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먹고산 이야기 공개 포스팅


강북에서 바라본 관악산입니다. 너무나 또렷하게 보여 지척에 있는 것 같습니다. 매일 이런날이 계속되길 바라는건 과욕이고, 이틀에 한번 아니 사흘에 한번이라도 이런 날씨였으면 더이상 바랄바가 없겠습니다. 올해도 절반이 휙하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6월에 먹고산걸 돌이켜보며 남은 하반기는 좀더 열심히 살자 결의를 다집니다.


저는 솔직히 에너지가 딸리는건지 코스트코를 한번 갔다오면 피곤합니다. 그런데 저희집 쥬스는 대단히 좋아합니다. 6월초에 코스트코를 갔습니다. 가면 늘 사는게 로티세리치킨입니다. 이게 미국에서는 4.99달러이고 우리나라에서도 6천얼마입니다. 그런데 일반 닭보다 엄청 큽니다. 보도를 보니 이걸로 손님을 끄느라고 로티세리 치킨 하나만으로 연간 5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본답니다. 통큰 피자 통큰치킨은 출시하고 술렁거렸는데 이건 직접 골목상권하고 부딪히는게 없는 건지 공정거래법과는 무관한건지 아무 말이 없네요. 아무튼 우리는 갈때마다 삽니다. 값도 싸지만 맛이 좋아서요. 이렇게 좀 크게 키운 닭을 다른데서도 많이 팔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면 반드시 사먹는게 또하나 있으니 핫도그입니다. 음료포함 2천원입니다. 푸짐한 양에 들어서 가격에서 오는 만족감이상으로 심리적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양파다진걸 마음껏 가져다 먹게 했는데 잔뜩 따로 담아다 케첩이랑 겨자 섞어 반찬먹듯 드는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빙수처럼 쌓아놓은 양파를 보면서 한국사람은 역시 치킨에는 무, 파스타엔 피클, 이렇게 반찬같은게 필요한가 보다 실감하였습니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그걸 그릇에 담아 집에 가져가는 고객이 있어 눈쌀을 찌프리게 한다는 기사도 있더군요. 이케아 연필 같은 케이스였나 봅니다. 피자도 한쪽 먹었습니다. 이것도 2,500원으로 크기에 비해 저렴합니다. 코스트코의 상술, 대단합니다.

집에 와서 따뜻할 때 우선 통닭을 먹습니다. 쥬스하고 둘이서 다리하고 날개만 떼어내어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6천원짜리 치킨에 걸맞게 테이블 와인을 땁니다. 남은 통닭은 냉장고로.


다음날 쥬스가 남은 치킨에서 적당량을 떼어내 살을 발라 파스타를 만들었습니다. 이건 이거대로 굿. 맛있게 먹었지요.


사흘 연속으로 치킨을 먹기는 그렇고, 또 외식도 있고 해서 하루 건너 다음날 쥬스가 남은 치킨으로 카레를 만들었습니다.  양이 꽤 되어 두끼 이상 먹었는데 카레의 장점은 잘 데우기만 하면 점점 더 맛이 좋아진다는 것이죠. 이래서 6천원짜리 통닭으로 여러번에 걸쳐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출장을 다녀왔는데 집에 도착하니 일요일 밤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얼큰한게 먹고싶어서 제가 자주 출몰하는 함지박사거리, 이수사거리, 사당사거리를 중심으로 검색을 하였더니 늦게 연 집이 있었습니다. 이다돔 감자탕이라는 곳으로 가서 묵은지 감자탕을 시켜서 저는 소주, 쥬스는 막걸리로 몸에 '좋은' 야식을 하였습니다. 


그 유명하다는 영등포역 앞 대한옥이라는 꼬리찜집을 갔습니다. 죽마고우 셋이 모여서 토요일 오후에 갔는데 살짝 기다리는둥 마는둥 하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지요. 꼬리찜위에 잔뜩 얹혀진 부추와 함께 찜을 먹고 나서 국수를 비벼먹는 건데, 너무 기대를 많이 하고 간건지 감동이 별로 없었다는게 솔직한 감상입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야, 우리 송죽장가서 짬뽕먹자. 또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이렇게 먹고 또 먹어? 한 이십분 걸으면 괜찮아. 대식가들의 모임은 무섭습니다...

위의 사진은 송죽장에 가서 짬뽕을 시켜먹기전에 시킨 안주들입니다. 이과두주 작은거 5병, 소주 2병에 탕수육 양장피 군만두 물만두 해서 맛있게 먹고 짬뽕은 두그릇만 시켜서 나눠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왔는데 누군가가 하는 말. 야, 쏸라탕 안먹었구나. 입가심으로.



사당동에 인도요리점이 있어서 늘 궁금했는데 들어가보니 제대로 하는 집이어서 대단히 흡족하게 먹고 나왔습니다. 델리에서 온 부부가 경영하는 집이었습니다. 앞으로 인도요리 땡기면 또 갈듯 하네요.


자하손만두에서 점심약속이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배님인데 대단한 미식가이십니다. 마음에 드는건 늘 푸짐히 시킨다는 것. 대낮부터 화요를 시켜 마시면서 골고루 먹고 나왔습니다. 


열무김치가 철인지 너무나 맛이 좋아서 가끔가는 생선구이집에서 열무김치를 넉넉히 달라고 해서 고추장 살짝 넣어 비벼먹었습니다. 아니, 흥건하니까 말아먹었다고 하는게 옳겠습니다. 열무김치는 맛이 좋아서 좋은데, 올여름엔 날씨는 너무 안더웠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사라져간 담배연기속에서... 공개 포스팅


어려서 아득하게 생각나는게 아리랑 담배입니다. 25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가격을 기억하는건 심부름을 하였거나 어른 옆에서 사는 걸 보았거나 했던게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파고다가 나왔습니다. 35원이었던가 했던 것 같습니다. 아리랑 파고다가 다 그때 제일 좋은 담배였습니다. 당시 전매청은 가격을 올리는게 아니라 새 브랜드를 비싼 가격에 만들어내면서 기존의 브랜드의 가격은 그대로 놔두고 품질을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가격인상효과를 거두었다고 기억합니다. 신탄진이 나왔습니다. 50원에 나왔다가 60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00원짜리 청자가 나왔습니다. 그 때 백원은 대단한 가치가 있어서 '담배한갑에 백원'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은하수가 나왔고 같은 가격으로 한산도가 나왔습니다. 140원이었습니다. 이게 제가 고등학교때라서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이 주로 피우던 두가지 브랜드 였지요.


그러다가 외국인용 담배로 나왔던 고급담배 썬하고 거북선이 일반판매로 풀렸습니다. 2백원이었다가 이내 3백원이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이라 저도 이걸 피웠습니다. 제일 많이 피웠던 담배라서 이런저런 추억이 제일 많은 담배입니다.


앞서 소개한 브랜드는 제일 비싼 브랜드로 팔리던 브랜드였고, 시골에 가면 아주 싼 브랜드로 새마을이라는게 있었습니다. 필터없는 궐련담배에서 제일 싼 거였는데 오랫동안 10원이었지요. 단종될때 40원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10원할때 제 주위에선 애연가 한명이 이걸 피웠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고 오신 불어선생님께서 이걸 피우셨는데 프랑스에서 피우던 지땅하고 비슷해서 피운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아직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풍년초는 어릴적 농촌에서 말아피우거나 곰방대에 넣어 피우던 담배였는데 저의 유년기 기억으로는 6원인가 그랬습니다. 스포츠는 여섯개피에다가 종이성냥이 붙어있는 간편한 제품이었는데 청소년들이 애용한다고 해서 단종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저가 브랜드로 금잔디 백조 환희 등이 있었는데 제 후배가운데 하나가 중학교때부터 담배를 피웠는데 그는 고등학교때 환희를 즐겨 피웠습니다. 진짜 골초였는데 수십년전부터 딱 끊었습니다. 하기야 저도 그렇고 대한민국 성인남성은 거의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 살았고 지금은 또 거의가 끊는 시대를 사니까 그러려니 합니다.


저는 태양 거북선을 마지막으로 외국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간간히 들어와보면 주종 담배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솔에서 팔팔로 그리고 디스로 계속 옮겨가더군요. 그 사이 저는 홍콩에서 바이스로이 실크컷 싱가포르에서 던힐 로스만 미국에서 켄트 말보로 벤슨앤헤지 일본에서 마일드세븐 캐스터 캐빈 등을 돌아가며 피우다가 결혼을 하고 담배를 끊었습니다. 

한국을 다시 드나들게 되며 피우게 된 담배가 있으니 레종하고 엣세입니다. 이 때부터 이미 한국담배가 세계 어떤 담배보다도 품질이 우수해서 한국담배 피우다가 양담배를 피우면 목이 따가왔고 일본담배도 한국것만 못한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씨즌이라는 담배하고 좀 독하지만 클라우드9이라는 담배가 제일 맛이 좋았는데 얼마안가 담배를 아예 끊었으니 이것도 오래된 이야기네요.



담배란게 그 때는 내뿜는 연기도 멋있었고 냄새도 구수하니 좋았던 것 같은데 (물론 쩔은 냄새는 그때도 역했지만) 지금은 연기가 조금만 가까이 와도 싫으니 참 습관이란게 무서운 겁니다. 요새 전자담배가 나와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예 니코틴만 배달하는 장치인 줄이라는게 나왔다고 해서 혹시 얼마안가면 아예 한달치 니코틴을 체내에 주입해서 조금씩 방출하는 장치가 나오지는 않을까 SF적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미국에서 의사를 담배광고 모델로 내세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간호사도요. 호랑이... 가 아니라 의사 담배피우던 시절입니다.

그뿐인가요. 애기를 담배광고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레이건 미국대통령도 젊은 시절 담배광고를 했군요.


그 당시 다방엔 유엔성냥이 시골집 부뚜막엔 향로 성냥이 있었던게 기억이 납니다. 다방 경양식집 주점에서는 모두들 자기네 디자인 성냥을 만들었고 그래서 성냥갑을 모으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어릴때 담배심부름을 하면 잔돈으로 과자를 사먹을 수 있어서 기꺼이 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지금도 생각나는건 막걸리를 받아오라는 심부름도 꽤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집은 기억에 없는데 주변에 많았습니다. 주전자를 가지고 가서 받아오는 거였고 집부근에 다와서 막걸리집에 들러 오지않는 아버지를 부르러 선술집에 가야했던 아이들이 적지 않았던 세월이었습니다. 아버지, 빨리 가요. 어머니가 기다려요. 아 먼저 가라니까, 먼저가서 저녁먹어라, 아버지도 곧 갈테니...뭐 이런 대화...


위의 사진은 이종호님의 '막걸리를 탐하다'라는 저서의 표지사진을 퍼온겁니다. 저도 한번 사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질나쁜 막걸리를 먹고 다음날 고생하던 기억은 제게도 있습니다. 역사의 뒤안길, 까지는 아니지만 역사의 큰 길에서는 살짝 물러난 담배와 함께 잊혀져간 먹을 것들이 생각나서 몇개 들어봅니다. 또뽑기, 참 맛있었는데 단 과자가 넘치면서 없어져 버렸습니다. 설탕이 아니라 돌사탕이라는 걸로 만드는 것도 있었는데 기억나시는 분 덧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칡뿌리도 있었습니다. 톱으로 썰어 팔았는데 학교앞에서 사서 씹으면 달고 고소한 칡즙이 나왔습니다. 이 칡이라는게 한자로 갈근입니다. 이제와 생각하여 보면 칡뿌리는 불량식품이 아니라 우량식품이었던 것이네요. 그리고 번데기... 옛날엔 그렇게 맛있게들 먹더니 지금은 혐오식품 취급을 받습니다. 저도 요샌 가까이 안하니 할 말은 없습니다만. 



은근히 많이 먹는 샌드위치: 빵이야기(2) 공개 포스팅


얼마전 집에서 해먹은 크로와상샌드위치입니다. '해먹었다'고 할만큼 공력이 들어간 것이 아니니 '조립해먹은' 거라고 하는게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커피여사 친구중에 요리솜씨 좋은 분이 있는게 그 분이 마음씨도 좋아서 저희 집 부녀를 어여삐 여기사 가끔씩 맛있는 걸 만들면 가져다 주십니다. 이 전날엔 미니햄버그를 만들어 여러개 용기에 담아가지고 오셨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 날 저녁엔 집에 있는 레토르트 카레에 토핑으로 얹어서 햄버그 카레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음날은 휴일이었는데 저와 쥬스는 느지막히 일어나 브런치로 뭘먹을까 궁리하다가 며칠전 코스트코에서 미니크로와상을 사다가 얼려놓은게 생각이 났습니다. 미니크로와상을 레인지에 데우고 햄버그도 데워서 양상치, 햄버그, 소스, 치즈, 케첩순으로 크롸상위에 얹은다음에 뚜껑으로 크롸상을 덮으니 간단하게 완성입니다. 음료는 둘이 각각 우유와 오렌지쥬스를 마시다 커피로 마무리를 하니 더 이상 훌륭한 브런치가 없겠다 싶을 정도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래는 조립과정에 잠깐 한커트 찍은 겁니다. 그 아래는 제 기록삼아 햄버그카레 사진도 한장 올려둡니다.


사진폴더를 훑어보니 햄버거보다 샌드위치를 더 많이 먹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특히 잊고 있었는데 출장을 나가면 현지의 맛있는 음식을 먹은게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어서 사이사이 샌드위치를 먹은걸 깜빡 했던 모양입니다. 샌드위치는 집에서도 해먹고 밖에서도 먹으니 아무래도 빈도가 햄버거보다 잦은데 기억의 오류로 햄버거가 더 가까이 있는 것 처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아래는 식구들이 왔을때 쥬스가 서울에도 맛있는 빵집이 늘어났다고 한남동 타르틴베이커리를 데려가서 점심을 사주었을때 찍은 레드커리치킨샌드위치입니다. 맛은 괜찮았는데 혼자서 '탄도리치킨 샌드위치'를 만들면 더 좋았을텐데...'하고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아래는 변함없는 레시피로 심심하면 해먹는 밥과술 샌드위치입니다. 볶은 양파, 치즈, 계란, 햄이나 스팸을 넣은 핫샌드위치인데 맛의 비결은 불건강한 레시피에 있습니다. 버터 듬뿍 넣어 계란부치고 빵도 버터 넉넉히 두르고 굽고 케첩도 넉넉하게 넣는게 레시피의 포인트입니다.



아래는 보다 건강한것 같은 밥과쥬스 레시피 샌드위치입니다. 어느날 쥬스에게 에그샌드위치가 먹고 싶다고 했을때 으깬 에그샐러드, 계란말이, 반숙 세종류를 만들어서 골라드세요하고 주길래 셋다 먹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남은건 다음날 그가 학교에 싸가지고 가서 친구들과 먹었다고 합니다.



재작년엔가 올란도로 출장을 갔는데 여러 도시를 도는 워낙 타이트한 일정이라 회의를 하면서 점심을 시켜먹었습니다. 서브웨이에서 시켜온 건 줄 금세 알았습니다. 배가 고파서 맛있게 먹기는 했습니다. 속으로 쿠바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에서 서브웨이라니... 하면서도, 한편으로 세계 어디에서 시켜도 서브웨이역시 이렇게 맛이 일정하구나 싶어 대형 프랜차이즈의 관리에 오히려 살짝 감동하였습니다.



얼마전 서울에서 인앤아웃 팝업스토어가 열렸다고 보도에서 보았습니다. 알고보니 상표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기간에 한 번은 영업을 해야한다는 설명을 보고 다 이유가 있었구나 이해했습니다. 인앤아웃 버거는 맛이 좋아서 저도 좋아합니다. 프렌치프라이는 한번 튀겨 냉동으로 배달된 것을 매장에서 다시 튀그는 방식이 아니라 매상에서 생감자를 썰어서 만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감이 맥도날드같은 곳 보다 좀 떨어진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냥 생감자를 튀겨 만들어서 그러려니 하면 또 나름 맛이 좋습니다. 아래는 벌써 5년이 되었는데 LA에서 여럿이 회의를 하다가 배달시켜온 인앤아웃 버거입니다. 사무실에서 약간 눅눅해진 것 같은 인앤아웃버거를 여럿이서 낄낄거리며 먹는 것도 별미여서 기억이 나네요. 



핸드폰 사진폴더에 sandwich 라고 검색을 하니 엄청 뜹니다. 이곳 저곳 참 많이도 다니며 먹었구나 혼자 끄떡이며 생각에 잠깁니다. 그 가운데 한장만 올리며 오랜만에 찾아온 블로그에 출첵삼아 올리는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아래는 지금은 없어진 LA의 다이너에서 자주 가서 먹었던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입니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 핸드폰 사진이라 해상도가 아주 낮습니다. 세월이 가는 건 잠깐이네요. 주말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명동에 흐른 세월 공개 포스팅



얼마전 명동거리를 걸었습니다. 몇년만인지 모를 정도로 오랜만이었지요. 명동이란데가 내 젊은 시절에는 일이 없어도 나가보곤 하던 곳이었는데 나이가 들고나니 진짜 몇년에 한번 나갈까 말까 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어쩌다 외국인 손님이라도 오면 안내겸해서 나갈까 그렇지 않으면 갈 일이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얼마전에는 그것도 오랜만에 동창친구 4명이 모이기로 했는데 장소가 을지로였습니다. 외국에서 사업하느라, 직장이 바빠, 늘 돌아다니느라, 등등의 이유로 함께 모이기 힘든 친구들이 모이는데 옛날 정취도 되살릴겸 을지로의 소박한 식당을 찾아서 약속을 정했지요.

늦지 않으려고 직장을 일찌감치 나섰더니 시간이 너무 남을것 같았습니다. 한 40분 여유가 있을 것 같아서 명동에서 내려 걷기로 하였습니다. 코스모스 백화점이 오른쪽에 있었고 왼쪽에 만두집 취영루가 있었던 명동입구로 들어가며 찍은게 위의 사진입니다. 사람 사람 사람...의 물결이 넘실거렸습니다. 

아래는 1970년대 초반에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거의 같은 지점이었을 겁니다. 고인이 된 김종규교수라는 분께서 찍은 사진인데 유족들이 자유롭게 퍼가라고 공개를 하였기에 퍼왔습니다. 당시의 풍물을 알수 있는 귀중한 사진이군요. '솔져부루'라는 영화간판이 보입니다. 베트남전쟁이 한참이던 시절, 캔디스 버겐이 주연으로 나오는 반전영화인데 저는 재개봉관에서 보았는데 베트남 밀라이 양민학살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이야기, 검열로 많이 짤려서 그렇지 실제로는 훨씬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온단 이야기등을  풍문으로 전해듣고 보았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때라 입소문이 꽤 빨리 그리고 중요하게 작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도로 한가운데를 놓고 좌우로 먹을 것, 잡화를 파는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었는데 듣도보도 못한 메뉴도 많았습니다. 돌연변이와 마찬가지로 적응을 하면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아 한국사람들의 정식 메뉴로 자리잡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운명이겠거니 하면서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위의 키조개 치즈버터구이라는게 저는 상상이 안가는 맛입니다. 평소에도 먹을 일이 없는데 이걸 전문으로 파는게 신기했습니다. 영어로는 스캘롭이라고 했고 일본어로 호타테라고 했으니 가리비 조개인가도 싶었는데 모양은 아닌것 같았습니다. '꼬리치는 랍스터구이'라는 것도 처음보았습니다. 가리비이든 랍스터이든 이게 길거리에서 들고다니며 먹는 간식에 들어갔다는게 신기하기도 했구요. 새송이 버섯구이, 오레오 츄로스도 제 눈에는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아래는 과일쥬스나 과일을 잘라 파는 가게들인데 간식거리를 파는 수레 사이사이에 있었습니다.


아래는 계란빵을 파는 곳인데 명동거리에 한 세군데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개 2천원이라는데 먹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곧 있을 저녁약속 때문에 참았습니다. 


아래는 몇년전에도 명동에서 본 적이 있는 '회오리감자'입니다. 찾아보니 한국사람이 개발한 아이템이더군요. 토네이도 포테이토, 트위스트 포테이토라고도 한다는데 기왕이면 세계적으로 대박이 나길 기원합니다. 


아래는 크롸상 기지로 구워낸 붕어빵이라고 합니다. 신기해서 역시 먹어보고 싶었으나 패스. 그 옆은 불타는 새우와 명동물만두, 아무말 대잔치 아니 아무메뉴 대잔치같은 느낌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 시행착오를 거쳐 자리를 잡은 메뉴라고 여겨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그아래 또 새우구이입니다. 명동에 가득 들어선 일본 중국 관광객들은 한국사람들이 참 새우를 많이도 먹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게습니다. '허붕'은 허니 붕어빵이랍니다. 이건 일본에서 본적이 있는 '타이야키 파르페'를 응용한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꿩잡는게 매라고 많이 파는 쪽이 승자이겠지만요.


아래는 케밥입니다. 이건 언젠가 한국에서도 유행하리라 생각하는데 아직은 널리 보급이 안되었나 봅니다. 터키계 이민이 많은 독일등에선 되뇌르 케밥, 그리스인들이 간 곳에선 '자이로', 중동계 사람들이 가서 정착한 곳에서는 '슈와르마'라고 불리는 이 케밥은 정말로 훌륭한 음식이라 생각합니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머리를 머플러로 가린 무슬림쪽 관광객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것이겠지만 떡볶이를 파는데 할랄 표지가 붙어있었습니다. 물어보았더니 주인이 자신있게 떡볶이, 꼬치, 김밥 모두 할랄이라고 했습니다. 



아래는 짜장면을 파는 가게입니다. 맛보기로 4천원을 받는데 간식용으로 적당하니 사먹는 사람도 좋고 파는 사람은 이문이 남아서 좋고 윈윈 상품이 아닌가 싶더군요. 그아래는 전통 부침개를 파는 가게입니다. 김치전, 해물파전, 녹두전 등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전통음식을 파는 곳이니 많이 팔아서 대박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래 집이 제게는 제일 익숙한 집이었습니다. 군밤 은행 오징어포 옥수수 등 모르는게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그아래 쥐포 오징어포 전문가게도 눈에 익은 것들을 팔아서 반가웠습니다.


꼬마김밥, 닭강정, 잡채도 익숙하지만 이게 길거리 음식으로 나왔다는게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 하였습니다.


고구마 맛탕을 고구마빠스라고 중국어를 쓰고 중국의 산사나무 열매로 만든 빙탕후루를 딸기로 대체하여 만들어낸 사탕과자를 보니 명동을 찾는 요우커의 힘을 살짝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아래 쭈꾸미와 삼겹살, 소라꼬치, 치즈떡갈비, 문꼬치 등은 몇년 뒤에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생존할 것인가 아닌가 궁금해서요.


아래는 불닭볶음면이 해외에서 인기라는데 명동에서 없을소냐, 한국의 매운맛 닭발입니다. 저는 매운맛에 관한 한 한국인의 평균이라고 자평하는데 매운 닭발은 못먹습니다. 불닭볶음면도 못먹을 것 같아서 도전해보지 않았습니다.


이 밖에도 닭강정, 핫도그, 군만두, 오방떡, 즉석 어묵튀김 등 다양한데 생략합니다.  아래는 을지로로 빠지는 골목입니다. 환전소도 있고 해서 아직은 살짝 옛날 정취가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 딸라아줌마, 암달러상 등의 이름으로 개인환전상들이 앉아있던 골목이기도 합니다. 중국대사관 골목도 그랬구요.


마지막 사진 한 컷은 명동파출소 입니다. 젊은이들이 수배의 몸으로, 장발의 신분이라, 늘 경찰서 앞은 피해서 돌아다니던 시절에도 명동파출소는 유명했습니다. 요즈음은 참 보기 힘든데 옛날엔 술집에서 싸움이 잦았습니다. 명동에서도 싸움이 나면 명동파출소 행입니다. 빽있으면 풀려나고 없으면 구류살고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만취한 사람들도 고성방가, 노상방뇨 등으로 잡혀들어가면 즉결에 넘어가고 거기서 구류, 벌금, 훈방 등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지금보니 너무 평화로와 보였습니다. 

그리고 명동 투어를 마친, 노년에 접어들면서 바득바득 자신을 아직은 중년이라 여기는 아저씨는 을지로에서 친구들 만나 얼큰하게 술을 마시고 무사히 귀가했다는 이야기...  


간만에 일본항공 탑승기 그리고... 공개 포스팅


이번주에 1박2일로 도쿄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정해진 여정이라 인터넷을 부랴부랴 찾아보았는데 일본항공이 제일 싼 값으로 나온게 있어서 그걸 끊었지요. 일본항공을 타기는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위의 사진이 김포-하네다 구간에서 나온 기내식입니다. 워낙 평소에 단거리구간에서는 기내식을 잘먹지않는 편인데 호기심에 시켜보았습니다. 옛날에 소라벤(空弁)이라 해서 일본식 도시락(벤토)가 나올 때가 좋았던 것 같은데 없어진 건지, 단거리 구간이라 그런건지, 한국 케이터링 회사걸 탑재해서 그런건지, 아무튼 그냥 칼로리 보급용 같았습니다. 

다음날 돌아올 때도 기내식을 받았습니다. 아래 사진입니다. 일본에서의 아웃바운드편도 그냥 그랬습니다... 그래도 한국노선이라고 야키니쿠에 무  
나물... 쯤 되는 메뉴인 것 같았습니다. 기내식을 받아놓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영화같으면 과거의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플래시백으로 과거로 시점이 옮아가는 순간이지요. 


사실 한일노선은 비행구간이 너무 짧아서 여유를 가지고 식사를 제공하기에는 좀 시간이 빡빡하기는 합니다. 그냥 추측컨대 특히 아시아 지역내의 단거리 구간은 워낙 저가항공사 노선이 많이 생겨서, 거기와 경쟁하려면 원가를 절감하여야 가격에서 그나마 경쟁력이 생기는 건지 이런저런 서비스가 옛날보다 못한 느낌입니다. 불요불급한 서비스나 옵션을 빼고 가격을 낮추는 제도나 상품을 영어로 no-frills라고 하지요. 미국에선 창고형 수퍼마켓이나 셀프포장 수퍼체인등이 있고 자동차도 최소한의 옵션을 뺀 기본사양 모델을 이야기합니다. 이젠 워낙 많아져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항공사에선 노스웨스트가 no frills flyer로 성공한 사례로 꼽힙니다. 기내식, 음료, 담요 등을 돈받고 제공하고, 기내 영화도 유료로 전환하고 하는 대신에 요금을 낮춘 저가 항공사들이 이제는 전세계 항공시장 여객수송부분의 절반에 육박한다고 하네요.

오늘 글은 기내식이 맛없네 맛있네 따지자는게 아니라 일본항공의 오늘이 과거 제 개인적인 추억과 오버랩되어 이런저런 생각이 나서 몇자 적고 싶어 쓰는 겁니다. 삼십년도 훨씬 넘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일본항공은 참 세련되고 서비스가 좋기로 이름난 항공사였습니다. '저팬 애즈 넘버원'이라는 구호가 세상에 넘쳐나서 타임, 뉴스위크, 피가로, 이코노미스트 등 세계 유수의 미디어들이 일본의 성공비결을 특집으로 끊이지 않고 다루었고 일본 국내에서는 모든면에서 자신감이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기내식에 적합하도록 디자인된 효율 우선의 용기를 무시하고 도기와 자기로 된 그릇에 가이세키 요리를 담아내어 비지니스 클래스 퍼스트 클래스에 제공하기 시작한게 일본항공, ANA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정점은 조지루시(코끼리표)와 공동으로 기내용 전기밥솥을 개발하여 비행중에 밥을 지어 제공한다거나, 퍼스트 클래스에 스시카운터를 만들고 장거리 노선에 스시 장인을 태워 스시 서비스를 하는걸 세일즈 포인트로 삼은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일본에 있으면서 일본항공이나 ANA를 탈 일이 잦았습니다. 저는 탈 때마다 우리나라 항공사는 언제나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나 늘 부러워하곤 했지요. 그즈음에 88올림픽을 계기로 아시아나 항공사가 생겼습니다. 일본에서는 JAS라는 항공사가 동시에 생겼구요. 

그러다 거품경제가 깨지고 일본은 장기 불황에 들어가게 됩니다. 세계 도처에 운영하던 닛코호텔(日航ホテル; JAL Hotel)은 하나씩 매각하게 되었고 노선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JAS는 적자에 허덕이다 일본항공에 흡수되고, 일본항공마저 부도가 나게 됩니다. 전문 경영인을 외부에서 영입하여 회생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않는게 서비스인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서비스가 세계 제일의 수준으로 올라가고, 일본의 항공사들의 기내 서비스는 많이 질이 떨어지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나라 저나라 비행기를 많이 타고 다니는 사람으로 자신있게 이야기하는데 이제 서비스는 한국항공사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아예 논외고, 서비스가 좋기로는 아시아의 항공사들이 손에 꼽히는데 많은 점수를 따는게 싱가포르 항공, 캐세이퍼시픽 항공 등입니다. 저는 이게 점수를 매기는 사람들이 미국, 유럽쪽이라 영어 커뮤니케이션에서 한국이 불리해서 그렇지 서비스는 한국이 훨씬 낫다고 여긴지 오래입니다. 에티하드, 에미레이트, 카타르 항공 등 중동쪽을 포함해서도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승객을 편하게 모시겠다는 마음이 곳곳에서 엿보이는게 한국 항공사의 승무원들의 서비스입니다. 그리고 영어도 정말 많이 늘었습니다. 옛날엔 기장이 끙끙거리며 영어로 기내 어나운스먼트를 하면 듣는 쪽이 안절부절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다들 참 잘합니다. 승무원들도 능숙한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얘기는 며칠전으로 돌아와서, 귀국편에 기내지를 집어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기내지를 펼쳐본 지도 참 오랜만입니다. 십여년전까지만 해도 의례 비행기를 타면 기내지를 꺼내어 읽고는 했는데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나서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처음에 기내지라는 제도가 생겼을 때는 표지에 모든 항공사의 기내지에는 Complimentary 라고 박혀있었습니다. 한국계 항공사는 친절하게 한글로도 '탑승기념으로 간직하셔도 됩니다'라고 써있었구요. 언제부터인가 기내 면세품 카탈로그가 따로 분리되더니 그게 훨씬 더 두꺼워 졌습니다. 아무튼 이번에 일본항공 기내지를 펼쳐보다가 눈에 들어온게 노선도였습니다. 아래 사진입니다.



대한항공보다 취항 노선이 훨씬 적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 한번 무너지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어 현실의 냉혹함을 다시 한번 실감하였습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시내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검색을 하여 보았습니다. 국제선의 경우 국적항공사로 대한항공과 일본항공을 비교하고 아시아나와 ANA를 비교하면 비슷할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시아나와 ANA의 비교는 생략합니다.

유럽 취항도시 
대한항공 13개 도시
일본항공 4개 도시 

미주 취항도시
대한항공 14개 도시
일본항공 11개 도시

중국 동남아 취항도시
대한항공 45개 도시 (중국 23, 동남아 22)
일본항공 15개 도시 (중국 6, 동남아 9)

중국노선, 동남아 노선에서도 상대가 안되고 러시아만 해도 일본항공은 모스크바 하나인데 한국은 이루크츠크, 블라디보스톡 까지 취항하며 몽골까지 포함해서 6개도시 입니다. 일본항공이 이렇게 노선이 줄어들고 규모가 작아진 건 불황탓도 있지만 해외여행을 안하는 풍조도 크게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일년에 2,500만명이 나가는데 일본사람들은 1,800만이 나갑니다. 한국인이 3배이상 해외여행을 하는 셈입니다.

요즈음 대한항공이 오너일가 갑질사태로 매스컴을 타더니, 주총에서 회장직을 물러나야했던 이가 별세하는 등 어수선합니다. 아시아나 항공은 매각설이 공식화 되었습니다. 두 항공사 모두 뒤숭숭한거지요. 대한항공을 키운 건 무엇보다도 다소 비싸더라도 국적기라고, 같은 값이면 우리나라 항공사니까, 이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탑승해 준 한국사람들입니다. 그다음이 이런 승객에게 으뜸가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열심히 노력한 승무원들과 안전한 운항을 위해 노력한 조종사 정비사, 그리고 그런 노력이 꽃을 피우는 회사가 되도록 사무실에서 노력한 숱한 임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습니다. 아시아나 항공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주식의 일부를 가졌다고 '오너'라는 말을 듣는 가족의 일탈이 밉쌀스럽고, 부실경영으로 시장에 기업을 내놓은 '오너'가 못마땅하다고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을 멀리한다면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업이 흥하는 건 힘들고 시간이 걸리지만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면 망하는 것도 잠깐이지요. 국민이 애국심으로 밀어주고 열심히 탑승해서 오늘날 이렇게 성장한 두 항공사가 계속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참에 기형적인 지배구조를 벗어나 명실상부한국민기업으로 거듭났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뭔가 쓸쓸해진 일본항공을 타고나서 든 생각이었습니다. 



아, 1박2일 있는동안 소바도 먹고싶고 돈카츠도 먹고 싶은데 시간은 없고해서 가츠동 정식을 먹었습니다. 점심시간에 갔더니 샐러리맨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기분 탓인지 제가 일하던 당시의 활기차고 자신넘치는 모습은 간데 없고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이었습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는 노래가 있더니 '소바는 여전히 맛있는데 인걸은 간데 없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간만에 블로그를 하였으니 늘 올리는 음식밸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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