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10년, 4월 23일에 먹은 기록 살아가는 이야기


한동안 블로그에 들어오는게 뜸했습니다. 날짜를 보니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게 거의 한달 가까이 되네요. 블로그를 그만 둔게 아니니 지금같은 일요일 밤 하나쯤 새 글을 올려야지 마음을 먹고 노트북 앞에 앉으니 뭐를 쓸까 망설이게 됩니다. 쓸게 없는게 아니라 무얼 써서 올리는게 좋을까 선택이 쉽지 않아서 입니다. 임시로 저장해 놓은 글도 120개 가량 되지만 선뜻 고르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주제와 내용을 놓고 자꾸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하네다 공항 라운지에서 인천공항을 향해 떠나는 심야항공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탑승을 기다리며 며칠동안 먹고 찍은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갖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크게 아픈데 없이 이곳저곳 다니며 일할 수 있고 끼니때면 가볍게 술 한잔 마실수 있다는 형편에 늘 감사하는 마음이었는데 요즈음엔 좀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저희 세대보다 젊은 세대를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오늘을 사는 젊은 세대를 볼 때 마다 늘 우리같은 세대는 참 운이 좋았던 세대였구나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 젊을 때보다 훨씬 진지하게 학업에 임하고 매사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데도 취업이나 진로에 고민을 해야하니 참으로 안되었다는 마음이 들고, 또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생깁니다. 그러다 보니 나같은 사람이 무심코 꺼낸 얘기가 젊은 사람들한테는 꼰대질하는 것 처럼 들리지 않을까, 세상 물정 모르는 개저씨의 발언이 되지는 않을까 지레 걱정도 들고 그렇습니다.

밥과술의 블로그를 열고 주로 음식이야기를 한지 벌써 8년째에 접어드는데 요새는 그냥 먹은거를 올리는 것도 멈칫거리게 됩니다. 그동안에도 좋은데 가서 먹은 거 유명한 집에서 먹은거 이런거는 가려가면서 올리려고 했습니다만 점점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 같습니다. 적당한 시절에 줄잘서서 태어난 덕에 우리 세대는 공부도 적당히 하면 학교 들어갔고, 졸업은 요새에 비하면 거저 먹은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졸업하면 취업은 그냥 되는 건줄 알았고 그냥 누구나 때 되면 대충 결혼해서 애낳고 사는 걸로 알았던 시절에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뒤에 오는 세대를 위하여 좀 더 밝은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물려주지 못한 것 같아서 요즘 젊은 세대에 미안할 따름입니다. 저는 큰 딸 쥬스와 대화가 많은 편이고 그의 친구들과도 그런대로 가까운 편입니다. 그래서 많이 배웁니다. 모두 보기에 흐뭇한 착하고 성실한 젊은이들 입니다. 그런데 우리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취업걱정을 하고 장래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걸 보면 안타깝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나왔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몇년전까지 블로그에 많이 달리던 댓글이 요새는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처음엔 페이스북, 그리고 트위터 인스터그램 등 SNS가 다양해지며 블로그 인구가 줄어서 그런가 보다 여겼습니다. 그러다 얼핏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블로그를 보고 공감하고 대화를 나눌 사람들이 줄어든 건 아닌지, 전반적으로 옛날보다 그런걸 즐길 여유가 없어진 건 아닐까 하고요. 그렇지 않길 바라지만 그런 면이 있다면 블로그를 닫는게 올바른게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블로그가 자꾸 뜸해졌던게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고민은 계속 하겠지만 일단 오늘은 새로운 글을 하나 올릴까 합니다. 스마트폰의 사진폴더를 들여다보며 무얼 쓸까 고르다 보니 갑자기 오늘은 4월 23일 아무날도 아니지, 매년 아무날도 아닌 4월 23일엔 무얼 먹었나 모아볼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이 붙어서 먹는걸 사진찍기 시작한게 2008년 3월이었습니다. 그래서 4월 23일 10년의 기록을 모아 올려보기로 했습니다. 세월이 참으로 빠르더군요.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선 위의 사진은 2017년 4/23, 오늘 먹은 소바입니다. 지금 도쿄에 있습니다. 아래는 오늘 오후 간식삼아 먹은 도투르의 샌드위치와 핫도그 그리고 커피입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굳이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도 메밀함량이 많은 막국수가 널리 널리 보급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일본 소바사진에 함께 실어 올립니다. 도투르는 40년 가까이 된 저가 커피체인인데 스타벅스의 진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수성을 하며 오히려 성장세를 멈추지 않는 일본의 토종 브랜드입니다. 커피도 맛있고 저먼독이니 밀라노 샌드위치니 하는 롱셀러들도 맛이 좋습니다. 커피 한잔에 우리나라 돈으로 2천원 남짓인데 커피의 품질은 대단히 높습니다(제 주관일지도). 나중에 이 브랜드에 대해서는 따로 꼭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그럼 10년전으로 돌아갑니다. 아래는 2008년 4월 23일에 먹은 사진입니다. 김치찌개와 삼겹살이군요. 김치전도 있네요. 압구정동 어디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김치찌개는 언제먹어도 물리지 않는 메뉴라 점심때 참 많이 먹었습니다. 저녁엔 삼겹살을 소주해서 먹었습니다.  

아래는 2009년 4월 23일인데 소혀구이하고 갈비살입니다. 누구랑 먹었는지 생각이 안납니다...


아래는 2010년 4월 23일 도쿄에 갔을 때 기회가 되면 들리는 스시집에서 찍은 사진이네요. 이 때만 해도 스마트폰으로 사진찍는 걸 쑥스러워 해서 얼른 한두장 찍고 그만 두던 시절입니다. 


아래는 2011년 4월 23일 풍천 장어구이 집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아버지가 장어를 좋아하셔서 생전에 모시고 갔었는데 소주를 반주로 해서 맛있게 드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 날 뒤로 아버지의 기력이 급하게 쇠해서 외출하기가 어려워 졌습니다. 가끔씩 좋아하시는 음식을 배달을 시키거나 형제들이 사가지고 와서 함께 들곤 했습니다. 결국 이날이 아버지의 마지막 외식이었습니다. 


아래는 2012년 4월 23일 입니다. 베이징의 어느 윈난(운남)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입니다. 이날 함께한 두 사람은 지금도 친한 사이입니다. 한 사람은 사업이 아주 번창하였고 그 대가로 고민도 더욱 많은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원래 전공이었던 문필업으로 돌아갈까 고민중이라고 합니다. 


아래는 2013년 4월 23일 아침일찍 찍은 사진입니다. 전날 부산 해운대에 출장을 가서 새벽에 눈을 떠보니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에 조금씩 날이 밝아오는 풍경이 색달랐던 기억이 납니다. 호텔에서 나오는 아침 정식을 먹고 낮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아래는 2014년 4월 23일 다저스 스타디엄에서 구장의 명물이라는 다져독과 맥주를 시켜먹은 사진입니다. 출장가서 LA에 머무는 시기와 류현진이 던지는 날이 겹쳐서 좋다고 미리 티켓팅을 하고 다저스의 왕팬인 저희 회사 변호사하고 같이 갔는데 그만 패전 투수가 되었습니다. 

아래는 2015년 4월 23일 집에서 밥을 먹었군요. 돼지불고기와 계란말이를 만들었고 국은 하동관에서 사다가 얼려놓은 곰탕을 녹여서 데운 것 같습니다. 하동관 나주곰탕 이런데서 포장을 해다가 용기에 나누어 담아 얼려놓으면 일인분으로 두끼는 먹는 것 같습니다. 

아래는 2016년 4월 23일 그러니까 작년입니다. 라면을 끓였는데 냉동실에 있던 만두도 넣었습니다.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물을 정량보다 좀 넉넉하게 붓고 만두를 먼저넣고 끓이다 라면을 넣었습니다. 라볶이 해먹을 때 사리만 넣고 남겼던 라면스프가 이럴 때 가치를 발휘합니다. 더 넣은 물만큼 스프를 비례해서 더넣으면 딱 좋더라구요. 

그리고 오늘, 아니 벌써 어제가 되었네요. 아래는 2017년 4월 23일. 이렇게 사진 몇장을 보니 십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간게  보입니다.

이제 이륙입니다. 앞으로 블로그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서 일단은 계속 하려고 합니다.



구멍가게와 꽁치통조림, 삼립빵, 롯데껌 해태껌 살아가는 이야기

시골 어딜가나 있을 법한 구멍가게 입니다. 최근에 알게된 이미경 작가님의 구멍가게 연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분의 그림들을 보자마자 너무 맘에 들어 단박에 팬이 되었습니다. "동전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구입하였습니다. 몇 작품을 더 퍼오는 김에 책 광고 삼아 링크를 답니다. http://item2.gmarket.co.kr/Item/DetailView/Item.aspx?goodscode=901443605 출판사의 트위터를 가보니 공릉동 책방 51 페이지에서 아트프린트전도 열린답니다. 이런게 책으로 엮여져 나온 것만 해도 고맙지만 사실 기왕이면 좀 더 큰 화집으로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아트프린트가 있다니 한번 보러 갈까 생각중입니다.

이 푸근한 그림들을 보면서 저는 구멍가게에 얽힌 옛날 사연들이 줄줄이 떠 올랐습니다. 우선 그림 몇장 더 감상하시죠. 작가는 20년 동안 전국의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며 작품들을 그렸다고 합니다. 한 4,50년전부터 이런 작품활동을 하신 분이 또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드니 사람의 욕심엔 끝이 없나봅니다. 


저의 구멍가게와 얽힌 기억속에는 시골에서 산 꽁치통조림이 여러군데 들어있습니다. 서울에서 살면서 아파트로 이사하고 편의점이 생기기 전까지 수십년동안 집앞의 구멍가게에서 별의별 물건을 다 샀을터이니 그건 일상생활의 일부라 그냥 넘어간 모양입니다. 위의 그림들에서 나오는 구멍가게는 서울의 그것도 있지만 지방으로 여행을 가게 되면 더 친근하게 만나게 되는 풍경입니다. 

고등학교때 대학교때 친구들 하고 강변으로 캠핑도 가고, 산에도 가고, 때로는 해변으로도 가곤 했지요. 친구들과 팀을 짜서 가까운 근교는 주로 주말에 먼 지방은 방학때 갔는데 가면 반드시 신세를 지는게 위에 나오는 구멍가게 입니다. 요리라고는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모여서 만들기 만만한게 고추장 찌개입니다. 시골이라고 필요한 야채가 그냥 밭에 널려있는 건 아니고 구멍가게에서 조달을 합니다. 감자, 당근, 양파 등을 울퉁불퉁 썰어넣고 고추장풀어 끓이면 끝입니다. 맛보다가 싱거우면 간장 넣고 짜면 물붓고 하는 식의 조리법인데 배가 고파서였는지 다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밥도 타고 설익고 끼니때마다 완성도가 달랐는데 그래도 좋았습니다. 

매끼 고추장찌개만 해서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메뉴의 다양화를 꾀할때 인기 일순위가 꽁치찌개 였습니다. 그때는 펭귄표 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이걸 따서 국물째 냄비에 붓고 적당히 야채넣고 고추가루 간장 양념해서 끓이면 맛있는 찌개가 완성되었습니다. 먹다남은 김치를 넣고 끓이면 그건 또 그거대로 별미였지요. 지방에 놀러간다고 김치를 가져가는 경우 냉장시설이 있을리 만무하니 하루 이틀 지나면 부글부글 끓어올라 시어버려서 반찬으로 먹기엔 마땅하지가 않습니다. 그걸 꽁치통조림하고 같이 끓이는 거지요.  

요즈음엔 정식 메뉴로 자리잡아 꽁치김치찌개를 내는 식당이 적지 않은데, 저는 이게 캠핑이나 등산요리에서 온거라고 믿습니다. 참치찌개는 뒤에 소개된 참치통조림이 꽁치를 대신한 거라고 생각하구요. 아무튼 저는 시골 구멍가게하면 꽁치통조림이 생각납니다. 꽁치통조림이 나와서 대중화 되었을 땐 그다지 비싼 품목이 아니었는데 그 전부터 있었던 과일 통조림은 대단히 귀한 상품이었습니다. 복숭아 통조림은 황도, 백도라고 해서 국산이 있었는데 파인애플 통조림은 Dole이라고 해서 미군부대를 통해서 흘러나온게 전부였을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밀감통조림도 국산화가 되었는데 다들 입원한 환자들에게 가져가는 귀한 물건이었지요.  

그리고 저는 국민학교시절 구멍가게 하면 껌이 생각납니다. 나중에 해태제과 제품도 나오고 했지만 처음엔 롯데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한게 그 때는 참으로 껌을 많이도 씹었습니다. 서울의 길바닥은 어디나 씹다뱉은 껌으로 얼룩덜룩 대단했습니다. 나중에 정부가 나서서 껌은 껌종이에 싸서 버리자는 캠페인을 하였습니다.  

방학때 시골에 내려가면 서울에 있을 때보다 단게 더 땡깁니다.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놀아도 한달이상 있다보면 가끔씩 서울 생각이 납니다. 그럴때 도시와 시골을 연결시켜주는 나니아의 옷장같은게 동네에 한두개 있는 구멍가게입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진열된 모습이나 상품의 내용이 도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쁘게 인쇄된 포장지속의 상품을 보면 그리운 서울동네가 좀 가까이 다가온 것 같은 착각도 들었습니다. 구멍가게 들어가서 제일 많이 샀던게 껌이었던 같습니다. 값도 만만하고 애들하고 나눠먹기도 좋았으니까요. 롯데 후레쉬민트 쥬시후레쉬  스피아민트 인기 3종을 돌아가며 씹었는데 쥬시후레쉬가 입맛에 제일 맛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theqoo.net에서 퍼왔습니다. 덕후를 더쿠로 표기한 사이트인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펭귄 디자인의 쿨민트라는게 있었는데 씹으면 입안이 시원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습니다. 어릴적 기억이라 정확하지 않은데 이 껌이 먼저나오고 나중에 위의 세가지 껌이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미지가 없어서 일본사이트를 검색했더니 똑 같은게 나오네요.


그리고 해태 풍선껌을 구멍가게에서 많이 사먹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바나나향이 들어간 껌이 나왔는데 아이들은 그 신비한 향에 홀딱 빠져버렸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말로만 듣고 막상 먹어본 적이 없는, 이 바나나에 대한 동경은 대단하였고 그 맛과 향은 참으로 매혹적이었습니다. 해태제과에서 풍선껌을 내다가 당시 소년한국일보에 인기리에 연재되던 신동우 화백의 '소년 홍길동'의 모델로 쓴 제품을 새로 냈습니다. 검색하여 찾은 이미지로 홍길동 곱단이 차돌바위를 보니 반갑네요. 잘생긴 호피도 있었는데... 아래 사진은 메모리빌리아 상품을 판매하는 chobay.com에서 퍼왔습니다.


그리고 구멍가게하면 잊을 수 없는게 삼립 크림빵입니다. 저하고 비슷한 세대라면 이걸 아마 수백개 이상 먹고 자라지 않았나 싶습니다. 간식으로 끼니로 참 인기있는 국민상품이었습니다. 이게 시골에서 매일 같은 밥을 먹다가 물리면 가끔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어쩌다 사먹으면 묘하게 서울서 먹던 것하고 다른 맛이 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유통기한 이런거 따지지 않았을 것 같은 시절에 오래된 상품에서 나는 맛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눈으로 봐서 곰팡이 안피었으면, 먹어봐서 이상한 맛 안나면 유통기한이내, 이런 시절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실제로 등산이라도 갈 때 백담사 입구 이런데 있는 구멍가게에서 라면을 사서 끓여먹으면 묘한 맛이 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산패한 맛이었습니다. 


이 삼립크림빵은 황석영의 명작 '삼포가는길'에도 나옵니다. 계절노동자 영달과 정씨가 길에서 만난 백화라는 아가씨와 짧은 시간을 함께 하다가 역에서 헤어지는 장면입니다. 

영달이가 뒷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오백 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저 여잘 보냅시다.”
영달이는 표를 사고 삼립빵 두 개와 찐 달걀을 샀다. 백화에게 그는 말했다. 
“우린 뒷 차를 탈 텐데...... 잘 가슈.”
영달이가 내민 것들을 받아 쥔 백화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 여자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아무도...... 안 가나요.” 
“우린 삼포루 갑니다. 거긴 내 고향이오.”
영달이 대신 정씨가 말했다. 사람들이 개찰구로 나가고 있었다. 백화가 보퉁이를 들고 일어섰다. 
“정말, 잊어버리지...... 않을께요.”
백화는 개찰구로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백화는 눈이 젖은 채 웃고 있었다. 
“내 이름 백화가 아니예요. 본명은요......이점례예요.”
여자는 개찰구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에 기차가 떠났다. 

겨울밤에 출출하면 나가서 집앞 구멍가게에서 사과, 과자같은 걸 사다가 형제들이 둘러앉아 먹던 생각, 엄마가 저녁을 하다가 얘 참기름이 떨어졌다 앞에 가서 참기름 사와라 그러시면 조그만 활명수병에 넣어팔던 참기름을 사오던 기억, 어쩌다 연탄이 꺼지면 번개탄을 사던 곳, 알록달록 불량식품의 퍼레이드가 펼쳐진 진열대 등, 도시의 구멍가게에 얽힌 추억도 차고 넘칩니다만 오늘은 어쩌다 들렸던 색이 바래고 먼지를 쓴 것 같은 시골의 구멍가게가 그리워집니다. 순전히 이기적인 마음인데 이런 가게들이 오래오래 남아있었으면 좋겠네요. 
   


애니메이션과 소박한 음식, 상점가(商店街) 일본이야기

숱한 걸작을 세상에 내어놓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가운데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세대교체를 시도하여 젊은 감독들을 기용한 것도 있고, 외국과 협력한 것도 있지요. 오랫동안 동지로 함께한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勲)도 여러 명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 묘사하는 음식은 자칫 현실감이 없어 공감하기 어려운게 많은데, 지브리 작품에서 나오는 음식은 실사로 찍어낸 것보다 더 가슴에 와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산해진미로 가득한 진수성찬이나 궁중의 호화스런 만찬보다도 소박한 가정요리나, 추억의 음식들을 묘사하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지브리 작품들은 참으로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위의 그림은 지브리의 작품에서 보이는 햄에그 부침, 스프, 튀김, 도시락, 라멘 등 일상의 음식들인데 하나하나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줍니다. 

아래는 해피엔딩의 중심 디즈니의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낸 지브리의 <반딧불의 묘(火垂るの墓)>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단무지와 야채절임을 반찬삼아 찐 감자를 먹어도 행운이었던 전쟁당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주인공 여자아이는 오랜만에 본 쌀밥을 너무나 맛있게 먹습니다. 옛날에 이 장면을 보면서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우리나라도 전쟁을 겪었던 시절, 가난해서 배를 곯던 시절, 희망이라는 가는 줄을 잡고 고생스런 나날을 견뎌내던 시절, 이런 세월의 이야기를 서정적인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낼 날이 언젠가 오기를 바라면서요.  
아래에 소개한 컷들은 지브리의 <고쿠리코 언덕에서(コクリコ坂から)>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는 늦은 오후, 하늘은 석양으로 물들고 한참 클 나이의 청소년들은 배가 출출한 시각입니다. 주인공은 상점가(商店街;쇼텐가이)의 정육점에서 갓 튀겨낸 고롯케를 먹습니다. 이제는 일본에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24시간 편의점에만 들어가면 그럭저럭 괜찮은 고롯케를 먹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육점에서 주부들이 저녁 장볼 시간에 맞춰 튀겨낸 고롯케를 먹어본 세대는 이장면에서 푸근하고 정겨운 향수를 느꼈을 겁니다. 아래에 상점가 장면에 나오는 몇커트를 더 퍼왔습니다. 


이제 '구름'하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상징처럼 되어버렸습니다만, 지브리 작품에서 나오는 구름과 하늘도 좋습니다. 위의 컷을 보면 노을에 물든 구름 아래로 황혼이 깃들어가는 상점가의 묘사가 뛰어납니다. 어두워진 쇼텐가이(商店街;상점가)는 조명을 켜기 시작했고, 이미 불이 들어온 가로등이 제구실을 하려면 좀더 어두워져야 하는 바로 이 때 사람들은 묘한 감정을 느끼곤 하지요.  



야채가게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이 영화의 무대는 요코하마를 모델로 하였다고 합니다. 도쿄나 요코하마는 서울보다 해가 한시간정도 빨리 집니다. 같은 표준시를 좌우로 해서 한시간정도 만큼 경도가 벌어져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둑어둑할 때 장을 보는게 이상하지 않은 거지요. 이 영화의 시기는 도쿄올림픽을 앞둔 60년대 초반입니다. 오래전 이야기이지요. 세월은 흘렀고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제 오후늦게 주부들이 매일 장을 보는 광경은 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도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정육점에서 튀겨파는 고롯케가 맛있기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고기를 썰어팔다 남은 짜투리 고기를 활용하여 감자와 섞어 만든 고롯케가 싸고 맛있어서 지금도 편의점, 수퍼, 백화점 지하, 이런 대량생산의 파도에 쓸려가지 않은 동네 정육점들이 지역사회에 간간이 남아 변함없이 고롯케를 튀겨내고 있는게 오늘의 일본이기도 합니다. 

위는 아마도 도쿄 신바시 정도를 모델로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지금도 신바시부근은 퇴근후에 쏟아져 나온 샐러리맨들로 먹자거리들이 대성황입니다. 요새도 철도가 지나가는 다리밑에 자리잡은 야키토리집이나 선술집들에서 나오는 고기굽는 냄새가 골목에 진동을 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위의 장면은 아까 얘기한 대로 60년대인데 지금도 이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려서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여서 국민학교때 시장을 자주 갔습니다. 그래서 석양빛에 물든 시장거리의 추억이 더욱 많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을 보러 좀 늦게 나선 날은 붉은 빛에 물든 하늘을 보고 갔다가 돌아올때는 이미 어두워진 적도 많았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늦었구나. 다들 배고프겠다. 빨리가자.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옷 꼭 여며라. 바람맞아 감기 들지않게' 하시곤 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로 시장에 따라갈 일은 별로 없었고, 그 뒤 한국에는 아파트에 살면서 수퍼에서 물건을 사는 생활풍습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 가서 살게 되었을 때 제일 문화충격으로 다가온게 동네마다 '쇼텐가이(商店街;쇼텐가이)'가 있어서 여전히 생활의 기반으로 기능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라져버린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이 상점가를 지나다니는 걸 너무나 좋아하였습니다. 일본의 쇼텐가이는 일본 고유의 형태로 독특한 풍취가 있습니다. 여행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럼에도 한국사람들의 정서에도 어필하는 그 무언가의 매력이 있습니다. 

아래는 '짱구는 못말려'로 번역된 '크레용신짱'의 한장면입니다. 저녁거리 장을 보러 나선 주부의 모습입니다. 역시 저녁 노을에 하늘이 붉게 물든 시간입니다. 일본사람들에게도 노스탈지어로 남은 것 같습니다. 여러 애니메이션에 등장을 합니다. 제가 처음 갔을 때로부터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일본도 전국 각지에서 문을 닫는 쇼텐가이가 속출한다는 보도가 얼마전에 나왔습니다. 고령화사회의 진행에 일인세대가 늘어나는 등 사회구조가 바뀌었고, 이제는 대형 수퍼와 몇집건너 있는 것 같은 숱한 편의점에 전통 상점가가 버텨내기 힘든 세월이 온 것입니다. 

쇼텐가이하면 제일 생각나는 애니메이션은 <おもひでぽろぽろ(오모이데포로포로;추억은 방울방울)>입니다. 아까 소개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작품인데 저는 이 작품을 정말로 좋아합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과거 회상부와 현재, 두 시점의 이야기가 교차하여 진행되는 얼개인데 현재는 기존의 애니메이션 화풍으로 묘사되고, 과거는 엷은 담채의 화풍으로 그려집니다. 아래가 현재 시점의 한 컷 입니다. 

제가 더욱 좋아하는 부분은 주인공의 초등학교 시절을 그린 회상 부분입니다. 아래는 서로 호감을 가지지만 표현은 못하고, 마주치면 괜히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고 근데 그게 뭔지도 모르는 주인공과 상대 남자아이가 동네에서 마주치는 장면입니다. 석양이네요. 아련한 과거의 기억을 엷은 수채로 그려낸 건 신의 한수 같습니다. 

여러장면 가운데, 가슴이 짠하게 여운이 남는 건 쇼텐가이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주인공네 반에는 말썽장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애들 괴롭히고, 공부를 못하는 건 물론 학습태도도 불량한 그런 아이였는데 어느날 오후 엄마를 따라 장보러 갔던 주인공은 쇼텐가이에서 그 아이와 맞닥드리게 됩니다. 

주인공도 놀랐지만, 더 놀란 건 아버지인듯 한 어른의 손을 잡고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그 아이였습니다. 어른의 손에는 짐보따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왈왈대던 쎈 모습은 어디로 가고 없었습니다.  

아이는 주인공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고 불량한 걸음걸이를 하며 학교에서의 그의 모습으로 되돌아 옵니다. 그리고 길바닥에 침을 퉤하고 뱉습니다. 

영문따위는 알 리가 없는 어른은 뭔 짓이냐고 아이의 뒷통수를 한 대 갈기고는 뒷덜미를 채어 갈 길을 재촉합니다. 주인공은 왠지 모르지만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 같습니다. 이게 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시골 할머니네로 갔다던가 하는 풍문을 남기고 전학을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주인공은 길에다 침을 퉤퉤 뱉습니다. 그 아이가 미처 못뱉었던 침을 대신 뱉어준다는 듯이. 그리고 어두워져가는 쇼텐가이 골목을 보무도 당당하게, 그 아이처럼 아주 불량하게 걸어갑니다. 

원래는 이렇게 조신하게 걷던 주인공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 먹음직스럽게 묘사된 음식과 아련하게 그려진 쇼텐가이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깊게 새겨져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도 발전해서 언젠가는 이런 수준의 작품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궁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일본의 외식(3): 혼밥 이야기, 고쇼쿠(個食) 일본이야기


손님과 손님사이에 뚜렷하게 그어진 하얀 선이 눈에 들어옵니다. 모든 손님에게 일인분의 영역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려는 의도겠지요. 후추, 라유, 간마늘같은 스파이스나 클리넥스까지도 다 한사람씩 따로 구비하여 모르는 옆손님과 '저, 내프킨좀...' 이런 말을 섞을 필요조차 없습니다. 여기는 나름 맛있기로 이름난 도쿄의 한 라멘집입니다. 국물은 돈코츠와 쇼유를 배합하고 면위에 야채를 듬뿍 얹는게 특징인 '지로(二郞)계열' 가게입니다. 일본 라멘업계의 현황과 족보는 오늘의 테마가 아니므로 나중에 기회있을 때 따로 정리하기로 하고 오늘은 혼밥이야기 입니다. 

일본은 여러가지 사회현상에서 한국보다 미리 나타나는게 많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마지막 전쟁이 끝난 것도 8년이 빨랐고, 경제복구 출산붐 고도성장 등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보다 미리 경험한게 많아서 두 나라를 비교해보면 한국이 비슷한 궤적을 시차를 두고 답습해가는 것 같은 그래프와 통계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한국을 전망하여 돈을 벌었다는 사람도 여럿 보았습니다. 거창한 이야기는 접고 오늘의 이야기 혼밥으로 돌아갑니다.

일본에서는 위의 사진처럼 앉는 곳을 카운터석(カウンター席), 일반 테이블에 앉는 곳을 테이블석(テーブル席)이라 합니다. 스시집은 스시라는 음식의 특성상 카운터석이 더 선호되기도 합니다만 여전히 테이블에 앉아 즐기려는 일행도 많습니다. 라멘집은 원래 테이블석과 카운터석이 혼재되어 있다가 요즈음 뜬다는 곳은 테이블없이 카운터석만 마련한 곳이 많습니다.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도 좋고 인건비를 줄일 수도 있으니까요. 손님들도 맛있다는 라멘집은 여럿이 가서 담소를 나누며 먹는 곳이 아니라 잘만든 라면을 얼른 먹고 나오는 곳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일본에서는 카운터석 위주로 설계를 한 식당이 많이 늘어난 걸 피부로 느낄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낮은 객단가에 카운터석 영업을 위주로 해 온 대형 규동체인말고도 다양한 메뉴의 카운터식 식당체인들이 생겨났습니다. 아래는 돈카츠 체인인 '가츠야(かつや)'인데 얼마전 길가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이 체인은 상장까지한 회사의 브랜드인데 일찌감치 고쇼쿠(個食;혼밥) 고객을 타겟으로 하여 급성장한 회사라고 경제지, 잡지에서 많이 다룬 성공사례이기도 합니다. 이 브랜드는 객단가 750엔에 가성비좋은 음식을 내어 매년 두자리 성장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고쇼쿠 식당이 싼 가격으로만 승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진은 맛있다고 해서 먹어본 돈카츠집입니다. 들어가보니 카운터석밖에 없었습니다. 혼자와서 먹는 손님들이 대부분이고 둘이 온 일행을 하나 보았습니다. 가격은 전통적인 돈카츠 식당과 비슷했고 카운터석이라 싸다는 느낌도 아니었습니다.  


아래가 시켜서 먹은 돈카츠 사진입니다. 맛이 좋았습니다. 


이날의 경험으로 맛있는 돈카츠를 2인용 테이블이나 4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아 먹는 것보다는 카운터석에 앉는게 더 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도 있겠구나 실감했습니다. 나와서 보니 바로 옆집이 카운터석 전용의 라멘집(아래사진)이었고 그 옆집도 혼밥손님을 메인타겟으로 한 인도식당이었습니다(사진은 깜빡). 혼밥식당이 점점 늘어가는 걸 보았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여럿이 먹는 메뉴들이 속속 혼자 먹을 수 있는 카운터석으로 등장한다고 기사에서 몇번 본 기억이 나서 숙소에 돌아와 검색을 하여보았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구나 싶어 조금 놀랐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구글 야후에서 퍼온 것 들입니다.  우선 바로 아래는 일식집인데 혼자 온 손님들 위주로 설계를 한 곳이라고 합니다. 가운데 길다란 테이블도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혼자온 손님들이 앉기 편하게 만들어 놓은 것 입니다. 



아래는 바가 아니라 서양요리를 혼자 온 손님에게 내는 식당 사진입니다. 



아래 사진은 혼자 와서 본격적으로 프랑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혼자먹는 이태리 요리는 많았고 이밖에도 다양한 식당을 검색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은 카운터 너머로 서브하는 문화가 전통적으로 있었기에 이러한 배치가 저항감 없이 쉽게 확산되는 것도 같습니다. 아래도 퍼온 건데 로바타야키집 사진입니다. 스시집처럼 여럿이 간 손님들도 옆으로 나란히 앉아 음식을 시켜 먹지요. 그리고 그 아래는 미국 대통령이 왔다갔대서 더욱 유명해진 대형 이자카야 입니다. 카운터석 설계에 중점을 둔게 눈에 들어옵니다. 이러한 카운터석에 대한 익숙함이 고쇼쿠, 즉 혼밥 외식문화의 확산에 도움이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한국에서 생겨난 신조어 '혼밥'에 상응하는 일본말 '고쇼쿠'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지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본에서는 이 단어가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에 생겨났습니다. 처음에는 '孤食'라고 쓰고 고쇼쿠라고 읽었지요. 외로울 孤자를 써서 혼자 쓸쓸하게 밥을 먹는다는 뉘앙스가 강했습니다. 식사는 여럿이 함께 하는게 정상이라는 무의식에 대비된 단어라고 하겠습니다. 

일본에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조부모도 함께 살고, 부부슬하에 자식이 적어도 두명이상이던 전통적인 '단란가정'은 아주 아주 오래전에 일찌감치 깨졌습니다. 매머드형 대형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가정당 아이수가 줄어들고 부부의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가족이 다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횟수도 줄어들었지요. 그러면서 고쇼쿠는 個食로 표기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낱 個자를 써서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보다 중립적인 표기가 된 것 입니다. 

두 단어가 혼용되던 초기에는, 孤食는 어쩔 수 없이 혼자 먹어야하는 식사, 個食는 가족 구성원은 여럿이지만 생활리듬상 등의 이유로 따로  먹어야하는 식사 등으로 구별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런 구별마저 없어지고 個食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런 차이를 둔 해석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거니까요. 

일본은 이미 십년전에 전국 센서스에서 일인세대수가 2인세대수를 넘어섰습니다. 혼자서 식사를 하여야하는 끼니가 엄청 늘어난 것이지요. 그래서 또 생겨난 풍습과 단어가 나카쇼쿠(中食), 나이쇼쿠(内食)입니다. 외식(外食)이라는 말이 '밖에서 먹는'다는 뜻이므로 집에서 조리를 해먹는 식사를 '안에서 먹는'다고 해서 나이쇼쿠(内食)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바로 이 중간 단계의 식사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어라고 봅니다. 

바로 그 '가운데 위치한' 식사가 나카쇼쿠(中食)입니다. 밖의 식당에서 먹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해먹는 것도 아닌 중간단계에 위치한 식사를 가운데 中자를 써서 나카쇼쿠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편의점 도시락 이나 샌드위치 삼각김밥을 사다가 사무실이나 집에서 먹는 것도 이에 해당합니다. 데파지카(デパ地下)라고 부르는 백화점 지하 식품부에서 조리가 완성된 제품이나 반제품을 사다가 그냥 먹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데우거나 손을 더해 먹는게 일본에서는 큰 유행입니다. 일주일 단위로 메뉴를 정해서 배달을 해주어서 편하게 집에서 식사를 하는 케이터링 산업도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이게 다 나카쇼쿠 카테고리에 들어갑니다. 

지금 일본 외식산업의 외형이 25조엔(250조원)인데 나카쇼쿠산업의 그것이 6조엔(60조원)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한국도 일본의 트렌드를 비슷하게 닮아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인기만화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의 제목이 '혼밥미식가', '홀로 즐기는 미식가'로 바뀌어야할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다음에 일본의 혼밥과 나카쇼쿠 문화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지요.    


일본의 외식(2): 심야식당과 밥집 일본이야기


천만이 넘는 대도시의 가장 번화한 지역에도 한발짝 들어가면 한적하고 으슥한 골목길이 있습니다. 오가는 숱한 사람들 가운데 이곳을 알고 찾아와 밤늦게 밥한끼를 때우고 술도 한잔 걸치는 그런 식당입니다. 일본에서 만화로 먼저 주목을 받다가 TV드라마로도 인기를 끌고 영화화까지 된 '심야식당'의 무대입니다. 이름은 '메시야(めしや)' 우리말로 '밥집'입니다. 이 식당은 진짜로 일본 곳곳에 남아있을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데 그 동네 골목까지 전부 세트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 두장은 바로 이 심야식당이 자리잡은 골목안 풍경을 찍은 건데 사진을 자세히 보면 위쪽으로 영화세트에서 보이는 어지러우 전선과 천정이 보입니다. 물론 설명이 없으면 그냥 넘어갈 만큼 리얼하네요. 이 사진은 세트를 다녀와서 글을 올린 일본의 よしだたつき라는 분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http://getnews.jp/archives/1526629 에 가보시면 심야식당과 관련해서더 많은 사진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블로그 같았습니다. 

오늘 심야식당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일본의 식당명칭을 이야기하는데  이 '메시야'라는 이름이 좋은 소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전에 쓴 밥과술 블로그에서 이 심야식당에 관하여 설명한 포스팅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밥집'이라는 명칭은 보통명사로 자리잡지 않았습니다만 일본의 경우는 나름 꽤 쓰이는 명칭입니다. 물론 같은 뜻으로 '메시도코로'라는게 더 보편적이긴 합니다. 이제 하나씩 설명해 보기로 하지요. 

일본에는 '메시야'를 고유브랜드로 한 식당들이 많이 있군요. '메시야 식당', 'the 메시야' 등의 체인도 있네요. 혹시 '심야식당'의 인기에 편승한 네이밍이 아닌가 찾아보았더니 만화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있던 브랜드로 주식시장에 상장까지 했네요. 그 아래로 돈부리를 파는 '메시야 동'도 있고, 한국에서 자주보이는 표현인 '원조' 비슷한 '본가(혼케;本家) 메시야'라는 집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식당을 지칭하는 명칭을 간단히 소개해봅니다. 서양음식을 파는 곳으로는 전통적인 레스토랑말고도 요즘들어 퍼지는 리스토란테, 브라세리, 비스트로, 트랏토리아, 핏짜리아 등등이 있는데 오늘은 일본 음식을 파는 곳을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우선 대중적인 식당으로 제일 무난하게 쓰이는게 '쇼쿠지도코로(食事処)'입니다. 한자음을 그대로 읽으면 식사처, 뜻으로 읽으면 식사하는 곳, 식사하는 집 쯤 됩니다. 일본 전국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간판이지요. 가게 이름과 함께 업태를 나타내는 '쇼쿠지도코로'를 노렌에 표기하거나 아카쵸친(붉은등)을 내걸거나 합니다. 

이름은 대중적인 쇼쿠지도코로를 쓰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꽤 고급스러운 집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만만하고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집들이라 지방을 여행하다가 연도에 내건 이런 간판을 발견하면 반갑습니다. 

메시하고 도코로를 붙여서 '메시도코로(めし処)'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대로 읽으면 '밥처'가 되겠는데 그냥 '밥집'으로 번역하는게 무난합니다. 오늘 사진은 전부 구글, 야후 이미지에서 퍼온 겁니다. 쇼쿠지도코로, 메시도코로, 메시야 다 같은 의미로 혼용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대중적인 식당으로 한국어와 같이 그냥 쇼쿠도(食堂;식당)라고 쓰는 집도 많습니다. 사내식당, 구내식당, 학내식당 이런단어도 일본어와 한국어가 공유하는 것들이라 일본에서 식당 그러면 대중적인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이 단어에서는 손님들이 더 편하게 들어오도록 친근하게 문턱을 낮춘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아래 사진들이 한 예입니다. 두번째 집은 '어머니의 맛(おふくろの味)'이라는 문구가 간판에 들어있네요. 일본도 앞으로 '어머니의 맛'을 강조하는 식당은 점점 사라져 가겠지요. 그 말이 가지고 있는 향수와 환상도 희미해졌기 때문이지요. 이'어머니의 맛'에 관해서는 따로 한번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이런 식당의 내부는 대개가 이렇게 숱한 메뉴를 손으로 써서 덕지덕지 붙여놓은 경우가 흔합니다. 그것도 그러려니하면 도리어 정취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대중식당들은 혼자 오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수십년전부터 그랬습니다. 퇴근 길에 들러서 혼자 밥을 먹는 샐러리맨, 슬렁슬렁 쓰레빠를 끌고 나오는 자영업자 같은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들어 간단한 안주감을 시켜놓고 대개 맥주나 소주(옛날엔 사케가 많았는데 요즈음은 소주가 더 유행임)를 몇잔 마시다가 식사로 마무리를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갑니다. 벽에 높이 걸어놓은 TV에서는 시즌내내 야구중계가 돌아갑니다. 단골들이 많은 식당에서는 손님들끼리도 들며나며 반갑게 서로 아는체를 합니다. 한국사람 눈에는 나중에 더치페이를 하는게 쑥스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즐깁니다.  

일본요리를 내는 외식업소 가운데 제일 고급으로 치는 곳은 료테이(料亭;요정)입니다. 그 곳에서 내는 요리는 카이세키요리(会席料理)입니다.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일식을 풀코스로 내는 건데, 일본의 온천 여관에 가면 저녁에 나오는 요리가 그것이거나 그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사료(茶寮), 차야(茶屋)라는 이름으로 고급요리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넘어갑니다.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름인데 우리나라에는 없는게 갓포(割烹)입니다. 갓포는 요리방식이자 업태이기도 합니다. 이런 가게를 일컬어 갓포텐(割烹店)이라고도 합니다. 이게 어쩌다 나름 서민적인 곳도 있지만 꽤나 고급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자를 한국어로 읽으면 할팽(割烹)이 됩니다. 할은 자른다는 뜻으로 칼을 사용한다는 의미고 팽은 삶는다는 의미이니 그야말로 칼과 불을 쓴다, 즉 요리전반을 의미합니다. 

위는 구글에서 '割烹'이라는 단어로 이미지검색을 한 첫페이지입니다. 꽤나 단정하고 깔끔한 일본식당의 이미지가 나오네요. 외식산업의 역사가 수백년이 된 일본과 전후 시작된 한국의 외식산업을 비교하는 건 어차피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국은 또 의식하면 잘 배우고 잘 따라가기도 합니다. 늘 혼돈속에 발전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러모로 어지러운 한국 외식산업의 현황을 보면 보다 진지하게 일본을 연구하고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오늘은 일본의 외식업소의 명칭에 대하여 서민식당을 위주로 적어보았습니다. 다음에 이 갓포와 카이세키에 대해서 기회가 있으면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꽃샘추위가 술한잔을 부르는 저녁입니다. 위장이 꼬로록 소리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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