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에 맞는 음식, 안그런 음식 살아가는 이야기


따르릉. 전화벨이 울립니다. 실제로는 따르릉이 아니라 '부르르'인데 전화가 왔다는 표현을 하려니 따르릉이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나오네요. 그래서 그냥  썼습니다. 이제는 전화가 부르르 진동했다, 이렇게 써야하는게 맞는지 고민을 해봐야 겠습니다. 다이얼을 돌리다라는 표현도 번호를 꾹꾹 누르다, 아니면 단축번호를 쓰면 그냥 탁 하고 터치했다 이렇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각설하고 다시 하려는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립니다. 어제밤 이야기입니다.
"여보세요?" 저는 침대에 누워서 웹서핑을 하며 잠을 청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저, 주무시나요?" 방금 저녁행사 마치고 헤어진 동료직원입니다.
"아니,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 아니구요. 다들 김치찌개에 소주한잔하러 가자고 해서, 혹시 피곤하시지 않으면 같이 모시려고..."
"방금 밥먹고 헤어졌는데 식성들 좋네 ㅎㅎ 다녀와요. 난 그냥 쉴께"
"네, 그럼 편히 쉬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귀국하는 직원들은 나중에 서울서 뵙겠습니다."

저는 지금 출장을 나온지 며칠되었고, 어제는 이곳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여러 손님을 모시고 치른 행사라서 한국에서 지원을 나온 직원들도 여럿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식 레스토랑에서 디너를 끝으로 행사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모두 모듬 소시지, 슈바인학센, 감자 등을 안주로 맥주를 많이 마셨습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김치찌개에 소주라니! 참 젊어서들 좋구나, 싶다가 이내 깨달았습니다. 그렇지, 이들에게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긴장이 대단했던 것이고 외국손님들과 함께한 저녁은 즐거운 자리이기도 하면서 사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자리이기도 했겠구나. 이제 훌훌 털고 우리끼리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게 당연할 수도 있었겠구나. 갈 걸 그랬나. 아니야, 사실은 나없는게 더 편한데 예의상 부른 걸 수도 있으니 안가길 잘한건지도 몰라. 부하에 대한 배려같지만 사실 까보면 나이먹은 상사의 소심함이라서 요즈음 들어 특히 이런 자신이 못마땅한 밥과술은 그냥 달아난 잠을 이런저런 잡생각으로 때웠습니다.  

사람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먹는 건 좋은 일이지만, 새로운 것을 잘 못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요. 옛날 어렸을 때는 은근히 외국에 나가서도 난 뭐든 잘먹으니까하고 속으로 우월감도 살짝 느낀적도 있었지만 곧 그게 부질없는 허영심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일수록 먹는 것에 있어서 보수적이고 새로운 것을 얼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많이 보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새로운 걸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반대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음식에는 궁합이라는 것도 있어서 뭔가 잘맞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남들은 편하게 먹는데 자신에게는 잘 다가오지 않는 맛도 있습니다. 제 사무실 동료가운데에는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 단무지를 싫어하는 사람, 당근을 싫어하는 사람이 각각 있어서 김밥을 시키면 정말 볼만합니다. 다들 하나씩 빼서 상대방에게 주곤 합니다. 하기야 이것저것 다 잘먹는 것 같은 저희집 쥬스도 안먹는게 몇가지 있습니다. 오늘은 쥬스를 예로 들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래전 어느 휴일날 이야기입니다. 모처럼 집에서 맞이하는 일요일 오전, 맛있는 커피를 내려서 마카다미아 쵸콜릿을 먹으며 홀짝홀짝 마시니 그렇게 맛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커피는 마시기 전에 내릴때부터 거실 가득히 퍼지는 향에 이미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하지요. 옆에서 쳐다보는 쥬스를 동정하며 말을 붙였습니다. "얘, 이럴땐 네가 참 불쌍하다. ㅋㅋ 좀 노력을 해보지 그래? 이 행복한 느낌을 모르고 살다니..." 

그렇습니다. 저희집 큰 딸 쥬스는 커피를 안마십니다. 맛이 없다고 합니다. 써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홍차도 좋아해서 블랙으로 잘마시고, 중국차는 물론이요 일본 녹차, 말차도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유독 커피는 안마십니다. 잘은 모르지만 커피여사가 쥬스 임신하고는 몸에 안좋다는 건 하나도 안먹고 그랬습니다. 그 좋아하는 커피를 한방울도 안마셨으니 참 모성이란게 대단한 것 같습니다. 우유때는 오개월이 될 때까지도 임신인줄 몰라서 가리는것 없이 커피도 마시고 그랬습니다. 그런 탓인지 우유는 어려서부터 커피에도 관심이 많아서 설탕타서 어른 안보면 홀짝 마시고 콜라도 마시고 그러더군요. 과학적으로 근거는 없지만 둘의 식성이 조금 다르니 그래서 그런건가 추측해 본 겁니다. 

쥬스는 콜라도 안마십니다. 탄산음료 자체를 아예 안마십니다. 페리에, 펠레그리노 같은 탄산이 들어간 광천수도 안마시지요. 술도 와인, 막걸리는 마시는데 탄산이 들어간 맥주는 안마십니다. 소주는 맛이 없어서 싫다고 합니다. 탄산이 들어간 것 중에 유일하게 마시는게 샴페인 입니다. 그래서 야, 이거 좀 모순아니야? 그랬더니 몰라, 그냥 샴페인은 맛있어, 그렇게 대답하고 마니, 저도 할말이 없어집니다. 이런거야 따져서 답이 나오는게 아니니까요. 

위의 사진이 쥬스가 안먹는 것들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그녀는 견과류를 안먹습니다. 저는 다람쥐가 울고갈 만큼 견과류를 좋아하는데 말이죠. 그런 쥬스도 호두, 피칸, 헤이즐넛, 마카다미아, 캐쉬넛, 피스타치오 다 안먹는데 예외가 있습니다. 잣은 엄청 좋아합니다. 밤(견과류인지는 애매할 때가 있지만)도 좋아하구요. 심심해서 물어보니 대답이 희한합니다. 모두 예외가 있어서, 호두는 갈아서 드레싱처럼 만든 건 좋아한답니다. 피스타치오는 아이스크림에 들어간 건 잘 먹구요. 

그리고 콩종류를 안좋아 합니다. 제가 서리태를 좋아해서 밥을 지을때 자주 넣어서 함께 먹도록 했는데 아직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완두 강낭콩은 싫어하는데 맥주안주로 나오는 에다마메는 먹는답니다. 스트링빈은 안먹지만 병아리콩하고 렌즈콩은 아주 좋아한답니다. 

피망, 풋고추, 파프리카는 아주 싫어합니다. 고추 특유의 풋풋한 향이 싫은데 파프리카는 달기까지 해서 꽈리고추<풋고추<피망< 파프리카 순으로 싫어한다고 하네요. 청양고추는? 그랬더니 그건 매워서 못먹어요, 라고 대답하면서 예외조항을 달았습니다. 청양고추는 찌개에 넣는 건 좋아하고, 피망은 중국요리 칭쟈오러우쓰(青椒肉絲)로 만든 건 잘 먹는다구요. 

야채도 샐러리는 스프에 넣고 끓이는 건 좋아하지만 샐러드 감각으로 생으로 먹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그런데 쥬스가 남들보다 엄청 좋아하는게 있으니 바로 실랜트로, 우리말로 고수입니다. 언젠가 블로그에서 잠깐 소개한 적도 있는데 처음 먹자마자 이렇게 맛있는게 있다니, 하고 감탄을 하였다고 하네요. 지금도 기회가 되면 잔뜩 사다가 샐러드 감각으로 먹는데 이게 솔직히 수퍼에서는 꽤 비싼 야채에 속합니다. 저는 이게 열대지방에서 얼마나 싸고 흔한 야채인지를 알기 때문에 함께 가서 계산을 할 때면 속이 살짝 쓰립니다.  

저는 고수에 대한 애정은 그냥 그런 편입니다. 아주 더운 날은 맛있고 평소에는 별로 입니다. 그리고 저는 먹는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맛있다고들 하고, 또 그걸 좋아하는게 음식을 아는 상위레벨에 들어가는 것 같은 풍조도 있어서 노력끝에 삼합, 홍탁을 먹게는 되었습니다만 솔직히 일정기간 안먹으면 먹고싶고 또 먹으면 너무 행복하고 그런 정도는 아닙니다. 아마 진짜 맛있는 걸 먹어볼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저는 아직도 청국장하고 잘 사귀지를 못했습니다. 좋아하지도 않고 아직 그 냄새에 저항이 많이 갑니다. 그런데 일본의 낫또는 좋아하니까 솔직히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애국심이 부족한가 보다 좀 반성도 하고 그럽니다. 영어로 stinky tofu 라고 알려진 중국의 처우떠우푸(臭豆腐)도 나름 잘먹는데 왜 청국장은 싫을까 아직도 의문입니다.

아무튼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린 결론은 간단합니다. 
1. 이것저것 잘 먹는게 좋고 그만큼 행복하기가 쉽다.
2. 남들이 좋아하는 음식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따라서 가까이 다가가면 맛있게 먹을 확율이 높다.
3. 그런데 시도해 보고 노력해 보았는데 안좋아지면 억지로 좋아하려고 힘쓸 필요가 없다. 세상에는 그것말고도 맛있게 먹을 게 많으니까.

오늘은 한국음식을 거의 처음 먹어보는 외국손님들을 안내하여 한국 식당에를 갔습니다. 늘 그렇듯이 외국손님들에게는 갈비구이, 모듬 전, 잡채, 튀김 이런 걸 시켰고 황태무침, 낚지볶음, 더덕 이런 걸 시켜서 한국사람 테이블에만 놓았습니다. 그리고 소주를 시켜서 얼큰하게 한잔하고 돌아왔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여름날 저녁 내고장 탐방기 밥과술네 집이야기


온도가 올라가고 습도가 높으니 불쾌지수가 치솟습니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어딜가도 끈적끈적 더운 공기가 감싸는게 여름이다 여기면서 그러려니하고 찬물로 몸을 씻어 식히고 창문열고 선풍기 틀고 이러고 지냈지요. 더위를 피해간다고 '피서'라는 말이 있는 거고 그래서 며칠 계곡이나 산으로 가서 시원한 밤공기를 만끽하고 돌아올 수 있는 짧은 휴가를 소중히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어컨이라는 신통방통한 기기가 보급되면서 쾌적한 실내에서 업무도 보고 생활도 하게 되면서, 에어컨이 없는 곳이 한없이 불편하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루에 얼마나 에어컨이 있는 곳에서 살고 있는가 헤아려보니 서울에서도 하루에 열몇시간 이상입니다. 회사사무실, 자동차, 식당 다 에어컨이 있는데 그나마 집에와서 잘때는 웬만하면 꺼놓기에 그런거지요. 더운나라에 가있을때는 건물에선 나와 자동차를 타고 자동차에서 내려서 건물로 들어가는 몇분을 빼고는 하루종일 에어컨으로 조절되는 공기속에서 사는 건데, 서울에서도 일년에 며칠은 그런 날이 있습니다.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얼마전 타계한 리콴유 싱가폴수상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에어컨이라고 말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국민들을 부지런히 일하게 하여 잘사는 국가로 만든 사람다운 발언입니다. 일년내내 뜨거운 적도에 위치한 싱가폴에 에어컨이 없었으면 오후내내 사람들이 더위에 늘어져서 일을 못했을 거고 고층빌딩도 못짓고 여러모로 효율이 많이 낮았겠지요.

에어컨이 없어도 지내기 좋을 만큼 공기가 건조한 여름날은 온도가 높아도 기분이 좋습니다. 오히려 여름이 아니면 못느끼는 특유의 분위기가 반갑습니다. 오늘은 그런 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 열흘정도 되었을까요. 어느날 저녁약속이 갑자기 취소되었습니다. 그날따라 일찍 집에 들어와서 뭘할까 궁리하다가 벌떡 일어서서 나갔습니다. 여행을 떠나자, 정처없이. 이렇게 마음을 먹은 겁니다. 맨손으로 터벅터벅 도보여행이다. 지나가다 나그네처럼 아무데나 들어가서 배고프면 밥먹고, 술고프면 술마시는 방랑의 여행길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하지가 지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어두워지려면 아직 한참 더있어야 할 시각이었습니다. 발걸음도 가볍게 집을 나서서 수백미터를 걸어서 큰 길로 나서니 참외 수박 자두 등을 늘어놓은 과일트럭이 있었고 그옆에 옥수수를 쪄서 파는 행상이 있었습니다. 두개씩 봉투에 넣어 파는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저 한개만 사고 싶은데 그렇게 파시나요?' 아주머니는 흔쾌히 절반값에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하모니카를 불듯이 옥수수를 야금야금 먹으며 길을 걸었습니다. 조금 지나니 지하철 역이 나오고 그앞에 늘어선 숱한 노점상이 있는데 구두수선하는 가게 옆에 꽃집이 있었습니다. 새빨간 장미가 다발로 수북하게 가게앞에 나와있었습니다. 호, 이런 곳에 꽃을 파는 집이 있었구나. 내가 사는 고장을 참 모르고 있었네, 이렇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내고장'이라는 말이 너무나 정겹게 와닿으며 옛날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국민학교 시절 3학년인가 4학년 사회 교과서에 내고장을 탐구하자 뭐 그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삽화가 있는데컬러로 인쇄된(흑백이었는데 컬러로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조그만 지방의 한구역을 하늘에서 내려다 본 그림이었습니다. 소방서 약국 학교 생선가게 청과물가게 관공서 병원 등이 있는 그림인데 참 아기자기해서 동화속의 나라 같았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커서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오모이데 포로포로(추억은 방울방울)'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았을 때 영화속에 나오는 회상장면에서 아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옥수수를 먹으며 길을 천천히 걸으니 '내고장'이라는 잊고 있었던 단어가 살아나고 그 단어가 실마리가 되어서 추억이 실타래처럼 풀려나가니 저녁의 방랑길은 점점 더 즐거워 졌습니다. 그날 먹었던 찐옥수수는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구글을 찾아보니 이웃 블로거 투명장미님의 사진이 이미지검색에서 뜨는데 가장 비슷해서 빌려다 올립니다. 위의 사진이 그것입니다. 찐 옥수수 하면 제게는 방학때 시외버스 타고 강원도로 오갈때 늘 인제 원통에 도착하면 김이 나는 옥수수를 다라이에 잔뜩 넣어 머리에 이고 버스로 달라붙던 아주머니들의 모습도 들어있습니다.      

한참을 또 걷고 걸으니 버거킹이 나옵니다. 롯데리아도 지났고, 맥도날드도 있지만 여행자가 브랜드를 따지겠습니까. 그냥 배가 또 출출하니 들어가 3천9백원짜리 세트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길가 버스정류장 부근 의자에 앉아서 펴놓고 먹었습니다. 사진 왼쪽하단의 데님이 제가 입은 청바지입니다. 좀 시원한 면바지를 입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다행히 그날은 괜찮았습니다.

갓튀겨낸 감자가 따끈따끈 너무 맛있어서 그것부터 다먹고 버거는 나중에 먹었습니다. 제가 버거는 버거킹을 좀 더 선호하고 감자튀김은 맥도날드를 더 좋아하는데 이날은 버거킹것도 맛있더군요. 평소에는 안먹고 햄버거 피자 먹을 때만 마시는 콜라도 이 날은 얼음에 녹아 적당히 김이 빠진게 입에 맞았습니다. 
    


그리고 또 정처없이 걸었습니다. 배도 부르겠다 한참을 걷다보니 먹자골목 같은데가 나왔습니다. 깜짝 놀란게 칼국수 집이 한골목에 네집이나 있었습니다. 아, 내고장이 칼국수가 명물이었나?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고기집이 많은데 새삼 놀랐습니다. 한집건너 고기집에 골목마다 들어차 있는 걸 보고 새삼 우리가 참 고기를 좋아하는 민족이 되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고기집, 고기집, 그리고 사이사이 들어있는 생선회집, 호프집 그리고 치킨집이 어지럽게 간판을 내걸고 있었고 그 사이에 교회가 들어가 있는 곳을 보았습니다. 먹자골목안에 교회가 있는게 새삼 신기했고 그 옆에는 요즈음 화제의 인물 백종원씨가 하는 새마을식당도 있었습니다. 

골목을 누비다가 큰 길로 나가니 자동차 버스가 씽씽 달리며 대도시의 굉음을 만들어 내는데 어둠이 내리고 네온싸인이 켜지며 야경과 소음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적당히 앉아서 쉬고 그러다가 일어나서 또 걷고 그러다보니 목이 말랐습니다. 파리바게트에 들어가서 제가 좋아하는 팥 아이스캔디를 사서 쭐쭐 빨며 또 걸었습니다. 이제는 진작에 반환점을 돌아서 집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사진은 안찍어서 홈피에서 퍼왔습니다. 옛날 아주 옛날 혜화동 로타리에 아카데미 빵집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파는 팥아이스케잌이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그 때 한 개값이 버스비의 몇배였으니까 지금 돈으로 5천원쯤 했으려나요. 그 당시는 누구도 두개 이상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스케익을 먹으며 크림빵, 빠다빵, 곰보빵, 앙꼬빵, 소라빵, 오란다빵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참 길을 지나다가 문득 아래같은 곳을 보고 신기해서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피스빌딩같은 곳의 입구에 불이 켜져있는데 아마도 지하에 있는 모양입니다. 궁금한 건 업태가 다양해 보여서입니다. 일단 노래하는(마이크모양) 룸이라고 맨위에 있는데 그건 짐작이 갑니다. 노래방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밑의 노래빠라고 되어있는 건 처음보는 업종입니다. 무슨 업종일까 궁금해 하면서 밑에를 보니 술파는 노래방, 그리고 그 옆에는 룸크럽이라고 되어있네요. 술파는 노래방도 말그대로 이해가 가는데 룸크럽이 뭔가 궁금합니다. 아, 내고장에 노래빠와 룸크럽이라는 업소도 생겼구나, 뭘까 이렇게 생각하면 발길을 옮겼습니다. 사진은 특정업소의 이름을 공개하는게 뭐해서 뽀샵으로 살짝 바꿨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까워져오자 목이 말랐습니다. 수분도 부족하지만 알코올도 조금 부족하다는 신호가 몸으로부터 왔습니다. 제가 '내고장'에 있는 보쌈이 맛있고 닭도리탕도 맛있게 하는 호프집을 하나 압니다. 그래서 가끔 손님들과 들리는 곳입니다. 혼자 들어가 앉아서 생맥주 한잔을 시켰습니다. 안주를 시키면 본격적으로 퍼마시게 될것이고 그건 나그네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아 시원한 생맥주를 서비스로 나온 뻥튀기를 안주삼아 맛있게 아껴아껴 먹었습니다. 사람이 간사한게 한국맥주 맛없다고 불평을 하는 밥과술도 이날은 참 맛있게 마셨다고 기억합니다. 



한잔을 비우고 미련없이 일어나서 계산을 하려니까, 음식솜씨 좋은 사장님께서 '뭔 계산이당가. 이런 날은 그냥 가소. 쓰어비스여' 미인 사장님의 억양이 센 호남 말씨가 새삼 더 정겹게 느껴지는 밤이었습니다. 저는 적당히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와서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적어놓지 않아서 잊어버렸지만 그날 밤 뭔가 좋은 꿈을 꾸었다는 건 분명히 기억합니다.   



맛있는 불량(?)식품 소시지, 그리고 심야식당 일본이야기

요즈음 회사건물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자주 사먹는 식품이 있으니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간식 소시지입니다. 간식소지시라는 말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그냥 이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서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편의점에는 바로 옆에 적정온도가 유지되는 코너가 있고 거기에도 아래와 같이 간편하게 먹기좋은 소시지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먹기좋으라고 손으로 잡는 꼬치가 있어도, 이들 상품과 구매를 하기위해 이를 잡아야하는 소비자의 손사이에는 뭔가 보이지않는 심리적 장벽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딱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바로 위의 상품들은 본격적으로 먹는거야, 하는 식사에 가까운 존재감이 있다면 맨 위에 소개한 상품은 그냥 심심하니까, 약간 출출하니까 부담없이... 가격이 싸서 그런것만은 아닌 뭔가 편안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만만함이라고나 할까요.  

어묵 돼지고기 닭고기 등이 원재료로 들어간 육제품이 냉장고도 아니고 그냥 카운터 옆에 놓여진 걸 보면 위생은 괜찮은 걸까, 아니면 방부제 보존료 이런걸 많이 넣었나, 그러면 몸에는 더 안좋을 수도 있겠네, 이런 저런 생각도 들지만 한번 먹어보면 그다음부터는 쉽게 손이 갑니다.

군대에간 젊은이도 아니고 자라나는 어린이는 더더욱 아닌, 나이를 먹을대로 먹고도 더먹은 저같은 사람이 간식소시지 스틱을 집어드는게 어울리지 않았던지 어느날 옆에서 본 직장동료가 마구마구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윗대가리를 까내고 쭐쭐 밀어내며 먹는 모습은 더욱 희한했나 봅니다. 보고 웃고 또보고 또웃고 그러다 나중에는 본인들이 민망해 할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요즈음 체중을 줄인다고 점심을 삶은 계란에 야채 이런걸 먹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좀 모자라는 것도 같애서 어느날 우연히 집어든게 아까 나온 간식 소시지였고 그게 묘하게 습관성이 있는 것처럼 심심찮게 먹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어려서 먹었던 소시지 맛의 향수도 느낄 수 있는게 좋은 점의 하나인 것도 같습니다. 사진 맨 오른쪽의 것이 특히 그렇습니다. 

사실 소시지는 불량식품입니다. 그런데 소시지는 우량식품이기도 합니다. 같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출처가 불분명한 싸구려 고기를 이것저것 넣어서 각종 첨가제를 넣어만드니 불량식품이요, 바로 그런 이유에서 가성비가 뛰어나고 영양가가 높아서 우량식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의 입맛에는 딱 맞는 것도 큰 장점이자 또 같은 이유에서 단점이기도 하지요. 

소지지에 대한 향수를 이야기하다보니 옛날에 썼던 심야식당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했다는데 반응은 썩 그런가 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따로 한번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소시지 이야기를 다시 소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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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드라마)에 나오는 빨간 소지지는 워낙 인기가 있었던지, 한국 블로그에도 따라만들기를 시도하여 글과 사진을 올리신 분들이 꽤 있더라구요. 근데 일본의 그것과 가장 큰 차이는 무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색깔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소시지를 '赤いウインナー(빨간비엔나)'라고 해서 특별히 따로 취급합니다. 일본에서는 소시지를 지름 20mm이하를 비엔나 소지지, 36mm 이하를 프랑크프루트 소시지, 36mm 이상을 볼로냐 소시지라고 부릅니다. 

원래는 케이싱으로 양의 창자, 돼지창자, 소창자를 쓴 것을 구별하여 부르던 것인데 지금은 비닐이나 기타 재질로 케이싱을 하기도 하므로 굵기에 따라 구별한다고 합니다. 비엔나 소시지는 도시락 반찬으로 많이 소비되고, 프랑크프루트는 핫독으로 많이 사용되는데 비해 볼로냐는 그다지 많이 팔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분홍색 소시지 부침'에 쓰이는 굵은 소시지는 일본의 볼로냐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 '빨간 비엔나'는 그 유래가 옛날에(1930년대) 고기가 귀했던 시절, 소시지의 원재료로 그다지 좋은 질의 고기를 쓰지 못할때 색깔이 별로 예쁘게 나오지않아 식용색소로 겉을 착색을 한 게 시초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안과 밖이 색깔이 달라 칼집을 내어 벌려 놓으면 각종 디자인이 나와, 도시락 반찬으로 인기를 얻게 된겁니다. 한쪽을 벌리면 삶은 문어 같아서 쉽게 만들수 있고, 나아가 토끼, 강아지, 금붕어 각종 모양을 만들 수가 있지요. 

지금도 일본의 대형 소시지 메이커 '닛폰햄'의 홈페이지에는 빨간 비엔나로 각종 모양만드는 코너가 있습니다. '가난'을 숨기고자 고안했던 빨간착색, 이것이 오늘도 꾸준히 인기를 얻으며 일본사람들의 '가난했던 시절'을 추억하는 컴퍼트 푸드가 된 것이지요. 옛날의 가난했던 시절을 그리운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은 행복하다는 증거이므로 좋은 일입니다. 지금도 가난하다면 옛날의 가난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지긋지긋한 주박이자 불행이지요. 남자들이 지금도 군대에 있으면 옛날 군대얘기를 하겠습니까? 

이 소시지라는게 사실은 따지고 보면 불쌍합니다. 어느나라에서나 가난할 땐 동물성 단백질의 우등생 식품이요. 먹고 살만해 지면 천덕꾸러기가 되는 기구한 운명의 식품입니다. 그냥 먹기는 힘들고(너무 딱딱하거나, 모양이 좀 그렇거나, 내장이거나 등등) 버리기에는 아까운 식용부위를 모아, 갈아서 창자에 채워넣어 찌거나 훈제등 가공을 해서 만든거 거든요. 그러면서 소금, 후추, 설탕 등 각종 양념을 해서 맛을 조절할 수도 있구요. 또 맛뿐만이 아니라 갈아내면서 텍스처도 조절을 할 수가 있으니까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다 좋아하는 식품을 만들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일본에서는 가난하던 시절에 돼지고기만 못쓰니까 생선을 넣어서 만들었는데, 생선의 함량이 15%이상이면 '혼합소시지', 50%이상이면 '어육소시지'라고 구별을 하도록 되어있답니다. 지금은 영양을 위해서(저칼로리 저콜레스트롤), 또 옛날의 노스탈지어를 위해서 이 어육제품이 꾸준히 상품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야식당에도 '어육소시지' 에피소드가 하나 따로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진주햄 소시지'라는게 있었습니다. 고 신동우 화백이 오랫동안 광고 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게 어육소시지였지요. 그러다가 조금씩 돼지고기 함량이 늘어났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생선을 섞지않은 순 육고기로만 만든 소지지가 나왔다고 이름이 '살로만'이었던게 기억이 나는군요. 

우리나라의 순대도 엄밀하게 분류를 하자면 일종의 소지지입니다. 유럽이나 남미 같은 곳에 피로 굳힌 소지지가 있는데 순대와 비슷하지요. 이렇게 동물의 창자에 각종 부위를 갈아서 섞어 넣은, 요즘 인기있는 '에코 재활용'식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다보니 뭐를 어떻게 넣어 만들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는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검색을 하여 보니 유럽, 미국에도 '소시지에 뭐가 들었는지는 푸주간 주인하고 하느님만 안다', '소지지와 정책은 만드는 과정을 안보는게 좋다(정치도 들여다보면...)' 등의 속담이 있더군요. 그리고 소시지에 관한 농담은 엄청 많은데 제 블로그에서 다루기는 쫌 쑥스럽기도 하고...그냥..안다루겠습니다. 궁금하신분들은 joke about sausage 로 검색해 보세요...^^;

지금은 대형메이커가 만드는 소시지 안에는 뭐가 들었는지 다 명기되어 있으므로 훤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또 문제이지요. 우선 발색제이자 병균의 증식을 막는 '아질산 나트륨'. 얼마전 고급호텔의 훈제 연어에서 나왔다고 잠시(우리나라 사람들 금방 식으니까) 시끌법석했던 그 물질입니다. 우리가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익으면 색깔이 회색이 되지요. 모든 소시지는 고기를 익히는 거니까 회색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햄이던 소시지던 핑크빛 색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는 천연햄이 분홍빛을 띄는데서 연유한 건데 천연햄을 모르던 일본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부터 햄, 소시지는 분홍이겠거니 하고 각인이 된거지요) 이걸 아주 보기좋은 핑크빛으로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게 바로 이 아질산 나트륨입니다. 참고로 요즘 무첨가 런천미트(스팸같은 것)가 나온걸 보고 하나 사다 먹어봤는데 역시 색깔은 회색이라 좀 미관상 그렇지만 맛은 똑 같이 좋았습니다. 

이 아질산 나트륨이라는게 발암물질이네 아니네 아직 무죄판정을 받은 것도 아니고, 유죄판정을 받은 것도 아니고 수상합니다.일단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무서운 세균이 증식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니까 좋다고는 합니다만, 유럽 몇나라, 캐나다 등 여러나라에서 이것의 사용을 금지시켰다고 하니 위험이 입증되지 않은 것이지, 안전이 입증된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아스코르빈산(경우에 따라서는 비타민 C라고도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유화제, 점증제, 산화조정제, 안정제 등등이 탄력을 주고, 식감을 증진하고, 양을 늘리고, 보존기간을 늘리고, 변색을 막고 등등의 이유로 줄줄이 첨가가 되어서, 소시지는 이제 '불량식품의 우등생'쯤으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형 메이커들의 제품을 보아도 그런데, 하물며 김밥**이나 지하철 입구에서 파는 천원짜리 김밥에 어떤 소시지가 들어가 있을지 알고 싶지가 않지요. 언젠가 분식집 주방을 들여다 보니 정말 듣도보도 못한 메이커의 소시지껍데기가 산처럼 쌓여있었습니다. 식당에 원산지증명 써붙여놓듯이 소시지도 제품명 명기제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소시지입장에서보면 참 억울하기가 이를데 없겠지요. 이건 인스탄트 라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하고 영양이 쪼들릴 땐 없어 못먹고, 고급식품 대접하고 수십년동안 늘 친근하게 대하더니, 좀 먹고 살만하니까 헌신짝 처럼 취급해? 아니 몸에 엄청나쁘네, 발암물질 투성이네 하며, 헌신짝보다 더한 흉악범 취급을? 버림받은 조강지처의 설움과 한을 품은 소시지와 라면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뿌리다가 한강 마포대교 위에서 투신소동을 벌였다는 소식은 아직 뉴스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서, 가난했던 시절의 첫사랑(착색 소시지)을 버린, 일본사람들은 이러한 미안한 마음에서 벗어나고자 만화와 드라마 심야식당에 나오는 가난의 상징, 빨간 소시지에 갈채를 보내는 것 이겠지요. 비슷한 과정을 겪어온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기에 공감하였기에 일본의 이작품에 호응하여 출판, 드라마 방영에 이어 리메이크까지 이어진 것 아닌가 합니다.



올해도 절반이 휭~ 술과 밥의 나날들 살아가는 이야기


세월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아서... 라 그래봐야 요즈음 활쏴본 사람이 별로 없으니 실감이 가는 표현은 아니지요. 같은 표현이 양옆나라 중국, 일본에도 있고 서구권에도 있는 걸 보면 옛날에 사람들이 느끼기에 제일 빠른게 화살이었나 봅니다.

총이 있으니까, 세월은 총구를 떠난 총알과 같아서...라 그래봐도 비슷한 이유로 실감이 잘 가지않습니다. 하기야 워쇼프스키형제(지금은 남매)의 매트릭스 이래로 총알도 많이 느려지기는 했지요. 공중에서 멈추기도 하구요.

오늘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회한과 반성의 시간입니다. 이제 몇시간만 있으면 2015년도 절반이 지나갑니다. 늘 그렇지만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볼때마다 왜 그렇게 분분초초를 아껴쓰지 못했나 후회를 하곤 합니다. 오늘 점심을 먹고나서 이미 지나간 반년동안 뭘했나 생각해보니 참 아쉬운게 많았습니다. 남은 반년 진짜로 열심히 살아야지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다가 창밖을 내다보니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아, 이런 날 파전에 막걸리... 안, 안돼!! 살쪄!... 아냐 당분간 또 나가있을텐데 고국의 입맛을 몸안에 쟁여두고 가는 것도 괜찮지 않아? 왼쪽 오른쪽 어깨위로 귀여운 천사와 악마가 속삭여 대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제게는 먹으라고 하는 쪽이 천사고, 참으라는 쪽이 악마입니다.

그러고보니 올 상반기에는 뱃살을 제법 뺀 것도 성과라면 성과겠군요. 맛있는 음식과 술로 다가오는 무서운 유혹을 뿌리치며(적당히)  버텨낸(적당히) 자신이 대견해서(적당히), 퇴근도 가까와졌겠다 일손을 잠시 놓고, 전에 축의금낼때 사용하려고 필통에 꼽아둔 붓펜으로 A4용지에 끄적거려 봤습니다. 집에서라면 색연필로 채색을 했을텐데 그런거 없어서 스마트폰으로 스캔해서 파일만들어, 포토샵으로 색을 넣었습니다. 이거저거 따서 붙일 수도 있어서 재미는 있는데 원화가 안남는게 좀 아쉽군요. 아무래도 전 아날로그가 좋은 나이인가 봅니다. 

이제 3킬로만 더 빼면 목표달성인데 요새는 쉽지가 않네요... 오늘은 좀 늘 것을 각오하고 한잔 하렵니다.

제 블로그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 남은 반년 알차고 보람있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메밀이야기(5): 집에서 해먹는 비빔메밀 국수이야기


위의 그림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메밀꽃 필무렵"의 한장면입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 밭이어서 피기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명단편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들의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을 생각하면 흥행이 좀 더 잘되었더라면 하고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지요. 이효석이 글로 묘사한 달밤에 비친 메밀밭의 아름다운 정경은 실사보다는 이렇게 애니메이션이 더 감성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구글에서 찾아서 이미지 한 컷을 소개해보았습니다. 

우아한 문학이야기나 애니메이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이야기도 그냥 먹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메밀먹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문득 예전에 메밀이야기를 씨리즈로 몇개 썼던 생각이 나서 거기에 덧붙여 씁니다.  

저는 강원도 출신이라 어려서 남들보다 메밀을 먹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강원도의 명물처럼 되어버린 '막국수'가 옛날에 고향에서는 그냥 겨울이면 며칠걸러 한번씩 밤참으로 눌러먹던 흔한 '국시'였지요. 국수를 눌러 삶으려면 부뚜막가마솥에 국수틀을 걸고 물을 끓여야 하기에 아궁이에서는 장작불이 활활 타오릅니다. 그러면 추운 겨울에도 방문 창문을 다 열어제쳐야 할 만큼 방이 더웠고 방바닥은 뜨겁습니다. 

땀이 날 정도로 더운 방에서 얼음이 저벅저벅 낀 동치미 국물을 퍼다가 쭉쭉 뽑아낸 메밀국수를 말아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순메밀이었거나 메밀함량이 높았던지 삶아서 건져낸 걸 잠시만 두어도 '자리를 잡아서' 얼른 국물에 말아 후루룩 후루룩 먹어야 했습니다. 살짝만 힘을 주어도 툭툭 끊기는 부드러운 면발과 약간 까실까실한 식감이 저는 당시에도 좋았습니다. 아마 서울에서 먹어보기 힘든 맛이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당시야 농산물 수입 이런거 없던 시절일테니 동네에서 재배한 메밀이거나 멀어야 봉평같은데서 사온 메밀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이곳저곳에 막국수집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해마다 방학이면 고향에 내려가 있었는데, 마치 요즘 서울사람들이 분식집 라면이나 길거리 떡볶이사먹듯, 그 때 그냥 흔하게 오다가다 사먹던 동네막국수집이 지금은 블로그에도 많이 소개된 유명한 집이 되어있더라구요. 

요즈음은 성묘나 차례지내러 일년에 고작 한두번 가는 고향길이라, 가는 길에 막국수에 대한 기대가 대단합니다. 우리나라 메밀 생산량을 고려하여 가늠해보면 요즈음 먹는 메밀이야 대개가 외국산이겠지만, 어차피 밀, 옥수수 이런건 자급량이 1%도 안되고 콩도 10%가 안되는 마당에 따져서 뭐하나 싶은 심정으로 그냥 품질좋은 놈 사다가 보관잘하고 그때그때 제분하여 맛있게 만들어주기만 바랄 뿐이지요. 

 
위의 사진이 가장 최근에 속초에 가서 먹고온 막국수 사진입니다. 이정도만 돼도 대만족입니다. 사진을 보니 또 먹고 싶네요. 

 

위의 사진은 서울 집에서 나름 가까워서 가끔 가서 먹는 집의 막국수 사진입니다. 가까운 맛에 찾는 집이라 너그러운 마음으로 맛은 그냥 오케이입니다. 아래는 몇달전 우연히 김포공항에서 나오다가 막국수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하여 찾은 방화동에 있는 '고성막국수'라는 집에서 먹은 사진입니다. 메밀면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가까우면 자주 다닐텐데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래는 나름 메밀함량이 높다는 서울의 유명 냉면집들의 냉면입니다. 


밑의 사진 두장은 봉피양의 냉면하고 순면인데 어느쪽이 어느건지는 잊어버렸습니다. 저는 그집에 가면 순면을 먹습니다. 제 입맛에는 이 집이 서울에서는 제일 맛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래옥도 좋아합니다. 사진은 못찾았습니다.

메밀을 좋아하니까 일본에 가게되어도 우동보다는 소바를 훨씬 많이 먹습니다. 거의 9:1이상의 비율로 소바를 선호하지요. 



얼마전에 먹었던 소바메뉴를 워터로그로 바꾸었더니 그럴듯한게, 볼때마다 먹고 싶어집니다. 


물론 '메밀'에만 집착하여 다른 냉면이나 국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같은 전분으로 뽑은 냉면, 비빔냉면도 나름 좋아하지요. 그리고 그냥 그렇고 그런 냉면집엘 가거나 여럿이 고기집에 가서 고기먹고 나중에 냉면시킬 때는 주로 비빔을 시킵니다. 웬만하면 양념맛으로 먹을만 하니까요.   


막국수에 냉면에, 사설을 늘어놓다 보니 오늘하려고 했던 집에서 만들어먹는 비빔메밀 이야기를 이제서야 꺼내게 되었군요. 제가 뱃살을 빼느라고 이런저런 실험을 하고 있는지 벌써 두달이 넘었습니다. 체중이 한 7,8킬로 줄고 배도 눈에 띄게 들어간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로는 잘 안빠지네요. 물론 무리하지 않고 먹을거 먹어가며 하니까 유지만 되어도 다행이라 여기고는 있습니다만, 술을 먹는 날이면 영락없이 다음날 체중이 1킬로 정도 늘어납니다. 그럼 또 며칠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얼마전에 마음을 먹었습니다.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만이라도 메밀을 먹자, 루틴이 많아서 여러가지로 몸에도 좋단다, 이렇게요. 그래서 메밀건면(소바)을 잔뜩 사왔습니다. 그리고 해먹어보았는데 이렇게만 먹으니 아무래도 금세 배가 고파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야채도 넣고해서 비빔메밀을 만들어 먹어보자, 하고 시도한게 아래 사진입니다. 메밀에 관한한 순수주의를 고집하려는 마음이 어디엔가 있었는지 처음엔 약간의 심리적 저항도 있었지만 일단 만들어 보았습니다.

콩나물을 넉넉히 넣고, 삶은 계란도 넣고,


양파를 사각사각할 정도로 볶아서 넣고, 오이, 상추도 넣고 단백질 보충으로 스팸도 볶아 넣습니다. 소고기를 다져서 볶아넣으면 더 좋겠지만 후딱 해먹으려니 귀찮기도 하고, 명절때 받은 스팸이 여기저기 퍼주고도 많이 남아서(는 핑계고 제가 스팸을 좋아합니다)소고기대신 넣습니다. 
  

그리고 삶은 메밀을 얹고 밥과술 비전(이라 그러면 있어보입니다)의 양념장을 넣고 비비면 아래와 같은 비주얼이 됩니다.


보기는 저래도 먹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맛이좋아서 저도 놀랐습니다. 그래서 또 만들어 먹었지요. 냉장고를 열어보니 쥬스가 만들어놓은 오이무침하고 시금치가 있어서 그것도 넣고, 콩나물도 많이 넣었습니다. 제가 비빔국수할때 콩나물을 많이 넣는 이유가 있습니다. 수십년전 친구들과 이대앞에 자주 출몰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자주가던 분식집의 비빔국수가 참 맛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먹다보면 늘 콩나물이 적은게 아쉬웠습니다. 그때 맺힌 한풀이인지 제가 만들어먹을 때는 콩나물을 아낌없이 넣습니다.



양파, 스팸, 상추는 고정메뉴고, 이날은 계란을 예쁘게 까지는 못했지만 반숙이라 좋았습니다.



메밀국수넣고 양념장넣고 이하동문.



기분 탓인지 메밀은 밤에 늦게 해먹어도 다음날 체중이 그렇게 늘지를 않아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자꾸 해먹게 됩니다. 이번에는 콩나물이 별로 없어서 대신 양배추를 얇게 채썰어 넣었지요. 계란은 쥬스가 도시락 싼다고 여러개 만들어 놓은 조린 달걀을 하나 꺼내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비벼서 맥주마시면서 후루룩 얌냠...



오늘도 점심을 늦게 먹어서 웬만하면 그냥 우유나 한잔 마시고 잘까했는데 슬슬 출출해 오네요. 비빔메밀이나 한그릇 뚝딱 만들어 먹을까 심각하게 고민중입니다. 

"양념장과 메밀, 두가지 다 맛있는 소재의 주인들이었다. 둘의 만남은 격렬하였다. 처음으로 만들어 먹어본지 보름남짓, 그는 메밀을 비벼먹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매콤하고 자극적인 양념장속으로 메밀의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각종 향신료가 참기름과 잘 조화된 양념장은 다른 고명 야채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메밀이 고명을 감싸는게 아니라 고명이 메밀에 빨려오는 듯 했다. 메밀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밥과술이었다."  

즐거운 주말 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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