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으 음식일기 (24): 복날의 천렵,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먹지 않았다 나의 반백년 음식일기


날씨가 무더우니 자꾸 에어컨 신세를 지게된다. 여름은 마땅히 더운 계절이고 옛날엔 에어컨 없이도 그런대로 넘겼으니 어디 그냥 한번 버텨볼까하고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면 5분을 못넘긴다. 차라리 창문을 닫은 채로 에어컨을 끄면 제법 오랫동안 시원한 기운이 남아서 그런대로 버틸만하다. 몇 년전에 홍콩에서 문득 친한 이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옛날에 홍콩에서 에어컨이 없을 때는 어떻게 지냈냐고. 그 이는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이로, 그가 어렸을 때는 홍콩에 선풍기는 있었지만 가정에 에어컨은 없이들 살았다고 했다. 지금은 일년 365일 에어컨이 없이는 살 수가 없을 것만 같은 홍콩의 기후에서 에어컨이 없는 생활을 상상하기가 힘들어서 그의 대답이 궁금했다. 

그 때는 고층빌딩이 별로 없어서 바람이 잘 불었던 것 같고,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더운 공기가 없어서 였는지 도시 전체가 지금처럼 덥지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 때의 대화가 생각난 건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이다. 내 어렸을 적엔 그저 그러려니 하고 여름을 잘 났던 것 같다. 어른들은 더웠는데 아이라서 더 잘 견뎠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긴 자다가 더워서 벌떡 벌떡 일어나서 잠을 설쳤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난다. 

나는 여름이면 늘 고향에 내려가 지냈으니 실제로 더울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일찌감치 저녁밥 먹고 모기를 쫓으려 마당에 모닥불 같은 것을 피운채 창문을 다 열어놓고 모기장안으로 들어가 잠을 자면 시원했다. 설악산과 동해바다 사이는 밤이 되면 서울보다 온도가 몇도 쯤은 낮았는지도 모르겠다. 개학이 가까워 올무렵이면 바닷물이 차가와 해수욕도 못하고,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이불도 살짝 솜이 들어간 누비이불 같은 걸로 갈아 덮었던 생각이 난다.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해수욕이다 물놀이다 매일 쏘다니며 놀아서 온몸이 새까맣고 반질반질했다.  서울에 올라가 개학을 맞이하면 시골에 다녀온 아이들은 한결같이 까맣게 변했고 허물을 벗듯 껍질이 벗겨지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개울가에서 동네 청년들이, 때로는 어른들이 모두 모여 큰 규모로 천렵을 했던 생각이 많이 난다.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 늘 옹고지탕을 끓여 먹었다. 천엽, 천엽 이렇게 말하던 것이 사실은 '천렵'이라는 말의 발음이 변한 것이라는 것도 아주 나중에 알았고, 옹고지라는게 미꾸라지보다 작은 고기로 쌀미꾸리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는 것은 최근에 검색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지금 기억으로는 고추장 된장을 풀었는지 얼큰한 맛이 나는데 이런저런 야채도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구수해서 밥을 말아 먹으면 맛이 아주 그만이었다. 아이들이 옹고지 잡는 걸 돕겠다고 텀벙거리고 가까이 가면, 오히려 방해가 되니 멀리가서 놀다가 먹을 때 부르면 오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몇시간이고 물놀이를 하다보니 허기가 졌을 것이고 그래서 옹고지탕이 더욱 맛이 좋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밥과 탕을 나눠주는 데로 가면 옆에 동이로 퍼다놓은 막걸리가 있어서 들척지근한 술향기가 퍼졌다. 늘 일찌감치 취해서 기분좋게 주정을 하는 이도 반드시 한두명이 있었고. 

오늘 적고 싶은 건, 내가 개를 먹은 적이 있었느냐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평생 개를 먹은 적이 없다. 최소한 지금의 내 기억에는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는 개도 음식이니까 먹어도 되고, 자기가 안먹는다고 남을 비난할 것까지는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속마음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개를 안먹었으면 하는게 진심이다. 어려서 하교길에 정릉천에서 개를 매달고 그을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다. 맛있으라고 개를 매달아 두들겨서 잡는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그런 장면은 목격한 기억은 없다. 

다만 어려서 시골에서 천렵에 개를 잡아 요리하는 걸 본 기억은 있다. 그렇다면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가마솥을 걸고 마을 사람들이 개를 잡아 다 같이 나눠먹을 때에 예닐곱살 먹은 아이가 '전 개를 못먹으니 안먹겠어요'하고 거부의사를 제대로 밝혔을리가 없다. 그랬다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겠지. 그런 명백한 거부의사를 표명한 기억이 없으니 개장국을 한그릇 떠주었으면 먹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고, 그걸 평생 '내가 먹은 건 옹고지탕이야'라고 자의적으로 기억을 왜곡했던 것은 아닌가 조금은 괴롭기도 하였다. 

그러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에 다시 한번 안도하게 되었다. 개를 잡는 날에는 천렵에 나온 사람들이 많아서 개 한마리로는 부족했고, 어차피 시간이 남아 잡는 옹고지니까 옹고지탕도 같이 끓였다는 사실을 기억력좋은 고향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개장국으로 천렵을 하는 날에도 옹고지탕만 먹은 걸로 알리바이가 성립되었다. 

어릴적 천렵을 하던 기억은 머리속에 생생한데, 그림으로 그려보려니 필력도 딸리고 시간도 없고... 위의 그림처럼 그냥 5분동안 낙서마냥 끄적거리는게 한계다.  언젠가는 수십명이 나오는 '어노학동천렵풍속도(於蘆鶴洞川獵風俗圖)'를 채색화로 그려보고 싶다. 오늘은 집에 돌아오니 쥬스가 복숭아를 사다놓았다. 편의점에서 원플러스원으로 네개 1,500원에 샀다고 했다. 생각보다 너무 달고 맛있었다. 이 가격이면 산지에서는 얼마에 나왔을까. 농사지은 이한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017년 8월 더운 여름날, 나는 어려서 천렵은 많이 했어도 거시기는 입에 대지않고, 옹고지탕만 먹은 것으로 나의 정사(正史)에 기록하기로 하였다. 


커피계의 금수저 이야기: 우리도 맛있는 커피를 먹자(5) 술/커피이야기


이 커피 한잔에는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위의 사진을 찍고나서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커피잔을 들어 입에 대고 맛을 보았습니다. 그대로 마시기에 온도도 딱 맞았고 맛도 물론 좋았습니다. 혹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맛이 좋으면 어떻게 하나, 여태까지 마셨던 커피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이렇게 회의가 들면 어떻게 하나 은근히 걱정도 되었거든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정도의 커피는 이곳저곳에서 여러번 마셨던 기억이 있음을 확인하고, 도리어 편안한 마음으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밥과술 블로그를 하기 시작한지 벌써 꽤 여러해가 되었는데 그동안 이웃블로그나 덧글에서 배우거나 알게 되어서 찾아간 가게는 여럿있습니다만, 제 블로그를 쓰기 위해서 일부러 찾아가거나 한 가게는 기억에 없습니다. 이 커피숍은 밥과술 블로그의 취재를 겸해서 찾아간 첫번째 가게입니다. 이번 커피 씨리즈는 한국의 천원짜리 편의점 커피가, 이천원짜리 프랜차이즈 커피가 일본의 그것만큼 맛있어지기를 절실히 기대하며 쓰는 블로그입니다. 그래서 거금(!)을 투자하여(내가 아니라 인심좋은 독지가가!) 이 집에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언젠가 커피업에 종사하시는 분 가운데 이집 주인 같은 사람 하나쯤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소개합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요새는 우리나라도 많습니다만 일본 책방에 가면 커피에 관한 서적이 정말 많습니다. 저도 이래저래 들릴 때마다 손에 잡히는 걸 한두권씩 사다보니 수십권이 되었습니다. 그가운데 최근에 눈에 띄어 산 게 '편의점 커피는 왜 고급 호텔보다 맛이 좋은가'라는 책입니다. 아래 사진 왼쪽 위가 그것입니다. 이 책 제목을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이 들어 금방 샀습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게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것이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요. 저도 언제부터인가 오랫동안 일본에서도 고급호텔의 커피가 맛이 없다고 느낀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도 참고가 될 것 같으니 다른 기회에 이 책에 대한 설명과 함께 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 책을 쓴 가와시마 요시아키(川島良彰)라는 이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저는 이 저자의 다른 책을 매우 인상깊게 읽었기에 금세 이름이 눈에 익었습니다. 인상깊게 읽은 다른 책이란 아래 사진 왼쪽 아래의 것 입니다. 제목이 '나는 커피로 세계를 바꾸기로 하였다' 입니다. 대단히 자신넘치는 제목인데 읽고나면 그럴만도 하겠다, 납득이 갑니다. 



만일 커피계에도 금수저가 있다면 저는 이사람이 바로 거기에 해당하는 이라고 하겠습니다. 금수저라는게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돈이 많다거나 그런 뜻은 아닙니다. 1956년생이니 작년에 환갑이 지난 나이인데, 태어나기를 시즈오카라는 중소도시에서 커피 원두를 로스팅하여 도매를 하는 집의 장남으로 태어납니다. 그게 금수저라고 부르는 이유의 거의 전부입니다. 60여년전에 이미 커피원두를 로스팅하여 파는 도매상이 일본에는 지방마다 있었고 그 집의 아들로 태어난게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부르고 싶었습니다. 책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는 어려서 커피 원두를 포대로 쌓아놓은 창고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아동문고나 잡지등을 읽는걸 좋아했다고 합니다. 원두커피를 보관하는 창고는 통풍이 잘되고 습도도 낮습니다. 당연히 사람에게도 쾌적합니다. 그는 원두커피가 담긴 마대위에 누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책을 읽으면 상상의 세계로 빠져드는게 그렇게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 마대에 찍힌 로마자는 브라질,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국가들이어서 그에게 해외란 바로 그 커피담는 마대에 찍힌 나라들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포대에 담긴 커피는 지구 건너편 누가 어떻게 재배한 것인가, 호기심이 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초등학생때부터 자연스럽게 나도 커서 커피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마음을 먹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브라질에 가서 커피 재배를 배우고 유럽에 가서 커피를 파는 비지니스를 배우겠다는 좀 더 구체적인 꿈으로 이어집니다. 아까 커피집의 아들로 태어난게 금수저로 불리는 이유의 '거의 전부'라고 했는데 나머지를 채울 조그만 이유도 있습니다. 여름방학동안 이 집으로 알바를 하러온 대학생이 가져와 들려준 음악에 그는 온몸이 전율하는 경험을 합니다. 그게 라틴계 가수 호세 펠리치아노의 노래였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이 때 '난 중남미로 가야할 운명이야, 절대로 가고 말거야'라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곤 라틴음악의 매력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가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산 LP판은 알프레드 하우제의 탱고. 어린 나이에 자면서도 탱고의 스텝을 밟는 꿈을 꿉니다. 이게 그를 커피계의 금수저라고 부르는 이유의 모두입니다. 사람에 따라 믿거나 말거나인데, 저는 아마 이 사람의 전생에는 라틴아메리카 어딘에선가의 삶이 있었던 것 같다고 여깁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이 초등학생은 브라질 대사관의 주소를 어떻게 알아내어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일본의 시즈오카라는 곳의 어느 커피집의 아들입니다. 아직 초등학생입니다만, 브라질에 가서 커피 일을 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상담에 응해주세요.' 한번 보낸 편지에 답장이 없자 또한번 보냅니다. 이번에는 답장이 옵니다. '일본정부의 해외이주사업단과 상담하라'는 사무적인 내용으로. 브라질 대사관에서 편지가 오니 부모님은 놀랍니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중학교 졸업하면 보내줄테니 일단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그는 아버지가 타주는 우유듬뿍의 커피우유가 아니라 스스로 사이폰으로 커피를 내려마시기 시작합니다. 만데린 등 자신의 입맛에 맞는 커피도 찾아냅니다.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고등학교는 졸업하고'라고 말이 바뀌더니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나니 '일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가도 늦지않다'라고 브라질로 보내준다는 조건은 계속 바뀝니다.  

그러다가 자식의 집요한 성격을 안 아버지는 이 상태에서 일본에서 대학 4년 보내봤자 허송세월할게 뻔하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중남미로 커피 시찰을 다녀온 뒤 유학을 권하게 됩니다. 이 때 상담을 하며 도와준 사람이 주 일본 엘살바도르 대사입니다. 그는 자기 나라의 커피수출을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한 사람이라 일본의 여러 커피업자들과 안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긴 이야기는 건너 뛰고, 드디어 1975년 그는 엘살바도르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Universidad de Centro America 라는 대학에 입학합니다. 동양인은 혼자라 스페인어도 빨리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국립커피연구소(Instituto salvadoreño de investigatión del Café)라는 곳을 찾아가 배우게 해달라고 조릅니다. 이곳은 당시 브라질, 콜롬비아의 연구소에 버금가는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이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에피소드는 또 건너 뛰고, 그는 그곳에서 커피연구에 빠져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몇년동안 불안불안하던 차에 79년 쿠데타가 일어나고 엘살바도르는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내전상태로 들어갑니다. 모든 상사주재원이 철수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엘살바도르에 남아서 커피연구를 계속 합니다. 그사이 자신을 봐주었던 전 주일대사가 총격으로 살해당하는 슬픔도 겪고 본인도 엄청난 지진과 계엄령하의 군인들에게 생명을 위협받는 등 갖가지 고난을 경험합니다. 쿠데타후 2년을 더 버티다가 도저히 남아 있을 수가 없게 되었을 때 그는 로스앤젤리스로 가서 식당 알바를 하며 다시 엘살바도르로 돌아갈 기회를 봅니다.

그럴 때 일본 고베에 본사를 둔 UCC우에시마 커피의 창업자인 우에시마 회장이 그를 찾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회사는 일본 커피업계에서 큰 손입니다. 회장은 일본인으로 커피 연구를 위해 중남미에 유학을 한 사람이 있단 소문을 듣고 수소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자마이카로 가서 블루마운틴 지역에 커피농원을 만들려고 하는데 책임자가 되어달라고 청합니다. 삼고초려 끝에 그는 UCC에 입사하여 자마이카로 가서 커피농원을 일굽니다. 산불도 만나고 기상관측 최악의 허리케인으로 수확전의 커피나무가 모두 쓰러지는 피해도 겪고 본인은 급성간염으로 쓰러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몇년에 걸쳐 3개의 농원을 이뤄냅니다. 

그 뒤 곧바로 다시 발령이 나서 하와이 코나지역에서 커피 농원을 개척하는 일을 합니다. 억울한 모함으로 폭행죄로 고발도 당하고, 별에별 수난도 따르지만 그는 커피가 좋아서 그 임무를 몇년에 걸쳐 다 수행해 냅니다. 그다음에 발령이 다시 나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로 가서 몇년동안 UCC 만델링 커피농원을 개척합니다. 간단하게 몇줄로 줄여써서 그렇지 참으로 산전수전을 겪습니다. 

그가 엘살바도르에서 커피 연구를 6년 한 뒤에 우에시마 커피회사에 들어가 커피농원을 일구느라 해외에서 지낸 시간만 22년입니다. 본사로 돌아와 그는 5년을 더 근무한 뒤 퇴사를 합니다. 그사이에 그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섬과 인도양 레유니온 섬 등을 다니며 절멸위기에 이른 오리지널에 해당하는 커피 품종을 발견하고 또 그 보전에 성공하기도 합니다. 

그는 지난 40년간 50개국이 넘는 나라를 방문하며 2천개 이상의 커피농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다른 얘긴데, 커피란게 다 일정한 고도 이상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농원에서 일을 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산자락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의미합니다. 독립하여 자신의 커피사업을 시작한 그는 새로운 커피를 찾아, 또는 커피재배의 기술지도를 위해 지금도 일년에 100일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커피 헌터'라는 별명이 붙었고 그를 '커피계의 인디존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네요. 그에게는 지금 감투가 많습니다. 일본안에서도 그렇고 해외에서도 르완다나 태국같은 나라에서 자국의 커피 산업 발전을 위해 컨설팅을 요청하는 등, 찾는 데가 많은가 봅니다.  

그는 2008년 독립을 한 뒤에 미카페토(Mi Cafeto)라는 브랜드로 커피숍을 엽니다. 도쿄 모토아자부(元麻布)에 본점을 둔 이 가게는 지금 점포를 10개로 늘렸습니다. 일본 가시는 분들은 기회가 닿으면 한번 들러보세요. 커피 맛은 당연히 좋을 겁니다. 한국의 스페셜티 커피숍들과 비슷한 가격입니다. 


맨 위에 올린 사진을 다시 한번 싣습니다. 얼마전에 이 '커피헌터'라는 이가 얼마전에 긴자에 오픈한 '그랑크뤼 카페 긴자'라는 곳에서 마신 커피입니다. 그는 커피집에서 태어나 6년간 커피유학을 하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산중에 있는 커피 농원에서만 20년 넘게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일체의 타협을 하지않고 만들어 낸 브랜드가 'Grand Cru Café'라는 커피입니다. 그리고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오픈한 가게가 '그랑 크뤼 카페 긴자' 입니다. 금년 4월 달에 긴자에 오픈한 '긴자 식스(G SIX)'라는 건물에 들어있습니다. 아래가 가게 입구입니다.


입구에 진열된 샴페인 모양을 한 병들은 커피원두가 담긴 병입니다. 디스플레이고 실제 원두병은 셀러에 들어있습니다. 그가 쓴 저서를 여러권 읽었는데, 그가 한 말 가운데 인상깊은 말이 있습니다. '커피도 과일이다' 그만큼 맛도 다양하고 선도와 보관등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진다는 뜻이겠지요. 그런 그가 '세계 최고의 커피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만들어낸게 그랑크뤼 커피라고 합니다. 

그는 커피 밭의 선별, 재배에서 수확, 원두의 가공 및 선별, 운송, 보관, 로스팅, 포장 등에서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최고를 고집합니다. 그래서 커피원두에도 빈티지 제도를 도입합니다. 커피를 로스팅한 뒤에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포장된 원두를 사면 바늘구멍같은게 뚫려있지요. 가스가 빠지라고 만들어놓은 거 랍니다. 그런데 그는 그 때 커피고유의 향도 함께 날아간다는 걸 알고 대책을 강구합니다. 결과로는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견딜 수 있게 샴페인병에 원두를 넣고 가압포장을 합니다. 그러면 커피의 아로마가 다시 원두로 배어든다고 하네요. 

긴자에 있는 이 가게는 테이스팅룸 같은 분위기 입니다. 돈을 벌려고 만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돈은 다른 가게에서 잘 버니까 조한 잔씩 파는게 아니라 원두 100그람짜리 한병이 최소단위 입니다. 약 다섯잔에서 여섯잔이 나옵니다. 셀러에 두주일 보관이 가능해서 혼자 여러번에 걸쳐 와서 먹던가 여럿이 와서 한번에 먹던가는 자유입니다만, 커피한잔 가볍게 훌쩍은 안되는 가게입니다. 제일 싼 게 100그램에 만 엔, 우리 돈 십만원 입니다... 솔직히 만엔 쓴다고 당장 굶어죽을 처지는 아니지만 마음속으로 커피에 이런 돈을 써도 되나 걸렸습니다. 이럴때는 변칙을 씁니다. 평소 밥 잘사는 이한테 내가 블로그에 커피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취재삼아 가서 마셔보고 싶은 가게가 있는데 내 돈을 내기에는 윤리상 좀 거시기 하다(논리적으로는 내가 들어도 납득이 어렵지만) 그랬습니다. 마음씨 좋은 독지가는 흔쾌히 사겠다고 동행해 주었습니다. 저는 대신 저녁을 사기로 하였지만요. 아래가 가게 안의 사진입니다. 안쪽으로 보이는게 셀러입니다.   


가게는 한산했습니다. 한사람이 와서 주문을 하여 마시고 있었습니다. 깔끔하게 정장차림을 한 바리스타가 정성스레 설명을 하고 커피를 드립해 주더군요. 우리 일행도 주문을 하여 두 잔씩 마셨습니다. 우리가 일어설 즈음에 3명 일행이 또 들어오더군요. 바리스타에게 저분들은 뭘 시켰냐고 살짝 물었더니 블루마운틴을 시켰다고 하더군요. 부러워하면 지는거다라고 되뇌이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아래가 우리가 마신 브랜드하고 더 비싸서 그냥 구경만 한 그랑크뤼 보틀입니다. 여섯잔을 마셨으니 한 잔 당 우리 돈 만7천원 꼴 입니다. 서울에 있는 스페셜티 커피숍의 두 배입니다. 강남에 있는 어느 호텔 커피숍보다는 싸구나 위안을 삼고 나왔습니다.  





저는 모든 커피숍이 다 이렇게 철저하게 손이 가고 그래서 비싸게 먹힌 커피를 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다 들어간 커피를 내어서 지향할 수 있는 최고점을 찍어내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리 밀라노에서 열리는 패션쇼에서 발표되는 의상은 평소에 입을수 있는 옷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업계사람들은 세계 패션의 유행과 흐름을 예측하듯이, 최고의 커피가 싸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커피의 맛을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이런 전문가들이 먹고 마시는 업계에서도 나오겠지 기대하면서 그의 저서를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광화문, 인사동 그리고 일본: 우리도 맛있는 커피를 먹자(4) 술/커피이야기


그저께 오후 느지막이 맛있는 커피를 마셨습니다. 광화문 부근의 운치있는 커피숍에서요. 커피를 테이블로 가져오고 곧바로 하늘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한옥을 개조한 가게인데 처마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해서 좋았습니다. 옛날엔 장대비가 오면 지붕 기와장 위로 비 떨어지는 소리, 함석 물받이로 물흐르는 소리, 빗줄기가 마당을 때리는 소리가 어우러져 대단히 요란했습니다.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이런 빗소리를 잊고 산지 오래였는데 어제는 간만에 어릴적 생각에 잠기며 커피를 즐겼습니다. 사진은 비가 오기전에 찍은 겁니다. 막상 비가 내리는 풍경은 넋놓고 구경하느라 사진찍는 것도 잊었습니다.

제가 마신 건 커피고, 건너 편의 드링크는 감귤쥬스인데 저와 미팅을 했던 미국친구의 것입니다. 그 친구는 이미 오전부터 커피를 많이 마셨다고 쥬스를 시켰지요. 이 집은 '나무사이로'라는 집인데 우리는 그전에 다른 집에서도 함께 커피를 마셨습니다. 아래 집에서요. 


전후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광화문 부근을 자기 동네로 삼고 커피숍, 막걸리집을 휘젓고 다니는 존이라는 친구가 있다는 얘기는 지난번 포스팅에 간단히 소개한 바 있습니다. 어제 그 친구와 미팅이 있어서 제가 차를 가지고 그 부근으로 갔습니다. 

존: 내가 안내하지. 어디로 갈까? 
밥: 지난 번에 커피공방 네가 알려줬잖아. 내가 아는 분한테서 그 동네 커피투어라는 데가 맛있다고 추천받았어 (내가 블로그를 하는데 이웃 블로거님이 추천을 해주셨다, 뭐 이런 얘기는 생략하였습니다). 
존: 어, 거기 내가 잘 알아. 우리 동네에 내가 아는 것만 세군데 있어. 아주 조그만데도 있고. 거기 커피 맛있어.

그래서 갔지요. 커피가 맛이 좋더군요. 위의 사진입니다. 그런데 가게안에 손님이 많아서 길게 앉아 업무얘기를 하기에는 좀 소란스러운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다시 의견을 내었습니다. 

존: 바로 이 부근에 '나무사이로'라고 있는데 공간도 넓고 지금은 사람이 별로 없을 거야.
밥: 커피 맛있니?
존: 응, 맛 좋아. 난 영어 사이트에서 찾은 건데, 아마 한국 인터넷에도 유명한 집으로 나올 걸? 

그래서 간게 맨 위의 사진이었습니다. 드립커피가 역시 맛이 좋았습니다. 두번째 잔은 삼천원으로 내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둘러보니 아래 사진처럼 한옥을 개조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실 요즈음 블로그에 커피에 대한 글을 쓰다보니, 유난히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 느낌이 듭니다. 바더마인호프현상이나 프리퀀시 일루젼 같은 것과는 다른 거 겠지만, 주변에 커피를 따지는 사람도 많은 것 같고 눈에 커피집도 더 자주 눈에 띕니다. 어제 점심먹고는 투썸플레이스에서 콜드블루라는 걸 시켜 마셔보았습니다. 맛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이는 아마도 제가 평소에 아이스커피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저는 아이스커피하고는 별로 친하게 사귀지를 못했습니다.


수요일 저녁에는 인사동에서 식사후에 커피를 마셨습니다. 런던에서 온 또 다른 친구하고 저녁을 먹을 일이 있어서 인사동 한정식집에를 갔습니다. 오랫만에 갔더니 4,5만원 하던 한정식이 메뉴에서 없어졌더군요. 그리고 1만5천원 짜리 한식이 있고 별도로 모듬전, 불고기, 해물 등을 추가로 시킬 수 있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김영란법이 생긴 뒤 변한 거라고 합니다. 어쨌거나 한정식집에서 밥을 먹고 오래 앉아 있기 뭐해서 부근의 커피숍을 찾아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이름이 '트루어스'라는 집이었는데 모르고 그냥 들어간 집 치고는 커피가 꽤 맛이 좋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이 간 친구가 카푸치노를 시키고는 실실 웃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이태리에서는 아침 10시 넘어서 카푸치노 시키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아시아에 오면 24시간 카푸치노를 마실 수 있어서 좋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태리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진짜 그런가 하고 넘어갔습니다. 아래가 그저께 밤에 마신 커피 사진입니다. 



이렇게 한국도 맛있는 커피숍이 늘어나고는 있는데, 대개 값이 비쌉니다... 전반적으로 커피가 맛있는 집이다 싶으면, 그 물가 비싸기로 이름난 일본보다도 가격이 쎈 것 같습니다. 여러번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원두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역사가 짧다보니 원두 구매과정에서 일본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같고 임대료 같은 게 일본보다 높은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좀 억울하기는 합니다. 인건비는 일본보다 훨씬 쌀텐데 말이죠. 인건비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납득이라도 하게 최저 임금이 빨리 만원이상으로 올랐으면 합니다. 

바라건대 한국도 일본처럼 커피가 비싸고 맛있는 전문점은 우리돈 5천원 이상이지만 그런 가게는 좀 드물고, 보통 커피집은 3천원에서 4천원에도 맛있는 커피를 내며 도토루 같은 체인점은 2천원 남짓에, 그리고 편의점에서는 천원에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문화가 정착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바램을 바탕으로 일본의 커피 이야기를 계속 합니다.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업무차 들렀습니다. 일은 금요일에 다 마치고 주말에는 쉴 수가 있었습니다. 블루보틀의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이 연주여행차 일본에 왔다가 영감을 받았다는 커피숍의 하나인 '람부르'에 들렀습니다. 제임스 프리먼은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전도 유망한 클라리넷 연주자였는데 음악가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커피사업자로 변신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섬세하고 까칠한 뮤지션이 자신이 예술의 세계에서 추구하던 완벽함과 엄정함을 커피사업에 도입하여 나온게 이런 브랜드다, 이러면 스토리텔링으로도 멋있습니다. 물론 그게 사실이겠지만요. 

도쿄 긴자에 있는 람부르는 불어로 L'ambre 라는 이름의 가게입니다. 영어로 amber, 우리말로 '호박(琥珀)'이라는 뜻이니 잘 내린 커피의 빛깔을 나타내는 이름인 것 같습니다. 이 집은 고집스러운 커피 장인의 정신을 지키느라 일본의 킷사텐(喫茶店;커피샵)에서 흔히 내는 간단한 경양식을 취급하지 않습니다. 케잌이나 쿠키도 없습니다. 아래는 들어가는 입구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영어로 COFFEE ONLY 라는 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perfect 라는 단어, 자가 로스트, 핸드 드립 이라는 말과 함께 1948년 창업이라는 표기도 보입니다. 그러니까 70년 된 가게입니다. 나름 호박색을 재현한 간판일 터인데, 일본어로 ’珈琲だけの店’ 그러니까 '커피만 파는 가게'라는 말이 가로로, 그리고 세로로 보입니다. 



가게 안은 아주 좁습니다. 테이블이 서너개 있고, 카운터에 있는 의자 몇개가 전부입니다. 커피는 대단히 맛이 좋았습니다. 8백엔, 그러니까 8천원 짜리를 먹었습니다. 조금 더 싼 것도 있고 조금 더 비싼 것도 있었는데 한국 고급 커피숍의 가격과 수준을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마셨습니다. 가게가 워낙 좁은데 손님들이 있어서 카메라를 들이 댈 데가 없어 겨우 두 컷 찍은게 아래 두장입니다. 보통 일본의 커피숍은 정결하고 단정한 인테리어가 특징이기도 한데 이 집은 그 쪽하고는 거리가 있습니다. 카운터 너머로 원두가 들은 병이 늘어서 있는게 인상적입니다. 



나오다 보니 가게 입구에 아래같이 로스팅 룸이 있었습니다. 원두 볶을 때 오면 참 향기가 기가 막히겠다 생각하며 가게를 나섰습니다. 


일요일 오후 긴자의 메인스트리트는 보행자의 날입니다. 산보삼아 구경삼아 나온 사람들로 넘쳐났는데, 중국인 관광객이 엄청 늘어난 걸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에 물린 중국사람들이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는 이야기는 몇년전부터 심심찮게 들리긴 했는데 사드 소동이 이런 추세를 가속화시킨건 아닌가 싶어 좀 씁슬하긴 했습니다.  


아무튼 오랫만에 긴자를 걸으니 많은 생각이 났습니다. 얘기가 나온 김에 긴자의 커피숍 몇개를 더 소개합니다. 우선 긴자에서 일하던 시절에 자주 가던 커피숍인데 이 날은 커피를 많이 마신 날이라 다시 찾지는 않았습니다. '웨스트'라는 커피숍인데 일터 바로 맞은 편에 있어서, 분위기가 좋아서, 커피맛이 좋아서, 등의 이유로 자주 다녔습니다. 이집은 연하게 로스팅한 커피에서 내린 커피가 딱 내 입맛에 맞는데다가 계속 리필을 부탁해도 늘 친절하게 따라주어 마음에 드는 집입니다. 정확하게는 '긴자 우에스토(銀座 ウエスト)'라고 옛날 표기의 이름인데 창업 70년을 넘겼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구글에서 퍼온 것들 입니다. 흰 테이블보와 긴 등받이에 씌운 흰 커버가 늘 정결해서 사람들이 좋아하지요. 종업원의 유니폼도 아주 옛날의 그것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 같습니다.


이 집의 특징은 하루종일 잔잔하게 클래식음악을 트는데, '바람의 시(風の詩)'라는 조그만 리플릿을 주간으로 발간합니다. 고객들의 시나 에세이를 투고받아서 내는 소박한건데 홈피를 가보니 이번 주로 통권 3,572호가 나왔네요. 그 포맷 그대로 전통이 70년간 계속되어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음으로 소개할 커피숍은 '파울리스타'입니다. 로마자로는 CAFE PAULISTA 라고 씁니다. 이 집은 창업이 1909년으로 문을 연지 108년이 되니까 아마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가 아닐까 싶습니다. 파울리스타는 '상파울로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브라질산 커피를 보급하려고 생겼다는 이 집은 옛날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비롯한 숱한 문인들이 드나들던 곳인데 요즈음 사람한테는 죤 레논이 여러번 찾았고 리필도 여러번 했었다는 일화로 더 유명합니다. 아래 사진 역시 구글에서 퍼온 겁니다. 존 레논이 사인을 한 커피잔 사진도 마찬가지 입니다. 
 

존 레논은 일본의 커피문화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긴자에는 그가 오면 들렸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 또하나 있는데 '기노하나(樹の花)'라는 곳 입니다. 저도 이곳은 소문만 들었지 옛날에도 가본 적은 없습니다. 존 레논의 이름에 끌려서 가는 것 같아서 괜한 거부감이 들지 않았나 싶네요. 요새 같으면 그래 존 레논이 찾았다니 얼마나 커피가 맛있었길래, 하고 가볼만도 할텐데 이젠 일부러 찾아다닐 시간이 없네요. 아래 사진은 다 구글에서 퍼온 겁니다. 가게로 들어가면 이렇게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사인이 걸려있다고 합니다.


일본에는 이렇게 유서깊고 맛으로 승부하는 커피숍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깃사텐'이라는 이름으로 한 때 변칙영업을 하는 업장이 많았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남녀 둘이 들어가는 컴컴한 '도한킷사(동반카페)'에서 부터, 서빙을 하는 종업원이 팬티를 안입었다는 '노판킷사' 등등 희한한 업소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제가 갔을 때는 이미 없었고, 남아있는 것은 만화를 엄청 가져다 놓은 '망가킷사'나 지하철이 끊어지면 시발전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심야킷사' 정도 였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에 맞서기 위해 생겨난 말이 '쥰킷사'입니다. 한자로 순수하다는 '순(純)'자를 붙인 말이니 우리말로 읽으면 '순끽다(純喫茶)'가 되겠습니다. 어쨌거나 오랜 세월 많은 대중들이 일상생활에서 품질좋은 커피를 마셔가며 일구어놓은 커피문화인지라 일본에는 아직도 전국 구석구석에 맛있는 커피숍이 퍼져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관한 서적도 대단히 많습니다. 아래에 몇가지를 소개합니다.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전국을 찾아다닌 커피숍 1,300점포 이상" 이라는 카피가 인상적입니다. '쥰킷사 1,000군데'라는 책인데 난바 리나라는 이가 저자네요. 저도 이번에 알았는데 커피숍에 관한 대단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더군요. '도쿄킷사텐연구소 제2대 소장'이라는 직함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편의점계에 채다인님이 있다면 일본 커피계에는 이런 사람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아래는 '47개 도도부현의 쥰킷사, 사랑할만한 110군데의 기록과 기억'이라는 책인데 "쥰키사보존협회"라는 곳의 야마노우치씨가 썼군요. 그림이 정겹습니다. 

아래는 "솔직히 남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추억의 맛있는 가게"라는 책과 "도쿄 킷사 명점포 100"이라는 무크입니다. 이건 이번에 알게되어 저도 아마존에 주문을 넣었습니다. 

쓰다보니 밥과술 블로그 '나의 반백년 음식일기' 카테고리에 들어가야 알맞을 것 같은 기억들이 마구 튀어나오네요. 가끔씩 기억이란게 그 자체에 생명이 있어서 자기 주장을 하는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몸 안쪽 어디엔가 잠들어 있던 기억들이 깨어나 꿈틀거리며, 나를 꺼내서 남에게 알려줘, 나를 글로 적어서 남겨줘, 이렇게 보채기도 하고 때로는 준엄하게 명령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로부터 청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혼자 꾸역꾸역 글을 쓰게 되는 때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도 구글에서 찾은 건데 '고베(神戸), 옛날 그리운 쥰킷사'라는 책입니다. 다음번은 고베에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예고편에 삼아 올리는 사진 한 컷이 되겠습니다. 커피 씨리즈는 일본 이야기를 두번 정도 더하고 시애틀로 갔다가 유럽으로 건너가 마무리를 지을까 싶네요. 


서울, 시애틀, 샌프란 그리고 도쿄: 우리도 맛있는 커피를 먹자(3) 술/커피이야기


폴더를 뒤져보니 작년 6월 23일 이었더군요. 서초동에 있는 샘밭막국수에 들러 점심을 먹고 그 옆에 있는 블랙드립이라는 커피숍에 들러 찍은 사진입니다. 몇 평 안되는 조그만 공간에서 드립커피를 내는 이집의 커피는 훌륭했습니다. 이게 다 트친이신 미식의별님 덕에 알게된 행운이어서 운수좋은 날 이라는 제목으로 그날 오후 사무실에 들어와 블로그에 글도 올렸습니다. 이 커피숍은 나중에도 막국수를 먹으러가면 꼭 들리곤 했는데 막국수집이 길건너로 이사를 간 다음부터 발걸음이 뜸하게 되었습니다. 참 맛이 좋은 커피숍을 알게된 기쁨이 적지않았는데 그날은 맛있는 막국수집을 알게되었다는 더 큰 감동에 좀 밀렸던 것 같습니다. 하기야 커피가 맛있는 집보다 막국수가 맛있는 집이 훨씬 드무니까요. 

맛있는 막국수, 냉면은 집에서는 해먹을 길이 아예 없고, 맛있는 곰탕, 설렁탕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집에서 해먹기가 여간 번거로운게 아닙니다. 그런데 맛있는 커피는 마음만 먹으면 집에서도 즐길 수가 있습니다. 제 블로그에 이 커피씨리즈를 쓰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주변 커피숍 아무데나 들어가도 웬만큼 맛이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입니다. 천원에 파는 한국 편의점의 커피수준이 같은 값인 일본돈 백엔에 파는 일본 편의점 커피만큼 수준이 되었으면 하는게 마지막 바램입니다. 

발품 팔아 찾아다니고, 또 비싼 돈을 치르면 이젠 한국에서도 맛있는 커피를 마실수 있는 곳이 많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커피는 작심하고 찾아다니는 , 어쩌다 먹는 음식이 아니라 웬만한 성인이라면 매일 매일 마시는 일상의 음료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커피는 물 다음으로 친근한 음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 커피의 전반적 수준이 외국만큼 올라가려면 원두를 구입하는 업자가 외국의 업자와 비교해 경쟁력을 가져야 하고, 로스팅하는 업자들의 수준이 올라가야 하고, 한잔한잔 커피를 주문받는 가게가 성의와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결국 소비자의 입맛입니다. 맛있는 걸 골라먹고, 맛없는데는 안가면 장사하는 사람들은 알아서 변합니다. 맛있는 커피를 손쉽고 편하게 먹고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커피이야기를 몇 번에 걸쳐 더 하려고 합니다(이곳 저곳 다닌 염장성 내용이 나옵니다. 양해바랍니다). 그럼 커피이야기 그 세번째를 시작합니다.  

한 달 전쯤 미국에서 온 친구를 데리고 광화문에 있는 삼계탕집 토속촌을 갔습니다. 그는 그레이트, 어썸, 쏘굿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뚝배기를 싹싹 비웠습니다. 먹고 나와서 그 친구의 안내로 부근의 카페에 들어갔는데 커피가 참 맛이 좋았습니다. 이름이 통인동 커피공방인가 그랬습니다. 그 친구는 한국에 오면 늘 광화문에 묵는데 혼자 하도 잘다녀서 광화문, 경복궁 좌우 통인동 사간동 일대의 카페를 저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습니다. 통인시장도 조그만 가게까지 꿰고 있는 골수 친한파 미국인입니다. 내가 커피가 참 맛있다고 하자, 그가 최근 일이년사이에 한국에 맛있는 커피숍이 많이 생겼다며 자기 동네(?) 광화문에 대해 자랑스럽게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커피를 추가로 시켜 마시며 커피에 대한 이야기로 노닥거렸습니다. 아리조나 출신으로 지금은 LA에 사는 그를 존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존: LA 코리아타운에도 맛있는 카페가 많이 생겼단다. 알고 있니?
밥: 글쎄 미국에서는 커피 맛에 대한 기대를 많이 안해서 ㅎㅎㅎ
존: 아니야 요새 몇년 많이 늘어났지. 블루보틀같은 드립카페를 내는 집이 많이 생겼다.
밥: 솔직히 커피는 일본이 정말 맛있지 않니?
존: 동감이야. 내가 아는한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숍은 긴자에 있는 앰버라는 조그맣고 허름한 집이야. 가게에서 직접 로스트해서 내는데 맛이 환상적이야. 난 그집이 좋아서 도쿄가면 꼭 한번은 들러. 내가 묵는 긴자에 있어서 가깝기도 하고. 

그는 '세계에서'라는 접두사를 자신의 경험에 붙여도 될만한 여정을 거친 사람입니다. 젊어서 프랑스 이태리에서도 몇 년씩 살았고 일본도 숱하게 드나들었으며 맛있는 음식을 정말로 좋아합니다. 

밥: 너, 모르고 하는 이야기야? 그 집은 일본어로 람부르라고 하는 집인데 블루보틀 창업자가 영감을 받았다고 여러번 소개한 커피숍이야. 
존: 아, 그래? 몰랐는데 듣고보니 이상하지는 않네. 정말 맛있거든.
밥: 넌 우연히 찾았다고 하는 집이 블루보틀의 원조격인 집이다. 네 입맛 끝내 준다.
존: 내가 석사를 유니버시티 오브 워싱턴에서 하느라고 시애틀에서도 몇 년 살았던 얘기 했던가?
밥: 그랬구나. 스타벅스 많이 갔겠네. 
존: 그 때 내 여자친구가 캐피톨힐에 있는 2호점에서 일했단다. 초창기였지. 전세계에 스타벅스가 두 개 밖에 없던 시절. 진짜 옛날 얘기다.



저도 옛날에 시애틀을 여러번 드나들 기회가 있었는데, 7년전에는 일이 있어서 약 6개월 정도 머물기도 했었습니다. 여자친구가 초창기 스타벅스 바리스타였던 사람과는 현장성, 역사성에서 내공이 현저히 떨어집니다만 나름 시애틀의 맛있다는 커피를 열심히 마시기는 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7년전 시애틀에 머물던 시절 파이크 플레이스에 있던 스타벅스 1호점을 찍은 겁니다. 일 때문에 이곳 광장을 자주 찾았는데 딱 한 번 들어가 마셔보았습니다. 그것도 기념삼아 들어가 본거지, 솔직히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스타벅스의 쓴 맛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옆에 있는 러시아 만두집 '피로시키 피로시키'는 틈만 나면 들렀습니다. 그 때 쓰던 미국 폰이 모토롤라 드로이드라고 슬라이드형 키보드를 장착하고 야심차게 아이폰에 도전장을 던진 모델이었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제와 보니 화질에서는 요새 스마트폰과 큰 차이가 나네요.


아무튼 우리는 'Tully's'니 '에스프레소 비바체'니 '시애틀즈 베스트커피'니 하며 시애틀 커피숍 이야기로 수다를 떨다가 소위 'The Third Wave', 커피업계에 도래했다는 '제3의 물결' 이야기로 화제가 이어졌습니다. 사실 이 '제3의 물결'이란게 명명하기 나름이어서 어느 분야에서든 대개 3번째라고 이야기하기 전의 제1의 물결, 제2의 물결을 인식하는 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커피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두번의 웨이브가 왔다 갔었나 두리번 거릴 때 세번째 물결이 왔다고 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커피업계에 관한 한 미국의 제3의 물결과 일본의 제3의 물결은 서로 그 역사와 내용이 다르고, 미국내에서도 제3의 물결이 무얼 지칭하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커다란 변화가 온 것은 사실입니다. 크게 뭉뚱그려 이야기하자면 좋은 원두를 잘 로스팅하여 기존의 커피와 차별화된 고급(비싼) 커피를 내는 트렌드를 칭한다고 하겠습니다. 

저도 한국의 커피계에 제3의 물결이 왔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1의 물결은 한국인이 발명하였고 지금도 엄청 팔리는' 인스턴트 커피에 프림과 설탕을 조제한 방식'의 '커피믹스' 붐이요,  제2의 물결은 스타벅스 커피빈 투썸플레이스 탐앤탐스 등 대기업이 퍼뜨린 에스프레소머신 추출 커피 프랜차이즈의 확산입니다. 그리고 제3의 물결은 스페셜티 원두를 가지고 내는 고급 카페와 빽다방, 편의점 커피 등 저가형 원두커피 프랜차이즈의 양립화 현상이 보이는 요즈음이라 하겠습니다. 커다란 변화의 시기가 왔습니다. 전국민이 수준높은 커피를 값싸게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려면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밥: 요 몇년사이 시애틀에서 남쪽으로 포틀랜드,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리스까지 미국 서해안을 중심으로 맛있는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 늘은 것 같애.
존: 미국의 트렌드는 모두 보스턴, 뉴욕 같은 동해안 아니면 서해안 대도시에서 일어나니까. 음식에 관해서는 아시아와 가까운 태평양쪽 서해안이 더 빠르게 변화하지.
밥: 얼마전에 가보니 일본에서는 블루보틀이 화제더라. 
존: 일본에서 화제가 되는 건 마케팅 탓 일거야. 네가 얘기한 것 처럼 일본에는 그정도 맛있는 커피를 내는 집은 아주 많으니까. 
밥: 하긴 나도 스타벅스 커피가 맛으로만 세계를 석권한 건 아니라고 보니까. 쿨한 공간과 그곳에서 머무는 문화를 파는 브랜드라고 생각해.
존: 미국에선 스타벅스 커피가 나오며 커피맛이 좋아진 건 사실이지.
밥: 그러고 보니 난 다음주에 미국 출장인데 오랫만에 샌프란시스코도 일정에 있어. 
존: 시간나면 블루보틀 들러봐라. 

일주일 뒤. 얘기는 태평양을 건너 뛰어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로 갑니다. 도착한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부근 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습니다. 


숙소가 유니언 스퀘어에 있는데 바로 부근에 시어즈 파인 푸드라는 집이 있습니다. 옛날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어서 추억찾기 삼아 들어갔는데 앞에 개업 78년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입구에는 이 집을 다녀간 명사들의 사진과 싸인이 걸려 있습니다.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의 스타 토니 베넷의 그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집은 스웨덴 팬케잌이라고 부르는 미니 팬케잌이 유명한데 저는 미국식 아침을 시켰습니다. 커피가 맛이 좋아서 세잔이나 마셨습니다. 아침에는 이런 식당에서 내주는 '걸죽하다'고 표현하고 싶은 검은 커피가 투명한 호박색의 산미강한 고급 드립커피보다 음식과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소시지도 맛있고, 계란도 맛있고, 감자, 잼, 토스트가 모두 맛있어서 좋았습니다. 한국에서 찌개나 탕을 먹으러 들어갔는데 곁들여 나온 반찬 하나하나가 다 정성스럽고 맛있어서 수지맞은 것 같은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밥을 먹고 나오니 벌써 해가 높이 떠서 눈이 부신데 바로 앞으로 명물 전차가 땡땡 소리를 내며  파월스트리트를 지나갑니다.   


걸어서 한 오분 거리에 블루보틀이 있었습니다. 마켓스트리트를 건너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입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듯이 글씨로 쓴 간판이 따로 없습니다. 파란색 병 모습을 한 로고를 조그맣게 붙여놓은게 전부 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이렇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들린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거기서 시켜먹은 커피가 아래 사진입니다. 


바로 밖에 시간없는 사람들을 위한 테이크 아웃 전용 카트가 있었는데 커피를 마시고 나오니 출근시간이 지났는지 한산했습니다. 들어갈 때 보니 벅적거렸는데. 가격은 점포안보다 1불 정도 싼 것 같았습니다. 


오전 일정을 끝내고 점심을 먹은 뒤, 오후 2시 미팅까지 시간이 남아서 산보삼아 부두로 갔습니다. 페리 터미널 빌딩에 가니 블루보틀이 또 있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알고 간 겁니다. 어차피 커피를 마실 건데 또 한번 가보자 싶어서요. 밖에서 보면 이런 외관입니다. 


들어가보니 가게들이 많은데 블루보틀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습니다. 원두를 사가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았습니다. 가게를 하려면 이런 걸 해야하는데.. 하고 누가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테이크 아웃용 종이컵에 받아서 부두쪽으로 나왔습니다. 오클랜드로 이어지는 베이브릿지가 보입니다. 저와 청춘시대를 같이한 모든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영화 '졸업'과 거기에 나오는 사이먼 가펑클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영화 종반이 가까워지며 더스틴 호프만이 뒤늦게 깨달은 사랑을 쟁취하고자 버클리에 다니는 캐서린로스를 찾아서 이 베이브릿지를 질주합니다. 배경음악으로는 "Mrs Robinson"이 경쾌하게 흘러나옵니다. 커피를 마시며 영화장면을 마음속으로 되새겼습니다. 당장 검색을 하면 아이튠즈나 멜론으로 그 노래를 들을 수도 있고, 유튜브에서 바로 그 장면을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상상으로만 찾아가는 추억이 더 아련하고 소중하니까요. 


베이브릿지를 바라보며 영화 '졸업'을 그리워하고, 거기에 덧붙어서 줄줄이 묻어나오는 단성사 건너편 사르비아 다방, 의정부 중앙극장, 명륜동 에이펙스, 사간동 라면집에 얽힌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 옛날을 음미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미팅시간이 임박해 있었습니다. 걸음을 재촉해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에 있는 약속장소에 가니 사람들이 이미 다 모여있었습니다. 회의실은 높은 층 전망이 좋은 코너에 있어서 샌프란시스코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였습니다. 누군가가 상냥하게 물었습니다. 커피 마시겠냐고. 저는 이미 그 때까지 여섯잔을 마신 터이라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습니다. 거절의 뜻이 완강하여 커피를 못마시고 차만 마시는 아시아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쓰다보니 여행기가 되었네요. 다음 번에  블루보틀에 얽힌 이야기, 긴자의 킷사텐(커피숍) 이야기, 시애틀 카페 이야기로 계속 이어집니다. 보람찬 한주일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匠, 끈기와 우직함의 미학: 요시노야(吉野家)이야기(3) 일본이야기


"거장의 귀후비개. 최고의 힐링은 이것 하나로 부터..." 딱 들어맞는 번역이 없는 것 같군요. 우리말에서 딱 들어맞는 표현을 찾기 힘든 일본말 가운데 匠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읽기는 '다쿠미'라고 합니다. 이 글자는 우리말로 장인할 때 '장'자 입니다. 그러면 위의 사진에 나온 '匠の耳かき'라는 카피는 '장인의 귀후비개'라고 해도 되겠지만 저는 일부러 '거장'이라고 하였습니다. 거장도 사실 딱 맞는 표현은 아닙니다. 거장하면 뭔가 거창하게 뽐내는 듯한 위엄이 들어있는 듯 합니다. 다쿠미는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말로 장인, 그러면 전문 기능인이라는 뜻 말고 별달리 다른 뜻이 더 들어있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일본어로 '다쿠미(匠)’라고 하면 일정한 경지에 오른 이에 대한 존경과 찬사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아래는 다쿠미라는 검색어로 찾아서 나온 이미지 캡쳐입니다. 

술에도, 그릇에도, 옷에도, 심지어 라면에도 자랑스럽게 이 글자를 브랜드로 붙입니다. 몇 대씩 내려가며 가업을 이어온 다쿠미들이 일본에는 각분야에 걸쳐 수두룩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반열에 오른 대가를 칭하는 새로운 단어가 생겨날 만큼 많은 장인이 여러분야에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더 바람직한 건 '장인'이라고 기왕에 있는 말에 이러한 존경심과 칭송이 실리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변하는 것이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위의 사진에 있는 '究極の癒しはこの一品から'라는 카피를 '최고의...'라고 번역한 것도 사실 좀 맘에 들지가 않습니다. 究極(큐우쿄쿠)라는 말은 우리말 한자어로 '궁극'에 해당하는데 영어로 하자면 ultimate에 해당합니다. supreme도 때로는 그럴듯 합니다. 이 말이 일본어에서는 일상적으로 자주 쓰이는 표현인데 거기에는 '끝까지 추구하여 정점에 도달'했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우리말 정서에서는 딱맞는 표현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오늘 요시노야 규동 이야기 그 세번째인데 다쿠미를 간단히 설명하고 들어가려고 하다보니 얘기가 잠시 밖으로 돕니다. 

귀후비개 사진은 '다쿠미'로 이미지 검색하다가 나온 건데, 일본의 장인문화를 예로 들기에 딱맞아서 조금 더 들어가봅니다. 홈피를 들어가보니 공무원을 하던 이가 취미삼아 귀후비개를 깎다가 그걸 업으로 삼아 만들기 시작한지 30년이 되었다고 하네요. "귀 깊숙히 숨겨진 안락함... 귀후비개는 사람에 따라 취향이 천차만별입니다. 귓구멍의 크기, 귀지의 성질, 손의 크기, 잡는 감각, 후빌 때의 강도, 자신을 후비는 용도인가, 무릎을 베고 남이 후벼줄 때인가 등 모두가 다릅니다. 다쿠미의 귀후비개는 한사람 한사람의 취향에 맞는 귀후비개를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만듭니다. 우선은  '자신의 취향'을 알고서 찾아보면 어떨까요..."  홈피에 쓰여진 설명을 간단히 옮겨본 겁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아래를 보세요. 보통형은 3,000엔 입니다. 다른 모델은 15,000엔에서 18,000엔 입니다. 우리 돈으로 귀후비개 하나에 십오만원에서 십팔만원입니다. 명품은 비싸도 알아주는 이가 있어 나름 팔린다는 문화가 일본의 '다쿠미'문화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딴 이야기입니다만, 이비인후과 선생님들은 귀후비는 거 위험하다고 말리십니다만, 저는 참 좋아합니다. 돈 있으면 좋은 거로 하나 사고 싶네요...


요시노야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요시노야가 '규동 100년' 씨리즈로 TV CF를 제작한 동영상이 있습니다. 쯔키지 1호점의 1959년 모습을 재현한 광고인데 꽤 재미가 있습니다. 첫장면은 고층건물이 없던 당시 막 준공한(일년전인 1958년) 도쿄타워만 불쑥 솟은 도쿄의 모습에서 나레이션이 시작됩니다. "때는 1958년 도쿄 쯔키지 한 코너에 요시노야 1호점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점포 밖 풍경과 가게 안 모습이 나옵니다. 어시장 도매에 관련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능숙하게 고기와 양파, 쯔유를 한번에 떠서 밥 위에 얹는 아버지와 손님들과 농을 주고 받는 아들의 모습이 비춰집니다. 


그 다음 나레이션은 자막으로도 나옵니다. " 100년동안 이어지는 일본의 맛", " 규동은 요시노야". 

요시노야의 슬로건은 '맛있고, 빠르고, 싸게' 입니다. 빠르게 내겠다고 두부, 곤약국수, 파 등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소고기와 양파 그리고 쯔유만 가지고 만든 3천원짜리 소고기 덮밥 하나로 연 매출 1 조원을 달성한 브랜드인데 이걸 100년간 지켜가겠다는 선언에서 대단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엿보입니다.



규동에 밥을 담고 위에 소고기와 양파를 국물과 함께 얹는 데에도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지난 번에 소개한 아베 슈지 회장의 저서에서 인용을 합니다. 

"...처음에 맡은 일은 주방에서의 잡무입니다. 냄비를 씻고, 청소를 하고, 물론 돈부리(그릇)도 씻고. 바쁠 때에는 한시간에 돈부리 200그릇이 나갑니다. 머뭇머뭇 하고 있으면 그릇이 모자라게 되니까, 어쨌거나 바삐 움직입니다... (중략)...반 년쯤 지나자 밥도 담고 고기도 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밥을 담고 고기를 담는 것은 특수기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금방 익힐 수는 없습니다. 

밥은 돈부리에 두번에 나눠 담습니다. 첫 번째에 6,7할 정도 담고 두 번째에 나머지 3,4할을 마저 담는데, 압력을 가해서는 안되고 부드럽게 가운데가 약간 봉긋하게 담습니다. 가운데가 꺼져 있으면 고기와 다레(국물)가 가운데로 쏠려서 가장자리에 밥이 드러납니다. 그러면 고기가 적어보입니다. 10초에서 15초 사이에 10그릇 정도를 담는데, 고기를 담을 때는 냄비의 흘수선(수면을 표시하는 경계선)에 떠있는 고기를 오타마(국자)로 퍼서 밥위에 단숨에 담아냅니다. 동작이 느리면 국자의 구멍으로 국물이 너무 빠져나가고 맙니다. 

요시노야의 국자는 구멍의 크기와 47개라는 구멍의 숫자가 정해져 있어서, 그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규동을 단숨에 담았을 때 밥에 대비한 국물의 양이 최적의 균형을 이루도록 만들어진 국자입니다. 이 국자를 가지고 일정한 리듬으로 담으면 국물의 양이 일정해 지도록 만들어 진 것입니다...(후략)"

전국 1천개 점포에서 동일한 맛을 재현하는게 가능한 데에는 그 이면에 국자에 뚫린 구멍까지도 경험과 연구의 결과로 최적화된 걸 만들고 또 고기를 뜰 때 작업자가 서야 할 위치까지도 지정한 매뉴얼이 있더군요. 

요시노야는 확대노선을 걷다가 도산의 위기에 빠집니다만, 이는 경영상의 문제이므로 생략하고, 광우병 파동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합니다. 2003년 말,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 파동으로 일본에는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금지령이 내려집니다. 요시노야는 미국에서 소고기의 쇼트플레이트 부분을 수입하는데 '요시노야 스펙'이라고 불리는 커트를 만들어 낼 정도로 큰 손입니다. 요시노야 뿐이 아니라 일본의 규동업계는 패닉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곡물로 사육한 미국산 소고기와 거기에 최적화 된 다레를 만들어 낸 레시피를 다른 나라 소고기로 대체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을 돌아다니며 수입해 봤자 전체 점포에 공급할 양도 확보가 안되고, 균일한 맛도 보장이 안된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고객들이 기대하는 익숙한 맛을 서빙할 수 없을 바에야 만들지 않겠다는 극약처방을 내리고, 남은 고기 2개월분이 소진되자 일본 전국의 요시노야 체인에서는 규동이 사라집니다. 최대의 적은 '어떻든 규동만 내면 된다'라는 잘못된 마음가짐이며, 우리는 그저 규동을 파는게 아니라 '요시노야의 규동'을 파는 것이라는 사실을 서로에게 주지시키며 카레동, 돼지김치동, 야키도리동, 마파두부동, 연어이쿠라동 등의 메뉴를 개발하며 2년 이상을 버팁니다.

거의 3년이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이 재개되어, 정확하게는 950일만에 요시노야의 규동판매가 재개됩니다. 재개(일본에서는 '부활'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발표가 나자, 충성스런 고객들의 기대와 환영 무드속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요시노야 본사로 익명의 편지 한통이 배달되었는데 200만엔의 현금과 예쁜 글씨로 쓴 다음과 같은 편지가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전략. 실례합니다. 얼마전 갑자기 세상을 뜬 저희 아들은 귀사의 규동을 대단히 좋아하였습니다. 옛날의 규동이 재개된다니, 아들도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여 약소하지만 기부합니다. 힘든 상황이지만 규동팬을 위하여 노력해 주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

우리돈 2천만원이라는 큰 돈을 받은 본사는 되돌려주려고 했으나 발신인도 몰라 그러지도 못하기에, 2천엔 짜리로 바꾸어서 전국의 1천 점포에 편지의 복사본과 함께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도 요시노야를 사랑해주시는 고객들을 위하여, 모든 그릇에 정성을 담아 요시노야의 규동을 제공하자!'라는 슬로건도 함께요. 판매 재개의 날에는 전국에서 점포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는데 본사의 임원들도 모두 지원태세를 갖추어 현장에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이 회사의 모든 임원은 현장 점포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라 언제든 옛실력을 발휘하는게 어렵지가 않다고 합니다. 판매 재개의 날은 마침 저도 일본에 있어서 저녁에 뉴스로 본 기억이 납니다. 

요시노야의 이야기는 이정도로 맺습니다. 특정회사를 칭찬하려는게 아니라 일본의 외식산업 문화의 단편을 소개하려고 모델로 찾은게 이 소고기 덮밥집이었을 뿐 입니다.  이 포스팅의 제목을 '다쿠미, 끈기와 우직함의 미학'로 붙였습니다. 처음엔 '성실'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지웠습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성실하지 않냐는 반문이 들어서 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성실하지요. 그리고 부지런합니다. 게다가 일본사람들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본사람보다 부족한게 한번 정하면 싫증내지 않고 묵묵하게 반복하는 끈기가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네들의 미련할 정도로 우직한 태도가 부러울 때도 있고요.  

우리나라에 들어온 중국음식 유명 브랜드 점포에 몇 번 가본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엔 본바닥 점포와 맛이 비슷하더니 점점 달라져서 발길을 거둔 경우가 여러번 있습니다. 같은 가격에 같은 맛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고 소고기 덮밥집에서 소고기 덮밥을 포기하고 몇년을 버틴 건 특이한 예라고 하겠습니다만, 우리도 이런 브랜드, 이런 메뉴가 몇 개 쯤 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백년이 가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자랑할 만한 막국수, 냉면, 순두부찌개, 짜장면, 육개장 같은 걸 기대하여 봅니다. 무엇보다 김치찌개가 그랬으면 좋겠는데 김치찌개의 원료인 김치를 균일한 맛과 산도, 염도, 숙성도를 지키며 공급하는게 어려울 것 같아 포기하는게 낫지 싶어서 넣지 않았습니다.

다쿠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쯤에서 접습니다. 다음번에는 커피이야기를 계속해서 몇 번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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