는데?
쥬: 학교앞에 중국사람이 하는 중국음식점이 생겨서 마라샹궈(麻辣香锅)먹으러 들어갔다가 우연히 시켜서 먹고 알게되었어요
술: 맛이 좋았어?
쥬: 충격 그자체였어요. 너무 맛이 좋아서

쥬스가 밥먹다 무심코 꺼낸 얘기에 역시 핏줄은 못속이나보다 싶었습니다. 이 매운 맛은 밥과술도 대단히 좋아하는 맛이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술: 이거지?
쥬: 맞아요! 와, 이건 더 맛있겠네. 국수가 넙적한게. 내가 먹는 건 그냥 보통 면발.
술: 이건 요우포처미앤(油泼扯面)이라고 하는 거야. 산시(陕西)성 음식으로 뺭뺭면의 일종이지. 요우포는 조리법의 일종이고 처미앤은 면발의 종류고.
쥬: 유포면, 아빠도 좋아해요?
술: 응, 좋아하지.
쥬: 전 화쟈오(花椒)기름하고 고추기름, 흑초 팍팍 더 쳐서 먹어요.

위의 사진이 나왔을 때의 모습이고 아래가 그걸 비볐을 때의 모습입니다. 이 음식은 화쟈오의 매운 맛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도 딱 맞는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추와 마늘의 매운 맛을 정복한 한국인이 화쟈오 계열의 매운맛에도 익숙해진다면 매운 맛에 관한한 천하무적이 되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랬다고 누가 상주는 건 아니겠지만 암튼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이 사진을 찍은 날짜는 7월 1일, 장소는 베이징 이었습니다. 그렇구나 7월은 첫날부터 국수를 먹었구나(사실은 다른 요리도 잔뜩 먹고 마지막에 먹은 거지만), 한달동안 또 무슨 국수를 먹었나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27그릇을 먹었더군요. 찌개에 넣은 라면사리까지 치면 그렇습니다. 블로그가 뜸해서 그냥 재미삼아, 기록삼아 올려봅니다. 


위는 중국에서 돌아와 7월 3일, 강남에  있는 어느 고기집에서 먹은 비빔냉면입니다. 냉면은 맛있게 먹었는데 같이 먹은 고기가 좀 이상했는지 속이 살짝 탈이 났습니다. 혹시해서 전화해보니 같이 먹은 두사람 모두 속이 안좋았다고 합니다.



위는 7월 6일 요즈음 자주가는 부산아지매국밥에서 시켜먹은 밀면입니다. 이집은 체인점인듯 한데 꽤나 깔끔해서 순대도 누리지않고 돼지국밥도 맛이 좋습니다. 24시간 하는 곳이라 저는 집에 들어가기 전 늦은 밤에 순대하고 국밥 안주삼아 시켜 소주 마시는 재미를 쏠쏠하게 보곤 하는데 끝판에 괜히 꼭 밀면을 시켜먹곤하는게 좀 오버입니다. 그날 필받는 대로 물하고 비빔을 번갈아 가면서요.



7월 7일,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입니다. 그 날은 둘을 길게 이어준다는 뜻으로 국수를... 은 개뻥이고, 점심에 해장삼아 콩나물 라면을 먹었습니다. 북어국이 없으니 대신 해장용으로 먹곤 하는게 라면인데 콩나물이 들어간 라면은 해장에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과학적인 근거와 플라세보 효과가 상승작용을 하여 땀 흘리고 먹고나면 속이 다 시원합니다.



위는 7월 8일, 토요일입니다. 아침 느지막이 일어난 부녀는 무얼 먹을까 의견조율을 합니다. 버거 시켜먹을까. 아니 그건 안땡겨. 뭐 만들어 먹을까. 아니요, 지금은 그럴 분위기 아니에요, 할 일도 많고. 냉면, 막국수, 설렁탕 이것저것 머리속에서 주문을 해보다 취소를 거듭하는데 쥬스가 갑자기 마포 진미식당 게장을 생각해 냅니다. 대낮부터? 근데 거기 일요일 안해. 그러다가 생각이나서 아, 마포에 수타짜장면 유명한 곳이 있단다. 그러자 쥬스도 이내 콜! 하고 합의를 봅니다. 논현동 릿츠칼튼 건너편에 있던 수타짜장면집이 없어져서 몇년째 섭섭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쉬는 날이지만 차를 몰고 마포까지 갑니다. 면발은 확실히 맛이 좋았습니다. 옛날 짜장면을 시켰는데 우리 입맛에는 별로여서 간짜장을 다시 시켰습니다. 맛이 좋았습니다. 짬뽕은 간짜장만은 못했지만 수타면발의 식감이 반가워 맛있게 먹고 나왔습니다. 



7월 9일, 일요일인데도 1박3일이라는 빡센 여정으로 홍콩출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 여정은 도착한 날 반나절, 그다음날 하루 이렇게 일보고 심야에 귀국편 비행기를 타는 일정입니다. 놀러가는 경우라면 짧은 기간에 즐길 수 있는 알찬 여정이지만, 일로 가면 도착한 날 새벽에 시내로 들어오면 얼추 출근시간이라 잘못하면 피로가 며칠가는 코스입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는 거 절제해야 하고 잠 잘자야 합니다. 위는 도착한 날 센트럴에 있는 용기(Yung Kee:鏞記)에서 먹은 쌀국수볶음(乾炒牛河)입니다. 홍콩에 가시는 분께는 이집의 구운거위(燒鵝)와 피단(皮蛋) 을 강추합니다. 차씨우(차싸오)도 대단히 맛있지만 이건 가성비가 뛰어난 집들이 다른데에도 많습니다.
 


다음날 7월 10일, 점심은 코스웨이베이에 있는 호홍게이(何洪記)에서 완탄면을 먹었습니다. 홍콩식을 따르자면 살짝 쌉쌀한 맛에 딱딱한 식감의 면이 퍼지기 전에 얼른 먹는게 제대로라서 완탄은 밑에 깔아나옵니다. 면을 얼른 먹고 국물을 홀홀 마시고 탱글탱글한 새우 완탄을 나중에 먹는게 별미입니다. 가성비 뛰어납니다. 강추입니다. 홍콩의 짧은 일정에 시간이 없으신 분은 도착해서 시내들어가기 전에 공항에서 드셔도 됩니다. 그것도 바쁘신 분은 귀국시 출국사열 마치고 안에 들어가시면 젱따우(正斗)라고 있는데 이집도 같은 메뉴에 맛이 좋습니다. 두집이 먼 친척관계였던가 선대에서 동업자였다던가 뭐 그렇다고 합니다.



위는 같은날인 10일 저녁, 손님이 안내하여 센트럴에 있는 Luk Yu(陸羽茶室)에서 새우쌀국수 입니다. 이곳은 90년 가까이 된 딤섬으로 유명한 집인데 종업원들 평균연령이 70은 확실히 넘었고, 젊은이들 몇명 빼고 계산하면 연령대는 더 올라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전통이 있는만큼 그 이름값을 하여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강추는 아닙니다. 



7월 11일 서울에 돌아와 점심에 라볶이를 먹었습니다. 회사부근에 있는 라면집인데 들어있는 스프를 조금만 사용하고 멸치등으로 국물을 내어 만듭니다. 점심으로 라볶이를 시켜서 먹고 국물이 남으면 주먹밥을 말거나, 비비거나, 찍어서 먹으면 별미입니다. 
 


서울에서 하루 일보고 7월 12일 다시 중국으로 갔습니다. 베이징에서 중국식 짜장면을 코스 마지막에 시켜서 먹었습니다. 여기까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원래부터가 하루자고 다음날 푸저우로 가서 일을 본 뒤 하룻밤 자고 14일 한국으로 오는 직항편이 없어서 상하이를 거쳐 귀국하는 지옥행 코스의 출장이었습니다. 이틀동안 비행기를 네번 탔는데 세번이나 연발이어서 기내에서 5시간 대기, 3시간 대기 그리고 탑승구에서 2시간 대기 등 정말 지칠대로 지친 여정이었습니다. 인천공항에 내린게 밤 11시, 집에 들어가니 날짜는 넘어서 15일이 되었고 시간은 1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비행기 연발로 지친 심신을 달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15일 오전 1시 넘어 쥬스를 징발해서 집근처 새마을 식당을 찾았습니다. 효녀 쥬스는 부친의 눈만 뜰 수 있게 된다면, 아니 피로가 조금이라도 풀릴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따라나서 주었습니다. 차돌박이랑 돼지불고기를 시켜서 소주를 꿀떡꿀떡 마셨는데 그전에 답답한 속도 풀겸 살얼음이 낀 김치말이국수를 시켜서 절반정도 마시고 나니 진짜로 기분이 좀 나아졌습니다. 냉수먹고 속차린다는 속담이 들어맞는 것 같았습니다.   



이날 저녁, 그러니까 15일은 외국에서 손님이 와서 논현동 본가로 가서 우삼겹을 먹었습니다. 한동안 안가서 몰랐는데 점포가 먹자골목에서 강남대로 큰 길가로 나왔더군요. 이 집은 한국에 좀 다녀본 외국사람들에겐 강남 비싼 갈비집보다 안내를 하면 더 호평을 받으니 좋습니다. 쌈야채가 푸짐해서 보기가 좋고 해물 된장찌개도 인기가 좋습니다. 이번에 가보니 커다란 돼지갈비 메뉴도 있는데 그것도 괜찮았습니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하루에 백종원씨네 가게에서 두번이나 팔아준 셈입니다. 안그래도 잘 나가는 분인데... 위의 사진은 고기 시켜먹고 나중에 추가한 비냉입니다.



7월 16일 일요일 오후 쥬스가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했고, 말이 나온 김에 강남에 생겼다는, 소문만 듣고 가보지는 못했던 고에몬을 찾아갔습니다. 옛날에 일본에서 자주 가던 곳이라 맛도 궁금했고요. 웬걸 갔더니 한시간반 정도 웨이팅이라고 해서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부근을 방황하며 떡볶이 이런걸로 주린 배를 채우다가 오레노라는 일본에서 들어온 체인점이 눈에 띄길래 들어가 시킨게 위의 사진입니다. 



17, 18 건너 뛰고 19일 저녁 이화수 전통육개장이라는 곳에서 육개장 칼국수를 시켜 먹었습니다. 밥대신 국수를 먹으면 어떨까 호기심에 시켜먹어보았는데 기분탓인지 밀가루 국수로 국물이 좀 탁해진 것도 같고, 제 입맛에는 역시 밥말아먹는 육개장이 더 좋은 것 같았습니다. 육개장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요즈음 여기저기 육개장 전문점이 생겨서 반갑습니다. 



7월 20일은 치과 치료가 있는 날이어서 회사에 늦게 나간 날입니다. 점심에 집에서 얼마전 손님이 가져다 준 냉동 쯔케멘을 꺼내어 만들어 먹었습니다. 쥬스가 김밥을 사와서 같이 먹었습니다. 
 

20일 저녁은 양꼬치를 먹었는데 조금 덜 먹어보겠다고 주식을 안먹은게 패착이었나 봅니다. 밤 늦게 맹렬하게 배가 고파서 국밥집에 가서 돼지국밥에 밀면을 또 먹었습니다. 



21일은 일정표도 비어있고 뭘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사진을 보니 저녁은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었군요. 요새 대세라는 갓뚜기 진라면 매운맛입니다. 저는 혼자서 농심하고 오뚜기를 번갈아 먹는데 라면 너무 먹지말라는 커피여사의 지침도 있고 하여 다섯개들이 보다는 편의점 낱개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청개구리도 아닌데, 珈琲女史之即席食品過剰摂取抑制乃至防止訓令(커피여사의즉석식품과잉섭취억제내지방지훈령)을 상기한 바로 다음날, 그러니까 22일 토요일 콩국수라면을 사다 끓여 먹습니다. 이유는 '신상이니까 먹어본다' 입니다. 짜장면 나왔을때, 짬뽕 나왔을때, 비빔면 나왔을때도 그랬고 다 한번씩은 사다 먹어보거든요. 그리고 맛있으면 처음 먹어서 그런건지 진짜로 맛있는 건지 한 번 더먹어보고... 뭐 그럽니다. 어쨌거나 이 콩국수는 면발은 좋은데 그냥 콩국에만 말아먹으려니 뭔가 많이 섭섭했습니다. 오이 썰어넣고 그러면 좋았겠지만 그러면 인스턴트면의 매력인 자체완성도가 떨어지는 것도 같고요. 하기야 라면도 반드시 파넣고 계란넣고 그러니까 오이를 넣는 수고정도는 마다하지 말아야 겠네요. 제겐 소문만큼 맛있게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22일 저녁은 그럴 사정이 있어서 방배동에 있는 차이797이라는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과 짬뽕을 먹습니다. 요즘 하도 짜장 짬뽕 맛이 없는데가 많아서 이만하면 됐지 싶습니다. 



어제 먹은 콩국수라면의 아쉬움에 촉발된 탓인지 콩국수 게이지가 마구 올라가서 23일 일요일 점심엔 시청앞 진주회관으로 가서 콩국수를 먹습니다. 면발은 개인적으론 꼭 이렇게 찰져야만 하나 싶기도 했지만 대중의 선택은 언제나 옳은 법이라 믿고 맛있게 먹었고, 콩국까지 다 마시고 나왔습니다. 대만족입니다.



24~26일 출장다녀오고, 27일 중국집에서 친한 후배하고 양장피, 군만두 안주해서 고량주를 마셨습니다. 마지막에 마무리로 저는 짬뽕 후배는 짜장을 각각 먹었습니다. 친한 후배이지만 체면도 있고, 역시 식구하고는 달라서 도중에 둘 다 맛보는  짬짜교환 신공을 시전할 수가 없어 조금은 섭섭하였습니다. 



28일은 쥬스의 친한 친구가 놀러 왔다고 저녁을 사달라고 해서 봉피양에 갔습니다. 언제나 가면 만족하는 냉면을 내는 곳을 들라면 제게는 봉피양과 우래옥이 우선 손가락에 꼽힙니다. 



7월 29일 정말로 오랜만에 서소문 장호왕곱창 김치찌개집에 갔습니다. 몇년만에 갔는지 모르겠는데 옛날 맛있던 콩밥이 흑미밥으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그걸 더 선호하는 손님들도 많겠지만 전 옛날 콩밥이 더 좋았습니다. 김치찌개는 맛이 여전해야 마땅할텐데 제 입맛에는 살짝 옛날만 못한 것 같았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미각이 떨어진 건가 좀 걱정도 되고 했습니다. 그래도 역시 다른 어디보다도 맛이 좋아서 만족하게 가게문을 나섰습니다. 
 


30일 서초동 샘밭막국수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저는 막국수가 먹고 싶었고 지금 한국에 와있는 왕막걸리팬 미국친구는 전하고 도토리묵 안주해서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장소를 샘밭으로 정했습니다. 제가 착각을 했는지 메뉴에 도토리묵은 없었습니다. 대신 그 친구가 막국수를 너무 맛있게 먹어서 저도 좋았습니다. 그 친구는 아마도 막걸리에 소믈리에 자격증을 준다면 웬만한 한국사람 제치고 먼저 딸만큼 이제 막걸리 내공이 깊어졌습니다. 



7월의 마지막날인 31일 놀러왔던 쥬스의 친구가 돌아가기 전에 진짬뽕이 먹고싶다고 해서 쥬스가 끓인 겁니다. 만드는 김에 내것도 하고 숟가락, 아니 젓가락을 한벌 더 얹어서 저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의식한 건 아닌데 돌이켜보니 꽤나 국수음식을 먹고 사는 것 같습니다. 역시 아시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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