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 흐른 세월 공개 포스팅



얼마전 명동거리를 걸었습니다. 몇년만인지 모를 정도로 오랜만이었지요. 명동이란데가 내 젊은 시절에는 일이 없어도 나가보곤 하던 곳이었는데 나이가 들고나니 진짜 몇년에 한번 나갈까 말까 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어쩌다 외국인 손님이라도 오면 안내겸해서 나갈까 그렇지 않으면 갈 일이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얼마전에는 그것도 오랜만에 동창친구 4명이 모이기로 했는데 장소가 을지로였습니다. 외국에서 사업하느라, 직장이 바빠, 늘 돌아다니느라, 등등의 이유로 함께 모이기 힘든 친구들이 모이는데 옛날 정취도 되살릴겸 을지로의 소박한 식당을 찾아서 약속을 정했지요.

늦지 않으려고 직장을 일찌감치 나섰더니 시간이 너무 남을것 같았습니다. 한 40분 여유가 있을 것 같아서 명동에서 내려 걷기로 하였습니다. 코스모스 백화점이 오른쪽에 있었고 왼쪽에 만두집 취영루가 있었던 명동입구로 들어가며 찍은게 위의 사진입니다. 사람 사람 사람...의 물결이 넘실거렸습니다. 

아래는 1970년대 초반에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거의 같은 지점이었을 겁니다. 고인이 된 김종규교수라는 분께서 찍은 사진인데 유족들이 자유롭게 퍼가라고 공개를 하였기에 퍼왔습니다. 당시의 풍물을 알수 있는 귀중한 사진이군요. '솔져부루'라는 영화간판이 보입니다. 베트남전쟁이 한참이던 시절, 캔디스 버겐이 주연으로 나오는 반전영화인데 저는 재개봉관에서 보았는데 베트남 밀라이 양민학살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이야기, 검열로 많이 짤려서 그렇지 실제로는 훨씬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온단 이야기등을  풍문으로 전해듣고 보았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때라 입소문이 꽤 빨리 그리고 중요하게 작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도로 한가운데를 놓고 좌우로 먹을 것, 잡화를 파는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었는데 듣도보도 못한 메뉴도 많았습니다. 돌연변이와 마찬가지로 적응을 하면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아 한국사람들의 정식 메뉴로 자리잡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운명이겠거니 하면서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위의 키조개 치즈버터구이라는게 저는 상상이 안가는 맛입니다. 평소에도 먹을 일이 없는데 이걸 전문으로 파는게 신기했습니다. 영어로는 스캘롭이라고 했고 일본어로 호타테라고 했으니 가리비 조개인가도 싶었는데 모양은 아닌것 같았습니다. '꼬리치는 랍스터구이'라는 것도 처음보았습니다. 가리비이든 랍스터이든 이게 길거리에서 들고다니며 먹는 간식에 들어갔다는게 신기하기도 했구요. 새송이 버섯구이, 오레오 츄로스도 제 눈에는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아래는 과일쥬스나 과일을 잘라 파는 가게들인데 간식거리를 파는 수레 사이사이에 있었습니다.


아래는 계란빵을 파는 곳인데 명동거리에 한 세군데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개 2천원이라는데 먹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곧 있을 저녁약속 때문에 참았습니다. 


아래는 몇년전에도 명동에서 본 적이 있는 '회오리감자'입니다. 찾아보니 한국사람이 개발한 아이템이더군요. 토네이도 포테이토, 트위스트 포테이토라고도 한다는데 기왕이면 세계적으로 대박이 나길 기원합니다. 


아래는 크롸상 기지로 구워낸 붕어빵이라고 합니다. 신기해서 역시 먹어보고 싶었으나 패스. 그 옆은 불타는 새우와 명동물만두, 아무말 대잔치 아니 아무메뉴 대잔치같은 느낌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 시행착오를 거쳐 자리를 잡은 메뉴라고 여겨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그아래 또 새우구이입니다. 명동에 가득 들어선 일본 중국 관광객들은 한국사람들이 참 새우를 많이도 먹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게습니다. '허붕'은 허니 붕어빵이랍니다. 이건 일본에서 본적이 있는 '타이야키 파르페'를 응용한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꿩잡는게 매라고 많이 파는 쪽이 승자이겠지만요.


아래는 케밥입니다. 이건 언젠가 한국에서도 유행하리라 생각하는데 아직은 널리 보급이 안되었나 봅니다. 터키계 이민이 많은 독일등에선 되뇌르 케밥, 그리스인들이 간 곳에선 '자이로', 중동계 사람들이 가서 정착한 곳에서는 '슈와르마'라고 불리는 이 케밥은 정말로 훌륭한 음식이라 생각합니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머리를 머플러로 가린 무슬림쪽 관광객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것이겠지만 떡볶이를 파는데 할랄 표지가 붙어있었습니다. 물어보았더니 주인이 자신있게 떡볶이, 꼬치, 김밥 모두 할랄이라고 했습니다. 



아래는 짜장면을 파는 가게입니다. 맛보기로 4천원을 받는데 간식용으로 적당하니 사먹는 사람도 좋고 파는 사람은 이문이 남아서 좋고 윈윈 상품이 아닌가 싶더군요. 그아래는 전통 부침개를 파는 가게입니다. 김치전, 해물파전, 녹두전 등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전통음식을 파는 곳이니 많이 팔아서 대박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래 집이 제게는 제일 익숙한 집이었습니다. 군밤 은행 오징어포 옥수수 등 모르는게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그아래 쥐포 오징어포 전문가게도 눈에 익은 것들을 팔아서 반가웠습니다.


꼬마김밥, 닭강정, 잡채도 익숙하지만 이게 길거리 음식으로 나왔다는게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 하였습니다.


고구마 맛탕을 고구마빠스라고 중국어를 쓰고 중국의 산사나무 열매로 만든 빙탕후루를 딸기로 대체하여 만들어낸 사탕과자를 보니 명동을 찾는 요우커의 힘을 살짝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아래 쭈꾸미와 삼겹살, 소라꼬치, 치즈떡갈비, 문꼬치 등은 몇년 뒤에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생존할 것인가 아닌가 궁금해서요.


아래는 불닭볶음면이 해외에서 인기라는데 명동에서 없을소냐, 한국의 매운맛 닭발입니다. 저는 매운맛에 관한 한 한국인의 평균이라고 자평하는데 매운 닭발은 못먹습니다. 불닭볶음면도 못먹을 것 같아서 도전해보지 않았습니다.


이 밖에도 닭강정, 핫도그, 군만두, 오방떡, 즉석 어묵튀김 등 다양한데 생략합니다.  아래는 을지로로 빠지는 골목입니다. 환전소도 있고 해서 아직은 살짝 옛날 정취가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 딸라아줌마, 암달러상 등의 이름으로 개인환전상들이 앉아있던 골목이기도 합니다. 중국대사관 골목도 그랬구요.


마지막 사진 한 컷은 명동파출소 입니다. 젊은이들이 수배의 몸으로, 장발의 신분이라, 늘 경찰서 앞은 피해서 돌아다니던 시절에도 명동파출소는 유명했습니다. 요즈음은 참 보기 힘든데 옛날엔 술집에서 싸움이 잦았습니다. 명동에서도 싸움이 나면 명동파출소 행입니다. 빽있으면 풀려나고 없으면 구류살고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만취한 사람들도 고성방가, 노상방뇨 등으로 잡혀들어가면 즉결에 넘어가고 거기서 구류, 벌금, 훈방 등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지금보니 너무 평화로와 보였습니다. 

그리고 명동 투어를 마친, 노년에 접어들면서 바득바득 자신을 아직은 중년이라 여기는 아저씨는 을지로에서 친구들 만나 얼큰하게 술을 마시고 무사히 귀가했다는 이야기...  


간만에 일본항공 탑승기 그리고... 공개 포스팅


이번주에 1박2일로 도쿄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정해진 여정이라 인터넷을 부랴부랴 찾아보았는데 일본항공이 제일 싼 값으로 나온게 있어서 그걸 끊었지요. 일본항공을 타기는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위의 사진이 김포-하네다 구간에서 나온 기내식입니다. 워낙 평소에 단거리구간에서는 기내식을 잘먹지않는 편인데 호기심에 시켜보았습니다. 옛날에 소라벤(空弁)이라 해서 일본식 도시락(벤토)가 나올 때가 좋았던 것 같은데 없어진 건지, 단거리 구간이라 그런건지, 한국 케이터링 회사걸 탑재해서 그런건지, 아무튼 그냥 칼로리 보급용 같았습니다. 

다음날 돌아올 때도 기내식을 받았습니다. 아래 사진입니다. 일본에서의 아웃바운드편도 그냥 그랬습니다... 그래도 한국노선이라고 야키니쿠에 무  
나물... 쯤 되는 메뉴인 것 같았습니다. 기내식을 받아놓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영화같으면 과거의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플래시백으로 과거로 시점이 옮아가는 순간이지요. 


사실 한일노선은 비행구간이 너무 짧아서 여유를 가지고 식사를 제공하기에는 좀 시간이 빡빡하기는 합니다. 그냥 추측컨대 특히 아시아 지역내의 단거리 구간은 워낙 저가항공사 노선이 많이 생겨서, 거기와 경쟁하려면 원가를 절감하여야 가격에서 그나마 경쟁력이 생기는 건지 이런저런 서비스가 옛날보다 못한 느낌입니다. 불요불급한 서비스나 옵션을 빼고 가격을 낮추는 제도나 상품을 영어로 no-frills라고 하지요. 미국에선 창고형 수퍼마켓이나 셀프포장 수퍼체인등이 있고 자동차도 최소한의 옵션을 뺀 기본사양 모델을 이야기합니다. 이젠 워낙 많아져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항공사에선 노스웨스트가 no frills flyer로 성공한 사례로 꼽힙니다. 기내식, 음료, 담요 등을 돈받고 제공하고, 기내 영화도 유료로 전환하고 하는 대신에 요금을 낮춘 저가 항공사들이 이제는 전세계 항공시장 여객수송부분의 절반에 육박한다고 하네요.

오늘 글은 기내식이 맛없네 맛있네 따지자는게 아니라 일본항공의 오늘이 과거 제 개인적인 추억과 오버랩되어 이런저런 생각이 나서 몇자 적고 싶어 쓰는 겁니다. 삼십년도 훨씬 넘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일본항공은 참 세련되고 서비스가 좋기로 이름난 항공사였습니다. '저팬 애즈 넘버원'이라는 구호가 세상에 넘쳐나서 타임, 뉴스위크, 피가로, 이코노미스트 등 세계 유수의 미디어들이 일본의 성공비결을 특집으로 끊이지 않고 다루었고 일본 국내에서는 모든면에서 자신감이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기내식에 적합하도록 디자인된 효율 우선의 용기를 무시하고 도기와 자기로 된 그릇에 가이세키 요리를 담아내어 비지니스 클래스 퍼스트 클래스에 제공하기 시작한게 일본항공, ANA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정점은 조지루시(코끼리표)와 공동으로 기내용 전기밥솥을 개발하여 비행중에 밥을 지어 제공한다거나, 퍼스트 클래스에 스시카운터를 만들고 장거리 노선에 스시 장인을 태워 스시 서비스를 하는걸 세일즈 포인트로 삼은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일본에 있으면서 일본항공이나 ANA를 탈 일이 잦았습니다. 저는 탈 때마다 우리나라 항공사는 언제나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나 늘 부러워하곤 했지요. 그즈음에 88올림픽을 계기로 아시아나 항공사가 생겼습니다. 일본에서는 JAS라는 항공사가 동시에 생겼구요. 

그러다 거품경제가 깨지고 일본은 장기 불황에 들어가게 됩니다. 세계 도처에 운영하던 닛코호텔(日航ホテル; JAL Hotel)은 하나씩 매각하게 되었고 노선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JAS는 적자에 허덕이다 일본항공에 흡수되고, 일본항공마저 부도가 나게 됩니다. 전문 경영인을 외부에서 영입하여 회생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않는게 서비스인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서비스가 세계 제일의 수준으로 올라가고, 일본의 항공사들의 기내 서비스는 많이 질이 떨어지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나라 저나라 비행기를 많이 타고 다니는 사람으로 자신있게 이야기하는데 이제 서비스는 한국항공사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아예 논외고, 서비스가 좋기로는 아시아의 항공사들이 손에 꼽히는데 많은 점수를 따는게 싱가포르 항공, 캐세이퍼시픽 항공 등입니다. 저는 이게 점수를 매기는 사람들이 미국, 유럽쪽이라 영어 커뮤니케이션에서 한국이 불리해서 그렇지 서비스는 한국이 훨씬 낫다고 여긴지 오래입니다. 에티하드, 에미레이트, 카타르 항공 등 중동쪽을 포함해서도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승객을 편하게 모시겠다는 마음이 곳곳에서 엿보이는게 한국 항공사의 승무원들의 서비스입니다. 그리고 영어도 정말 많이 늘었습니다. 옛날엔 기장이 끙끙거리며 영어로 기내 어나운스먼트를 하면 듣는 쪽이 안절부절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다들 참 잘합니다. 승무원들도 능숙한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얘기는 며칠전으로 돌아와서, 귀국편에 기내지를 집어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기내지를 펼쳐본 지도 참 오랜만입니다. 십여년전까지만 해도 의례 비행기를 타면 기내지를 꺼내어 읽고는 했는데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나서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처음에 기내지라는 제도가 생겼을 때는 표지에 모든 항공사의 기내지에는 Complimentary 라고 박혀있었습니다. 한국계 항공사는 친절하게 한글로도 '탑승기념으로 간직하셔도 됩니다'라고 써있었구요. 언제부터인가 기내 면세품 카탈로그가 따로 분리되더니 그게 훨씬 더 두꺼워 졌습니다. 아무튼 이번에 일본항공 기내지를 펼쳐보다가 눈에 들어온게 노선도였습니다. 아래 사진입니다.



대한항공보다 취항 노선이 훨씬 적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 한번 무너지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어 현실의 냉혹함을 다시 한번 실감하였습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시내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검색을 하여 보았습니다. 국제선의 경우 국적항공사로 대한항공과 일본항공을 비교하고 아시아나와 ANA를 비교하면 비슷할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시아나와 ANA의 비교는 생략합니다.

유럽 취항도시 
대한항공 13개 도시
일본항공 4개 도시 

미주 취항도시
대한항공 14개 도시
일본항공 11개 도시

중국 동남아 취항도시
대한항공 45개 도시 (중국 23, 동남아 22)
일본항공 15개 도시 (중국 6, 동남아 9)

중국노선, 동남아 노선에서도 상대가 안되고 러시아만 해도 일본항공은 모스크바 하나인데 한국은 이루크츠크, 블라디보스톡 까지 취항하며 몽골까지 포함해서 6개도시 입니다. 일본항공이 이렇게 노선이 줄어들고 규모가 작아진 건 불황탓도 있지만 해외여행을 안하는 풍조도 크게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일년에 2,500만명이 나가는데 일본사람들은 1,800만이 나갑니다. 한국인이 3배이상 해외여행을 하는 셈입니다.

요즈음 대한항공이 오너일가 갑질사태로 매스컴을 타더니, 주총에서 회장직을 물러나야했던 이가 별세하는 등 어수선합니다. 아시아나 항공은 매각설이 공식화 되었습니다. 두 항공사 모두 뒤숭숭한거지요. 대한항공을 키운 건 무엇보다도 다소 비싸더라도 국적기라고, 같은 값이면 우리나라 항공사니까, 이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탑승해 준 한국사람들입니다. 그다음이 이런 승객에게 으뜸가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열심히 노력한 승무원들과 안전한 운항을 위해 노력한 조종사 정비사, 그리고 그런 노력이 꽃을 피우는 회사가 되도록 사무실에서 노력한 숱한 임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습니다. 아시아나 항공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주식의 일부를 가졌다고 '오너'라는 말을 듣는 가족의 일탈이 밉쌀스럽고, 부실경영으로 시장에 기업을 내놓은 '오너'가 못마땅하다고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을 멀리한다면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업이 흥하는 건 힘들고 시간이 걸리지만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면 망하는 것도 잠깐이지요. 국민이 애국심으로 밀어주고 열심히 탑승해서 오늘날 이렇게 성장한 두 항공사가 계속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참에 기형적인 지배구조를 벗어나 명실상부한국민기업으로 거듭났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뭔가 쓸쓸해진 일본항공을 타고나서 든 생각이었습니다. 



아, 1박2일 있는동안 소바도 먹고싶고 돈카츠도 먹고 싶은데 시간은 없고해서 가츠동 정식을 먹었습니다. 점심시간에 갔더니 샐러리맨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기분 탓인지 제가 일하던 당시의 활기차고 자신넘치는 모습은 간데 없고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이었습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는 노래가 있더니 '소바는 여전히 맛있는데 인걸은 간데 없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간만에 블로그를 하였으니 늘 올리는 음식밸리로~


잡담: '파시' 박경리 글에 천경자 그림

옛날 신문을 검색하다가 눈에 들어와서 캡쳐를 하였다. 박경리 선생이 장편소설 '파시'를 동아일보에 연재한 뒤에 단행본으로 출간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문인들이 장편을 발표하는 건 신문연재를 통한 경우가 많았으므로 그게 놀라운게 아니라 그 소설의 삽화를 천경자 화백이 그렸다는 사실이다. 위의 그림도 그렇고 아래의 그림도 천화백의 필치가 묻어난 걸 알 수가 있다. 

전후 한국의 상황을 그린 작품이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 읽지 못했다. 통영을 무대로한 소설이라는데 시간날 때 사서 읽어볼까 싶기도 하다. 나는 통영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통영이 뜨니 은근히 관심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연재는 64년에서 66년 사이에 있었는데, 천경자 화백이 매일 한 컷씩 삽화를 한달에 스물 몇개를 그렸다는게 요새 같아선 믿기지가 않는다. 아래는 64년 9월 2일자인가를 캡쳐한 것이다.


하긴 70년대 황석영의 대표작 '장길산'이 한국일보에 연재되던 시절, 한 때는 운보 김기창 화백이 삽화를 그렸으니까. 작가가 하도 원고마감을 안지켜서 매일 안달하며 기다리던 김화백이 지쳐서 반년 그리다 그만 두었다던가 하는 뒷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정잡배의 흑심이 발동해서 그 때 그 수백장이 넘는 그 삽화를 다 누가 보관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인쇄부에서 그냥 동판뜨고 버렸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그게 지금 다 있으면 엄청난 가치가 있을텐데...

아래는 같은 날짜 신문광고인데 옛날 생각에 젖어 캡쳐해 보았다.


당시는 미군홀, 미공군홀, 외국인 싸롱 여급 등의 이름으로 젊은 여성을 모집하는 광고가 매일 올라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그렇고 그런 일이었을텐데... 당시에도 돈은 언제나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급전 대출의 광고가 많았다. 이것도 알고보면 살벌한 내용이었겠지... 운전사 모집도 매일 광고로 올라왔다. 운전이 특수 기능이어서 운전만 할 줄 알면 밥은 먹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식모'라는 명칭이 보통 명사로 통용되던 시절이었구나. 식모>가정부>파출부>가사도우미로 이름이 바뀌어 가며 조금씩이나마 권익이 신장되고 수입도 올라간 것 같다. 내가 어려서도 들으면 분개하고 속상하던 '식모'에 얽힌 이야기가 너무 많았으니까. 박완서의 소설에서도 다루었던 것 같다. 전화 국번이 두자리였던 시절이다. 전화 한대 값이 집한채 값이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중에 교환기가 자동화되면서 전화가 싼값에 보급되기 시작했고, 백색전화 청색전화 등으로 분류되던 과도기를 거쳐 아주 저렴하게 집집마다 전화를 놓을 수 있었다. 이제는 가정의 유선전화가 없어져가는 세월도 접어 들었지만.



요즈음 살아가는 이야기 공개 포스팅


며칠전 도시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찍었습니다. 용산역에서 열차를 갈아타려는 참이었습니다. 열차는 장거리에 쓰는 말인 것 같고 전철을 갈아타려는 참이었다는게 더 올바른 표현인 것 같습니다. 요즈음 일도 바빴지만 어쩐지 블로그가 시들해져서 글을 올린지 한참 되었더군요. 그전에 일이 바쁠 때에도 짬짬이 올린 걸 상기해보면 아무래도 바쁜 건 핑계고 뭔가 의욕이 없어졌다는게 더 맞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글루스에 들어가서 낯익은 이웃들이 글을 올려주시면 반가운 마음으로 읽곤 합니다. 일일이 열거는 생략하지만 소식전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그래서 오늘 출석체크 안부인사 겸하여 최근의 일상을 하나 올립니다. 


3월의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영등포에 꼬리찜을 맛있게 한다는 집이 있어서 궁금하던 차에 마침 같이갈 일행이 생겨서 일찌감치 갔는데 이미 줄을 길게 늘어섰더군요. 직원분이 나와서 죄송하지만 재료가 떨어졌다고 오늘은 그냥 돌아가시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우리 일행 앞 7팀 정도에서 짤렸습니다. 각오를 하고 오신 분들인지 누구도 불만없이 해산하였습니다. 수십년전 입시에서 탈락했던 쓰라린 기억이 되살아 났습니다. 지금은 '꼬리찜 재수'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모르지요...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바뀔지도요.


그래서 그 날은 서대문 한옥집에 가서 김치찜과 김치찌개를 먹었습니다. 여전히 번창한 모습이었습니다. 김치찜이 예전에 비해 양이 좀 줄은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불만은 없습니다. 한사람당 만원 이하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집이 자꾸 줄어드는데 이집은 아직도 가격을 8천원대로 묶어 놓았으니 이해하기로 하였습니다. 김치찜을 간만에 맛있게 먹은 날이었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하던 날 쥬스하고 둘이서 맥도날드 4달러셋트를 사먹었습니다. 사딸라셋트는 버거킹에서 붙인 말인것 같은데 같은 가격이라서 저는 맥도날드로 사딸라세트라고 부릅니다. 

건대입구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까날님의 트윗을 보고 그 동네에 딤섬집이 생긴 걸 알았고 들러서 창펀을 맛보았습니다. 메인은 그동네에서 장사 잘되는 도삭면집에서 먹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일명 양꼬치 골목을 들어가기전 큰 길가에 늘어선 포장마차인데 다 맛있게 보여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래가 창펀하고 도삭면 사진입니다.


집에서 쥬스가 치킨커리를 제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자도 밥할때 몇개 넣어 쪄서 함께 먹으니 잘 어울렸습니다.



다음날 저는 '남은 커리를 카레로 바꾸어 먹기'를 시전하였습니다. 간단합니다. 커리루에다가 쯔유, 다시, 밀가루, 물을 첨가하여 끓였습니다. 그래서 카레우동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우동이 없어서 아쉬운대로 칼국수를 끓여서 대체했는데 나름 괜찮았습니다.


어느날 지하철을 탔는데 정말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한사람도 빠짐없이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은 위대합니다. 옛날엔 차가 밀리면 사람들이 한숨을 푹푹 쉬고 짜증을 내고 그랬는데 요새는 그런 광경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날은 밤늦게 야식으로 라볶이를 해먹었습니다. 라면대신 쌀국수를 넣었으니 엄밀하게는 '쌀볶이'입니다. 떡볶이에 쌀국수 넣어먹으면 맛있습니다.



봄비가 제대로 오던 날 저녁에 퇴근을 하는데 신호대기에 걸리면 와이퍼를 잠시 껐습니다. 빗방울이 맺히는게 좋아서요. 이날은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었습니다. 찬밥 한술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디저트로 쥬스가 사온 크리스피 딸기 도넛을 한개 먹었습니다. 


홍대입구에 간 날이 있었습니다. 3월달엔 출장이 적었던 대신 서울시내를 이곳저곳 다녔네요. 즐거웠습니다. 길을 걷다가 꽃이 피려는 나무 그림자를 보고 정작 나무보다 더 봄날의 정취를 느껴서 사진을 찍어 두었습니다. 이날 이촌동에서 생선구이를 먹었습니다. 맛있었습니다.


3월 들어서 저녁에 진눈깨비가 내렸던 날이 있었지요. 길을 가다가 택시위에 쌓인 진눈깨비를 찍었습니다. 이 날이었는지 언젠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갑자기 편의점에서 과자를 잔뜩 사다 먹은 날이 있었습니다. 


3월달은 국내에 있건 출장을 가던 이래저래 생산성이 낮았던 달이고 컨디션도 별로였던 달이었습니다. 남은 일주일 업무의 효율도 높이고 건강도 잘 챙기도록 마음먹는 주말이었습니다. 블로그 이웃 모든 분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즐겁고 행운이 쏟아지는 봄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편의점(2): 그 이전의 생태계 공개 포스팅


일본의 수퍼에 진열되어있는 카레 종류가 이렇게 다양합니다. 집에서 야채와 고기를 가지고 카레를 쉽게 만들어 먹을수 있는 블록형 인스턴트 카레와 그마저 귀찮으면 데워서 밥에다 얹기만 하면 되는 레토르트로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이게 또 인도풍 유럽풍 전통 일본풍의 맛이 메이커별로, 매운맛 덜매운맛 등으로 다시 나뉘다 보니 금방 수십종류로 나뉩니다. 사진 한장에 담을 수가 없어서 세장에 나누어 찍었습니다. 위의 두장하고 아래 한장입니다. 아래는 유명한 카레 전문점이나 노포와 콜라보를 하여 낸 기획상품입니다. 


오늘은 카레 이야기가 아니고 수퍼이야기도 아닙니다. 지난번 편의점 이야기 속편에 해당됩니다. 일본의 편의점 이야기를 올리고 나서 달린 덧글을 보니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신 분들이 많았는데 좀 설명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 보완하는 의미에서 쓰는 포스팅이 되겠습니다. 지난번 글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일본의 편의점이 일반 소매업의 생태계 뿐만이 아니라 일본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도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겠으니 참고로 할만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물론 일본하고 우리는 출발점도 다르고 현재 놓여진 사회 상황도 다릅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모든게 비슷하다고 여기고 보면 달라도 너무 다르고, 전반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고 들여다보면 놀랄 정도로 비슷한 점이 있는게 한국과 일본 사회입니다. 

오늘은 편의점 그리고 그 이전의 소매업과 관련하여 일본이 한국과 다른 점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평범한 수퍼에 놓인 카레 코너를 예로 들었듯이 일본은 인구가 한국의 두배 반이고 국민소득은 한참 앞서가는 편(지금은 많이 차가 줄었지만)이어서 상품의 구성이 한국보다 다양합니다. 소비자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많은 거지요. 그런데 음식과 관련한 쇼핑패턴은 뒤늦게 경제발전을 한 한국이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대도시 중심의 이야기가 되는 걸 미리 밝힙니다).

예를 들자면 코스트코는 일본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는데 한국은 대용량 단위로 판매를 하여 일인 세대나 2인가족이 구매하기가 쉽지않은 상품이 많습니다. 고기같은 것은 대량으로 사다가 냉동실에 넣어두고 오랫동안 먹어야 합니다. 일본 코스트코는 일반 수퍼정도로 포장을 하여서 팝니다. 그 이유는 일본은 주택사정상 냉장고의 용량이 작습니다. 한국은 3백리터 4백리터를 넘어서더니 지금 팔리는 걸 보면 6백, 7백, 8백 리터짜리도 많습니다. 미국처럼 자동차로 가서 일주일분 이주일분의 식량을 한번에 구입하여 두고 먹는 패턴이 정착한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이보다는 소량을 자주 사다가 먹는 패턴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는 주택사정상 냉장고의 크기에 제한이 있는 것도 있지만 쇼텐가이(상점가)에서 매일 장을 보는 일본 주부들의 습관이 사회적 유산처럼 남아있어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자주 장을 보는게 여유만 있다면 즐거울 수도 있는 행위입니다. 그것도 혼자서 카트에다가 묵묵히 물건을 담아서 계산대에서 기계적으로 스캔을 하여 셈을 치르는게 아니라,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서로가 알아서 야채가게에서는 오늘 뭐가 나왔어요, 뭐가 쌉니다 정보를 받아가며 물건을 담고 고기집에서 오늘 가고시마산 돼지고기 안심이 세일입니다 어드바이스도 듣고 생선집에서는 횟감은 뭐가 좋고 찌개거리는 뭐가 좋다고 안내를 받아가면 쇼핑을 하면 즐겁지요. 그런데 소요되는 인건비나 간접비용을 줄여서 경쟁력을 높인게 수퍼라는 점포인데 일본에서는 워낙 오래된 쇼텐가이의 전통이 있다보니 오랜 세월 남아서 수퍼와 공존을 해온 겁니다.

 

도쿄 아사쿠사 센소지 안에 있는 나카미세라는 곳의 가게들입니다. 관광지라서 주로 오미야게 중심의 상품구성입니다만 에도시대 쇼텐가이의 원형이 아닌가 합니다. 아래는 그 앞 거리의 상점가 압니다.


아래는 도쿄 도심의 나카노 쇼텐가이인데 이렇게 천정을 덮은 상점가가 일본 전국의 중소도시에도 어딜 가나 있습니다.


아래는 그냥 아무 동네에 가도 보이는 흔한 골목길입니다. 점포들이 변하여 완전한 쇼텐가이는 아니지만 남아있는 가게들이 혼재해 있습니다.


아래는 아직도 분투(?)하며 전통을 지키고 있는 쇼텐가이 입니다. 여러장 사진을 연속으로 올립니다. 팔고 있는 상품구성을 보면 이해가 가리라 생각합니다. 첫번째 사진은 상점가 초입에 있는 가게인데 お惣菜(오소자이)라고 써있습니다. 소자이(惣菜)란 우리말로 '반찬'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이런 쇼텐가이는 수십년을 살며 가게를 해온 주인들이 나이를 먹어 은퇴를 하기에 이르렀는데 물려받을 사람이 없어서  폐점을 하고, 이가 빠지듯이 가게가 비기 시작하면 손님이 줄고 이게 또 다른 가게들의 폐점을 재촉하고, 이래서 전국적으로 문을 닫는 쇼텐가이가 많이 늘어나 진작에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니 기력이 부쳐서 자동차를 몰고 대형수퍼에 가서 많은 양을 사기에도 힘든 노령층은 자연히 편의점으로 찾는 빈도가 늘어납니다. 

일본은 데파지카라고 해서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이 한국보다 일찌기 발달을 하여서 고급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이용하기 쉬운 장소였습니다. 전국적으로 촘촘히 깔린 철도망과 특히 대도시 주변에는 철도회사가 운영하는 백화점들이 많이 발달을 하였습니다. 여기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나가야 해서 오늘은 여기서 맺고 다음번에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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