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천에서 마신 푸얼차(普洱茶) (2) 중국이야기


시장구경을 하면 틀림없이 엔돌핀인지 도파민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뭔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 호르몬이 내 몸안에 마구 흐르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늘 가보면 설레고 흥이 납니다. 그리고 아시아든 유럽이든 시장은 왜 이다지도 비슷한지요. 사람사는게 다 같구나, 실감을 하면서 그러면서도 또 그속에서 색다른 상품을 찾아내기도 하고 팔고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을 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위의 사진은 심천으로 들어오기 전 날 홍콩에서 지나친 과일 도매상의 사진입니다. 침사쪼이에 이어져있는 야우마테이(油麻地)에는 아주 오래된 과일 도매시장이 있습니다. 모든 도매시장이 그렇듯 커다란 시장의 입구쯤에는 소매를 하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보면서 아, 들어가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일행이 있어서 그냥 사진만 몇장 찍고 아쉽게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비가 촉촉히 내리는 정오가 지난 시각 활발한 도매는 없고 드문드문 소매 고객들이 보이는 정도 입니다.


지나다 보니 과일 사러 온 김에 사라고 야채를 내놓고 파는 곳도 눈에 띄었습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그냥 있는게 아닌 것이, 보니까 이런 저런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싶어졌습니다. 특히 먹음직스러운 생강 마늘을 보니 잠자고 있던 '요리심'이 객지에서도 끓어오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홍콩 시장에서 남은 아쉬움이 마음 한켠에 숨어있다 심천에서 갑자기 청과물 도매시장을 구경가보고 싶게 만든건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넷으로 청과물 도매시장을 검색해서 이런저런 자료를 훑어보는데 청과물 도매하는 사람은 인터넷 안하나 싶을 정도로 시원한 답이 잘 안나옵니다.  좀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가고 싶어서 호텔 컨시어지로 갔습니다. 두 세명이 컨시어지 카운터 뒤에서 서있었습니다. 

청과물 도매시장을 가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라고 묻자, 청과물 도매요? 라고 되묻는 호텔 직원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러더니 뒤에 있는 고참쯤 되는 직원한테 '저 청과물 도매시장이 어디 있냐고 물으시는데요'라고 저의 질문을 전달을 합니다. 고참 직원쯤 되는 사람으로부터도, 심천에서 유니콘을 잡으려면 어디로 가나요? 호그와트행 9와 3/4 플랫폼은 지하철 몇호선 어느역에 있나요? 정도의 질문을 던진 손님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받았습니다. 

직원 둘이 뚝딱거리며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제가 찾은 것과 비슷한, 그러나 그만 못한 결과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걸작입니다. '거기 먼데요. 40분 정도 걸리는데요' 오아시스를 벗어나 사막을 건너려는 이에게 사하라의 험난함을 경고하는 듯한 어투였습니다.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일 것인데, 서울의 일류호텔에서 가락동시장이나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고싶다고 물으면 금세 답을 줄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외인부대처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돌아가는 곳이라, 자신이 살고있는 도시에 대한 지식과 상식이 우리의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구나 싶었습니다. 며칠째 심천이라는 도시의 번쩍이는 하드웨어에 약간 기죽어있던 차라 소프트웨어에서 아직은 이런저런 빈틈이 보이는게 오히려 마음이 놓였습니다.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 뒤 호텔을 나와 지하철 역으로 향했습니다. 목적지 부근에 내려보니 지도가 틀렸는지 3킬로 이상 떨어진 거리에 있었습니다. 부근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정류장에 붙여진 간판입니다. 류씨 성가진 분이 운영하는 커피 로스팅학원 광고였습니다. 직함은 '로스팅 마스터(大师;대사부라는 뜻입니다)'입니다. 류사부께서 당신을 찬란하게 빛나는 커피로스팅의 세계로 안내한다는 카피가 적혀있습니다. 겁이 덜컥 났습니다. 시내버스 정류장에 커피 로스팅학원 광고가 붙을 정도로 중국에서 원두커피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모양이다, 전세계 커피값이 또 많이 오르겠구나, 15억 인민이여 제발 커피맛에 눈뜨지 말기를, 이런 이기심이 곁들인 기원을 하며 도매시장을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갔더니 웬일인지 한가했습니다. 크기는 큰데 셔터를 내리고 문을 닫은 집들이 많았습니다. 츠키지 수산시장 처럼 이른 아침에 문열고 일찍 닫나보다, 시간을 잘못 맞춰왔나보다 짐작하며 슬렁슬렁 구경을 하였는데 의욕이 꺼져서 사진다운 사진을 찍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섹션을 가니 차를 도매하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온 김에 차나 조금 사가지고 갈까 싶어 이집 저집 기웃거리는데, 역시 도매상의 포스를 풍기며 나서서 호객을 하거나 관심을 보내는 가게는 없었습니다. 



선입견일 수도 있는데 어딜 가나 도매상이란게 남자들 옷차림이 거칠고 좀 그래서 말붙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중 한 군데를 들여다 보니 중년이라기엔 젊고 아가씨라 그러기엔 나이가 든 여성 둘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스물이 안되어 아직 앳된 표정의 아가씨가 서있는 가게가 있어 그리로 들어갔습니다. '차 사시게?' 말이 짧고 간단합니다. '아니 좀 보려구요' 이쪽의 답도 짧습니다. '그럼 보세요' 또 짧은 답을 건네고는 둘은 하던 말을 계속 합니다. 어린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푸얼차 어떻게 합니까? 그 이가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이건 30위안, 이건 50위안, 그리고 이건 150위안이에요. 

이게 한 근(500그램)에 그렇단 소리겠지 짐작했지만 이 쪽도 아주 아마추어는 아닌 척 하느라 물어서 확인은 안합니다. 이거보다 한단계 위로는 어떤게 있나요? 그러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주인인듯한 여성이 고개를 들어 대답합니다. 260위안짜리가 있어요. 아주 좋은 품질입니다. 좀 마셔봐도 돼요? 아, 그럼요, 여기 앉으세요. 그래서 카운터 대신 놓은 다탁(茶桌)에 저도 앉았습니다. 빠른 말투로 젊은 여성에게 몇가지 차를 가져오라 그럽니다. 저는 가게를 둘러보며 아래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탁 건너편에 앉은 주인인 듯한 분이 묻습니다. 

주인: 얼마나 사시게요?
술: 나는 많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내가 마실 것 조금...
주: 그것도 좋아요. 맛보고 마음에 들면 사세요.

카운터 옆에 앉은 분이 저를 빤히 들여다보는 것 같더니 묻습니다. 

옆에 앉은 분: 어디서 오셨나요? 
술: 알아 맞춰 보세요.
옆: 홍콩? 
주: 대만 아닌가요?
술: 아닌데요. 한국입니다. 한국사람이에요.

그들이 갑자기 훨씬 더 친절한 태도를 보입니다. (한국사람이라는데 놀라고, 중국어 어떻게 배웠는지 설명하고, 이런 과정은 늘 거치는 프로토콜인데 여기선 생략)

술: 그럼 두 분은 어디 출신이에요?
옆: 난 광동이에요.
주: 난 푸지엔(복건)이에요. 
술: 푸저우요? 
주: 아니 거기서 한시간 정도 떨어진데. 한국 어디에요?
술: 서울입니다. (설명이 길어져서 처음 만난 외국인에게는 보통 서울이라 함. 좀 친해지면 강원도라 얘기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처음에 넣은 푸얼차가 한 순배 돕니다. 젊은 아가씨는 멀리 서서 구경을 하고 우리 셋이 맛을 봅니다. 마침 한가하던 차에 뜻하지 않은 손님이 새로운 얘깃거리를 가져온게 좋았는지 다들 즐거워 합니다. 차를 사고팔려고 시음하는 것 같지 않고 친구끼리 차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차 맛이 좋습니다.



술: 푸얼차 맛이 좋네요.
주: 그럼요. 이게 250원짜리인데 소매가게로 가면 엄청 비싸게 받아요.
술: 공항 면세점에서 150그램 200그램에 파는 건 어떤 건가요?
주: 아이구, 그건 우리 집에서 저 앞에 있는 30원 짜리 정도에요.
옆: (주인에게) 얘, 더 좋은 거 맛보게 해드려.

우리는 계속 업그레이드를 해가며 맛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물었고, 나는 푸얼차가 가짜가 많이 돈다는 거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갑자기 옆자리 여성이 불쑥 물었습니다. 

옆: 근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술: 알아맞춰보세요.
옆: 우리보다 약간 위인거 같은데...
주: 아니야, 우리하고 비슷한 거 아니야? 혹시 우리가 누나?
옆: 아니야. 우리가 약간 동생. 틀려도 화내지 마세요. 50? 
술: 감사합니다~ 그렇게 봐주셔서. 
주: 전 74년 이에요. 이쪽은 71년
술: 아, 호랑이띠, 돼지띠구나. 난 00띠 00년생이에요.

여성이 먼저 민쯩을 까는데 도리가 없지요. 저도 제 나이를 밝혔습니다. 와, 절대 그렇게 안보인다, 젊게 사나보다, 헤헤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애가 어려서 그런가 봐요. 두 분도 미인이시네. 어머 호호호, 깔깔깔, 하하하 차를 놓고 즐거운 대화가 오갑니다. 이런저런 차를 바꿔가며 얘기의 꽃을 피웁니다. 

옆: 난 차파는 일에 종사하는게 아니라, 친구라서 놀러온 거에요. 그 쪽은 무슨 일하세요? 
술: 비지니스.
주: 난 우리 집이 어려서부터 이쪽 일을 했어요. 차를 다루는. 심천에 온지는 10년이 넘었구요. 
옆: 아, 우리 웨이씬(微信; Wechat) 교환해요. 

중국에서는 위챗이 없이는 생활이 힘들정도로 그 위력이 막강합니다. 메신저를 넘어서서 커피값 택시비 결제에서부터 눈 깜빡할 사이에 송금까지 됩니다. 중국에서는 명함도 점점 필요성이 줄어듭니다. QR코드를 스캔하여 순식간에 우리는 친구가 됩니다. 아래 왼쪽은 주인분 장씨의 위챗 프로필사진을 캡쳐한 것이고, 세로는 옆의 친구분 란씨와 주고받은 위챗입니다. 헤어진뒤 호텔에 잘 들어갔냐고 오늘 알게되어 반갑다고, 안부를 전하는 내용입니다.  


술: 근데, 왜 이렇게 한산하지요? 영업시간이 정해져 있나요? 아침 일찍이라든가...
장: 아, 모르고 오셨구나. 여기 다 이사갔어요. 더 큰데로. 지금 남아있는데가 별로 없지요. 우리 가게도 거기 새로 연데는 80평 규모로 아주 커요.
술: 그러면 사장님은 왜 이쪽으로 출근을 하나요? 왔다갔다 합니까?
장: (일순간 결연한 표정이 살짝 비치면서) 보상금 문제가 아직 해결이 안되어서요. (다시 부드러운 얼굴로) 여긴 다 뜨고 나면 철거하고 재개발에 들어간대요. 다음에 오시면 새 가게로 오세요. 여기 명함있으니.

푸얼차(普洱茶)는 운남지방에서 나는 발효차로 원래는 운남 현지말고는 주로 광동사람만 마시던 차였습니다. 홍콩사람들이 얌차라고 하여 딤섬을 먹을 때 계속 마시는게 푸얼차입니다. 발효할 때 생긴 특유의 곰팡이 냄새로 호불호가 갈려서 다른 지방사람들은 안 마셨는데 이 차가 몸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붐이 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이차라고 해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재벌회장님이 보이차만 마신다더라 소문이 붐에 일조를 하였던 것도 같습니다. 중국에 거부, 졸부들이 생겨나며 한정된 재화인 오래된 푸얼차는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수십년된 명품은 그 가격이 우리돈으로 수천만원, 수억을 호가하게 되었습니다. 

값이 오르니 당연히 횡행하는게 가짜 저질 푸얼차입니다. 관목에서 땄느냐, 낮은 교목에서 땄느냐, 햇볕에 건조시켰냐, 온풍기로 말렸냐,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발효가 장기숙성발효이냐 물을 뿌려 열을 가한 속성 발효이냐에 따라 푸얼차는 그 품질과 맛이 천차만별이고 용어도 다양한데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합니다. 저는 푸얼차에 대해서 그다지 잘 모릅니다. 엄청난 가격을 지불하고 고급품을 살 여력도, 의사도 없을 뿐 더러 또 그게 진품인지 아닌지 구별할 안목도 없으니까요. 그냥 누가 좋은 거라고 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마시고, 또 홍콩 식당에 가서 푸얼차가 나오면 주는대로 마십니다. 다만 가까이 한지 수십년이 되어서 그 맛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여러가지를 비교해서 마셔보니 조금씩 좋은 걸 알 것도 같습니다. 끝도 없는 고급 푸얼차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 오늘 이 정도로도 성공입니다. 마음에 드는 한가지를 골랐습니다. 

술: 이 걸로 한 근 주세요. 마지막에 마신거.
장: 네, 250원에 드릴께요. 
술: 따홍파오는 좋은게 있나요?
장: 그럼요. 이거 600원에 파는 건데, 이것도 250원에 드릴테니 맛 보세요.

제가 제법 맛을 안다고 자부하는게 대만의 동띵우롱차(凍頂烏龍茶)입니다. 친구덕에 오랫동안 좋은 걸 마셔와서(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습니다) 눈이 틔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같은 우롱 계열인 따홍파오(大红袍)는 마셔보면 좋은 건 알지요. 원래 우이얜(武夷岩)이니 진쥔메이(金骏眉)니 해서 특정지역의 상품이나 브랜드가 고급으로 팔리는데 그런거 안믿은지 오래 되었습니다. 김옥분 할머니가 매일 밤 혼자서 정성스레 손으로 빚은 손만두에요라고 파는 상품이 전국 수퍼에 널려있다고 비교하면 되려나요. '고급품'이 너무 넘쳐납니다. 그래서 그냥 내 입맛에 맞으면 그게 좋은거다 여기며 되는대로 마십니다. 이집에서 마신 따홍파오는 맛이 좋았습니다. 얘기가 나온 김에 물어봅니다. 

술: 정산샤오종(正山小种)은 있나요?
장: 있어요. 이건 내가 어려서 우리 집에서도 취급하던 건데, 좋은 건 정말 구하기 힘들지요. 많이들 설탕을 타서 맛을 내는데 우리 건 그렇게 안해요. 여기 이거 들어 보세요. 
술: (마셔보고는) 내가 평소에 알던 맛하고 다르네요.
장: (다른 걸 다려서) 이건 어때요? 
술: 이게 내가 알던 것 하고 비슷하군요. 
장: 취향에 따라 다른데 난 먼저 거를 더 좋아하지요.

정산샤오종은 영국에서 랍상수청(Lapsang Souchong)이라고 해서 영국사람들이 가장 고급으로 치는 홍차가운데 하나입니다. 립산소종이라고 쓴 걸 복건지방 발음으로 읽고 그걸 로마자로 받아적어 랍상수청이 되었습니다. 옛날에 톼이닝스 제품을 마셔보고  '정로환' 냄새가 나서 좀 그랬는데 나중에 중국걸 마셔보니 훈연향도 은은하고 또 그향에 익숙해져서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좋은 걸 분별할 안목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거 저거를 시음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녁 약속에 맞추어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술: 아까 마신 다홍파오도 한 근 주세요. 정산샤오종은 나중에 기회되면 살께요. 
장: 이건 내가 마시다 남은 건데 몇 박스 소포장해서 다 팔고 남은 거에요. 그냥 드리는 거니 가져가세요. 다음에 오시면 좋은거 구해서 드릴게요.
술: 오늘 산거 돌아가서 마셔보고 좋으면 친구도 소개할거고 아니면 다신 안올거에요.
란: 그렇게 하세요. 얜 자기 물건 자신있게 파는 사람이니까. 우리도 한국 가보고 싶어요.
술: 오게 되면 미리 연락하세요. 내가 있으면 저녁 한끼는 살 거고, 누구 붙여서 안내도 하고. 
란: 와, 신난다. 선물로 좋은 차 많이 가져갈게요. 

그래서 500위안, 우리 돈 약 9만원을 들여서 구입한 푸얼차와 다홍파오가 아래 사진이고 그 아래가 선물로 받은 정산샤오종 입니다. 이 차보따리를 들고 저는 약속시간에 맞춰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도매상에서 사서 그렇지 모르고 공항 면세점에서 사면 수십만원어치의 품질과 양이라고 혼자 믿기로 했습니다.
 


맛있는 차를 샀다고 자랑만 하고 포스팅을 끝내기가 송구스럽습니다. 그리고 도매상이라 근으로 샀지만 한종류 500그램씩은 제가 혼자 마시기에는 많은 양입니다. 저는 주로 대만산 우롱차를 마시니까요. 그리고 집에 선물로 받은 이런저런 차가 좀 있습니다. 포스팅한 김에 푸얼, 따홍파오 제가 마시게 100그램씩 남겨두고 다 분양합니다. 그동안 밥과술 블로그에 덧글 달아주신 분이나 트윗으로 알티, 좋아요 해주신 분 가운데 10분 선정하여 100그램씩 보내드리겠습니다. 희망하시는 분이 10분이 넘으면 다음번 출장때 더 사와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희망하시는 분께서는 우선 비밀 덧글이나 트윗 쪽지로 의사를 알려주세요. 가격은 배송료포함 만원으로 해서, 제게 보내시는게 아니라 유니세프나 어디를 정해서 기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받으실 분들이 결정되면 그 때가서 정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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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대해서 쓰다보니 중국의 다구가운데 유명한 즈싸후(자사호: 紫砂壶) 얘기나, 제가 겪은 일본의 다도(茶道), 요즘 중국인 요우커 때문에 비싸진 일본의 南部鉄器 찻주전자 이야기등이 떠오릅니다. 덧글 주세요. 관심있으시면 차이야기를 한번 더하고, 아니면 홍콩 딤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금은 서울입니다. 돌아와서 금세 올린다고 했는데 주말에 이런저런 일을 하다보니 월요일이 되었네요. 또 새로운 한 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심천에서 먹고 맛본 햄버거, 푸얼차 중국이야기


낯선 곳에 가면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즐겁지만 때로는 익숙한 음식을 먹으며 그 맛의 미묘한 차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가끔씩 이런저런 도시에서 맥도날드 버거킹 같은 것을 사먹어 보기도 합니다. 서로 엄청 멀리 떨어져있고 역사적 배경과 문화도 전혀 다른 어느 아시아와 유럽의  두 도시가 맥도날드 매장안에서 거의 같은 메뉴와 맛을 재현해 내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입니다. 이게 좋은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놀라운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짧은 세월에 수십억의 인구를 하나의 입맛으로 수렴시킨 코카콜라 맥도날드 스타벅스 네슬레 등은 후세의 역사가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20세기 문명사에서 다룰거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사진은 오늘 점심으로 먹은 치즈버거 입니다. 저는 지금 중국 선전(深圳;편의상 심천으로 표기합니다)에 출장을 와 있습니다. 며칠전 서울에서 업무를 마친뒤 저녁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갔습니다. 홍콩에서 일박을 하면서 홍콩에서 약속을 한 이와 업무를 보고 다음날 이른 오후에 심천으로 들어왔습니다. 홍콩에서 중국으로 육로를 통해 들어가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특별한 정서를 느끼게 합니다. 기차역에서 내려 여권을 내밀고 출입국 사열을 거치면 육지에서 나라가 바뀌는(반환되었으니, 엄밀하게는 테리토리가 바뀌는) 경험이 새로운 거지요. 유럽에서 기차여행을 하면 국경을 넘을 때쯤 차장이 차표검사하듯 여권검사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도가 분단되어 섬처럼 되어버린 한국사람들에게 외국을 간다는 건 비행기를 타는 걸 의미합니다(드물게 배편도 있기는 하지만). 섬나라 일본과 마찬가지로 외국은 무조건 바다밖, 즉 해외입니다. 그래서 한국어에서도 일본어만큼 '해외여행'이란 말을 '외국여행'보다 훨씬 더 빈도높게 쓰지요. 통일이 되면 육로로 중국도 가고 러시아도 가게 되고, 철도가 연결되면 유럽까지도 갈 수가 있게 되는데 그때가서 '해외여행'이라는 말이 어떻게 변하는지 흥미있게 지켜보려고 합니다. 제 생전에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요. 

심천은 제가 처음에 홍콩에 갔을 때는 이름조차 낯선 어촌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온 외국사람들은 비자를 받으면 기차를 타고 중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홍콩에서 광저우로 가는 기차편이 있었구요. 중국이 유엔에서 대만대신 합법정부로 인정을 받은 뒤 '중국'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도 아주 조금씩 늘어났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중공'이라 부르는게 대세였던 시절이라, 중국으로 여행을 하는 건 엄두도 못냈습니다. 그래서 록마짜우(落馬洲)라고 부르는 홍콩의 변경에서 철조망 건너편을 바라보며, 죽의 장막이 걷힌지도 몇년이 되었는데 나는 언제나 8억인이 사는(지금은 15억이라고 하는데 그 땐 8억이라고 했습니다) 저쪽을 들어가 볼 수가 있을까 안타까워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로우(Lo Wu, 羅湖) 쪽 국경이 체증이 너무 심해 록마짜우(落馬洲;Lok Ma Chau)쪽으로도 출입국이 가능하게 길이 열렸더라구요.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는데 홍콩에 바로 붙어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홍콩사람들이 먹는 채소나 키우고 고기나 잡던 지역 깡촌이 삼십여년만에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인구만 많은게 아니라 여러가지 면에서 국제적인 대도시가 되었습니다. 저도 올 때마다 깜짝 놀랍니다. 인류 문명사에 삼십년만에 이렇게 뚝딱하고 허허벌판위에 큰 도시가 생긴 예는 아마 없지 싶습니다. 심천은 그래서 또 관광으로 가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오피스 빌딩, 주거지역, 공장 이렇게 말고 별로 없으니까요. 공장은 일찌기 동관(东莞) 등 외곽으로 나가서 지금은 심천이 홍콩같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심천 이야기를 조금 풀어볼까 합니다. 

아래 사진을 설명합니다. 제가 묵고 있는 호텔방에서 커튼을 열고보니 몇 년전부터 짓고 있던 금융센터(핑안IFC) 빌딩이 거의 완성이 되었더라구요. 115층인데 높이는 600미터가 넘습니다. 550미터인 롯데월드타워를 제치고 세계에서 세번째인가 네번째로 높은 빌딩이 됩니다. 롯데를 의식한 건 아니고 홍콩의 금융센터를 의식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심천은 홍콩에서 배웠지만, 홍콩을 추월한다는 의식이 강한 도시이거든요. 원래 첨탑을 포함하여 660미터가 되는데 위의 탑부분을 없애서 600미터로 조정했다고 합니다. 2015년 완공된 상하이타워가 632미터인걸 감안하면 홍콩을 넘어서되 형님격인 상하이에는 고개를 숙이는 정치적인 의미가 있지않았나 혼자 추측해 봅니다. 왼쪽 위의 사진은 방에서 찍은 사진이고 그 아래 두 장은 호텔 앞에 나갔을 때 찍은 겁니다. 이 세 장은 오른쪽 사진이 너무 길어 그냥 붙여본 사진입니다. 오른쪽은 방에서 스마트폰 파노라마 모드로 찍은 사진입니다. 앞쪽 건물에 왜곡이 생겼지만 그런대로 잘 나온 것 같습니다. 


오늘은 뜻밖에 오전 오후 스케줄이 다 비었습니다. 이게 다 눈 때문(덕분)입니다. 한국에서는 연말에 눈이 많이 와서 비행기 운항에 차질이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며칠전에 폭설로 인해 국내선 운항에 차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다른 곳에서 오는 2명과 심천에 있는 2명이 한꺼번에 만나야 하는 약속이 묘하게 일그러져 버렸습니다. 오늘 아침입니다. 방으로 전화가 울렸습니다. 베이징에서 온 파트너였습니다. 긴 이야기를 짧게 이야기하자면 오늘 오전, 오후 회의를 오늘 밤과 내일 오전으로 옮기자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그제 중요한 업무는 거의 마친 참이라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하루가 그냥 비어버렸습니다. 좋다 이럴때 놀자, 마음먹고 무얼할까 궁리하다가 혼자 시내 구경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심천에서 호텔, 오피스, 식당 말고 가본 데가 별로 없어서 이번이 기회다 싶었지요. 

그래서 슬렁슬렁 다니다 먹은게 아래의 햄버거입니다. 이 집은 중국요리와 햄버거에 파스타까지 하는 식당이었습니다. 홍콩에 본점을 둔 '대만식 찬팅'이라고 하는데 오피스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많이 와서 먹는 것 같았습니다. 가격은 우리돈으로 음료까지 마시면 7천원에서 만원 남짓한 것 같았습니다. 일층에서 주문하고 이층에서도 먹게 되어있는 인테리어가 세련되고 좋았습니다. 그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을 모집한다고 바깥에 붙여놓은 걸 보니 월급이 3천위안, 우리 돈으로 50만원 정도입니다. 그곳에서 손님으로 소비하는 여성과 그들에게 서빙하는 여성과의 임금차이가 많이 나겠구나 싶었습니다. 햄버거 맛은 그냥 중간 정도였습니다. 



이곳은 센트럴 비지니스 디스트릭트라고 해서 CBD라고 부르는 지역이니 다른 곳에 비해 물가가 좀 비싼 편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다니다 보니 가게들도 예쁘고 희한한 식당들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꽃으로 꾸며놓은 식당도 있고,

이렇게 영국과 일본을 합해놓은 British Izakaya 라는 업태의 식당도 보여서 재미있었습니다. 살짝 메뉴가 궁금해 졌습니다.

청와대는 경복궁 뒤에만 있는게 아니라 심천에도 있었습니다. 지나가다 보니 한국요리를 파는 식당이었는데 앞에 내어놓은 메뉴를 보니 한글은 철자도 틀리고 번역도 틀린게 많아서 중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인가보다 짐작하였습니다. 한국에 중국식당으로 '자금성'이 있다면 중국에 한국식당으로 '경복궁'이 있는데, 이제 중국에 '청와대'까지 생겼으니 한국에 '중남해(中南海)'가 생겨야 할 차례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기왕에 식당이야기가 나온 김에 어제 저녁 먹은 이야기를 하면 이렇습니다. 베이징에서 내려온 친구가 좋은 거 사주어서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맛있게 먹지는 못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먹는 식사여서요. 차라리 테이크 아웃 음식을 방에서 일하며 먹으면 더 맛있을텐데 격식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먹으니 술도 눈치보여 잘 못마시고 좀 그랬습니다. 원래는 셋이 즐겁게 먹기로 했는데 한 친구가 광저우에서 늦게 내려오는 바람에 우리 둘이 남게된 건데, 밖에 나가지 말고 호텔에서 간단히 볶음밥이나 한그릇 먹자고 2층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고급호텔 식당이니 입구부터 다 깔끔하고 안에도 분위기가 좋습니다. 조은데서 맛있는거 머것서효, 자랑하려는게 아니고 반전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려고 하는 겁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듯이 식탁위에 노트북을 내내 펴 놓은채 눈으로는 자료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입안에 떠 넣었습니다. 약속이 엇갈리다 보니 할 일이 밀려서 그런 거지요. 


음식은 볶음밥(揚州炒飯;양저우차오판)을 시켰는데 파트너가 반찬삼아 몇가지를 간단하게 시켰습니다. 광동지방에 왔으니 광동바베큐(臘味)를 뺄 수 없어 두가지 모듬 하나 시키고, 야채 한가지는 시켜야 하니 두부요리, 그리고 그 식당이 잘하기로 유명하다는 닭요리, 이렇게 '간단하게' 시킨게 그의 로직입니다. 여기서 얻은 결론은 간단합니다. 일 생각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식사가 정말 즐거운 식사다, 입니다. 


이야기는 오늘 오후로 돌아옵니다. 심천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할만큼 제조업으로 시작한 도시입니다.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수출, 수출을 하여서 부를 축적한 곳이기도 합니다. 아래는 심천, 그러면 공장지대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서 구글에서 퍼온 사진(보라색 테두리)을 두 장 올립니다. 낮에 찍은 사진에는 완공이전의 금융센터가 보입니다. 옛 모습을 아는 사람들에겐 말그대로 상전벽해 입니다.


심천 시내를 잠깐이지만 한가히 둘러보니 예전엔 보지 못한게 많이 보였습니다. 우선 도시 조경이 상당히 잘 되어있다는 것과 녹지대가 많다는게 눈에 띄었습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는 있던 그림에 덧칠하듯 개발을 해야하니 그 한계가 있습니다. 홍콩, 도쿄의 길이 비좁고, 상하이도 황푸강 서쪽이 그렇습니다. 물론 그건 그런대로의 멋과 정취가 있습니다. 심천은 그에 비해 시원시원합니다. 길도 바둑판처럼 짜인데에다 아주 넓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다가 녹지조성에 힘을 많이 기울인게 보입니다. 곳곳에 꽃도 많이 심어 놓았습니다. 저의 추측입니다만 이 도시의 조경을 설계한 사람(들)은 틀림없이 싱가폴을 많이 벤치마킹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래 사진이 오피스 거리에 확보된 녹지대와 보행자 도로가 어울리는 풍광입니다. 겨울이 없는 기후도 나무를 키우는데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 입니다. 


심천하면 전자제품, 이런 이미지도 있어서 전자상가에 가보았습니다. 화챵(华强)이라는 곳에 몰려있어서 약자로 HQ마켓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건물도 번듯번듯하고 도로도 깨끗합니다. 어마어마한 규모도 규모지만 하도 빨리 변해서 좀 약이 올랐습니다... 아래가 전자상가 가운데 보행자 길이고 그 아래가 양 옆 사진입니다. 휴대폰을 파는 곳은 브랜드별로 가게들이 줄지어 수십군데 열려있습니다. 


이 거대한 도시에 쌓인 엄청난 부가 사실은 중국사람들의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가능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사실 그렇게 부럽지만은 않습니다. 홍콩은 중국의 개방을 선도하는 중계기지이자 병참기지로 번영을 구가하였고, 심천은 뒤이어 중국 안쪽의 다른 지역보다 우위에 서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였습니다. 심천의 평균소득은 현재 2만5천불 정도일 겁니다. 오늘 전자시장을 돌아보며 간단하게 셈을 하여보았습니다. 중국의 공장에서 노동하는 인구를 3억이라고 잡고, 이들이 선진국 임금과 시간당 차이가 5불 이상 난다고 해보지요. 그래서 싸게 팔 수 있어서 시간당 잉여로 버는게 1불이라고만 해도 하루 여덟시간이면 한사람당 8불, 하루에 24억불씩 남는 거고 일년이면 9천억불 입니다. 십년이면 9조달러가 쌓이게 됩니다. 보수적으로 잡은게 이렇습니다. 그러니 그동안 중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많이 돈을 벌었겠습니까. 

그러나 농민들의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한 식량을 먹고 일하는 노동자의 값싼 임금을 경쟁력으로 내세워 세계의 공장노릇을 한 중국도 이제는 분배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이르렀구나, 과연 잘 해결될까, 내가 파트너들과 먹는 음식값만큼 나의 생산력이  그들에 비해 높다고 할 수 있는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가, 갑자기 이 많은 인구의 뱃속을 채워주는 시장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역사가 오래되어서 재래 시장이 분산되어 있는 도시와 달리 심천은 청과물 도매시장, 해산물 도매시장도 커다란 규모로 만들어 놓았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쓰다보니 약속때문에 나가야 할 시간입니다. 이러저러 하다가 푸얼차 마신 이야기는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2018년에 되돌아본 2017년의 며칠 살아가는 이야기


2018년 새해를 맞이하여 첫식사는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었습니다. 원래는 설명절에 차례를 지내는게 더 맞겠지만 오랫동안 이산가족으로 떨어져 지내는 저희 집은 식구들이 들어올 수 있는 날짜에 맞추어 차례를 올립니다. 작년엔 설에 지냈고 올해는 양력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커피여사의 지휘아래 이번엔 쥬스와 우유가 전, 산적 등을 잘 만들어 주었습니다. 특히 몇년전부터 동그랑땡은 두부넣고 만드는 전통방식이 아니라 미니 햄버그에 가깝게 만드는데 이게 인기가 좋습니다. 갈아놓은 고기를 사지않고 정육점에서 국거리 살 때 양지를 더 사서 갈아달라고 하여 그걸로 만듭니다. 양파와 식빵을 조금씩 갈아서 간고기와 섞은다음 소금간을 살짝하여 잘 섞어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 굽습니다. 모양은 동그랑땡인데 퍽퍽하지 않고 고소하여 드시는 분들이 맛있어 하는 것 같습니다.

해마다 새해를 맞아 돌이켜보면 지난 해는 언제나 아쉬움이 많이 남고, 그래서 새해에 또 새로운 희망을 걸어보고 마음가짐을 새로이하는게 보통 우리네들이 사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저도 특히 작년엔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올해는 저도 그렇고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도 좋은 일이 많고, 또 하시는 일들이 다 술술 잘풀기기를 기원합니다.

위의 사진이 올해 첫 식사의 사진입니다. 한 해를 돌이켜보며 작년 일년동안 제일 인상에 남는 식사는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맛있게 먹은 끼니는 참 많았는데(맛없이 먹은 식사를 고르는게 훨씬 빠르지요. 이건 복이라고 여겨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인상깊었던 날을 몇개 추려보았습니다.  

우선 3월 10일입니다. 저는 그 역사적인 판결이 있던 날 중국에 있었습니다. 오전에 약속을 잡지않고 호텔 방에서 생중계를 보고 있었습니다. 중국은(우리나라에 있다 나가보면 많은 나라들이) 와이파이가 한국만큼 잘 안터지거나 속도가 느린 곳이 많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끊어질까봐 휴대폰 두 개를 열어서 JTBC와 SBS 생방송을 연결하였습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호텔방에서 역사적인 장면을 목격한 뒤,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웹서핑을 시작하였습니다. 한참이 지난 뒤 호텔 근방의 란주라면 집으로 가서 란주라면을 먹었습니다. 배가 고픈 줄도 몰랐는데 먹기 시작하니 비로소 입맛이 돌아왔습니다.



다음 다음날 출장에서 돌아와 청계천 양미옥에서 곱창을 먹었습니다. 탄핵이 이루어진 후 한국에서 처음 먹는 식사였습니다. 그동안 무능하고 부패한 세력들이 어떻게 국정을 농단했는지가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한심하고 어이가 없었는데 이날만큼은 먹은 곱창도 참 고소했고 주고 받은 화제도 참 고소했습니다. 셈을 치르는 카운터 뒤에 이 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이가 잠시 그리워졌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정권교체가 되려나, 무슨 예기치않은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나, 커다란 희망과 기대를 품은 한편으로 근심과 걱정도 마음속에서 털어내지 못한채 5월 9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출구조사 발표가 예년과 달리 8시라고 하였습니다. 4년여전에 참담한 결과를 함께 했던 이들이 이번에 다시 모여 선거결과를 같이 보기로 하였습니다. 출구 조사가 나오자 우리는 일제히 함성을 질렀고 그리고는 막걸리, 소주, 맥주, 소맥 등 취향에 따라 술을 마음껏 마셨고 잔치분위기를 즐겼습니다. 다들 벙글벙글 싱글싱글 헤죽헤죽 껄껄껄 하하하 얼굴에서 웃는 표정이 가시지 않은 채 오랜만에 사람사는 맛을 즐겼습니다. 하도 감격을 해서인지 이 날은 음식사진 찍는 것도 잊었습니다. 어제밤에 싸인펜과 색연필로 간단히 그 날의 회동을 그려보았습니다. 저는 들떠서 술만 마시고 안주를 별로 안먹었는지 밤늦게 집에 들어오니 배가 출출했습니다. 그래서 남은 찌개와 밥 한그릇을 대충 비벼서 먹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2017년에 들어 저는 개인적으로 지진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외국의 지진전문가가 16년 경주지진을 보고 한국에서도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으며 특히 원전 밀집지역이 위험하다고 경고를 해주었기 때문이지요. 평소 한국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겨서 옆나라 중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 발생하는 지진을 강건너 불 보듯 하던 우리나라 사람에게 큰 걱정거리가 하나 생긴 것 입니다. 그 전문가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최근 프랑스 등 그동안 소위 말하는 '불의 고리'에서 벗어난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한반도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이는 주목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1월 18일 이태리 중부에서 지진이 나서 스키리조트의 한 호텔이 눈사태를 맞아 수십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태리는 지진이 평소에도 발생하는 지역입니다. 그날 밤 저는 혼자 집에서 나주곰탕 얼린 걸 녹여서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며칠 뒤인 1월 22일 파푸아 뉴기니에서 매그니튜드 7.9의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불의 고리가 본격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저는 쥬스와 함께 집에서 치킨을 시켜먹고 달고 기름진 것들을 후식으로 먹었습니다.



4월 25일(현지시간 4월 24일) 칠레에서 M7.1의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칠레는 지진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그 날 저는 집에서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생각보다 피해가 크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걱정은 되었습니다. 





9월 20일(현지시간 9월 19일) 멕시코시티 부근에서 M6.8의 지진이 났습니다. 사망자는 백명을 넘어섰고 피해는 계속 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기억이 납니다. 9월 19일은 공교롭게도 32년전인 1985년 같은 날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M8.1)이 일어나기도 한 날이라고 합니다. 그날 저는 중국 천산산맥을 넘어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의 접경에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천산산맥은 웅장합니다. 산이 워낙 높으니 비행기가 대단히 낮게 나는 것 같은 착각도 듭니다. 



거리에서 들에서 소도 보고 말도 보고 또 귀여운 양도 보고 저녁엔 아무렇지 않게 또 양고기, 소고기를 먹었습니다.



11월 13일(현지 12일) 이란 이라크 접경지대에서 지진이 발생하여 수백명의 사망자와 수만명의 이재민이 나왔습니다. 규모는 M7.3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 마포 진미식당에서 게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11월 15일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포항에서 지진이 났습니다. 기상 관측사상 16년에 있었던 경주지진에 이어 두번째로 큰 지진이라고 했습니다. 오후 2시 반경이었는데 서울에 있던 저도 느꼈습니다. 여진이 계속되어서 이틀 뒤 있을 예정이던 수능도 일주일 미루어졌습니다.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 집에서 키마카레 만들어놓은 것에 수란을 얹어서 먹었습니다. 작년엔 좋아하는 무화과가 싸서 자주 먹었습니다. 그날도 후식으로 먹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2017년 세계 이곳 저곳에서 지진은 많았습니다. 일본에서도 후쿠시마를 포함하여 여러곳에서 지진이 났었지요. 저는 지금까지 다행히도 직접 피해을 입은 적은 없지만, 공포를 느낄만큼 흔들리는 지진은 일본, 대만, 미국 등지에서 여러번 겪었습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지진당시 도쿄에 있었는데도 정말 무서울 정도로 크게 그리고 오랫동안 흔들렸습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에드가 케이시가 이랬다더라,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씌여있다더라 그러면서 유튜브 등지에 '새해의 예언'등이 올라옵니다. 올해는 캘리포니아가 가라앉을 만큼 커다란 지진이 일어난답니다. 물론 거기까지는 아니겠지만 미국 서부해안에서는 언제 커다란 지진이 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제발 올해도 전 지구촌이 무사히 넘어가도록 큰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수백만 인구가 모여사는 대도시 바로 옆에 원전이 밀집해 있는 우리나라 영남지방에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한 해동안 밥과술 블로그에 찾아와 주신 분들 모두께 감사드리며 행운과 건강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제게도 축원해 주세요. 저도 올해 이런 저런 일 하려면 많은 복과 행운이 필요합니다~~
  


이브에 부추삼겹살: 어느 삼겹살 중독자의 고백 밥과술네 집이야기


어제는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삼겹살에 소주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크리마스 이브엔 역시 삼겹살에 소주 아니겠습니까?... 는 그냥 아무말 대잔치고, 여긴엔 약간의 사연이 있습니다. 이 글의 제목 '어느 삼겹살 중독자의 고백'은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희집 쥬스 이야기입니다. 며칠전 그가 삼겹살 중독자라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전말은 이렇습니다. 며칠전 저녁이었습니다.

쥬: 아빠 일요일날 저녁에 약속 있어요?
술: 24일? 아니?
쥬: 그럼 저녁 사주세요.
술: 그날 크리스마스 이브 아니야? 넌 같이 저녁먹을 친구 없니?
쥬: 고향내려가고 그래요. 아빠랑 같이 먹을래요.
술: 그래, 같이 먹자. 뭐먹고 싶은데?

저는 속으로 무슨 프랑스 음식이나 이태리 음식이나 이런거 먹자는게 아닐까 막연히 생각하였습니다. 와인이 어울릴 것 같은 음식말이죠. 그런데 빗나갔습니다. 

쥬: 삼겹살이요.
술: 삼겹살? 아니 크리스마스 이븐데?
쥬: 뭐 이브라고해서 특별한 것도 없구, 그냥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었어요. 한 삼주일 이상 못먹었더니 며칠전부터 계속 땡겨서.
술: 넌 삼겹살 한동안 안먹으면 먹고 싶니?
쥬: 그럼요. 저만 그런거 아니고 요즘 대학생들 다 그럴지도 몰라요. 모여서 먹었다하면 삼겹살이니까.
술: 그래서 안먹으면 금단현상이 올 정도로?
쥬: 그냥 요새 대학생들한테는 흰 밥 같은 존재라고 봐야할 것 같아요.

금시초문이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대학교 앞은 삼겹살이 저렴한 값에 판매되고 있고, 대학생들은 삼겹살집을 아주 자주 드나들어서 일주일에 몇번이나 먹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술: 그래서 중독이 된거야?
쥬: 한동안 안먹으면 매우 먹고 싶어지는걸 중독이라고 하면 중독인거죠. 내가 대학교 일학년때 열흘정도 농활을 갔는데 그 때 규정이 햄, 소시지 이런 가공식품이나 라면같은 인스턴트 식품을 못가져가고 양파, 당근, 호박 이런걸 현지에서 조달해서 해먹어야 하는 거였어요. 그런대로 해서 맛있게 먹었는데 끝날 무렵쯤해서 라면이 너무너무 먹고 싶어서 끝나고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라면을 먹었던 생각이 나요. 그런거 아닐까?
술: 삼겹살은 언제부터?
쥬: 지금도 기억이 나요. 대학 입학하던 해 2월 말이었어요. 처음으로 학교앞에서 회식을 하는데 삼겹살에 반찬에 밥, 찌개까지 나오는데 일인당 4천원이었어요. 우선 값이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술: 맛은?
쥬: 괜찮았어요.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삼겹살이었어요.
술: 처음이었어?
쥬: 응, 처음이었지요. 그 때까지는 서울에 오면 다른데만 데려가 주셨잖아요. 

외국에서 나서 자라고 방학때나 들어오던 쥬스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 건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터 입니다. 생각해보니 그 때까지 식구끼리 삼겹살 먹으러 갔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방학때 들어오면 집에서 먹고, 친척집에서 먹고, 나가서 먹으면 대개 한식으로는 냉면, 불고기, 순두부, 막국수, 칼국수, 닭한마리 이런거 먹으러 다녔던 것 같네요. 제 머리 속에 삼겹살은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편안하게 회식할 때 먹는 메뉴라는 이미지가 박혀있었나 봅니다. 그러니까 지난 수년동안 저는 저대로, 쥬스는 쥬스대로 삼겹살을 따로 먹고 다녔던 거지요.

쥬: 근데 학교에 입학하고 나니까 정말 많이 갔어요. 일주일에 몇 번씩 간 적도 많아요. 친구들끼리, 과회식, 조모임, 많아요.
술: 아직도 4천원이야?
쥬: 그 집은 지금 4천5백원인가 그래요. 안간지 꽤 됐지만.
술: 왜?
쥬: 처음에 일학년때는 거기만 갔는데, 나중엔 5,6천원짜리 집이 몇군데 있는데 그런데 번갈아 다닌 것 같애요. 학년이 올라가며 맛의 차이를 조금씩 아는 것도 같고. 어떨 때는 마음먹고 7천원짜리 집도 가고요.

얘기를 들어보니 지난 몇년동안 숱하게 삼겹살을 먹어서 이제는 한동안 안먹으면 매우 먹고싶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얘기를 듣고나서 제 자신은 삼겹살에 대해서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고 또 싫어하지도 않는, 그러니까 중립적인 위치에 서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술: 그래, 먹으러 가자. 어디로 갈까? 난 회사부근에 있는 집들 밖에 몰라서.
쥬: 이번엔 구멍난 그물에 직화로 굽는 집말고 철판에 구워서 나오는 기름으로 김치 이런거 구워먹는 집이 좋아요.
술: 그렇구나. 그러고보니 내가 아는 육칠팔 삼다연 이런데는 다 그물판에 굽는 거네. 어디서 찾지?
쥬: 멀리 갈거 없어요. 우리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당동 먹자골목이 있는데 거기 부추삼겹살이 유명해요. 학교 애들이 모여서 일부러 거기까지 먹으러 간 적도 여러번 있어요.
술: 그래? 잘됐다. 차없이 가서 술도 먹을 수 있고.

24일 저녁 부녀는 그 유명하다는 부추삼겹살 집에를 갔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그런지 빈자리 몇개 남겨두고 꽉 차있었습니다.

술: 이브라서 손님이 많은가 보다.
쥬: 이브라서 없는 거지요. 빈자리가 있는 건. 평소엔 늘 밖에서 웨이팅이에요.
술: 그렇구나. 메뉴가 정말 심플하구나. 
쥬: 근데 아빠, 한가지 미리 각오하세요. 이집 부추무침이 엄청 달아요. 올리고당을 많이 넣었나봐. 그 맛에 드신다 생각하세요.

약간의 사전경고를 받은채 우리는 생삼겹 2인분에 소주하나 맥주하나를 시켰습니다. 우선 식판에 부추무침, 김치, 마늘, 고추등이 담겨 나옵니다. 리필은 셀프인데 숙달된 조교처럼 쥬스가 아예 미리 마늘 김치 고추를 더 담아 옵니다.



고기가 불판에 깔리고 술이 나옵니다.



고기밑에 경사진 쪽으로 마늘과 김치가 깔려서 고기와 함께 익어갑니다. 부추까지 얹으니 아래와 같은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이 됩니다. 실제로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술도 쪽쪽 들어가고. 고요하고 거룩한 밤입니다.



다먹고 일인분을 더 시켰습니다. 쥬스는 소주를 못마시고 맥주도 별로여서 제가 둘다 마시고 한 병 더 시킬까 하다가 참았습니다. 그 대신에 고기를 일인분 추가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볶음밥을 먹었지요. 부추가 좀 많이 달았고 양념장도 좀 단 맛이 나는 것 같았는데 이 집의 개성이려니 하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맛있게 먹고나서 날씨도 풀리고 해서 산보삼아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쥬: 맛있게 드셨어요?
술: 그럼 덕분에 잘먹었다. 쌩큐. 
쥬: 몸에 어떨지는 몰라도 삼겹살 구우면서 나오는 기름에 김치 부추 이런거 익혀 먹으면 맛있지요?
술: 식물성 기름보다 몸에 덜 나쁠 수도 있지... 근데 콩나물은 왜 안나왔지?
쥬: 웬 콩나물이요?
술: 이제 생각났다. 내가 몇년전에 이렇게 구워 먹는거에 한동안 맛들인 적이 있지. 

삼겹살에 콩나물이 잊혀진듯 기억의 저편에 숨어있다 튀어나왔습니다. 십년이 좀 넘었는데 LA 한인타운에 '꿀돼지'라는 삼겹살 집이 있었습니다(지금도 있습니다). 요새는 다른데도 맛있는 삼겹살 집이 여러군데 생겨서 옛날같지는 않은데 처음엔 바글바글 했습니다. 솥뚜껑삼겹살로 유명했습니다. 영어로 꿀돼지를 Honey Pig 라고 표기한게 생각이 나네요. 그 집은 삼겹살에 김치하고 콩나물을 같이 구워먹는게 특징이었습니다. 저도 사람들 여러번 데려갔었지요. 요새는 웨스턴에 있는 '팔색'이라는데 가곤 합니다. 스마트 폰을 찾아보니 있습니다. 그 때 사진이.   



집에 돌아오며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난 삼겹살 중독자는 아닌데 무슨 중독자일까, 하고요. 한동안 안먹으면 금단 현상이 오는 음식... 많기도 많았습니다. 우선 흰 쌀밥입니다. 젊어서 몇 달 안먹은 적도 있지만(없어서 못먹었음) 이제는 한 달 이상은 못버틸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이 김치찌개, 라면 다 한 달이 임계점일 듯 하네요. 그 다음이 짜장면 짬뽕, 그리고 설렁탕, 곰탕류. 냉면, 막국수도 중독식품에 들어가네요(설렁탕과 곰탕, 냉면과 막국수는 상호 대체 가능함. 짜장면 짬뽕은 대체 불가). 그리고 햄버거, 돈카츠, 카레... 저는 이 정도 입니다. 쥬스는 삼겹살 말고도 전생이 이태리 사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심한 파스타 중독자이기도 합니다. 아, 저는 커피, 차 중독자 입니다. 술은 중독자라고 말하면 무슨 의학적인 치료를 요하는 환자 같으니까 부정합니다. 저는 술은 안마시고도 이삼일씩 잘 버티니까요.

이상 크리스마스 이브의 삼겹살 디너 이야기였습니다~    


익숙한 국물 맛의 포를 만나다: 하노이의 쌀국수(3) 베트남 이야기


하노이에서 네 번째로 먹은 포입니다. 기대를 하지않고 먹었는데 괜찮았습니다. 어딘가 익숙한 맛이어서 조금 반가웠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루고 쌀국수 말고 다른 것들 먹은거 먼저 개인기록삼아 올립니다. 출장이 잦아서 들락날락은 많이하지만 이렇게 친한 친구하고 느긋하게 온전히 이틀반이나 먹고 구경하는데만 시간을 보낸 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물론 친구도 꼭 만나서 해야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하노이까지 찾아온 경우이긴 했습니다만, 만난 다음날 오전 호텔에서 팔로알토하고 화상회의해서 두시간에 다 끝냈고 이제부턴 이틀동안 놀았던 이야기입니다. 호치민은 몇 번 갔지만 아쉽게도 다 업무차 방문한거라 인상에 깊이 남은 곳이 없습니다. 언젠가 꼭 다시 '놀러'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어려서 베트남 전쟁 뉴스로 귀에 익은 다낭 후에  나트랑(이제는 나짱)도, 영화에 많이 나온 하롱베이도 다 '언젠가는 리스트'에 올려둔 후보지입니다. 

여행은 즐겁습니다. 여행 계획을 짜는 것도 즐겁습니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의 반대도 성립하여 즐거운 이야기가 겹으로 겹치면 더욱 재미납니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다음 여행 계획을 짰습니다. 장소는 '하노이 가든' 레스토랑에서 였습니다. 이 곳은 올드스퀘어 안에 있는 곳인데 일단 안에 들어서면 바로 밖 구시가의 번잡함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우아한 정경이 펼쳐집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어서(배경을 찍으려고) 혼자 앉아있는 사진이 되었습니다. 위에가 밥과술이고 아래가 빌입니다. 


우리가 식사를 한 곳은 안마당이고 안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룸도 여러개 있습니다. 서양식 건축양식이라 커트야드(courtyard)라 그러면 어울리는데 우리말로 안마당이라 그러면 얼른 와닫지 않고, 중국어나 일본어에서 쓰는 中庭이라는 말이 안마당보다는 좀 더 적합한 것 같은 건 언어습관에서 온 편견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안마당에 자리를 잡았고, 우선 와인을 빌의 제안으로 글래스로 시켰습니다. 저는 맥주도 시켰구요.



밥: 왜 와인을 병으로 안시켰어? 너 와인 좋아하잖아.
빌: 의사가 맥주는 마시지 말라고 해서 요새는 와인만 주로 마시지. 하지만 이따가 재즈 클럽가서 와인 마실거니까 주량을 생각해서.
밥: 이따 우리 재즈클럽가니? 주량이라니?
빌: 내가 이제는 옛날처럼 술을 못마신단다. 와인 세잔정도가 딱 맞아. 뱃살도 빼야하고. 
밥: 하긴 뱃살하면 나도 남 이야기가 아니지. 건강 생각하면 술도 줄여야하고. 우린 Those were the days구나, 진짜.
빌: 옛날에 무서운게 없었지.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우린 노래하고 달리 older but no wiser가 아니라 older and a bit wiser는 되잖아, 아니야?
밥: 너 근데 아니? 이 노래가 메리 홉킨스 오리지널이 아니라 원래 러시아 가요래. 
빌: (금세 스마트 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어, 정말이네. 몰랐어.
밥: 나도 러시아 친구가 알려줘서 알았지. 제목이 다로가이 드린나유인지 그런데 들어보니 뜻은 몰라도 참 좋더라. 

그러는 동안 식사메뉴 주문을 받으러 와서 우리는 모듬쌈, 새우구이, 그린파파야 샐러드, 게살 잡채, 오리구이를 시켰습니다. 음식은 다좋았습니다. 오리구이는 메뉴에 그집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시켰는데 어쩌면 다른 걸 시키는게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샐러드안에 그린 파파야 채썰어 놓은 것은 식감이 무나 당근보다도 더 딱딱합니다. 잘 익은 파파야만 먹은 우리에게는 뜻밖의 맛이지요. 

빌: 이것도 좋지만 이것보다 매운 맛이 나게 만든 타이 '쏨땀'이 더 맛있는 것 같다. 태국 우리 집 마당에도 파파야가 있는데 사람들이 다 푸를때 따서 쏨땀도 해먹고 다른 요리에도 쓰고해서 내가 익은걸 먹을 새가 없어.  
밥: 태국 가본지도 오래된 것 같아. 가보고 싶네.
빌: 시간내서 와. 내가 좋은데 많이 안내해 줄께. 
밥: 거기도 그렇고 앙코르와트도 가보고 싶고, 라오스도 가보고 싶고. 호치민도 여행으로 가고 싶은데, 호치민 들러서 하루보고, 시엠립가서 앙코르와트 하루보고, 비엔티엔도 하루가고 그러면 좋겠다.
빌: 워우, 그건 불가능에 가까울 뿐만이 아니라 의미도 없어. 우선 동남아 도시들은 출입국 수속도 느리고 시내까지 교통도 안좋아서 길에다 쓰는 시간이 많고, 비행기도 지연도 많이되니까. 그리고 앙코르와트는 최소한 하루종일 봐야 하니까 적어도 이박은 해야해. 
밥: 그렇구나. 
빌: 그리고 비엔첸은 시계가 늦게 가는 곳이라 모든 걸 천천히 하는데 맛이 있지. 아무 것도 안하고 슬렁슬렁 걷고 이런 걸 즐기는 거야. 여기도 이박.
밥: 이래저래 최소 일주일을 내어도 세군데 이상은 무리구나...

우리는 여행지에서 언제가 될 지 모르는 다음 여행을 설계하며 즐겁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낮에는 호안끼엠 호수 옆을 걷기도 하고 시내 중심부 오페라하우스 쪽으로 가서 구경도 하고 그랬습니다. 호숫가 북쪽 초입에 열대우림 수종이 우거지고 그 밑에 아주 비싼 고급 시가를 파는 가게가 있는게 묘해서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대도시에서도 한 끼에 우리돈 2천원이면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시골로 가면 물가도 더 싸겠지요. 평균소득도 그만큼 낮을터이구요. 그런데 중심가 고급호텔에 가니 세계적 명품 브랜드 샵이 여러개 있었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든 터무니없이 돈 많은 사람은 따로 있는게 현실인 모양입니다. 하노이에서 많이 보이는 넝쿨같은 이 나무의 이름이 궁금합니다. 찾아보니 strangler fig, 교살목인 것도 같은데 수령이 오래된 것들은 정말 장관입니다. 



빌은 마침 호숫가에 전통복장을 하고 나온 아가씨들을 사진 찍었고 저는 그걸 또 사진 찍었습니다. 그 아래는 베트남도 한자문화권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한 컷입니다.


아래는 오페라 하우스고 그 밑은 그 앞의 광장입니다. 그리고 메트로폴 호텔과 그 건너편 유럽 양식의 건물입니다. 프랑스 어느 도시의 중심가 같은 느낌도 납니다. 아시아의 식민역사를 새감 돌이켜 생각하게 됩니다. 


아래는 시내 어느 네거리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파란 불만 켜지면 일제히 달릴 준비가 되어있는 레이스 출발선 모양 신호대기 오토바이가 모여있는 옆에 맥도날드가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그 밑은 하노이 가든에서 저녁을 먹고 갔던 빈민(Binh Minh)재즈클럽 사진입니다. 하노이 힐튼 바로 뒤에 있었습니다. 사진은 안찍었는데 애프리콧 호텔 지하에는 플레이보이 클럽이 있어서 일층 입구에 유명한 바니 로고가 커다랗게 붙어있었습니다. 우리는 옛날 베트남전 참전했던 미군들은 과연 이 호텔에 묵을까, 미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십년넘게 전쟁을 하였고 그래서 미국에 이긴 나라 베트남인데 이긴 결과 지금은 맥도날드와 플레이보이 클럽이 자유롭게 영업을 하는구나, 등등 우리는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귀에 익은 스탠다드 재즈넘버들을 들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습니다. '하노이 힐튼'은 전쟁당시 미군포로들을 수용하던 감옥의 별칭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는 미군 위문공연하러 다니는 플레이메이트들이 타는 헬기에 플레이보이 바니로고가 찍혀있던게 생각이 나기도 해서 역사의 아이러니에 대해서도 잡담을 나누었습니다. 

 

떠나기 전날밤 우리는 호안끼엠 호숫가에 있는 꺼우고(Cau Go)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검색한 가이드에 경치가 좋다고 해서 갔는데 역시 좋았습니다. 운이 좋아서 호수전경을 내려다 보며 식사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추워서 디저트만 밖에 나가 먹고 밥은 안쪽 창가에서 먹기는 했지만요. 아래는 밖의 전경과 빌이 찍어준 밥과술의 기분이 좋아선지 좀 건방지게 나온 모습입니다. 날씨가 좀 흐리기는 했지만 기온이 여행하기에는 완벽하게 좋았습니다. 매일 18도에서 20도 정도였지요. 저는 공식행사용 정장말고는 죄 반팔만 챙겼고 혹시해서 긴팔 셔츠를 하나 챙겼는데 날씨가 서늘해서 이틀내내 그것만 반팔위에 걸쳤습니다. 어딜가나 하나가지고 다니는 비상용 윈드브레이커는 캘리포니아와 태국의 더운날씨에 익숙해진 빌에게 빌려주었습니다.   



술은 간단히 맥주하고 글래스 와인을 마시고 메뉴로는 스프링롤튀김인 넴, 돼지고기 요리 분짜, 그리고 새우요리 등을 시키고 디저트로는 바나나튀김과 아이스크림, 그리고 베트남커피를 시켰습니다. 어제간 하노이 가든도 그렇고 여기 꺼우고라는 식당도 다 하노이에선 고급에 속하는 곳인데 먹고 마시고 한사람당 오륙만원정도 나온 것 같습니다. 한끼에 이삼천원이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곳이니 싼 돈은 아니지만 며칠 묵으면서 한 번 정도는 가볼만한 곳인 것 같아 추천합니다.  


호안끼엠 주위 호숫가는 밤이 되니 사람도 많고 대단히 번화했습니다. 주말이라 더욱 그랬겠지만요. 맨 아래 사진은 호숫가 어느 식당에 들어가 칵테일 한 잔씩 마시며 찍은 사진입니다. 하노이였던가 베트남이었던가 '싱가폴 슬링'처럼 로컬 지명이 들어간 트로피컬 칵테일이었는데 사진이 마음에 듭니다. 주변 조명이 좋았는지 보정한 사진처럼 색깔이 잘 나왔네요. 



포 이야기입니다. 다음날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아침은 먹지 않았습니다. 공항에서 파는 포를 한그릇 먹어보려구요. 특히 출국사열을 끝내고 들어간 출발구역에서 파는 포는 맛이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아래가 그 모습입니다. 보기에는 여늬 가네나 똑 같습니다. Big Bowl 이라는 상표의 가게인데 국제선 청사 출국수속 마치고 들어가면 양 옆으로 하나씩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게이트가 어느 쪽이든 먹을 수 있겠습니다. 가격은 당연히 국제공항에서 임대료 내고 장사하니 그만큼 비쌉니다. 포 한그릇에 육칠천원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인천공항에서 김치찌개 설렁탕이 다 만원 전후인거 생각하면 비싼 건 아니지만요.



궁금했던 건 맛이었습니다. 어딜가나 공항안의 좁은 공간에서 갖가지 음식을 준비하려면 미리 만들어 놓은 재료를 가져다 섞고 끓이거나 데우고 하는 가공수준의 조리에서 머물러야 하는 곳이 많습니다. 특히 오랜시간 끓여내야 하는 탕이나 국물 같은 경우 더욱 그렇겠지요. 포를 만든다고 가마솥을 가져다 놓고 하루종일 끓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밖에서 국물을 만들어서 여기선 데우기만 하는 거라고 짐작을 하고 첫 숟가락으로 국물 맛을 보았습니다. 아, 익숙한 맛! 이게 첫인상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포가 생각날 때면 먹던 그 맛입니다. 어제 그제 먹던 깊은 맛하고는 달랐습니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어제 아침 먹은 퍼쟈쭈윈의 그 맛이 얼마나 좋은 건지 다시 실감하였습니다. 공항에서 먹은 포의 국물은 설명하기가 쉬운 감칠 맛이었습니다. 조미료에 의존한 바가 큰 국물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어차피 외식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기에 조미료의 맛을 심하게 거부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포를 연속해서 몇 번 먹으며 조미료가 들어간 감칠 맛과 조미료 없이 고기와 야채만으로 낸 천연의 깊고 그윽한 감칠 맛을 오랜만에 비교할 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베트남 여행가시는 분들 검색 많이 하셔서 어느 도시에서든 쌀국수 맛있기로 유명한 집의 포 많이 드시기 바랍니다. 맛있는 포 많이 먹는게 남는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여정의 쌀국수 기행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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