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만 있는 추억의 물만두 살아가는 이야기


아주 오랜만에 물만두를 먹었습니다. 짜장면을 먹으러가면 탕수육이 메뉴에 들어있지 않은 집은 없습니다. 탕수육이 얼마만큼 인기냐 하면 분식집 메뉴에서도 보았습니다. 군만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무지 수준으로 내려가서 서비스 품목이 된 곳도 많습니다. '짜장면/짬뽕 탕수육 군만두'는 한국에서 운명공동체처럼 함께 똘똘 뭉쳐 다닙니다. 그런데 물만두는 잊혀져가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옛날엔 오늘날 짜장면 짬뽕 관계처럼 군만두와 동일선상에서 손님들의 간택을 받는 입장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메뉴에 물만두가 들어있는게 반가웠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옛날생각도 많이 나서 좋았습니다.

혼선을 피하기 위해 오늘 이야기하는 물만두의 뜻을 규정하자면 '한국에 있는 중화요리점에서 내는 물만두'를 말합니다. 식당마다 조금씩 차이는 나겠지만 대개는 위의 사진처럼 알이 작고 껍질이 얇으며 속은 다진 부추를 많이 쓴 만두를 삶아낸 것이죠. 옛날 중국집에서 나오는 물만두는 어딜가나 다 이랬습니다. 이 만두를 좋아하는 팬들이 있어서인지 명동에 있던 취영루처럼 물만두를 전문으로 내걸고 강남으로 확장한 가게도 있습니다. 

아래는 한국음식점에서 내는 만두입니다. 삶아서 건져내어 서빙을 하면 '접시만두' '손만두' 등의 이름으로 테이블에 올라오고, 국물에 담가 나오면 '만두국'이라는 이름이 붙지요. 이건 정말로 집집마다 레시피가 다른데 으깬 두부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속에 들어가는 흔한 재료를 들자면 두부, 숙주나물, 다진 고기, 배추 또는 잘 씻은 김치 등이 아닌가 합니다. 부추는 향이 강해서 밥도 말아먹고 하는 만두국이나 떡과 함께 만드는 떡만두국에 들어가는 만두속으로 약간은 몰라도 많이 사용하기에는 좀 덜어울리는게 아닌가 하는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저는 물만두를 좋아해서 중국에 가면 만두를 자주 먹습니다. 중국어로는 쑤이쟈오(水饺;水餃)라고해서 말그대로 물교자, 그러니까 우리말로 물만두입니다. 이게 중국에서는 워낙 종류도 다양하고 명가, 노포가 많아서 어디에 묵거나 멀리 찾아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만두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중국에서 가성비 최고의 메뉴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듯이 살이 도톰합니다. 속은 주문할 때 육류와 야채의 조합으로 시키니까 돼지고기 배추, 닭고기 대파, 계란 부추, 이런식으로 어느집이든 수십가지를 시킬 수가 있지요. 이 중국만두피는 손으로 밀어서 만드는게 특징입니다. 언젠가 이에 관해 포스팅을 한 적이 있으니 여기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이 이야기도 언젠가 블로그에서 다루었는데 중국에서는 일반가정에서 물만두를 잔뜩 삶아서 먹다가 남으면 나중에 그걸 번철에 지져서 먹습니다. 그게 궈티에(锅贴), 즉 우리의 군만두 입니다. 가게의 메뉴로도 들어갔는데 물만두만큼 보편적이진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이와 반대로 물만두는 뒤쳐지고 군만두(焼餃子,야키교자)가 대세입니다. 조그만 라멘집에서도 다 이걸 합니다. 며칠전에 간 중국집에서 제대로 돈을 받고 내는 군만두가 물만두와 나란히 메뉴에 있기에 시켰습니다. 아래 사진이 그것인데 역시 '군'만두가 아니라 흔히 보는 '튀김'만두여서 좀 실망을 하였습니다. 양이 많았습니다. '서비스만두'의 수준을 양으로 메우려한게 아닌가 살짝 의심도 하여보았습니다. 


우리가 찾는 음식에는 절대적으로 뛰어난 맛이 있어서 그 매력에 끌리는 것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몸 어딘가에 각인된 기억과 함께 붙어있는 맛이라 찾는 경우도 있지요. 가난할 때 먹었던 소박한 음식이 생각나고, 유별나게 맛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에 따라 특별하게 간직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음식이 있는게 그런 연유에서라고 봅니다. 제게는 잊고 있었는데 이 물만두가 그런 것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며칠전 집안에 일이 있어서 커피여사가 잠시 서울에 다녀갔습니다. 돌아가기 전전날 저녁인가 쥬스하고 다같이 무얼 먹을까 상의를 하였습니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커피여사라서 어쩌다 들어오면 외식은 대개 한식입니다. 냉면에 불고기, 곰탕, 막국수 등이 필수과목이고 선택과목으로 닭한마리, 고등어회, 게장, 삼계탕, 콩국수 등이 들어있습니다. 이번엔 아주 짧게 머물러서 별렀던 장호왕곱창 김치찌개집도 못가고 진주회관 콩국수도 못갔습니다.  

게장을 먹자고 결정을 하고 마포에 있는 진미식당으로 가면서 전화를 했더니 자리가 없답니다. 게가 떨어져서 예약손님 겨우 맞추고 일인분도 안남는다고 양해를 구해왔습니다. 맥없이 전화를 끊고 어떻게 하나 고민을 하는 중에 쥬스가 그 부근에 면을 수타로 뽑는 중국집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커피여사도 오랜만에 옛날 중국집 괜찮을 것 같다고 해서 방향을 꺾지않고 그대로 달렸습니다. 그래서 시킨게 위의 물만두, 군만두, 그리고 아래의 탕수육, 짜장면입니다. 짜장면의 짜장소스는 기대만 못했지만 수타면의 불균질한 면발을 즐기는 것으로 보상을 받았습니다. 탕수육은 옛날에 먹던 시원한 배추와 오이를 감싼 달콤한 소스의 맛은 아니었지만 파인애플조각과 체리가 들어가지 않은게 어디냐고 이정도의 맛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리고 짬뽕도 한그릇 시켰습니다.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옛날식 누런 황토빛 국물이 아니라 새빨간 빛깔이 요새 짬뽕입니다. 탕수육 소스에 배추와 오이가 들어가고, 고기는 찹쌀 그런거 안쓰고 전분만으로 튀기고, 짜장면도 라드에 볶고, 짬뽕은 누런 황토빛 국물이 절대 맛있다는 걸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맛과 취향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그저 옛날 맛을 찾아서 간 것이기에 그런 기대가 있었고 거기에서 벗어나면 조금씩 실망을 하였을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물만두는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반가웠습니다. 심해에 사는 상어나 나일강의 악어가 수천만년전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살아온 화석과 같은 동물이라고 내셔널지오그래픽인가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이 날 먹은 물만두는 수천만년은 아니고 최소한 저의 기억속에서 40년은 변하지 않고 내려온 모양과 맛 그대로였습니다.  

종로3가 단성사 옆에 백궁이라는 다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물만두로 유명한 중국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 이름이 백궁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아닌 모양입니다. 바로 옆에 소방서가 있어서 우리들은 단성사옆 소방서옆 물만두집이라고 불렀지요. 물만두만 한 건지 짜장면도 했는데 안시킨 건지, 아니면 먹고도 잊어버린 건지 기억이 안나는데 그집에서 물만두만 여러번 먹었던 건 기억에 선명합니다. 

수십년을 거슬러 올라가 천구백년대 어느 가을날, 친구같이 알고 지내던 그녀와 영화를 보기로 하고 피카디리 극장앞 사르비아 다방에서 만났습니다. 연하게 화장을 하고 나온 그이의 변한 모습에 속으로 놀랐습니다. 서로 말은 안해도 이날 영화를 보기로 한게 우리의 첫번째 공식 데이트가 되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술씨 우리 영화보고 뭐 먹을까? 길건너 물만두 잘하는 집이 있는데 거기 갈까?' 그 때만 해도 저는 '뭘 잘하는 집'이라는 표현이 대단히 낯설었습니다. 그당시엔 뭘 잘한다고 유명한 식당도 적었을 뿐더러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는 풍습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최소한 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이가 '물만두를 잘하는 집'이라고 소개하여 따라갔으니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이곳저곳 중국집에서 먹던 물만두와 뭐가 달랐는지는 모르겠는데 맛있게는 먹었습니다. 그 뒤에 우리는 단성사, 피카디리에서 영화를 볼 때면 늘 그곳에서 물만두를 먹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몇년동안 영화를 아주 여러편 함께 본 그이는 결혼을 하였고 뒷날 저도 커피여사를 만나 결혼을 하여 쥬스와 우유를 새식구로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은 원래 밥이야기를 계속 하려고 했는데 미국에서 빵에 대한 이야기를 집대성한 책이 도착하였습니다. 엄청난 재력으로 이렇게 그들의 식량인 빵을 파헤친 저쪽 사정이 은근히 부럽기도 하고 해서 잠시 손을 놓았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잠시 화제를 바꾸어 봅니다. 커피여사, 덕분에 물만두도 먹고 추억에도 잠기고. 감사합니다~  다음번 밥이야기를 할 때 지난번에 소개했듯이 맛있게 밥짓는 법을 공개합니다~  


우리쌀로 밥을 지어도 일본만큼 맛있다!: 밥이야기(2) 밥 이야기


일본에 가면 웬만한 식당 어디를 가도 밥이 워낙 맛있어서, 일본은 쌀부터 다르구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해 온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일본의 쌀품종이 다양하고 우수하게 발전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즐거운 반전이 있었습니다. 한달 전 쯤인가 외식업 프로듀스를 하는 후배하나가 한국에서도 일본처럼 밥을 맛있게 지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를 한게 시초였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나서 자란 재일교포입니다. 

밥과술: 일본은 쌀도 워낙 신경을 써서 재배를 하잖아.
후배: 형, 아니에요. 쌀에서 차이나는거 아니에요.
밥: 그럼 뭐야?
후: 제가 얼마전에 한국쌀, 그러니까 그냥 경기미, 호남미 이런거 가져다가 일본의 '우오누마(魚沼)고시히카리'같은 브랜드하고 같은 조건에서 밥지어서 블라인드 테이스팅 했어요. 아무도 구별 못해요. 

우오누마산 고시히카리는 유통되는 양의 상당수가 짝퉁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고시히카리에서도 으뜸가고 그래서 값도 비싼 브랜드입니다. 그는 일본에서 자기 사업도 하면서, 이름대면 알만한 외식브랜드를 한국에 여럿 들여온 외식 프랜차이즈 프로듀서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이야기하니 귀가 솔깃해 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밥: 그래? 그럼 뭐에서 차이가 나는거야? 
후: 그건 기업비밀인데, 간단히 이야기해서 유통이에요.
밥: 근데 넌 왜 한국쌀을 가져다 일본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했어? 
후: 아, 제가 곧 한국에서 유명한 일본식당 하나를 가져다 오픈을 하는데 한국에서 밥을 일본처럼 맛있게 하려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느라고요. 곧 오픈하니까 꼭 오셔서 드셔보세요. 밥맛이 죽일 겁니다. 

위의 대화를 나누고 한 달 시간이 흘러 그사이에 후배는 밥맛 좋다는 레스토랑을 오픈하였습니다. 출장이네 뭐네 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제 시간이 나서 그 가게를 들렀고, 밥을 먹어본게 맨 위의 사진입니다.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제가 몇젓가락 떠서 먹는 모습을 빤히 보더니 그가 물었습니다.

후: 형, 어때? 죽이죠? 이거 특별한 쌀 아니에요. 
밥: 응 맛있다. 정말 잘 지었네.
후: 여태까지 먹어본 한국밥중에 최고 아니에요?
밥: 두번째야.
후: 응? 그럼 첫번째는 뭔데?
밥: 우리집에서 지은 밥. 
후: ㅎㅎㅎ 알겠습니다. 
밥: 그런데 식당에서 어떻게 하면 이렇게 지어내지? 혼자만 알지말고 비법이 있으면 공개해. 그래야 한국사람들이 다 같이 맛있게 먹고 살지. 내가 이 식당 팍팍 밀어줄께(이건 노하우를 빼기위한 근거없는 큰소리).

우리는 유쾌하게 식사를 마치고 한잔 더하려고 2차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우리도 잘하면 어디를 가도 이렇게 맛있는 밥을 먹올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꺼이 2차는 내가 사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번에 걸쳐 이야기했지만 저는 우리나라 식당밥이 맛이 없는 이유가 밥짓는데 성의가 부족해서이고 그건 손님들이 밥이 아무렇게 나와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먹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밥이 맛이 없으면 불만을 표하고 투정을 부리고 해야 나아진다고 믿습니다. 아니면 좋은 밥을 내는 식당이 있으면 그걸 알아주고 그만큼 더 찾아주고 그러면요. 우리나라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옆나라 일본 이야기입니다. 우선 아래 사진을 봐주세요. 


위의 사진은 다 크게 유명한 집도 아니고 그냥 천 엔 남짓한 평범한 곳에서 먹은 식사입니다. 위에서 부터 돈카츠 정식, 생선구이 정식, 날계란 밥 등이고 아래는 햄버그 정식과 도시락에 따라나온 밥입니다. 이보다 싼 5,6백엔짜리 식사도 밥의 품질이 좋습니다. 이런 일본의 현상황은 맛있는 밥을 추구하고 밥이 맛있으면 인정하고 따라가 주는 고객들의 입맛과 소비패턴이 바탕에 깔려있기에 만들어진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본에서도 아주 특이한 집을 하나 모델로 들어 좀더 자세히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아래 사진에서 시작합니다.



그냥 얌전하게 담긴 밥 한그릇입니다. 흰 밥은 사진으로는 맛있게 잘 지은 밥과 그렇지 않은 것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위의 사진에 나온 밥은 맛있기로 일본에서 2등을 하라면 서러워 할 식당에서 낸 것 입니다. 장소는 일본 도쿄입니다. 



도쿄하고도 긴자에 아코메야(AKOMEYA)라는 가게가 있습니다. 쌀에 관한 모든 것을 파는 가게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일본어로 쌀을 고메라고 하고 쌀집을 고메야(米屋)라고 합니다. 이 집은 굳이 영어로 KOMEYA라고 쓰고 관사 A를 붙여서 a komeya, 그러니까 '어느 쌀집'이라는 의미로 네이밍을 했다고 합니다. 일층에서는 일본 전국의 이름난 쌀을 팔기도 하고 또 도정을 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쌀로 지은 밥과 잘 어울리는 반찬, 조미료 등을 팝니다. 물론 자기네가 취급하는 쌀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브랜드를 골라서 파는 것이니 이 집의 선택을 신뢰하는 소비자들에게는 편리한 집입니다. 



가게 카운터 옆에는 전국의 유명한 쌀 브랜드를 진열해놓고 소량 주문도 받아 정미를 해서 그자리에서 팔기도 하고, 주문 배달도 가능하게 해놓았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도정을 하기 전에서 백미까지의 과정을 샘플로 해놓았습니다. 그 밑을 보시면 각 지방 브랜드 쌀을 백미도정하기 전의 현미상태로 보관을 하여놓은 걸 알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도정해놓은 쌀이 산화해서 품질이 떨어지는 것에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 입니다.


간장 된장 소금 건해초 등 밥에 필요한, 또는 쌀밥과 잘 어울리는 야채절임, 발효식품같은 반찬 등을 모아놓고 팝니다. 2층에는 돌솥 밥주걱 젓가락 국자 등 각종 취사에 필요한 도구에서 부터 에이프런까지 주방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비해놓고 팝니다. 사진은 생략합니다. 

이집에 손님이 많이 모이는 이유는 이런 쌀과 부식을 파는 가게라서가 아니라 다른데 있습니다. '아코메야 주방'이라고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인기가 보통이 아닙니다. 점심때 2천엔대, 저녁엔 4천엔에서 6천엔 대로 메뉴를 꾸려서 내는데 점심엔 예약 안받고 줄을 서야 합니다. 


위의 사진이 제가 얼마전 가서 줄서서 들어가 먹었던 점심입니다. 2천엔 치고는 가성비가 꽤나 좋았습니다. 물론 저는 밥이 얼마나 맛있나 궁금해서 거기에도신경을 많이 썼지요. 아래가 확대해서 찍은 사진과 한그릇 더 시켜먹은 밥입니다. 밥은 달라는 대로 줍니다. 이날 메뉴는 밥에 미소시루 야채절임, 그리고 게, 버섯, 순무, 연어, 두부, 닭고기, 돼지고기, 가리비 등을 재료로 만든 요리들이었습니다. 



물론 밥은 대단히 맛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집에 비해 엄청나게 다르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다른 식당들의 밥도 수준이 높다는 뜻이겠지요. 저녁도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습니다. 궁금해서 홈피에 가보니 저녁 메뉴가 나와있네요. 아래 두컷은 홈피에서 캡쳐한 것입니다. 5850엔인데 메인은 생선, 스키야키, 스테이크 등에서 고를 수가 있군요. 카이세키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정도 가격이면 괜찮아 보입니다만 상대적으로 2천엔짜리 점심의 가성비가 돋보이네요. 점심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 집은 판매하는 쌀에 대하여 자세히 소개를 하여놓은 팜플렛 같은 것도 잘 준비하여 놓았는데 부러울 따름이었습니다. 아래가 그 샘플입니다. 지방별로 엄선한 쌀의 종류가 이렇게 많네요. 맛있는 밥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이 넘치지 않고서야 이런 가게를 열기가 힘들텐데 싶어서 도대체 누가 이런 가게를 생각했나 궁금했습니다.  


이야기는 엉뚱한 데로 튀어서 20년이상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일때문에 캘리포니아에 머물던 시절이었는데 자주 드나들던 회사가 산타모니카하고 베니스비치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쪽 친구들 소개로 아주 가까이 있는 CHAYA라는 레스토랑을 자주 갔습니다. 메뉴가 아무리 봐도 일식과 서양식의 퓨전이라 일본의 茶屋(차야)라는 이름을 따온 걸 텐데 누구일까 궁금했습니다. 베벌리 힐즈에 Chaya Brasserie 라는 프랑스요리와 일식을 접목한 레스토랑도 성공적이었는데 LA Times에서 이집이 '튜나 타르타르'의 발상지라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두 군데를 동료들과 수십번 갔으니 매상에 조금은 기여했을 것 입니다. 친구중에 누군가가 오너하고 안다고 소개를 해줄까 얘기했는데, 요식업하고 나는 상관이 없으니 그저 만든 이가 센스있는 재미 일본계 실업가나 셰프인가 보다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몇년 뒤 일본에 스타벅스가 들어와 대성공을 거둡니다. 그리고 이를 성공적으로 발전시킨 일본측 파트너는 최근 주식을 전부 스타벅스 본사에 팔아넘기고 엄청난 금액을 캐시아웃합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딱 2년전 일본에 셰이크셱 버거 1호점이 오픈합니다. 알고보니 이게 다 같은 사람이야기였습니다. 수퍼마켓 체인, 수백년된 전통 차야(요식업 업태의 하나입니다), 차야의 미국진출, 프랑스 패션브랜드 '아녜스베' 도입 대박, 스타벅스 성공리에 런칭, 각종 외식 브랜드 운영, 그리고 셰이크셱 버거 런칭을 한 게 일본의 어느 형제 이야기인 거지요. 이름을 밝히고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지않는 건 워낙 이들이 출발부터 금수저라 요즘같은 분위기에 좀 내키지가 않아서입니다.

연간 수조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바로 이들이 일본의 쌀과 밥에 자부심을 가지고 전개하는 새로운 사업이 바로 '아코메야'입니다. 이런 풍토가 살짝 부럽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적당한 규모의 재력을 갖춘 그룹이나 탄탄한 자금력이 있는 이가 일본처럼 한국의 맛있는 밥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으면 좋겠는데 그냥 바램일 뿐입니다. 큰 재벌은 나설리도 없고 또 자칫 잘못 나서면 문어발 확장으로 영세상인들의 밥줄마저 노린다는 오해를 살지도 모르니 무망입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계란으로 바위를 깬 촛불의 힘이 있습니다. 소비자 한사람 한사람이 나서서 식당의 밥을 맛있게 바꿔놓을 수가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다음에는 우리나라 쌀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식당에서 맛있는 밥짓기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집밥, 남의집밥, 외식밥; 밥이야기(1) 밥 이야기

결론부터 이야기하고 시작합니다. 식당에서 밥에 더 많이 신경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성의없이 지은 밥, 맛없는 밥을 내는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한국음식은 밥중심의 메뉴다', '한국사람은 밥심이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려는게 아닙니다. 요즘의 생활패턴을 보면 사회에 나온 뒤에 최소 하루 한끼는 외식을 해야하고 두끼이상을 밖에서 사먹어야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학생들도 급식이든 외식이든 밖에서 먹는 끼니가 늘어났습니다. 일인세대가 늘어나면서 이 경향은 더 심화될 거라고 봅니다. 그런만큼 우리나라의 외식산업에 빨리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 맛있는 밥을 내는 식당이 늘어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몇 번에 걸쳐 밥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입맛'과 비슷하게 사용되는 '밥맛'이나 '끼니'로서 사용되는 '밥'이 아니라 '쌀'을 익혀 만든 '밥'에 대한 이야기니까 구별이 모호할 경우 전자를 가르키는 '밥맛'과 구별하여 '밥의 맛' 등으로 표현 합니다.  

위의 사진은 얼마전 가격이 그다지 싸지않은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나온 밥을 찍은 것입니다.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두번 퍼서 담은 겁니다. 밥이 무슨 으깬 감자샐러드도 아니고 그 모습에 경악을 금치못했습니다. 맛은 말할 것도 없었구요. 이 집은 하필이면 일식을 주로하는 집이어서 일본생각이 났습니다. 옆나라 일본은 웬만한 식당에 가도 '맛있게 잘 된 밥'을 냅니다. '강남의 귤이 강북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는 중국의 고사가 떠올랐습니다. 한국에서는 일식집도 밥을 우습게 알기는 마찬가지인가 싶어 씁쓸했습니다. 일식집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음식인 한식을 내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밥을 소홀히 하는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좋은 쪽으로 이야기하자면 요즈음 밥이 괜찮은 식당이 아주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놓지않고 나는 소비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일차적으로는 까다로운 소비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밥이 괜찮다 싶으면 나갈 때 계산하면서 꼭 밥이 맛있네요, 라고 칭찬을 합니다. 그러면 알아줘서 고맙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시 노력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밥이 너무하다 싶으면 밥에 신경을 좀 더 쓰시면 좋을 것 같네요, 라고 한마디 해주고 나옵니다. 이런 소비자가 많이 늘어나면 식당밥의 품질이 올라간다고 믿는 겁니다.



위는 어제 저녁 집에서 지은 밥을 확대해서 찍은 사진입니다. 공기에 담고보니 약간 질게 된 감은 있었지만 너무나 쌀알에 윤기가 도는게 먹음직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몇숟갈은 버터를 얹고 간장을 살짝 뿌려 살살 비벼먹었습니다. 다른 반찬이 필요없을 정도로 밥맛이 좋았습니다. 

이런 밥에는 고기볶음, 생선구이나 조림, 장조림, 장아찌, 김치찌개, 된장찌개, 구운 김 가운데 어느것 한가지만 있어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아니 맛있는 고추장 조금만 있어도 밥이 저절로 넘어갈 것 같습니다. 그렇게 먹자는게 아니라 밥이 맛있어 지면 식당가는게 몇 배 더 즐거워 질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맛있는 밥을 먹고 싶어서 이것 저것 조사하다보니 그동안 쌀에 대한 책도 여러권 모았습니다. 대부분이 일본서적이어서 아쉬웠는데 얼마전 이웃블로거 迪倫님의 소개로 한국에서도 "근현대 한국 쌀의 사회사"라는 좋은 서적이 나온걸 알고 구입해 읽었습니다. 다음번 쌀이야기를 할 때 좀 더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밥이야기를 하자면 피해갈 수 없는 일본이야기는 따로 하기로 하고, 다른 아시아의 밥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래는 베이징의 어느 식당에서 먹은 밥입니다. 원래 밖에서 먹는 중국요리는 한접시 한접시 나오는 요리가 중심이라서 그다지 밥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南米北面이라고 해서 남쪽지방에서는 쌀을 먹지만 북방에서는 밀가루음식을 많이 먹어서 더욱 그런 것도 같구요. 그런데 요즈음 보면 밥의 품질과 맛이 나아진 곳이 많이 늘은 것 같습니다. 역시 생활수준이 높아지니 먹는데 신경을 쓰는 중국사람들이 그냥 넘어가랴 싶었습니다. 


아래는 홍콩의 식당에서 먹은 밥입니다. 홍콩은 남쪽이라 인디카 계열인 장립종과 자포니카 계열인 단립종이 모두 사용됩니다. 진짜 인도에서 먹는 훌훌 날아다니는 장립종이 아니라 그 중간 형태의 쌀을 사용하는 곳이 많은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맛도 그렇지만 향도 중시합니다. 향미(香米)라고 해서 수퍼에서 파는데 국제적인 도시답게 참 다양한 쌀을 구비해 놓았습니다. 실제로 밥그릇을 들어 입가까이 대고 먹는 사람들이라 고소한 향기가 코밑에서 솔솔 풍기는 걸 입보다 먼저 즐깁니다. 아래는 아마도 KIngLonger 이라는 브랜드지 싶네요. 
 

아래는 싱가폴의 어느 식당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싱가폴은 인도계(타미르계) 사람들이 하는 식당과 말레이계나 화교계열의 사람들이 하는 식당에 따라 밥맛이 전혀 다릅니다. 밥 짓는 방법도 달라서 한번 끓이다 끓은 물을 한번 따라내고 다시 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선, 특히 가루파 또는 석반이라고 하는 생선찜을 발라서 국물과 함께 먹을 때는 이 밥이 최고입니다.  


아래는 각각 베트남하고 인도네시아에서 먹은 밥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이런 저런 요리를 반찬삼아 밥을 먹는 끼니에는 밥맛이 좋아야 하는데 잘지은 밥과 못지은 밥의 차이가 이렇게 나는구나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래는 LA의 한국 설렁탕집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논에서 재배하는게 아니라 캘리포니아의 밭에서 재배한 칼로즈라는 브랜드의 쌀로 지은 밥입니다. 이게 갓 지어 놓으면 맛이 괜찮은데 식으면 맛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게 흠입니다. 아주 잠시였지만 한 때 한국의 부유층에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이 쌀을 먹는게 유행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이해가 잘 안가는데 오죽이나 한국브랜드 쌀에 대한 불신이 깊었으면 그랬나 싶습니다. 경기미의 대명사인 추청같은 쌀이 이것보단 훨씬 맛이 좋거든요.  



아래는 몇년전 사할린에 갔을 때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있는 고려인 식당에서 먹은 쌀밥입니다. 밥이 좀 너무했다 싶었는데 기분이 안좋았던게 아니라 과거 말로 형언하기 힘든 고생을 했던 고려인들의 삶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밖에서도 맛있는 밥을 먹고싶은 밥과술의 조그만 몸부림은 계속 됩니다. 오늘은 간단히 예고편 삼아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에 쌀이야기, 밥짓는 이야기, 온장고 문제 등을 몇 번에 나누어 해보려고 합니다. 주말 잘 마무리하시고 즐거운 한 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속초에서, 막국수와 생선구이 그리고 닭강정 밥과술네 집이야기


부드러운 면발에서 메밀향기가 물씬 풍겨납니다. 어제 속초에 가서 먹은 막국수입니다. 전분이 들어가 쫄깃한 면발의 식감에 익숙한 분들에겐 푸석푸석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게 진짜 강원도 막국수의 참맛이라고 하겠습니다. 어제 하루일정으로 속초에 다녀왔습니다. 맛있는 것도 먹고, 오가는 길도 유쾌한, 짧지만 충실한 여정이었습니다. 혼자서 갈 뻔한 길을 동무해준 친구도 있어서 더욱 즐거웠구요. 갑자기 다녀오게 된 전말은 이렇습니다.

며칠전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식탁에 앉아 마주보며 식사를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총각김치를 입으로 베어 드시는 모습이 생생했습니다. 무엇보다 놀란 건 아버지가 제가 하는 말을 다 잘 알아들으시는 거였습니다. 4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99세를 사셨으니 천수를 다하신거라고들 합니다. 97세까지는 반주도 매끼 하실 정도로 건강하셨는데 한가지 답답했던 건 말년에 청력이 안좋아져서 말을 잘 못알아들으셨습니다. 돌아가시기 2,3년전부터는 청력을 거의 잃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아버지 제 말 다 들으시네요'  아버지가 대답하십니다. '응, 내가 입원해서 퇴원한 뒤로는 다 잘들린다'. 저는 아, 이렇게 원활하게 소통을 하고 돌아가셔야 억울한게 없지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가 채 안된 시각이었습니다. 조금 더 자려고 잠을 청하는데 꿈이 너무 생생하여 다시 잠은 오지않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는 내가 추석차례를 모시지 않아서 아버지가 꿈에 나와 시장하다는 표현을 하셨나보다, 돌아가신 뒤에는 이쪽 세상 자손들 사는게 다 잘들리고 잘보인다는 메시지인가 보다, 해몽이랄까 해석이랄까 이렇게 꿈을 받아들였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삼년 탈상을 한 뒤에 저희 형제는 합의를 하여 기제사는 합제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기제사는 형제들 스케줄을 맞추어 원래 기일을 전후한 주말로 옮겨 지내니 별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추석 연휴와 설날 연휴는 정해져 있고 그 때 혹시 외국이라도 나가게 되어 참례가 어려울 때가 있는데 그런 해는 미리 선산에 내려가 성묘를 하고 떠납니다.  

그런데 올해는 추석 연휴 한달 전부터 주말마다 출장이 끼거나 다른 사정이 생겨 고향에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몇년에 한번 올까 말까한 열흘짜리 긴 연휴는 모처럼 가족이 다모여 함께 지내기로 작정을 한 터라 형제들과 의논하여, 누나네 따로 형님네 따로 성묘를 하기로 하고 차례상은 성묘를 간 김에 약식으로 차리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나중에 돌아와서 가기로 하고요. 그러던 중에 꿈을 꾼 것이지요. 혹시하여 전화를 하여보니 형님께서 허리가 아프고 해서 아직 벌초겸 성묘를 못갔다고 합니다. 아, 빨리 나라도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국이 좋아서 아예 한국에 와서 눌러앉을 기세로 광화문 언저리에 머물고 있는 존이라는 미국친구가 있습니다. 세종대왕을 제일 존경하고 막걸리같은 위대한 식품을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는, 전생이 틀림없이 한국사람이었을 친구입니다. 제가 하도 속초자랑을 해서였는지 늘 기회되면 한번 따라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가 좋아하는 막걸리집 '느린마을'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 했습니다.  

밥: 존, 나 모레 토요일에 속초간다. 조상 산소에 성묘가는 거야. 같이 갈럐?
존: 아, 그래? 물론이지. 대략 어떤 스케줄이지?
밥: 오전에 떠나서 도착하면 점심때가 될거야. 막국수 먹자. 
존: 버크윗소바 말이지. 좋아! 에이콘젤리도 먹나?
밥: 도토리묵은 그 집에서 안할거야. 하지만 전문점은 많아. 강원도 산골음식이니까. 그 집 막국수는 서울 냉면하고 달라서 국물이 소고기 육수가 아니라 동치미 국물이란다.

그는 도토리묵, 감자전 이런걸 참 좋아합니다. 느린마을의 막걸리가 최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안주가 너무 매운 것들 뿐인게 좀 불만이라 합니다. 강원도의 산골음식에 대한 기대가 대단했습니다. 

밥: 그리고 성묘를 하는거야. 간단히 과일과 어포를 마련하고 술을 올리는 거지. 벌초라고 해서 풀도 베고해서 봉분과 산소주위를 다듬는데 그건 우리 형님 몫이라서 난 이번엔 안해. 성묘한 뒤에 설악산 등정을 한다. 5천피트 정도되는 산이지.
존: 그걸 올라간다고??
밥: 농담이다 ㅋㅋㅋ. 국립공원 입구까지만 간다. 초입에 신흥사라고 오래된 사찰이 있는데 거기 참배하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자. 그리고 저녁은 시내로 나와서 바다 구경하고 해산물을 먹는다.
존: 완벽한 플랜 같다. 

토요일 오전 9시에 만난 우리는 팔팔도로를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남지나고 한참동안 잘 뚫리더니 가평휴게소 전 15킬로정도 가다서다 정체가 있었습니다. 길은 춘천을 지나서 새로 개통한 양양고속도로로 이어졌습니다. 저도 처음 가보는 길인데 정말 긴 터널이 많았습니다. 11킬로 짜리 터널도 있었는데 모두 중간중간에 무지개 조명 싸이렌 소리 등 지루해지기 쉬운 주행에 변화를 주려는 시도가 보이는게 재밌었습니다. 존은 깨끗하고 잘 닦인 도로와 터널을 보며 한국을 칭찬했습니다. 

12시 반경에 도착하여 먼저 찾은 곳은 '실로암 메밀국수'입니다. 그동안 실로암 막국수, 막국수 이렇게 불렀는데 이제 보니 상호가 '실로암 메밀국수'였더군요. 막국수라는게 좀 귀하지않게 들리는 어감이라 그런건지는 모르겠는데 언제부터인가 메밀국수로 바뀌었나 봅니다. 어쨌거나 저는 막국수라는 호칭이 좋고, 이집은 뭐라 불리던 국수는 맛이 좋습니다.  


오랜만에 갔더니 없던 메뉴가 생겼습니다. 묵은지 입니다. 돼지고기 수육하고 같이 먹으라고 파는데 한접시에 8천원이었습니다. 옆자리를 보니 썰지않고 길게 나온 통김치가 먹음직스러워, 우리도 시켰더니 존은 그 스케일에 또 감동입니다. 이게 옛날같으면 손으로 죽죽 찢어서 돼지고기를 둘둘말아 먹었단다, 설명해주고 가위로 썰어 먹었습니다. 잘 발효된 묵은지가 시원하고 고소해서 좋았습니다. 


운전을 해야하므로 술을 못 먹는게 정말 아쉬웠지만, 친구가 막걸리를 시켜 묵은지와 함께 맛있게 먹고 마시는 걸 보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막국수를 시켰습니다. 늘 그렇지만 강원도의 막국수는 정말 별미입니다. 이집의 동치미국물에 만 막국수, 아니 메밀국수는 참 명물이라 하겠습니다. 아래 두장이 나온 모습이고 그 아래가 풀은 모습입니다. 


그리고 맨 위의 사진을 다시 한번 올린게 아래 사진인데, 다 먹고 사리하나 추가한 모습입니다. 술을 안먹었으니 더 먹어도 됩니다...


맛나게 점심을 먹고나서 산소를 찾아 약간의 하이킹을 합니다. 둘이 다 헉헉 거리면서 '야 우리 평소에 운동해야 돼' 이런 말을 주고 받습니다. 아래는 뒤 따라오던 조가 찍어준 사진입니다. 미리 준비한 주과포를 들고 산길을 올라가는 밥과술의 모습입니다.



도착해보니 곧 벌초를 해야겠구나 싶게 풀과 잡목이 자라 있었습니다. 아래는 몇년전에 큰아이 쥬스가 제초기로 벌초를 하는 모습입니다. 쥬스도 제사지내고 성묘하고 이런거 좋아하는데 올해는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산소마다 술을 올리고 절을 하는데 존이 옆에서 자기도 해도 되냐고 물어서 물론, 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산소 앞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이친구는 미국에서 온 친구예요'라고 고하여 소개도 했습니다. 존에게 옛날 같으면 향도 피우고 했지만 요새는 산불조심이라 불을 못쓰기 때문에 그런거 안한다고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성묘를 마치고 설악산 신흥사로 향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차가 많아서 켄싱턴 호텔 주차장에 세우고 걸어서 갔습니다. 신흥사에 가니까 이 친구가 너무 좋아하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부처님 모신데마다 돌아다니며 불전을 놓고 절을 하더군요. 저는 대웅전에서만 절을 하고 나중에 따로 기와장에 축원을 하는 기와불사를 하였습니다. 


사찰구경을 하고나서 우리는 바로 절 앞에 있는 커피집으로 향했습니다. '눈의 향기'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설향(雪香)'이라는 이 한옥카페는 아마 위치랑 전망으로 따지면 한국카페 가운데 다섯손가락에 들어가지 싶습니다(저한테는 으뜸이고요). 아무리 가게가 이쁘고 전망이 좋아도 커피맛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데 이 집은 커피가 참 맛이 좋습니다. 그래서 서울 시내보다 일,이천원 비싼 가격도 이해를 하게 됩니다. 검색하여 보시면 사진 많이 나옵니다. 저는 강추입니다. 아래는 커피잔을 놓고 멀리 권금성을 찍은 건데 사진실력이 없어서 이렇게 밖에 안나오네요. 전망 참 좋은데... 그 아래는 신흥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같은 방향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신흥사에서 내려와 속초 바닷가 '해돋이 공원'에 잠시 들러 저녁무렵의 동해바다를 보았습니다. 아까 성묘할 때 올린 어포를 갈매기에게 주려고 다가가니 쉬고 있던 갈매기들이 한 번에 후루룩 다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무슨 경험을 했는지 사람들을 경계하는 모양입니다. 먹을 거 달라고 성가실 정도로 달라붙는 외국의 갈매기들이 생각나서 약간은 측은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철지난 바닷가는 언제 보아도 사람마음을 묘하게 하는 뭔가가 있습니다. 죽 늘어서 있는 횟집은 구경만 했습니다. 회를 먹을게 아니라 생선구이를 먹자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중앙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젓갈가게를 구경하러 간 것이지요. 봐서 마음내키면 명란젓이라도 살까하고요(가게에서 담근게 뭐가 맛이 있겠어, 이런 마음으로 갔다가 대개는 그렇다고 직접 담그기도 그러니 좀 살까? 이렇게 마음먹고 결국 삽니다). 결국 좀 샀습니다...


그런데 존이 갑자기 저를 불러 세웁니다. 술, 아까 주차장앞에 바글바글하게 줄 서있던데 그게 뭐냐? 여기도 그것 비슷하게 쓴 거 같은데. 한글을 읽게된 그가 가르킨게 바로 닭강정입니다. 

술: 닭강정이라는 건데 닭을 튀겨서 스파이시 양념한거야. 
존: 그거 한국사람 좋아하는 양념치킨 아니야?
술: 솔직히 나도 잘 몰라. 이게 왜 속초에서 유행하는 건지도 모르고. 
존: 아까 주차장에서 나올 때 보니까 사람들 다 그거 하나씩 들고 오던데. 

저는 솔직히 닭강정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물론 맛이 좋겠지요. 그냥 닭하고 강정이 합쳐진다는게 상상이 안가서 여태까지 먹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속초에 가면 먹어야 할게 너무 많아서 닭강정까지 차례가 안간 것도 이유일 것이구요. 양념치킨하고 어떻게 다른가 저도 궁금해 하고 있는데, 존이 그 새 서울에 있는 치킨좋아하는 친구에게 카톡으로 물어본 모양입니다. 

존: 이게 차가워 져도 맛있단다. 그 친구 하나 사다 줄까봐. 맛이 아주 좋다는데.
술: 그렇게 하려무나.  좋아할거야. 

그래서 산게 아래 '만석 닭강정'입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쇼핑한 보따리를 들고 중앙시장 길건너 '88생선구이'집으로 향합니다. 이 집은 생선구이로 유명한 집인데 강추입니다. 속초가시면 한번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숯불구이 생선 맛이 대단히 좋습니다. 메뉴도 안보이는 집인데 둘이 들어가 앉으면 그냥 '모듬 2인분이요?'하고 물어보고는 그렇게 내옵니다. 



숯불위에 생선이 오르고 식탁위에 반찬이 놓이자 술 생각이 간절합니다. 차로 오지말고 버스로 올 걸 그랬나, 잠시 후회도 했지만 잘 뚫린 고속도로를 운전하며 상쾌해 하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참습니다. 생선은 두번에 걸쳐 굽는데 종류가 다양합니다. 처음엔 고등어, 꽁치, 오징어, 열갱이(볼락), 도루묵, 메로, 이렇게 올라옵니다. 제가 어려서 안먹어본 메로말고는 다 좋아하는 것 들입니다. 일하시는 분들이 구워주는데 참 맛이 좋았습니다. 두번째로는 삼치하고 가자미가 올라왔습니다. 싱싱한 생선을 이렇게 배불리 먹었는데 일인당 만4천원이었습니다. 대만족입니다. 



식당을 나와서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거리 이곳저곳에서 행사가 열려서 와글와글하기에 보니까 평창 올림픽 성공 기원 축제 같은게 열렸나 봅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 평창 올림픽에 직접 도움이 될 일을 한 기억은 없지만,  마음속으로 성공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부른 배가 꺼지기도 전에 차에 올라 늦은 밤 고속도로를 달려 날짜가 바뀌기 전에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성묘를 하고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습니다. 덕분에 막국수도 먹고 생선구이도 먹었네요 감사합니다 조상님, 하고 속으로 조용히 되뇌어 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방커피, 인스턴트커피 그리고 폴모리아(2) 술/커피이야기

한국사람들은 왜 유난히도 인스턴트 커피를 좋아할까. 평소 궁금했던 점이라 잠시 생각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위대한 발명품 '커피믹스'는 여세를 몰아 외국에 까지 진출하였고 그 발상을 도입한 유사품들이 외국에도 많이 생겼습니다. 스타벅스도 들어와 성업중이고 국내 브랜드 체인점도 많이 늘고 또 고급 커피전문점도 계속 늘어가면서 인스턴트 커피의 위세는 지난 일이년 사이 다소 꺾이는 것도 같은데 그래도 여전히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단 것을 먹으면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데 식사후 자판기 커피나 커피믹스 한잔을 마시면 '디저트 플러스 커피' 의 효과가 나서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등산을 많이 다녀서 그런가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해외여행을 나갈때 커피믹스를 챙겨가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커피믹스라야 '고소하다'는 답변을 듣기도 했습니다. 

답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습니다. 인스턴트 라면과 같은 케이스라는게 제 결론입니다. 일본에서 생라멘이라는 메뉴를 사람들이 좋아했는데 그걸 인스턴트화한게 '인스탄토 라멘'이라면, 우리나라는 그걸 들여와 '라면'이라는 새로운 음식으로 그 역사를 시작한게 다른거지요. 그래서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저는 한국의 라면은 맛에서나 종류에서나 여러면에서 일본의 인스턴트 라멘을 넘어선 면이 있다고 봅니다. 커피가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원두를 갈아서 뽑아내린 커피를 맛있게 먹어볼 기회가 없이 전국민이 인스턴트 커피로 맛을 들인 경우라 하겠습니다. 

커피에 맛을 들였다는 조선 말 고종이나 일제강점기에 명동 카페를 드나들던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면, 한국인 모두가 한국전쟁이후에 인스턴트 커피로 커피입문을 하였다고 봅니다. 다방이라는 곳에서 원두커피를 냈지만 그건 오히려 인스턴트에 더 정을 주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영화이야기를 잠시 꺼냅니다.  

홍콩의 허안화 감독이 연출한 '投奔怒海(Boat People)' 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78년, 79년을 피크로 해서 80년대 중반까지 수백만의 베트남인들이 쪽배에 몸을 싣고 바다로 나왔습니다. 풍랑, 해적, 기아 등으로 수십만 이상이 망망대해에서 목숨을 잃었고 운좋게 살아남은 이들은 유럽, 미국 등지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보트피플이라고 불렀는데 허감독의 이 작품은 그 때의 비참했던 상황을 다룬 82년도 영화입니다. 당시의 우리나라는 외국으로부터 받는 것만 익숙했고 구원의 손길을 뻗치는 건 해본 적이 없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원양어선이 정부와 본사의 방침을 무시하고 보트피플 96명을 구조했다고 선장을 잡아다 조사하고 해고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홍콩은 좁은 영토인데도 난민을 구조하고 받아들여 한 때는 십만명규모의 난민캠프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영화가 나왔을 때가 홍콩에서 생활하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주변에 난민들에게 자원봉사로 영어를 가르쳐주던 친구들도 있었고 해서 때맞춰 아주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보트피플의 상당수는 통일 베트남정부로 부터 박해받던 화교들이어서 같은 중국인의 피가 통하는 홍콩사람들이 지원에 더 적극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젊은 시절의 커피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가 이 영화의 한장면이 생각이 났습니다. 통일이 된 베트남에 취재를 간 주인공을 만난 당 고위간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열의에 찬 젊은 간부들의 전투적이고 교조적인 태도를 걱정합니다. 그는 젊은 시절 파리에서 유학을 하였고, 돌아와 해방전선에서 일하다 10년간 투옥생활도 경험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술이 취하면 좋아하는 여인에게 프랑스어로 시귀를 읊어주는 낭만이 남아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씁쓸하게 내뱉습니다. "나는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서 가끔씩 프랑스 와인이 그립고, 프랑스 요리가 그리워요. 프랑스 여인도 보고싶고. 조국의 혁명은 성공했지만 내 자신의 혁명에는 실패한 거지요."  

일제시대때 유학을 한 지식인들 가운데 변절하지 않고 일제에 저항했던 이들도 본인의 감성과 추억속에 깊이 새겨진 일본의 문물에 대한 향수때문에 갈등할 때가 많았을 것 입니다. 식민지 조선 뿐만이 아니라 알제리 청년의 프랑스에 대한, 인도 청년의 영국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상통하는 데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제 이야기로 되돌아 옵니다. 오늘 젊은 시절 커피이야기를 하려고 보니 기억속에서 미제 물건이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와 놀랐습니다. 그리고 일제 물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당당하게 일본문화를 좋아하고 즐깁니다. 일본을 동경하여 일본만화를 보거나 이자카야를 가는게 아니라 재미있으니 보고, 맛있으니 먹으러 갑니다. 이태리 식당, 햄버거집, 태국 음식점과 같은 반열입니다. 컴플렉스 없이 어디든 맛있으면 가는 거고 재미있으면 보는 거지요. 일본가요나 일본영화가 인기가 없는 건 수준의 문제이고 잘만든 애니메이션은 흥행이 잘됩니다. 헐리웃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사회전반에 걸쳐 미국 물건에 대한 동경이 대단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거 미제야. 미제는 뭐가 달라도 달라' '양키들이 물건하난 제대로 만든다니까' 이런 말을 늘 듣고 자랐습니다. 일제 물건에 대한 감정은 참으로 복잡하였습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 카세트 녹음기 같은 전자제품은 말할것도 없고 손목시계도 국내 조립한 시티즌 오리엔트보다 일제 세이코가 좋다고 했고, 학용품도 전문적인 건 일제를 선호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대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돈이 있는 집 아이들은 4B 연필은 돔보, 수채물감은 사쿠라, 포스터칼라는 닛카 이런 걸 썼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어린 시절과 청춘을 보냈던 제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위의 MJB 커피캔의 사진은 구글에서 퍼온 건데, 당시 많은 다방에서는 이 커피 캔을 장식으로 주방쪽이나 카운터 뒤에 여러개 늘어놓은 곳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커피를 재료로 써서 마시는 커피를 어떻게 만드는 지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마시는 커피는 어느 집이나 무조건 인스턴트 였으니까요. 아래 사진이 그것입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커피를 못마시는 가정에도 이 병은 있었습니다.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 깍두기를 싸갈때 필요한 도구였으니까요. 시장에 가면 깨끗하게 씻은 이 병을 쌓아놓고 팔았습니다. 미군부대 PX에서 흘러나온 물자들이 한국경제에 엄청나게 영향을 끼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다방을 출입하게 되면서 처음엔 낯설었던 MJB커피의 로고가 눈에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때 읽었던 이상의 수필 '산촌여정'의 대목을 기억해 내면서 '아항, 이게 그거로구나' 좀 반갑기도 했습니다. "향기로운 MJB의 미각을 잊어버린지도 이십여일이나 됩니다. 이곳에는 신문도 잘 아니오고..."로 시작하는 명문입니다. 

시대의 정서가 그랬는지, 그 때는 이지리스닝이라 불리는 경음악 연주가 대단히 유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건 프랑스의 '폴모리아 악단'이었습니다. 그의 연주는 라디오의 시그널뮤직으로, CF의 배경음악으로, 드라마의 삽입음악으로 여기저기 쓰이지 않은 곳이 없어서 하루도 그의 음악의 몇소절을 듣지 않는 날이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아래는 '김세원의 밤의 플랫폼'이란 프로그램의 시그널뮤직이었던 '이사도라'입니다. 



중고생들은 이 방송이 끝나면 각자 취향에 따라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 0시의 다이얼 등을 들었는데, '별이 빛나는 밤에'의 시그널뮤직은 '프랑크 푸르셀' 악단의 'Merci Cherie'라는 곡이었습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폴모리아의 '시바의 여왕'이었습니다. 




제가 제일 많이 듣던 0시의 다이얼은 시그널뮤직이 'In the Year 2525'였는데 찾아보니 '프랑크 푸르셀'악단의 연주라고 되어있군요. 제 기억으로는 좀 달랐던 것도 같은데... 아무튼 이런 노래였습니다.



그 시절은 모든 물자가 귀하기도 했지만, '선진'이라는 말에는 복잡한게 간편하게 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즉석', '인스턴트' 이런게 대단히 고급스럽게 들렸지요. 헐리웃 영화나 TV드라마에 'TV디너'라고 해서 냉동한 알미늄 상자를 오븐에 넣어 데우면 먹음직한 디너 일인분이 나오는 장면이 나오곤 했는데 그 맛이 되게 궁금했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정육점에서 사는 소고기 돼지고기보다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스팸이나 콘비프, 소시지가 훨씬 더 고급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기야 아이들 입맛엔 햄, 소시지가 더 땡기는 법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이렇게 인스턴트가 숭상되던 시절에 립튼에서 인스턴트 홍차가 나왔습니다. 찬물에도 스르륵 녹아서 좋고 편해서 좋다고 잠시 인기를 끌었는데(양키물건을 사먹을 수 있는 서울의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조용히 사라져 갔습니다. 워낙 한국에선 그 이전에 홍차마시는 습관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대신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것이 가루를 풀면 오렌지쥬스가 되는 '탱'이었습니다. 진짜로 착즙을 한 오렌지쥬스는 한국사람이 먹어볼 방법이 없던 세월이라 이 '탱'맛이 오렌지 쥬스 맛인줄 알고 살았습니다. 기가 막히게 맛이 좋다고 생각을 했는데 진짜 상류층으로 살던 아이네 집에 갔더니 냉동 '미니트 메이드' 제품이 있었습니다. 오렌지쥬스를 농축하여 냉동한 샤베트 모양의 제품이었는데 친구가 숟가락으로 퍼서 물에 타준 걸 처음 먹어보고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리본표 마요네즈에 하인즈 케첩에 크래프트 치즈에 스팸에 소시지에 잘 살면 사는만큼 더 미제에 의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누구나 커피맛을 잘 몰라서 다방에서 만들어 내는 커피는 자릿세 비슷한 거라고 여기고 맛은 크게 기대를 안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원두(원두커피가 뭔지 잘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를 끓이는 냄새가 좋아서 다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 풍기는 커피향은 많은 사람들이 다방의 추억으로 가지고 있을 겁니다. 자릿세라고 여기고 마시는 커피였기에 사람들은 다방을 고를 때 맛이 아니라 만남을 위한 장소를 대단히 중시여겼습니다. 연대 이대 서강대 등이 몰려있던 신촌에는 독수리다방, 복지다방, 여왕봉 다방 등이 유명했는데 고대가 있던 안암동에는 다방보다는 막걸리집이 많았던 것 같은 기억이 있습니다.

대학이 서울시내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있다보니 친구들이 모이면 대개 중심에서 만나게 되는데 종로에서 만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명동도 중심이지만 거기는 과외 가르친 월급이라도 받아 주머니가 넉넉한 날이 아니면 가난한 대학생들에겐 가기가 힘든 곳이었습니다. 그곳의 '까뮈(가무)' 다방에서 파는 비엔나 커피는 참 맛도 좋았던 것 같은데 지방에서 올라와 어렵게 하숙이나 자취를 하는 학우들에겐 미안해서 그런데 가는 경우에는 무슨 음모라도 하듯 조용조용 약속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폴모리아 악단이 단연 인기를 휩쓰는 가운데 '남과여' '러브스토리' 등으로 유명한 '프란시스 레이'악단, '레이몽 르페브르'악단, '프랑크 푸르셀'악단 등도 유명했으니 이들의 감미로운 사운드를 누군가가 '프렌치 사운드'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요새 같으면 '프렌치 사대천왕'이니 이런 이름도 붙였을 법도 합니다. 실제 이들 4인이 모여서 합주를 한 곡도 있습니다. 95년 고베지진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고베를 위한 4중주'란 곡을 만들어 녹음한 게 그것입니다. 일본은 오랜 세월 이들의 주요한 활동무대이기도 했는데 음악으로 보은을 한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세월에 스페인에서도 악단이 하나 나와서 인기를 끈 적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종로 2가 장안다방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광고음악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곡이 흘러나와 신선하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샤잠같은 검색 기능은 당연히 없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니 CF 같은데 몇소절만 쓰이던 좋은 음악이 뭔지를 알려면 라디오나 다방에서 DJ가 설명해 주는 것을 듣고 알 수 밖에 없었습니다. 화장품 광고인가에서 못듣던 선율의 음악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는데 그날 다방에서 전곡을 처음 듣게 되었고 곡명도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레코드방(레코드 가게를 그렇게 불렀습니다)에 들러 LP판을 샀습니다. 

'미구엘 라모스' 악단의 'Y te vas'라는 곡이었습니다. 정확하게는 '미겔 라모스'인데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스페인어의 Miguel을 미구엘이라고 읽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 때 하몬드 오르간의 매력이 담긴 노래를 처음 들었던 것 같습니다. 광고에서는 아래 링크 55초 부분부터 사용되었을 겁니다.




한 때 카페인이 없는 커피로 '상카'라는 제품이 나와서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마실 수 있다고 사놓은 집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제 기억에는 맛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카페인 맛을 알고 또 카페인 중독이 되었나 봅니다.  나중에 미국에 가서 60년대를 기억하는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모두가 ''상카 커피, 맞아, 그런거 있었지!"하는 이야기와 "어려서 탱 쥬스 참 맛있게 먹었는데"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해서 은근히 일종의 연대감 같은 걸 느끼며 반갑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엘 가보니 폴 모리아 같은 음악은 별로 듣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워크맨으로 한국에서 가져간 테이프를 들려주었더니 '엘리베이터 뮤직' '쇼핑몰 뮤직' 같다는 반응을 보이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폴모리아 악단의 연주 가운데 잠시나마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 올라간 건 'Love Is Blue' 한 곡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시아와 미국의 음악취향이 참 다르다고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노래는 무슨 음료광고인가의 광고음악에 쓰여서 인기를 끌었던 'C'est la chanson de mon amour'이라는 곡이고 다음은 감미로움 보다는 경쾌하고 밝은 멜로디로 유행했던 'Il fait beau, il fait bon'이라는 노래입니다.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뮤직으로 쓰이기도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날인가 였습니다. 등교길에 캠퍼스에서 만난 친구가 약간의 호들갑이 들어간 하이피치로 저를 불렀습니다. "야, 너 신문봤냐? 우리 장안다방 잘가잖아. 거기 담배꽁초로 커피 만들다 잡혀갔단다." 하도 이런저런 불량식품이 많던 시절이라 웬만하면 놀라지도 않았지만, 내가 마시던 커피가 담배꽁초로 만든 커피였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니코틴은 먹으면 죽는 성분이라 했는데. 집에가 신문보도를 자세히 보니 커피를 조금 쓰고 많이 우려내려고 커피에 담배가루를 섞어 낸 다방들이 단속에 걸렸다는 기가 막힌 내용이었습니다.


기사를 읽어보니 당시는 커피원두 한파운드로 90잔에서 100잔을 뽑는게 정량이라고 되어있습니다. 한파운드를 450그램 잡아서, 한잔에 4.5그램을 사용하는 겁니다. 요즘 커피숍에서 10그램을 사용하고, 좀 고급 전문점에서는 15그램 많으면 20그램까지 사용하는 것에 비교하면 애시당초 참 적은 양으로 만들어 낸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담배가루까지 섞어서 1백 5십잔에서 심지어는 3백5십잔까지 뽑았다고 하니, 커피원두 2그램도 안되는 걸로 한 잔씩 만들어낸 겁니다. 그러니 집에서 타먹는 인스턴트가 더 맛있다 그러고, 결국 한국 젊은이들이 자판기 커피에 매달리게 되는 기현상으로 이어진 것이겠지요.  

한국에 몇번인가 내한공연을 가진 폴모리아는 '아리랑'에 이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편곡하고 연주합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가 작곡하여 붙인 브라스로 연주하는 전주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콘서트를 할 때 이 편곡을 사용할 만큼 인기를 끌었습니다. 라디오프로의 시그널로도 사용되어 귀에 익숙합니다. 



서울시내 어느 다방에서였는지 모르겠는데, 커피를 시키면 손님이 보는 앞에서 맥심커피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주는 서비스를 하기 시작하였나 봅니다. 외국에 있다 잠시 들어와 보니 유행처럼 번져있었습니다. 프림가루 넣고 설탕넣어 마시면 확실히 고소했습니다. 그러니까 블랙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담배가루가 섞인 맛없는 커피보다는 확실히 더 믿을만 하고 또 설탕이 들어가고 프림가루가 들어가니 달고 고소하기도 했겠지요. 그 때 유행했던게 맥심커피였습니다. 사진은 구글을 쳐보니 전부 동서식품 제품 사진만 나와서 뭔가 다른게 없나 찾아보니 일본 아지노모토사 제품이 보이네요. 짐작컨대 맥심은 미국거였는데 아시아에 라이센스를 주다가 지금은 동서식품이 메인이 아닌가 합니다. 인스턴트 맥심을 파는 다방커피에서 자판기커피로 성장하다가 드디어 '커피믹스'의 발명국이 될 만큼 한국은 인스턴트 커피에 관한한 선진국이라 하겠습니다.  

'초이스커피'라고 부르던 네스카페의 '테이스터즈 초이스'라는 제품이 한 때 유행하여 미국에서 교포들이 귀국할 때면 이걸 잔뜩 사서 병에서 꺼내 비닐봉지에 넣어 한국에 귀국선물로 가져가는 붐이 불었는데 나중에 보니 아예 종이포장제품이 나와있었습니다. 조사하여 보지는 않았는데 한국교포들의 수요에 부응하고자 만든 제품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이런 커피들을 마시면서 다방에서, 경양식집에서 참으로 많은 사연들을 만들어 내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클래식 공연을 간 건 앙드레 프레빈이 이끄는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내한하여 '불새'를 연주했을 때와 레나드 번스타인의 뉴욕필하모니가 와서 쇼스타코비치의 심포니 5번을 연주했을 때, 딱 두번밖에 기억에 없습니다. 클래식에 대한 조예도 없었고 귀가 열린 것도 아닌 시절에 그냥 귀한 공연이 왔다니까 가본 거지요. 그런데 폴모리아는 학창시절에 세 번 왔는데 세 번 다 갔습니다. 그리고 다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나의 반백년 음식일기' 카테고리에서 한번 더 쓸까 합니다. 

이렇게 저와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세대는 아마도 '다방'이나 '커피'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면 커피의 맛은 생각이 별로 나지 않고, 들었던 노래, 마주 앉았던 사람 이런게 더 먼저 떠오릅니다. 도서관앞 자판기에서 빼서 호호 불며 마시던 커피맛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말이죠. 그래서 커피에 대한 글을 쓰려니 숱한 노래가 머리속에서 맴을 도네요. 

오늘 마지막으로 폴모리아가 연주하는 영화 '대부'의 주제곡 '사랑의 테마'를 링크하고 물러갑니다. '눈물의 토카타', '엘 빔보', '미누에토', '사랑은 푸른빛' 등 그가 연주하고 지휘하는 숱한 명곡 가운데서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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